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

[스크랩] 대지도론(大智度論) 122. 불살생의 계율

수선님 2019. 1. 6. 12:00

22. 초품 중 계상(戒相)의 뜻을 풀이함
  
[문] 이러한 갖가지 공덕과 과보는 이미 알았거니와 무엇을 일컬어 계상(戒相)이라 하는가?

 

[답] 악(惡)을 그쳐 다시는 짓지 않는 것이다.

마음에서 우러났거나 입으로 말하거나 남의 지시를 받아 몸과 입의 악을 그친다면 이것이 계상이 된다.

 

어떤 것이 악(惡)인가?

 

실제로 이 중생을 중생인 줄 알고서 고의로 죽이려 하고 그의 생명을 빼앗아 신업(身業)을 일으키는 지음의 모양(作色)이 있다면 이를 살생의 죄라 한다. 그 밖에 가두거나 결박하거나 때리면 살생을 돕는 법이 된다.

 

또한 남을 죽이면 살생의 죄가 된다.

자살한 것이 아닌, 마음속으로 중생인 줄 알면서 죽이면 이는 살생죄이다.

 

이른바 야밤에 사람을 보고는 말뚝인 줄 알고 죽이는 것과는 달리 고의로 산목숨을 죽이면 살생죄에 해당한다.

 

고의가 아닌 것은 해당치 않는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快心] 산목숨을 죽이면 살생의 죄에 해당한다.

 

 

성한 정신으로 목숨을 끊으면 살생죄에 해당한다.

 

상처를 내는 것은 해당치 않으나 신업(身業)은 곧 살생죄이다.

단지 입으로 말한 것은 해당치 않으나, 입으로 명령하여 죽이면 살생의 죄가 된다.

 

단지 마음으로 악을 일으키는 것은 해당치 않는다.

이러한 것들을 살생죄의 모습[相]이라 하거니와 이러한 것들을 짓지 않는 것을 일컬어 계라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계를 받은 뒤 마음으로 일으키고 입으로 말하기를 “나는 오늘부터 다시는 살생하지 않겠다” 하거나 몸도 움직이지 않고 입으로 말하지도 않은 채 속으로만 맹세하기를 “나는 오늘부터 다시는 살생하지 않겠다” 한다면 이것을 불살생계라 한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이 불살생계는 혹은 선(善)이며 혹은 무기(無記)이다”고 한다.

 

 

[문] 아비담에 말하기를 “일체의 계율의(戒律儀)는 모두 선이다” 하였는데 이제는 어찌하여 무기라 하는가?

  
[510 / 805] 쪽

[답] 가전연자(迦栴延子)7)의 아비담에서는 “일체는 선이다”라고 말하지만,

다른 아비담에는 말하기를 “불살생계는 선이기도 하고 혹은 무기이기도 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불살생계가 항상 선하다면

이 계를 지니는 사람은 응당 도를 얻은 사람처럼 항상 악도에 떨어지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간혹 무기일 수도 있는 것이다.

무기에는 과보가 없는 까닭에 하늘이나 인간에 태어나지 않는다.

 

 

[문] 계가 무기이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면,

달리 악심이 일어나는 까닭에 지옥에 떨어지는 것인가?

 

[답] 불살생은 한량없는 선법을 얻는다.

작(作)ㆍ무작(無作)의 복이란 항상 밤낮으로 생겨나기 때문이다.

 

만일 조그마한 죄를 지으면 한계와 분량이 있게 된다.

왜냐하면 한량 있는 쪽을 따르고 한량없는 쪽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불살생계에는 간혹 무기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어떤 사람은 스승에게서 계를 받지 않고 단지 마음속으로

“나는 오늘부터 다시는 살생치 않겠다”고 서원하는데, 이와 같이 살생치 않음은 간혹 무기가 된다.

 

 

[문] 이 불살생계는 어떤 계(界)에 속하는가?

 

[답] 가전연자의 아비담에서는 말하기를 “모든 수계율의는 모두 욕계에 결부된다” 했으나

다른 아비담에서는 말하기를 “혹은 욕계에 결부되기도 하고 혹은 결부되지 않기도 한다” 했다.

 

실제를 말한다면 세 종류가 있으니,

혹은 욕계에 결부되는 것과 혹은 색계에 결부되는 것과 혹은 무루이다.

 

살생의 법은 비록 욕계의 것이기는 하나 불살생은 살생을 따라서 욕계에 속하며,

단지 색계의 불살생과 무루의 불살생은 멀리서 미리 막는 까닭에 곧 참된 불살생계가 된다.

 

또한 어떤 사람이 계를 받지 않고도 태어나면서부터 살생을 좋아하지 않아서

혹은 선하기도 하고 혹은 무기이기도 하다면 이를 무기라 한다.

 

이 불살생의 법은 마음도 아니고 마음에 속하는 법[心數法]도 아니며 마음과 서로 응하는 법도 아니다.

  
  
  
7) 범어로는 Katyāyana.
[511 / 805] 쪽
혹은 마음과 함께 생겨나기도 하고 혹은 마음과 함께 생겨나지 않기도 한다.

 

가전연자의 아비담에 말하기를 “불살생은 몸과 입의 업이니, 색을 짓기도 하고 혹은 색을 짓지 않기도 한다.8) 혹은 마음을 따라 행하기도 하고, 혹 마음을 따라 행하지 않기도 하며[단주에 말하기를 ‘마음을 따르는 계는 정공계(定共戒)요 마음을 따르지 않는 계는 뜻의 다섯 가지 계’라 하였다.], 전생의 업보도 아니다.

 

 

두 가지 수행을 닦아야 되고, 두 가지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단주에 말하기를 ‘두 가지 깨달음이란 몸의 깨달음과 지혜의 깨달음’이라 했다.]

 

사유단(思惟斷)이란 일체의 욕계의 마지막에 견해를 단절할 때 끊어지는 것이다.

 

범부나 성인이 얻는 바는 색법(色法)이니, 볼 수 있는 법이거나 혹은 볼 수 없는 법이거나 혹은 대할 수 있는 법이거나 혹은 대할 수 없는 법이거나 혹은 보답이 있는 법․과보가 있는 법․유루의 법․유위의 법․위있는 법이어서[단주에 말하기를 ‘극(極)이 아니므로 위가 있다’고 하였다.] 서로 응하는 인이 아니다.

 

이와 같이 분별할 수 있는 것을 불살생계라 한다.

 

 

 

출처 : 출리심 보리심 공
글쓴이 : - 해탈 -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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