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타스님 자경문 - 시작하는 마음. 제 2 강
동네 동네마다 집이 보여요. 그래서 그 주지스님 말이라면 그 동네 사람들은 다 그냥 신도니까요. 장사 지내는 일도 으레 그 스님이 하고, 제사 지낼 때도 으레 그 스님이 와서 반야심경한번 치고 가면 끝나고, 아이가 탄생해도 그 스님이 와서 머리에 물 한 방울 만져주고 가면 끝나고, 모든 생활의 풍습의 의지처를 스님을 삼거든요. 일본은 전부 대처승 제도잖아요.
대처승 제도인데 그 스님이 죽게 되면 그 스님 아들을 그 절 주지로 삼아서 역시 그렇게 모십니다. 김일성이가 김정일에게 세습체계 하듯이 세습제도입니다. 스님들도 전부 그렇게 세습제도라고요. 그 아들들도 다 대학들 다니지요. 다 불교대학 해가지고 학문들이 다 있고, 대학의 학문 교수노릇 다 해가면서 결혼도 유지해 가면서, 그리고 또 마누라들이 전부 법을 배워 가지고 웬만한 불공들은 마누라들이 다 하고, 손님 치르는 법, 전부 규율답게 다 해요. 공양주 채공 원주까지 중 마누라가 다 합니다.
큰 재. 큰 불공 들었을적에는 시간 딱 맞춰서, 12시 정각이라면 12시 5분전에 학교에서 강의 하다가도 나와 가지고 양복 위에다가 납자하나 탁 걸치고 딱 축원 한마디 해주고는 인사 한 마디 하고 차타고 가지요.
주지는 그렇다고요. 일본 중노릇은 그것도 그런대로 멋이 있다고요.
수도승은 아니라 하더라도 교단 운영은 풍습이 대단하거든요.
고려시대에도 좀 그랬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보조스님은 우리가 자꾸 계급이나 올라가려고 하고, 신도들한테 대접이나 받으려고 하고, 이것이 중의 본분이 아니지 않나? 모든 명리를 다 떠나서 여법하게 발심해서 중노릇하는 것이 옳은 중노릇이지 계급이나 올라가고 대접이나 받으려고 하고 월권하려고 하는 것이 어디 중노릇이냐? 그런 남 다른 발심수행을 하려고 하는 사상을 보조스님이 가졌기 때문에 오랜 법력이 다른 분인 것 같아요.
저술도 그렇게 남기셨고요.
대강 그렇게 해서 25세부터 전라도 청운사에 가서 참선을 하기시작 했고, 28세에는 안동 학가산에 가셔서 경전을 보시다가 깨달음을 얻어서 경전 敎하고 禪하고가 본래 둘이 아니다. 선하는 사람이 교를 무시 한다거나 교하는 사람이 선을 닦지 않는다든가 이것은 있을 수가 없다.
禪ㆍ敎ㆍ律이라는 것은 솥의 세 발과 같이 꼭 병행해야한다. ←이것을 많이 주장하셨고, 禪敎一致(선교일치)를 주장하면서도 교를 끌어다가 선으로 회향해야 된다. 깨달음을 얻어야 된다. 교를 보는 것은 한정이 있지만 선이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견성성불까지 한정이 더 깊은 것이니까요. ←이렇게 주장하셨는데 지금 여기 방장스님 같은 분들이 보조스님을 약간 배격하는 그런 면이 있는 것은 너무나 교를 끌어다가 선하고 같이 동화 시키려고 하는 것이 맞지 않다 이겁니다.
선하고 교하고는 질적으로 크게 차이점이 있다 이겁니다.
어떻게 차이점이 있느냐? 究竟(구경)은 같은 것이겠지만 禪이라고 하는 것은 直說(직설)을 말한 것이고, 활의 활줄을 말한 것이고, 敎라고 하는 것은 활등을 말한 것이다 이 말입니다. 활등은 꾸불꾸불 하거든요.
直說은 無煩重(무번중)이요. 직설한 것은 무겁고 번거로운 것이 없는데, 거듭되는 것이 없는데 曲談(곡담)은 名相勞(명상노)라. 꼬불꼬불 자세한 얘기를 하려니까 名相이 수고롭다 이 말입니다. 이래서 선과 교가 아무리 일치라고해도 구경에는 일치지만 수행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같은 것이 아닌데, 자꾸 같은 것으로만 주장 했다고 해서 보조스님을 말하자면 “옳게 가르친 것이 아니다.” 頓悟漸修(돈오점수)같은 것을 배격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거든요.
아무튼 간에 그 때 사람들의 모든 근기를 맞춰서 자기의 사상을 잘 그렇게 하셨는데, 33세에 팔공산 거조암에 가서 결사를 하시다가 40세에 지리산 상무주암에 가서 공부를 하셔서 크게 깨달았다 그래요.
그 다음에 43세에 松廣寺(송광사)에 와서, 송광사는 본래가 송광산 길상사였는데 그 산 이름을 조계산 송광사라고 처음에는 수선사라고 했다가 송광사라고 고쳤다고 합니다. 조계산이라고 하는 것은 역시 육조스님 계시던 곳이 조계산이기 때문에 육조스님의 선종의 근본인 산 이름을 그대로 따서 그대로 쓴 것이고, 송광사라고 하는 松자는 나무 木자에 귀인 公자했으니까 열여덟 귀인이 나는 곳이다. 열여덟 사람의 귀인이 나는 곳이다.
“18국사 도량이다.” 이겁니다.
넓을 廣자는 廣度衆生(광도중생)한다. 18 귀인이 나와서 광도중생을 한다. 지금까지 16국사가 났으니까 여러분들이 공부 잘하면 18국사 가운데 한 명이 될 것 아닙니까? 거기에서 많은 대중들을 거느리고 살다가 보니까 좋은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이 있고 하니까 松廣淸規(송광청규)를 제정 했습니다. 그 때에 性富(성부)스님이라고 하는 분이 백양사에서 스님한테 배우기 위해서 왔는데 그 스님은 본래 아주 큰 대목입니다. 대목. 목수 질을 잘 해요. 목수 질 하다가 그 쪽으로 와서 송광사 건립을 그 성부스님이 9년간을 다 했대요.
보조스님이 53세에 열반에 드셨는데, 53세에 열반에 드실 때 법상에 올라가서 대중을 보고 주장자를 구르고 하는 말이 “오늘 날 나의 모든 생명은 대중 너희한테 다 맡기고 가겠다.” 이런 말씀을 하셨거든요.
한 중이 떡 나와 가지고 “모든 부처님과 조사스님들이 열반하는 것 하고 오늘 날 스님이 열반하시는 것 하고 같습니까? 다릅니까?” 이렇게 물으니까 “네는 여태까지 중노릇 했던 것이 같고 다른 것만 배웠느냐?” 그러고는 턱 주장자를 구르시고,
波亂에 月難顯(파란월난현)하고 파도가 어지러우면 달이 나타나기가 어렵고, 파도가 출렁거리면 달이 옳게 못 나타난다 말입니다.
室深에 燈更光(실심등갱광)이니라. 방이 깊으면 깊을수록, 컴컴 어두울수록 등불 빛은 더욱 밝아지리라.
勸君整心器(권군정심기)하야 그대들에게 권하노니 마음의 그릇을 잘 정돈해서
勿傾甘露漿(물경감로장)이어다. 감로의 장물을 기울이지 말아라. ←이 법문을 하시고서는 주장자를 짚고, 법상에서 그대로 열반에 드셨거든요.
53세니까 일찍 돌아가셨지요. 제가 보조스님 한테 비하면 10년이 훨씬 넘었어요. 옛날 스님은 53세에 턱~ 대선지식이 되어서 법상에서 그렇게 돌아 가셨는데 우리는 거기다 대면 부끄럽거든요. 별 것도 아니지만...
보조국사라고 하잖아요? 보조국사라고 하는 얘기가 어느 임금한테 언제 어떻게 국사가 되었다는 얘기가 그렇게 분명하지 않아요. 그런데 전설로 국사얘기가 되어 있어요. 이런 얘기는 전설이기 때문에, 정사에 실려져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얘기나 하고 보조국사얘기는 마치지요.
보조국사가 젊은 시절에 깊은 산 속에, 깊은 산 속에 다니면서 선지식을 찾아서 尋師訪道爲參禪(심사방도위참선)이라. 스승을 찾고 도를 물어서 참선하기 위해서 다니다 보니까 저 함경북도 경계를 넘어서 만주 땅 근방까지 가셨더라는 겁니다. 그 때는 만주 땅이 금나라라는 나라예요. 金國이라는 나라예요. 지금도 그 쪽에 가면 -백두산 소나무라고 여기도 오잖아요.
나무가 많은 그 숲속에서 길을 잃어버렸어요. 길을 잃어버려 가지고 가다 보니까 숯 굽는 사람을 만나서 “길을 잃어버렸으니까 하룻저녁 재워 주시오” 하고 숯을 꺼낸 데니까 따뜻하거든요. 가마니 떼기를 깔고 거기서 자라고 감자나 하나 구워줬는가 그걸 잡수고 잤는데, 자고 일어나니까 그 숯 굽는 사람이 묻는 겁니다.
“내가 내생에 천자가 되기가 원인데 어찌하면 되겠느냐?” 이러거든요.
“천자가 되면 뭐해요? 아미타불을 부지런히 부르면,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 아미타라고 하는 것은 無量壽無量光(무량수무량광) 아닙니까?
한량없는 수명과 한량없는 광명이니까 한량없는 수명은 한량없는 시간이고, 無量光. 빛 光자지요? 빛의 속도는 삼천대천세계를 두루하는 것이니까,
한량없는 공간이다 이 말입니다. 한량없는 시간과 한량없는 공간의 소유자가 뭐냐 이 겁니다. 바로 우리 자성자리다 이겁니다.
우리 마음자리는 마하의 능력을 가지고 있고, 무한능력.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 마음자리다 이겁니다. 무량수무량광이거든요.
아미타불이. 그것을 깨닫는 것. 佛이란 말입니다. “그 일에 귀의하라. 생명을 바치라.” 歸依無量壽覺(귀의무량수각). 그것이 나무아미타불이거든요. 역시 마하반야바라밀과 같은 것이지요. 무한능력의 소유자. 그것을 깨달아 귀의한다. “나무아미타불을 부지런히 부르면 금나라 천자겠느냐? 극락세계 수용을 다 할 텐데” “아이고 잘 알았습니다.”
그 날부터 이 사람이 아미타불을 잘 불렀는데, 등허리가 뜨끔뜨끔 아프거든요. 어제 밤에 자는데 돌멩이가 하나 있었는데 그걸 모르고 거기다 가마니를 깔고 등허리에 고이고 자니까 등허리가 아팠지요.
이 영감은 그 날부터 아미타불을 밤낮 주야로 그냥 얼마를 불렀는지 부르다가 그냥 죽어 버렸어요. 아미타불을 부른 공덕으로 자기 소원이 그러니까 금나라 천자집에 가서 태어나서, 왕궁에 가서 태어나서 금나라 천자가 되었단말입니다. 천자가 되어서 아들 셋이나 낳거든요. 그러니까 몇 십 년 지나갔을 것 아닙니까? 그 때는 보조스님도 나이가 많은 노장이 되었거든요.
4~50의 노장이 역시 그 때도 말년에 은둔수도 하면서 산 속으로 다니다가 또 길을 잃어버렸어요. 바위틈에서 자려고 앉았는데 어디서 아이들 소리가 왁자지끌 나거든요. 정신을 차려보니까 사미승들이 어디서 발우대를 들고 와르르, 열 댓 명이 그냥 떼를 지어가지고 아이들이 내려오거든요.
“얘들아 너희 집이 어디냐? 너희 절이 어디냐?”
“바로 저 위에 아니요?”
“어디 가니?”
“금나라 천자집에 공양청정 갑니다.”
“그래? 그럼 나도 너희들 뒤를 살살 올라갈테니까 너희는 가서 많이 얻어 먹고, 내 몫도 한 몫 받아 오너라.”
“아, 받아올 것 없이 노스님 우리 갑시다. 같이 갑시다.”
“아이고 내 다리 아프고 금나라 천자집까지 어떻게 가느냐?”
“우리가 떼매고 갈테니까 눈만 감으세요.” 이러거든요. 눈을 감으라고 하더니 열 댓 명이 와르르 달려들어서 팔 다리 허리를 들고 그냥 번개 같이 뛰거든요. “눈 뜨세요.”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금나라 천자가 기도하는 왕궁 나한전이 있어요. 나한들이 떡 하니 탁자에 앉았더라 이겁니다.
옆에 보니까 싱긋싱긋 웃고 있는 아이들이 전부 나한님들입니다.
나한님이 신통으로 노장을 떼매 다가 갖다 놓은 겁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만조백관 스님들이 머리를 숙이고 절도 하고 야단이거든요. 그러더니 “큰스님이 광명도량이시니 우리 천자님의 병을 고쳐 주세요.” 그런단 말입니다. 정신이 좀 나가지고
“천자가 어디가 어떻게 아프냐?” 고 이렇게 물으니까
“천자가 등창병이 나서 100가지 약을 써도 안 낫는다.” 는 겁니다.
그래서 나한전에 기도를 했더니 갑자기 노스님 한 분이 나타나셨으니 아마 틀림없이 천자의 등창병을 고쳐주실 것 같다고... 그래 등허리 좀 보자고 보니까 등허리에 돌맹이 하나가 박혀 있거든요. 그래서 물 떠 오라고... 다른 사람 눈에는 돌맹이로 안 보이고 보조스님 눈에만 돌맹이로 보인 겁니다. 그래서 돌맹이를 떼 내버리고 물로 씻으니까 금방 나아버렸지요.
등창병이 나서 죽네 사네 하다가 낫고 나니까 얼마나 좋은지...
“아이고 큰스님 덕택으로 내 생명을 구했으니 큰스님, 무엇으로 은혜를 갚으리까?” “은혜를 갚기는 뭘 은혜를 갚아?”
“무엇이든지 요구 하시는 대로 제가 구해 드리겠습니다.”
“아이고 중이 사니 상투가 있나 죽으니 무덤이 있나 집이 있나 절이 있나 계집이 있나 자식이 있나 아무 걸릴 것이 없는데 무슨 물질이 필요하냐?” 고 “물질은 다 필요 없고, 내가 이제는 늙어서 시봉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
금나라 천자 아들이 셋인데 셋째 아들이 제일 영특하게 생겼어요.
셋째가 아주 도인감이라. 금나라 천자 생각에도 셋째가 저 놈이 왕재입니다.
옛날 태종 밑에 양녕대군 효령대군 세종대왕. 셋이잖아요. 세종이 막내인데 양녕대군이 큰아들이거든요. 태자인데 셋째가 영특하게 생겼거든요.
세종대왕 성군이니까요. 태종이 세종대왕을 딱~ 생각하니까 그런 줄 알고 양녕대군이 일부러 망난이 짓을 했거든요. 담을 뛰어넘고 가서는 술도 먹고 게걸거리고 대문도 발로차고 일부러 그래가지고 태자에서 떨어졌거든요. 그러니까 효령은. 효령대군은 둘째거든요. 형님이 그렇게 개차반질을 하니까 태자자리는 나한테 오겠다 싶어가지고 부지런히 글 읽고 있으니까 양녕대군이 “이 눈치도 코치도 없는 놈아” 하고 책상을 발로 차 버렸다고 하지요. 그러니까 효령대군은 알아채고 망월사 가서 중이 되었단말입니다.
효령대군은 중이 되고 양녕대군은 건달이 되고 세종대왕은 왕이 되었거든요. 효령대군이 기도를 하고 있는데 양녕대군이 사냥을 한다고 설치다가 절에 들어가서 중들 없냐고 밥 좀 달라고 고함을 지르니까 형님, 어쩐 일로 이러시냐고, 짐승을 잡고 절로 끌고 들어오면 됩니까 하고 뭐라 하니까, 껄껄 웃으면서 내가 살아서는 임금의 형님이요. 죽어서는 부처의 형님이니 내 참 복 많아서 다행이라고... 효령대군은 거기서 그 때 기도할 때, 화신사리가 다기에 떨어져서 그 사리를 파고다 공원 탑에 모셨다고 하지요.
방광도 하고 그랬다고 그러는데...
그 세종대왕처럼 막내가 제일 영특하게 생겼다 이 말입니다.
시봉이 하나 필요한데 하니까 “아이고 골라잡으세요.”
“큰 아이는 태자니까 놔둬야 되겠고, 둘째는 후보로 놔둬야 되겠고, 막내는 필요 없을 테니까 막내를 주세요.”
“아이고 큰놈 데려 가시지요.”
“에이 큰놈들은 다 필요 없다.” 고 해서 막내를 데리고 나오는데, 금나라 천자가 멀고 먼 길 가시는데 짚고 가시라고 향나무 지팡이를 해서 하나씩 해줬다는 겁니다. 향나무 지팡이를 하나씩 짚고 나오는데 걸어서, 걸어서 내려올 것 아닙니까? 내려오는데 천자가 될 감이니까 아이라도 키가 훨씬 크고 얼굴도 환하게 잘 생겼을 것 아닙니까? 보조국사는 쪼조하니 시원찮게 생겼거든요. 아이가 뒤에 따라오면서 ‘스님이라고 하는 사람이 키도 조그맣고 제기랄 것 뭐 배울 것이 있겠나?’ 생각을 그렇게 했거든요. 그러니까 보조스님이 알고 돌아서서 “그럼 키 큰 사람이 앞에 가라.” 벌써 알아차렸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머리를 숙이고 “잘못 했습니다 다시는” 하고...
벌써 내 마음을 타심통으로 다 아니까, 타심을 통해서 아니까 그 다음부터는 곱신곱신 송광사에 내려와서 지팡이를 꽂아 놓은 곳이 천자암 쌍향수입니다. 그 두 그루가 우리나라의 유일무이한 천연기념물 향나무잖아요.
그 진각국사 데리고 와 가지고서는 “이 공부는 말이다. 마음을 일념성취만 하면 사흘 동안만 마음을 마하쁘라즈나. 마하를 무한능력. 영원생명.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도는 광속도. 이것이 마하라는 이 말입니다.
지금 말하자면 비행기가 1초에 340m 가는 것은 음속돌파 마하라고 그러잖아요. 하지만 그것이 아니고, 부처님의 마하반야의 마하는 초전속. 초전광이거든요. 전광의 속도를 초월했다는 말입니다. 지구를 일곱 바퀴 반도는 1초에 30만Km를 가고 오는 그것이 마하의 능력이라는 말입니다. 그래 무한능력이지요.
그것이 바로 영원생명이고 우리 마음자리가 그와 같은 것이다 이 말입니다. 이것이 분산되어 있으면 힘이 없고, 이것을 집중 시키면 거기에서 무한능력을 발휘하는 바로 텔레파시로 통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우주 레저의 힘으로 다 통하는 것이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마하를, 반야만 하면, 집중하기만 하면, 마하 집중 하는 것이 선정력입니다. 거기에서는 지혜력이 생긴다 이겁니다. 그래서 반야를 지혜라고 그러잖아요. 파라가 파라다이스의 원형이거든요. 바로 그냥 천당ㆍ극락 낙원에 도달할 수가 있다. 밀다는 도착. 피안은 到彼岸(도피안)아닙니까? 피안에 도착한다. 완성한다 이 말입니다. 마하를 쁘라즈나 해라. 하면 이것은 3일내에 그냥 성취할 수 있다.
그래서 일념성취. 3일 만에 완전히 성취해 가지고는 견성해서 송광사의 三日庵입니다. 三日庵은 유일하게 거기 밖에 없지요. 그런 전설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정식 사기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강을 건너오는데 배가 자꾸 가라앉아서 복이 너무 많아서, 천자가 타놓으니까 복이 많아서 배가 자꾸 가라앉으니까 신짝을 머리에 이고 건너왔다는 그런 소리도 있고, 별 소리가 많지만 그런 시시한 얘기라 해서 정사에 올려져 있지는 않고, 그러나 그 전설은 그런대로 재미있잖아요. 재미있으니까 그런대로 믿으면 되는 것이지요.
한국불교 조계종사에 큰 빛을 남기신 보조국사는 마음의 소를 잘 먹이고 잘 다스리는 분이다. 牧牛子라. 소치는 사람이다. 보조스님에 대한 자세한 내막은 전기에 보면 다 나오는 것이고, 이런 전설은 전기에 안 나오니까 얘기 했습니다. 誡初心學人文 海東沙門 牧牛子 述이라. 제목풀이 한 시간했습니다.
염화실 카페 http://cafe.daum.net/yumhwasil/8ANP/43 에서 복사한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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