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경에 말씀하시기를 “먼저 각관(覺觀)의 사유가 있은 뒤에야 능히 설법을 한다” 했다. 선정에 들어가 언어의 생각[覺觀]이 없다면 설법도 하지 못한다. 그런데 지금 그대는 어찌하여 말하기를 “항상 선정 가운데에서 각관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중생들을 위하여 설법한다” 하는가? |
[답] 생사하는 사람의 법이란 선정에 들어가 먼저 말로써 언어의 각관을 일으키게 한 뒤에 설법을 하지만, 법신 보살(法身菩薩)은 생사의 몸을 여의고, 일체법을 알아 항상 머무르기를 선정의 모습같이 머물며, 어지러움이 없음을 본다. |
법신 보살은 한량없는 몸으로 변화해 나타나서 중생들에게 설법하지만 보살의 마음에는 분별이 없다. |
예컨대 마치 아수라의 거문고와도 같으니, 항상 저절로 소리가 나서 마음을 좇아 울릴 뿐, 아무도 거문고를 켜는 이는 없다.
이것은 또한 마음을 흩어뜨림도 없고, 마음을 거둠도 없다. 오직 복덕의 댓가로 생겨난 까닭에 사람들의 마음에 따라 소리를 낼 뿐이다. |
법신 보살도 그와 같아서 분별이 없고, 마음을 흩어뜨림도 없고, 법을 설한다는 모습도 없다. 이는 한량없는 복덕과 선정ㆍ지혜의 인연 때문이다. |
이 법신 보살은 갖가지 법음(法音)을 그 응함을 좇아 알맞게 표현해 내나니, 인색하고 탐욕스런 자는 주로 보시의 소리를 듣고, 계를 파한 자ㆍ성내는 자ㆍ게으른 자ㆍ어지러운 자ㆍ어리석은 자는 제각기 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의 말씀으로 듣는다. |
이런 법음을 듣고는 제각기 사유해, 차츰 3승으로써 해탈을 얻게 되는 것이다. |
또한 보살은 일체법의 어지러움과 안정된 모습이 모두가 둘 아닌 모습[不二相]으로 관찰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지러움을 제하고서 안정을 구하려 한다.
왜냐하면 어지러운 법에 대하여는 성냄의 생각을 일으키고, 안정된 법에 대하여는 애착하는 생각을 내기 때문이다. |
예컨대 울타라가(鬱陀羅伽)61) 선인은 5신통을 얻고서 날마다 왕궁으로 날아가서 음식을 먹었다. |
이때 왕의 대부인(大夫人)이 그 나라의 국법에 따라 선인의 발을 잡고 절을 하였는데 부인의 손이 닿자마자 신통을 잃었다. |
왕에게 말과 수레를 달라고 하여 거마를 타고 나와 본래 살던 곳으로 돌아와서는 숲 속으로 들어가서 다시 5신통을 구하는데 일심으로 전일하게 애를 썼다. |
곧 신통이 얻어지려는 무렵에 새가 나무 위에서 급하게 울어 그의 생각을 어지럽히니, 그는 나무를 버리고 다시 물가로 갔다. |
61) 범어로는 Udraka-Rāmaputra |
[686 / 2071] 쪽 |
그러나 그곳에는 물고기들이 싸워 물을 흔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선정을 구해도 얻을 수 없게 되자 성을 내었다. |
“새와 물고기를 모두 죽여 버릴 테다.” |
그 사람은 얼마 뒤에 사유해서 정(定)을 얻으니, 비유상비무상처에 태어났는데, 거기에서 수명이 다한 뒤 아래 세상에 태어나자 날아다니는 삵이 되어 물고기와 새를 다 죽여 한량없는 죄를 짓고는 3악도에 떨어졌다. |
이것이 선정에 집착의 마음을 일으킨 인연이다. 이는 외도의 경우이고, 불제자의 예도 있다. |
예컨대 어떤 비구가 4선을 얻었을 때 증상만(增上慢)을 내어 네 가지 도[四道]를 얻었다고 여겼다.
곧 초선정을 얻고는 수다원(須陀洹)62)을 얻었다 하고, 제2선을 얻고는 사다함(斯陀含)63)을 얻었다 하고, 제3선을 얻고는 아나함(河那含)64)을 얻었다 하고, 제4선을 얻고는 아라한(阿蘿漢)65)을 얻었다 하였는데, 이를 믿고 멈추어 더 정진하지 않았다. |
목숨이 다하려 할 때 4선 세계의 중음상(中陰相)66)이 앞에 나타나는 것을 보자, 문득 ‘열반이란 없는 것인데 부처님은 나를 속였다’라며 삿된 소견을 일으켰다. |
이렇게 삿된 생각을 일으킨 까닭에 4선의 중음상마저 사라지고 다시 아비지옥67)의 중음상이 나타나더니 숨이 끊어져 아비지옥에 태어났다. |
비구들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
“아무개 비구는 아련야(阿練若)에서 죽었는데 어디에 가서 태어났는지요?”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
62) 범어로는 srota āpatti. |
63) 범어로는 sakṛd-āgāmin. |
64) 범어로는 anāgāmin. |
65) 범어로는 arhat. |
66) 범어로는 antarabhava. 유정이 죽은 뒤 다음 생을 받기까지의 중간적 존재를 말한다. |
67) 범어로는 avici-mahānaraka. 무간지옥(無間地獄) 혹은 무택대지옥(無擇大地獄)이라고도 한다. |
“그 사람은 아비지옥에 태어났느니라.” |
비구들이 깜짝 놀라 다시 여쭈었다. |
“그 사람은 좌선하고 계행을 지키고 했는데도 그러한지요?” |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
“이 사람은 증상만 때문에 4선을 얻자 4도를 얻었다 여겼느니라. 때문에 목숨이 마치려 할 때 4선천의 중음상을 보고는 문득 삿된 소견을 내어 생각하기를 ‘열반은 없는 것이 분명하다. 나는 아라한인데도 이제 다시 태어나야 되다니, 부처님은 거짓말쟁이다’ 하였느니라. 이때 곧 아비지옥의 중음상이 보이더니, 목숨을 마치자 곧 아비지옥에 태어났느니라.” |
그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해 주셨다. |
많이 듣고 계 지니고 선정 닦아도 |
무루의 법을 깨닫지 못하면 |
아무리 그런 공덕이 있어도 |
이 일은 믿을 것 되지 못하네. |
이 비구는 이러한 악도의 고통을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어지러운 모습을 취하면 성냄 등의 번뇌를 일으키게 되고, 선정의 모습을 취하면 역시 집착을 내게 된다. |
그러므로 보살은 어지러운 모습도 탐내지 말고, 선정의 모습도 탐내지 말아야 하나니, 어지러움과 선정은 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
이것을 선바라밀이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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