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만일 지계바라밀을 행할 때에 어떤 사람이 와서 세벌의 옷과 발우를 달라고 했을 때, 만일 준다면 계를 훼손하게 된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주지 않는다면 보시바라밀의 정진을 깨뜨리거늘 어찌하여 다섯 가지를 두루 행한다 하는가? |
[답] 새로이 행하는 보살이 한 세상, 한 시간에 다섯 가지 바라밀을 두루 행하기 어렵다.
예컨대 보살이 보시바라밀을 행할 때에 호랑이가 굶주린 나머지 자신의 새끼를 잡아먹으려는 것을 보자 곧 가엾은 마음을 일으켜 자신을 보시했다.
보살의 부모는 자식을 잃은 까닭에 근심하고 슬퍼하다가 두 눈이 어두워지고, 호랑이는 보살을 죽였으므로 역시 죄를 짓게 되었다.
하지만 부모의 슬픔과 호랑이의 살생의 죄에 대해 그 무게를 잴 필요는 없으니, 오직 보살은 보시바라밀을 원만히 성취해 복덕을 얻고자 한 것이다. |
또한 어떤 비구들이 계행을 행하는데, 일의 경중을 좇아 법을 범하면 배척한다.
배척받은 비구는 몹시 근심하고 괴로워하나니, 다만 계행을 지니게 하려 할 뿐 그의 괴로움을 연민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세속의 반야를 행하기 위하여 자비의 마음을 쉬는 경우가 있다. |
예컨대 석가모니 보살이 전생에 큰 나라의 태자로 태어나셨는데, 부왕(父王)에게 범지 스승이 있었다. 그는 오곡을 먹지 않으므로 많은 사람들은 공경히 믿어 기특하다 여겼으나 태자는 생각했다. |
‘사람은 4대(大)로 된 몸을 가지고 있으니, 반드시 오곡을 의지하여야 하거늘 이 사람은 먹지 않는다 하니, 반드시 사람들의 마음을 흘리려는 것이요 참 법이 아닐 것이다.’ |
그의 부모가 태자에게 말했다. |
“이 사람은 정진하여 오곡을 먹지 않으니, 이 세상에 드문 일이다. 너는 어찌 그다지도 어리석어서 공경치 않느냐.” |
태자는 대답했다. |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이 사람은 멀지 않아 증거가 저절로 나타날 것입니다.” |
그때 태자는 그 사람이 사는 곳을 찾아가 숲에 이르렀다. 숲 속에서 소 먹이는 사람에게 묻기를 “이 사람이 무엇을 먹더냐?” 하니, 소 먹이는 사람이 말하기를 “이 사람은 밤중마다 약간의 소락을 마시고는 생명을 지탱합니다”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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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자가 이런 사실을 알고는 궁으로 돌아와서 그의 증험을 드러내고자 곧 설사를 일으키는 갖가지 약초를 모았다. 그리고는 그것들을 태워 연기를 청련화에 베어들게 했다. |
쾌청한 아침에 범지가 궁에 들어와서는 왕의 곁에 앉았다. 태자는 손수 이 꽃을 가지고 와서 공양하고 절을 하고는 범지에게 바쳤다.
범지는 기뻐하면서 생각했다. |
‘왕과 부인과 그리고 내외의 높고 낮은 이들이 모두 나를 공경하는데 오직 태자만이 공경하지도 믿지도 않더니, 오늘에야 좋은 꽃으로 공양하니, 실로 더 없이 좋은 일이로다.’ |
그리고는 그 좋은 꽃을 받아들고 경소(敬所)로 와서는 꽃을 들어 코에 대고 향기를 맡았다. 그러자 꽃에 묻은 약기운이 뱃속으로 들어가서 잠깐 사이에 뱃속에서 약기운이 발동하니 변소를 찾았다. |
이에 태자가 물었다. |
“범지께서는 아무것도 먹지 않거늘 무슨 이유로 변소엘 가는 것이오?” |
이 말에 황급히 변이 나오려는 것을 막으니, 그만 왕 옆에 토해버리고 말았다. 토사물 가운데에는 타락[酪]도 보였다. |
이와 같이 해서 증거가 드러났으니, 결국 왕과 부인은 그가 속였음을 알게 되었다. 태자는 말했다. |
“이 사람은 참으로 도적입니다. 명예를 구하려 한 나라를 속였습니다.” |
이처럼 세속의 반야를 행하면서 오직 지혜가 원만해지기를 바라니,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남의 미워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
혹은 때로 보살은 출세간의 지혜를 행해 계를 지니거나 보시를 함에 있어서 마음이 오염되어 집착되지 않는다.
그것은 왜냐하면 베푸는 이․받는 이․베풀어지는 재물이나 죄․죄 아님, 성냄․성내지 않음, 정진․태만에 대해서 마음을 거두어 산란한 마음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
다시 보살의 정진바라밀은 일체법이 불생불멸과 항상하지 않고 무상하지 않으며, 고도 아니고 낙도 아니며, 빈 것도 아니고 실한 것도 아니며, 나도 아니고 무아도 아니며, 하나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며,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니어서 일체의 법은 인연화합한 것으로 다만 이름이 있을 뿐 실상은 얻을 수 없음을 안다. |
[635 / 2071] 쪽 |
보살은 이와 같이 관찰하면서 일체의 유위법은 모두 거짓됨을 알고 마음이 그치어 지으려 하지 않으며, 그 마음을 멸하고자 하여 오로지 적멸로써 안온을 삼는다. |
이때 본원을 기억하고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까닭에 다시 보살의 법을 실천하여 모든 공덕을 모으는 것이다. |
보살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비록 모든 법이 거짓됨을 아나, 중생들은 이 일을 알지 못한 채 5도 가운데서 고통을 받고 있다. 나는 마땅히 6바라밀을 갖추고 행하리라’ 한다. |
보살은 과보로서 신통을 얻고 또한 불도ㆍ32상ㆍ80종호와 일체의 지혜ㆍ대자대비ㆍ걸림 없는 해탈ㆍ10력ㆍ4무소외ㆍ18불공법ㆍ3달(達) 등의 무량한 부처님의 특성[法]을 얻는다. |
이때에 일체 중생이 모두 맑은 믿음을 얻으며, 모두가 능히 불법을 받아들이고 실천하고 원하며 이 일을 완수하게 되니 이는 정진바라밀의 힘이다. |
이런 것이 정진바라밀이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다. |
이때 보살은 정진하되 몸도 보지 않고 마음도 보지 않는다. 곧 몸으로 짓는 바가 없고 마음으로는 생각하는 바가 없어서 신심이 한결 같아 분별이 없다. |
불도를 구함은 그로써 중생을 건지려 함이니, 중생은 차안(此岸)이고 불도는 피안이라 보지 않는다. |
일체의 몸과 마음으로 짓는 바를 놓아버리니, 마치 꿈속에서 지은 바가 깨어나면 아무것도 없듯이 한다. |
이것을 일컬어 적멸이라 하며, 정진하는 까닭에 바라밀이라 한다. 왜냐하면 일체의 정진이 모두 삿되고 거짓됨을 알기 때문이다. |
일체의 지어진 것은 모두 허망하고 실답지 않으니, 마치 꿈같고 허깨비 같다. |
모든 법이 평등하다는 것만이 진실이니, 평등한 법 가운데에는 구하고 찾는 일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일체의 정진이 모두 허망함을 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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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정진이 허망함을 알면서도 항상 성취하여 물러서지 않으니, 이것을 일컬어 보살의 참된 정진이라 하는 것이다. |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
“나는 무량한 겁 가운데, 머리ㆍ눈ㆍ뇌수를 모두 중생들에게 보시해 그들의 소원을 만족시켜주었다. 지계ㆍ인욕ㆍ선정을 닦을 때는 산림 속에서 몸이 말라 버렸다. 혹은 하루 한번만 먹어야 하는 계를 지켜 음식을 끊고, 혹은 온갖 맛[色味]을 끊고, 혹은 모욕과 폭력의 우환을 견뎌내야만 했다. 그 때문에 몸은 그을리고 고목처럼 말라버렸다. |
또한 항상 좌선하여 볕에 그을리고 이슬을 맞으면서도 열심히 고통을 참아가며 지혜를 구했다. 독송하고 사유하고 문답하고 강설하였으며, 일체법에 대해서 지혜로써 분별하여 좋고 나쁨과 추하고 섬세함과 허와 실과 다와 소를 분별했다. 한량없는 부처님들께 공양했으며, 가르침을 말씀해 주시기를 간곡히 청하고 부지런히 힘써 정진하면서 이 노력의 공덕을 구하고 다섯 바라밀을 갖추고자 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었으니, 보시ㆍ지계ㆍ선정ㆍ인욕ㆍ지혜 바라밀을 얻지 못했던 것이다. |
그런데 연등불(然燈佛)71)을 뵙고는 다섯 가지 연꽃을 그 부처님께 뿌리고 머리칼을 진흙위에 펼쳤다. 그 순간 무생법인(無生法忍)72)을 얻으니, 즉시에 육바라밀이 성취되었다. 다시 공중에 서서 게송으로 연등불을 찬탄하자 온갖 방향에서 부처님들이 보이고, 이 순간 실로 정진의 몸을 얻었던 것이다. |
정진이 평등한 까닭에 마음이 평등해지고, 마음이 평등한 까닭에 일체법이 평등해졌던 것이다.” |
이러한 갖가지 인연의 모습을 일컬어 정진바라밀이라 한다. |
71) 범어로는 Dīpaṃkara. |
72) 범어로는 anutpattika dharma-kṣānti. 일체법의 생함이 없는 이치를 인정하고 안주함. |
대지도론 187. 일체의 법은 인연화합한 것으로 다만 이름이 있을 뿐 실상은 얻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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