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행무상(諸行無常)(4)
명예와 권력이 박탈당할 때, 경제력을 상실했을 때, 사랑하는 이와 헤어졌을 때, 죽어갈 때... 그 때까지 행복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항상하지 않는다’는 제행무상의 이치 속에서 본다면, 당장은 행복할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다가올 괴로움을 전제로 한 그런 잠깐 동안의 행복을 느끼며 그 행복에 빠져 있는 모습일 뿐입니다. 그러니 중생의 소견을 어리석음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죽을지 뻔히 알면서, 변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지금 당장의 작은 달콤함에 빠져 생사의 문제, 제행무상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잠깐의 행복에만 안주하고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전도된 몽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변한다’고 하니 이와 같은 불교의 근본진리가 허무주의를 의미하는 듯한 부정적인 의미로 쓰여, ‘인생은 무상하다’ 라는 한탄스런 말로 쓰여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상하다’는 말은, 허무주의를 의미하는 바가 아니요, 단지 항상 변해 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관찰한 데 대한 결과일 뿐입니다
오히려 우리들은 무상하기 때문에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변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 병든 사람은 건강을 되찾을 수 있고, 악한 사람이 착하게 발심할 수 있으며, 지금은 가난한 사람이 다시 부귀를 누릴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열심히 수행 정진하여 다시 지혜로워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무상의 진리는, 허무주의적이고, 괴로운 진리로 잘못 생각할 것이 아니라, 창조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돌려서 받아들여, 무상한 가운데 우리의 삶을 올바로 가꾸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변함’이라는 그 자체는 그렇기에 좋을 것도 싫을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작은 분별심으로 재어 볼 잣대가 아니란 말입니다. 제행무상이란 그대로 진리의 모습, 존재의 여실한 모습일 뿐입니다. 세상 그 어떤 것이라도 항상하지 않고 변화해 간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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