[위빠사나 수행기7] 욕계, 색계, 무색계의 화생(化生) 이야기
화생이 있다. 완성된 채로 급작스럽게 태어난 존재를 말한다. 보통 색계 무색계 천인과 지옥 아귀 아수라 아귀와 같은 세계에서 태어나는 존재를 말한다.
자신의 세계가 없는 아수라
여기서 아귀는 자신의 세계가 없다. 9천을 떠 도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아귀를 귀신이라 한다. 그러나 귀신은 없다. 몸과 마음이 생기면 외부적인 마음이 들어 올 수 없다. 즉 귀신이 들린다는 말은 거짓이라는 것이다. 아귀는 자신의 세계가 없지만 파장을 줄 수는 있다. 그로 인하여 인간이 영향을 받을 수는 있다.
아귀를 제외한 31개의 세계는 서로 다른 세계이다. 서로 인식 하는 세계가 다르기 때문에 알아 볼 수 없다. 같은 공간에 살고 있지만 개미가 인식 하는 세계와 사람이 인식 하는 세계와 다른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5개의 감각기관이 불구로 태어 나지 않는 존재는
지옥 아귀 아수라에 태어난 존재들은 감각기관이 불구로 태어 나지 않는다. 왜냐 하면 자신의 과보에 대한 벌을 받으려면 안이비설신과 같은 감각기관이 불구 이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고통스러운 장면이 있는데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고통을 보지 못할 것이고, 고통스러운 신음소리가 있는데 귀가 먹었다면 고통을 받아 들이지 못하는 이치와 같을 것이다. 따라서 모든 감각기관이 완전한 채 태어 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5개의 감각기관이 완전 할 수도 있고 부실 할 수도 있다. 또한 5개의 감각기관으로 고통을 받을 수도 있지만, 반면에 5개의 감각기관으로 의식이 고양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인간만이 깨달을 수 있고, 과보를 바꿀 수 있다. 즉 고통과 행복을 가진 인간만 수행 할 수 있고 부처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눈과 귀로만 구성된 색계 천인
천인이 있다. 즉 욕계천인, 색계천인, 무색계 천인을 말한다. 이들 모두 재생연결식이 일어남과 동시에 화생으로 태어난다. 그런데 각기 각각기관이 다르게 태어난다. 욕계천신은 성의 구별이 있으므로 안이비설신의 10원소, 성의 10원소, 토대의 10원소등의 조건을 갖추고 태어난다. 그러나 색계천인의 경우는 다르다. 초선천, 이선천, 삼선천, 광과천, 정거천에 태어 나는 천인에게는 이(코)와 설(혀)과 신(몸)과 성의 요소가 없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안(눈)과 이(귀)의 깔라빠로 구성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보는 것과 듣는 것으로 구성된 천인이 색계천인이라 볼 수 있다.
나무 조각상 같은 무상유정천의 존재
그런데 재미 있는 것은 무상유정천이다. 무상유정천은 팔리어로 아산냐삿따(asanna-satta)라 해서 인식이 없는 중생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마음이 아예 일어 나지 않기 때문에 인식과정도 없다. 따라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움직임도 없다. 마치 나무로 조각한 상과 같다. 무상유정천에 태어 나는 존재들은 전생에 인식에 대하여 극도로 혐오하여 인식이 없는 경지를 얻고자 선정을 닦았기 때문에 태어 났다고 한다. 그런데 인식이 생기는 순간에 죽게 된다고 한다.
과거 7불 보다 더 오래살고 있는 무색계 천인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무색계천인이다. 이들 존재는 물질이 없이 마음과 마음부수의 잇따른 재생성을 거쳐 무색계에서 수천겁을 산다고 한다. 이런 사실은 과학적인 조사로는 접근 할 수 없고 오로지 신통을 지닌 부처나 성자만이 알 수 있다고 한다.
색계의 존재들은 수명이 1겁이상, 무색계 존재들은 수명이 수천겁이므로 그 사이에 수 도 없이 세상이 생멸 했을 것이다. 보통 과거7불이라고 최근 5불은 1겁 이내에 일어난 사건이다. 이 겁내에서 마지막 출현 하게 될 부처님은 미륵 부처님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포함한 과거 7불 이전에도 수많은 부처님이 출현 하였는데 수 업겁전의 일이다. 따라서 무색계 천인이라면 수 많은 부처님이 출현할 동안에도 살아 있다는 것이다. 단지 영겁의 시간을 존재 할뿐 결코 윤회의 고리를 끊어 버리지 못한다. 천상은 고통이 없기 때문에 수행할 필요가 없다. 고통과 행복이 있는 인간세계에서 만 수행할 수 있고 해탈 할 수 있다. 선정 수행을 닦아서 욕계나 색계, 무색계 천인으로 태어 나는 것이 목표가 아닌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들 존재들은 죽으면 다시 윤회를 해야 한다. 이들 존재의 대부분은 인간으로도 못오고 악도로 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동안 지은바 공덕은 없고 지은 공덕 마저 다 까 먹었기 때문이다.
picture: http://keralaarticles.com/wp-content/uploads/2008/07/bagan-temple.jpg
알아 차림을 어디에 둘것인가, 마하시 사야도와 쉐우민 사야도의 경우
'인식과정(viti-citta)'이 있다. '바왕가의 마음(bhavanga-citta)'과는 다른 종류의 마음이다.
마음의 흐름을 보면 다음과 같다.
평소의 마음--> 죽기직전의 마음--->죽음의식---->재생연결식---->바왕가찌따---->인식과정(viti-citta)
여기서 인식과정은 대상이 없으면 일어 나지 않는다. 그 대상은 몸을 대상으로 하는 오문인식(五門認識)과 마음을 대상으로 하는 의문인식(意門認識)과정으로 크게 나뉜다. 오문인식이라 함은 안이비설신의 5가지 감각대상을 인식함을 말한다.
눈을 예로 든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눈의 감성
둘째로 물질의 대상
셋째로 빛
넷째로 숙고(아는 마음)
보는 눈이 있어야 하고 보는 물질의 대상이 있어야 한다. 또한 빛이 없다면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눈을 통하여 대상을 아는 마음이 있어야 인식 할 수 있다. 듣는 것, 냄새 맡는 것등도 마찬 가지 방법으로 인식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알아 차림을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 하다. 단지 보는 것으로 그치다면 첫번째의 눈의 감성이 될 것이다. 만일 두번째의 물질의 대상에 둔다면 온 갖 마음이 일어 나는 원인이 될 것이다. 보통 첫번째의 눈의 감성에다 만 두라고 말하지만 쉽지 않기 때문에 네번째의 숙고 즉 아는 마음에 두라고 말한다. 이러한 알아 차림을 첫번째로 두라고 강조한 스승이 '마하시 사야도' 이고, 네번째의 그것을 아는 마음에 두라고 강조 하는 스승이 '쉐우민 사야도'의 가르침이다. 즉 마하시 사야도는 마음에 초점을 두지 않고 느낌 그 자체를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것을 말하고, 쉐우민 사야도는 아는 마음을 보는 것에 초점을 둔다. 마음이 마음을 보는 것을 '와칭(watching)'한다고 한다.
진흙속의 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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