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알기

[스크랩] 세존의 출세,십이행(十二行),사제(四諦),십이인연(十二因緣)

수선님 2018. 12. 2. 12:28

세존의 출세---

*구원실성 석가여래께서는 50여 년간 중생에게 교(敎)를 설하신 역사상의 실존인물이십니다.

역사상 실존인물로 금생에 오신 석가세존께서는 처음부터 부처님이 아니고 범부의 신분으로 우리들 눈앞에 오셨습니다.

우리와 같은 땅 위에 태어나 우리와 같은 음식을 드시고 자라나 생노병사(生老病死)라고 하는 인간의 근본문제에 대해 번민하시다가 뜻을 세워 출가 수행하신 인과(因果)로 깨달음을 얻으시고,

그 깨달음을 50 여 년에 걸쳐 중생에게 설해 주시면서 모든 부처님(諸佛)의 설법의식은 다 같다고 하셨습니다.

대통지승불께서도 세상에 나오셔서 처음에는 보통 사람과 같은 생활을 하시다가 차차 그 생활 가운데서 출가하시어 깨달음을 여셨습니다.

부언하면 세존의 출세, 곧 *일체중생구제론이 전제된 대통지승불의 정각(正覺)은 천상계 뿐 아니라, 인간계도 다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범부가 부처님이 되는 사례, 곧 누구든지 부처님께서 걸으신 자취를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가면 마침내 부처님의 경지까지 이를 수 있다는 *일불승 법화 신앙의 준거(準據) 틀을 분명하게 대통지승불의 성불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십이행(十二行)의 법륜(法輪)

석가세존을 비롯한 모든 부처님께서는 교(敎)를 설하시고 펼 때, 곧 *삼전(三轉)이라 하여 ①시전(示轉) ②권전(勸轉) ③증전(證轉)의 세 단계(段階)의 방법으로 나누어 설하셨습니다.

①시전(示轉) →<시(示)>란 설하여 보이는 것입니다.

인간의 도리(道理)란 이런 것이다ㆍ천지만유(萬有)는 이러한 이치(理致)가 있는 것이다ㆍ하는 따위와 같이,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바를 그대로 말씀하셔서 모든 사람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만약 듣는 사람이 다 머리가 좋으면 이 <시(示)>만으로도 됩니다.

머리가 좋으면 가르치기만해도 잘 알고 능히 시행할 것입니다.

②권전(勸轉)→그러나 세상에는 *근기(根機)가 날카로운 사람도 있지마는 둔한 사람도 있으므로 설명해 보이는 것만으로는 안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러한 사람들을 위해 교(敎)를 믿게 하고, 또 권선(勸善)하여 실행하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즉 틀림이 없으니 열심히 믿고 실행하라고 권합니다.

권하지 않고 다만 보이기(示)만 해서는 모든 사람이 신심(信心)을 내지 않으므로 교(敎)를 설명한 다음에는 믿고 실행할 것을 권(勸)하는 것입니다.

③증전(證轉)→그러나 권하기만 하는 것도 부족합니다.

권하면 열심히 하지마는, 얼마를 하다가는 중도에 그만두는 수가 많으므로 증(證)이란 것이 필요하게 됩니다.

증이란 깨달음, 곧 증오(證悟)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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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깨닫고 실행하신 사실을 드러내어 말씀하셔서 모든 사람이 실행하기를 권하는 것입니다.

불교는 알기만 하는 것보다 스스로 날마다 노력하여 실행하면 저절로 그 *과보가 나타나므로 부처님께서는 진정한 깨달음을 얻도록 그 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십이행(十二行)이라는 것은,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 *사제(四諦)를 각각 세 단계로 나누어 되풀이 하다보니까 십이(十二)가 되어 십이행(十二行>이라 합니다.

사제(四諦)===고제(苦諦)ㆍ집제(集諦)ㆍ멸제(滅諦)ㆍ도제(道諦)

석가세존을 비롯한 모든 부처님께서는 중생의 나날의 생활은 <고(苦)>다 하는 것을 낱낱이 지적하시고, 그러한 <고(苦)>의 생활에서 벗어나 완전한 인간이 되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고제(苦諦)→ 고(苦)란 요컨대 불만족(不滿足)입니다.

인생은 불만족스러운 것입니다.

가난하거나 부자거나 만족은 없습니다.

신분이 낮아도ㆍ신분이 높아져도 만족은 없습니다.

신앙이 없는 보통 인간의 생활은 언제나 만족이 없음을 철저하게 설하시는 것이 곧 고제(苦諦)입니다.

집제(集諦)→ 고(苦)의 모임입니다.

고(苦)를 일으키는 온갖 마음이 항상 중생의 가슴속에 도사리고 있으니 그것을 잘 생각해 보라고 철저하게 설하시는 것이 곧 집제(集諦)입니다.

모든 중생은 *십계호구의 마음인지라, 잠시도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찰나찰나 *미육계를 헤매고 다닙니다.

때로는 자기 한 사람을 고립(孤立)시켜 자학(自虐)도 하고, 또는 남과 결부(結付)시키면서 온갖 마음을 뒤섞어 *번뇌를 일으키고 고통 받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한데 모여서 함께 이 세상을 이루고 있으므로 더욱 더 복잡하고 괴로움이 많습니다.

멸제(滅諦)→고(苦)의 멸(滅)입니다.

고(苦)를 완전히 끊은 부처님이나ㆍ보살의 경지(境地)를 설해 보이면서, 인생은 괴로운 생활만 하고 있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다ㆍ고(苦)를 없애고 참으로 평화롭고 안온(安穩)한 생활을 하고 있는 부처님이나 덕이 높은 보살의 경지도 있는 것이다ㆍ고 영원한 정신세계,

곧 마음세계를 <큰 하나>에 *용입시켜주는 것이 멸제(滅諦)입니다.

도제(道諦)→고(苦)를 멸(滅)하는 도(道)입니다.

고(苦)를 멸(滅)하려면 어떠한 방법을 취해야 하는가 하는 그 방법을 설하시는 것이 도제(道諦)입니다.

곧 *팔정도(八正道)입니다.

이상의 사제(四諦)는 불교의 대체의 구조(構造), 곧 불교 전체를 일관(一貫)하고 있습니다.

석가여래께서 맨처음에 녹야원(鹿野園)이라는 곳에서 *교진여 등 오비구 에게 설하신 것이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 의 사제였습니다.

그리고 입적(入寂)하실 때. 구시나성(拘尸那城)의 *수발다라(須跋陀羅)라는 백이십살 된 노인이 가르치심을 들으러 왔을 때에도 간신히 몸을 일으키시어 띄엄띄엄 마지막으로 설하신 것도 역시 사제였습니다.

십이인연(十二因緣)===== 십이연기(十二緣起)

①무명(無明)→ 변천무상한 현상경계를 바로 보는 눈이 열리지 않고 인과법칙의 도리를 바르게 분별하지 못하는 혼암(昏暗)에 끌리어 *진리(眞理)를 진리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 무명입니다.

②행(行)→무명에서 행(行)이 나옵니다.

무명에서 행동이 나오니까 그 행동이라는 것이 계속 불완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언하면 <①무명과 ②행>은 전세의 일, 곧 * 과거이인입니다.

③식(識)→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성질입니다.

불완전한 행동을 한 과거이인(過去二因) 때문에 현세에 태어나도 불완전한 성질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 불완전한 성질이 <식(識)>입니다.

④명색(名色)→ 명(名)은 마음ㆍ색(色)은 몸입니다.

태어나서 얼마를 지나면 마음과 몸이 함께 발달합니다.

마음과 몸이 각각 발달함에 따라 신체 기능(機能)도 함께 발달합니다.

⑤육입(六入)→명색, 곧 마음과 몸의 작용이 *육근ㆍ육식ㆍ육경으로 나누어 발달합니다.

곧 눈(眼) 귀(耳) 코(鼻) 혀(舌) 몸(身) 마음(意)을 육입, 또는 육처(六處)라 합니다.

 

부언하면 눈(眼)에는 빛이 느껴지고ㆍ귀(耳)에는 소리가 느껴지고ㆍ코(鼻)에는 냄새가 느껴지고ㆍ혀(舌)에는 맛이 느껴지고ㆍ몸(身)에는 촉감(觸感)이 느껴지고ㆍ마음(意)에는 법(法)이 느껴집니다.

여기서 법이란, 존재(存在)입니다.

어떤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이 마음에 느껴지는 것입니다.

예컨대 눈으로 책상을 본다고 할 때, 눈은 실제의 책상이나 그림의 책상이나 다 같습니다.

그러나 책상이 실제 있다고 느끼는 것이 마음입니다.

눈은 책상의 빛과 모양만을 보고, 실제로 있는 것을 느끼는 것은 마음의 작용입니다.

중생은 마음의 작용을 굳이 이름을 붙여서 <자기(自己)>라고 합니다.

육근, 곧 눈(眼) 귀(耳) 코(鼻) 혀(舌) 몸(身)은 자기가 아닙니다.

육근이 각각 마음과 종합(綜合)해서 거기에 무엇이 있음을 확인(確認)하는 것이 곧 마음의 작용입니다.

그 마음의 작용이 있기 때문에 <자기>라는 것이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육근을 통해 외계(外界)로부터 자극(刺戟)을 받으면 여러 가지 마음의 작용을 하기 때문에는 곧 육입이라 합니다.

⑥촉(觸)→ 눈(眼) 귀(耳) 코(鼻) 혀(舌) 몸(身) 마음(意)의 작용이 완전히 갖추어져 감각(感覺)이 생기는 것을 촉(觸)이라 합니다.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자극이 와도 자기의 마음이나 몸의 작용이 발달해 있지 않으면 감각이 일어나지 아니합니다.

마음과 몸의 작용이 완전히 발달해 있어야만 감각이 일어나서 외부로부터 온 자극을 분별하는 작용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⑦수(受)→여섯 가지 감각이 발달하면 수(受)가 생깁니다.

즉 여섯 가지 감각에 대해 좋다든가 싫다든가 하는 것을 느끼는 작용이 수(受)입니다.

수(受)란 감정(感情)입니다.

푸른 하늘을 보고서 푸르다는 것을 아는 것은 감각이며, 하늘이 푸르니까 기분이 좋다는 것은 감정입니다.

비가 와서 선선하다는 것은 감각이요 선선해서 불쾌하다는 것은 감정입니다. 그래서 <③식(識) ④명색(名色) ⑤육입(六入) ⑥촉(觸 ) ⑦수(受)>를*현재오과(現在五果)라고 합니다.

⑧애(愛)→그러니까 감각이 일어나면 그에 대해 감정이 일어나고, 감정이 일어나면 유쾌한 것은 사랑하고 불쾌한 것은 미워하게 됩니다.

그것이 애(愛)입니다.

부언하면 애(愛)는 사랑함과 미워함, 곧 애증(愛憎)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반드시 미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⑨취(取)→애증(愛憎)의 생각이 일어나면, 그 애증에서 생기는 것이 취(取)입니다.

취(取)는 선택작용(選擇作用)입니다.

유쾌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랑하여 언제까지나 자기에게 머물러 있게 하려 하고, 불쾌하게 느껴지는 것은 미워하여 되도록 멀리 하려고 합니다.

이 선택작용은 의지(意志)의 작용의 근본이 됩니다.

이 선택작용에 의해 의지(意志)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⑩유(有)→의지(意志)가 작용하면 거기에 인간의 행위가 나타나서 비로소 유(有)라는 것이 생깁니다.

유(有)란 차별(差別)입니다.

무엇을 차별하는가 하면 우선 남과 자기와를 차별하는 의지가 생겨서 비로소 분명히 자기라는 것과 자기를 향해 있는 남과의 차별을 세우게 됩니다.

차별의 시작은 자기와 남(自他)이고, 이어서 친하고 친하지 않음(親疎)입니다. 그리고, 이해득실(利害得失)의 차별을 세우고, 쌍방간에 다툼이 일어나는 것이 곧 유(有)입니다.

그래서 <⑧애(愛) ⑨취(取) ⑩유(有)>를 금생에 살면서 만든다 하여*현재삼인(現在三因)이라고 합니다.

⑪생(生)→차별이라고 하는 다투는 마음, 곧 차별에서 생(生)이 생깁니다. 생(生)이란 즉 인간의 생활입니다.

인간의 생활은 보편적으로 다툼이 가득하고 고통과 불안에 찬 생활입니다.

⑫노사(老死)→불안한 인간의 생활을 하면서 이것 저것 해보는 동안에 늙어서 죽는 것이 노사(老死)입니다.

노사는 괴로움과 번뇌가 따르므로 노사의 우비고뇌(憂悲苦惱)라고 합니다. 그래서 <⑪생(生) ⑫노사(老死)>는 다음 생에 받는다 하여*미래이과(未來二果)라고 합니다.

이상이 무상(無常)을 전제한 물질 세계를 사는 인간사의 <십이인연> 의 실상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의 생명을 비롯한 일체는 다 불멸(不滅)이라는 것을 확신하라는 뜻에서 십이인연을 설하셨습니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를 살기 때문에 삼세에 걸쳐 노사를 되풀이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 법은 마음세계, 곧 영성세계(靈性世界)를 열어 영원을 사는 대생명서(大生命書)입니다.

대우주 대생명체(大生命體)라고 하는 *천지기운(天地氣運), 곧 본체사상(本體思想)을 심어주는 불멸(不滅)의 가르치심입니다.

 

자료제공 : 청정 법화도량 백탑사(창원시 진해구 북부동 작은백일부락 055-545-8655)

 

() 남무석가모니불, 남무다보불탑, 남무십방석가모니분신제불

출처 : 자화과학수 "판타크린"
글쓴이 : 청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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