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

[스크랩] 대지도론 210. 아라한/벽지불의 삼매와 보살의 삼매의 차이점

수선님 2019. 2. 10. 11:50

[문] 아라한과 벽지불도 모두 맛에 집착되지 않거늘 어찌하여 선바라밀을 얻지 못하는가?

 

[답] 아라한과 벽지불은 맛에 집착되지는 않으나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없으므로 선바라밀이라 하지 못한다.

 

또한 그들은 모든 선을 다 행하지 못하지만 보살은 모든 선을 다 행한다.

 

거칠음과 미세함, 큼과 작음, 깊음과 얕음, 안의 대상과 밖의 대상 등 모두를 다 행하나니,

이런 까닭에 보살의 마음[心中]은 선바라밀이라 하거니와 다른 사람의 것은 선이라고만 한다.

 

또한 외도나 성문이나 보살이 모두 선정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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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외도의 선에는 세 가지 우환[患]이 있으니,

맛에 집착되거나 삿된 소견에 빠지거나 교만해지는 것이다.

 

성문의 선은 자비심이 얇아서 모든 법에 대해 날카로운 지혜로 모든 법의 실상을 꿰뚫어 통달치 못하고,

홀로 자기 몸만을 좋게 하여 불종자를 끊는다.

 

하지만 보살의 선에는 이러한 일이 없으니, 일체의 부처님들의 법을 모으려는 까닭에 모든 선 가운데에서 중생을 잊지 않고, 나아가서는 곤충에 이르기까지 항상 자애로운 마음으로 대한다.

 

 

 

예컨대 석가모니불은 본래 나계선인(螺髻仙人)이었는데, 이름이 상사리(尙關利)였다.

 

항상 제4선을 행해 들고나는 호흡을 끊고, 한 나무 밑에 앉아서 우뚝 움직이지 않고 있으니,

새들이 이와 같은 일을 보고는 나무로 여겨 곧 상투 속에 알을 낳았다.

 

이 보살은 선정에서 깨어나자 머리에 새알이 있음을 알고는 생각했다.

 

‘내가 만일 일어나서 움직이면 반드시 어미 새가 오지 않을 것이요,

어미 새가 오지 않으면 새알은 죽고 말 것이다.’

 

그리고는 곧 다시 선에 들어갔으니, 그로부터 알이 부화하고 자라나 날아가게 되자 선에서 일어났다.

 

 

또한 보살을 제외한 다른 사람은 욕계의 마음에서 차례차례 설정에 들지 못하거니와

보살은 선바라밀을 행하여 욕계의 마음에서 차례차례 선정에 들어간다.

 

왜냐하면 보살은 세세에 모든 공덕을 닦아 결사의 마음이 얇아지고 마음이 부드러워졌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사람은 무상관(無常觀)․고관(苦觀)․부정관(不淨觀)과 같은 총상(摠相)의 지혜를 얻어서 능히 욕망을 여의지만, 보살은 모든 법 가운데에서 능히 별상(別相)을 분별하여 욕망을 여읜다.

 

예컨대 5백 명의 선인들은 날아가다가 견타라(甄陀羅) 아가씨57)의 노랫소리를 듣자 마음이 집착되고 도취되어 모두가 신통을 잃고 일시에 땅에 떨어졌다.

  
  
  
57) 범어로는 Kiṃnarā. 곧 Kiṃnara의 여성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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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들은 긴나라왕인 돈륜마(屯崙摩)58)가 거문고를 키고 노래를 부르며 모든 법의 실상으로써 부처님을 찬탄함을 들었다. 이때 수미산과 나무들이 모두 진동하였고, 대가섭 등의 대제자들은 모두 자리에 편안히 앉아 있지 못했다.

 

여기에서 천수보살(天須菩薩)이 대가섭에게 물었다.

“그대는 나이도 가장 많고, 두타행도 으뜸인데 어찌하여 스스로 마음을 조절해 편히 있지 못하는가?”

 

대가섭이 대답했다.

“나는 인간이나 하늘의 모든 욕망에는 마음이 끌리지 않으나, 이는 보살의 한량없는 공덕으로 나타나는 소리이며 또한 지혜에서 변화되어 나온 소리인 까닭에 참을 수가 없습니다.”

 

 

마치 여덟 방향에서 바람이 불어와도 수미산을 움직일 수는 없지만,

겁(却)이 다할 때 비람풍(毘藍風)59)이 불어오면 수미산은 마치 썩은 풀같이 흔들리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이런 까닭에 알 수 있으니, 보살은 일체법 가운데 별상으로 관찰하여 모든 욕망을 여의지만

다른 사람들은 단지 선이란 이름만 얻었을 뿐 바라밀은 얻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은 보살이 들고 나는 선의 마음은 알지만,

선에 머무르는 마음이 반연하는 바와 이르는 곳을 알거나 모든 법의 깊고 얕음을 알 수는 없다.

 

아라한이나 벽지불도 알기 어렵거늘 하물며 다른 사람이겠는가.

 

비유하건대 코끼리가 물을 건너면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발자취는 볼 수 있지만 물 가운데 있을 때의 것은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가령 누군가 초선(初禪)을 얻었을 때 동일한 초선을 얻은 사람은 능히 알 수 있지만,

보살이 초선에 든 경지는 알 수가 없다.

 

어떤 사람이 2선을 얻었다면 초선의 마음을 관찰하여 분명하게 알 수는 있지만,

보살이 초선에 든 마음은 알지 못한다.

 

비유상비무상처에 이르기까지도 이와 같다.

  
  
  
58) 범어로는 Druma.
59) 범어로는 vairambhaka. 겁말ㆍ겁초에 부는 빠른 바람으로, 모든 것을 파괴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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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삼매를 뛰어넘을 때 초선에서 일어나서 제3선에 들어가고, 제3선에서 일어나서 허공처에 들어가고, 허공처에서 일어나서 무소유처에 들어간다.

 

2승(아라한/벽지불승)은 오직 하나만을 뛰어넘을 뿐 둘은 뛰어넘지 못한다.

 

하지만 보살은 자유롭게 뛰어넘어서 초선에서 일어나 3선에 들기를 예사롭게 한다.

 

혹은 제4선에 들기도 하고, 공처․식처․무소유처․비유상비무상처에 들기도 하며,

혹은 멸수상정에 들기도 하고, 멸수상정에서 일어나서 무소유처․식처ㆍ공처․4선에 들기도 하고,

나아가서는 초선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때로는 하나를 뛰어넘고, 혹은 둘이나 셋, 나아가서는 아홉을 뛰어넘는다.

 

 

성문은 두 지위를 뛰어넘지 못한다.

왜냐하면 지혜․공덕․선정의 힘이 얇기 때문이다.

 

비유하건대 두 종류의 사자와 같다.

곧 백사자와 황사자가 있으니, 황사자도 잘 뛰어넘지만 백사자에 미치지는 못한다.

 

이러한 갖가지 인연에 의해 선바라밀을 분별한다.

 

 

 

이때 보살은 항상 선정에 들어가서 마음을 거두어 요동치 않으며, 각과 관을 일으키지 않는다.

 

또한 시방의 모든 중생을 위하는 까닭에 한량없는 음성으로 설법해 주어 그들을 제도하나니,

이것을 선바라밀이라 한다.

 

 

 

 

대지도론 210. 아라한/벽지불의 삼매와 보살의 삼매의 차이점

출처 : 출리심 보리심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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