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 여실하고도 교묘히 제도한다. |
[論] 외도의 법에서는 비록 중생을 제도하나 여실하게 제도하지 못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갖가지 삿된 소견과 번뇌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
2승(乘)14)은 비록 제도하기는 하나 적절히 제도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일체지가 없어 방편의 마음이 얇기 때문이다. |
오직 보살만이 능히 여실하고도 교묘히 제도하나니, 사공의 일로써 비유하건대 한 사람은 공기 주머니[浮囊]나 풀 뗏목으로 건네주고, 한 사람은 큰 배로 건네주는 것 같다.
이 두 가지 건네주는 일은 아득히 다르듯이 보살의 교묘하게 중생을 제도하는 일도 이와 같다. |
또한 비유하건대 병을 고치는 데 쓴 약이나 침 뜸으로는 통증을 주어 차도를 얻지만, 소타선타(蘇陀扇陀)15)라는 묘한 약은 병자가 눈으로 보기만 하면 온갖 질병이 모두 낫는다.
병을 제하는 것은 같으나 우열의 차이가 있듯이 성문과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는 일도 역시 그와 같다.
고행과 두타16)로 초저녁에서 한밤을 지나 새벽까지 부지런히 좌선하고 괴로움을 관찰하여 도를 얻는 것은 성문의 가르침이요, 모든 법의 모습이 얽매임도 없고 풀려남도 없음을 관찰하여 마음이 맑아지는 것은 보살의 가르침이다. |
문수사리본연(文殊師利本緣)17)에서는 이렇게 얘기되고 있다. |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대덕이시여, 한량없는 아승기겁을 지난 과거세에 사자음왕(師子音王)이란 부처님이 계셨는데, 부처님과 중생들의 수명은 10만억 나유타 세(歲)였습니다. |
14) 성문승과 벽지불승을 가리킨다. |
15) 범어로는 Sudhasyanda. |
16) 범어로는 dhūta. 의식주에 대한 탐착을 여의고 최소한의 생활수단으로 수행에 전념하는 것을 말한다. |
17) 범어로는 Mañjuśryavadān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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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처님께서 3승의 법으로 중생들을 제도하셨으니, 나라 이름은 천광명(千光明)이요, 그 나라 안의 나무들은 모두 7보로 이루어졌고, 나무마다 한량없이 청정한 법음, 즉 공․무상․무작ㆍ불생ㆍ불멸ㆍ무소유의 소리를 내니, 중생들이 그것을 듣기만 하면 마음이 열리어 도를 얻었습니다. |
이때 사자음왕불의 첫 법회의 설법에 99억 사람이 아라한의 도를 얻었으며, 보살들 역시 그러하였습니다. 이 보살들은 모두가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어 갖가지 법문에 들었고 한량없는 부처님을 뵈어 공경 공양드렸습니다.
능히 한량없고 셀 수 없는 중생을 제도했으며, 한량없는 다라니문을 얻었고 한량없는 갖가지 삼매의 문을 얻었으며, 최초로 발심하여 새로이 불도의 문에 들어온 보살들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이 불국토의 한량없는 장엄은 이루 다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
그때 부처님께서는 교화를 마치시고는 무여열반에 드시니, 6만 세 동안 법이 머물더니, 모든 나무에서 다시는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
이때 두 보살 비구가 있었는데 하나는 희근(喜根)이요, 하나는 승의(勝意)였습니다. |
이 희근법사는 용모와 위의가 순박 정직하고 세속법을 버리지 않으며 또한 선과 악을 분별하지도 않았습니다.
희근의 제자는 총명하여 깊은 진리 듣기를 좋아하였는데 그 스승은 소욕(少欲)과 지족(知足)을 찬탄하지 않고, 계행과 두타도 찬탄하지도 않고, 모든 법의 실상이 청정함만을 설할 뿐이었습니다.
그는 제자들에게는 말하기를 “온갖 법은 음욕․성냄․어석음의 모습이다. 이 모든 법의 모습이 곧 모든 법의 실상이며, 걸림 없는 바이다”고 하였습니다. |
이러한 방편으로 제자들을 가르쳐서 일상지(一相智)에 들게 하였습니다. |
이때 제자들은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성내지 않고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후회하지 않음으로써 생인을 얻었고, 생인을 얻은 까닭에 곧 법인(法忍)을 얻어 진실한 법 가운데서 요동하지 않으니 마치 산과 같았습니다. |
승의 법사는 청정하게 계를 지키고, 12두타18)를 행하여, 4선(禪)과 4무색정(無色定)을 얻었습니다. |
18) 12두타란 다음과 같다. ①인적 없는 한적한 곳에서 머문다[在阿蘭若處]. ②항상 걸식한다[常乞食]. ③빈부를 가리지 않고 걸식한다[次第乞食]. ④하루에 한끼만 먹는다[受一食法]. ⑤발우 안의 음식으로 만족한다[節量食]. ⑥정오가 지나면 꿀조차 먹지 않는다[中後不得飮漿]. ⑦낡은 옷만을 입는다[糞掃衣]. ⑧세 벌의 옷만을 지닌다[但三衣]. ⑨무덤에 머문다[塚間坐]. ⑩나무 밑에 앉는다[樹下坐]. ⑪지붕 없는 곳에 머문다[露地坐]. ⑫앉기만 할 뿐 눕지 않는다[常坐不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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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의의 제자들은 근이 둔하고 분별을 구함이 많아 ‘이것은 깨끗하다’ 혹은 ‘이것은 깨끗지 못하다’ 하며 마음이 동요하고 움직였습니다. |
다른 때 승의가 마을에 들어갔다가 희근의 제자의 집에 가서 자리에 앉아 지계와 소욕과 지족행과 두타행과 한처(閑處)와 선의 고요[禪寂]을 찬탄하고 희근을 비방하며 말하기를 “이 사람은 법을 설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사견에 들게 하니, 음욕․성냄․어리석음이 걸림 없는 모습을 설한다. 이는 잡된 행을 하는 사람이지 순수하고 청정하지가 않다”고 하였습니다. |
그 제자는 근이 예리해 법인을 얻었는데, 그는 승의에게 “이 음욕의 법은 어떤 모습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
승의가 대답하되 ‘음욕은 번뇌의 모습이니라’ 하였습니다. |
다시 묻기를 “이 음욕의 번뇌는 안에 있습니까, 밖에 있습니까?” 하니, 대답하기를 “이 음욕의 번뇌는 안에 있지도 않고 밖에 있지도 않다. 만일 안에 있다면 밖의 인연을 기다릴 필요가 없고, 만일 밖에 있다면 나에게 관계가 없으니 나를 괴롭힐 일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
거사19)가 말하되 “음욕이 안에도 있지 않고, 밖에도 있지 않고, 동․서․남․북․ 사유ㆍ상하로부터 오는 것도 아니라면, 두루 실상(實相)을 구하여도 얻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법은 곧 나지도 멸하지도 않으리니, 만약에 생멸의 모습이 없다면 공해서 없는 것이거늘 어찌 능히 번뇌가 되겠습니까” 하였습니다. |
승의가 이 말을 듣자 불쾌하였으나 대답은 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말하되 ‘희근은 많은 사람을 속여서 삿된 길에 집착하게 하는구나’ 하였습니다. |
이 승의보살은 아직 음성다라니(音聲陀羅尼)20)를 배우지 못해서 부처님의 말씀을 들으면 곧 기뻐하고 외도의 말을 들으면 화를 내며, 세 가지 착하지 못한 법을 들으면 싫어하고 세 가지 착한 법을 들으면 매우 기뻐하며, 생사의 법을 들으면 근심하고 열반의 법을 들으면 기뻐하면서 거사의 집에서 숲 속의 정사에 들어가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
19) 곧 희근의 제자를 가리킨다. |
20) 범어로는 ghoṣapraveśadhāraṇ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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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아십니까? 희근보살은 많은 사람을 속여 삿되고 나쁜 소견에 들게 하였소. 왜냐하면 그는 말하되 음욕․성냄․어리석음과 그 밖의 모든 법이 모두가 걸림 없는 모습이라 하였기 때문이요.” |
이때 희근이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이 매우 성이 났으니, 나쁜 업에 가리워 큰 죄에 빠지게 되겠도다. 이제 내가 그에게 매우 깊은 법을 말해 주어야 되겠도다. 비록 지금 당장에는 얻은 바가 없더라도 뒷날 불도에 들 인연이나 되게 하리라.’ |
이때 희근은 승려들을 모아 놓고 일심으로 이런 게송을 읊었습니다. |
음욕이 곧 길이요 |
성냄과 어리석음도 그러하니 |
이러한 세 가지 일에 |
한량없는 부처님의 길이 있다. |
어떤 사람이 음욕과 분노와 우치 |
그리고 길을 분별한다면, |
이 사람은 부처님과 멀어짐이 |
하늘과 땅 사이 같으리. |
도와 음욕과 분노와 우치는 |
한 법이어서 평등하거늘 |
이 말을 듣고 겁내는 이는 |
불도에서 심히 멀어지리. |
[276 / 805] 쪽 |
음욕의 법은 생멸하는 것이 아니니 |
마음을 괴롭히지도 못하거늘 |
만약에 사람이 나[吾我]를 계착한다면 |
음욕에 이끌려 지옥에 들리라. |
있다 없다 두 법이 다르다 하면 |
이는 있다 없다를 여의지 못함이니 |
있음 없음이 균등함을 알면 |
수승히 초출하여 불도를 이루리라. |
이와 같이 70여 게송을 말할 때 3만 명의 천자들이 무생법인을 얻었고, 1만 8천 명의 성문들이 온갖 법에 집착되지 않는 까닭에 모두가 해탈을 얻었습니다. |
이때 승의보살의 몸은 지옥으로 빠져들어 한량없는 천만 세 동안의 고통을 받았고, 인간에 다시 태어나서는 74만 세 동안 항상 남의 비방을 들었고, 한량없는 겁 동안에 부처님의 명호도 듣지 못하였습니다. |
이 죄가 차츰 엷어져서 불법을 들을 기회를 얻게 되고 출가하여 도를 닦았으나 다시 계를 버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계를 버리기 6만 3천 세 동안이었고, 한량없는 생 동안 사문이 되어 비록 계는 버리지 않았으나 모든 감관이 둔하고 어두웠습니다. |
이 희근보살은 지금 동쪽으로 10만억 불국토를 지나 부처를 이루시니, 그 국토의 이름은 보엄(寶嚴)이요, 부처님의 명호는 광유일명왕(光踰日明王)이십니다.” |
문수사리는 다시 말씀드렸다. |
“그때의 승의비구는 바로 오늘의 이 몸입니다. 나는 그때 이렇듯 한량없는 고통을 받았음을 관찰합니다.” |
문수사리가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
“누구든지 3승의 도를 구하되 온갖 고통을 받지 않으려거든 모든 법의 모습을 파괴하여 성내는 생각을 품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277 / 805] 쪽 |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물으셨다. |
“그대는 이 모든 게송을 듣고, 어떠한 이익을 얻었는가?” |
문수가 대답했다. |
“나는 이 게송을 듣고, 뭇 고통이 다하였으며, 세세(世世)에 예리한 감관과 지혜를 얻어 깊은 법을 잘 이해하게 되었고, 교묘하게 깊은 뜻을 연설하게 되었으며, 모든 보살들 가운데서 가장 으뜸가게 되었습니다.” |
대지도론(大智度論) 61. 성문과 보살의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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