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

[스크랩] 대지도론(大智度論) 104. 무엇이 참된 법보시인가? 재물보시와 법보시의 차이점

수선님 2018. 12. 30. 12:54

20. 초품 중 단바라밀의 법시(法施)를 풀이함 ①
  
[문] 무엇을 법보시라 하는가?

 

[답]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항상 좋은 말로써 남을 이롭게 하면 이를 법보시라 한다” 하고,

 

또한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부처님들의 말씀을 묘하고 착한 가르침으로써 남에게 연설해 주면 이를 법보시라 한다” 하고,

 

또한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세 가지 법으로써 사람을 교화하는 것이니,

첫째는 수투로(修妒路)42)요, 둘째는 비니요, 셋째는 아비담이다. 이것을 법시라 한다” 하고,

 

또한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네 가지 법장(法藏)으로써 사람을 교화하는 것이니,

첫째는 수투로장이요, 둘째는 비니장이요, 셋째는 아비담이요, 넷째는 잡장(雜藏)이다. 이것을 법시라 한다” 하고

  
  
  
41) 범어로는 caṇḍāla. 하층의 천민을 가리킨다.
42) 범어로는 sūtra.
[455 / 805] 쪽

또한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간략히 말하자면 두 가지 법으로써 사람을 교화하는 것이니,

첫째는 성문의 법[聲門法]이요, 둘째는 보살의 법[菩薩法]이다. 이것을 법시라 한다” 했다.

 

 

[문] 제바달(提婆達)과 가다(呵多)43) 등도 3장(藏)ㆍ4장(藏)ㆍ성문법ㆍ마하연법으로 사람을 교화했거늘 지옥에 들어갔다. 그 일은 어째서인가?

 

[답] 제바달은 삿된 소견의 죄가 많고 가다는 거짓말의 죄가 많다.

 

이는 도를 위한 청정한 법보시가 되지 못하고, 다만 명예와 공경과 공양만을 구하는 일이다.

악심을 품은 죄로 인해 제바달은 산 채로 지옥에 들어갔고 가다는 죽어서 악도(惡道)에 빠졌다.

 

말로써 설명하는 것만을 일러 법보시라 하지는 않는다.

항상 맑은 마음과 착한 생각으로 일체를 교화하는 것을 법보시라 한다.

 

비유하건대 재물보시는 착한 마음으로 하지 않으면 복덕이라 할 수 없듯이,

법보시도 그와 같아서 맑은 마음과 착한 생각으로 하지 않는다면 법보시가 되지 못한다.

 

또한 법을 설하는 이가 능히 맑은 마음과 착한 생각으로 능히 3보(寶)를 찬탄하고 죄와 복의 문을 열며,

4제를 내보이고 중생을 교화하여 불도에 들어가게 한다면 이것은 참으로 청정한 법보시이다.

 

 

 

간략히 말하건대 법에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중생을 괴롭히지 않고 착한 마음으로 가엾이 여기는 것이니, 이는 불도에 드는 인연이다.

둘은 모든 법이 참으로 공함을 관찰하는 것이니, 이는 열반에 이르는 인연이다.

 

대중에 대하여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켜 이 두 가지 법을 말하되

명예나 이익이나 공경과 공양을 위하지 않으면 이는 청정한 불도의 법보시가 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아수가(阿輸伽)44) 왕은 하루에 8만 개의 탑[佛圖]45)을 세웠으며, 비록 도를 깨닫지는 못했으나 불법에 대하여 조그만치의 신심이 있어 날마다 비구들을 궁중으로 청해 다가 공양하고, 날마다 차례로 법사를 남겨 두어 법을 설하게 했다.

  
  
  
43) 범어로는 Hasthaka. 외도와 대화를 함에 부정하고는 긍정하고, 긍정하고는 부정해서 외도를 화나게 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92바일제(波逸提) 가운데 첫 번째인 망어(妄語)를 제정했다고 한다.
44) 범어로는 Aśoka.
45) 범어로는 stūpa.
[456 / 805] 쪽
  

이때 3장에 통달한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젊은 법사로서 총명하고 단정했다.

 

설법할 차례가 되어 왕의 곁에 앉았는데 입에서 이상한 향취가 나거늘 왕이 매우 이상하게 여겨 생각했다.

“점잖지 못하게도 향기로써 궁녀들의 마음을 흔들려 하는구나.”

 

그는 비구에게 물었다.

“입에 무엇이 들었는가? 입을 열어 보라.”

 

즉시에 입을 열었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물을 주어 양치질을 하게 하였으나 향취는 여전했다.

 

왕은 다시 물었다.

“대덕이여, 새로 이런 향취가 생긴 것이요, 아니면 원래부터 있던 것이오?”

 

비구가 대답했다.

“이와 같은 지가 오랩니다. 요즘의 일이 아닙니다.”

 

“그런 지가 얼마나 되는 것이오?”

 

 

비구가 게송으로 대답했다.

  
  가섭부처님 시절에
  이 향기로운 법을 모았으니
  이와 같이 오래도록
  항상 새로 나는 듯하네.
  
왕이 말했다.
“대덕이시여, 그렇게 대략 말씀하셔서는 알 수 없으니, 나를 위해 자세히 말씀해 주시오.”

 

비구가 대답했다.

“왕께서는 일심으로 내 말씀을 잘 들어 보십시오. 나는 옛날 가섭부처님의 법 가운데 설법하는 비구가 되어 항상 대중 가운데에서 환희하고 연설하며, 가섭 세존의 한량없는 공덕과 모든 법의 실상과 한량없는 법문을 정성껏 찬탄해서 일체 중생을 가르쳐 깨우쳤습니다. 이때부터 항상 묘한 향이 입에서 나와 세세에 끊이지 않으니, 항상 오늘과 같았습니다.”
  
[457 / 805] 쪽
  
그리고는 게송을 읊었다.
  
  모든 초목과 꽃의 향기보다
  이 향취가 훨씬 뛰어나니
  능히 일체의 마음을 기쁘게 하여
  세세에 항상해 멸하는 일 없네.
  
  그때에 국왕이 부끄러움과 기쁨이 엇갈려 비구에게 말했다.
  “처음 보는 일이로소이다. 설법하는 공덕의 큰 과보가 이러하다니 말입니다.”

 

  비구가 말했다.

  “이는 꽃이라고는 할지언정 아직 과보는 아닙니다.”

 

  왕이 물었다.

  “그 과보란 어떤 것입니까? 부디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비구가 대답했다.

  “간략히 말해 과보에는 열 가지가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자세히 들어보십시오.”

 

그리고는 곧 게송을 말했다.

  
  큰 명예와 단정함과
  즐거움과 공경을 얻고,
  위광(威光)이 일월 같아
  모두에게 사랑 받는다.
  
  변재에 큰 지혜까지 있고
  일체의 번뇌 능히 다하며
  
[458 / 805] 쪽
  괴로움이 멸하고 열반 얻으니
  이것이 모두 열 가지라오.
  
  왕이 물었다.
  “대덕이시여,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한다면 어찌해서 이러한 과보를 얻습니까?”

 

  그러자 비구가 게송으로 대답했다.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여
  모두가 두루 듣게 하였으니
  이러한 과보 있는 까닭에
  커다란 명예를 얻는다네.
  
  부처님의 진실한 공덕 찬탄하여
  모두가 기뻐하게 하였으니
  이러한 공덕 있는 까닭에
  세세에 항상 단정하다네.
  
  남에게 죄와 복을 말하여
  편안하고 즐거움을 얻게 했으니
  이러한 공덕 있는 까닭에
  즐거움 누리고 항상 기쁘다네.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여
  모두의 마음을 굴복시켰으니
  이러한 공덕 있는 까닭에
  항상 공경 받는 과보를 얻네.
  
  설법의 등불을 밝게 드러내
  
[459 / 805] 쪽
  중생들을 비추어 깨우쳤나니
  이러한 공덕 있는 까닭에
  위광이 해처럼 밝다네.
  
  갖가지로 부처님 공덕을 찬탄하여
  모두를 기쁘게 하였으니
  이러한 공덕 있는 까닭에
  항상 남의 사랑 받는다네.
  
  묘한 말로 부처님을 찬탄하여
  그 덕이 한량없고 끝없다 했으니
  이러한 공덕 있는 까닭에
  변재(辯才)가 다하는 일 없네.
  
  부처님의 묘한 법을 찬탄하여
  아무도 지날 이 없다 했으니
  이러한 공덕 있는 까닭에
  큰 지혜 있고 청정하다네.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할 때
  사람들의 번뇌 얇아지게 했으니
  이러한 공덕 있는 까닭에
  번뇌가 다하고 모든 때가 멸하네.
  
  두 가지 번뇌가 다하였기에
  열반의 몸 이미 증득했으니
  마치 소나기가 퍼부은 뒤에
  불은 꺼져 열기조차 없듯이.
  
[460 / 805] 쪽
다시 법사가 왕에게 말했다.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이 있거든 지금이 바로 물을 때입니다.

지혜의 화살로 그대의 의혹의 군사를 무찔러 드리겠습니다.”

 

왕이 말했다.

“법사여, 나는 마음이 기꺼우며 깨달아 의심이 없습니다.

커다란 복덕을 지닌 이께서는 부처님의 공덕을 잘도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갖가지 인연으로 법을 설해서 사람을 제도하는 것을 법보시라 한다.

 

 

[문] 재물보시와 법보시에서 어느 것이 수승한가?

 

[답]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두 가지 보시 가운데서 법보시가 수승하다. 그것은 왜냐하면 재물보시의 과보는 욕계에 있지만, 법보시의 과보는 삼계에 있거나 혹은 삼계를 벗어나기도 하기 때문이다”고 하셨다.

 

입으로 말함이 청정해서 깊이 도리가 통함을 얻는다면, 마음도 역시 그것을 얻는 까닭에 삼계를 벗어나게 된다.

 

재물보시는 한량이 있거니와 법보시는 한량이 없으며, 재물보시는 다함이 있거니와 법보시는 다함이 없다.

비유하건대 장작을 불 위에 덮으면 그 광명이 점점 많아지는 것과 같다.

 

또한 재물보시의 과보는 청정함이 적고 때가 많으며, 법보시의 과보는 때가 적고 청정함이 많다.

 

또한 만일 큰 보시를 하려면 반드시 대중의 힘을 기다려야 하지만,

법보시는 마음으로 나오니 남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또한 재물보시는 능히 4대와 모든 근(根)을 키우며,

법보시는 능히 무루의 근(根)ㆍ역(力)ㆍ각도(覺道)46)를 갖추게 한다.

 

또한 재물보시의 습관[法]은 부처님이 계시거나 계시지 않거나 세상에 항상 있지만,

법보시는 부처님이 계신 세상에만 있다.

 

그러므로 법보시가 매우 어려운 것임을 알아야 한다.

어찌하여 어려운가?

 

형상을 지닌 벽지불에 이르기까지도 설법은 하지 못하고 다만 다니면서 걸식하고 허공으로 날아오르고 변화하여 사람들을 제도할 뿐이다.

  
  
  
46) 5근(根)․5력(力)․7각지(覺支)를 말한다.
[461 / 805] 쪽
  
또한 법보시로부터 능히 재물보시가 나오며, 성문ㆍ벽지불ㆍ보살들에 이르고 부처에 이른다.

 

또한 법보시는 능히 모든 법의 유루와 무루, 물질의 법과 물질이 없는 법, 유위와 무위의 법, 착한 법과 착하지 못한 법과 무기의 법, 항상한 법과 무상한 법, 있음의 법과 없음의 법 등 온갖 법의 진실한 모습과 청정하여 파괴할 수 없음을 잘 분별하나니, 이런 법을 간략히 설명하면 8만 4천이 되거니와 자세히 말하면 한량이 없다.

 

이러한 갖가지 법이 모두가 법보시에 의하여 분별해서 밝게 알 수 있으니,

그러므로 법보시가 수승하다고 한다.

 

이 두 가지 보시를 합쳐서 단(檀)이라 한다.

 

이 두 가지 보시를 행하여 부처가 되기를 원하면

능히 사람들로 하여금 불도에 이르게 하거늘 하물며 그 밖의 것이겠는가.

 

 

[문] 네 가지 버림[捨]을 단(檀)이라 하나니, 이른바 재물의 버림과 법의 버림과 두려움 없음의 버림[無畏捨]과 번뇌의 버림이다. 여기에서는 어째서 두 가지 버림은 설명하지 않는가?

 

[답] 두려움 없음의 버림은 시라(尸羅)47) 바라밀과 다르지 않으므로 설명하지 않았고,

반야바라밀이 있으므로 번뇌의 버림[煩惱捨]을 설명하지 않았다.

 

만일 6바라밀을 설명하지 않았다면 의당 네 가지 버림을 다 설명했어야 할 것이다.

  
  
47) 범어로는 śīla.

 

 

 

대지도론(大智度論) 104. 무엇이 참된 법보시인가? 재물보시와 법보시의 차이점

출처 : 출리심 보리심 공
글쓴이 : - 해탈 -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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