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 말하는 선(善)과 불선(不善)
불교에서 말하는 선(善)과 불선(不善)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불교를 공부하는데 가장 기초적이고 궁극적인 학문을 삼학(三學)이라고 하지요. 또 불도를 수행하는 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닦아야 하는 기본적인 세 가지 수행 방법을 말합니다. 즉, 마음을 맑게 하는 계(戒),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정(定), 마음을 밝게 하는 혜(慧)입니다.
첫째, 계학(戒學)은 악을 끊고 선을 닦는 것입니다.
계(戒)란 불교에 귀의(歸依)한 사람이면 누구나 지켜야 할 규범이지요. 본래 계란 관습이나 그 습관으로 인한 행위를 뜻하는 말이었답니다. 또한 계는 금지하고 억제한다는 뜻으로서, 소극적으로는 악을 막는 것을 뜻하며, 적극적으로는 모든 선을 낳는 근본으로 삼았습니다. 쉽게 말하면 복을 담는 그릇을 만드는 일입니다.
둘째, 정학(定學)은 마음을 고요하게 안정시키고, 정신을 통일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한 곳에 머물게 하여 흩어지지 않게 하고 고요히 통일 시키는 수행법입니다. 이는 원숭이처럼 날뛰고 흔들리는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고, 흐려진
물을 맑혀 그 밑바닥이 환히 보이도록 하는 것처럼 자기 마음에 일어나는 번뇌의 광풍과 먼지를 가라앉히어 명징(明澄)하게 하는 것입니다.
셋째, 혜학(慧學)은 현상인 사(事)와 본체인 이(理)를 관조함으로써 모든 사상(事象)과 도리(道理)에 대해 그 옳고 그릇됨을 분별하고 판단하는 마음을 기르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문혜(聞慧), 사혜(思慧), 수혜(修慧)에다 신혜(信慧)를 더합니다. 문혜란 교법을 듣고 얻는 지혜를 말하며, 사혜란 생각하고 고찰하여 얻는 지혜, 수혜란 선정을 닦아서 얻는 지혜, 신혜란 배워서 생각한 교법을 믿음으로서 생기는 지혜를 말합니다. 그래서 모든 존재가 있는 그대로 드러나도록 하여 있는 그대로 보고 알아 무상(無常)한 현실은 고(苦)이고 공(空)이며 무아(無我)임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이상의 내용에서 선(善)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습니다. 이를 실천하는 사람들을 수행자라 하고, 실천하는 것을 선(善) 또는 수행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불선(不善)이란 이와 같은 내용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을 일컬어 불선자(不善者)라 하고 실천하지 않는 것을 불선(不善)이라고 합니다.
이상은 궁극적으로 현실 세계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자내증(自內證)하여 성불(成佛)로 구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수행의 요체요 선(善)의 실천입니다. 즉, 보리심(菩提心)을 발하여 물러나지 않는 신심으로 가정에서 직장에서 대인관계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실행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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