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수행법(간화선)

[스크랩] [간화선] 간화선에서 말하는 삼매란 무엇인가?

수선님 2019. 2. 3. 11:23
삼매의 여러 가지 정의와 간화선에서 말하는 삼매

삼매三昧는 산스크리트어 사마디samadhi에서 나온 말로 심신일여心身一如나 몰아일체沒我一切의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이것은 나와 대상이 하나가 되어 맑고 고요하며 흔들림이 없는 경지를 말한다. 내 생각의 자취는 사라지고 오로지 있는 그대로의 실상이 명료하고 밝게 드러난 상태이다. 이러한 상태를 마음이 한 가지 대상에 집중하여 고요히 명상에 잠긴다 하여 정定이라고도 한다.

삼매를 통하지 않으면 지혜가 현전하지 않기에 불교에서는 이 삼매의 작용을 매우 중요시 한다. 여기에서 삼매를 초기불교의 삼매, 대승불교의 삼매, 그리고 간화선의 삼매로 나누어 간략히 설명해 보겠다.

초기불교나 부파불교에서는 마음을 어느 한 대상에 집중해서 그것과 하나가 되는 것을 강조했다. 이것을 심일경성心一境性이라 한다. 다시 말하면 ‘의식을 하나의 대상에만 몰두하여 번뇌가 사라진 평화롭고 안락한 상태에 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또한 ‘평등한 마음을 한결같이 유지해 나가는 상태’를 일컫는다. 그래서 삼매를 ‘등지等持’라고도 번역한다. 이러한 삼매의 의미가 삼매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로 정착된 것이다.

대승불교에서는 삼매를 더욱 심화 발전시켜 다양한 형태의 삼매가 나타나게 된다. 예를 들면 염불을 통한 정신 집중의 과정을 거쳐 부처님을 보게 되는 반주삼매槃住三昧, 바람이 잔 고요한 바다 위에 삼라만상이 그대로 드러남과 같은 명증한 의식세계를 경험하는 해인삼매(海印三昧), 번뇌를 쳐부수는 용맹견고한 삼매로 수능엄삼매首陵嚴三昧 같이 경전에 따라 수많은 삼매가 있으며, 이 같은 삼매는 부파불교에서 말하는 삼매와는 달리 적적과 성성이 함께 아우러져 쌍차쌍조雙遮雙照하는 삼매이다.

간화선에서는 화두삼매를 강조한다. 나와 화두가 하나되어 화두가 순일해지는 것이다. 이 말은 화두를 대상화하여 관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화두가 하나가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것은 화두에 몰입되어 화두와 내가 한 덩어리가 되어 놓을래야 놓을 수 없고 버릴래야 버릴 수 없는 은산철벽의 경지에 들어야 비로소 온전한 화두삼매라 할 수 있다. 이 상태에서 화두를 타파하면 지혜가 바로 나온다. 구름이 걷히면 바로 해가 나오는 이치와 같다. 이렇게 화두를 타파해서 돈오하게 되면 혜능 선사가 말하는 일상삼매一相三昧인 것이다.


선에서 강조하는 궁극적인 삼매의 경지

선종에서 중시한 삼매에는 일상삼매一相三昧와 일행삼매一行三昧가 있다. 이러한 삼매는 잘못된 수행자들이 말하는 일반적인 삼매와는 다르다. 흔히 하는 일과 하나가 되는 것을 삼매라고 한다. 예를 들어 독서삼매나 영화삼매 등을 말한다. 이러한 삼매는 대상에 붙들려 있으면서 사유하는 삼매라서 개개의 대상에 열중하여 그것과 하나가 되지만 이는 선종에서 말하는 생각의 길 말의 길이 끊어진 삼매는 결코 아닌 것이다.

선에서 말하는 삼매는 소리의 경계에서도 소리에 물들지 않고 물질의 경계에서도 그것에 물들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삼매가 혜능 선사가 말하는 일상삼매요 일행삼매이다. 돈황본 『육조단경』에서 혜능 선사는 이렇게 말한다.

일행삼매란 일상시에 가거나 머물거나 앉거나 눕거나 항상 곧은 마음을 행하는 것이다. 『정명경』에 말하기를 “곧은 마음이 도량이요 곧은 마음이 정토다”라고 하셨다. 마음에 아첨하고 굽은 생각을 가지고 입으로만 법의 곧음을 말하지 말라. 입으로는 일행삼매를 말하면서 곧은 마음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부처님 제자가 아니다. 오직 곧은 마음으로 행동하여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는 것을 일행삼매라고 한다. 그러나 미혹한 사람은 법의 모양에 집착하고 일행삼매에 국집하여 앉아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 일행삼매라고 한다. 만약 이와 같다면 이 법은 무정과 같은 것이므로 도리어 도를 장애하는 인연이다.

一行三昧者 於一切時中 行住坐臥 常行直心是. 淨名經 云 直心是道場 直心是淨土. 莫心行諂曲 口說法直. 口說一行三昧 不行直心 非佛弟子. 但行直心 於一切法 無上有執箸 名一行三味 迷人 著法相 執一行三味 直心坐不動 除妄不起心 卽是一行三昧. 若如是此法 同無情 却是障道因緣. - 돈황본 『壇經』


또한 『육조단경』 덕이본의 『부촉품付囑品』에서는 일상삼매에 대하여

"일체처에 처하더라도 상相에 머물지 않고 설사 상相을 취했더라도 미워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내지 말아야 한다. 또한 취하고 버리지 말 것이며 이익이 있다든가 이익이 없다든가 또는 성취가 된다든가 허물어진다든가 하는 것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저 편안하고 고요하고 안온하며 텅 비어 있는 듯이 담박澹泊하게 되면 이러한 경계를 일상삼매라고 한다." 라고 했다.

이와 같이 일상삼매와 일행삼매는 육조 혜능 선사가 크게 강조하였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곧은 마음인 직심을 쓰는 삶이다. 그래서 만물과 더불어 요요상지了了常知하고 적적성성寂寂惺惺하여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것이다. 임제 스님이 말한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隨處作主, 선 자리마다 모두 진리立處皆眞인 경지’가 이러한 궁극적인 삼매의 상태를 일컫는다. 끝으로 임제 선사가 말한 사료간四料簡의 예를 들어 선에서 말하는 궁극적인 삼매의 경지를 거듭 밝혀 둔다.

첫째, 어느 때는 사람(주관)은 빼앗고 경계(객관)는 빼앗지 않는다. 奪人不奪境
둘째, 어느 때는 경계는 빼앗고 사람은 빼앗지 않는다. 奪境不奪人
셋째, 어느 때는 사람과 경계를 함께 빼앗는다. 人境俱奪
넷째, 어느 때는 사람과 경계를 모두 빼앗지 않는다. 人境俱不奪


이것을 순차적으로 설명하자면 주관은 없고 객관만 있는 경우, 객관은 없고 주관만 있는 경우, 주객이 모두 사라진 경우, 주객의 양변이 모두 사라진 청정한 상태에서 다시 주객의 작용을 일으켜 어디에도 걸리지 아니하고 자유자재한 경우를 말한다. 이 양변을 여읜 청정한 상태를 대기원응大機圓應이라고 하고, 그 청정한 상태가 작용하는 것을 대용직절大用直截이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경지에 이르면 활발발하고 무애자재한 대자유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출처 : 通達無我法者
글쓴이 : CD굽던노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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