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꿈과 기대와 원력으로 산다...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법화경을 전하겠다는 권지품의 보살들처럼 우리도 용맹스럽게 법화경을 전하고자 하는 꿈과 원력을 가지자...2013.11.10 선교율 대법회
<법문>
법화경 제 13 권지품을 할 차례다.
권지품은 법화경을 잘 지니기를 권장하는 품이다.
경전을 지니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수지, 독, 송, 서사, 위인해설의 5종 법사가 있다.
수지(受持): 경전을 늘 지니고 다니는 것이다. 지니고 다니다 보면
독(讀): 읽게된다. 읽다보면
송(誦): 외우게 된다. 이것을 더 깊이 이해하려면
서사(書寫): 써야한다. 서사는 사경인데 어느 경전에든 사경을 권한다.
해설(解說): 경전을 남을 위해 설명해주는 것이다. 위인해설이라고도 한다. 요즘 같은 경우는 법화경이 잘 설명되어 있는 인터넷 사이트를 알려준다거나 봉은사에 법화경 강의가 있다고 알려서 동참하게 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말씀에서 감동을 받았고 이러한 가르침에서 눈을 떴다’라고 자신이 느끼고 감동한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는 것도 해설이다. 금강경에는 이 오종법사를 권하면서 ‘운하위인해설(云何爲人演說)고’‘어떻게 하면 남을 위해서 금강경을 잘 설명해주는 것이 되는가’‘불취어상(不取於相)하야 여여부동(如如不動)이다’‘나타난 현상에 끄달리지 아니하고 동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금강경을 유창하게 설명하는 것도 해설이다. 그러나 이익을 보거나 손해를 보거나 칭찬을 듣거나 비방을 들어도 동하지 않고 태연작약 하는 것 역시 위인해설이다. 모든 것은 제행무상이라고 하는 이치만 제대로 꿰뚫어 알아도 모든 일에 동하지 않는다. 엽락귀근(葉落歸根)이라는 말은 잎이 떨어지면 뿌리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는 말이다. 모든 것은 무상의 이치로 존재하는데 거기에 놀라고 신기해하고 안타까와 할 까닭이 없다.
해가 뜰 때 되어서 뜨고 질 때 되어서 지는 데 놀라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나에게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이해득실도 그렇게 여여부동하게 보는 것이다.모든 이해득실에 여여부동한 사람을 보고 감동받지 않을 사람이 없다. 그것이 금강경의 위인해설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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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에서는 위인해설을 어떻게 가르치는가.
법화경은 근본취지가 ‘모든 사람과 모든 생명 모든 존재가 다 부처님이다’라고 하는 ‘인불사상(人佛思想)’이다. 이 인불사상을 몸소 실천한 보살이 상불경보살이다. 상불경보살은 만나는 모든 사람을 향해 ‘나는 당신을 부처님을 받들어 섬깁니다’하면서 진정으로 상대를 예배하고 공양 공경하였다.
그런 모습이 바로 법화경의 위인해설이다.
경전의 내용을 설명하는 것도 설명이지만 그 설명 보다는 몸소 경전의 인불사상을 실천해 보이는 사람에게 사람들이 더 감동하게 되어 있다.
나의 이해득실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고 실천해 보이는 상불경보살의 행동에 사람들은 감동한다.
금강경이나 법화경이나 경전마다 종지가 있다. 그 종지를 구체적으로 표현한 내용들이 그렇게 나온다.
*
앞에서 제바달다품을 보았는데, 제바달다는 부처님을 살해하려고 여러 번 시도한 사람이기 때문에 불자들의 원수다. 그러나 부처님은 ‘나를 죽이려고 하고 나의 모든 교단을 빼앗고 내 제자를 전부 자기 제자로 만들려고 한 사람이지만 그도 또한 나의 스승이요. 궁극에는 그도 부처님이요 그로 인해서 나는 이렇게 성숙한 인간이 되었다’라고 소화한다.
제바달다로 인해 ‘내가 오늘날 이렇게 부처가 되었노라’라고 하는 부처님의 자세는 얼마나 감동적인가.
또 용녀성불이라고 해서 용의 암놈 새끼마저도 순식간에 성불한 사례를 보았다. 이런 것은 우리가 당장에 따를 수 없어도 큰 가르침이다. 한 생각 돌이키면 그 또한 간단한 일이다.
과거 무수한 불보살들, 무수한 조사스님들이 다 그러한 마음을 쓰고 사셨다. 우리 또한 어느 순간에는 나를 죽이려고 했던 사람을 스승으로 여기고 부처님으로 여길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법화경의 위대한 인불사상을 이제 어지간히 다 이야기 했다.
이와 같이 뛰어난 사상, 인류의 모든 미래를 책임지고 인류의 행복과 평화를 책임질 수 있는 이 가르침을 우리가 숙지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전파를 해야 된다. 이것만이 우리에게 남은 숙제다 하는 이야기를 권지품에서 한다.
제13 권지품
1. 약왕보살의 서원
‘약왕보살의 서원’이라고 했는데 서원은 참 중요한 말이다.
우리 불교에는 원력, 발원, 서원, 축원 등등 원할 원(願)자가 들어간 용어가 많다. 원은 꿈이고 희망이고 기대감이다.
꿈과 희망과 기대와 서원은 인생에 있어서 밝은 빛과 같다.
식물은 아무리 캄캄한 데에 놔둬도 조금이라도 밝은 곳을 향해서 방향을 튼다.
식물도 빛을 향해서 성장을 하는데 사람의 빛은 무엇인가.
꿈이고 희망이고 서원이다.
우리도 이 법화경을 인연 맺으면서 많은 사람에게 보탬이 되고 나 자신에게도 유익한 꿈을 하나씩 갖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 경전에 나오는 사람들은 법화경을 목숨을 바쳐서 펴겠다고 하는 꿈을 표현한다.
1 그때 약왕(藥王)보살마하살과 대요설(大樂說)보살마하살이 이만 보살 권속과 함께 부처님 앞에서 서원을 하였습니다.
“바라옵건대 세존이시여, 염려하지 마십시오. 저희들은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이 경전을 받들어 지니고 읽고 외우고 설하겠습니다.
후세의 나쁜 세상 중생들이 선근은 적어지고 뛰어난 체하는 이가 많아 공양에 탐을 내며, 착하지 못한 뿌리를 증장시키고 해탈을 멀리 여의어 교화하기 어려우나 저희들이 마땅히 크게 참는 힘으로 이 경전을 읽고 외우고 받아 지니고 설하고 쓰며 갖가지로 공양하되,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수많은 권속 보살들과 함께 약왕보살, 대요설보살이 이렇게 앞장서서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법화경을 전하겠다’고 서원을 세웠다. 하물며 재산이겠는가. 시시한 자기 이득, 자기 자존심, 잘났다고 하는 생각, 이런 알량한 것들을 아끼겠는가. 몸과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이 사람에게 없다.
‘법화경을 읽고 외우고 받아지니고 설하고 쓰며 가지가지로 공양하되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는 서원은 참 눈물겹다.
사람은 원력이 있어야 되고 꿈이 있어야 된다.
금방 팔십, 구십 내지 백살 이렇게 되어서 머지않아 열반에 들 나이에 이르렀다손 치더라도 죽는 순간까지 꿈이 있어야 된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제일 큰 힘이 되는 것이 희망이고 꿈이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엉뚱한 데에 꿈을 걸고 살면 서로가 피곤하고 실망이 크다. 실망이 없을 일에 꿈을 가져야 된다. 실망이 없을 일이 무엇일까. 여러분들은 꿈을 가졌다가 실망하고 속상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것은 헛짚어서 꿈을 걸고 기대를 걸었기 때문이다. 나의 꿈이 과연 내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아니할 것인가. 한번 쯤 냉정하게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
지금은 사찰에 개인 불공이 거의 없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4, 50년 전 우리 어릴 때만해도 신도들이 개인불공을 했다. 개인불공을 여법하게 제대로 하려면 두 시간은 걸린다.
그런데 5분 안에 그것도 만족하게 뚝딱 해마치는 방법이 있다. 그 5분간 뭘 하느냐. 축원문만 큰 소리로 귀에 들어가게 읽는 것이다.
지금은 신도님들이 성숙을 해서 ‘스님이 개인 축원을 했겠지, 안하면 어떠노. 내 마음으로 다 빌었는데’ 하는 정도의 수준이 된다. 한 4, 50년 전, 5, 60 년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꼭 자기 아들 딸 이름을 큰소리로 불러줘야 된다.
유치청사라고 하는 주옥같은 법문은 하나도 안해도 좋다.
천수경은 안 읽어도 좋고 반야심경을 안해도 좋다.
그저 이름만 크게 불러서 부처님 앞에 ‘누구보처 누구보처 누구보처 하고 금년 내내 만사형통하고 수명장원하고 잘 먹고 잘 살도록 해주십시오.’이렇게 딱 귀에 들어가게 하면 3분에서 5분이면 끝난다. 그러면 만족하는 것이다.
일년 내내 별러서 온 불공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써 만족한다. 왜 그런가.
인간은 꿈을 먹고 살기 때문이다.
자기 가족이 잘 되길 바라는 꿈과 희망에 휘발유를 부어서 불을 질러 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특히 이름을 재고축 삼고축 세 번이나 불러준다. 그러면 만족하는 것이다.
사람은 꿈을 먹고 살기 때문에 그렇다.
희망으로 살기 때문에 그렇다.
여러분들도 바람직한 희망을 가져야 된다.
여기 권지품에 나오는 이들의 희망과 꿈은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법화경을 펴고자 하는 것이다. 5백 아라한과 8천 성문의 서원 또한 같다.
2. 오백 아라한과 팔천 성문의 서원
2 이 때 대중 가운데 있던 오백 아라한으로서 수기를 받은 이들이 스스로 부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도 서원코 다른 국토에서 이 경(經)을 널리 설하겠습니다.”
또 학(學)과 무학(無學) 팔천 사람으로 수기를 받은 이들이 스스로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이렇게 서원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도 다른 국토에서 이 경전을 널리 설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바세계 사람들은 못된 이들이 많고 뛰어난 체하는 생각을 품었으며, 공덕이 얕고, 성을 잘 내고, 마음이 흐리고, 아첨하고, 진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의 뒤에 보면 ‘교담미는 일체중생희견여래가 될 것이다’하는 마하파사파제 비구니의 수기 받는 내용이 나오고 부처님의 과거 부인이었던 ‘야수다라가 구족천만광상 여래가 되리라’고 하는 수기가 나온다.
‘오백 아라한으로서 수기를 받은 이들이’ ‘유학 무학 팔천 사람들도 수기를 받은 이들이’이라고 되어 있는 대목이 그 전조다.
우리가 그동안 법화경을 24회째 설법하면서 한 번 할 때마다 ‘당신은 부처님’이라고 하는 말을 최소한 열 번도 넘게 이야기 했다.
‘사람은 부처님이다’ ‘당신은 부처님’이라고 하는 책도 드렸다.저는 법화경을 강의하면서 시종일관 종지를 잃지 않고 강의하고 있다.법화경의 근본취지라는 것은 결국 ‘사람이 부처님이다’ 하는 인불사상이다. 그러므로 빠지지 않고 법회에 오셨다면 여러분들은 벌써 여러 수십 번의 수기를 받았다.
상불경보살 이야기를 얼마나 했으며, 수기에 대한 이야기가 얼마나 많았는가. 이천명 오백명을 똑같은 이름으로 무슨 여래가 될 것이다 라고 하는 엉터리 수기까지 주었는데 이것은 모든 사람이 본래로 부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말해준다.
불교를 비방하던 사람이든,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이든, 부처님을 찬탄하고 믿는 사람이든 아무 상관없이 공히 우리 모두는 본질적으로 불성인간이고 부처인 인간, 인간인 부처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법화경이 오늘날 이렇게 빛을 보고 우리가 꼭 공부해야 하는 내용이다. 이것만이 가정의 평화와 인류의 평화에 열쇠가 된다.
수기를 받든 안 받든 모든 사람은 다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를 받은 것이나 진배가 없다.
그런데 소견머리 없는 마하파사파제 비구니 스님과 부처님 부인이었던 야수다라는 자기들이 그 수기받은 사람들 속에 이미 다 포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에게는 수기를 주지않는가. 특별히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가’ 하고 부처님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가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경전 속에 담겨 있는 인간의 심리를 분석해 내면 참 미묘하다.
그 사람들은 부처님과 가까운 사람들이다. 그동안 부처님은 인불사상을 무수히 강조했지만 ‘아유 그래도 나는 중생이야’ ‘부처님인데’하면서 부처님처럼 깎아놓은 불상에라도 매달려야 직성이 풀리는 모자란 인간이다.
속가 이름이 교담미이고 불교에 들어와 마하파사파제비구니가 된 이는 부처님의 이모이다. 태어나 7일만에 어머니를 잃은 부처님을 키운 사람이다. 그렇게 절친하게 부처님을 키운 대모이고 유모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끈질기게 부족한 인간적인 좁은 소견을 갖고 있다. 그런 심리를 경전의 행간에 담고 있다. 행간 속에 이런 속 뜻이 숨어 있기 때문에 천 번을 읽고 만 번을 읽어도 부족한 것이 이 경전이다.
아무튼 이 사람들이 다른 국토에 이 경을 널리 설하겠다고 하는 원력 때문에 오늘날 중국에도 한국에도 일본에도 서양에까지 이렇게 법화경이 널리 전해지고 있다.
법화경이야 말로 부처님 교설의 결정판이다.
부처님 교설의 완성이다.
그러한 뜻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실천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들이 수기 받는 내용을 보겠다.
3. 교담미는 일체중생희견 여래가 되리라
3 이 때 부처님의 이모이신 마하파사파제 비구니가 배우는 이들과 다 배운 이들 육천 비구니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일심으로 합장하고 부처님을 우러러보며 잠깐도 한눈 팔지 아니 하였습니다.
제자들을 6천명이나 거느리고 있었으니 대단하다. 부처님을 젖먹여 키운 사람이니까 그럴만 하다. 부처님이 설법하다 보니까 너무나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어서 ‘저 사람이 나하고 무슨 감정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 자기 이름 안 불러졌다고 그러는구나. 참 덜 떨어진 것’ 이것이 이 행간의 의미다.
...이때 세존께서 교담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근심어린 얼굴로 여래를 보는가. 그대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그대의 이름을 불러서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수기를 주지 않는다고 여기는가. 교담미여, 내가 앞서 모든 성문들을 한꺼번에 들어서 다 수기를 주었느니라. 이제 그대가 그대의 수기를 알려거든, 오는 세상에 육만 팔천억 부처님의 법 가운데서 큰 법사가 되고, 여기 배우는 이들과 다 배운 육천 비구니들도 모두 법사가 될 것이니라.
여기는 법사라는 표현을 했다. 앞에서는 ‘법사’라는 표현이 없었는데 여기는 법화경을 널리 전할 것을 권장하는 품인 까닭에 ‘법사’라고 표현한 것이다. 법화경을 전하려면 오종법사라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대는 이리하여 점점 보살의 도를 구족하여 마땅히 부처를 이루리니, 이름이 일체중생희견(一切衆生喜見)여래, 응공, 정변지, 명행족, 선서, 세간해, 무상사, 조어장부, 천인사, 불, 세존이라 하리라.
교담미여, 이 일체중생희견불과 육천 보살들도 차례차례 수기를 주어 최상의 깨달음을 얻게 되리라.
여긴 벌써 수기를 받았으니까 이미 보살이 되어 버렸다. 6천명이나 제자들이 최상의 깨달음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되리라. 이렇게 수기를 해 마쳤다.
사실 수기는 다 줬고 또 법을 펴는데 이들은 ‘법을 펴려면 수기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 이렇게 같이 앉아서 이런 법문을 들었으면 ‘나도 법화경 열심히 공부하고 집이라도 팔아서 전부 법화경 널리 펴는데 다 써야겠다’할 것이다. 저는 이 생각 이런 말을 자신 있게 한다. 그렇게 할 만하게 살기도 한다. 그래서 법상에서 ‘여러분들 집 팔아서 법공양 하십시오’이런 소리를 잘 한다.
여기는 우리가 모두 그러한 꿈을 가지고 살라고 하는 장이다.
4. 야수다라는 구족천만광상(具足千萬光相) 여래가 되리라
4 이 때 라후라의 어머니인 야수다라비구니가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세존께서 수기를 주시는 가운데 유독 내 이름만을 말하지 않으시는구나.’
라후라는 부처님 아들이니 야수다라는 누구인가.
요즘 휴대폰에 ‘어플’이라는 것이 있는데 법화경을 독송한 어플도 있다. 거기에 ‘내 이름만을 말하지 않으시는구나.’ 라고 하는 이 대목을 읽는 여자의 음성이 아주 토라진 듯이 읽는다. 나의 선입관 때문에 그렇게 들리는지 모르지만 그 대목을 들으면서 ‘연기를 잘하는구나’했다.
‘세존께서 수기를 주시는 가운데 유독 내 이름만을 말하지 않으시는구나. 내가 뭐 잘 못한게 있나, 지가 도망가 놓고는’ 그 음성에 그런 마음이 깔려 있었다.
... 부처님께서 야수다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는 오는 세상에서 백천만억 부처님의 법 가운데서 보살의 행을 닦으며 큰 법사(法師)가 되었다가 점점 부처님의 도를 갖추고 좋은 국토에서 마땅히 부처를 이루리라. 이름이 구족천만광상(具足千萬光相) 여래, 응공, 정변지, 명행족, 선서, 세간해,무상사, 조어장부, 천인사, 불, 세존이라 하리라. 그 부처님의 수명은 무량 아승지 겁이니라.”
‘그래 너희들도 이제 이름을 불러서 수기를 전하니 법화경 좀 널리 전해라. 제발 법화경 좀 널리 선전해라.’ 이런 뜻이 담겨 있다.
이 사람들을 따로 불러서 수기를 안 주면 법화경을 전하는데 소홀히 할 수가 있음을 염려해서 부처님은 ‘저 사람들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저 사람들이 법화경을 이해하면 상당히 효과가 있겠다’ 이런 생각을 하신 것이다.
그래서 법화경을 널리 전하기를 권하다가 중간에 이 사람들에게 수기를 살짝 끼어서 준 것이다. 이 사람들은 비구니들의 대표다. 부처님 당시나 지금 우리나라에는 비구 밑에는 비구니가 상좌가 못된다. 그러니까 부처님이 이 사람들을 제자로 하고 나머지 비구니들은 전부 이 사람들 밑으로 상좌가 되는 식으로 해서 이들은 많은 비구니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제자가 많다.
자신들의 우두머리, 리더가 부처님으로 부터 수기를 받았으니 비구니들이 함께 기쁘고 즐거울 수밖에 없다.
이 사람들의 서원을 읽겠다.
5. 비구니들의 기쁨과 서원
5 이 때 마하파사파제 비구니와 야수다라 비구니가 그들의 권속들과 함께 환희하여 미증유를 얻고 부처님 앞에서 게송으로 말하였습니다.
“세존이신 대도사께서
천신과 인간들을 편안케 하시니
저희들이 수기를 듣고
마음이 편안하고 만족합니다.”
비구니들이 이 게송을 말하고 나서
부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도 다른 국토에서 이 경전을 널리 설하겠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이 사람들도 수기를 주어서 다른 데서 자신있게 법화경을 펴도록 한 것이다.
법화경을 널리 펴는 가장 구체적인 실천은 상불경보살과 같이 모든 사람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는 것이다.
말로 하는 것 또 오종법사라고 해서 수지 독송 서사 위인해설 했지만 가장 바람직하게 법화경을 펴는 방법은 온 세상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가정이 행복하고 이웃이 평화롭고 온 세계가 다 평화로울 것이다.
그러한 마음이라면, 원자력 발전소의 기계를 조립하는데 부속품 같은 것을 엉터리로 사들여서 사고가 나게 할 수는 없다.
세상에 그렇게 통탄할 일이 어디 있는가.고리 원자력 발전소는 바로 부산 인근에 있다. 그렇게 중요한 부품을 검증도 안된 엉터리 부품으로 채웠다가 부산시민이 반쯤 사고를 당한다면 어떻게 하려는가. 우리나라 공무원들이라는 사람들이 그런 일을 식은 죽먹기로 한다.
세상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근래에 가장 참지 못할 일이 바로 그 일이다.
그런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은 일반 공무원들보다 훨씬 더 고급 월급을 받는 사람들이다. 겨우 하루에 몇 만원씩 받는 일용직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인데 고급 월급을 받으면서 더 많은 부정축재를 해서 자손들이 뭐 잘될 것이라고 얼마나 잘먹고 잘 살거라고 그렇게 국민들의 생명과 국토가 망가질 것을 염려하지 아니하고 그런 짓을 하는가.
(박수)
가정이 편안하고 행복하고 온 국민, 그리고 나아가서 전 세계 인류가 행복하게 사는 길의 열쇠는 바로 이 법화경의 인불사상이다.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긴다는 마음, 그런 마음이 만약에 있다면 식품의 유효기간을 속이고 다른 나라 것을 국산이라고 속일 수는 없을 것이다.
옛날에는 국산을 가지고 외제라고 속이더니 요즘은 또 외제를 가지고 국산이라고 속인다.
국산을 외제라고 속인 것이 불과 얼마 안된 세월인데 지금은 외국 것을 가지고 국산이라고 속이고 있다. 한국 것이 그만큼 격이 높아지고 좋아졌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런 것을 이용해서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는 식품까지 속이는 일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부처님이 드신다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그러면서 자기 가족들은 그걸 먹이지 않는다.
참 영리하기도 하다.
그런 것이 바르게 사는 길이 아니다.
바르게 사는 길이 아니면 결국 자기 자신이 잘 못된다고 하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인과다. 인과는 너무나도 기초적인 불교의 ABC이기 때문에 법화경에서 인과 이야기는 벌써 졸업한 상태다.
가을이 되면 단풍들고 낙엽지는 이치가 인과다. 세상살이의 기본이다.
*
지금 현실과 서로 연관시켜서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힘들고 어려운 꿈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모든 사람을 우리가 궁극적으로 부처님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생명은 다 부처님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끊임없이 연습하고 연습할 때 그 때 가정은 행복하고 이웃도 평화롭고 나라도 평화롭고 모든 부정부패가 다 사라지고 모든 사람들이 다 선량하고 정직하게 될 것이다.
특히 국민의 세금을 가지고 살아가는 공직자들, 특히 고위 공직자들이 모든 사람을 부처님으로 섬긴다는 마음을 밑바탕에 깔고 선량하고 정직하기만 하다면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옛 속담이 있듯이 밑에 사람들이 저절로 그렇게 따라 갈 것이다.
높은 자리에서부터 그걸 잘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 고위공직자들이 한 사람도 안 와있으니 이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옛날에는 훌륭한 법사가 설법을 하면 그 밑에 정승들이 와서 듣고 심지어 왕이 와서 듣고 왕도 공부를 하도 하다가 도포자락 벗어버리고 자기가 가사 수하고 법상에 와서 설법하는 왕들이 많았다.
왕이 올라가서 설법하는데 온갖 대신들이 다 왔을 것 아니겠는가. 그랬을 때 그 파급 효과가 얼마나 되겠는가.
참 그런 시대가 부럽고 그런 세월이 부럽다.
우리나라도 좀 제대로 되려면 그렇게 한 번씩은 법사가 꾸중하는 소리, 욕하는 소리도 들어야 할 것이 아닌가.
*
엊그저께 큰 행사가 했는데 그 많은 고위공직자들 왔었다.
제일 높은 자리에 앉은 큰스님이 그때 한 번 세상을 향해서 할을 한 번 해야했다. 세상에 대해서 할을 하는 것이 무엇인가. ‘느그 공직자들 좀 정직하게 살고 선량하게 좀 정치하라 말이야 뭐냐’ 이런 소리를 해야 할이다. 알아듣지 못하는 주장자만 높이 들면 그게 할인가.
주장자 이렇게 든다고 그게 할이 되는가? 고위 공직자들 왔을 때 바른 소리 크게 한 번 했어야지. 안타까와 죽겠다.(박수)
그건 법화경인가? 역시 법화경이라고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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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법화경이 설해진 것이 어떤 의미에서 보면 완전무결하게 설해졌다.
모두 법화경의 정신, 법화경의 스토리를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법화경이라고 하는 책이라도 들고 아니면 오늘 이 봉은법회지 이것만이라도 들고 다니면서 읽고 외우고 많은 사람에게 전하자.
요즘 법화경 내용을 자세히 번역한 책도 있고, 휴대폰의 어플도 있다. 그런 것을 사서 늘 듣고 법화경을 내 자신에게 전파하고 다른 사람에게 널리 전파하는 것을 희망으로 삼고 꿈으로 삼고 큰 서원과 나의 원력으로 삼자.
그런 신심을 가지고 힘차게 우리가 용맹정진 하는 것이다.
법화경 전파하는데 그냥 해서는 안된다.
용맹정진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좀더 용맹스럽게 법화경을 전하고자 하는 꿈과 원력을 가지시기를 바란다.
이것으로써 법화경 강의를 마친다.
지난 주, 장장 24주 동안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이루어졌던
선교율 법회 법화경 법석이 끝났습니다.
날씨는 차가왔고, 저는 전에 안 갔던 새로운 버스노선으로 도봉산역까지
가면서 낙엽들 다 떨구고 홀가분하게 가까와진 도봉산을 보았지요.
어쩐지 지금부터 법화경을 잘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은 기쁜 마음이었는데,
다래헌은 조용해서, 제가 제일 먼저 도착했다고 착각을 했어요. 모두 벌써 차담을 나누고 법당에 가셨다고요.
*
큰스님께서 점심 공양을 마치시고 마지막으로 모두에게 인사하시면서 “오늘 법문 의미를 잘 알아들었지요.” 하셨습니다.
저는 그 때까지 법문에 취해서 “네, 아주 아주 좋았어요.” 하고 말씀드렸는데 승용차가 떠나실 때야 오늘이 마지막 법문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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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에 함께 차를 마시다가 한 보살님이 말씀해 주셨지요.
어느날 궁금하여서 부처님이 유행하며 설법하신 지역을 구글지도로 검색하여 보았더니, 딱 우리나라 남한 크기 만했다고요. 지금 큰스님께서 법문하러 다니시는 딱 그만큼의 크기라고요. 그런 이야기를 나눌 때 우리는 한달에 한 번 이렇게 법문 들을 수 있는 기쁨만을 이야기 했는데, 한달 뒤, 같은 자리에서 이제 당분간 같이 만날 수 없는 섭섭함에 대해서 이야기 하게 되었어요.
언제나 느리고 더딘 저는 이제 겨우 룸비니 지나 녹야원에 있는데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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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은 몹시 추울 것 같습니다. 마음에 심어진 법화경에 자주자주 물을 주며 봄을 기다리겠습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모두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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