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가자들의 화두 공부법
자신의 본래 면목을 찾는 참선 수행의 길에 출·재가의 구별이란 있을 수 없다. 중생은 모두 본래 부처이기 때문이다. 혜능 선사가 말했듯이 불법에는 남북이 따로 없으며 불성에는 어떠한 차별도 없다. 우리 모두가 그대로 부처다. 그 부처 자리에는 인종이니, 성별이니, 출가니 재가니 하는 구별은 이미 없다. 또한 간화선은 일상생활 속에서 화두 공부를 하는 것이 그 특징인 바, 재가 생활인도 발심만 되었다면 얼마든지 공부할 수가 있는 것이다.
화두 공부에 입문한 초심자는 먼저 부처님 법에 대한 확고한 가치관을 세우고 진정한 발심을 일으켜야 한다. 이러한 발심이 이루어졌다면 선지식을 찾아 화두를 받고 화두참구의 방법을 바르게 배워야 한다. 이렇게 선지식으로부터 화두를 받은 사람은 우선 아침저녁마다 삼 십분씩 매일매일 규칙적으로 참선하는 것이 좋다. 이것도 초심자에게는 보통 힘든 게 아니다. 그러나 발심이 된 이들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초심자들은 화두를 드는데 큰 힘을 기울여야 한다. 화두를 드는 동안에 어떤 빈틈이라도 허용하게 되면 그 빈틈으로 온갖 망상이 비집고 들어온다. 조금만 정신을 놓치게 되면 마음은 십만 팔천 리 벗어나 과거에서 미래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편다. 순식간에 세상을 창조하기도 하고 부수기도 한다. 온갖 기억들과 세상잡사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어온다. 이것은 망상에 빠지는 것이지 화두를 드는 게 아니다.
초심자들은 이러한 망상에 끄달리지 않을 경우 대부분 혼침과 수면에 빠져들고 만다. 졸음이 몰려와 고개를 끄덕이기 십상이다. 그래서 천근 바위보다 무거운 것이 눈꺼풀이라고까지 한다. 초심자들은 이렇게 망상과 혼침이 올 수 없도록 화두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처음 시작할 때 삼십분 동안 화두 드는 힘이 길러졌다면 삼십분 더 늘려 조석으로 한 시간, 하루에 두 시간씩 참선하는 것이 좋다. 이것이 어렵다면 하루 한 시간도 좋다. 향 한 개 타는 시간이 약 한 시간 정도 걸린다. 그러니 향 한 개를 사루어 한 시간씩 좌선 삼매에 들어 보면 이 공부가 얼마나 좋은지 스스로 체험하게 된다. 아침 좌선도 좋지만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잠깐이라도 좌선을 한다면 더 없이 평화롭고 온화한 하루의 마무리가 될 것이다.
출퇴근 시간이나 사람을 기다리면서도 그냥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거나 망상에 끄달리지 말고 화두를 들어라. 망상이 올라 올 때도 그 망상을 피우는 자리에다 화두를 들어라. 우리는 이 망상에 마음을 빼앗겨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마음을 괴롭히기 십상이다. 부질없는 걱정으로 공든 탑을 부수기도 하고 이유없이 상대방을 미워하기도 한다. 스스로 만든 생각에 혼자서 괴로워하는 꼴이다. 어찌 보면 하루 종일 이러한 망상으로 스스로 학대하고 괴로움을 주고 받는다. 그러니 자신을 괴롭히는 그 망상 자리에다 화두를 들어야 한다. 그러면 망상도 사라지고 그 망상에 허비하던 힘이 화두를 드는 힘으로 전환되어 화두가 더 잘 들리게 된다.
이렇게 해서 평소에 한 두 시간 정도 좌선하는 것이 규칙적으로 자리를 잡게 되고 빈 시간을 이용하여 화두를 드는 것도 일상화되면, 한 달이나 두 달에 한 번씩 절이나 시민선방에서 개최하는 철야정진에 참여해 보는 것이 좋다. 평소에 바쁜 일상 속에서 한 시간 정도 좌선하던 분들이 철야정진을 통해 끊임없이 일어나는 번뇌 망상과 쏟아지는 졸음과 저려오는 다리의 통증을 극복하면서 밤세워 좌선에 하는 것은 쉽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그 힘겨운 철야정진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한 시간 정도의 참선은 훨씬 수월히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한 철야 정진을 통해 여러 도반이나 좋은 스승을 만나 수행 체험을 탁마하여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공부의 경계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재가불자들의 경우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한 시간 내지 두 시간 정도만 간절하게 좌선한다면 수행은 저절로 익어갈 것이다. 대혜 스님도 『서장』에서 “화두를 들고 아침저녁으로 공부한다는 것은 너무나 좋고 좋은 일(唯朝夕以某向所擧話頭提 甚善甚善)”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하루도 거르지 말고 날마다 좌선에 들기를 권한다. 밥을 거를 수 없듯이 규칙적으로 하루하루 좌선 수행을 해 보라. 공부에 힘을 얻게 되고 망상이 사라지고 번뇌는 점차 줄어들 것이다. 설사 화두를 타파할 수 없더라도 선정의 힘이 쌓이면 마음이 안정되어 삶에 중심이 잡히고 집중력도 향상된다. 또한 망상이 제거되기에 모든 일을 두려움 없이 활기차게 해 나갈 수 있고 창의적인 영감으로 충만된 삶을 살아나갈 수가 있다.
일하면서 화두를 들 수 있는가?
재가자들이 일하면서도 화두를 들 수 있을까? 재가자 가운데는 이 문제와 관련해서 궁금증을 갖는 분이 많다. 흔히 화두를 들려면 그 화두에 온 몸과 정신이 집중되어야 하니 일을 하거나 운전을 하면서 동시에 화두를 드는 것이 불가능하리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대혜 선사는 가고 머물며 앉고 눕는 행주좌와의 일상생활 속에서 화두를 놓치지 말라고 한다. 대혜 선사뿐 아니라 많은 선사들이 일상사가 바로 도 아님이 없다고 했다. 바로 우리가 밥 먹고 출근하여 사무를 보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 바로 도와 둘이 아니어야 한다. 즉 일상 생활에서도 간단없이 화두를 들 수 있다는 뜻이다. 조용한 곳에서 화두 드는 힘이 길러진 공부인은 오고 가는 움직일 때나 설거지 할 때, 운전할 때, 차마시고 밥 먹을 때도 부단히 화두를 들 수가 있다.
그러나 일을 하면서 화두를 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일에 몰두하다보면 그 일에 정신이 집중되어 화두가 들리지 않을 때가 많다. 하지만 아침저녁으로 또는 출퇴근 시간이나 빈 시간을 이용하여 꾸준히 화두를 들다보면 그 화두에 대한 의정이 생겨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마음 깊숙한 곳에서 무심하게 화두가 들리기 시작한다.
대혜 선사는 화두가 일상적 삶 속에서 벌어지는 대상이나 경계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책상 위에서 글이나 문서를 보면서 여유를 가져야 하며, 일을 하면서 사물과 서로 마주칠 때 그것을 잘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고요한 곳에 머물면서 망상에 빠지지 않으며, 일을 체득하여 궁구窮究함에 잡념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렇게 오래 오래하다 보면 기쁜 소식이 올 날이 도래할 것이라 했다.
그래서 대혜 선사는 『서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밖에 때때로 ‘조주무자’ 화두로 공부하십시요. 오래오래 순숙하노라면 자연히 무심해져 칠통같은 의심을 타파하게 될 것이니 바로 이것이 사무치는 곳입니다.
此外 時時以趙州無字提. 久久純熟 自然無心 打破漆桶 便是徹頭處也. - 『書狀』 『答樓樞密』
특별한 방법은 없다. 이렇게 일상생활을 해 나가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화두를 빈틈없이 지어나간다면 일이 곧 화두며 화두가 곧 일로 자리 잡히게 된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화두가 익어서 오이꼭지 떨어지듯 확철대오하는 시절이 올 것이다. 화두를 들다 한 고비를 넘기면 마음이 그저 청량하고 새털처럼 가벼워진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하루하루 힘차게 정진해 나가길 바란다.
자신의 본래 면목을 찾는 참선 수행의 길에 출·재가의 구별이란 있을 수 없다. 중생은 모두 본래 부처이기 때문이다. 혜능 선사가 말했듯이 불법에는 남북이 따로 없으며 불성에는 어떠한 차별도 없다. 우리 모두가 그대로 부처다. 그 부처 자리에는 인종이니, 성별이니, 출가니 재가니 하는 구별은 이미 없다. 또한 간화선은 일상생활 속에서 화두 공부를 하는 것이 그 특징인 바, 재가 생활인도 발심만 되었다면 얼마든지 공부할 수가 있는 것이다.
화두 공부에 입문한 초심자는 먼저 부처님 법에 대한 확고한 가치관을 세우고 진정한 발심을 일으켜야 한다. 이러한 발심이 이루어졌다면 선지식을 찾아 화두를 받고 화두참구의 방법을 바르게 배워야 한다. 이렇게 선지식으로부터 화두를 받은 사람은 우선 아침저녁마다 삼 십분씩 매일매일 규칙적으로 참선하는 것이 좋다. 이것도 초심자에게는 보통 힘든 게 아니다. 그러나 발심이 된 이들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초심자들은 화두를 드는데 큰 힘을 기울여야 한다. 화두를 드는 동안에 어떤 빈틈이라도 허용하게 되면 그 빈틈으로 온갖 망상이 비집고 들어온다. 조금만 정신을 놓치게 되면 마음은 십만 팔천 리 벗어나 과거에서 미래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편다. 순식간에 세상을 창조하기도 하고 부수기도 한다. 온갖 기억들과 세상잡사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어온다. 이것은 망상에 빠지는 것이지 화두를 드는 게 아니다.
초심자들은 이러한 망상에 끄달리지 않을 경우 대부분 혼침과 수면에 빠져들고 만다. 졸음이 몰려와 고개를 끄덕이기 십상이다. 그래서 천근 바위보다 무거운 것이 눈꺼풀이라고까지 한다. 초심자들은 이렇게 망상과 혼침이 올 수 없도록 화두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처음 시작할 때 삼십분 동안 화두 드는 힘이 길러졌다면 삼십분 더 늘려 조석으로 한 시간, 하루에 두 시간씩 참선하는 것이 좋다. 이것이 어렵다면 하루 한 시간도 좋다. 향 한 개 타는 시간이 약 한 시간 정도 걸린다. 그러니 향 한 개를 사루어 한 시간씩 좌선 삼매에 들어 보면 이 공부가 얼마나 좋은지 스스로 체험하게 된다. 아침 좌선도 좋지만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잠깐이라도 좌선을 한다면 더 없이 평화롭고 온화한 하루의 마무리가 될 것이다.
출퇴근 시간이나 사람을 기다리면서도 그냥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거나 망상에 끄달리지 말고 화두를 들어라. 망상이 올라 올 때도 그 망상을 피우는 자리에다 화두를 들어라. 우리는 이 망상에 마음을 빼앗겨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마음을 괴롭히기 십상이다. 부질없는 걱정으로 공든 탑을 부수기도 하고 이유없이 상대방을 미워하기도 한다. 스스로 만든 생각에 혼자서 괴로워하는 꼴이다. 어찌 보면 하루 종일 이러한 망상으로 스스로 학대하고 괴로움을 주고 받는다. 그러니 자신을 괴롭히는 그 망상 자리에다 화두를 들어야 한다. 그러면 망상도 사라지고 그 망상에 허비하던 힘이 화두를 드는 힘으로 전환되어 화두가 더 잘 들리게 된다.
이렇게 해서 평소에 한 두 시간 정도 좌선하는 것이 규칙적으로 자리를 잡게 되고 빈 시간을 이용하여 화두를 드는 것도 일상화되면, 한 달이나 두 달에 한 번씩 절이나 시민선방에서 개최하는 철야정진에 참여해 보는 것이 좋다. 평소에 바쁜 일상 속에서 한 시간 정도 좌선하던 분들이 철야정진을 통해 끊임없이 일어나는 번뇌 망상과 쏟아지는 졸음과 저려오는 다리의 통증을 극복하면서 밤세워 좌선에 하는 것은 쉽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그 힘겨운 철야정진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한 시간 정도의 참선은 훨씬 수월히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한 철야 정진을 통해 여러 도반이나 좋은 스승을 만나 수행 체험을 탁마하여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공부의 경계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재가불자들의 경우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한 시간 내지 두 시간 정도만 간절하게 좌선한다면 수행은 저절로 익어갈 것이다. 대혜 스님도 『서장』에서 “화두를 들고 아침저녁으로 공부한다는 것은 너무나 좋고 좋은 일(唯朝夕以某向所擧話頭提 甚善甚善)”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하루도 거르지 말고 날마다 좌선에 들기를 권한다. 밥을 거를 수 없듯이 규칙적으로 하루하루 좌선 수행을 해 보라. 공부에 힘을 얻게 되고 망상이 사라지고 번뇌는 점차 줄어들 것이다. 설사 화두를 타파할 수 없더라도 선정의 힘이 쌓이면 마음이 안정되어 삶에 중심이 잡히고 집중력도 향상된다. 또한 망상이 제거되기에 모든 일을 두려움 없이 활기차게 해 나갈 수 있고 창의적인 영감으로 충만된 삶을 살아나갈 수가 있다.
일하면서 화두를 들 수 있는가?
재가자들이 일하면서도 화두를 들 수 있을까? 재가자 가운데는 이 문제와 관련해서 궁금증을 갖는 분이 많다. 흔히 화두를 들려면 그 화두에 온 몸과 정신이 집중되어야 하니 일을 하거나 운전을 하면서 동시에 화두를 드는 것이 불가능하리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대혜 선사는 가고 머물며 앉고 눕는 행주좌와의 일상생활 속에서 화두를 놓치지 말라고 한다. 대혜 선사뿐 아니라 많은 선사들이 일상사가 바로 도 아님이 없다고 했다. 바로 우리가 밥 먹고 출근하여 사무를 보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 바로 도와 둘이 아니어야 한다. 즉 일상 생활에서도 간단없이 화두를 들 수 있다는 뜻이다. 조용한 곳에서 화두 드는 힘이 길러진 공부인은 오고 가는 움직일 때나 설거지 할 때, 운전할 때, 차마시고 밥 먹을 때도 부단히 화두를 들 수가 있다.
그러나 일을 하면서 화두를 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일에 몰두하다보면 그 일에 정신이 집중되어 화두가 들리지 않을 때가 많다. 하지만 아침저녁으로 또는 출퇴근 시간이나 빈 시간을 이용하여 꾸준히 화두를 들다보면 그 화두에 대한 의정이 생겨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마음 깊숙한 곳에서 무심하게 화두가 들리기 시작한다.
대혜 선사는 화두가 일상적 삶 속에서 벌어지는 대상이나 경계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책상 위에서 글이나 문서를 보면서 여유를 가져야 하며, 일을 하면서 사물과 서로 마주칠 때 그것을 잘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고요한 곳에 머물면서 망상에 빠지지 않으며, 일을 체득하여 궁구窮究함에 잡념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렇게 오래 오래하다 보면 기쁜 소식이 올 날이 도래할 것이라 했다.
그래서 대혜 선사는 『서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밖에 때때로 ‘조주무자’ 화두로 공부하십시요. 오래오래 순숙하노라면 자연히 무심해져 칠통같은 의심을 타파하게 될 것이니 바로 이것이 사무치는 곳입니다.
此外 時時以趙州無字提. 久久純熟 自然無心 打破漆桶 便是徹頭處也. - 『書狀』 『答樓樞密』
특별한 방법은 없다. 이렇게 일상생활을 해 나가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화두를 빈틈없이 지어나간다면 일이 곧 화두며 화두가 곧 일로 자리 잡히게 된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화두가 익어서 오이꼭지 떨어지듯 확철대오하는 시절이 올 것이다. 화두를 들다 한 고비를 넘기면 마음이 그저 청량하고 새털처럼 가벼워진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하루하루 힘차게 정진해 나가길 바란다.
출처 : 通達無我法者
글쓴이 : CD굽던노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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