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물(一物)
지수화풍 네 가지 요소로 된 이 육신은 법을 설하거나 법을 들을 줄 모른다. 비장, 위장, 간, 쓸개가 법을 설하거나 법을 들을 줄 모른다. 허공도 법을 설하거나 법을 들을 줄 모른다.
다만 목전에 분명한, 형상 없이 홀로 밝은 이것이 법을 설하고 법을 들을 줄 안다.
四大色身不解說法聽法 脾胃肝膽不解說法聽法 虛空不解說法聽法
사대색신불해설법청법 비위간담불해설법청법 허공불해설법청법
目前歷歷底 勿一箇形段孤明 是這箇解說法聽法
목전역력저 물일개형단고명 시저개해설법청법
- 임제록
임제 스님의 이 말씀은 49재 법문을 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다. 사람의 육신 이외에 또 다른 한 물건의 존재를 밝힌 말씀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고 나서 한줌의 재로 돌아가고 나면, 떠나는 사람이나 보내는 사람이나 허망하고 슬프기 이를 데 없다. 우리들의 일생이 이것뿐이란 말인가? 진정한 생명의 실체는 무엇인가? 이것으로 끝인가? 아니면 또 다른 생명의 실상이 있어서 영원히 지속하는가? 참으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법문의 내용처럼 사람의 진실 생명은 육신이 아닌 또 다른 실체가 있다. 꼭 있다는 표현에는 물론 모순이 있지만, 그것이 보고 듣고 말하고 꼬집으면 아플 줄 알고 부르면 답할 줄 안다. 잠을 잘 때도 꿈을 꿀 줄도 안다. 그래서 살아있을 때는 육신을 의지하지만 죽으면 또 다른 생을 위해서 새로운 육신을 준비해야 한다. 인연을 따라서 그 준비를 할 줄 아는 존재가 바로 이 한 물건이다. 이 한 물건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인식을 바르게 깨우쳐 주는 일이 천도재 의식이다.
불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이 이 한 물건에 대한 깨달음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우리들의 진실 생명일 뿐 아니라 불교의 생명이기도 하다. 이 존재의 위대함은 무어라고 필설로 다 표현할 수 없다. 팔만장경도 다 설명하지 못한 것이며, 바닷물을 다 갈아서 표현하더라도 부족한 것이 이 존재에 대한 문제다. 많이 듣고 많이 읽어 이해하고, 깊이 사유하면서 느끼고 깨달을 뿐이다.
출처 : 무비 스님이 가려뽑은 명구 100선 ② [소를 타고 소를 찾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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