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공간

[스크랩] 인간과 세계의 존재 방식 12처 - 18계 - 정승석교수

수선님 2019. 2. 17. 11:47

 

 

 

 

인간과 세계의 존재 방식 -  12처


12처는 12입(入) 또는 12입처로도 불린다. 중국에서는 입과 입처가 처보다 먼저 통용된 번역어였다. 그리고 12처의 취지를 이해하는 데는 입처라는 번역어가 한결 유익하다. 입처는 ‘들어오는 곳’ 또는 ‘들어오는 것’을 의미한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감각 기관을 여섯 가지로 분류하고, 이것을 6근(根)이라 부른다. 즉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가 6근이다. 한편 6근은 각기 외부 대상 중의 어느 하나와 접촉함으로써 지각을 낳는 관문의 역할을 하는데, 6근이 각기 접촉하는 외부의 대상을 6경(境)이라고 한다.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이 6경이다.

외부의 어떤 대상은 우리의 감각 기관을 통과하고 나서야 우리에게 인식된다. 이 때 6경은 ‘들어오는 것’이고, 6근은 6경이 ‘들어오는 곳’이다. 이 때문에 6경과 6근을 12입처 또는 12처라고 부르는 것이다. 또 12처의 범주로 6경과 6근을 구분할 때는 6경을 6외처, 6근을 6내처로 부른다.

6근의 낱낱은 6경의 낱낱과 각기 일 대 일로 상대하여 작용한다. 각각의 근과 경이 접촉함으로써 감각이나 지각과 같은 인식이 일어나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대상을 인식할 때, 눈으로는 그 대상의 색깔이나 모양을 보고 코로는 그것의 향기를 맡고서 그것을 장미꽃이라고 인식한다. 여기서 눈과 코는 6근 중의 안과 비이며, 색깔이나 모양과 향기는 6경 중의 색과 향이다.

 

이와 같이 안은 색을 담당하고, 이는 성을 담당하고, 비는 향을 담당하고, 설은 미를 담당하고, 신은 촉을 담당하고, 의는 법을 담당하는 관계로 6근과 6경은 대응한다.

12처, 즉 6근과 6경은 우리가 경험하는 사실에 입각하여 각기 인식의 주체와 객체를 세부적으로 분류한 것이므로, 그다지 난해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 개입된 불교 특유의 관념은 난해할 수도 있다.

 

아래에서는 이 점을 고려하여 12처를 하나씩 소개한다. 여기서 1~6은 6내처로 분류되는 6근이고, 7~12는 6외처로 분류되는 6경이다.

1. 안처(眼處)는 눈으로 사물을 보는 시각 능력이며, 시 신경과 같은 시각 기관이다. 불교 용어에서는 감각 기관을 근(根)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런데 근은 기관이라는 물질적 형태보다도 주로 그 기관의 능력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안근은 안구라는 물질적 외양보다도 안구의 기능인 시각 능력을 가리킨다. 후대의 불교에서는 근의 두 가지 의미를 구분하여 감관의 능력을 승의근(勝義根), 감관의 물질적 형태를 부진근(扶塵根)으로 불렀다. 이 중에서 감각 능력인 승의근이 불교에서 말하는 근의 본래 의미이고, 부진근은 세속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감각 기관이다. 따라서 이하 의처까지의 6근은 모두 일차적으로 승의근을 가리킨다.

2. 이처(耳處)는 귀로 소리를 듣는 청각 능력이며, 청 신경과 같은 청각 기관이다.

3. 비처(鼻處)는 코로 냄새를 맡는 후각 능력이며, 후각 신경과 같은 후각 기관이다.

4. 설처(舌處)는 혀로 맛을 느끼는 미각 능력이며, 미각 신경과 같은 미각 기관이다.

5. 신처(身處)는 몸으로 추위나 더위 또는 통증 등을 느끼는 촉각 능력이다. 이 능력은 피부에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6. 의처(意處)는 마음으로 아는 지각 능력이다. 감각 능력 또는 감각 기관인 앞의 다섯에 대해 이것은 지각 기관이라고 구분된다.

7. 색처(色處)는 시각의 대상이 되는 색깔과 형상이다. 색은 넓은 의미로는 물질 전체를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눈으로 감지할 수 있는 물질이라는 좁은 의미를 지닌다.

8. 성처(聲處)는 청각의 대상이 되는 소리이다.

9. 향처(香處)는 후각의 대상이 되는 냄새나 향기이다. 여기에는 좋은 향, 나쁜 향, 유익한 향, 유해한 향 등이 있다.

10. 미처(味處)는 미각의 대상이 되는 맛이다. 여기에는 짠 맛, 신 맛, 쓴 맛, 단 맛, 매운 맛, 싱거운 맛 등이 있다.

11. 촉처(觸處)는 피부에 닿아 어떤 느낌을 일으키는 촉각의 대상이다. 지, 수, 화, 풍이라는 4대 자체와 이 4대로 이루어진 것은 모두 촉처가 될 수 있다.

12. 법처(法處)는 의식의 대상이 되는 것, 즉 마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아비달마’라는 이름으로 후대에 전개된 불교의 철학적 관점에서 통용된 넓은 의미의 법은 정신적이거나 물질적인 모든 현상과 요소를 가리킨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12처가 모두 법의 내용을 이룬다. 그러나 여기서 12처의 하나로 분류되는 법은 앞에 열거한 11처를 제외하고, 실물이 없음에도 마음에 떠오를 수 있는 모든 것을 가리킨다. ‘의식의 대상이 되는 것’이란 이와 같은 법을 의미한다. 어떤 개념이나 도리나 법칙 같은 것이 법처에 해당한다.

이상과 같은 12처에 의하면, 객관 세계는 인간의 감각과 지각에 의해 그 존재가 성립된다. 이 사실을 역설적인 예로 설명할 수 있다.

 

인간에게 처음부터 시각 능력이 없다면, 색깔과 형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또 청각 능력이 없다면, 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냄새나 맛도 후각 능력과 미각 능력이 없을 때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인간의 감각 기관으로 지각되지 않는 것들은 존재하는 것으로 입증될 수 없다. 그런 것들은 사실상 없는 셈이다. 그러므로 어떤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감각 기관이라는 문을 통해 들어올 때서야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된다. 결국 인간과 세계는 12처로서 상관하여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과 세계의 존재 방식 - 18계


앞에서 설명한 12처에 의하면, 인간 세계는 6근과 6경이 서로 연관된 상태로 존재한다. 이 12처에 6식(識)을 포함한 것이 18계이다. 그리고 6식은 6근이 6경과 접촉한 결과로 형성되는 인식이다.


18계의 계(界)라는 말이 여기서는 요소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즉 감각이나 지각으로 인식을 성립시키는 요소를 6근과 6경과 6식으로 분류한 것이 18계이다. 18계에서는 12처가 인식의 요소로 간주되는 것이다. 초기의 경전에서 설명하는 6근과 6경과 6식의 관계는 간명하다. 이 관계는 다음과 같이 표시할 수 있다.

 

18계에서는 아래의 18가지 명칭에 각각 계라는 말을 붙인다.

6근 - 6경 - 6식
안 + 색 → 안식(眼識)
이 + 성 → 이식(耳識)
비 + 향 → 비식(鼻識)
설 + 미 → 설식(舌識)
신 + 촉 → 신식(身識)
의 + 법 → 의식(意識)

인간은 위와 같은 18계의 기본 방식을 토대로 하여, 그 다음 단계에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심리 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그러므로 이후의 심리 작용을 고려하면, 6식은 각기 인식 작용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식의 주체가 된다.

18계에서 먼저 열거하는 12계는 이미 12처로 설명했으므로, 여기서는 나머지 6계(6식)의 의미만을 소개한다.

13. 안식계는 시각의 인식 작용이자 이러한 인식의 주체가 된다. 이것은 눈으로 색깔이나 형상을 보고서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리는 기능을 발휘한다.

14. 이식계는 청각의 인식 작용이자 이러한 인식의 주체가 된다. 이것은 귀로 소리를 듣고서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리는 기능을 발휘한다.

15. 비식계는 후각의 인식 작용이자 이러한 인식의 주체가 된다. 이것은 코로 냄새를 맡고서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리는 기능을 발휘한다.

16. 설식계는 미각의 인식 작용이자 이러한 인식의 주체가 된다. 이것은 귀로 소리를 듣고서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리는 기능을 발휘한다.

17. 신식계는 촉각의 인식 작용이자 이러한 인식의 주체가 된다. 이것은 몸으로 접촉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리는 기능을 발휘한다.

18. 의식계는 지각의 인식 작용이자 이러한 인식의 주체가 된다. 이것은 마음으로 모든 것을 식별하는 기능을 발휘한다.

이상의 6식은 사실상 모두 [마음의 기능] 에 속한다. 여기서는 마음을 [식] 이라는 명칭으로 구분하고, 6근과 6경에 따라 식을 여섯 가지로 구분한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식의 고유한 의미와 기능은 5온에 포함되는 식과 다르지는 않다. 다시 말하면 6식은 6근이 받아 들인 것, 즉 감각 내용을 식별하는 인식의 주도자 역할을 맡는다.

그런데 18계에서 이해의 곤란을 낳는 것은 의근 또는 의처와 의식계의 관계이다. 6근 중의 의근이 12처에서는 의처가 되고, 18계에서는 의계(意界)가 된다. 의근도 보통 마음의 기능으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18계는 의근이라는 마음과 6식이라는 마음이 중복되어 있다. 이 중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가 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시점의 차이라고 설명한다. 18계에 속하는 의계와 6식계는 별개의 것이 아니지만, 현재의 순간마다 작용하는 마음이 6식이라면, 과거의 영역으로 들어간 6식은 의(意)라는 마음으로 불린다. 6식은 현재에 찰나적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6식의 작용은 매순간 과거로 흘러가 버리기를 반복한다. 18계 중의 의계는 과거로 흘러가 버린 6식의 작용을 지적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 점에서 의계는 경험이나 기억에 의존하는 마음일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어떤 경험이나 기억의 영향을 받아 작용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 정승석 교수

출처 : 수보리
글쓴이 : 아침이슬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