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범스님

육조단경 강의록 - 종범스님

수선님 2017. 12. 24. 12:58

종범스님 육조단경 강의노트

 

육조단경을 비판하는 사람도 많았고 중국 선전에서 가장 문제가 많았던 책이 육조단경과 보림전이었다.당말 5대 때는 육조단경과 보림전을 불태우기도 했다, 대각국사는 잘 한 일이라고 칭찬하기도 했다.인도불교를 한문화 하는 것을 청산하고 중국 불교를 새로이 세움, 선종의 전통은 북종선인데 인도식 전통선을 공격함, 혜능이전에는 능가경도 많이 봤다, 혜능이전은 천태종같이 인도적 전통유지하는 선이고 혜능이후는 중국전통을 수립하는 선이라서 새로운 내용이 많이 나온다, 사실보다는 드라마로 봐야 한다, 방아만 찍었는데 마음과 마음이 통했다, 13종 등 많은 종파가 생기고 중국불교 동아시아 새로운 불교로 출발하는 경전이다.혜능의 전기가 여러종류 있다, 어떤게 혜능의 설법인지도 알 수 없다.누가 말했던지 여러사람이 남종선에 사상을 성립시켜나갔다, 이게 전부 첨부되서 체계화 되었다. 여러 종류 단경이 있는데 덕이본과 신수대장경의 종보본이 제일 나중에 성립됐다. 덕이스님 덕이본 : 1290신수대장경에 수록된 종보가 기록 종보본 : 1291년에 간행, 가장 내용이 충실함.신수대장경

 

다자탑 - 삼처전심에서 분좌, 영산회상에서 꽃을 든다, 남종선을 확립하면서 교외별전을 말함, 불이 불과 합해지는 것과 같고 마음과 마음이 하나되는 것이다. 물에 달빛이 비치면 달이 물에 들어간다, 월인천강, 저쪽 마음에 확 비친다, 물속에 달이 들어가는데 달이 떨어져서 들어가는게 아니라 제자리에서 들어간다. 전함이 없이 전한다, 하늘에 달이 있으면 물에 확 들어간다, 월인천강, 이심전심이다. 直指人心 見性成佛 직지인심 견성성불 - 바로 마음을 가리켜 본성을 보고 성불케한다 : 달마 남종선의 핵심 방법, 불립문자, 교외별전, 말이 필요한게 아니라 그대로 보이고 나타냄, 삼매로 골수를 얻음. 의발을 받음 - 생활불교, 방아찧고 밭메고 - 이게 선이다, 중국식 생활불교를 말함, 부용거사 - 돌을 짊어지고 방아찧음, 질부 방아용혜능은 개인으로 보지 말고 문화가 바뀌는 상징체로 보아야 한다. 단경도 혜능의 법어로 보기보다는 여러사람의 문화다. 남쪽에서 십여년 은둔, 신수의 북종선 전성기였기에 은둔이라 표현, 하택 신회가 혜능을 앞세워 남돈을 주장함, 수당대에 교학과 교리가 발달해서 반작용의 시작.중국 화엄종까지가 교종의 최 전성기였다, 그 이후 남종선이 등장. 인간은 빠른 것 쉬운것을 좋아함, 천태지관선이 체계적이지만 안함, 빠른 것 쉬운것은 누구나 좋아함, 남종선은 돈, 금방 깨닫는다, 천태지관 화엄관법도 모두 수행법은 남종선에 밀림, 달마선의 약점은 내힘으로 하는 것이다, 자기 마음을 열어야 한다, 사람따라 내힘으로 하기 싫다 - 염불과 진언, 부처님의 가피로 바로 성불한다, 밀교 염불정토는 타력적이라서 계속되어 내려옴, 전부 쉽고 빠르다, 임종시에 극락가고, 참선 염불 진언이 대표적, 천수경도 선 염불 진언이 다 등장함, 이성계=이단인종법사 - 열반경 강의선종에 율사는 없다, 계는 받아야하구... 율사를 모셔와야 함, 율종식 의식은 하되 계율종의 사상과는 달라서 통과 의례만 수용하고 사상은 수용하지는 않음. 교종과 선종의 계인식이 다름, 曹溪 조계스님 = 상인단경 게송의 운이 다 맞고 쉽게 쓴 것 같지만 많은 경전과 철학이 녹아 있다.목우자 지눌 1207년 보조스님이 육조단경보고 발문을 씀, 고려본좋은책 - 선본이다. 책 다쓰고 후서 - (짐승이름, 두발짝 세발짝 가서 뒤돌아봄, 뒤엣말)

 

육조단경이 많았다, 종보는 여러 가지를 종합하고 보충해서 만들고 덕이는 고본을 보고 만들었다.수행은 돈법 일상법을 이야기함, 방법은 평범하고 최고의 결과를 빨리 이룬다면 다 좋아한다. 더딘것 힘든것 결과가 시원찮은거 싫어한다. 육조단경은 달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게으른 사람들 도망가기 좋게 만들었다, 단경은 동아시아 불교의 폭탄과 같은 것이다, 육조단경은 수행체계의 획기적 방법을 제시한다, 그 동안은 닦는 것으로 알았는데 나쁜걸 만들지 않으면 된다 = 불사선 불사악, 만들어서 되는게 아니고 안해서 되는 것이다, 후에 휴흘(쉰다)하면 된다, 망상을 쉬고 안 일으키면 바로 된다 = 남종선의 방법인데 간단해 보이나 결코 간단한게 아니다, 계속 망상이 일어나면 내버려두면 된다, 그림자가 따라 오는 것 같으면 빨리 도망가면 더 빨리 따라온다, 내버려두면 된다. 가마솥에 불때서 김 올라오면 김을 안나오게 하려고 솥뚜껑 닫으면 안되고 밑에 나무를 뺀다. 몇백년 인도에서 해온것으로는 안되겠다, 천태관법 화엄지관으로 안되겠다 해서 나온것이 남종선이고 이로서 천하 통일됐다, 보조스님이 육조단경 좋아한 것은 이유가 있다. 망상을 안 일으키는 것으로 도를 닦는다,

 

망상을 없애는게 때때로 닦아 내는 것이고 마음에 그른 것이 없는게 계다.육조단경은 문화사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망상을 계속 일으키는 사람은 어떻해야 하는지가 없다, 망상을 안 일으키면 부처란 것은 누구나 아는데 일으키지 말라해도 일어나는 것은 어떻하나?? 계속 일어나면 속수무책이다, 그게 문제인데 그래서 염불 진언이 나온것이다, 보조스님처럼 아 이러면 되겠다 그러면 바로 부처된다, 보조스님 결정심을 가져라, 그게 돈오다, 망상일으키지 않으면 바로 부처구나 결정적 믿음이 돈도다, 이생에 성불하는 것이지 내생에 성불하는 것이 아니다.

 

2-1육조대사 법보단경육조대사 638년생, : 살아 있을 때 부르던 이름을 휘라고 한다. 생명사휘, 휘는 피한다,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을 말한다, 이름을 부르기 미안하니깐 자를 짓고 호를 지었다, 명과 자보다는 호를 주로부름(호는 그분의 덕을 나타냄)여명 : 새벽녘, 어둠과 밝음이 혼재한 시간.예전엔 문화가 폐쇄적이어서 계승이 참 중요했는데 그래서 학풍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요즘은 개방사회여서 학풍을 초월할 수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 탄생일 2 8일 깜깜어두운 세상에 첫새벽 여명을 연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처음 불교 여신분은 석가모니부처님이고 대승불교를 집대성한 분은 용수보살이고 선불교를 집대성, 그러므로 석가=용수=혜능이라는 의미가 깔려있다. 태어난 시간도 자시 - 어둡지만 새벽의 시작이다.부모 우유는 먹지 않았다 - 세상에 부모 인연은 지었지만 부모에 의지하지 않았다는 의미30넘으면 문화가 잘 이입이 안된다. 30대까지 익힌 습이 좀처럼 잘 안버려진다. 30넘어 출가하면 장애가 많다. 늦깍기 첫상좌가 최대의 욕이였다, 원래 인가는 유교용어로 제자의 재능을 인정할 때 썼다, =도장 찍어서 인정하다. =재능을 인정661년 법상종이 한창 꽃피고 화엄종이 완성된 시기였다. 혜능의 이야기는 달마 남종선이 이야기하는 것을 봐야 한다. 불교에서 성립사는 신비적인 요소가 추가되어서 완성된다. 문제는 유통사인데 유통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킴, 학자는 성립사에 수행자는 유통사에 관심많다. 자꾸만 성립사로만 파헤치면 없다. 학문과 수도의 차이점에서 다 스스로 선택한다, 팔자소관이고 전생인연이다, 남쪽으로 내려 갔는데 남쪽은 서민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일단 인가를 받고 왔다, 북쪽에서 인정해줬다, 도도 남에서(금강경소리에) 깨치고 활동도 남에서 했는데, 받은게 없으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게 인가다. 16년 은둔했나? 천하가 북종선시대였다, 봄이 왔어도 추위는 여전하다, 혜능도 16년을 기다렸는데... 여러 가지 상징성이 있다, 676, 의상스님이 중국에서 돌아와 영주 부석사 지을때다, 자장스님 646676년은 우리나라에 화엄이 일어났을 때이다. 선도 불교다 통과의례를 다 치른다, 머리 깍고 계 받았다. 깨닫는 것은 처사 신분이라도 되지만 교화는 처사신분으로 안된다, 육조도 처사신분으로 안했는데 왠만한 사람들은 처사신분으로는 교화가 안된다.

 

선종에서 받는 계는 절차고 교종에서 받는 계는 신앙이다. 갈마 = , 교수 - 가르친다. 육신보살 - 부모에게 물려받은 그 몸 그대로 보살이 된다는 의미.

 

육조단경 2-2

 

내가 도가 얼마나 높은가? 내가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나 안받나를 척도로!!  구하고 잘보이려고 하고 스트레스는 세속적 마음으로 생기는 것이다.절로도강도 - 달마가 갈대 한잎타고 바다 건너 온다. 석가모니 머리에 새가 집을 짓고 알을 낳았다. 달마가 억지로 온게 아니라 저절로 함이 없이 왔다.

 

선에서는 심인, 교에서는 법인.참설, - 결정한다, 그림을 보고 미래를 결정한다 - 도참, 태극문양, 거북이 등, 간단한 도안만 봐도 미래를 예측. 선종안에 도참설이 많이 등장, 선사들의 권위를 높이고 초인화 신격화 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언=도참인도에서 불교 전래될때 경전 불상 인도스님 - 현상삼보, 남종선은 경전 불상 스님보다 마음법을 이야기함. 남종선에는 조사가 부처님 역할, 어록이 경전역할, 선가에는 어록이 아주 중요하다, 단경도 어록이다, 남종에서는 경을 참고용으로 보지 의지하지는 않는다. 단전 - 마음법 하나만 전한다. 신라 중대는 불신 상주설 : 좋고 나쁜 땅이 없다, 신라 하대 : 풍수지리설 수용, 절과 탑으로 땅을 돕는다, 같은 땅도 풍수지리로 본다. 檀越 - 시주, 보시하는 주인

 

뭐가 이익이고 뭐가 손해인지 알수 없고 의미가 없는데 청정심으로 임하면 이익이고 그렇지 않으면 손해다.

 

3-1 - 토호세력, 민족세력, 이중적성격, 악할수도 선할수도 있고...

 

 

3-2육조단경은 남종선의 의미를 잘 말해줌육조대사 알려진것은 신회에 의해 알려짐, 남종선은 신회에 의해 수립육조단경은 글이 절대 서툰글이 아니다. 조동종은 견성의 주장을 거부함, 육조단경 안봄.우리나라는 보조스님이 육조단경을 높이 받들었다.

 

 

 

 

4-1六祖法寶壇經 육조단경이 제자들간에 서로 베껴서 전해서 여러 종류가 있는데 고균비구 덕이찬, 덕이본 1290, 여러종류의 육조단경을 한데 모아서, 1년후 1291년에 종보스님이 간행 종보본우리나라엔 덕이본이 유통

 

선에서는 전의傳衣 주장자 불자 선에서 전하는 법물 선종에서는 실생활에 필요한 옷이나 그릇 생활도구 참선에 필요한 선구를 마음의 표시로 준다, 이론이나 격식을 초월해서 인간의 생활속으로 돌아가는 의미 유명한 책 다 경이라고 붙였다, 노장이나 공맹과 상통, 논 소 기는 불교식인데 경이라고 했다, 단경이라고 한 것은 불교식이 아니고 유명한 사람의 말을 제자백가에서 경이라고 했다. 조사도 장자남하에서 다 조사라고 했다, 불교적인 관점뿐이 아니라 중국화된 관점을 봐야한다, 씨앗은 불교인데 자라기는 중국에서 자랐다. 중국선종은 선정종이 아니라 반야종이다. 보리 - 처음엔 도, 나중엔 각, 다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당나라때의 선을 봐야 쉬운데 송대이후는 엉켜서 헤깔린다. 게송을 많이 붙이고 해석을 붙여서 수시 평창을 붙여서 벽암록을 불태우기도...본래청정이 전재되기에 돈오가 돈수다. 돈오돈수인데 돈오점수는 교가의 수행풍토를 끌어들여서 법에 맞춘게 아니고 중생의 습관에 맞춘 것이다. 법으로보면 돈오돈수고 사람으로보면 돈오점수다. 산다는게 왜 좋나? 이유가 없다, 죽는게 왜 싫냐? 이유가 없다. 菩提自性 本來淸淨 但用此心直了成佛.도무소주 이생기심, 응무소주 이생기심, 안이비설신의가 색성향미촉법을 상대할 때 집착하지 않는 것이 응무소주다, 미워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것이 응무소주다. 애증심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무주라고한다. 그런 상태에서 마음을 내기 때문에 청정심을 단용차심이다. 반야로 돌아가는게 중요하지 좌선이 중요한게 아니다. 선정해탈을 논하지 않는다. 듣는게 문제가 아니고 집착이 문제다, 반야바라밀을 실천에 옮기는 선종이 있고 그 이전에는 천친론 무착론 단계별로 설명, 송나라 오가해 야부송 신비화해서 설명, 송대의 선풍은 선이 신비적이고 어렵다. 당대엔 선이 이야기고 생활이다. 선에 자꾸 권위가 붙고 변형되어서 그렇다. 금강경도 마음으로 바로 실천하면 선이 된다.

 

 

4-2欲求何物 : 惟求作佛 不求餘物人 雖有南北 佛性 本無南北 獠 身 與和尙 不同 佛性 有何差別선은 본래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본래인은 격외인이다, - 이름이 많다, 이름이 전부 격이다, 이름이 다 허망한 것이다. 모든 이름 옷을 벗어나는게 격외다. 어떤 것에도 의지함이 없는 곳으로 돌아가는게 격외다. 혜능 - 부용거사, 달마 - 벽관호승, - 막는 것이다, 모든 허망된 생각을 막음

 

古德云譬如輪刀上陣不問如何若何此喩得底人見機而作不在言句也)

 

5-1신해는 남종선의 정통성을 세우려고 노력을 많이 하고 공헌을 했지만 결국 선에서 서자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시비를 하면 결국 서자가 된다. 신해는 시비꾼이었다. 남종선의 폭력배다, 변방장군이다. 면면히 내려오는 선사상은 옳지만 정통성 시비는 옳지 않다.

 

육조단경은 부처에게서는 돌아왔는데 조사에 매달린다, 조사에서도 벗어나야 임제록같은 남종선이 된다. 혈맥 - 법맥을 혈맥화한다. 원래 선은 이심전심인데 혈맥이 아니다, 스스로 망상을 일으키지 않으면 바로 성불인데... 본래 선지와 법맥 찾는 것은 세속화된 것이지 아무 상관없다. 선이 약해지니 교에 의지하고 문장 게송에 의지하고... 선이 약해져서 그렇다. 선의 종지를 바로 알면 선 불선을 척보면 눈에 보인다, 선은 본래 청정심에서 털끝만큼이라도 벗어나면 염라대왕한테 목 잡힌 것이다. 아무리 정통성을 주장해도 신수를 형편없이 그린 것은 신수랑 상관없이 글쓰는 사람 마음이다. 이치를 가지고 글을 안보고 글만 보면 글따라 주장하면 파리똥학인이다. 파리가 똥 놓아놓으면 점찍어 놓은 것같고 ‘라’라고 읽는다. 문헌을 선별하고 구분하는 안목을 갖추는게 중요하다.

 

사물을 보되 좋고 싫고 생각내는게 나쁜 것인데, 애증없이 보는 것이 여여다. 남종선은 여여성불이지 수성성불이 아니다, 무주라고도 하고..

 

5-2여여는 애증이 없이 보고 듣고.. 평상심이라고 표현, 평상심은 뭐가 수행이고 성불이고 도냐? 배고프면 밥먹고 피곤하면 잠잔다. 일반인은 천만가지 걱정이 있어서 순전히 집착 때문에 배고파도 못 먹는다, 여여가 못되서... 여여는 애증심이 끊어지고 갈등과 고뇌가 완전히 극복된 상태에서 본래의 모습대로 자족한 삶이 여여다, 삶의 목표? 적극적 소극적이 있는데, 여여는 적극과 소극을 다 극복, 꿈과 희망을 가지고 노력, 더 해봐야 뭐하나, 둘다 극복한 것이다. 身是菩提樹 신시보리수 心如明鏡臺 심여명경대 時時勤拂拭 시시근불식 勿使惹塵埃 물사야진애 : 모든 불교에 다 통한다, 시시근불식 - 이게 핵심이다, 달마선종은 본래무일물이다.천하의 종교와 천하의 윤리가 시시근불식인데 너무 흔해서 안 통한다. 본래무일물은 처음 먹어보는 술과 같고 시시근불식은 늘 먹는 맛없는 밥과 같다. 남종선도 2,300년후 타락해서 교를 받아들이고 문장를 받아들이고 족보를 따지고 세속화 되어간다. 닦아서 이루려면 영원히 못 이룬다, 이루려는 마음이 없어져야 이룬다, 나쁜 것 뿐만 아니라 좋은 것도 없어져야한다. 남종선은 불교를 노장 무위식으로 실천, 중국화 완성단계에 들어감선공덕에 집착하면 황금감옥에 갖힌 것이다, 금쇄임제처럼 설움 받는 것도 귀염받는 것도 벗어나야한다. 아귀 - 자꾸 받을 생각만하면 목구멍은 작고 배는 크고... 남종선 : 無上菩提 須得言下 識自本心 見自本性 不生不滅 於一切時中 念念自見萬法無滯 一眞 一切眞 萬境 自如如 如如之心 卽是眞實여여지심이 남종선이다, 닦아서 이루는게 아니라 여여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여여성불은 악뿐만 아니라 선도 초월해야한다, 그래서 살불살조다.

 

 

6-1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 보리본무수 명경역비대 본래무일물 하처야진애 본래 무일물이 핵심, 본래 청정 여여, 선도 악도 없고 부처도 중생도 없다. 달마남종 격외선을 잘 표현한 언구가 본래무일물이고 북종선을 남종선의 입장에서 표현한 것이 시시근불식이다. 시시근불식은 점에 해당, 본래무일물은 돈에 해당불립문자, 이로움보다 해로움이 많았다. 본래무일물 - 육조의 이야기가 아니고 후대의 이야기다. 돈황본게송 : 본래무일물이란 말이 없다. 보리본무수 명경역비대 불성상청정 하처유진애심시보리수 신위명경대 명경본청정 하처염진애 돈황본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 790본래무일물 불성상청정 : 본래무일물 - 직지인심 교외별전의 선지가 성숙해가는 과정에 등장불성상청정 - 처음엔 선지를 금강경에 의해 나타내고 달마이후에도 능가경을 통해 마음의 실체를, 금강 열반 유마 기신론에 계속 의지해서 달마선지를 나타낸 시기가 700년대 말까지는 경전에 의해 선지를 드러냄. 보림전이 나타나면서 선문법통이 새롭게 나타남. 육조단경 고본에 여러 10대 제자가 나옴, 선은 불입문자 교외별전이라고 뒤에 나오지만 단경을 전해야한다 전해야 육조의 제자라며 단경의 권위를 강조, 금강 법화의 공덕을 찬양하는 것과 비슷. 800년대엔 남악회향선사 마조도일, 백장이 새롭게 등장, 단경을 되도록 인용안하고 새롭게 정립된 마조중심 법통, 중국 선종의 종주는 실제로 마조다. 보림전엔 마조가 위대하다고 강조한 문헌이다. 그래서 항상 육조단경과 보림전이 문제가 된다. 논란의 대상인데 700년대엔 불성상청정으로 표현하고 그후에 본래무일물 격외선지가 통용.상식 - 듣는대로 생각하는 것, 지식 학식(연구해서 아는 것)

 

수도와 노동, 노동을 수도로 승화, 수도로서 노동을 한다. 집에서 일한 성격 황매산에서 일한 성격이 다르다, 위법망구다.

 

응무소주이생기심은 덕이본에만 나옴, 다른육조단경엔 아무데도 안나옴단경의 핵심이 무주인데 근거가, 보고 듣되 애증심을 안일으키는게 무주다. 육근이 견문각지하지만 본래자성은 견문각지에 물들지 않는다. 인도선 천대지관선 집중선을 확 바꾼게 남종선이다, 남종선은 좌선이 아니고 반야바라밀선이다.

 

6-2반야바라밀 - 환히 봐도 애증심을 안 일으키는 것이다. 보이든 안보이든 가만 내버려두면 된다.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고 그냥 내버려두면 무주다. 무주의 근거가 응무소주이생기심이다. 言下 大悟一切萬法 不離自性 : 일체만물이 자성을 떠나지 않았다, 천지가 마음이 만든 것이다. 천지도 내가 만들어서 천지다. 일체만법이 자기 생각에서 떠나지 않았다.

 

 

7-15조 홍인의 법문을 동산법문소림달마, 황매 홍인, 조계 혜능선종에서 참시(예언, 결정해서 하는 말)풍수지리는 예부터 중국에 있었는데 선종은 당대에 일어나서 정통성을 세워야하는데 참시를 적용시킴, 150년전에 혜능이 올 것을 예언... 풍수지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임, 나중에 교외별전원 불교교리는 자업자득 인과응보迷時 師度 悟了 自度.  自性自度 : 멋진 표현이다.정신세계가 높아지면 스스로 알아서 한다. 남종선 선법 - 무념 무주, 물든다 = 치우친다, 취사, 불취불사가 무념이다, 치우치는 생각이 없다. 취사심 때문에 원수가 되고...무주 - 집착, 구하는 마음이 없다. 구하면 애증이 생긴다, 좋아하고 싫어하고...좋아하고 싫어함이 없어지면 평상심으로 돌아간다. 도가 높아지면 평상이 된다. 평상심이 되면 자재가 되고 매달리는게 아니라 스스로 존재한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자재한다는 것이다. 생사에 자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애증을 초월하고 평상심이다.

 

 

7-2법은 혜명의 힘으로도 안되고 신수의 명성으로도 안된다. 문제는 평상자재가 되는 것인데 방법이 없다, 자성자도 자기 마음으로 스스로 되는게 도다. 미혹한 길에 빠지지 말아야하고 스승을 잘 만나야한다. 도인이 되려면 역경을 많이 이겨내야한다. 良久 - 조금 있다가, 이윽고不思善 不思惡. = 무념무주 취사 증애를 갖지 않는다인도불교는 출가하여 도를 닦는다, 대승도 원을 세워 공덕을 닦는다, 6세기 전쟁나면서 염불수행이 강조됨, 대승을 근본으로 삼되 수행을 노장으로 함, 무위 소요, 조작하지 않고 노니는 것을 선에 도입, 환경이 좋아서 그렇다.티벳은 환경이 안 좋아서 밀교가 수용되고 선이 배격됨전시엔 말세사상으로 염불수행이 중시되고, 불교는 시절인연에 따라 일어난다. 나이가 들수록 선에 마음이 젖어드는게 좋다. 불사선 불사악은 대승도 소승도 아니고 불교를 노장식으로 실천하는 동아시아의 특이한 선법이다. 좋은 것은 다 따왔다. 일반인은 조사선법에 접근하기 어렵고 스님은 조사선법으로 들어가야한다. 能 曰指授卽無. 唯論見性. 不論禪定解脫.자성으로 돌아가는 것이니까 가르쳐준게 없다, 견성이 돈오다, 자성이 부처님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게 돈오다. 남종선은 돈오선이지 수정선이 아니다. 반야종이지 수선종이 아니다.남종선은 불이법이다, 생사속에서 바로 돈오하면 성불이지 생사를 떠나서 열반을 논하지 않는다. 불이지법은 열반경의 불성자체가 둘이 아니다. 선사가 계 안받은 선사가 없다. 격을 갖추어야한다. 중국 선종은 계는 소승계를 받는다.

 

 

8-1견성 - 열반경에서 명견불성, 대성기신론에서 즉견심성, 견성이란 말이 새로운 말이 아니다. 불성은 불이지법이다, 둘이 아닌 법이다, 선정 해탈은 이법이다. 선정 산란, 해탈 번뇌.견성 - 명견불성인데 불성은 무이지법 無二之性 卽是佛性예전엔 영험담이 굉장히 발달했었는데 1940년대 이후 사라지고 있다. 기도해서 어떤 영험... 영험담을 많이 기억하고 있어야 설법할 자격이 있었다. 조선시대 일제시대까지 대중이 불교 접할 수 있는 것이 영험담이었다. 교리설명이 설법인가? 기도를 많이 해서 체험담 - 영험담이다. 영험도 없고 체험도 없으면 교리 역사 학술적 설법? 교리중심 체험중심이 차이가 있다. 같은 말이라도 체험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떡에다가 꿀을 발라주는 것이다, 오늘날 문제점이 책은 많이 늘었는데... 꿀맛을 모른다는 것이다. 혜능 남종선은 반야바라밀을 생활속에서 구현한 것이다. 무주 무념 - 반야바라밀선이다. 마조 - 평상심으로 돌아가는 선. 평상심 - 애증취사 생사심 속박버리고 해탈 구하는 상대적인 마음은 전부 평상심이 아니다. 차별 상대 모순의 마음 없는 무념 무주선도 오래되면 일러라... 선은 심행이지 입으로 외우는 것이 아니다.

 

 

8-2혜능선의 특징이 반야바라밀선이고 정좌선을 배격했다. 신수를 배격하는 것도 신수가 정좌를 수용하니까... 혜능은 정좌는 아니다고 배격.성품을 본 사람은 악도 미워하지 않고 선도 집착하지 않는다. 다 인연에 의해 나온 것이기에... 정신세계가 높을수록 잘 못한 것도 봐준다. 지혜가 높은 사람은 대범하게 보기에 치우치지 않는다. 말에 집착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본다는 것이고 마음으로 행한다는 것은 자신을 본다는 것이다. 迷人 口說. 智者 心行 멋진 말이다삼매에 용이 있다, 그게 반야바라밀이다. 반야- 밝은지혜, 바라밀=용 건너간다. 去來自由 心體無滯, 百無所思가 아니다. 반야 : 一切處所一切時中 念念不愚 常行智慧 卽是般若行지혜를 행하면 그게 바로 반야다 - 혜능남종선금강경 육조해. 혜능 남종선은 경에 근거하면서 현실에서 선을 구현. 금강경을 현실실천으로 해석문장을 희하지도 교리로 설명하지도 않고 경을 수용하되 현실적으로 실천하는 것으로 개척

 

9-1반야보리를 그대로 응용하고 활용하면 그대로 성불이다. 반야가 응용되면 바라밀이다. 반야 - 청정심뭘 위해 괴로워하는가? 견성성불이지 멱불성불(부처를 찾아서)이 아니다. 수명 - 공덕을 닦아서 수명을 얻었다, 자득이다. 망념만 안 일으키면 즉시부처지 닦아서 찾는게 아니다. 번뇌- 깨끗한 물건에 먼지가 낀것과 같고 건강한 사람이 피로를 느끼는것과 같아서 번뇌진로煩惱塵勞수다라 수트라 =

 

9-2不悟 卽佛 是衆生. 一念悟時 衆生 是佛.구도심이 간절하면 선지식이 보인다, 구도심이 약하면 선지식이 안보인다. 위대한 스승은 다 자기자신을 보게한다. 무념 = 반야바라밀 若見一切法 心不染著 是爲無念허망한 생각이 없는게 도인이고 해탈이다.

 

 

10-1선에서는 청정심을 드러내면 번뇌는 저절로 없어진다, 어둠의 실체가 없다. 밝은 것은 태양의 실체가 있지만..삼장 - 혹업고 잘못 생각 미혹하여 업을 지어 고통 받는 것지혜로 바른생각을 일으키면 삼장은 저절로 없어진다. 바르다 - 보리자성이 본래청정, 본래청정으로 돌아간다.

 

자재도 - 이탈도, 젊을 때 인생무상을 알아채고 대 결단을 내려서 출가했다. 欲得見眞道  行正卽是道. 若眞修道人  不見世間過. 욕득견진도  행정즉시도. 약진수도인  불견세간과.

 

수도정신, 시민정신 : 정의의 편에서는 질타를 해야하고 사랑의 편에서는 감싸야하고... 이론으로는 항상 문제다, 안된다, 지혜로운 행위로 이루어질 문제다. 他罪我不罪  我非自有過.인간이 추구하는 것이 가만히 보면 구모토각 거북이 털 토끼 뿔이다, 이도별멱도 거의 없는 것을 추구하고 찾고 있다. 평화니 영원이니...  正見名出世  邪見是世間.

 

 

10-2정법 - 자성청정법법신 - 자성법, 공덕법(공덕자체가 법이다), 자성신 공덕신보신 - 지혜신, 화신 - 변화신

 

지혜는 닦아서 나타나기에 높은 사람 낮은사람이 있다. 지혜는 보답으로 얻어진 것이다. 공덕 : 수성 수신 자성을 닦고 몸을 닦는 것이다. 自修性 是功. 自修身 是德자성청정심을 늘 드러내는 것은 성을 닦는 것이고 일체에 공경하는 예법을 행하면 몸을 닦는 것이다. 염불은 타력 선은 자력, 선의 맹점은 닦지도 않고 부처라한다. 東方人. 但心淨卽無罪 雖西方人 心不淨 亦有愆 동방인. 단심정 즉무죄 수서방인 심부정 역유건

 

 

11-1先除十惡 行十萬. 後除八邪 乃過八千 : 십만팔천리는 십악팔사를 제거하는 것이다. 청정한 마음이 되면 정토는 저절로 나타난다. 自性 迷 卽是衆生. 自性 覺 卽是佛순류문, 반류물

 

11-2자성성불 자성서방, 자성으로 돌아가면 성불이다. 달마선 - 교법에서 마음으로 돌아감, 능가경을 중시

 

황매선풍 - 능가경과 함께 금강경을 추가혜능은 금강경만 이어받음, 북종선은 능가경의 전통을 지킴, 금강경 유마경이 근본으로 밑에 깔려있음.

 

12-1定 慧 一 體      혜능 남종선에서는 정혜가 선후가 없다, 보통은 정에서 혜가 나온다, 남종선은 순서가 필요없이 바로 나타난다, 정혜가 일체다, 움직이는 속에 바로 선정이 있다, 선정주의 주장과 상관없다. 돈법이 가능한게 정혜가 일체다. 일부러 고요한 것을 만드는 것은 돈법도 정혜일체도 아니다, 선정주의를 자꾸 고집 - 마전작경, 벽돌전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려고 한다. 옛날엔 수행과 교학이 하나였는데 요즘은 불교학이 서구의 인문학적 방법이 도입되서 옛날 불교학적 노선과 완전히 달라졌다. 청정한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게 일행삼매다.

 

12-2일체상에 집착하지 않는게 무상이다, 모든 경계에 물들지(집착하지) 않는 것을 무념이라고 한다. 등지는게 무념이 아니다. 百物 不思自迷不見. 又謗佛經無者 無二相. 無諸塵勞之心. 念者 念眞如本性眞如 卽是念之體. 念 卽是眞如之用.생각은 진여의 작용이다, 진여가 염을 일으킨다, 염은 진여의 본성인데 보되 집착하지 않으면 무념이다. 眞如 有性. 所以起念

 

옛날엔 경보다가 성불했는데, 요즘은 까? ? 의심한다. 眞如自性 起念. 六根 雖有見聞覺知 不染萬境  而眞性 常自在 : 보조스님이 이것보고 깨달았다. 진여자성 기념. 육근 수유견문각지 불염만경  이진성 상자재세속에는 말세가 있으나 진성에는 말세가 없다, 만경에 물들지 않는데 무슨 말세가 있나!요즘 논문써서 성불했나?能善分別諸法相. 於第一義 而不動 : 유마경에 있는 말이다. 능선분별제법상. 어제일의 이부동보조선의 구조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보되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남종선이 획기적인 구조다.

 

보조스님 : 출발은 남종선에서 본체를 찾고 화엄경에서 원류를 찾고 통연장자 화엄론에서 들어가는 순서를 찾고 마지막 중생의 분별만상을 떨어내는 것은 대해서장으로 해결했다. 간화선은 목우자선에 비하면 상대가 안된다.

 

13-1 敎授坐禪品    心念不起 名爲坐. 內見自性不動 名爲禪 심념불기 명위좌 내견자성부동 명위선

 

13-2一 戒香. 卽自心中 無非無惡 無嫉妬. 無貪瞋. 無劫害 名戒 즉자심중 무비무악 무질투. 무탐진 무겁해 명계二 定香 卽覩諸善惡境相. 自心不亂 名定香. 즉도제선악경상 자심불난 명정향三 慧香. 自心無礙 常以知慧 觀照自性 不造諸惡. 雖修衆善 心不執着. 敬上念下 矜恤孤貧 名慧香자심무애 상이지혜 관조자성 부조제악. 수수중선 심불집착. 경상념하 긍휼고빈 명혜향반연 - 매달린다. 붙는다不可沈空守寂. 卽須廣學多聞. 識自本心 達諸佛理 和光接物 無我無人. 直至菩提眞性不易 名解脫知見香부가침공수적. 즉수광학다문. 식자본심 달제불리 화광접물 무아무인. 직지보제진성불이 명해탈지견향사업, 도업 - 숫자로 안된다, 질투는 사업적인 생각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칼가는 숫돌 - 칼은 날카로워지는데 숫돌은 닳아서 없어진다, 도인은 그런 것이다. 도업적 현상으로 보면 시기할 수록 좋다. 별볼일 없는게 좋다. 도는 바쁠것이 없다.

 

今己覺悟. 悉皆永斷. 更不復作 是名爲悔   금기각오. 실개영단. 갱불부작 시명위회

 

14-1모든 문제는 미해서 생긴다, 자성을 모르고 세계를 모른다, 자성이 청정한데 모르고 현상이 허망한데 모르고... 미하다. 배운다 - 자성을 보아서 본성대로 실행하는 것이 배우는 것이다. 학습은 언어를 통해서 밖에 볼수 없는데 실천은 반야를 실천하는 것이다. 지혜심을 실천하는 것이 정법을 실행하는 것이고 공부다. 책을 오래보면 생활로 돌아온다. 常行正法 是名眞學불도의 길, 왕도의 길, 왕도의 길은 낮추면 왕같이 안본다, 불도의 길은 낮추어야한다. 왕도는 위엄을 먼저 세워야 어리석은 백성이 꼼짝을 못한다. 구도는 확실히 낮추어야한다. 자성삼보 佛者 覺也. 法者 正也. 僧者 淨也 : 전부 망념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14-2유교를 비판하는 것이 노자다. 선도 노자같이 되어있다. 공맹노장이 공존할 수 없듯이 화엄과 선종이 공존할수 없는데 같이있다. 예경불교를 깨고 자성불교를 내세운다. 內調心性. 外敬他人 是自歸依也 : 멋진 말이다. 안으로 자신을 길들이고 밖으로 타인을 공경하는게 스스로 귀의하는 것이다. 내조심성. 외경타인 시자귀의야비로자나불 = 노사나불, 60권화엄엔 비로자나불이 없고 노사나불로 번역, 80권화엄에서는 비로자나불로 번역, 사실은 노사나불 비로자나불 번역이 다른 것이지 같은 것이다. 보신 - 수행을 해서 지혜를 이룬 것, 화신 - 밖으로 공덕을 나타내는 것, 법신 - 근본자성선종의 일급도인과 교종은 꼴지랑 비교한다, 지위지지 부지위부지지 시위지야라 - 아는것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 모른다고 하는게 아는 것이다. 공부안하는 사람일수록 모른다고 안한다. 전부 모르니까 모른다는 말을 할 수 없다. 공부하는 사람은 아는것 모르는 것 구분한다. 달마 오성론 - 화신 보신 법신불, 화신은 비등시방 수위구제 보신은 단혹행선 설산성도 법신은 무언무설 담연상주. 지혜를 이룬 것은 보신이고 자비실천은 화신이고 본래자기본성은 법신이다라고 봄, 자성 수용 변화

 

 

15-1常自見己過. 不說他人好惡. 是自歸依.수도자는 자기 허물을 먼저보고 다른 사람의 좋고 나쁨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 말하기전에 스스로 실천하는 것을 뜻한다. 말전에 모범적인 것을 보이는 것이 도하는 사람의 본분이다. 시민정신 - 감시 고발 평가인데... 생각, 사량이 화신이다. 譬如一燈 能除千年暗. 一智 能滅萬年愚자성이 뭐냐? 둥글고 밝다. 둥글다는 것은 공간이 없다. 시간도 없다. 시간이 있으면 시작과 종착점이 있는데 공간이 동서남북 있어도 둥근게 아니다. 동서남북 과거현재미래를 초월한 상태, 헤아릴수 없는 것이 둥근 것이다. 우주를 이해하는 틀이 동양에서는 둥글원으로 이해한다. 원각이다, 마음은 마음인데 둥근 것이다, 시공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다. 노자 도덕경은 현묘하다. 확실하게 개념으로 정리할수 없는 것을 묘하다고 한다. 둥글게 표현하는 것과 직선으로 표현하는 것, 태초 종말은 직선적인 관점인데 둥근 것은 원형적인 관점이다, 자기 마음이 시작할때가 시작이고 자기 마음이 그칠때가 종말이지 정해진 시종이 없다. 영혼이니 마음이니 생명이니가 뭐냐? 자성이다 원각이다, 말로 표현하자면 원명이다, 둥글고 항상 밝다. 논을 개간할 때 법문이 둥그런 소식을 아느냐? 평생법문이다. 본성은 항상 둥글고 밝아 둘이 없는데 생각이 선악을 일으킨다. 사량차원이지 본성차원이 아니다. 청정법신 원만보신 천백억화신불이 있는데 선악은 천백억화신불에 속한다, 법신에서 생각을 일으키면 선과악인데 화신불이다. 本性 無二. 無二之性 名爲實性. 於實性中 不染善惡 此名圓滿報身佛견성을 안하니까 선악에 만상에 집착해서 선악에 빠져있다. 선악에 물들지 않는 것은 항상 자성을 보는 것이다, 본다는 것은 지혜=보신, 자성=법신도인되면 보신 화신이 자재하게 된다. 자성을 잃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

 

 

15-2無相頌 : 진실송, 자성송복짓고 죄짓고 이게 중생이다, 아이한테 잘해주려고 시장에서 바가지 씌우고... 도인군상에서 잘한다는게 허망이다, 잘하는 것이 선과 악의 양면이다. 누구한테 특별히 잘한다? 인간을 미워하고 있다. 인정이 농후하면 도심이 줄어든다. 죄의 본성 뿌리가 없어져야한다. 죄와 복을 동시에 떠나야하는데 복 받기 위해서 죄를 짓고...

 

마음속으로 삿된것을 제거하고 정을 행하는게 대승진참회다. 도를 배운다는 것은 항상 자성에서 보는 것이다.

 

삼신관계어자성불 귀의청정법신불, 원만보신불, 천백억화신불법신 보신 화신 : 성 지 행, 본성, 지혜, 성이란게 뭐냐? 원명성이다, 과거미래현재 동서남북도 없고 항상 밝아있다, 밝을 땐 밝고 어두울땐 어두우면 원이 아니다. 늘 밝은 것이다, 있고 없는데가 없이 밝다. 능엄경엔 적조가 함허공이다, 적조(고요하면서 항상 비춘다) 고요하다=원 조=비춘다, 원각, 원명, 신비로울 신 알해 = 신해 신비로운=묘해, 신해 신비롭게 안다, 묘하게 안다. 생사 출생이 없고 과거현재 동서남북이 없이 안다, 직접 보는게 견성이다. 원명을 보면 벙어리가 꿀먹은 것과 같다. : 조견, 항상 비춰서 보는 것이다. : 천백억화신, 사량이 행이고 화신불이다, 심리적 기능이 원명 본성을 그대로 가지고 조견 사량 기능이 있다. 보신불 화신불이다. 중생들은 자기가 꾸며내 놓고 꾸며낸줄 모른다. 자기가 그림 그려놓고 놀래고 기절하고 자기가 인식해놓고 당한다. 그래도 본성은 환하게 밝아있다, 어두운 방에 등불을 밝히는게 견성이다, 원명성을 보라는 것이다. 인간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게 반야도다, 불교는 본성을 조견을 통해 해결하는 반야도다. 유가는 인의예지 삼강오륜을 말하는게 임금은 임금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답고 공자 자신도 규범을 좋아했다. 유가는 규범도다. 노자 장자는 무위도다 쓸데없는 거짓된 것을 안하는 것이고 불교는 반야도다. 깨달음이 전부 도를 통했다, 마음이 열렸다 = 원명성이 회복되서 어둠에서 벗어난 것이다, 중생이 여러 가지 골몰하지만 원명성은 하나도 손상되지 않았다, 계속윤회해도 원명자성은 변함이 없다. 말세도 없고... 스스로 어둠으로 가로막아서 안되는 것이지 하다가 마음을 열면 바로 성불한다. 아무리 중생이 윤회를 하고 해도 원명자성은 변함이 없다.

 

 

밤도 차고 물도 차니 빈배에 달빛만 싣고 돌아온다.

 

영명성각 신령스럽게 밝다 전부 생명 우주의 본체, 법성 법의 본성은 명상, 영명 원명은 기능을 말함. 본성의 마음이 영명성각묘난사 묘하게 어렵다.월타추방 달이 가을 연못에 떨어졌다, 그런데 하늘엔 계수나무 그림자가 선명하다.

 

영명성각묘난사 월타추담계영한 금탁수성개각로 잠사진계하향단 靈明性覺妙難思 月墮秋潭桂影寒 金鐸數聲開覺路暫辭眞界下香壇 신령하게 밝은 깨달음의 성품 신묘하여 생각하기 어려웁고 둥근 달 가을연못에 떨어지니 계수나무 그림자가 차갑구나. 요령 목탁 소리 내어 맑은 신심 전하나니 잠시 참된 세계 하직하사 이 향단에 강림하소서.

 

죽영소계진부동(竹影掃階塵不動)이요월천담저수무흔(月穿潭底水無痕)이라.

 

대나무 그림자가 아무리 섬돌을 쓸어도 먼지가 일지 않고 달이 연못 밑을 꿰뚫어도 물에는 흔적이 남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16-1 參 請 機 緣     기연 - 기회에 해당되는 인연참청 - 참여해서 청했다. 妙義 묘- 동북아 사상경향을 말한다. = 검을 현과 통한다, 현묘 검을현이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니고 해질녘 어슴푸레.. 성인도 소인도 아니고 이렇게 보면 이렇고 저렇게 보면 저렇고... 이게 묘자의 의미다. 지혜에서 터득된 내용이다. 묘는 지혜로 터득되지 말을 통해 해석되는게 아니다. 卽心卽佛 願垂指諭. 師 曰前念不生 卽心. 後念不滅 卽佛. 成一切相 卽心. 離一切相 卽佛즉심즉불 원수지유. 사 왈전념불생 즉심. 후념불멸 즉불. 성일체상 즉심. 이일체상 즉불남종선은 정혜일체, 체용일체가 중요하다.

 

16-2화엄은 유학과 같고 선은 노장과 같다, 학이시습지 불역역호아 배우고 익혀야한다, 노장의 도는 소박이다. 그림 그리는 바탕이 깨끗한게 소다. 물들지 않는 본바탕, - 나무둥치 나무본둥치 그대로가 박이다. 꾸미고 물듬이 없는게 소박이다. 화엄은 공맹풍이고 선은 노장풍이다. 배고프면 밥먹고 피곤하면 잠자고 이게 선이고 도다. 불교에선 망상 노장에서는 허욕 때문에 피곤해도 잠을 못잔다. 배채운다 - : 속을 채운다, 헛된 욕심을 버리고 속(지혜)를 채워라. 이게 도다. 중생들이 하는게 온갖 쓸데없는 것=욕망이다. 욕 때문에 바쁘다. 욕이 사라지면 바쁜 일이 없다. 지혜로 보면 상용인데 욕심이 생기면 조성이다, 지혜로 살면 상용이 도다, 망상이 붙으면 뭘 자꾸 만들려고 한다. 또 나아가 뭘 자꾸 구하고 얻으려고한다. 시도 때도 없이 구한다. 조성을 하게되면 노역인이 되고 걸객인이 된다. 가만히 있으면 뭔가 불안하다. 지금 전부가 이런 삶을 살고 있다. 자재하는게 도다. 심리적으로 전부가 노역 아니면 걸객이다. 그냥 보고 듣고 밥먹고 잠자고... 상용한다, 날때나고 죽을때 죽고...욕이 사람을 짓눌러서 그렇지 지혜로 돌아가면 다른 문제가 없다, 상용이다. 반야바라밀이 지혜의 활용이다.

 

 

 

17-1參 請 機 緣     -근기: 중생의 능력 - 근기가 찾아오면 스승이 근기에 알맞은 방식대로 인연에 맞추어 법을 설한다, 그래서 기연이라고 한다. 경을 보는 틀 - 교의, 교의를 가지고 경을 본다, 법화경은 삼승에서 일승으로 귀의하는 것을 가르쳤다. 선종에서는 심지(마음땅)에서 모든 곡식이 나듯이 경을 교의로 보지않고 마음으로 본다, 전부 심지로 경을 본다, 심지법문, 심지 : 선의 뜻이다 선지선종은 경을 심지로 보지 교의로 보지 않는다. 천태 화엄에서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한게 선인데 초기에 선사들은 화엄 천태의 내용을 환히 알았던 사람이다, 원리를 마음에 두고 사색적으로 하는 것 - 의리선法卽甚達. 汝心不達 : =교법 법즉심달 여심부달, 선종은 교법에서 마음으로 돌아갔다, 법인에서 심인으로 교의에서 심지로 돌아간게 선이다.선사가 보면 경은 마음 이야기를 했는데 법으로 본다는 것이다.

 

一大事者 佛之 知見也 : 알고 보는게 마음이다.법화에서는 불지견을 성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로 보는데 단경에서는 불자는 각이고 각지견은 중생의 마음이다. 선은 미래를 보는게 아니라 현재를 바로보라는 것이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곳이 없다. 선은 중국문화에서 탄생한 것이기에 중국적인 것이 녹아있다. 교는 닦아서 이루는 것인데 선은 마음이 밝아지는 것이다, 一念心開 열리는게 뭐냐? 비유다, 눈감고 열린다, 문이 열린다. 스스로 허망된 생각안하는게 밝아진 것이다. 무심이라고도 하고, 무심은 없는 마음, 무자를 부사로 봐야한다. 망상이 없는 마음이니까 반야지혜고 해탈이다.

 

망상을 닦아내는게 아니라 망상을 안일으키면 된다. 이게 선이다. 망념을 일으키지 않는게 좌고 본래 청정한 자리를 그대로 보는게 선이다. 단경은 하택 신회의 선지다. 망상 닦아내려고 힘쓰는게 망상이다. 망상인정하는게 망상이기 때문에 영원히 안된다.

 

 

 

17-2돈오란게 망상자체를 하나하나 없애서는 절대 될수 없다. 망상 안일으키키면 된다. 어떻하면 편안하나? 불안하다는 생각을 안하면 된다, 스트레스 안받으면 된다. 열 안받으면 되고 미워하지 않으면 된다. 佛 猶覺也. 分爲四門 開覺知見 示覺知見 悟覺知見 入覺知見불 유각야. 분위사문 개각지견 시각지견 오각지견 입각지견 - 개시오입이 세상에 하나도 어둡게 한게 없다 제 스스로 어둡게 본 것이다. 누가 삶을 좋아해라고 했나 스스로 살아놓고 삶을 후회하고... 문제는 밝게 본다, 그걸 무념 무심, 해탈견성이라고 한다. 8정도에서는 바르게 보는 것을 정견이라고 했다,

 

汝今當信佛知見者. 只汝自心. 更無別佛불지견은 너의 자심이지 다시 더하여 불지견이 따로 없다. 탐애하기 때문에 어두워진다, 탐애하면 앞을 가려서 바로 보지 못한다.

 

중생지견이 어디서 온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만들었다, 汝若但勞勞執念. 以爲功課者 여약단노노집념. 이위공과자 얼마나 읽어서 뽐내는게 중생이고 중생심을 안 일으켜서 밝은 마음을 내는게 선이다. 경에 오류가 있는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에 장애가 있을 뿐이다. 단경은 경을 배격하는 시대가 아니라 경을 새롭게 해석한 시대다. 心迷法華轉  心悟轉法華.  有無俱不計  長御白牛車 백우 - 본래 색깔, 본래마음심미법화전  심오전법화.  유무구불계  장어백우거법화경 최종성불을 흰소의 수레를 타는 것으로 했는데...법화경으로 남종 돈오성불을 이야기했다. 마음이 밝아지면 성불이지 경전을 읽어서 공덕으로 삼는게 아니다. 혜능이 말하길... 단경에서 이르길... 단경은 역사적 혜능선가가 다 말씀하신게 아니다. 경도 마찬가지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왈? 화엄경에서 말씀하시길... 불설.. 경설... 선은 임제에 이르러 큰 봉우리를 만든다. 어록은 임제록이 왕이다. 선이 퇴보하면서 시가 나오고 맨 나중에 나온게 간화선이다.

 

 

18-1초기 선사들은 경율론의 대가들이다, 교전을 통해서 선지를 드러냄돈오가 되려면 견성, 바로 본성만 보면 되지 선정을 닦아서 되는 것은 아니다. 돈오가 되려면 무념이 되어야한다. 무념념이 되면 견성이고 해탈이다. 망상이 없는 생각이 되면.. 무념지념, 무심도 마찬가지 무심심, 닦아서 되는게 아니고 망념을 안 일으키면 바로 된다. 선정을 논하지 않고 견성만 논한다. 달마선을 이야기하면서 인도선이나 천태지관선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지관 선정 삼매가 다 인도적인 것이고...달마남종선은 닦아서 이루어지는게 아니라 무념념이 되면 바로 된다. 무심심, 망심 망념없는 마음이 바로 성불 해탈이다. 망념을 닦는게 아니라 망념을 안일으키면 바로 무념념이다.

 

饒伊盡思共推. 轉可縣遠요이 - 현마(아무리), (넉넉이 설사), , 사량하야, 모다, 추심하여도아무리 생각을 하여 모두 추심하여도 더욱 멀어지리라. 동아시아에서 도는 생각하면 할수록 멀어지는 것이다. 잠못 자는 사람의 특징이 잠잘려고 애쓴다. 도를 자꾸 생각하면 병이되어서 멀어진다.

 

법화경이 불교 사상사적으로 보면 엄청난 변화인데 단경은 법화경에서 또한 엄청남 변화다. 생각을 가지고 자꾸하려는 것은 아무리 헤아려도 헤아리지 못한다. 망념을 안 일으키면 성불 해탈 열반이고 구원인데 이생각 저생각 헤아리는 것은 백우거를 탄 사람이 다시 문밖에 나가서 양거녹거우거.. 을 찾는다. 중생은 망념으로 하려고 하지 무념으로 안한다. 무념이면 바로 다 된다. 일불승, =길도, 같은 말이다. 선에서는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게 무념이다, 무념이라야 바로 성불하지 불로하면 금생에 성불 못한다. 32상은 전부 남자상이다. 상호부터 원만상호가 되어야하고 무한한 지혜와 신통을 갖추어야 하는데...아라한에서 부처님으로 부처님에서 마음으로... 소승- 대승 - 선의 순서로 되었다. 일초직입여래지가된다. 일불승이 무념이다. 집을 떠나서는 본가로 돌아가는데 본가에 돌아가서는 내집이라는 생각이 없다. 그게 선이다. 선과 교가 다른게 선에서는 부처라하는 것도 싫어한다, 정말 부처는 부처란 생각이 없다. 집에 돌아간 사람은 집 이야기 안한다.

 

18-2교의에서는 성불해탈을 이야기하고 성불해탈을 이야기하는 것은 문밖의 소식이다. 가진자는 외치지 않는다, 야당은 시끄럽고 여당되면 조용하다. 생각이 병통이다. 그게 선이고 무념이다. 무념으로 돌아가는 것이 법화경을 잘 받들어 실천하는 것이다. 불교는 의식을 변화시키는 것인데 현대불교는 과학으로 의식을 가지고 불교를 사량한다, 방향을 상실하고 있다,

 

출세 - 세간에서 벗어나는 것도 출세고 부처님이 세간으로 들어오는 것 나타나는 것도 출세다. 삼계가 화택이라고 했는데 왜 화택이냐? 선에서는 망념이 바로 불이다. 망념이 무념이되면 화택이 바로 법왕궁이다. 인도식 사고와는 전혀 다르다, 인도는 피안에 대한 동경이 있는데 중국은 피안에 대한 동경이 없고 죽음을 생각치 않고 현상을 중심으로 생각한다.한생각을 일으키면 불타는 집이고 안 일으키면 법왕궁이다. 誰知火宅內  元是法中王.선에서 제일 때리는게 왕생사상이다. 선은 보고 듣는 그 자리에서 보고 듣는데 집착하지 않으면 선이다. 능력있는 사람은 이것보다 더 좋은게 없다. 우리나라는 감각적으로 하고 일본 조동종은 제도를 아주 잘 만들어 놓았다. 청규가 워낙 철저해서 그대로 따라하면 된다.

 

남종선의 핵심은 不離見聞緣  超然登佛地. 불이견문연  초연등불지.

 

19-1소승은 법에 중점, 아공법유, 대승은 불에 중점, 선은 마음에 중점 - - 마음의 순으로... 법인, 심인, 도장인 - 틀림이 없다. 법에서 심으로 엄청난 변화다.

 

심광명이 시불이요 심청정이 시법이요 처처무애가 시승이라. - 임제선에서 삼보해석벼요 보리요 콩이다. 大圓鏡智性淸淨  平等性智心無病. 妙觀察智見非功  成所作智同圓鏡.전오식 제6 7 8식을 바꾸면 성소작지 묘관찰지 평등성지 대원경지나가정 - 나가=, 어느때나 선정에 들어 있는 것, 용이 어느 때나 선정에 들어 있음

 

전식성지, 식을 바꾸어서 지를 이룬다. 식은 미한 것이고 지는 깨친 것이다. = 모르는 것, = 아는 것, 알고 살면 삶이 문제가 아니고 알고 죽으면 죽음이 문제가 안되는데 모르면 문제다. 전오식 제 8식은 과상에서 바뀌고 6,7식은 인에서 바뀐다.

 

三身元我軆  四智本心明.선은 뭘 자꾸 닦아서 좋게 만드는게 아니라 망념을 일으키지 않는게 선이다. 깨닫기를 바라는게 흉악한 망념이다, 본래가 자성청정이다. 미워하고 좋아하지 않고 보면 그게 바로 부처다. 선원이 자생력이 없으면 시주에 의지하고 왕권에 의지하게 된다. 의존하면 주체성을 상실하게 된다.

 

선은 단계가 없는데.. 십우도는 소를 얻고... 화엄십지에 비교, 단계가 없는 선을 단계로 설명.선이 힘이 떨어져 교를 모방한 것이다. 불염이염, 염이불염, 이게 고도의 인식론이고 철학이다. 염은 중생이고 불염은 부처.

 

 

19-2중생과 부처가 다르냐? 다르면서 다르지않고 다르지 않으면서 다르다.거울이 물들었는데 거울의 광채엔 하등의 변화가 없다.

 

 

20-1물들지 않는 지혜와 원력이 있어야 보살이된다. 세상것에 조금이라도 구하거나 연연하면 빠지게 된다. 무구가 구도다. 一無所得 名最上乘일체것을 구하지 않는 것이 가장 높은 최상승이다. 자식에게 물들면 자식의 종이된다. 구하는 마음이 있으면 종이 된다. 자식의 마음을 훤히 알아서... 도는 행하는 것이지 다투는 것이아니라, 말로 하면 할수록 멀어진다, 잠자는 것과 밥먹는 것과 물 흐르는 것과 같은게 도다. 흐르네 안흐르네 구쟁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밥상문화가 영양문화기보다 예절문화다. 악은 선을 추구하는데서 생긴다.대승은 시중에서 발달, 교단불교인데 선은 산중불교, 산중에서 선행 닦을 일이 없다, 산중수행은 당연히 선과 악에서 초월한 수행이고 시중수행은 선을 닦되 선에 집착하지 않는 수행을 해야한다. 중생속에서 살면 선사라도 대중불교를 할 수 밖에 없다. 시중에는 보살이 되어야한다. 萬法盡通 萬法具備. 一切不染 離諸法相

 

寂滅爲樂 적멸과 위락이 상반되는 것인데 논리적으로 성립이 안된다. 공도 마찬가지 철학적으로는 성립이 안된다, = 불생불멸, 논리적으로 증명하기 어렵다. 깨달음이 강조, 공은 깨달음의 대상이지 논증의 대상이 아니다, 적멸위락도 마찬가지. 철학으로 해결이 안되고 깨달음으로 해결. 불교에서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없다는 것까지 없는게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 적멸

 

 

20-2세속은 보살, 산중출가자는 선으로 돌아가야한다. 동아시아엔 신선도가 있는데 아무리 좋아도 항상 옆에 있으면 싫다. 신선도를 매력적으로 본다. 제법종연생이라 사막에서는 구세주, 산악에서는 신선이 나온다. 마군 : 선행을 방해하면 마군, 불교와 다른 견해 - 외도, 사견사견 - 유무 단상  상으로 보지 않고 성으로 보면 유무 단상이 없다. 윤회가 상견윤회가 아니다, 이몸이 바뀌지 않는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없이 단절되는 것도 아니다.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상견윤회를 이야기한다. 아함경에 차음이 멸이 하면 피음이 상속, 단상에서 초월하여 중도로 가는게 불교다. 일자거 일자래, 하나가 가고 하나가 온다, 간다=소멸, 온다=상속, 소멸과 상속이 반복되는게 무상이다.

 

동산선사에게 어떤 승이 묻기를 "죽은 僧이 천화(遷化) 하여 어느곳으로 가게 됩니까?" 하니

선사가 이르기를 "불 탄 뒤의 한 줄기 띠풀이로다" 하였다.

문) "승이 죽어 천화되어 어디로 가는가?" 했는데 "불 탄 뒤의 한 줄기 띠풀이로다" 한 도리를 일러 보십시요.

공안 탁마를 하는 학인입니다, 예전엔 위의 공안에 대해 이런저런 의심만 들뿐 확신이 서지 않아서 잊고 지내던 어느날 대덕 스님의 법문을 읽다가 일자거 일자래란 말씀에 아하 확신이 와서 답변 올리고 가르침 받고자 합니다.

일월 : 봄이 가고 여름이 오는 도리입니다 ()

장군죽비: 하하하....바로살핀듯 하다 하리다.

그러나 이 공안답만 보고는 일월께서 그 깨달음의 깊이와 넓이를 가늠 하기가 어려운즉 한번 참방하여 주셨으면 하오이다()

 

 

 

불교는 효도가 보은이다. 자식을 낳은 것은 상속한 것이지 영원한 모습이 아니다. 자식은 부모없이 됐다하면 단견이다. 離生滅. 求於寂滅불교는 생멸이 적멸이다, 생멸의 본질이 없어서... 어두운 세상 떠나서 밝은 세상이 따로 없다, 어두운 세상이 본질이 없고 밝음만 비추면 그대로 밝은 세상이다. 마음이 적멸해야되지... 찾아 헤메봐야 없다. 열반진락은 한순간도 나는 것도 없고 한순간도 없어지는게 없다. 생멸 그자체가 적멸이다. 상으로 보면 생멸인데 성으로 보면 적멸이다. 열반의 상락은 받지 않는이도 없고 받는이도 없다. 체험해라, 석가도 전정사유하라고 했다. 말로하는것 항복한 것이다.

 

 

21-1인도적 사고방식은 닦아야한다, 중국식은 본성이 드러나면 된다.본성 = 원명, 둥글다 - 한계가 없다, 누가 주고 누가 받는게 아니다. 성속, 남녀가 다 허망하고 한계가 없다. 생사 동서 남북이 원이라는 하나로 의미가 없어진다. 여러 가지로 나누어지는 것은 잘 못된 생각 때문이다. 다른 사람 죽는 것은 밝에 보는데 자기 죽는 것은 어둡게 본다. 나무를 갈래갈래 찢은들 꽃이 거기 들어있나? 그게 적이다. 때가 되면 꽃이 핀다. 꽃이 피는 것은 도고 갈라봐도 꽃이 없는 것은 적이다. 인간의 마음을 뇌작용으로 보는데... 불교에서는 육근으로 본다. 생각의 뿌리가 뇌세포다. 생멸은 망식이고 불생불멸은 진식인데 불생불멸이 생멸로 화합해서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게 아뢰야식이다. 청정식은 불생불멸이다. 뇌세포란게 적이다, 적이면서 모든 걸 살핀다, 불생불멸이다 = 원명이고 적조다. 대열반이다. 죽는다는게 근이 사라지는데 원명이 없어지는 걸로 안다, 나무가 죽는 것인데 봄이 없어지는 걸로 안다, 나무는 근이고 봄은 원명이다. 이변삼제 - 유무, 과거현재 미래 삼세

 

기식이 즉시망이라,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 허망한 것이다. 출세간 - 정견이 출세간이다. 선에서는 이렇게 본다. 세간을 떠나서 출세간이 있는게 아니라... 열반에 집착하면 세간이고 생사에 집착하면 세간이고... 집착하는 것은 전부 망견이고 사견이고 기심이다. 생각을 일으킨 것이다, 범성견을 일으키면 사견이다. 열반이 항상 열반이다. 열반은 항상 열반인데 사견만 없으면 열반이다. 사견을 닦아내면 수행이고 선은 사견을 일으키지 않으면 바로 정견이다. 정견이 열반이고 생사가 사견이다, 죽음이 사실이 없는 것이다. 본무생사인데 사견으로 죽음을 보는 것이다.

 

덕이본은 마조 백장 황벽 임제의 선풍을 그대로 덕이본에 반영시킨 육조단경이다.

 

선은 계급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21-2

 

 

 

22-1성품을 본다 - 눈으로 보는게 아니다, 앞뒤가 없다, 본다는 것은 깨닫는다는 것이다. 견성의 성이 뭐냐? 성은 자성이다, 자기의 성이다. 성에 대한 법문이 심지법문이다, 마음이 진성이고 본성이고 자성이다. 마음을 땅에 비유, 성이란 것은 그대로 드러나 있는데도 중생들은 못본다. 물이 얼음이 되면 물을 못본다, 물은 성이고 얼음은 상이다. 중생들은 본성은 못보고 나타난 상에 집착한다. 상만보지 성은 못본다. 견성의 견은 지혜의 느낌으로 깨닫는 것이지 시각적으로 보는게 아니다.

 

극락왕생 - 무생지생이다, 무생속에 왕생이다. 원각도량이 어디에 있느냐? 현금생사가 원각도량이다. 이게 성이다.

 

22-2성는 무생이고 무멸이고 상은 생로병사고, 견성은 생로병사에서 무생무멸을 깨닫는게 견성이다. 영가집은 천태의 입장에서 저술, 한사람의 저술이라고 할 수 없다. 離住禪寂 禪性 無生. 離生禪想 心如虛空이주선적 선성 무생. 이생선상 심여허공

 

汝但心如虛空. 不著空見 應用無碍 動靜無心여단심여허공. 불저공견 응용무애 동정무심논리란 것은 서로 싸우는 사람한테 논리가 필요하지, 모르는 사람한테 설명하려니까 논리가 필요하다, 아는 사람과 대화할때는 절대 논리를 내세우면 안된다. 논리란 친한친구한테가서 신분증 내어 놓아라는 것과 같다. 논리적으로 대화하는 사람이 왕따당한다. 아는 사람끼리는 논리가 필요없고 느낌으로 교감한다. 언어로 교감, 느낌으로 교감. 일체만법을 자성의 모습으로 보는게 혜능선이다. 감추어져서 모르는게 아니라 다 나타나 있는데 모를 뿐이다. 일체만법 불이자성, 본성은 본무생멸, 본자구족, 본무동요, 능생만법일체만법을 자성의 모습으로 보는게 혜능선이다, 성이 없어서 못보는게 아니라 스스로 가려서 못보는 것이다. 성상일여다. 자성이 본래청정이다. 본무생멸인데 능생만법이 자성이다. 심지법문이다. 마음에 걸리지 않으면 성불이다.

 

지해종사, 문자법사

 

 

23-1

 

납승 - 옷납, 승복 법복불교는 피안중심이 강하다, 선은 내세보다 현세에 바로 견성하고 자유를 나타내고 지금 이 자리에서 본연의 세계를 유감없이 드러내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불교는 피안중심이고 선은 차안중심이다. 무엇을 얻었다 못 얻었다는 것을 싫어하고 자기 본성으로 돌아가는 것을 중시한다. 불립문자, 문자는 논리 도덕 윤리를 말하기에 자꾸 미래를 향해 추구 지향하게 된다. 또 사유를 선에서는 싫어한다, 생각을 갖지마라 - 막존지해여여의 세계 = 본성의 세계를 드러내는게 조사선풍이다. 선도 불교다, 중국문화가 차안중심이다, 선은 해탈 내세의 인도불교에서 현세의 중국불교로 변화함. 선불교란 용어는 70년대에 보편화, 예전엔 그냥 선이라고 했는데 일본에서 선을 외국에 소개하다보니 젠부디즘에서 선불교란 용어가 나왔다.

 

 

23-2수행을 강조하는 것은 인도선 천태선이다, 남종선은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자꾸 만들어서 하는게 기량인데 쓸데없는 것 안하는게 남종선이다.

 

南 頓 北 漸     宗趣 종 - 단체로 숭상하는 것, - 나아가는 것

 

 

24-1점으로하는 것은 본성을 바로 드러내는게 아니기에 오래 걸린다, 諸惡莫作 名爲戒 諸善奉行 名爲慧. 自淨其意 名爲定애와 증이 있어서 애의 대상은 선을하고 증의 대상은 악을한다. 애증을 가지니까 악을 계속 행한다. 미우니까 나쁘게한다. 나쁘게하면 선까지 다 없어진다. 도를 구하면 우선 악에서 벗어나야한다. - 교의, 이데올로기다 - 선이 의미를 주장하면 선이 아니다. 선은 탈 이데올로기다. 논리체계를 세워서 가르치는게 있다면 논리체계를 세우지 않고 가르치는게 있다. 선은 주의주장이 없다, 선사상이란 말이 안맞는 말이다. 사상에서 못 벗어나는게 노이로제고 자기집착이다. 다만 경우에 따라서 얽힌 것을 풀어준다. 但且隨方解縛 단차수방해박자기 논리체계 주장을 세우고 살면 상대는 없다, 안들어온다, 나이 많은 사람의 한계가 항상 과거속에서 살고 현재를 모른다. 일방적으로 생각하는게 늙은 것이다. 방소를 따라야한다.

 

교리행상을 이야기하면 교상이 되는데 교상을 판단해서 해석하는게 교상판석, 교판을 가지고 있으면 불공이다, 교종이다, 선은 교판이 없다. 교리행상으로 사람을 접인하는게 아니라 사람사람의 자성으로 접인한다, 교리행상은 출처가 인도것인데 자성은 불교 들어오기 전부터 있었다, 不離自性선이란게 인도불교가 아니고 인도불교에서 독립한 중국적 불교다. 종교의 믿음이란게 선교사의 가방에서 나온게 아니라 수만년전부터 이땅에 있었다. 계정혜는 다름이 아니라 자성이 용을 일으킨 것이다. 인도불교의 모든 교상이 번뇌를 없애는데 맞추어져 있는데 선은 일체만법이 염법이 없고 기용起用으로 본 것이다. 다 자성이 용을 일으킨 것이다, 선에서 자성은 본래 물든게 없다. 교에서는 물들어서 번뇌를 일으킨다. 염이 있어서 물들었다, 선에서는 물든게 없기 때문에(본자무염) 用만 잘하면 된다. 우리나라 신앙은 자성기용 신앙을 하고 있다, 모든 의례의식이 자성기용自性起用에 근거를 두고 있다, 시식문 다비문이 전부 자성기용문이다. 자성이 청정하고 본자무염이다, 불이자성不離自性, 自性起用 선은 서양철학의 형이상학 형이하학 양분론이 성립이 안된다. 모든 것은 자성이 용을 일으킨 것이다, 형이상학과 하학이 합일 응용이지 이원론으로 떨어진게 아니다. 起用 - 기용의 반대는 성이다. 교에서 지혜는 닦아서 이루는 것인데 선에서는 자성이 용을 이루는 것이지 닦아서 이루는게 아니다. 수성론이냐 기용론이냐, 수성론은 교고 기용론은 선이다. 둘다 맞다, 그게 묘법이다, 수성도 되고 기용도 되고...心地無非自性戒  心地無癡自性慧. 心地無亂自性定  不增不減自金剛.        身去身來本三昧 오고 가는게 다 삼매다.심지무비자성계  심지무치자성혜. 심지무난자성정  부증불감자금강.        신거신래본삼매

 

24-2오고 가는데 허물이 있는게 아니라 집착하는데 있다. 身去身來本三昧구심점이 교상이다, 법이 강할수록 중생들이 악하다, 법이 없는 나라가 좋은 나라다, 우리나라 청규가 물렁한데 일본 조동종 청규는 내용이 많고 확실하다. 우리나라는 법보다 지도력을 중시했고 일본은 법을 중시했다. 五蘊幻身 幻何究境. 廻趣眞如 法還不淨.오온환신 환하구경. 회취진여 법환부정.오온이 구경법이 아닌데 오온을 버리고 진여로 돌아가서 진여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법이 도리어 청정하지 않다, 봄은 꽃과 같고 진여는 봄과 같다, 꽃은 봄이 용을 일으킨 것이다, 세워도 좋고 세우지 않아도 좋은게 해탈이다, 본래 자성에는 되고 안되는게 없는데 된다 안된다는 생각이다. 그게 교상이다. 교상과 견성, 불교를 알고싶다의 불교는 교상이다, 선은 교상을 가르치지 않고 견성을 가르친다, 각자 자기 본성을 보도록 가르친다, 교상이냐 견성이냐?자성에는 立亦得不立亦得 득- 좋다, 만족하다주의 주장에서 벗어나는게 해탈이다. 去來自由 無滯無碍 거래자유 무체무애應用隨作 應語隨答 응- 화한다 따른다 응용수작 응어수답

 

견성이 뭐냐? 본성을 보는 것인데 어떤 상태인가? 見性之人 立亦得不立亦得. 去來自由 無滯無碍. 應用隨作 應語隨答 普見化身. 不離自性 卽得自在神通 遊戱三昧.是名見性견성지인 입역득불입역득. 거래자유 무체무애. 응용수작 응어수답 보견화신. 불리자성 즉득자재신통 유희삼매.시명견성

 

교에서는 불입이 되면 교가 안되는데 선에서는 不立義 自性 無非無癡無亂 불입의 자성 무비무치무난견성 : 念念般若觀照常離法相. 自由自在 縱橫盡得 념념반야관조 상이법상. 자유자재 종횡진득自性自悟 頓悟頓修 자성자오 돈오돈수諸法 寂滅 有何次第 차제- 순서어떤 공식도 가정이다. 자성은 식이 없다.

 

선은 수방해박 방소에 따라서 얽힌 것을 풀어준다. 隨方解縛일체만법이 자성기용이다, 自性起用본성(불성)과 현재 중생의 윤회가 다르게 보는게 교상체계인데 자성기용으로 보면 윤회는 자성이 용을 일으킨 것이다, 윤회는 없고 기용起用이다. 죽고 사는게 자성의 작용이다, 꽃피고 지는게 봄의 작용이지 봄을 떠나서 꽃이 피고 지는게 아니다. 생사가 윤회가 아니고 기용이다, 생사를 떠나서 열반을 얻는다는 것은 미혹한 것이다, 생사를 애증하는 것은 미혹이다, 죽어도 좋고 살아도 좋고 생사 없는데서 생사에 자재한 것이 선이다. 돈오돈수頓悟頓修를 이해하는 열쇠는 자성청정에서 푼다, 깨닫는 순간 본래 닦을 것은 없다, 자성에 의해 돈오돈수가 성립된다. 불입일체법 不立一切法자성이 본래 그런 것이 없고 산란하고 어리석은 것이 없기에 자성 이외에 더 세울게 없다, 일체 규정 자체를 안하는 것이다. 일체 주장하지 않는다, 선이라고 주장해도 미혹하고 악이라고 주장해도 미혹하고 불사선 불사악이 자성청정에 근거를 두고 있다, 불입문자도 뭔가를 주장하려니까 의미를 전달하려니까 문자가 필요한데 의미는 다 생각이다, 생각에서 벗어나는게 선이다. 일체법을 세우지 않으니까 불입문자가 된다. 문자는 주장 견해를 세우는 것이다. 주장을 세우면 교상이 된다, 교상=법상수방해박 - 얽힌 것만 풀어주는데 공부 많이 한 사람은 되는데 공부 하나도 안한 사람한테는 해당이 안된다. 유치원생에게 고민말해봐라?? 교상을 세워서 이야기해야한다. 자꾸 성장할수록 수방해박이 맞다, 수방해박이냐 교상설법이냐? 다 필요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오고 있다. 다비문이 거의 나옹스님 설법이 대부분이다. 나옹스님 - 무학스님 - 함허스님정각지성(본성)은 멀리있는게 아니라 塵塵上通 物物上現 진진상통 물물상현자성기용을 신광으로 표현, 진광, 자성은 끝이 없고 광명도 끝이 없어서 원광, 무상게에 西來祖意 最堂堂이여 自淨其心 性本鄕이로다 妙體湛然無處所언마는 山河大地가現眞光이로다서래조의 최당당이여 자정기심 성본향이로다 묘체담연무처소언마는 산하대지가 현진광이로다. 나무아미마불 관세음보살...

 

달마조사 전하신 법 당당하여 으뜸이시니 본래 청정한 마음자리 본성품의 고향이네. 마음이란 맑고 묘해 있는 곳이 따로 없어 삼라만상 그대로가 한마음(=法身 비로자나佛=유일신 절대자 하나님)의 나툼일세. 나무아미마불 관세음보살...

 

 

25-1

 

점수 - 신체적인 것에 중심, 진과 망중에서 망에 중심, 신체를 잘 조복받고 허망한 마음을 잘 닦으려면 서서히 된다, 자연히 점수종이 된다. 신체는 하루아침에 조복되는게 아니니깐... 신체를 잘 조복하고 허망한 것을 청정하게 한다, 지성단체는 전부 점수다, 보수적 교단은 다 점수다, 허망한 마음을 닦는 것은 절대 빨리 될수 없다. - 신체에 중심을 두는게 아니고 바로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다. 망심에 중심을 두는게 아니라 진심에 중심을 둔다. 닦아내는게 아니라 본래 청정한 마음을 바로 드러내는게 돈이다.

 

수행은 생활이고 청정한 마음은 바로 깨달으면 되고 새롭게 법을 세우는 입장이라야 돈이 된다. 부처의 마음이 중생의 마음과 똑같다 - 중생에게는 한없는 업장이 있다 - ---- 돈점진망이 5조 홍인때는 다 같이 있었다. 도란것은 도를 지키는 것이지 목을 지키는게 아니다. 뭘 위해 사는가?남자는 힘이 세야한다? 다음엔 생업에 열심히 노력하는게 둘째 멋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영웅, 진리를 깨달아서 보여줌

 

여성 - 모성애, 관능미, 인류를 위해 자비로운 어머니가 된다 대승자모

 

 

25-2남종은 본성종인데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 남종의 종지다. 본성을 드러내는데 합당하게 하는게 부처님의 뜻이다. 중생들은 허망한 것을 영원하다고 집착하고 소승들은 영원한 것을 허망하다고 집착한다. 깨우침은 논리가 아니고 상대편 입장을 건드리는 것이다, 대화와 발표의 차이점이다. 경을 듣고 깨달은게 아니라 가르침을 듣고 깨닫는 것이다, 선에는 지정된 교전이 없다. 부처님의 위신력을 바로 통하면 밀교고 본성을 바로 나타내면 선이 되고..생로병사 모든 것이 자성기용이다, 교에서는 생사윤회로 보고 고해고 속박으로 본다. 선에서는 생사윤회가 자성기용이다, 자성을 바로 알면 일체만법이 자성이다 불이자성이다. 자성속에서 자성을 못 깨닫고 있다. 자성이란 말 대신에 영원이란 말을 쓴다. 영원담적, 생사가 없다, 담담하고 적적하다. 자성을 묘체라고 표현, 묘체원명, 전부가 남종선지다. 영원 - 신령스러운 근원꽃나무를 아무리 갈라도 꽃이 없는데 봄되면 꽃이 핀다, 육체가 아니고 묘체다, 묘체는 원명이다. 곽시쌍부, 달마스님이 땅에 묻힌지 3년후 신발한짝 들고 인도 가셨다. 수유청림 : 원명을 나타낸 것이다. 묘체영원은 담적하고 원명하다, 북에 비유하면 북소리는 원명이고 북 뜯어보면 담적이다. 허무를 느끼는 과정이다, 원명을 모르는 단계가 허무한 단계가 담적이다, 현상세계는 경쟁이고 죽으면 허무를 느낀다, 담적에서 원명으로 나와야하는데 못나온다. 깨달은 사람과 못깨달은 사람은 0도와 360도 차이다. 중생들은 허무의 터널을 못 빠져나온다. 원명이 어디있느냐? 부왕현현 어디에나 나타나 현현하다, 보고 듣는데 밝게 역역하다, 이게 자성이다. 시청명역현영멸기허 영원히 허탈함을 다 없앤다.

 

(靈源湛寂 無古無今 妙體圓明 何生何死 便是釋迦世尊 摩竭掩關之時節 達摩大師 少林面壁之家風 所以 泥蓮河側 槨示雙趺 總嶺途中 手携隻履 諸佛子 還會得 湛寂圓明底 一句마  俯仰隱玄玄 視聽明歷歷若也會得 頓證法身 永滅飢虛 其或未然 承佛神力 仗法加持 赴此香壇 受我妙供 證悟無生)영원담적 무고무금 묘체원명 하생하사 변시 석가세존 마갈엄관지시절 달마대사 소림면벽지가풍 소이 니련하측 곽시쌍부 총령도중 수휴척리 제불자 환회득 담적원명저 일구마 부앙은현현 시청명력력 약야회득 돈증법신 영멸기허 기혹미연 승불신력 장법가지 부차향단 수아묘공 증오무생 ’

 

석가모니 부처님의 삼처전심(三處傳心)부터 중국선불교의 창시자 달마대사 까지 운운하며 단박 깨닫지 못하였으면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법단에 동참하여 법다운 공양을 받고 무생법인을 얻으라는 최상승 법문이다.

 

현상을 떠나지 않고 담적세계에 들어갔다가 지혜의 세계로 나왔기 때문에 0도와 360도다. 세상에 그대로 있으면서 세상에 집착하지 않는게 원명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거래생사 일진상이다. 생사거래가 다 하나의 진실된 모습이다. 자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거래생사가 자성기용이다, 이게 성종이다. 돈오를 하려면 견성을 해야한다, 돈오=견성하면 일체만법이 자성기용이다. 원명하면 된다. 원명은 증애심이 없는 것이다, 원명하냐 안하냐? 좋아하는것 싫어하는게 있나보면 된다, 애증은 어리석은 집착이다.

 

 

26-1허무의 터널을 통과하지 못하니 원명과 있어도 원명을 모른다.

 

26-2교는 가르침을 신봉하는 것이고 선은 스스로 보는것이다. 남종선을 이해하려면 신회를 알아야, 인도선 소림선조신 - 몸부터 조절해야, 음식 잠 말을 조절, 몸을 잘 조화롭게 하고나서 조심 마음을 조절한다. 호흡을 조절해야, 몸 마음 호흡을 조절하는게 천태선, 인도선과 비슷, 몸 호흡 생각을 조절달마 소림선은 마음으로 돌아감, 본성청정으로 돌아간다 - 신회선, 마조백장 - 평상심으로 돌아간다. 도는 수처작주다. 중국 선종사 통일은 오가칠종선638-731년 혜능, 신회선사 761년 왕유에게 혜능의 비문을 지어달라고함, 684-758

 

마조이후의 선풍이 육조단경에 들어옴, 신회는 선종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큰 봉우리를 형성하신 분이다. 규봉이 신회에 대해 세밀히 적음선이 수처작주까지 옴성본스님 중국 선종사에 다 나옴

 

 

 

27-1唐 朝 徵 詔    第 八

 

上表辭迭. 願終林麓육조사 - 사양을 했다, 사양의 변이 자기의 부족함을 이야기함, 변방에 태어나서 어음이 부정확하고 인물이 시원찮다. 신언, 신체와 언변이 대중앞에 나가는데는 중요하다. 습정선, 견성선, 수생무멸이 선이고 제법공적이 좌다. 대부분 망을 닦아 나가는 수행인데 밝은 지혜로 어둠을 몰아낸다, 견성선은 본성속에 어두움은 없다. 망을 지혜로 물리친다는 것은 성아닌 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인데... 煩惱 卽是菩提. 無二無別번뇌가 따로 있는게 아니라 미혹하면 번뇌다, 꿈과 의식, 꿈이 바로 의식이다. 한생각 돌이키면 견성이다. 번뇌를 떠나서 깨달음이 따로 있는게 아니다. 부질없이 번뇌를 일으키는데 자성이 없는 것이다. 동방에 있는 사람이 동방인줄 모르고 서방이라고 했다, 그게 미혹이다, 다시 동쪽을 찾는다, 서방이 바로 동방이다. 서방이 따로 있는게 아니고 서방을 동방으로 착각했다. 봄이 어디있느냐? 부재춘풍 부재천, 있는데가 없는데도 없는데도 없다, 본성이란게 그와 같다.

 

 

 

27-2我說不生不滅者 本自無生. 今亦無滅불생불멸이란 것은 본자무생이다, 불생은 본래부터 스스로 생긴 것이 없다. 지금도 없어지는게 없다. 이게 해결되야 본성청정이 된다. 상으로보면 생겨도 성으로보면 생긴게 없다. 월인천강 - 달그림자가 물에 비춰도 생긴게 아니고 물에서 없어져도 없어진게 아니다. 본자불성이다, 본래 생긴게 아니다. 생사거래를 생멸윤회로 보느냐 性用으로 보느냐! 나고 죽는게 다 본성의 작용이다. 무생을 이해해야 연기법도 이해되고 본성도 이해된다, 전부가 무생법이다.

 

 

 

 

28-1 法 門 對 示    第 九결론부분, 부촉, 미래를 위해서 이야기함. 신부가 내한테 왜 불성이 있어야하나? 따지는 그게 불성이다, 산다는게 느낌인데 느낌의 본성을 잘 활용하면 부처고 잘 못 활용하면 중생이다. 선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든 자성에 근거한 것이다. 자성종이다. 모든 것이 자기 마음의 본성에서 일어난 것이다, 교종에서는 불력에 의해 일어난 일이다. 자성중심은 선이고 부처님 중심은 교다.

 

법은 색성향미촉 뿐인데 의식이 과거현재미래를 총정리해서 이게 법이다. 정신이 이상한 사람일수록 현재는 없고 과거 미래만 있다. 의식이 건전할수록 현재를 본다, 보면된다, 생각이 덮여서 못본다, 견성 도통의 방법이 화두든다(보는 방법중 하나다) 조견도를 깨닫고 증득하는 방법? 지혜로 관조를 한다, 도라는게 다 드러나 있는데 생각속에 덮여서 못본다, 지혜로 관찰 조명하면 보인다. 지혜 관조다, 경을 읽을때도 빨리 읽으려고... 이세상엔 숨기는게 없고 다 나타나 있는데 스스로 덮여서 그렇다. 젊을땐 의욕이 넘쳐서 늙는 것을 모른다, 철났다? 모든 성인이 관조를 해서 도를 터득했지 다른 방법이 없다, 마음을 가라앉혀서 집중해서 관찰하고 관찰하고... 그러면 보인다.

 

- 생각, 색성향미촉을 총정리 - 요별기능, 잘 알아서 구분한다. 식이란게 수십년전의 일도 어딘가에 들어있다 그게 함장이다, 업보란게 함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즉석에서 생기고 없어지면 업이란 없다, 자성이 능히 만법을 포함한다. 아뢰야식이 함장식이다. 生六識出六門見六塵. 如是一十八界 皆從資性起用 생육식출육문견육진. 여시일십팔계 개종자성기용오음 십이입 십팔계가 다 자성기용이다. 자성기용=성용

 

죄가 없고 악이 없는데 복을 등진게 죄고, 너와 나를 기쁘게하는게 복이다, 선을 등진게 악이다.

 

28-2전부 자성기용이다. 너무 부지런하면 다른 사람에게 불안을 주고 자신도 괴롭고...

 

外於相 離相. 內於空 離空 若全著相 卽長邪見. 若全執空 卽長無明외어상 이상. 내어공 이공 약전저상 즉장사견. 약전집공 즉장무명밖으로는 어상에 이상하고 안으로는 어공에 이공하라는게 도다, 상에 집착하지 않으면 정신세계가 높은 것이다, 상에 빠진게 지옥이다. 상을 멀리하는게 아니다, 보되 집착하지 않는게 도다. 말을하되 말에 집착하지 않는게 도다, 안으로는 공에 집착하지 않는다. 이게 중도다. 도라는게 보고 듣는것에 떠나지 않는데 집착하지 않으니까 도다. 중생은 밖으로 성질내든가 안으로 화병나든가 둘중 하나다. 화른 내는 것 화를 참는 것 둘다 안좋다, 아예 화를 일으키지마라. 의미를 훤히 알면 말에 집착하지 않는다.

 

自迷.猶可. 又謗佛經. 不要謗經. 罪障無數자미.유가. 우방불경. 불요방경. 죄장 무수자성법에 의지해서 닦는게 의법수행이다, 그게 선이다, 자성에 의지해 닦는 것은 보되 집착하지 않는게 무념이고 상에 집착하지 않는게 무상이고 애증심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무주가 된다, 중생의 병통이 마음에서 애증을 자꾸 일으켜서... 모든 화근에 애증에 있다. 보고 듣고하는 것을 말고 적막강산에 빠지지마라. 莫百物 不思보리자성, 보리=느낌 감각 깨달음마음의 본성이 보리자성, 자성이다, 보리=, 감각보리자성=각성, 감각 생각 마음의 본성이 자성이다. 보리자성이 본래청정하니 단용차심하면 직요성불하나니라. - 단경의 대의를 표현한 것이다. 우리 몸은 태생신인데 마음의 본래면목은 부모미생전이다, 천지가 생기기전에 생겼고 천지가 끝난 후에도 있는게 보리자성이다, 태생신은 눈으로 보여도 보리자성은 자기눈이 자기눈을 보지 못하듯이 자성의 작용일 뿐이다... 내눈이 내눈을 보지 못하듯이... 깨달으면 된다, 단용차심하면 바로 성불한다. 의법수행의 법이란게 보리자성 본래청정한 그 법이다, 그냥 쓰는게 닦는 것이다. 교법엔 때묻은 번뇌망상이 있다, 선은 본래 청정하다, 미혹해서 쓸줄 몰라서 그렇지 본래청정이니까 닦을게 없고 바로 쓰면된다.

 

자성에 구삼신하니... 발명하면 성사지하니라. 견문연을 여의지 아니하고 초연히 등불지하니라. 自性具三身  發明成四智 不離見聞緣  超然登佛地.보리자성에 중생의 마음에 삼신(법보화신)을 갖추고 있다, 자성에 밝은 기운을 일으키면 사지를 이룬다, 성소작지 묘관찰지 평등성지 대원경지를 이룬다, 견문연 보고듣는 온갖 연을 여의지 않고 초연-바로 뛰어서 일초직입여래지, 바로 불지에 오른다, 이게 선이다, 보리자성법에 의지해서 그대로 실행하면 된다는게 선이다. 죽을 짓을 자꾸해서 그렇지 죽을 짓만 안하면된다, 화를 안내면 극락인데 기쁨을 등져서 지옥이다. 심지무비가 자성계다. 心地無非自性戒 心地無癡自性慧 心地無亂自性定不增不減自金剛 身去身來本三昧.자성을 그대로 실행하는게 단용차심이다, 다만 듣고 의법수행할지니라, 백물에 불사하여 도에 본성에 막히지 않게하라. 힘든 것이랑 화 역정내는 것이랑 다르다. 부처님이 도를 닦을때 힘들게 했지만 좋았다. 도란게 현상이 바뀌는게 아니다. 도인도 죽느냐? 견문연을 여의지 않고 바로 불지에 든다, 늙고 죽는데 걸림이 없는 것이 도지 생사를 거스리는게 도가 아니다. 똑같이 늙고 죽으면 뭐하러 도닦나? 다 안죽으면 어떻게 되나? 단경에 자성에 대한 이야기가 중요하게 구성되어 있다.

 

 

 

29-1천태종 - 법화경위주로 많은 지관수행도 많다, 화엄종에도 선을 안하는게 아니고 한다, 선교에서도 경을 읽는다.참선을 조금 한다고 선종이라고 할수 없고 교를 한다고 교종이라고 할수 없다, 선사도 나무아미타불한다, 고려시대부터 선종은 교를 말하든 않든 근본적으로 심법을 이야기하면 선종이다, 교종은 교의를 이야기할 때 교종이다, 교의엔 교설과 논리가 있다, 경은 반드시 논리체계를 가지고 있다, 교의를 이야기하면 교종.심법을 이야기할 때 불교 전통과 관계없이 이야기한게 아니고 불교 전통에 근거해서 심법을 이야기한다, 선은 다 부처님에 근거, 교는 교시불어, 선과 교를 심과 어의 관계로 봄, 선교판석이다, 뭘 이야기해도 근본바탕을 심법, 교의에 근거를 두면 선종 교종이다. 선시불심 교시불어실천적측면, 자유언 지무언=, 말있는데서 시작해서 말없는데로 이르면 교고, 말없는데서부터 시작해서 말없는데로 이르면 선이다, 자무언 지무언=무언=, 유언=, 심법은 논리에 좌우되는게 아니다, 논리 없는데서 출발해서 논리없는데 끝나는게 선이고 논리로 출발해서 논리 없는데서 끝나는게 교다, 교라는 것은 교의에서 행중으로 가는 것이고 선은 심법에서 자재로 가는 것이 선이다,

 

교법에서 중생을 면하려면? 교설과 논리가 있다, 심법이 아니다, 선에서는 너에게 있는 세계로 바로 들어간다, 어떻게가 아니라 바로 들어간다, 유를 물으면 무로 답하고... 논리로 설명하는게 아니라 현상으로 깨우쳐준다, 이래저래 설명하면 교의가 된다. 유라는 것은 망념에서 생긴 것이다, 유라는 망념을 깨뜨리는데는 무를 보여주고 무라는 망념은 유를 들어서 부숴준다.교는 주장 판단 체제를 가지고 나오는데 선은 체계가 없고 중생의 망념만 부숴준다. 교는 말을 타고 칼들 들고 전쟁터 나가지만 선은 말도없고 칼도없디 상대편 칼을 뺏고 말을 뺏고 상대를 친다. 준비해가면 교의가 된다, 해탈이 어딨냐? 너를 묶은게 어디있나!선은 각자의 망념에서 벗어나는 것이지 어떤 체제를 가지고 임하는게 아니다, 마지막은 실행과 증득, 대화도 선교방식이 따로 있다. 처음엔 교쪽으로 하고 어느정도 익어가면 선쪽으로 가야한다. 범부다 성인이다가 망상이다, 심법에는 범성이 없다. 애증이 다 망상이다, 왜 미워하느냐? 스스로 이것은 미운 것이다라는 자기 판단이 있기 때문에 미운 것이다. 스스로 호랑이를 그려놓고 호랑이는 무섭다고 한다, 자기가 판단한 것을 모르는게 미혹한 것이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다 망념에서 나왔다. 누구나한테 통하는게 아니라서 교가 필요하다. 교는 전체적인 범주가 제시되야 방향설정이 된다. 선은 반대를 들어서 지금의 허상을 깨우쳐준다, 정신이 건강하려면 관에서 벗어나야하고 학문은 관이 없으면 안된다. 원리 존재 구도를 가르치면 강사, 이렇게 해야한다 행위를 강조하면 율사, 선사는 모범??심성에는 오염부득이고 본래청정이다. 자성 진여 심성에 대한 깨달음이 있기에 선사는 번뇌 무명 업장을 겁내지 않는다, 원래 어둠이 있는게 아니라 밝음을 등졌기 때문이다. 어둠은 본래 없다, 이게 선이다. 밝음을 바로 드러내면 본래청정이다, 돈오점수는 닦아야할 업장이 있는게 아니라 밝음을 오래 등졌기 때문에 밝음을 봐도 어둠의 습관이 남았는데 습기를 닦는 것이다. 돈오하기 전과 후에 닦는게 전혀 다르다. 원리=교리란게 원래 없다, 사람이 만든 것이다, 원리를 자꾸 강조하면 강사다.수범수법 - 범하는 것에 따라서 법을 만듬, 그래서 온갖 계율이 생김. 논쟁이 벌어지면 언제나 보수파가 이긴다, 그래서 계율을 다 전하게 됨. 선에도 교적인 영향이 많이 미침, 십우도 - 교의 영향으로 생긴 것이다. 화엄 십주품의 영향이다. 付 囑 流 通  第 十혜능 738-713, 712년 이야기, 원효 617~ 의상 625~선이 맨 마지막에 생겼다, 거의 800년대 산물이 육조단경이다, 후한 67년에 불교가 들어오고 한나라 - 삼국시대 이후 400년동안 여러 종파가 생겼다, 67-600년까지 모든 교의 사상 논쟁이 단경에 다 들어있다. 옛날엔 도인학, 공부하고 실천했는데 요즘은 문헌학이다, 저 말이 어디에 있는가?

 

 

29-2도인학이 씨가 말라가는데 도인학은 드러내는게 아니고 스스로 증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0세기는 문헌학인데 실용성이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

 

무념 - 만가지 법을 보고 듣되 증애심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무념이다. 무상 - 온갖 만상속에 있으면서 만상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무상이다. 무념무상 =진여작용남종선은 생활선 활동선, 해탈을 논하지 않는다, 견성만 논한다. 有情卽解動   無情卽不動.가만히 앉아 있는 것은 무정물과 같다, 움직이되 망상을 일으키지 않아야한다. 무념부동이지 신체부동이 아니다, 형식으로 수행할 때 신체부동을 강조한다. 若覓眞不動   動上有不動. 움직이는 것위에 움직이지 않는게 있다. 망념을 안일으키는게 진부동이다. 성문은 초안에 머물로 있고 보살은 미진속에 들어간다. 초안성문 미진보살선의 뿌리는 대승이다,

 

 

 

30-1태양아래는 밝은 것밖에 없는데 태양을 등져서 어움이 생기지 원래 어둠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게 진여용이고 자성용이다. 선에서는 일체 생활이 행주좌와가 자성용 진여용이다. 견문각지에 증애심=망을 안일으키면 청정심 자성용 진여용이다, 증애심 - 미워하고 좋아하는 사랑진여는 중생의 자성이다. 진여는 진 그대로다 = 번뇌는 없다. 스스로 진을 등져서 그렇다. 스스로 허망한 생각을 할 뿐이지 원래 불안이나 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견문각지는 육근이 하는 것인데 코혀몸으로 느끼고 생각으로 알고 분별하고... 이게 다 자성용이고 진여용이다.

 

 

30-2도인 - 이익 손해에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애들은 눈사람 만드는데 어른은 눈사람 안만든다, 그게 도다, 만들어봐야 금방 녹는다. 이 세상에 자취를 남기려고 하는 사람은 어린애가 눈사람 만드는 것과 같다, 정신연령이 낮은 것이다. 천신이 이 세상에 와도 자취를 안남기고 간다. 경사, 심사가 있는데 경사는 치경을 잘 해야한다,

 

 

31-1정법안장 正法眼藏 눈과같이 중요하게 놓여있다, 정법을 눈에 비유해서 안장이라고 함, 법화경으로 치며 일승법

 

 

31-2삽삼조사, 열분 개산조 구산선문+수선사 개산조 제사를 모심

 

外無一物 而能建立 외무일물 이능건립물건 = 유와 무인데 본래 알고 보면 유무가 아닌데 망견으로 유무를 느끼는 그림자다, 그게 밖으로 한물건도 없는 것이다, 부처가 되면 유무선악에서 벗어난다, 무념이라고 한다. 중생들이 항상 시달리는게 있느냐 없느냐, 좋으냐 나쁘냐다. 깨닫고나면 비유비무 불사선불사악이다, 중생은 전부 유무다. 유무는 어리석음이 만들어낸 그림자다. 유무선악을 분별하지 않는게 무념이다. 외무일물이다, 유무선악이 없다, 유무가 아니고 비유비무다, 선을 자세히 보면 선이 아니고 악을 자세히보면 악이 아니다, 유무선악은 어리석은 마음이 만들어낸 그림자다, 이능건립 - 전부 자기가 만든다. 外無一物 而能建立. 皆是本心 生萬種法. 故 經 云心生 種種法 生. 心滅 種種法 滅외무일물 이능건립. 개시본심 생만종법. 고 경 운심생 종종법 생. 심멸 종종법 멸

 

自見本心 自成佛道 이게 남종선이다. 스승은 이렇게 하도록 하는 것이지 뭘 갖다 주는게 아니다. 삼독이 변해서 부처가 된다. 차이는 알고 모르고 차이다

 

선지를 가지고 사람을 보면 아느냐 모르느냐 그 차이다, 모르면 악할 수밖에 없다, 본래 부처는 부처인데 사견과 망상을 일으켜서 엉뚱한 짓을 한다, 본성만 바로 알면 바로 부처다.

 

 

32-1도인이 잘 머문다? 세상것에 마음을 두지 않는 것이 잘 머무는 것이다, 육근이 색성향미촉법 천지만물을 보도 듣고 느끼되 마음이 물들지 않는것이 도인의 정신세계다. 그게 어두운 밤을 비추되 등불이 어두워지는 법이 없고 연꽃이 시궁창에서 피어도 시궁창이 되는 일이 없다. 보고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견문각지를 항상하면서 세상것에 구하는 마음이나 의지하는 것이 없다. 유혹에 미혹하지 않는다. 모든 허물은 의지하고 구하는데서 생긴다. 원망할 일이 전혀 아니다. 세상것에는 구할 것도 의지할 것도 없는데 스스로 구하고 의지했다. 거기서 고통이 따른다, 불상을 보면 눈이 반쯤 감은 구하는 것이 없다. 똑바로 쳐다보고 살피는 것이 아니라 지긋이 감는... 세상에 구할 것이 없다. 목은 빳빳이 살아있다, 세상을 훤히 보고 살피되 구하지 않는다, 목은 빳빳하되 눈은 구하지 않는다. 지하철에서 눈감고 고개는 빳빳한 사람... 잠들지는 않았는데 사람에 대해 관심은 없다. 도를 하는 사람은 구하지 않는다 원리만 알면 그만이다, 사람들이 진실을 말하면 겁을 내는데 영결식에서는 전부 거짓말한다. 스님이 돌아가셨는데 불생불멸을 확인하는데 무슨 말이 필요하나, 독경 분양 배례면 족하지 말이 필요없다, 세상것 흉내내서... 망극 애통이 유가문화다, 불교는 다비식이지 영결식이 아니다. 영결은 영원히 이별한다. 도란게 올올 등등 적적 탕탕인데... 세속은 적적 탕탕이 안된다. 올올

 

32-2육조단경을 한마디로? 견성을 말한 것이 핵심이다, 종범스님은 무념을 말한 것이 핵심이다. 견성성불, 무념수행은 불교발전상 엄청난 것이다, 보조스님이 육조단경보다가 성불한 대목

 

교에서는 정념, 선에서는 망념, 수행중에는 무념수행이 으뜸, 최상승이다.

 

33-1서문 발문은 책을 만든 인연 배경 당시 상황적 이야기를 하는게 사례다.불생불멸이면 몸과 마음이 다 같이 불생불멸이다. 신심이 일여다, 온전히 불생불멸이다. 온갖 생들이 불생인게 불교의 관조적 실체다. 생생이 무생이다. 인연법을 깨닫는다는 것은 생생이 무생이란걸 깨닫는 것이다. 생사의 견이 사견이다.

 

해탈 - 성상융회다, 일상 평범한 속에 해탈이 있는게 성상융회다. 물에서 얼음으로 얼음에서 물로... 평범함 속에 오묘함이 있는게 성상융회지 평범함과 다른 별개를 찾으면 두가지 견해다. 죽는것 자체가 안 죽는 것이지 죽는것을 떠나서 안죽는게 있는게 아니다, 중생들은 상만보지 성을 못보니까... 유무단상에 떨어진 것이다, 태어난것 자체가 안태어난 것이다.

 

불교의 생사해탈이 관조능력을 확대해서 잘 봐서 묘하게 생사에서 벗어났다. 묘즉생사자성은 오고 감이 없지만 현상은 오고간다, 생사해탈이 묘출생사다, 성상융회, 상에서 성을 보고 성에서 상을보고... 생사속에서 생사를 면하니 묘출생사다.

 

책을 사상적인 해제가 없다. - 맨처음 불성을 들고 나옴, 사람엔 남북이 있지만 불성엔 남북이 없다. 사람은 그냥 사람이 아니고 불성의 사람이다.- 불교에서 계율이 중요한데 무상계를 말한다, 소승에는 상계를 이야기한다, 대승에는 원계(원할원) 단경엔 무상계(상이 없다) 자성청정한 마음대로 한다, 혁명이다. - 불은 자성불이다. 행동은 반야행, 반야행은 일행삼매성용(본성과 작용)자재를 말한다 - 불성인, 자성불 무상계 인계불행이 성용자재, 자성불 반야행 무상계 불성인이 성용자재인데 성용자재가 무념 무상 무주를 표현한 것이다. 무념은 생각을 하면서 좋아하고 싫어함이 없다, 생각속에서 생각이 없다. 무상은 많은 현상속에서 상에 집착하지 않는다.무주 - 행주좌와 속에서 애증심을 안일으킨다.

 

무념은 견문각지 일상의 감각속에서 물들지 않는다. 무념 무상무주 그게 성용자재고 해탈이고 반야행이고 불성이다. 유마경 금강경 능엄경 열반경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불성 반야가 합쳐진게 자성불이다. 송대이후에 게송이 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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