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

[스크랩] 대지도론 209. ★ 삼매에는 지극히 묘한 즐거움이 있건만, 바깥에서만 쾌락을 찾는다.

수선님 2019. 2. 10. 11:49

[문] 선바라밀이라 말해야 하거늘 어찌하여 선이라고만 하는가?

 

[답] 선은 바라밀의 근본이니, 이 선을 얻은 뒤에 관찰하기를

“중생들은 내적으로 마음속에는 갖가지 선정의 묘한 즐거움이 있건만 구할 줄 모르고,

도리어 바깥 법의 부정하고 괴로운 가운데에서 쾌락을 찾는다” 하며 연민한다.

 

이렇게 관찰하고는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내어 드넓은 서원을 세우되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가 선정의 내적인 즐거움을 얻고, 부정한 쾌락을 여의게 하리라” 한다.

 

이 선정의 즐거움에 의지해서 이어서 불도의 즐거움을 얻게 한다.

이때의 선정이 선바라밀이라는 이름을 얻는 것이다.

 

또한 이 선정에서는 맛을 받아들이지 않고 갚음을 구하지 않으며,

과보를 따라 태어나지도 않고 오직 마음을 길들이기 위한 까닭에

선에 들어가서 지혜의 방편으로 다시 욕계에 태어나 모든 중생을 제도하나니,

이때의 선을 바라밀이라 하는 것이다.

 

또한 보살이 깊은 선정에 들면 모든 하늘이나 인간이 그의 마음이 의지하고 반연하는 대상을 알 수가 없으니, 보고 듣고 지각하는 법 가운데에서 마음이 요동치 않는다.

 

『비마라힐경(毘摩羅詰經)』에서 사리불에게 연좌(宴坐)하는 법을 설명하면서 “몸에 의지하지 않고, 마음에 의지하지 않으며, 삼계에도 의지하지 않는다. 삼계 안에서 신심(身心)을 얻지 않으니, 이것이 연좌이다”고 말한 것과 같다.

  
[681 / 2071] 쪽
  

또한 어떤 사람이 선정의 쾌락이 인천(人天)의 쾌락보다 수승하다는 말을 듣고는

곧 욕망의 쾌락을 버리고 선정을 구한다면, 이는 스스로의 쾌락과 이익을 구하는 것이니 기특한 것이 못 된다.

 

보살은 그렇지 않아서 다만 중생을 위하여 자비심으로 저들을 정화시키고자 하니,

중생을 버리지 않는 것이 보살의 선이다.

 

선정 가운데에서는 모두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선에는 지극히 묘한 내적인 즐거움이 있건만, 중생들은 이것을 버리고서 밖의 쾌락을 구한다.

 

비유하건대 큰 부자인 소경이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건만 알지도 보지도 못한 채 구걸을 다니는 것과도 같다.

지혜로운 이는 그가 묘한 물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알지도 보지도 못하여 구걸을 다니는 것을 가엾이 여긴다.

 

중생들도 그와 같아서

마음속에 원래부터 갖가지 선정의 쾌락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지 못한 채 도리어 밖의 쾌락을 구한다.

 

 

 

또한 보살은 모든 법의 실상(實相)을 알기 때문에 선정에 들면 마음이 안온해져서 맛에 집착되지 않는다.

 

하지만 외도들은 비록 선정에 들더라도 마음이 편안치 않나니,

모든 법의 실상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선의 맛[禪味]에 집착하는 것이다.

 

 

 

 

 

대지도론 209. ★ 삼매에는 지극히 묘한 즐거움이 있건만, 바깥에서만 쾌락을 찾는다.

출처 : 출리심 보리심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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