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초품 중 뜻에 걸림이 없다[意無礙]를 풀이함 |
[經] 뜻에 걸림이 없다. |
[論] 무엇을 뜻에 걸림이 없다13) 하는가?
보살은 온갖 원수나 친척, 또는 원수도 친척도 아닌 사람들에 대해서 평등한 마음으로 대하여 걸림이 없다. |
또한 일체 세계의 중생들에 대해서도 그들이 와서 침해하더라도 성내는 마음이 없고, 갖가지 방법으로 공경하고 공양하여도 기뻐하지 않는다. |
게송으로 말하리라. |
부처님이나 보살에 대하여도 |
마음으로 애착하지 않고 |
외도나 악인이라도 |
증오하거나 성내지 않는다. |
이처럼 청정함을 ‘뜻에 걸림이 없다’고 말한다. |
13) 범어로는 apratihatacittaiḥ. |
[269 / 805] 쪽 |
또한 모든 법에 대하여 마음에 걸림이 없다. |
[문] 이 보살은 아직 불도를 얻지 못했고, 아직 일체지를 얻지 못했거늘 어찌하여 모든 법에 대하여 마음에 걸림이 없는가? |
[답] 이 보살은 한량없고 청정한 지혜를 얻었기 때문에 모든 법에 대하여 마음에 걸림이 없는 것이다. |
[문] 보살들은 아직 불도를 얻지 못했으므로 한량없는 지혜가 있을 수 없고, 남은 번뇌[殘結]가 있으므로 청정한 지혜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
[답] 이 보살들은 삼계 안에서 업을 맺는 육신이 아니다.
모두가 법신이 자재하게 되어 노․병․사를 초월하였으나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는 까닭에 세상 가운데에서 행해 불국토를 장엄하고 중생을 교화한다.
그러나 이미 자재를 얻었으니, 부처가 되고자 원하기만 한다면 능히 이루는 것이다. |
[문] 법신 보살(法身菩薩)은 부처님과 다름이 없거늘 어찌하여 보살이라 하는가? 어째서 부처님을 예경하고 설법을 듣는가? 만일 부처님과 다르다면 어째서 한량없고 청정한 지혜가 있다고 하는가? |
[답] 이 보살이 비록 법신의 경지에 이르러 노․병․사가 없으나 부처님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마치 열나흘 날의 달을 보면 사람들은 혹은 꽉 찼는지 혹은 아직 꽉 차지 않았는지 의심을 내는 것과 같다. 보살 역시 그와 같아서 비록 능히 부처가 되어 법을 설할 수 있으나 아직 부처가 된 것은 아니다. |
부처님은 달이 보름을 꽉 채워서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과도 같다. |
또한 한량없는 청정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진실로 한량이 있는데 헤아릴 수가 없어서 그것을 한량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마치 바닷물이나 항하의 모래 등은 사람들이 헤아릴 수가 없으므로 한량이 없다고 하듯이, 부처님과 보살들에게는 한량없음이 되지 못한다.
보살의 한량없는 청정지혜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
하늘이나 인간 및 성문․벽지불들이 헤아리지 못하므로 한량없는 지혜라 하고, 보살이 무생도(無生道)를 얻을 때 모든 번뇌[結使]를 끊는 까닭에 청정한 지혜를 얻게 된다. |
[문] 만일 이때에 이미 모든 번뇌를 끊었다면 성불할 때에는 다시 무엇을 끊는가? |
[270 / 805] 쪽 |
[답] 이 청정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부처가 될 때 나머지 번뇌를 끝까지 다 제거하여 실로 청정함을 얻는 것이요, 둘째는 보살이 육신을 버리고 법신을 얻을 때 모든 번뇌를 끊고 청정해지는 것이다.
비유하건대 한 등잔으로도 능히 어두움을 제거하여 일을 할 수는 있으나 다시 큰 등잔이 있으면 더욱더 밝은 것과 같다. |
부처님과 보살이 모든 번뇌를 끊는 것도 이와 같아서 보살들이 비록 끊어야 할 것을 이미 끊었다고는 하나 부처님이 끊은 데다 견주면 아직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
이것을 ‘한량없는 청정지혜를 얻는 까닭에 모든 법에서 뜻에 걸림이 없다’고 말한다. |
[經] 대인(大忍)을 성취했다. |
[論] [문] 앞에서 이미 등인(等忍)과 법인(法忍)을 말했거늘 어찌하여 이제 다시 ‘대인을 성취했다’ 하는가? |
[답] 이 두 가지 인을 증장시킴을 대인이라 한다. |
또한 등인은 중생들 가운데서 모든 것을 능히 참아 유순하는 것이요, 법인은 깊은 법에 대하여 참는 것이니, 이 두 가지 인이 자라나면 무생인(無生忍)을 증득하게 되고, 최후의 육신에 시방의 부처님들이 화현해서 앞에 나타나시거나 공중에 앉아 계시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이 대인을 성취한 것이라 한다. |
비유하건대 성문(聲聞)의 법 가운데 난법(煖法)이 자라남을 정법(頂法)이라 하고, 정법이 자라남을 인법(忍法)이라 함과 같다.
다시 다른 법이 없어서 자라남에 차이가 있으니, 등인과 대인(大忍)도 역시 그러하다. |
또한 두 가지 인(忍)이 있으니, 생인(生忍)과 법인(法忍)이다. |
생인이라 함은 중생들 가운데서 잘 참는 것을 말한다.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겁 동안에 중생들이 갖가지로 삿된 마음을 가한다 해도 성내지 않고, 갖가지로 공경하고 공양하여도 기뻐하지 않는 것이다. |
또한 중생을 관찰함에 처음이 없다. 처음이 있으면 인연이 없고, 인연이 있으면 처음이 없으며, 처음이 없으면 나중도 없으리라.
왜냐하면 처음과 나중은 서로 기다리기 때문이다. |
[271 / 805] 쪽 |
처음과 나중이 없다면 중간도 없으리니, 이렇게 관찰할 때에 상견(常見)과 단견(斷見)의 두 극단에 떨어지지 않으며, 안온도(安穩道)에 의하여 중생을 관찰해 사견에 떨어지지 않는다.
이를 생인이라 하고, 매우 깊은 법에 대하여 마음에 걸림이 없으면 이를 법인이라 한다. |
[문] 매우 깊은 법이란 어떤 것인가? |
[답] 앞에서 매우 깊은 법인에 대해 말한 것과 같다. |
또한 매우 깊은 법이라 함은 12인연 가운데서 전전해서 과를 내지만 인 가운데 과가 있는 것은 아니며 또한 과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 가운데에서 나오는 것을 매우 깊은 법이라 하는 것이다. |
또한 세 가지 해탈문인 공․무상․무작에 들면 곧 열반의 항상된 즐거움을 얻는 까닭에 이를 매우 깊은 법이라 한다. |
또한 일체법은 공도 아니요, 공 아님도 아니요, 형상 있음도 아니요, 형상 없음도 아니요, 작위 있음도 아니요, 작위 없음도 아니라고 관찰하니, 이렇게 관찰하는 가운데 마음 또한 집착되지 않으면 이를 매우 깊은 법이라 한다. |
게송으로 말하리라. |
인연으로 생긴 법 |
이를 공(空)의 모습이라 하고 |
거짓 이름[假名]이라고도 하며 |
중도(中道)라고도 한다. |
법이 실제로 있는 것이라면 |
도리어 없어지지 않아야 하리니, |
지금은 없고 앞에는 있었다면 |
이를 단견(斷見)이라 부른다. |
항상하거나 단절되지도 않으며 |
또한 있음도 없음도 아니어서 |
[272 / 805] 쪽 |
마음으로 헤아릴 수 없고 |
언설(言說) 또한 다했다. |
이러한 매우 깊은 법에 대하여 믿음이 걸림이 없고, 후회하거나 위축되지 않으면 이를 ‘대인을 성취했다’고 한다. |
대지도론(大智度論) 60. 연기가 곧 공(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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