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세 종류의 중생이 있다. 곧 즐거움을 받는 이로서 모든 하늘과 인간의 일부분이요, 괴로움을 받는 이로서 3악도 및 인간의 일부분이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을 받는 이로서 5도 가운데 일부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자를 행하는 이는 일체 중생이 모두 즐거움을 받는다고 관찰하고, 비를 행하는 이는 일체 중생이 모두 괴로움을 받는다고 관찰하는가? |
[788 / 2071] 쪽 |
[답] 수행자는 이 자무량심(慈無量心)을 배우고자 할 때에 먼저 서원을 세우되 “원컨대 중생들로 하여금 갖가지 즐거움을 받게 하리라” 하고는 즐거움을 받는 사람의 모습을 취하여 선정에 드나니, 이 모습이 점점 늘어나면 곧 중생들이 모두 즐거움을 받는 것을 보게 된다. |
비유하건대 불을 지필 때 먼저 보드라운 풀이나 마른 쇠똥을 쓰거니와 불의 세력이 더욱 커지면 능히 젖은 큰 나무를 태우는 것과 같다. |
자삼매도 그와 같아서 처음에 인자한 서원을 세울 때엔 친척이나 아는 이에게만 미치다가 인자한 마음이 더욱 넓어지면 원수와 친한 이가 동등하게 모두 즐거움을 얻음을 보게 된다.
이것은 자의 선정이 늘어나고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
비․희․사의 마음 역시 이와 같다. |
[문] 비심에서는 괴로움을 받는 사람의 모습을 취하고, 희심에서는 기쁨을 받는 사람의 모습을 취하거니와 사심(捨心)에서는 어떤 모습을 취하는가? |
[답]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을 받는 사람의 모습을 취한다. 수행자는 이 마음이 점차 늘어나게 하여 모두가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을 받는다고 보게 된다. |
[문] 이 세 가지 마음에는 마땅히 복덕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사심은 중생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게 여기거늘 어떠한 복덕이 있는가? |
[답] 수행자는 생각하기를 ‘일체의 중생은 즐거움을 여읠 때는 괴롭고 괴로울 때에는 그대로가 괴로움이니,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면 곧 안온하다’고 한다. 이것으로 이익을 삼는다. |
수행자가 자와 희의 마음을 행하면서 때로는 탐착의 마음이 일어나고, 비심을 행하면서 때로는 근심과 슬픔의 마음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 탐착과 근심으로 마음이 산란해지면 이 버리는 마음으로 들어가 탐착과 근심을 제거한다. 탐착과 근심을 제거하는 까닭에 일컬어 사심이라 한다. |
대지도론 268. 사무량심의 성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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