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 말하지만 차맛을 관념으로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차맛의 변화를 주시해 가면 이러한 관념에 의한 차맛에서 벗어나 본래의 순수한 차맛으로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차맛의 변화를 주시하고 알아차린다는 것은 차맛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그로 인해 온몸의 감각이 살아나면서 정확한 상태를 감지하게 되며 과거의 맛에 길들여져 있는 고정관념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차맛 변화의 앎은 선(禪)의 맛을 감지하지 못하게 하는 여러 가지 장애들을 없애 줍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자동차나 사람들의 소음들과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생각들을 없애는 데는 차 맛의 변화를 주시하고 순간순간 포착되는 맛을 알아차리는 이 방법이 매우 탁월합니다. 즉 차 맛의 변화 속에 순간순간 달라지는 맛을 포착하여 알아차리면 차 맛과 알아차리는 앎이 일치하기 때문에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소음이 차 맛보는 마음에 비집고 들어가지 못하여 방해하지 못합니다. 또 속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생각들도 역시 방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소음과 생각은 그대로 두어도 저절로 사라짐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꿰뚫어 보고 아는 정념(正念)의 앎입니다.
이렇게 되면 일부러 조용한 장소나 엄숙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조신한 행동으로 차를 마시지 않더라도 정념의 힘에 의하여 어느 장소든 조용하지 않음이 없으며 엄숙한 분위기를 연출하지 않아도 잔잔하고 고요함이 절로 연출이 되며 조신한 행동으로 실수할까 염려하지 않더라도 절로 차 맛을 음미하게 되며 차 맛이 선 맛과 다름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정진하여 차 맛이 禪맛으로 자연스럽게 체험되면 주관과 객관이 사라져 맛보는 주체와 맛이라는 대상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모든 것이 인드라망(網)의 그물처럼 상호의존, 상호관통되어 평등해진 하나의 맛으로 나타납니다. 이 때의 맛이란 하나의 생명살림이 회복된 경지를 형용한 말입니다. 특히 차맛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지면서 감지된 맛의 성질이 공(空)함을 체험하면, 차맛의 이미지가 진실이 아닌 환(幻)이며, 아침이슬이나 거품같이 실체가 없음을 깨닫고 비로소 마음이 망상(妄想)의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합니다.
깨어난 눈으로 세계를 보면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한정되고 고정된 시각이 열리면서 과거·현재·미래를 관통하거나, 실제로 벽이나 산 등의 장벽을 투과하게 되는 등 새로운 공의 세계를 맛보는데, 마치 새가 허공에 자취를 남기지 않듯이 걸림없는 자유로움을 체험합니다. 이때 나를 비롯해서 모든 사물은 부분적인 것이 아닌, 전체 속에서 인드라망(網)같이 연결된 한 생명으로 투과됩니다. 삶을 바라보는 자세 또한 고립된 자아를 벗어나, 자기자신에 대한 비판적이면서도 총체적인 안목을 갖습니다.
그러나 차맛 변화알기를 하지 않으면 차맛을 나쁘다고 성낼 수도 있는데 이는 차맛을 자아(自我)라고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차맛을 내가 맛본다는 점에서 ‘내 것’으로 차맛을 자아 안에 포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차맛의 본성이 무미의 한가지 맛으로 무자성 공임을 깨달으면 ‘나’와 ‘내것’이라는 것이 모두 사라져 차맛이라는 올가미에 걸리지 않습니다. 자연히 차맛에 집착해 일어나는 괴로움에서도 벗어납니다.
이것은 단지 차맛에만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느낌에 해당하는 것입니다.왜냐하면 일체사(一切事)는 감각에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차맛의 본성이란 곧 모든 존재의 본성이므로, 차맛의 본성을 깨닫는다는 것은 곧 모든 존재의 본성을 깨닫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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