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선의 모습이란 욕망을 여의고 가리움을 제하며, 마음을 한 곳에 모으는 것이다.
이 보살은 날카로운 감관과 지혜로 관찰하기 때문에 5개에 대해 버릴 바도 없고, 선정의 모습에 취할 바도 없나니, 곧 모든 법의 모습이 공하기 때문이다. |
어찌하여 5개에 대해 버릴 바가 없는가? 곧 탐욕의 가리움이란 안에도 밖에도 중간에도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그것은 왜냐하면 만일 안에 법이 있는 것이라면 밖의 것을 기다려서 생긴 것이 아니요, 밖에 법이 있는 것이라면 나에게 아무런 근심이 되지 않을 것이요, 두 중간에 있는 것이라면 둘 사이는 일정한 장소[處]가 없기 때문이다. |
[688 / 2071] 쪽 |
또한 전생으로부터 오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일체법은 오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린아이에게는 욕심이 없는 것과 같다. 만일 전생부터 있는 것이라면 어리다 해도 욕심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전생으로부터 전해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다시 뒷세상으로 흘러가는 것도 아니고, 여러 곳에서 모여온 것도 아니며, 항상 저절로 있는 것도 아니다.
몸의 한 부분에만 있는 것도 아니며, 온몸에 두루해 있는 것도 아니며, 5진(塵)에서 오는 것도 아니며, 5정(情)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니, 생긴 근원이 없고 사라져 가는 곳이 없다. |
또한 이 탐욕은 먼저 생겼다거나 나중에 생겼다거나 동시에 생겼다고 한다면 옳지 못하다. |
그것은 왜냐하면 만일 먼저 생겼다가 나중에야 탐욕이 있는 것이라면 지금의 여기에는 탐욕이 생하지 않아야 하나니, 아직 탐욕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만일 나중에 생이 있고 먼저부터 탐욕이 있다고 한다면, 곧 생이 일어난 곳은 없게 된다.
만일 동시에 생기는 것이라면, 생긴 것과 생기는 곳이 모두 없으리니, 생긴 것과 생기는 곳은 분별이 없기 때문이다. |
또한 이 탐욕과 탐내는 이는 같지도 다르지도 않다. 왜냐하면 탐욕을 떠나서는 탐내는 이를 얻을 수 없고, 탐내는 이를 떠나서는 탐욕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만 화합된 인연에 따라 생겼나니, 화합된 인연으로 생긴 법은 곧 자성(自性)이 공한 법이다.
이리하여 탐욕과 탐내는 이는 다르다 할 수 없다. |
만일 같다고 한다면 탐욕과 탐내는 이는 곧 분별이 없어야 한다. 이러한 갖가지 연연에 의하여 탐욕은 생길 수 없다. |
만일 생기지 않는 법이라면 그 법은 멸함도 없다.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까닭에 선정도 어지러움도 없다. |
이와 같이 탐욕의 가리움을 관찰하면 선(禪)과 하나가 되리니, 나머지 가리움도 그와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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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모든 법의 실상을 얻어 5개를 관찰하면 있는 바가 없게 되리니, 이럴 때에 5개의 실상이 곧 선의 실상이요, 선의 실상이 곧 5개임을 알게 된다. |
보살은 이처럼 5욕과 5개, 선정과 나머지 바라밀[支]이 한 모습임을 알아, 기대는 바 없이 선정에 들어가니, 이것이 선바라밀이다. |
또한 보살이 선바라밀을 행할 때는 나머지 다섯 바라밀이 화합해서 도와주나니, 이것을 선바라밀이라 한다. |
또한 보살은 선정의 힘으로 신통을 얻으며, 선정에서 일어나지 않고서도 잠깐 사이에 능히 시방의 여러 부처님께 꽃․향․값진 보배 등 갖가지 공양구로 공양한다. |
또한 보살은 선바라밀의 힘으로 무수하게 몸을 변화해 나투어 5도(道)에 두루 들어가서 3승의 법으로 중생을 교화한다. |
또한 보살은 선바라밀에 들어가서 온갖 악하고 착하지 못한 법을 제하나니, 초선 내지 비유상비무상정에 들어가고, 그 마음이 부드럽게 길들어서 낱낱의 선에서 대자대비를 행하며, 자비의 인연으로써 한량없는 겁의 죄를 멸하여 모든 법의 실상지혜를 얻는다. 그러므로 시방의 부처님들과 큰 보살들의 아껴주심을 받는다. |
또한 보살은 선바라밀 가운데 들어가서 천안으로써 시방의 5도에 있는 중생들을 관찰하건대, 색계에 태어난 이는 선정의 즐거운 맛을 받아 오히려 금수(禽獸) 가운데 떨어져 갖가지 고통을 받는 것을 본다.
또한 욕계의 여러 하늘들은 7보의 연못에서 꽃향취에 홀려 즐기다가 나중에 짜고 끓는 똥물지옥[鹹沸屎地獄]에 빠지는 것을 보며, 인간에 태어난 이들은 들은 것이 너무 많고 세속적 지혜에 지나치게 총명하여 바른 도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돼지․양 등 축생 가운데 떨어져서 아무 분별도 없는 것을 본다. |
이렇게 갖가지로 큰 즐거움을 잃고 큰 괴로움을 얻으며, 큰 이익을 잃고 큰 쇠운을 만나며, 존귀함을 잃고 비천함을 얻음을 아나니, 이런 중생에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내어 차츰차츰 늘어나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이루어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중생들을 위하여 부지런히 정진해서 불도를 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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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어지럽지 않고 맛들이지 않으므로 선바라밀이라 하나니,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
“보살은 반야바라밀 가운데 머물러 선바라밀을 구족하나니, 어지럽지 않고 맛들이지 않는 까닭이니라.” |
대지도론 212. ★ 제법실상(空)으로 5개를 관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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