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스님

열반경종요

수선님 2019. 5. 19. 12:22

원효의 『열반경종요』에 대하여


목차

1.서론

2.원본

3.구성

1)열반문

2)불성문

4,결론


1. 서론

『열반경종요』는『대열반경』의 중요한 종체(宗體)와 교적(敎迹) 등을 간요하게 논석한 것이다. 원효의현존하는 다섯 가지 『대혜도경(大慧度經)』『법화경(法華經)』,『무량수경(無量壽經』,『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종요(宗要) 가운데서 『열반경종요』가 가장 분량이 많다. 이 문헌은 그 다루고 있는 원전과 원효 자신의 연구내용으로 보아 원효의 저술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저술이라고 한다. 본고에서는 『열반경종요』의 구성과 여기에 나타난 원효의 열반 관과 불성론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대반열반경』은 소승과 대승의 두 종류가 있다. 소승의『열반경』은 석존 입멸시의 사정을 전하고 있는 것으로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하여 기록되고 있으며, 석존 입멸 후의 교단의 의지처가 ‘법’과 자‘신’에 있음을 밝혀 법과 율을 중심으로 교단을 운영할 것을 말하고 있다. 이에 비해 대승의『열반경』은 석존의 입멸 사실을 계기로 하여 부처의 본질이 법신에 있음을 말하고 불신상주(佛身常住),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實有佛性), 일천제성불(一闡提成佛)의 사상을 주된 가르침으로하고 있다. 원효의 『열반경종요』는 대승의 『열반경』중 혜엄(慧嚴)(303-443) 등이 번역한 남본(南本) 36권 『열반경』을 저본(底本)으로 하고 있다.


3. 구성

이 『종요』는 전체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먼저 대의(大意)를 약술(一者 略述大意)하였으며, 다음에 자세하게 열고 분별(一者 廣開分別)하여 풀이하였다. 첫째 문(門)의 ‘述大意,’를 에서는 ‘본디 열반의 도(道)라고 하는 것은 도가 없으면서 도가 안님이 없다“로 시작하여 『대열반경』의 제목 풀이에 이르기까지 간략하면서도 매우 깊이 있게 그 경설의 요의를 서술하였다.

둘째 문인 광개분별(廣開分別)에서는 네 부분으로 나누어 , 먼저 경을 설하는 인연을 설명{初說因緣} 하고, 다음에 경교(經敎)의 종지를 밝히며({次明敎宗}, 세 번째에서 경의 교체(敎體)를 드러내고{三出經體}, 네 번째에서 교적(敎迹)을 분변(四辨敎迹)하고 있다.

원효는 특히 두 번째인 명교종(明敎宗)에서 다시 열반문(涅槃門)과 불성문(佛性門 )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 그 경종(經宗)을 자세히 밝혀 놓았다. 열반의 뜻을 밝힘에 있어서는 포의(包義), 체상(體相), 통국(通局), 이멸(二滅), 삼사(三事), 사덕(四德)의 6문(六門)으로 나누었다. 불성의 뜻을 밝히는데 에도 또한 여섯 문으로 나누어 , 출체(出體), 인과(因果). 견성(見性), 유무(有無), 삼세(三世), 회통(會通)의 문으로 하고 있다.

이들 열반과 불성의 두 부분이 『종요』전체의 분류로 볼 때 작은 항목으로 보이고 있으나 이 두 부분이야말로 원효의 열반 관과 불성관을 잘 보여주고 있는 훌륭한 두 편의 논문이라고 할 수 있다. 종래의 열반 학에서는 열반과 불성이 곧잘 혼돈되었지만, 원효는 이와 같이 양분하여 조직적으로 논구하고 있느니 주목할 만한 점이다.

1) 열반문(涅槃門 )

(1) 포의 (包義)

6문 중 포의에서는 먼저 ①열반의 번역 문제에 대하여 번역할 수 있다는 견해와 번역할 수 없다는 두 견해를 소개하고 ②열반의 뜻을 해석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열반을 번역할 수 있다는 주장은 대체로 열반을 번역할 수 있다는 주장은 대체로 열반을 멸도(滅度)라 번역하고, 열반을 번역할 수 없다는 주장은 외국어는 이름과 뜻을 함용하고 있는데 비해 중국어는 뜻글자이기 때문에 하나의 이름으로 번역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열반의 뜻을 해석한다는 것은 열반에는 밀어(密語)와 현료어(現了語)의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하였다. 밀어의 의미에서 보면 열반은 많은 뜻을 포함하기 때문에 번역 할 수 없지만, 현료어는 그 부류의 음성에 따라 널리 중생에게 말한 것이기 때문에 멸도라 번역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원효의 이러한 도리로부터 볼 때 양자의 주장이 모두 회통될 수 있다고 하였다.

(2) 체상(體相)

체상에서는 ①열반의 체서(體性)을 밝혀내고 ②열반의 허실을 밝힌다. 먼저열반의 체성에는 무구진여(無垢眞如)와 과지(果地)의 모든 덕이라는 두 견해가 있다. 무구진여를 열반의 체로 보는 견해는 열반이 부처의 법성(法性), 법성공(法性空), 자성청정(自性淸淨)한 것, 진여증지(眞如證智)라는 것에 근거 한다. 이렇게 보면 시각(始覺)은 열반의 체성(體性)이 될 수 없다. 그리고 과지의 모든 덕이 열반의 체라는 견해는 본각(本覺), 시각(始覺)을 구별하지 않고 열반의 체성을 말한 것으로 열반의 삼사(三事), 대아(大我), 일체 지혜, 삼신(三身)이 드러내는 무상보리(無上菩理)가 여기에 속한다.

열반은 허(虛)인가 실(實)인가, 공(空)인가 불공(不空)인가 라는 문제 제기에 대해 열반의체성은 참으로 진실한 것이어서 결정코 공하지 않는 것이라는 주장과 생사열반은 모두 허망하여 공. 무소득이므로 불법도 공하지 않음이 없다는 주장이다. 이 두 주장에 대해 원효는 종래의 학자들은 자신들의 교상판석에 따라 각자가 근거하는 경전에 의지하여 열반이 공 또는 불공이라 주장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원효는 먼저 그 말만을 취해서 보면 모두 불의(佛意)에 어긋나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지만 ,단지 결정된 집착이 아니라면 법문이 서로 걸림이 없기 때문에 두 주장모두 타당하다고 하였다.


(3)통국 (通局)

통국에서는 열반이 공통되는 것이냐 국한되는 것이냐에 대해 부파불교의 독자부(獨子部), 그리고 대승의 열반을 구별하여 설명하고 있다.


(4) 이멸(二滅)

이멸에서는 먼저성정열반(性淨涅槃)에 대해 맑히고 다음에 유여열반(有餘涅槃)과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대하여 밝혔다. 성정, 방편과 열반이 동일한 진여를 근거로 하는 점은 같다. 성정열반은 진여, 법성으로 일체 중생에게 공통된 것이며, 방편과 열반은 수행하여 번뇌를 소멸한 뒤에 나타나는 열반이다. 유여. 무여열반의 구별에 대해 소승불교에서는 유여열반은 번뇌장이 소멸한 것이라 하고 무여열반을 완전한 열반이라 본 경향이 있다. 대승불교에서는 유여, 무여열반에 대한 명확한 구별은 없으며, 오히려 붓다의 자비정신에비추어 보았을 때 유여열반이 중생구제의 취지에 더 부합된다 하겠다.


(5) 삼사(三事)

삼사에서는 열반의 특성을 법신(法身),반야(般若), 해탈(解脫)의 세 가지 일을 들어서 밝혔다. 대승불교 시대가 되면서 부처는 역사성을 벗어나 순수한 이(理)로서의 법신이 된다. 열반을 이미 이(理 )라고 하면, 그때 열반은 법신과 결합된다. 또 열반은 번뇌장과 소지장을 여의 점에서 지혜와 해탈의 두 가지 덕을 갖고 있다. 그래서 법신(法身), 반야(般若), 해탈(解脫)을 열반의 삼덕(三德)이라 한다. 법신은 불지(佛智)의 일체 공덕으로 유일한 법계이며, 영원한 진리이다. 반야는 법신의 성품이 스스로 맑고 통달하여 비추지 않는 데가 없는 것으로 생사의 분별을 떠나는 지혜이며, 해탈은 법신이 모든 번뇌의 계박(繫縛)을 떠나서 장애 되는 것이 없는 것, 즉 생사를 초월하는 것이다. 열반의 이 세 가지 특성은 그것이 함께 갖추어지고, 평등하고, 원만하게 , 일시에 동체(同體)가 되어야 열반이 된다는 것을 설명한다.


(6) 사덕(四德)

사덕이란 상락아정(常樂我淨)을 말하는데 , 개별적으로 보면 상(常)이란 열반의 경지는 생멸 변천이 없다는 것으로 법신의 뜻이 된다. 락(樂)은 생사의 고통을 떠나는 것을 말한 것이기 때문에 열반의 뜻이다. 아(我)는 중생이 자아가 없다는 것에 대한 것이며, 일여(一如)가 된 몸은 망집(妄執)을 떠난 진여 그대로다 는 것으로 부처의 뜻이다. 정(淨)은 번뇌의 이 더러움을 여의었다는 것으로 법의 의미이다. 그러나 총체적으로 보면 사덕은 상호 해당되지 않는 것이 없다. 즉 사덕이 법신, 열반, 반야, 해탈의 뜻이 된다는 것이다.

원효는 열반의 많은 덕 가운데 오직 이 사덕만을 세우는 이유에 대해 네 가지 장애를 없애고, 네 가지 환난을 뒤엎고, 네 가지 전도를 대치하고 네 가지 상을 여의기 위해서라 하고 있다.


2) 불성문(佛性門)

먼저 출체(出體)에서는 불성(佛性)의 체(體)룰 총론적으로 맑히고 있고, 인과(因果), 견성(見性), 유무(有無). 삼세(三世)의 사문(四門)에서는 각각 불성의 인과 문제, 에는 지위에 이르러서 불성을 볼 수 있는가, 불성의 유무의 차별을 밝힘에 있어서 성인(聖人)의 지위에서 보는 것과 범부(凡夫)의 입장에서 보는 것, 불성이 삼세에 관련되느냐 관련되지 않느냐를 맑히고 있는데 여기서는 지면상 생략하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회통(會通)은 6문중에서 결론 부분에 해당한다.

(1)출체(出體)

불성(佛性)의 체(體)를 밝힘에 있어 원효는 불성에 대한 여러 가지 주장을 간추려 여섯으로 나누어 보이고 있다. 첫째는 ‘당래(當來)에 있을 불과(佛果)를 불성의 체(體)로 삼는 설’ 로서 백마사 애법사(白馬寺 愛法師)가 서술한 축도생(竺道生)의 뜻이다. 둘째는 ‘현재에 있는 중생이 불성의 체가된다는 설’로 장엄사 민법사(莊嚴寺 旻法師)의 뜻이다. 셋째는 중생들의 마음은 목석과 달라서 반드시 고(苦)를 싫어하고 락(樂)을 구하는 성품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만행(萬行)을 닦아서 마침내 무상보리(無上菩提)의 즐거운 과(果)를 얻게 된다. ‘이 중생의 심성을 정인불성(正因佛性)의 체로 삼는 것’은 광택사 운법사(光宅寺 雲法師)의 설이다. 넷째는 ‘마음 가운데 신령스러워 잃어버리지 않는 성품을 정인불성의 체로 삼는 것’으로 양무소언천자(梁無蕭焉天子)의 설이다. 다섯째는 ‘아뢰야식(阿賴耶識)의 법다운 종자가 불성의체가 된다는 설’로서 현자 등의 설을 가리킨다. 여섯째 ‘암마라식(庵摩羅識)의 진여해성(眞如解性)을 불성으로 체로 삼는 설’로 『보성론』을 인용하고 있다.

이러한 여러 설에 대하여 원효는 “불성의체는 바로 이 일심(一心)이며, 일심의 성품은 모든 변견(邊見)을 멀리 떠나기 때문에 도무지 해당되는 것이 없다 해당되는 것이 없기 때문에 해당되지 않는 것도 없다.”라고 서술하여 추심론(就心論)과 약연론(約緣論)의 양면에서 논하고 있다. 먼저 취심론에 의하면 마음은 인위(因位)도 아니요 과위(果位)도 아니며, 진제(眞諦)도 아니고 속제(俗諦)도 아니며, 인(人)도 아니요 법(法)도 아니며, 기(起)도 아니요 복(伏)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약연론에 의하면 마음은 기(起)도 되고 복(伏)도 되며, 법(法)도 되고 인(人)도 되며, 속제(俗諦)도 되고 진제(眞諦)도 되며, 인위(因位)도 도고 과위(果位)도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비연비불연(非緣非不緣)의 뜻이기 때문에 여러 주장이 모두 옳기도 하고 모두 그르기도 하다고하여 화쟁(和諍)의 논리를 보여주고 있다.


(2) 회통(會通)

원효의 열반관이나 불성의 뜻은 회통에서 보다 명료해지는데, 여기서는 불성의 듯은 무량하지만, 정리하면 다음 5종을 벗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첫째 성정문 상주불성(性淨門 常住佛性)은 불성은 제일의 (第一義)의 공(空)한 것이요 이것이 곧 중도(中道)이며 일승(一乘)이라는 것이고, 둘째 수염문 무상불성(隨染門 無常佛性)은 불성이 대신심(大信心). 사무량심(四無量心). 사무애지(四無礙智). 삼매(三昧) 등이라는 것이다. 셋째 현과불성(現果佛性)은 현재의 과위(果位)이니 이는 모든 부처님이 얻은 것이며, 넷째 당과불성(當果佛性)은 당래에 있을 부처의 과위이니 중생들이 다 함유하고 있는 것이다. 다섯째 일심비인비과(一心非因非果)는 불성은 바로 일심(一心)이어서 인위(因位)도 아니고 과위(果位)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 다섯 번째가 원효의 독자적인 불성의 뜻이다. 그러므로 마지막에 “앞의 두 가지의 인(因)과 뒤의 두 가지의 과(果)는 그 성품이 둘이 아니어서 오직 일심이다. 이 일심의 성품은 오직 부처님만이 몸소 증득한다. 그러기에 이 마음을 불성이라 이름 한다.”고 결론짓고 있다.

4. 결론

위와 같이 열반(涅槃)과 불성(佛性)의 의미에 대해 『열반경종요』에서는 회통(會通)의 기본 관점에서정립하고 있다. 비연비불연(非緣非不緣)의 논리로 대변되는 화쟁(和錚)은 경전 상에 나타나는 상이한 내용들을 화회(和會)시키는 원효만의 방법이다. 비연비불연(非緣非不緣)은 부정과 이중부정, 즉 부정과 긍정이 이원론적으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정립하고 있는 모습이다. 또한 이것은 변증법처럼 하나로 합일되어 새로운 이름이 탄생되는 것이 아니라, 시실과 날실이 엮어져 직물(織物)이 되듯 비연(非緣)과 비불연(非不緣)이 일심(一心)이라는 큰 틀 안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역동적인 작용일 것이다. 이 일심은 대립되고 모순되는 모든 것들을 자시 속에 포괄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머무르지 않고 초월해 있는 평등하고 원만한 해탈자인 중생심(衆生心)으로 화쟁사상의 근거가 되고 있다. [운문승가대학 학인스님]  

 

 

 

 

 

 

 

 

 

 

불종사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01193704043/8133174 에서 복사한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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