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반야심경

[스크랩] 不受不貪分 第二十八

수선님 2019. 2. 10. 12:27

 

28

"須菩提 若菩薩  以滿恒河沙等世界七寶  布施  若復有人 知一切法無我  得成於忍

此菩薩  勝前菩薩  所得功德  須菩提 以諸菩薩  不受福德 故"

須菩提 白佛言

"世尊 云何菩薩 不受福德"

"須菩提 菩薩 所作福德  不應貪著 是故 說不受福德"

 

 

不受不貪分 第二十八
須菩提야 若菩薩이 以滿恒河沙等世界七寶로 (持用)布施어든

若復有人이 知一切法無我하야 得成於忍하면

此菩薩이 勝前菩薩의 所得功德이니 (何以故오)

須菩提야 以諸菩薩이 不受福德故니라

須菩提가 白佛言하사대

世尊하 云何菩薩이 不受福德이니잇고

須菩提야 菩薩의 所作福德은 不應貪著일새 是故로 說不受福德이니라

 

 

 

 

 

 

 

 

 

금강경 강의(27) / 해안스님 


경문.

 

"須菩提 若菩薩  以滿恒河沙等世界七寶  布施  若復有人 知一切法無我  得成於忍

此菩薩  勝前菩薩  所得功德  須菩提 以諸菩薩  不受福德 故"

須菩提 白佛言

"世尊 云何菩薩 不受福德"

"須菩提 菩薩 所作福德  不應貪著 是故 說不受福德"

 

 

不受不貪分(불수불탐분) 第二十八

須菩提야
수보리야

若菩薩 이 以滿恒河沙等世界七寶 로
약보살 이 이만항하사등세계칠보 로

持用布施 하고 若復有人 이 知一切法無我 하야
지용보시 하고 약부유인 이 지일체법무아 하여

得成於忍 하면 此菩薩 이 勝前 菩薩 의
득성어인 하면 차보살 이 승전 보살의

所得功德 이니 何以故 오 須菩提 야 以諸菩薩이
소득공덕 이니 하이고 오 수보리 야 이제보살이

不受福 德故니라 須菩提 白佛言하되 世尊이시어
불수복 덕고니라 수보리 백불언하되 세존이시어

云何菩薩 이 不受福德 이니까 須菩提
운하보살 이 불수복덕 이니까 수보리야

菩薩 의 所作福德 은 不應貪着 일세 是故
보살 의 소작복덕 은 불응탐착 일세 시고 로

說不受福德 이니라
설불수복덕 

 

 

勝 ㉠이기다 훌륭하다 경치가 좋다 견디다 모두 이김:  (~보다 낫다)

忍 ㉠참다 잔인하다 차마 못하다 참음

不應 ①응하지 아니함 ②듣지 않음

貪着 만족(滿足)할 줄 모르고 더욱 사물(事物)에 집착(執着)함

 

일체법(一切法) :
"세존이시여, 무엇이 일체 법이며,
어떻게 일체법 가운데 걸림이 없는 모습으로 마땅히 배우며 아옵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셨다."
일체의 모든 법이란 선법(善法) · 불선법(不善法) · 기법(記法) · 무기법(無記法) · 세간법(世間法) · 출세간법(出世間法) · 유루법(有漏法) · 무루법(無漏法) · 유위법(有爲法) · 무위법(無爲法) · 공법(共法) · 불공법(不共法)이다.
수보리야, 이것을 일체 모든 법이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일체 모든 법에 걸림이 없는 모습 가운데서 배우고 알아야 하느니라."

<바라밀경 구의품 제12>




 주석.

수보리야, 보살이 항하 모래와 같은 세계에
가득찬 칠보로써 보시에 가져다 쓸 지라도,
만약 다른 사람이 있어 일체법에 내가 없음을 알아,
인(忍)을 얻어 성취하면,
이 보살이 앞에 말한 보살의 얻은 공덕 보다 승 하리라.

어찌한 연고 이겠느냐, 수보리야.
이 보살은 복덕을 받지 않는 까닭이니라.
수보리 부처님께 사루어 말하되,
세존 이시여,
어찌 보살은 복덕을 받지 않는다 하시나이까.

수보리야.
보살의 지은바 복덕은 응당 탐내고 착(着)함이 아닐새,
이런고로 복덕을 받지 않는다 말함 이니라. 

 

 



 해설.

언제나 부처님 께서는 중생을 사랑 하시는 자모 이신지라.
한 중생이라도 더 믿도록하고,
더 건지려는 생각이 노바심절 하신지라,
또 다시 이 경 가지는 공덕을 말씀 하시되,
어떤 사람이고 일체법이 내가 없는 것을 알아,
인을 성취하면 칠보로 성취한 사람 공덕 보다 승하다 하시고,
칠보 보시보다, 승한 소이는 이 보살은 복덕을 받지 않는
까닭 이라고 이어서 말씀 하시었다.
그러면 이 대문에서는(인) 은 무엇인 것과,
보살은 어찌 하여 (복덕을 받지 않는다)고 하시었는가,

이것이 중요한 뜻이나 이 경의 설법이 모두
상 없는것을 주로 하여 말씀 하신 것이니,
물질로 보시 하거나, 법으로 보시 하거나,
상관 없이 하면 복덕을 지어도 짓는것이 아니요,
복덕을 받아도 받는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복덕에 탐착 하지않고 무심히 하는 까닭이요,
인이란 뜻은 한자로는 참을인 자 이지마는,
뜻으로는 인칠인(印)자의 뜻과 같으니,
쉽게 말하여, 우리가 중요한 일에 중요하게 쓰는
인(印)이니만큼, 아무나 함부로 파서 쓰는것도 아니요
인(印)은 나를 대표하는것이므로,
일반이 나를 인증 하여주는 거짓 없는 실다운 것이 된다.

그러므로 일체법이 내가 없음을 알아
인(忍)을 성취 하였다는것은, 곧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없음을 이치로만 안것이 아니라,
앎과 행이 둘이 아니어서 지행이 일치 되어 가지고,
다시 동요됨이 없고, 속임이 없고,
굳어져서 다시는 변함이 없이 여여하여, 어떠한곳,
어떠한 때에나 다시는 낳고 멸함이 없고,
더하고 덜함이 없이,
요지부동으로 하나가 된것을 인이라 하는것이니,
이치가 그러하니 만큼, 행도 하나가 됨을 말하심 이다.



......

 

 

금강반야바라밀경강화(金剛般若波羅蜜經講話) : 不受不食分 (第 二十八)

 

『수보리야, 만일 어떤 보살이 항하의 모래 수효와 같이 많은 세계에 칠보로서 보시에 썼더라도,

다른 어떤 사람이 모든 법에 나(我)없는 줄 알아서 확실한인행(忍行)를 이루었다면,

이 보살은 칠보로써 보시한 보살의 공덕보다더 나을 것이니 왜냐하면 수보리야,
모든 보살들은 복덕을 받지 않기 때문이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보살이 복덕을 받지 않는다 하십니까?』
『수보리야, 보살들은 지은 바 복덕을 탐내거나 고집하지 않아야 하므로, 그래서
보살은
복덕(福德)을 받지 않는다 말 하느니라.』

 

 

일체법이 무아임을 알고(知一切法無我) :
일체법(一切法)이란, 일체 만물이 갖는 진리와 같은 것이다.

이 일체법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무아를 알아야만 한다.


일체법에서 무아임을 알았으면, 인(忍)을 얻을 수 있다.

인(忍)이란 요약해서 말하면, 시기하지 않는 마음(瞋心)을 내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진리에 안주하여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일체의 법을 인정하면 자연히 무아임을 알게 되며, 따라서 인(忍)을 얻어 행(行)을 성취할 수가

있다는 뜻이다. 일체법(一切法)

(忍) :
원어 크산티(Ksanti)의 의역. 인내, 즉 참는 것 외에,
인가결정(忍可決定)의 뜻으로도 쓰인다.
인가결정이란 인정하여 확실하게 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의 뜻에 맞지 않는 환경이나 어떤 사건에 대해 성내거나 불쾌한 마음을 내지 않고 참고 견디는 것,

또는 도리에 마음을 순응시키어 편안한 마음으로 머물러, 외부에서 오는 어떠한 조건에 의해서도 동요하지

않는 마음을 말할 때도 있고,

확실히 인정하여 확정한다는, 인가(印可)의 뜻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인에는 2인(二忍), 3인(三忍), 4인(四忍), 5인(五忍), 6인(六忍), 10인(十忍), 14인(十四忍) 등의 여러 가지가 있다.


2인(二忍)은 중생인이라고 하며, 일체 중생에게 성내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보복하지 않고 참는 것을 말한다. 2忍이란 말은 생인(生忍)과 법인(法忍)의 두 가지를 뜻하는 것이다.
생인(生忍)은 남이 나를 욕하고 때리고 해롭게 해도 성내지 않고 잘 참는 것이며,
법인(法忍)은 추위 · 더위 · 굶주림 · 생로병사 등에 대해 번민이나 원망을 하지 않고 잘 참고, 희노애락 등

정신적인 번뇌를 잘 참아내는 것이다.


3인(三忍)은 내원해인(耐怨害忍) · 안수고인(安受苦忍) · 관찰법인(觀察法忍)의 세 가지를 말하고,


4인(四忍)은 무생인(無生忍) · 무멸법인(無滅法忍) · 인연인(因緣忍) · 무주인(無住忍)의 네 가지를 말하는

것으로,
무생인(無生忍)은 일체의 법은 모두 다 자성이 공적(空寂)해서 본태는 나타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깨우쳐서 보살의 계율을 깨뜨리지 않고 참아가는 것이다.
무멸법인(無滅法忍)은 일체의 법은 본래 생기는 법도 없고 또한 멸하는 법도 없는 것이라는 진리를 몸소 인정하면서 계율을 지키는 것이다.
인연인(因緣忍)은 일체의 법은 모두 다 인연으로 해서 생기는 것이며, 자체가 변화하지 않는 것이란 없다는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보살이 이 법을 몸소 인정하게 되면 금계(禁戒)의 죄를 능히 초월한다.
무주인(無住忍)은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5인(五忍)은 복인(伏忍) · 신인(信忍) · 순인(順忍) · 무생인(無生忍) · 적멸인(寂滅忍)의 다섯 가지를 말한다. '대지도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즉 "다시 또 인을 행하는 사람은 우선 때리거나 욕하는 자를 보면, 부모의 모습을 보는 것같이 하여

그 성내거나 욕하는 것에 더욱 자비로운 마음을 내어 이것을 사랑함이 더욱 더 깊어진다.
또한 스스로 생각하기를, '저 사람이 나에게 악을 행하는 그 업인연은 전세에 내 스스로가 지은 것이다.

지금 마땅히 이것을 받아야 한다. 만일 성을 내면 과보를 더욱 지어 나중에도 또 苦가 된다.

언제 이것을 벗어날 것인가 ?

만일 이것을 참는다면 苦를 떠날 수 있으리라. 이 때문에 성을 내서는 안된다' 라고.

이와 같이 모든 인연으로 성냄을 힐책하고 자비로운 마음을 내어 중생인(衆生忍) 가운데로 들어선다.

들어서고 나서는 이러한 생각을 한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에는, 아도 없고 아소(我所)도 없다.

단지 제법이 화합하여 거짓으로 중생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수많은 관목인(關木人)의 행위와 같이 능히 동작한다 하더라도 안으로 主가 없다.


身도 또 이와 같아서 단지 피골(皮骨)이 상지(相持)하고 심풍(心風)이 바뀜에 따라 생각들도 생멸하여,

무상공적(無常空寂)으로서 짓는 자도 없다. 본래 필경공(畢竟空)이기 때문이다.

단 진도허광(瞋倒虛狂) 때문에 범부의 마음에 집착함이 있을 뿐이다>라고. 이와 같이 사유하고 나면,

중생은 없다.
중생이 없으면 이미 법이 속할 바가 없다.

단지 인연이 화합할 뿐으로 자성(自性)도 없다.

중생이라는 것은 화합을 견고히 하여 중생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며, 법도 또한 그렇다.

이와 같이해서 법인(法忍)을 얻는다.

이 중생인과 법인을 얻기 때문에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고 하는 것이다.

'[대정신수대장경' 25, p.281 上 中]

 

相持 서로 자기(自己)의 의견(意見)을 고집(固執)하고 양보(讓步)하지 않음

無常 상주(常住)하는 것이 없다는 뜻으로, ①'나고 죽으며 흥하고 망하는 것이 덧없음'의 일컬음

②모든 것이 늘 변함

空寂 텅 비고 쓸쓸함

瞋倒虛狂   瞋 성내다 부릅뜨다. 倒 거슬리다,거꾸로,넘어지다. 虛 헛되다. 狂 미치다.사납다,경망하다  

 

 



복덕(福德) :
복은 복리, 善을 수행하는 이를 도와 복되게 하는 것이고, 德은 얻었다는 뜻이다.

즉 복을 얻었다는 뜻으로 복덕이라 한다.


 

 

 

 

 

 

 

 

 

【언해본】

“須菩提야! 만약 (어떤) 菩薩이 이 恒河의 모래와 같은 많은 世界에 七寶를 가지고 써서 布施하여도,

만약 또 (다른) 사람이 一切法에??나??없음을 알고 인을 이루면, 이 菩薩이 앞의 菩薩이 얻은 功德보다

더할 것이니, 어째선가?
須菩提야!
모든 菩薩은 福德을 받지 아니하는 까닭이다.”
須菩提가 부처님께 사뢰되,
“世尊이시여, 어찌하여 菩薩은 福德을 받지 않는 것입니까.??
“須菩提야! 菩薩이 지은 福德은 탐내거나 執着하지 못할 것이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福德을 받지 않는 것이다.??

 

 


【범어본】

또 須菩提여, 實로 善男子나 善女人이 갠지스 강의모래 수와 같은 世界를 七寶로써 가득 채워 그것을

如來·應供·正等覺者에게 布施했다고 하자. 다

른 한편에서는 어떤 菩薩이 無我無生의 法에 있어서 忍을 얻었다고 하면, 이쪽이 그 因緣으로 해서 더욱 많은

 헤아릴 수 없는 福聚를 쌓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또 實로 須菩提여, 菩薩 摩訶薩은 福聚를 섭취해서는 안 된다.
須菩提 長老는 물었다.
스승이시여, 菩薩은 福聚를 섭취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까?
스승은 대답했다.
須菩提여, 섭취해서는 안 된다라는 것은, 執取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攝取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해지는

것이다.

 


【몽고본】

수부티여, 또 善男子 혹은 善女人이 항가하의 모래알 수만큼의 世界를 七寶를 가지고 充滿시키고,

布施를 行하였다고 하자. 그러나 그 보다는 누군가가 이 法門의 無我不生에 있어서 忍을 얻으면,

그는 그 忍으로부터 참으로 많은 無數 無量의 福德聚를 생기게 할 것이다.

그리고 또, 菩薩 摩訶薩은 그 福德聚에도 執着하지 않음이니라.
구수 수부티가 말했다.
世尊이시여, 菩薩은 福德聚에도 執着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이옵니까?
世尊께서 말했다.
수부티여, 執着하지 않는다는 것은 邪에 執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執着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다.

 


【티베트본】

“쑤부띠여, 또한 훌륭한 아들 또는 훌륭한 딸이 갠지스강의 모래알만큼의 世界를 일곱 가지의 보석으로 가득

 채워서 布施를 행하는 것보다,

어떤 菩薩이 이 諸法에 自性이 없고 生成이 없다는 사실에 忍耐를 보여주면, 그는 그것을 바탕으로 헤아릴 수

 없고 셀 수 없이 많은 功德 쌓임을 이룰 것이다.

그러나 쑤부띠여, 菩薩들은 功德 쌓임을 자기 것으로 하지 말아야 한다.”
長老 쑤부띠는 말씀드렸다. “世尊이시여, 菩薩들은 功德 쌓임을 자기 것으로 하지 말아야 합니까?”
世尊께서 말씀하셨다.
“쑤부띠여 자기 것으로 하더라도 잘못 執着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자기 것으로 한다’고 말한 것이다.”

 


【용성】

須菩提야 만일 菩薩이 恒河沙 같은 世界에 가득한 七寶로써 布施할지라도 만일 다시 어떠한 사람이 一切法에

我가 없음을 알아서 忍辱을 成就하면 이 菩薩은 앞에 菩薩이 얻은 바 福德보다 勝하니라.

어찌한 緣故인가 하면 須菩提야 이 모든 菩薩이 福德을 받지 아니한 緣故니라.
須菩提가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世尊님이시여 어찌 菩薩이 福德을 받지 아니하나이까.

須菩提야 菩薩의 지은 바 福德은 마땅히 貪着함이 아닐 새 이런 緣故로 福德을 받지 아니한다 말함이니라.

 


【운허】

“須菩提야, 만일 菩薩이 恒河 모래 수 같이 많은 世界에 七寶를 가득히 채워 布施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온갖

法이 내라는 것이 없는 줄을 알아서 확실한 智慧를 이룬다면 이 菩薩은 저 布施한 菩薩의 功德보다 썩 나으니,
무슨 까닭이냐 須菩提야, 모든 菩薩들은 福德을 받지 아니하는 탓이니라.”
須菩提가 부처님께 여짜오되,
“世尊이시여! 어찌하여 菩薩이 福德을 받지 아니하나이까???
“須菩提야, 菩薩들은 福德 짓는 것을 탐내어 固執하지 아니하므로 福德을 받지 않는다 하느니라.??

 


【신소천】

須菩提야! 만약 菩薩이 恒河沙 같은 世界에 가득 찬 七寶로써 가지고 布施에 사용할 지라고 만약 다시 사람이

 있어 一切法에 내가 없음을 알아 인내하여 成就함을 얻을 지면 이 菩薩이 앞서 말한 菩薩의 얻은 바 功德보다 낳은 것이다.
어찌한 緣故이냐? 須菩提야! 모든 菩薩은 福을 받지 아니하는 緣故이다.
須菩提가 부처님께 사뢰어 말씀드리되,
世尊이시여! 菩薩이 어찌해서 福德을 받지 않는 것입니까?
須菩提야! 菩薩의 짓는 바 福德은 應當 탐하고 着함이 아닐 새 이런 故로 福德을 받지 않는다 말함이다.

 


【권상로】

須菩提야 만일 菩薩이 恒河沙 같은 世界에 가득 차는 七寶로써 布施하드라도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一切法의

 我가 없는 것을 알아서 인을 얻어 이루면 이 菩薩이 앞 菩薩의 얻은바 功德보다 勝하리니 어쩐 緣故냐 하면

須菩提야 모든 菩薩이 福德을 받지 않는 緣故니라
須菩提 부처님께 살워 말씀하되
世尊이시여 이른바 어째서 菩薩이 福德을 받지 않는다 하시나이까
須菩提야 菩薩이 지은바 功德에 마땅히 貪着하지 아니할 새 이런 緣故로 福德을 받지 않는다고 말하노라

 


【명봉】

須菩提야! 만약 菩薩이 恒河 모래 수와 같은 世界에 가득한 七寶로써 지용을 布施하거든, 만약 다시 어떤 사람은 一切法에 ‘아??없음을 알아서 忍을 얻어 이루면 이 菩薩이 앞의 菩薩의 얻은 바 功德보다 나으리니,

어쩜인고 須菩提야! 모든 菩薩이 福德을 받지 않는 때문이니라.
須菩提가 부처님께 사루어 말하되,
世尊이시여 어찌 菩薩이 福德을 받지 않는다 이름이니까?
須菩提야! 菩薩은 지은 바 福德에 뻑뻑히 貪着하지 않음일 새 이런 故로 福德을 받지 않음이라 說하노라.

 


【기산】

須菩提야! 만일 菩薩이 恒河 沙와 같은 世界에 가득한 7보를 가져 布施하더라도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一切

法에 我가 없음을 알아서 忍을 이루었다면 이 菩薩은 앞의 菩薩이 얻은 功德보다 勝하리니

왜냐하면 須菩提야! 여러 菩薩은 福德을 받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須菩提야! 世尊께 여쭈되,
어째서 菩薩은 福德을 받지 않습니까. 須菩提야!

菩薩은 지은 바의 福德에 반드시 貪着하지 아니하므로 福德을 받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해안】

須菩提야! 만약 菩薩이 恒河 모래와 같은 世界에 가득 찬 七寶로써 布施에 가져다 쓸지라도 만약 다른 사람이 있어 一切法에 내가 없음을 알아 忍을 얻어 成就하면 이 菩薩이 앞에 말한 菩薩의 얻은 功德보다 勝하리라.
어찌한 緣故이냐? 須菩提야! 이 菩薩은 福德을 받지 않은 까닭이니라.
須菩提가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世尊이시여! 어찌 菩薩은 福德을 받지 않는다 하시나이까
須菩提야! 菩薩의 지은 바 福德은 應當 貪내고 着함이 아닐 새 이런 故로 福德을 받지 않는다 말함이니라.

 


【청담】

“須菩提야! 菩薩이 恒河의 모래 수와 같은 많은 世界에 七寶를 가득 채워서 布施했더라도, 만일 또 다른 사람이 一切法에 내가 없음을 알아서 참다운 眞理를 이루어 얻었다면, 이 菩薩이 앞의 菩薩이 얻은 功德보다 더

뛰어나리라.
왜 그러냐 하면 須菩提야! 모든 菩薩은 福德을 받지 않기 때문이니라.”
須菩提가 부처님께 사뢰어 말씀하셨다.
“世尊이시여, 어떤 것이 菩薩이 福德을 받지 않는 것이옵니까.??
“須菩提야! 菩薩이 福德을 짓는 것은 貪着해서가 아니니 그러므로 福德을 받지 않는다고 말하느니라.??

 


【탄허】

須菩提야! 만일 菩薩이 恒河沙等 世界에 가득한 七寶로써 가져 布施를 쓰거든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一切法이 我가 없음을 알아서 忍을 得成하면 이 菩薩이 前 菩薩의 所得 功德보다 勝할지니, 어찌 쓴 緣故뇨.

須菩提야! 모든 菩薩이 福德을 받지 않음을 쓴 緣故니라.
須菩提가 佛께 사뢰어 말씀하시되,
世尊이시여! 어찌 菩薩이 福德을 받지 않나잇고.
須菩提야! 菩薩의 지은 바 福德은 應當 貪着하지 않을 새 이런 故로 福德을 받지 않는다 說함이니라.

 


【광덕】

“須菩提야! 만약 菩薩이 恒河의 모래 수와 같은 世界에 가득 찬 七寶를 가지고 布施에 썼더라도 만약 다시

사람이 있어 一切 法이 我가 없음을 알아 忍을 얻어 이루면 이 菩薩이 앞의 菩薩이 얻는 功德보다 나으리라. 어찌한 까닭이랴?
須菩提야! 모든 菩薩들이 福德을 받지 않는 緣故니라.”
須菩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世尊이시여, 어찌하여 菩薩이 福德을 받지 않사옵니까?”
“須菩提야! 菩薩은 지은 바 福德을 應當 貪着하지 아니하나니 이 까닭에 福德을 받지 않는다 말하느니라.”

 


【월운】

“須菩提야, 만일 어떤 菩薩이 恒河의 모래 수 같이 많은 世界에 七寶를 가득히 채워 布施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온갖 法이??나??없는 줄 알아서 확실한 智慧를 이룬다면 이 菩薩은 저 菩薩의 功德보다

썩 나으니,
須菩提야, 모든 菩薩들은 福德을 받지 않기 때문이니라.”
須菩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世尊이시여! 어찌하여 菩薩들이 福德을 받지 않습니까???
“須菩提야, 菩薩들은 지은 福德을 탐내거나 固執하지 않아야 하므로 福德을 받지 않는다 하느니라.??

 


【무비】

“須菩提야! 만약 菩薩이 恒河 강의 모래 수와 같은 世界에 가득 찬 七寶를 가지고 布施하더라도,

 만약 또 어떤 사람은 一切 法이 我가 없음을 알아서 忍을 얻어 이루면

이 菩薩은 앞의 菩薩이 얻은 功德보다 殊勝하리라.
무슨 까닭인가 須菩提야
모든 菩薩은 福德을 받지 않는 까닭이니라.”
須菩提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世尊이시여, 어찌하여 菩薩이 福德을 받지 않습니까.??
“須菩提야! 菩薩의 지은 바 福德은 應當 貪着하지 않음이니 이 까닭에 福德을 받지 않는다고 말하느니라.??

 


【석진오】

須菩提여, 만일 菩薩이 恒河의 모래알 수 만큼 世界를 가득 채운 七寶로써 布施했다고 하자.

그리고 또 만일 어떤 사람이 一切法은 無我임을 알아 忍을 成就했다고 하면, 이 菩薩은 앞의 菩薩이 얻는 功德

보다 더 殊勝하다.
須菩提여, 모든 菩薩은 福德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須菩提가 부처님께 말했다.
世尊이시여, 어째서 菩薩은 福德을 받지 않습니까?
須菩提여, 菩薩이 짓는 바 福德은 마땅히 貪着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福德을 받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홍정식】

須菩提야, 만약 菩薩이 갠지스 강 모래와 같은 世界에 가득 찬 七寶로써 布施하더라도 만약 또 다른 사람이

一切法에 내가 없는 것임을 알고 忍을 얻어 成就하면 이 菩薩은 앞에 말한 菩薩이 얻은 功德보다 더 훌륭하다. 무슨 까닭인가, 須菩提야, 이 菩薩은 福德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須菩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世尊이시여, 어찌하여 菩薩은 福德을 받지 않습니까.
須菩提야, 菩薩이 지은 바 福德은 應當 貪내고 執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福德을 받지 않는다고 말해지는

 것이다.

 


【김기추】

“須菩提야! 만약 菩薩이 恒河의 모래 같은 世界에 가득 찬 七寶를 가지고 布施로 쓸지라도 만약 다시 사람이

있어서 온갖 法에 내가 없음을 알고 忍辱에 成就를 얻으면 이 菩薩이 앞의 菩薩의 얻은 바 功德보다 나으니

무슨 까닭으로써 이냐. 須菩提야, 모든 菩薩이 福德을 받음이 아닌 까닭으로써 이니라.??
須菩提가 부처님께 사뢰어 말씀하시되,
“世尊이시여, 菩薩이 왜 福德을 받음이 아니라 이르나니까???
“須菩提야! 菩薩이 짓는 바의 福德은 應當 貪着이 아님일 새, 이런 까닭으로 福德을 받음이 아니라고 말을

함이니라.??

 


【이기영】

“須菩提여, 만약 菩薩이 恒河의 모래알과 같은 世界에 가득 찬 七寶로써 布施를 한다 하자.

만약 다른 사람이 있어 一切의 法은 無我임을 알아 忍을 成就하면 이 菩薩이 앞서 말한 菩薩이 얻는 功德보다

 나으리라.
왜냐하면 須菩提여, 모든 菩薩은 福德을 받지 않기 때문이니라.”
須菩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世尊이시여, 菩薩은 어째서 福德을 받지 않나이까?”
“須菩提여, 菩薩은 짓는 바 福德을 탐내거나 執着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福德을 받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니라.”

 


【송찬우】

“須菩提야, 가령 어떤 菩薩이 恒河에 가득한 모래 수와 같은 世界 속의 七寶를 지니고 그것을 布施로

使用하였다 하자. 가령 다시 어떤 사람은 一切法은 自性이 없는 無我의 理致임을 알고 主觀 客觀의 相對性이 끊긴 無生法忍을 깨달았다 하자. 이처럼 我執과 法執을 일으키지 않고 布施를 行하는 菩薩은 그가 얻은 眞正

한 般若의 功德이 앞의 菩薩이 얻은 功德을 능가한다.
왜냐하면 須菩提야, 모든 菩薩이 無我의 理致를 通達함으로써 福德의 참모습에 執着心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그 功德이 住相布施를 능가한다.”
須菩提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世尊이시여, 무엇 때문에 菩薩이 福德에 있어서 執着心을 일으키지 않는지요.”
“須菩提야, 菩薩이 짓는 福德은 마음을 虛空처럼 비움으로써 그 福德에 貪心의 執着을 일으키지 않아야만

한다. 그 때문에 모든 菩薩들은 莊嚴하게 相好를 갖춘 보신의 福德에 있어서 執着心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제열】

“須菩提야, 만약 어떤 菩薩이 恒河의 모래알 수만큼이나 많은 世界에 가득 찬 七寶로써 널리 布施했다 하더라도, 만약 다시 어떤 사람이 一切法에 ‘나’ 없는 眞理를 깨달아 얻었다면 이 菩薩이 얻은 功德은 앞의 菩薩이

얻은 功德보다 뛰어난 것이니라.
왜냐하면 須菩提야, 모든 菩薩들은 福德을 받지 않기 때문이니라.”
須菩提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世尊이시여, 어찌하여 菩薩이 福德을 받지 않사옵니까?”
“須菩提야, 菩薩은 自己가 지은 바 福德에 貪着하지 않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福德을 받지 않는다고 말하느니라.”

 


【문제현】

須菩提야! 만일 菩薩이 恒河의 모래 수같이 많은 世界에 가득할 만큼의 七寶로 布施를 한다 해도 모든 法에

나 없음을 알아 忍을 成就해 얻은 이가 있다면, 이 菩薩은 앞에 七寶로 布施한 菩薩보다 殊勝한 功德을 얻은 것이니라.
왜냐하면 須菩提야! 모든 菩薩들은 福德을 받는다는 것도 없기 때문이니라.”
須菩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世尊이시여, 어째서 菩薩은 福德을 받는다는 것도 없습니까?”
“須菩提야! 菩薩은 지은 바 福德에도 탐내거나 執着함이 없느니라. 이런 까닭에 福德을 받는다는 것도 없다고 말하였느니라.

 


【김용옥】

“須菩提야! 만약 어떤 菩薩이 갠지스강의 모래만큼의 世界에 가득 찬 七寶로써 布施한다고 하자.

또 어떤 사람이 있어 一切의 法이 我가 없음을 알고, 忍을 얻어 이루면, 이 菩薩의 功德이 앞의 菩薩이 얻은

바의 功德을 뛰어 넘으리라.
須菩提야! 뭇 菩薩들은 福德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須菩提가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였다.
“世尊이시여! 어찌하여 菩薩이 福德을 받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나이까?”
“須菩提야! 菩薩은 自己가 지은 福德에 탐하여 執着해서는 아니 된다. 그러한 까닭으로 福德을 받지 않는

다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조현춘】

須菩提야! ‘갠지스 강의 모래 수만큼 많은 世界를 가득 채울 수 있을 만큼 많은 金 銀 寶貨를 布施한 菩薩’ 보다 ‘無我法을 철저히 깨친 菩薩’ 이 짓는 福이 더 많다.
須菩提야! 이런 菩薩들은 福을 누리려는 生覺에 걸리지 않는다.”
“부처님이시여, 福을 누리려는 生覺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須菩提야! 福을 짓되 福을 지었다는 生覺에 걸리지 않을 때, 福을 누리려는 生覺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백성욱】

須菩提야! 만약 菩薩이 恒河 모래 수 같은 世界에 그득히 찬 일곱 가지 보배로 布施하고 만약 다시 어떤 사람

이 一切法이 내가 없는 근본을 알아서 그것이 곧 습관이 될 것 같으면 이 菩薩은 전 菩薩의 얻은 바 福德보다 참 많은 것이니라.
須菩提야! 이 모든 菩薩은 왜 그렇게 많은가 하면 福德응 받지 않느니라.
須菩提가 부처님께 사루어 말하되,世尊님. 일은 어떤 것이 菩薩이 福德을 받지 않은 것입니까?
須菩提야! 菩薩이 자기 지은 바 福德에 貪着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고로 不受福德이니라

 


【김운학】

須菩提야, 만일 菩薩이 恒河의 모래 수 같은 世界에 가득한 칠보로써 布施에 가져다 써도 만일 또 어떤 사람이

 있어 一切法에 내가 없음을 알아 因을 얻어 成就하면 이 菩薩이 앞의 菩薩의 얻은 바 功德보다 승할 것이니, 웬 까닭이냐?
須菩提야, 모든 菩薩은 福德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須菩提가 부처님에게 여쭈어 말하기를
世尊이시여, 어찌하여 菩薩이 福德을 받지 않는다 하십니까?
須菩提야, 菩薩이 지은 바 福德은 마땅히 貪着하지 않는 것이니 이 때문에 福德을 받지 않는다 말한 것이다.

 


【오진탁】

須菩提여! 어떤 菩薩이 바닷가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世界에 일곱 가지 寶貝를 가득 채워 놓고 布施하더라도, 그 어떤 사람이 모든 것이 無我임을 알아 般若의 智慧를 成就한다면 이 菩薩은 저 菩薩보다 많은 福德을

얻을 것이다 왜 그럴까? 須菩提여! 이 菩薩은 福德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須菩提가 부처님께 질문했다.
"왜 菩薩은 福德을 받지 않는 것입니까?"
"須菩提여! 菩薩은 福德을 짓기는 하지만 福德을 貪내지도 愛著하지도 않으므로, 福德을 받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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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마음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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