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식학의 중심사상
묘주
Ⅰ. 유식사상의 성립
1. 유식의 언어적 분석
2. 유식사상의 성립 배경과 시대 구분
3. 교의체계와 주요 경론
Ⅱ. 心識論
1. 팔식의 역동적 구조
Ⅲ. 三性·三無性의 중도설
1. 세 가지 자성
2. 삼성의 관계
3. 세 가지 無自性
4. 삼성·삼무성설의 의의
Ⅳ. 수행문-五位 수행과 轉識得智
1. 轉依
2. 五位의 수행단계
3. 證果-대열반과 대보리
1. 유식의 언어적 분석
2. 유식사상의 성립 배경과 시대 구분
3. 교의체계와 주요 경론
Ⅱ. 心識論
1. 팔식의 역동적 구조
Ⅲ. 三性·三無性의 중도설
1. 세 가지 자성
2. 삼성의 관계
3. 세 가지 無自性
4. 삼성·삼무성설의 의의
Ⅳ. 수행문-五位 수행과 轉識得智
1. 轉依
2. 五位의 수행단계
3. 證果-대열반과 대보리
유식학의 중심사상
Ⅰ. 유식사상의 성립
석존(釋尊)의 교설 자체는 변함없는 진리이다. 그러나 불교의 교의(敎義) 체계는 역사적으로 시대상황에 맞추어 중관학(中觀學)·유식학(唯識學)·밀교학(密敎學) 등 몇 번 새로운 방법론으로 전개되었다. 그 양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지닌다. 첫째, 선구적인 수행자들의 체험적인 자각이 원동력으로 작용하였다. 둘째, 새 이론을 전개함에 있어서 근본 전제 내지 방향이 어디까지나 깨달음[自覺覺他]을 위한 수행의 이론적 토대였다.
인도 유가유식학파(瑜伽唯識學派)의 선구적인 유가사(瑜伽師, 요가 수행자)의 선정에서의 지각인 '유식(唯識)에 바탕을 둔 현상계의 모든 것은 오직 표상식(表象識)일 뿐이다(sarvam vijnaptimatram).'라는 명제는 이 학파 학설의 바탕을 이룬다. 현상세계는 인식의 주체인 식(識)이 대상의 모습을 띠고 나타난 표상식으로 존재할 뿐이고, 대상세계는 결코 식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으며, 지각된 그대로 외계에 실재하지 않는다는 이론을 유식무경설(唯識無境說)이라고 한다. 진실로 각자(覺者)의 눈으로 보면 이 세계는 식의 사현(似現)이고 표상일 뿐 실재하지 않으며 꿈과 같은 환상이다. 그러나 무명(無明)에 싸여 주관과 객관의 대립 속에 사는 일반인들은 이 세계가 지각되는 그대로 실재한다고 믿는다. 유식사상은 이러한 아집과 법집을 타파하고, 업식(業識)을 반야의 지혜로 전환하고자 한다. 이처럼 업식 반야의 무분별지혜, 즉 전식득지(轉識得智)가 바로 유식학의 근본 취지[大意]이다.
인도 유가유식학파(瑜伽唯識學派)의 선구적인 유가사(瑜伽師, 요가 수행자)의 선정에서의 지각인 '유식(唯識)에 바탕을 둔 현상계의 모든 것은 오직 표상식(表象識)일 뿐이다(sarvam vijnaptimatram).'라는 명제는 이 학파 학설의 바탕을 이룬다. 현상세계는 인식의 주체인 식(識)이 대상의 모습을 띠고 나타난 표상식으로 존재할 뿐이고, 대상세계는 결코 식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으며, 지각된 그대로 외계에 실재하지 않는다는 이론을 유식무경설(唯識無境說)이라고 한다. 진실로 각자(覺者)의 눈으로 보면 이 세계는 식의 사현(似現)이고 표상일 뿐 실재하지 않으며 꿈과 같은 환상이다. 그러나 무명(無明)에 싸여 주관과 객관의 대립 속에 사는 일반인들은 이 세계가 지각되는 그대로 실재한다고 믿는다. 유식사상은 이러한 아집과 법집을 타파하고, 업식(業識)을 반야의 지혜로 전환하고자 한다. 이처럼 업식 반야의 무분별지혜, 즉 전식득지(轉識得智)가 바로 유식학의 근본 취지[大意]이다.
1. 유식의 언어적 분석
우선 유식이란 용어의 언어적인 분석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유식(唯識, vijnaptim-atra)의 말뜻은 '(현상계는) 오직 표상식(表象識)일 뿐'이다. 이것은 외부대상이 가유(假有)로 존재할 뿐, 실체가 없으며, 나아가 인식의 주체도 실체가 없는 공(空)임을 나타낸다.
그런데 한역경론(漢譯經論)에는 vijnana와 vijnapti를 다같이 식(識)으로 번역하는데, 실은 유식학파의 사상적 배경을 갖는 단어로서 의미의 차이가 있다. vijnana는 '식별작용' '식별작용을 지닌 주체'의 의미로서 육식(六識)·팔식(八識) 등의 경우에 사용. vijnapti는 '둘로 나누어(분별하여) 알게 된 것'이라는 뜻으로서, 인식대상이 인식상황 속에서 객관적 형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상태, 활동태로서의 식이며 '유식(唯識)' 등의 경우에 사용된다.
그런데 한역경론(漢譯經論)에는 vijnana와 vijnapti를 다같이 식(識)으로 번역하는데, 실은 유식학파의 사상적 배경을 갖는 단어로서 의미의 차이가 있다. vijnana는 '식별작용' '식별작용을 지닌 주체'의 의미로서 육식(六識)·팔식(八識) 등의 경우에 사용. vijnapti는 '둘로 나누어(분별하여) 알게 된 것'이라는 뜻으로서, 인식대상이 인식상황 속에서 객관적 형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상태, 활동태로서의 식이며 '유식(唯識)' 등의 경우에 사용된다.
2. 유식사상의 성립 배경과 시대 구분
인도불교사에서 유식무경설(唯識無境說)과 아뢰야식연기설이 주창되고 유가유식학파(瑜伽唯識學派)가 성립된 배경으로는 크게 ① 요가 수행자[Ψ伽師]의 체험과 그 이론화 ② 중도사상의 재천명을 들 수 있다.
종교상의 이론이 새롭게 형성되는 큰 요인은 선구적인 수행자들의 체험적인 자각이다. 유가유식학파의 선구적인 유가사들은 선정을 닦는 과정에서의 자각적인 체험, 즉 ① 선정 관행(觀行) 중의 갖가지 영상은 다만 식(識, vijnapti)일 뿐이라는 자각 ② 부파불교 이래 추구되던 윤회의 주체이며 현상계를 형성하는 아뢰야식의 구명 ③ 부파불교시대부터 번뇌와 아집의 주체 및 의근(意根)을 구명하려는 과정에서 말나식 연구를 바탕으로 유식무경설을 주창하고 하나의 학파까지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종래의 육식설(六識說)에다 아뢰야식과 말나식을 덧붙이고 정교한 팔식(八識)이론을 주창했다. 이 아뢰야식과 말나식의 식체(識體)는 유가유식학파에 들어와서 비로소 발견된 것이라기 보다는 종래의 의식(意識)의 개념과 기능을 확대하고 분석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새로운 명칭으로 주장되는 아뢰야식과 말나식이 결코 석존(釋尊)이 설하신 심의식설(心意識說)에 위배되는 것이 아님을 밝히기 위하여, 초기불교시대부터 설해진 심(心)·의(意)·식(識)에서 아뢰야식을 심, 말나식을 의, 육식을 식에 각각 배당시켰다. 그리하여 인간의 정신현상과 성불의 과정을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설명하게 되었다.
또한 교단사적으로 중도사상을 다시 천명할 필요성이 크게 대두되었다. 유식논사들은 설일체유부의 유적(有的) 사유체계뿐만 아니라, 반야공 사상을 허무주의로 오해하는 일부 악취공자(惡取空者)들의 오류를 시정하는 삼성·삼무성의 유무중도설을 주장하여 석존의 중도사상을 재천명하였다.
이상과 같은 배경 위에서 유식사상이 성립되었으며, 그 전개과정의 시대구분은 초기·중기·후기로 나뉜다. 초기 유식학은 미륵(Maitreya)·무착(無着, Asanga, 395∼470년 경)·세친(世親, Vasubandhu, 400∼480년 경)의 유식학설이고, 중기 유식학은 안혜(安慧, Sthiramati, 510∼570년 경)·호법(護法, Dharmapala, 530∼561년 경) 등 십대논사(十大論師)의 학설을 말한다. 후기에는 진나(陳那, Digna-ga, 480∼540년 경)와 법칭(法稱, Dharmakirti, ∼650∼) 등이 인식문제를 논리적으로 연구하여 바른 인식의 본질과 방법 등을 불교적 입장에서 연구하여 불교 인식논리학파(Buddhist logicoepistemological school)라고 불리운다.
종교상의 이론이 새롭게 형성되는 큰 요인은 선구적인 수행자들의 체험적인 자각이다. 유가유식학파의 선구적인 유가사들은 선정을 닦는 과정에서의 자각적인 체험, 즉 ① 선정 관행(觀行) 중의 갖가지 영상은 다만 식(識, vijnapti)일 뿐이라는 자각 ② 부파불교 이래 추구되던 윤회의 주체이며 현상계를 형성하는 아뢰야식의 구명 ③ 부파불교시대부터 번뇌와 아집의 주체 및 의근(意根)을 구명하려는 과정에서 말나식 연구를 바탕으로 유식무경설을 주창하고 하나의 학파까지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종래의 육식설(六識說)에다 아뢰야식과 말나식을 덧붙이고 정교한 팔식(八識)이론을 주창했다. 이 아뢰야식과 말나식의 식체(識體)는 유가유식학파에 들어와서 비로소 발견된 것이라기 보다는 종래의 의식(意識)의 개념과 기능을 확대하고 분석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새로운 명칭으로 주장되는 아뢰야식과 말나식이 결코 석존(釋尊)이 설하신 심의식설(心意識說)에 위배되는 것이 아님을 밝히기 위하여, 초기불교시대부터 설해진 심(心)·의(意)·식(識)에서 아뢰야식을 심, 말나식을 의, 육식을 식에 각각 배당시켰다. 그리하여 인간의 정신현상과 성불의 과정을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설명하게 되었다.
또한 교단사적으로 중도사상을 다시 천명할 필요성이 크게 대두되었다. 유식논사들은 설일체유부의 유적(有的) 사유체계뿐만 아니라, 반야공 사상을 허무주의로 오해하는 일부 악취공자(惡取空者)들의 오류를 시정하는 삼성·삼무성의 유무중도설을 주장하여 석존의 중도사상을 재천명하였다.
이상과 같은 배경 위에서 유식사상이 성립되었으며, 그 전개과정의 시대구분은 초기·중기·후기로 나뉜다. 초기 유식학은 미륵(Maitreya)·무착(無着, Asanga, 395∼470년 경)·세친(世親, Vasubandhu, 400∼480년 경)의 유식학설이고, 중기 유식학은 안혜(安慧, Sthiramati, 510∼570년 경)·호법(護法, Dharmapala, 530∼561년 경) 등 십대논사(十大論師)의 학설을 말한다. 후기에는 진나(陳那, Digna-ga, 480∼540년 경)와 법칭(法稱, Dharmakirti, ∼650∼) 등이 인식문제를 논리적으로 연구하여 바른 인식의 본질과 방법 등을 불교적 입장에서 연구하여 불교 인식논리학파(Buddhist logicoepistemological school)라고 불리운다.
3. 교의체계와 주요 경론
유식학의 교의체계는 크게 다음 세 부문으로 구성된다.
① 심식설(心識說)과 아뢰야식연기설-아뢰야식설, 종자설, 말나식설, 육식설, 심소설(心所說), 식전변설(識轉變說), 사분설(四分說) 등.
② 삼성중도설(三性中道說)-변계소집성·의타기성·원성실성의 삼성과 삼무성(三無性)의 비공 비유(非空非有) 중도설.
③ 유식관법(唯識觀法)의 오위수행과 전식득지(轉識得智) 지관법(止觀法), 오위설(五位說), 전식득지(轉識得智).
모든 교의(敎義)의 체계는 크게 이론문과 실천문으로 나뉘는데, 유식학에서는 ①②가 이론문이고, 그것을 이론적 토대로 해서 ③의 실천문이 전개된다.
유식학의 소의경론(所依經論)으로는 6경 11논을 든다. 이 중에서 유식학의 근본경전(所依經典)은 《해심밀경(解深密經)》이고, 인도에서 찬술된 주요 유식논서로는 미륵의 《유가사지론(Ψ伽師地論)》, 무착의 《섭대승론(攝大乘論)》, 《현양성교론(顯揚聖敎論)》, 세친의 《대승백법명문론(大乘百法明門論)》, 《유식삼십송》, 호법 등의 《성유식론(成唯識論)》 등이 있다.
① 심식설(心識說)과 아뢰야식연기설-아뢰야식설, 종자설, 말나식설, 육식설, 심소설(心所說), 식전변설(識轉變說), 사분설(四分說) 등.
② 삼성중도설(三性中道說)-변계소집성·의타기성·원성실성의 삼성과 삼무성(三無性)의 비공 비유(非空非有) 중도설.
③ 유식관법(唯識觀法)의 오위수행과 전식득지(轉識得智) 지관법(止觀法), 오위설(五位說), 전식득지(轉識得智).
모든 교의(敎義)의 체계는 크게 이론문과 실천문으로 나뉘는데, 유식학에서는 ①②가 이론문이고, 그것을 이론적 토대로 해서 ③의 실천문이 전개된다.
유식학의 소의경론(所依經論)으로는 6경 11논을 든다. 이 중에서 유식학의 근본경전(所依經典)은 《해심밀경(解深密經)》이고, 인도에서 찬술된 주요 유식논서로는 미륵의 《유가사지론(Ψ伽師地論)》, 무착의 《섭대승론(攝大乘論)》, 《현양성교론(顯揚聖敎論)》, 세친의 《대승백법명문론(大乘百法明門論)》, 《유식삼십송》, 호법 등의 《성유식론(成唯識論)》 등이 있다.
Ⅱ. 心識論
1. 팔식의 역동적 구조
유식학에서는 인간의 정신세계를 식별작용의 주체[心王]와 그에 수반되는 심리작용[心所]으로 나눈다. 전자에 팔식(八識)이 있고, 후자에 51가지 심소가 있다. 또한 존재구조면에서 팔식은 전식(轉識)과 근본식으로 나뉘어 설명된다. 전식은 아뢰야식의 등류습기(等流習氣)에서 전변(轉變) 생기(生起)된 식으로서 오식(五識)·제6 의식·제7 말나식이 이에 해당된다. 근본식은 칠식의 근본이 되는 식으로서 아뢰야식이다. 제8 아뢰야식을 초능변식(初能變識), 제7 말나식을 제2능변식(第二能變識), 의식·오식의 육식(六識)을 제3능변식(第三能變識)이라고 부른다.
1) 전식(轉識)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을 통틀어 오식 또는 전오식(前五識)으로 부르는데, 그것은 오식이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안식은 눈, 이식은 귀 등 감각기관[根]에 의지해서 외부대상을 감각적 직관적으로 인식한다. 둘째, 감각기관에 의지하기 때문에 각자 자기 영역만을 고수한다. 예를 들면 안식은 빛깔과 형체만을 인식하지 소리를 인식하는 일은 없다. 셋째, 현재 각 감각기관에 대면하고 있는 대상을 인식할 수 있어서 시간적·공간적으로 한계성을 지닌다. 넷째, 현량지(現量知)로서 대상을 있는 그대로 요별할 뿐 여기에 사량분별이 가해지지 않는다.
의식은 어떤 작용을 하는가? 오식이 각자 자기 영역을 고수하는 데도 실제로는 종합적으로 인식되는 이유는, 제6 의식이 오식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의식은 기억·회상·추리·상상 등의 작용을 한다.
범부가 본능과도 같은 집요한 자기 집착심을 갖게 되는 근본원리는 무엇인가? 유식학에서는 제7 말나식이 제8 아뢰야식을 의지처로 하고 동시에 그것을 인식대상으로 해서 자아로 착각하고 집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을 통틀어 오식 또는 전오식(前五識)으로 부르는데, 그것은 오식이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안식은 눈, 이식은 귀 등 감각기관[根]에 의지해서 외부대상을 감각적 직관적으로 인식한다. 둘째, 감각기관에 의지하기 때문에 각자 자기 영역만을 고수한다. 예를 들면 안식은 빛깔과 형체만을 인식하지 소리를 인식하는 일은 없다. 셋째, 현재 각 감각기관에 대면하고 있는 대상을 인식할 수 있어서 시간적·공간적으로 한계성을 지닌다. 넷째, 현량지(現量知)로서 대상을 있는 그대로 요별할 뿐 여기에 사량분별이 가해지지 않는다.
의식은 어떤 작용을 하는가? 오식이 각자 자기 영역을 고수하는 데도 실제로는 종합적으로 인식되는 이유는, 제6 의식이 오식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의식은 기억·회상·추리·상상 등의 작용을 한다.
범부가 본능과도 같은 집요한 자기 집착심을 갖게 되는 근본원리는 무엇인가? 유식학에서는 제7 말나식이 제8 아뢰야식을 의지처로 하고 동시에 그것을 인식대상으로 해서 자아로 착각하고 집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2) 근본식
근본식을 아뢰야식(alaya-vijnana)·이숙식(異熟識, vipaka-v.)·일체종자식(一切種子識, sarvabijaka-v.)·아타나식(阿陀那識, adana-v.) 등으로 부르는데, 이중에서 아뢰야식이라는 명칭이 보편적이다. alaya는 '저장' '집착' '무몰(無沒)'의 뜻이다. 이 식에 종자를 `저장'하고, 말나식에 의해 상주불변의 자아로 착각 '집착'되며, 아득한 옛적부터 성불에 이르기까지 이 식의 흐름이 결코 단절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뢰야식은 어떤 작용을 하는가? 첫째, 모든 잡염법의 저장소 역할을 한다. 즉 모든 인식과 행위의 결과가 종자(種子, bija)로서 이 식에 저장된다.
둘째, 윤회의 주체이다. 윤회과정에서 이 식이 모태에 들어가 최초의 생명체[ 羅藍]가 형성되고 신체의 각 기관이 만들어지면서, 이 식에 저장되어 있던 등류습기로부터 점차 오식·의식·말나식이 전변 생기되어 팔식의 구조를 갖추게 된다.
셋째, 종자와 신체의 작용을 유지[執受]하는 근원적인 생명체이다. 아뢰야식에 의해서 신체가 헐지 않고 그 기능이 유지된다. 감각기관·신경계·순환계 등의 작용, 신진대사 등 갖가지 생리적인 기능들이 아뢰야식에 의해서 유지된다. 정신과 신체는 상호작용하며 이것을 안위동일(安危同一)이라고 한다. 물론 이러한 유기적인 관계에서 주도권은 정신에 있다.
넷째, 종자와 신체를 생리적으로 유지하는 동시에 그것을 인식대상으로 하며, 또한 외부적으로 자연계[器世間]도 대상으로 인식작용을 한다. 꿈에 의해 앞일을 예측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아뢰야식의 이 기능에 의해서이다.
그런데 전식(칠식)과 근본식(아뢰야식)의 관계는 파도와 물로 비유된다. 마치 파도가 물을 떠나서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듯이, 전식은 그 생기(生起)의 원인인 근본식에 의지한다. 전식과 근본식은 다음과 같은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작용한다. 첫째, 식의 구기성(俱起性)이다. 오식이나 의식이 작용할 때는 항상 말나식과 아뢰야식이 함께 생기한다. 둘째, 팔식은 종자를 매개로 해서 상호인과(相互因果)의 역동적인 관계 속에서 작용한다.
3) 종자(種子)
인간은 누구나 본성적으로 불성(佛性)의 존재이며, 현실적으로 팔식(八識)·심소(心所) 등 역동적(力動的)인 정신구조를 갖춘다. 그런데 개인은 신체적 조건의 차이는 물론이고, 인지능력·정서·성격 등 정신기능면에서 개인차(個人差)를 보인다. 그러한 개인차는 어떻게 생겨나며, 무엇이 정신현상의 작용인(作用因) 역할을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하여 유식학에서는 종자설로써 해명한다. 개인은 일상생활에서 여러 외부 상황에 처하면서 지각하고 판단·사유하며, 갖가지 감정이 교차되고,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선·악·무기(無記)의 업(業)을 짓는다. 이러한 정신적·신체적 행위의 결과가 아뢰야식 속에 습기(習氣, vasana)의 형태로 이식(移植) 저장된다. 이것을 종자(種子, bija)라고 하며, 여러 유식논서에서 종자의 속성과 종류 및 기능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찰되어 있다 종자는 단순한 생리학적 저장물이 아니다. 그것은 '특수한 정신적 힘, 에너지(功能差別)'로서, 정신현상의 주체와 작용이 발생 존재하게 되는 원동력이 된다.
종자가 종자로서의 기능을 발휘하려면 어떤 속성을 갖추어야 하는가? 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육의(六義)로써 설명된다. 즉 종자는 고정적으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마다 생기소멸하면서 지속되고[刹那滅義], 종자가 현행(現行)하여 심리 인식작용이 이루어지는 순간과 그 결과가 종자로서 훈습되는 순간은 동시적으로 이루어진다[果俱有義]. 선·악의 종자는 한 부류로 상속하여 전후찰나에 성질이 바뀌거나 단멸되지 않으며[恒 轉義], 선·악·무기를 일으킬 힘이 결정되어 있다. 선종자에서 악의 결과가 현행된다거나, 악의 종자에서 선의 결과가 현행되는 경우는 결코 없다[性決定義]. 종자는 선·악 등의 성질이 결정되어 있지만, 그것이 현행되려면 중연(衆緣:作意·根·境 등)과 화합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종자생종자(種子生種子)의 이시인과(異時因果) 관계는 이루어지더라도 종자생현행(種子生現行)의 동시인과(同時因果) 관계는 성립되지 않는다[待衆緣義]. 종자는 오직 자기의 결과만을 발생시킨다[引自果義]. 모든 종자는 이 6가지 속성을 갖추어야 비로소 종자로서의 작용이 가능해진다. 다만 순간순간 반드시 6가지를 구비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여러 순간에 함께 구비한다.
그런데 종자는 본래부터 있는 것인가, 아니면 훈습에 의해 비로소 존재하는가? 이에 대해서는 종자 본유신훈병유설(本有新熏竝有說)이 정설로 인정된다. 종자는 본성에 원래부터 갖추어진 것도 있고, 새롭게 훈습력에 의해 저장되고 성장된다는 것이다. 본유(本有)이므로 유위무루(有爲無漏)종자의 존재가 가능하고, 신훈이므로 칠전식(七轉識)과 아뢰야식의 인과관계가 성립된다.
또한 종자가 정신현상의 작용인(作用因) 역할을 하는 것은 어떤 작용원리에 의해서인가? 유식학에서는 훈습(熏習)과 현행(現行)의 과정으로 설명한다. 훈습은 7식이 아뢰야식에 새로운 종자를 이식시키고, 본래 있는 종자를 생장(生長)케 하는 작용이다. 현행은 종자가 아뢰야식 속에서 순간순간 생멸하면서 성숙되어 생연(生緣)을 만나 생기한다. 이 과정은 종자 자체의 힘만으로는 안 되며, 7식과 아뢰야식·심리작용[心所]·감각기관[根]·환경요인[境]의 유기적인 작용에 의해 비로소 가능하다. 이와 같이 종자생현행(種子生現行)·현행훈종자(現行熏種子)·종자생종자(種子生種子)의 유기적인 순환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개인차가 나타난다.
인간은 누구나 본성적으로 불성(佛性)의 존재이며, 현실적으로 팔식(八識)·심소(心所) 등 역동적(力動的)인 정신구조를 갖춘다. 그런데 개인은 신체적 조건의 차이는 물론이고, 인지능력·정서·성격 등 정신기능면에서 개인차(個人差)를 보인다. 그러한 개인차는 어떻게 생겨나며, 무엇이 정신현상의 작용인(作用因) 역할을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하여 유식학에서는 종자설로써 해명한다. 개인은 일상생활에서 여러 외부 상황에 처하면서 지각하고 판단·사유하며, 갖가지 감정이 교차되고,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선·악·무기(無記)의 업(業)을 짓는다. 이러한 정신적·신체적 행위의 결과가 아뢰야식 속에 습기(習氣, vasana)의 형태로 이식(移植) 저장된다. 이것을 종자(種子, bija)라고 하며, 여러 유식논서에서 종자의 속성과 종류 및 기능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찰되어 있다 종자는 단순한 생리학적 저장물이 아니다. 그것은 '특수한 정신적 힘, 에너지(功能差別)'로서, 정신현상의 주체와 작용이 발생 존재하게 되는 원동력이 된다.
종자가 종자로서의 기능을 발휘하려면 어떤 속성을 갖추어야 하는가? 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육의(六義)로써 설명된다. 즉 종자는 고정적으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마다 생기소멸하면서 지속되고[刹那滅義], 종자가 현행(現行)하여 심리 인식작용이 이루어지는 순간과 그 결과가 종자로서 훈습되는 순간은 동시적으로 이루어진다[果俱有義]. 선·악의 종자는 한 부류로 상속하여 전후찰나에 성질이 바뀌거나 단멸되지 않으며[恒 轉義], 선·악·무기를 일으킬 힘이 결정되어 있다. 선종자에서 악의 결과가 현행된다거나, 악의 종자에서 선의 결과가 현행되는 경우는 결코 없다[性決定義]. 종자는 선·악 등의 성질이 결정되어 있지만, 그것이 현행되려면 중연(衆緣:作意·根·境 등)과 화합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종자생종자(種子生種子)의 이시인과(異時因果) 관계는 이루어지더라도 종자생현행(種子生現行)의 동시인과(同時因果) 관계는 성립되지 않는다[待衆緣義]. 종자는 오직 자기의 결과만을 발생시킨다[引自果義]. 모든 종자는 이 6가지 속성을 갖추어야 비로소 종자로서의 작용이 가능해진다. 다만 순간순간 반드시 6가지를 구비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여러 순간에 함께 구비한다.
그런데 종자는 본래부터 있는 것인가, 아니면 훈습에 의해 비로소 존재하는가? 이에 대해서는 종자 본유신훈병유설(本有新熏竝有說)이 정설로 인정된다. 종자는 본성에 원래부터 갖추어진 것도 있고, 새롭게 훈습력에 의해 저장되고 성장된다는 것이다. 본유(本有)이므로 유위무루(有爲無漏)종자의 존재가 가능하고, 신훈이므로 칠전식(七轉識)과 아뢰야식의 인과관계가 성립된다.
또한 종자가 정신현상의 작용인(作用因) 역할을 하는 것은 어떤 작용원리에 의해서인가? 유식학에서는 훈습(熏習)과 현행(現行)의 과정으로 설명한다. 훈습은 7식이 아뢰야식에 새로운 종자를 이식시키고, 본래 있는 종자를 생장(生長)케 하는 작용이다. 현행은 종자가 아뢰야식 속에서 순간순간 생멸하면서 성숙되어 생연(生緣)을 만나 생기한다. 이 과정은 종자 자체의 힘만으로는 안 되며, 7식과 아뢰야식·심리작용[心所]·감각기관[根]·환경요인[境]의 유기적인 작용에 의해 비로소 가능하다. 이와 같이 종자생현행(種子生現行)·현행훈종자(現行熏種子)·종자생종자(種子生種子)의 유기적인 순환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개인차가 나타난다.
4) 심리작용[心所]
우리의 정신작용을 객관적으로 분석해 보면 식별작용 이외에 참으로 갖가지 심리작용들이 교차됨을 알 수 있다. 식별작용의 주체를 심왕(心王:8식)이라 하고, 심왕에 수반되는 심리작용을 심소(心所)라고 한다. 유식학에서는 변행심소(5가지)·별경심소(5가지)·선심소(11가지)·번뇌심소(6가지)·수번뇌심소(20가지)·부정심소(4가지)의 51가지 심소를 인정한다.
① 변행심소(遍行心所)는 팔식에 언제나 상응하여 함께 작용하는 보편적인 심리작용이다. 이 심소는 선·악·무기의 모두에 함께 일어나고, 삼계 어디에서나 작용하며, 유심무심(有心無心)의 모든 순간에 일어나고, 이 다섯 심소는 반드시 함께 일어난다. 이에 촉(觸)·작의(作意)·수(受)·상(想)·사(思)의 5가지가 있다.
② 별경심소(別境心所)는 6식의 대상 인식과 관련해서 `지향성(指向性)'의 속성을 띤다. 대상에 따라 하나 둘 내지 다섯 가지가 함께 일어난다. 이에 욕구[欲]·승해(勝解)·기억[念]·집중[定]·혜[慧]의 5가지가 있다.
③ 선심소(善心所)는 마음의 적절한 순간에 일어나는 보편적으로 선한 심소이다. 이에 믿음[信]·참(慙)·괴(愧)·무탐(無貪)·무진(無茂)·무치(無癡)·정진[勤]·경안[安]·불방일(不放逸)·행사(行捨)·불해(不害)의 11가지가 있다.
④ 번뇌심소(煩惱心所)는 보편적으로 악한 심리작용으로서, 식(識)을 오염시키고 이로 인해 생사윤회의 고해에 잠기게 한다. 이에 탐욕[貪]·성냄[茂]·어리석음[癡]·거만[慢]·의심[疑]·악견(惡見) 등 6가지가 있다.
⑤ 수번뇌심소( 煩惱心所)는 근본번뇌심소의 작용에 의해 같은 부류로서 이끌려 일어나는 번뇌심소이다. 이에 분노[忿]·원한[恨]·덮음[覆]·고뇌[惱]·질투[嫉]·인색[ ]·속임[ ]·아첨[諂]·해(害)·방자함[ ]·무참(無慙)·무괴(無愧)·들뜸[掉擧]·혼침[ ]·불신(不信)·게으름[懈怠]·방일(放逸)·실념(失念)·산란(散亂)·부정지(不正知)의 20가지가 있다.
부정심소(不定心所)는 그 체성이 선(善)도 염오(染汚)도 아니고, 선·악·무기의 모든 심소와도 상응하여 삼성(三性)이 될 수 있다. 이에 뉘우침[悔]·수면[眠]·심구[尋]·사찰[伺]의 4가지가 있다.
그러면 심왕과 심소의 작용의 차이는 어떠한가? 구체적인 인식상황 속에서 심왕은 대상의 전체적인 윤곽을 취하고, 심소가 구체적인 모습들까지 취함으로써 전체적인 대상 인식작용이 가능해진다. 대상에 대하여 고(苦)·락(樂)·사(捨) 등의 감정을 일으키고, 대상을 선택하며, 선·악 등의 업을 짓게 한다. 팔식과 51심소는 체(體)를 달리하며 상응(相應)하여 구기(俱起)한다. 팔식과 51심소의 상응관계를 살펴보면, 아뢰야식에는 5변행심소가 상응한다. 말나식에는 5변행심소, 4번뇌, 수번뇌심소 중에서 혼침·들뜸·불신·게으름·방일·실념·산란·부정지, 별경심소 중에서 혜(慧) 심소의 18심소가 상응한다. 의식에는 모든 심소가 상응할 수 있고, 오식에는 5변행심소, 5별경심소, 선심소 11, 번뇌심소 중에서 탐욕·성냄·어리석음, 수번뇌심소 중에서 무참·무괴·들뜸·혼침·불신·게으름·방일·실념·산란·부정지심소 등 34심소가 상응한다.
이상과 같이 정신세계는 팔식(八識)과 그에 상응하여 수반되는 51가지 심소로 이루어진다. 팔식은 역동적으로 작용하며, 개별적으로 작용하지 않고 함께 일어난다. 오식은 대면하는 대상에 따라 하나 또는 여러 가지가 함께 일어나는 데 반하여, 의식·말나식·아뢰야식은 항상 함께 일어난다. 그리하여 팔식은 종자를 매개로 상호인과관계 속에서 작용한다.
우리의 정신작용을 객관적으로 분석해 보면 식별작용 이외에 참으로 갖가지 심리작용들이 교차됨을 알 수 있다. 식별작용의 주체를 심왕(心王:8식)이라 하고, 심왕에 수반되는 심리작용을 심소(心所)라고 한다. 유식학에서는 변행심소(5가지)·별경심소(5가지)·선심소(11가지)·번뇌심소(6가지)·수번뇌심소(20가지)·부정심소(4가지)의 51가지 심소를 인정한다.
① 변행심소(遍行心所)는 팔식에 언제나 상응하여 함께 작용하는 보편적인 심리작용이다. 이 심소는 선·악·무기의 모두에 함께 일어나고, 삼계 어디에서나 작용하며, 유심무심(有心無心)의 모든 순간에 일어나고, 이 다섯 심소는 반드시 함께 일어난다. 이에 촉(觸)·작의(作意)·수(受)·상(想)·사(思)의 5가지가 있다.
② 별경심소(別境心所)는 6식의 대상 인식과 관련해서 `지향성(指向性)'의 속성을 띤다. 대상에 따라 하나 둘 내지 다섯 가지가 함께 일어난다. 이에 욕구[欲]·승해(勝解)·기억[念]·집중[定]·혜[慧]의 5가지가 있다.
③ 선심소(善心所)는 마음의 적절한 순간에 일어나는 보편적으로 선한 심소이다. 이에 믿음[信]·참(慙)·괴(愧)·무탐(無貪)·무진(無茂)·무치(無癡)·정진[勤]·경안[安]·불방일(不放逸)·행사(行捨)·불해(不害)의 11가지가 있다.
④ 번뇌심소(煩惱心所)는 보편적으로 악한 심리작용으로서, 식(識)을 오염시키고 이로 인해 생사윤회의 고해에 잠기게 한다. 이에 탐욕[貪]·성냄[茂]·어리석음[癡]·거만[慢]·의심[疑]·악견(惡見) 등 6가지가 있다.
⑤ 수번뇌심소( 煩惱心所)는 근본번뇌심소의 작용에 의해 같은 부류로서 이끌려 일어나는 번뇌심소이다. 이에 분노[忿]·원한[恨]·덮음[覆]·고뇌[惱]·질투[嫉]·인색[ ]·속임[ ]·아첨[諂]·해(害)·방자함[ ]·무참(無慙)·무괴(無愧)·들뜸[掉擧]·혼침[ ]·불신(不信)·게으름[懈怠]·방일(放逸)·실념(失念)·산란(散亂)·부정지(不正知)의 20가지가 있다.
부정심소(不定心所)는 그 체성이 선(善)도 염오(染汚)도 아니고, 선·악·무기의 모든 심소와도 상응하여 삼성(三性)이 될 수 있다. 이에 뉘우침[悔]·수면[眠]·심구[尋]·사찰[伺]의 4가지가 있다.
그러면 심왕과 심소의 작용의 차이는 어떠한가? 구체적인 인식상황 속에서 심왕은 대상의 전체적인 윤곽을 취하고, 심소가 구체적인 모습들까지 취함으로써 전체적인 대상 인식작용이 가능해진다. 대상에 대하여 고(苦)·락(樂)·사(捨) 등의 감정을 일으키고, 대상을 선택하며, 선·악 등의 업을 짓게 한다. 팔식과 51심소는 체(體)를 달리하며 상응(相應)하여 구기(俱起)한다. 팔식과 51심소의 상응관계를 살펴보면, 아뢰야식에는 5변행심소가 상응한다. 말나식에는 5변행심소, 4번뇌, 수번뇌심소 중에서 혼침·들뜸·불신·게으름·방일·실념·산란·부정지, 별경심소 중에서 혜(慧) 심소의 18심소가 상응한다. 의식에는 모든 심소가 상응할 수 있고, 오식에는 5변행심소, 5별경심소, 선심소 11, 번뇌심소 중에서 탐욕·성냄·어리석음, 수번뇌심소 중에서 무참·무괴·들뜸·혼침·불신·게으름·방일·실념·산란·부정지심소 등 34심소가 상응한다.
이상과 같이 정신세계는 팔식(八識)과 그에 상응하여 수반되는 51가지 심소로 이루어진다. 팔식은 역동적으로 작용하며, 개별적으로 작용하지 않고 함께 일어난다. 오식은 대면하는 대상에 따라 하나 또는 여러 가지가 함께 일어나는 데 반하여, 의식·말나식·아뢰야식은 항상 함께 일어난다. 그리하여 팔식은 종자를 매개로 상호인과관계 속에서 작용한다.
Ⅲ. 三性·三無性의 중도설
범부들이 흔히 집착과 미망의 세계를 사는 근본원인은 무엇이고, 그러면서도 현실에서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는 무엇인가? 이러한 존재·인식·깨달음의 문제들에 관하여 유식학에서는 삼성·삼무성설로 설명한다. 삼자성(三自性)은 변계소집성·의타기성·원성실성이고, 삼무자성(三無自性)은 상무자성성(相無自性性)·생무자성성·승의무자성성이다. 유식교학에서 삼성·삼무성설은 현상계와 본체계를 포함하여 모든 존재양식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1. 세 가지 자성
1) 변계소집성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parikalpita-svabhava)에서 변계(遍計)는 이리저리 헤아리고 억측한다[周遍計度]는 뜻이고, 소집(所執)은 두루 계탁함으로써 잘못 보이는 집착된 대상을 가리킨다. 그것은 일체법의 가명안립(假名安立)으로서 자성을 차별하고 언설을 일어나게 하는 것, 즉 언어에 의해 가립되고 언어에 의해 파악되는 존재형태이다. 변계소집의 원인에 대해서 그리하여 유식학에서는 미혹의 근원을 특히 명칭이나 언설 위에서 찾는다. 변계소집성은 명칭에 의해 가정적으로 안립된 양상이면서 언설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 언설에 의해 가정적으로 안립된 자성차별이다. 그것은 명칭·언설에 의한 영상(影像)·환상이다. 이런 현상은 왜 일어나는가? 대상을 인식할 때 각자(覺者)의 지혜(jnanana)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직관하지만, 범부의 식(識, vijna)은 주객 대립의 인식상황 속에서 선입견 등의 영향을 받는다. 즉 식이 객관으로서의 식[相分]과 주관으로서의 식[見分]으로 분화되어 표상작용을 일으키고(vijnapti), 여기에 식의 구기성(俱起性)으로 인해 아뢰야식의 습기의 영향 속에서 인식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변계소집성은 이러한 허망된 분별에 의해 실체[實我實法]로 착각되고 집착되어진 것이다. 현상계의 모든 존재는 인연화합으로 생겨난 임시적인 존재[假法]이며 상주불변하는 실체는 없다. 그런데도 범부들은 미혹하여 허망된 견해를 내어 마음 밖에 실법(實法)이 존재하는 것으로 허망되게 집착한다. 변계소집성은 범부들의 허망된 견해에 의해 인연소생의 가아가법(假我假法) 위에 오인되어진 실아실법(實我實法)에 대한 미혹된 집착이다. 실제로는 전혀 실체가 없는 다만 공허한 환영(幻影)과 같은 것이어서 체성이 전혀 없다.
그러면 변계소집을 일으키는 주체[能遍計]와 대상[所遍計]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성유식론》에서는 제6식과 제7식만이 능변계가 있다고 한다. 말나식이 아뢰야식을 대상으로 실아(實我)로 착각하고, 의식이 오온을 대상으로 또한 실아로 착각한다. 의식은 외부대상을 두루 분별해서 선·악·무기의 삼성으로 인식 집착하기 때문이고, 말나식은 아뢰야식을 실아로 착각 집착하기 때문이다.
변계의 대상은 이러한 계탁 작용에 의해 실재하는 것으로 집착되어지는 대상, 즉 사현된 자아[似我]와 사현된 법[似法]이다. 분별망집은 인연으로 생겨난 존재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소변계는 의타기성이다. 즉 의타기의 법, 즉 오온·십이처·십팔계 등의 인연소생법이다. 변계소집성은 소변계가 능변계의 식 위의 상분으로 떠올라 있을 때, 그것이 마음 밖에 실유(實有)한다고 미혹되게 집착하여, 그 허망된 생각 앞에 나타나는 실아실법의 허망된 모습이다.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parikalpita-svabhava)에서 변계(遍計)는 이리저리 헤아리고 억측한다[周遍計度]는 뜻이고, 소집(所執)은 두루 계탁함으로써 잘못 보이는 집착된 대상을 가리킨다. 그것은 일체법의 가명안립(假名安立)으로서 자성을 차별하고 언설을 일어나게 하는 것, 즉 언어에 의해 가립되고 언어에 의해 파악되는 존재형태이다. 변계소집의 원인에 대해서 그리하여 유식학에서는 미혹의 근원을 특히 명칭이나 언설 위에서 찾는다. 변계소집성은 명칭에 의해 가정적으로 안립된 양상이면서 언설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 언설에 의해 가정적으로 안립된 자성차별이다. 그것은 명칭·언설에 의한 영상(影像)·환상이다. 이런 현상은 왜 일어나는가? 대상을 인식할 때 각자(覺者)의 지혜(jnanana)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직관하지만, 범부의 식(識, vijna)은 주객 대립의 인식상황 속에서 선입견 등의 영향을 받는다. 즉 식이 객관으로서의 식[相分]과 주관으로서의 식[見分]으로 분화되어 표상작용을 일으키고(vijnapti), 여기에 식의 구기성(俱起性)으로 인해 아뢰야식의 습기의 영향 속에서 인식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변계소집성은 이러한 허망된 분별에 의해 실체[實我實法]로 착각되고 집착되어진 것이다. 현상계의 모든 존재는 인연화합으로 생겨난 임시적인 존재[假法]이며 상주불변하는 실체는 없다. 그런데도 범부들은 미혹하여 허망된 견해를 내어 마음 밖에 실법(實法)이 존재하는 것으로 허망되게 집착한다. 변계소집성은 범부들의 허망된 견해에 의해 인연소생의 가아가법(假我假法) 위에 오인되어진 실아실법(實我實法)에 대한 미혹된 집착이다. 실제로는 전혀 실체가 없는 다만 공허한 환영(幻影)과 같은 것이어서 체성이 전혀 없다.
그러면 변계소집을 일으키는 주체[能遍計]와 대상[所遍計]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성유식론》에서는 제6식과 제7식만이 능변계가 있다고 한다. 말나식이 아뢰야식을 대상으로 실아(實我)로 착각하고, 의식이 오온을 대상으로 또한 실아로 착각한다. 의식은 외부대상을 두루 분별해서 선·악·무기의 삼성으로 인식 집착하기 때문이고, 말나식은 아뢰야식을 실아로 착각 집착하기 때문이다.
변계의 대상은 이러한 계탁 작용에 의해 실재하는 것으로 집착되어지는 대상, 즉 사현된 자아[似我]와 사현된 법[似法]이다. 분별망집은 인연으로 생겨난 존재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소변계는 의타기성이다. 즉 의타기의 법, 즉 오온·십이처·십팔계 등의 인연소생법이다. 변계소집성은 소변계가 능변계의 식 위의 상분으로 떠올라 있을 때, 그것이 마음 밖에 실유(實有)한다고 미혹되게 집착하여, 그 허망된 생각 앞에 나타나는 실아실법의 허망된 모습이다.
2) 의타기성
의타기성(依他起性, paratantra-svabhava)은 다른 것에 의지해서 생겨나는[依他起] 속성을 지니는 법의 양상을 말한다. 그것은 일체법의 연생(緣生)의 자성, 즉 인연소생법(因緣所生法)이다.
참으로 현상계의 모든 법은 인연화합에 의해 생겨난 것이지 자연생(自然生)이거나 독존적(獨存的)인 것은 없다. 그 어떤 존재도 자기자신에 의해서만 존재하거나, 자신과는 전혀 별개인 존재가 그것을 생겨나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의타기성은 변계소집성처럼 체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인연소생법이므로 상주실유(常住實有)가 아니고 세속제에서 그 존재성이 인정된다.
삼성 중에서 의타기성에 대한 이해는 매우 중요하다. 변계소집성과 원성실성이 바로 의타기성 위에서 전개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식학에서 의타기성은 결국 아뢰야식을 기반으로 하는 팔식을 가리킨다. 유식학은 식일원론의 입장이기 때문에, 경험세계가 성립하는 기체(基體)로서의 식을 유일한 연기법 즉 의타기성으로 부른다. 그리하여 《섭대승론》에서는 "무엇이 의타기성인가? 아뢰야식을 종자로 하고 허망한 분별에 포섭되는 모든 식이다." 라고 설명한다. 《성유식론》에서는 더 나아가서 "여러 가지 연(緣)으로 생기한 심왕(心王)·심소(心所)의 자체와 상분·견분 그리고 유루·무루가 다 의타기성이다." 라고 한다.
참으로 현상은 연기법에 의해 존재한다. 단순히 `눈 앞의 책을 바라본다'는 하나의 인식이 성립하는 데도 대상[책]·감각기관[눈]·인식주체[識] 등 여러 요소가 인연관계에 있다. 여기서 인식주체를 세분하면 안식·의식·말나식·아뢰야식이 구기(俱起)하고, 이에 여러 심소들이 상응하며, 심왕과 심소의 분화(상분·견분·자증분 등), 그리고 아뢰야식 안의 종자의 현행 등 여러 가지 인연관계가 있다.
후대에는 의타기성을 오위백법(五位百法) 가운데 심왕법(心王法)·심소법(心所法)·색법(色法)·불상응행법(不相應行法)의 4위 94법을 포섭시켜서 설명하기도 한다
의타기성(依他起性, paratantra-svabhava)은 다른 것에 의지해서 생겨나는[依他起] 속성을 지니는 법의 양상을 말한다. 그것은 일체법의 연생(緣生)의 자성, 즉 인연소생법(因緣所生法)이다.
참으로 현상계의 모든 법은 인연화합에 의해 생겨난 것이지 자연생(自然生)이거나 독존적(獨存的)인 것은 없다. 그 어떤 존재도 자기자신에 의해서만 존재하거나, 자신과는 전혀 별개인 존재가 그것을 생겨나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의타기성은 변계소집성처럼 체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인연소생법이므로 상주실유(常住實有)가 아니고 세속제에서 그 존재성이 인정된다.
삼성 중에서 의타기성에 대한 이해는 매우 중요하다. 변계소집성과 원성실성이 바로 의타기성 위에서 전개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식학에서 의타기성은 결국 아뢰야식을 기반으로 하는 팔식을 가리킨다. 유식학은 식일원론의 입장이기 때문에, 경험세계가 성립하는 기체(基體)로서의 식을 유일한 연기법 즉 의타기성으로 부른다. 그리하여 《섭대승론》에서는 "무엇이 의타기성인가? 아뢰야식을 종자로 하고 허망한 분별에 포섭되는 모든 식이다." 라고 설명한다. 《성유식론》에서는 더 나아가서 "여러 가지 연(緣)으로 생기한 심왕(心王)·심소(心所)의 자체와 상분·견분 그리고 유루·무루가 다 의타기성이다." 라고 한다.
참으로 현상은 연기법에 의해 존재한다. 단순히 `눈 앞의 책을 바라본다'는 하나의 인식이 성립하는 데도 대상[책]·감각기관[눈]·인식주체[識] 등 여러 요소가 인연관계에 있다. 여기서 인식주체를 세분하면 안식·의식·말나식·아뢰야식이 구기(俱起)하고, 이에 여러 심소들이 상응하며, 심왕과 심소의 분화(상분·견분·자증분 등), 그리고 아뢰야식 안의 종자의 현행 등 여러 가지 인연관계가 있다.
후대에는 의타기성을 오위백법(五位百法) 가운데 심왕법(心王法)·심소법(心所法)·색법(色法)·불상응행법(不相應行法)의 4위 94법을 포섭시켜서 설명하기도 한다
3) 원성실성
원성실성(圓成實性, parinispanna-svabhava)은 원만성취실성(圓滿成就眞實性), 즉 원만히 성취되어 있는 참다운 성품의 법의 양상을 말한다. 현상계의 모든 법의 본체인 진여이다. 진여는 모든 법에 두루하고[圓], 체성이 상주불변하여 항상 변함없이 성취되어 있으며[成], 모든 법의 진실한 체성이어서 허망된 법이 아니다[實]. 이것은 '이미 완전하게 성취되어 있는 것', 즉 지금은 미완성인데 앞으로 완성된다는 뜻이 아니라, 아득한 옛적부터 이미 완성되어 있다.
변계소집성은 단순한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서 그 체(體)도 상(相)도 없는 무상법(無相法)이다. 변계소집성이 단멸하면, 잡염의 의타기성은 그 모습이 소멸되어 집착할 것이 없는 청정한 모습이 나타난다. 그 청정상이 바로 원성실성이다. 즉 의타기성에서 변계소집성이 영원히 없어진 것을 말한다.
현상계의 모든 법은 인연소생의 의타기성이고, 그것에 두루 계탁하는 번뇌의 구름이 걸려 있을 때 그 구름이 변계소집성이고, 의타기성은 번뇌의 구름에 오염된 잡염의 의타기성이다. 따라서 그 번뇌의 구름이 소멸될 때 잡염의 의타기성은 본래의 청정한 의타기성으로 돌아간다. 그 청정한 의타기성이 그대로 원성실성이다.
원성실성은 진공묘유(眞空妙有)의 경계이다. 원성실성을 오위백법 중에서 말하면 6가지 무위법이 이에 포섭된다. 그런데 이것은 유위무위문(有爲無爲門)에 의한 것이고, 유루무루문(有漏無漏門)에 의해 논하면 의타기성의 유위법 중에서 무루법이 아닌 무루유위법(無漏有爲法:道諦)도 원성실성이다.
원성실성(圓成實性, parinispanna-svabhava)은 원만성취실성(圓滿成就眞實性), 즉 원만히 성취되어 있는 참다운 성품의 법의 양상을 말한다. 현상계의 모든 법의 본체인 진여이다. 진여는 모든 법에 두루하고[圓], 체성이 상주불변하여 항상 변함없이 성취되어 있으며[成], 모든 법의 진실한 체성이어서 허망된 법이 아니다[實]. 이것은 '이미 완전하게 성취되어 있는 것', 즉 지금은 미완성인데 앞으로 완성된다는 뜻이 아니라, 아득한 옛적부터 이미 완성되어 있다.
변계소집성은 단순한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서 그 체(體)도 상(相)도 없는 무상법(無相法)이다. 변계소집성이 단멸하면, 잡염의 의타기성은 그 모습이 소멸되어 집착할 것이 없는 청정한 모습이 나타난다. 그 청정상이 바로 원성실성이다. 즉 의타기성에서 변계소집성이 영원히 없어진 것을 말한다.
현상계의 모든 법은 인연소생의 의타기성이고, 그것에 두루 계탁하는 번뇌의 구름이 걸려 있을 때 그 구름이 변계소집성이고, 의타기성은 번뇌의 구름에 오염된 잡염의 의타기성이다. 따라서 그 번뇌의 구름이 소멸될 때 잡염의 의타기성은 본래의 청정한 의타기성으로 돌아간다. 그 청정한 의타기성이 그대로 원성실성이다.
원성실성은 진공묘유(眞空妙有)의 경계이다. 원성실성을 오위백법 중에서 말하면 6가지 무위법이 이에 포섭된다. 그런데 이것은 유위무위문(有爲無爲門)에 의한 것이고, 유루무루문(有漏無漏門)에 의해 논하면 의타기성의 유위법 중에서 무루법이 아닌 무루유위법(無漏有爲法:道諦)도 원성실성이다.
2. 삼성의 관계
삼성은 각각 자기 동일성을 띤 개별적인 존재형태가 아니라, 우리들의 관련 방식에 따라 나타난 세 가지 존재형태이다. 환술에 의해 나타난 환상의 사물을 진짜 사물로 여기는 가립을 여셀 때, 그 환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환상이라는 것은 분명히 알아차린다. 즉 변계소집성은 '가설(假說)된 것'이고, 의타기성은 '가설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우리들은 아득한 옛적부터 의타기의 자성 위에 집착해서 아법(我法)을 분별하고 자아·법의 모습을 띤 제법의 종자를 심식에 훈습시켜 왔기 때문에, 그 습성에 의해 자아·법에 비슷하게 잡염의 의타기성을 일으킨다. 그 생기된 잡염의 의타기성에 다시 잠재의식에 의해 전도의 집착을 일으키기 때문에, 의타기성과 변계소집성은 다시 서로 연(緣)이 되어 생사에 전전(展轉)히 상속하여 끊어짐이 없다. 청정한 눈을 지닌 사람의 눈에 여러 안질의 증상들을 멀리 여의고 어지러운 경계가 항상 없는 것 같은 것이 원성실성이다.
삼성의 이러한 성격을 《해심밀경》에서 비유하기를, 마치 깨끗한 수정(水晶, 頗 迦寶)은 청색과 만나면 제청(帝靑)·대청(大靑)의 마니주처럼 보이고, 적색과 만나면 호박의 마니주처럼 보이며, 황색과 만나면 금상(金像)처럼 보인다. 이때 마니주나 금상이 변계소집성이고, 수정이 의타기성이며, 수정의 실성(實性)에 마니주나 금상과 같은 모습이 항상 없는 것이 원성실성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의타기성에서 변계소집성을 멀리 여의면 잡염된 의타기성이 청정한 의타기성으로 전환되며, 그 청정한 의타기성이 그대로 원성실성임을 밝힌다.
삼성에 대하여 《섭대승론》에서는 흔히 인용되듯이 뱀·노끈·삼의 비유로 설명한다. 어두운 밤에 두려움을 느꼈을 때에 길가의 노끈을 보고 뱀으로 잘못 알았을 때에 그 오인된 뱀의 모양이 변계소집성이고, 뒤에 자세히 보고서 노끈인 줄 안 것은 의타기성이다. 그리고 다시 생각하기를 사실 노끈이란 것도 실체가 아니고 다만 여러 인연이 화합된 가유(假有)의 모습이며 그 자체는 삼(麻)이라고 아는 것이 원성실성이다. 이처럼 우리는 원성실성의 진여 위에 인연화합으로 생기된 의타기성의 법[心內所顯]에 대하여 아(我) 또는 법으로 집착하여 실아실법(實我實法)으로 착각하여 마음 밖에 실재한다고 오인한다.
오염된 의타기자성이 청정하게 될 때 그것이 그대로 원성실자성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삼성은 자체를 달리 해서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의타기성[識]과 원성실성[眞如]은 비일비이(非一非異)의 관계이다. 이것은 곧 번뇌 집착이 있는 우리들의 심식이 진여·무분별지혜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원리는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을 준다.
우리들은 아득한 옛적부터 의타기의 자성 위에 집착해서 아법(我法)을 분별하고 자아·법의 모습을 띤 제법의 종자를 심식에 훈습시켜 왔기 때문에, 그 습성에 의해 자아·법에 비슷하게 잡염의 의타기성을 일으킨다. 그 생기된 잡염의 의타기성에 다시 잠재의식에 의해 전도의 집착을 일으키기 때문에, 의타기성과 변계소집성은 다시 서로 연(緣)이 되어 생사에 전전(展轉)히 상속하여 끊어짐이 없다. 청정한 눈을 지닌 사람의 눈에 여러 안질의 증상들을 멀리 여의고 어지러운 경계가 항상 없는 것 같은 것이 원성실성이다.
삼성의 이러한 성격을 《해심밀경》에서 비유하기를, 마치 깨끗한 수정(水晶, 頗 迦寶)은 청색과 만나면 제청(帝靑)·대청(大靑)의 마니주처럼 보이고, 적색과 만나면 호박의 마니주처럼 보이며, 황색과 만나면 금상(金像)처럼 보인다. 이때 마니주나 금상이 변계소집성이고, 수정이 의타기성이며, 수정의 실성(實性)에 마니주나 금상과 같은 모습이 항상 없는 것이 원성실성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의타기성에서 변계소집성을 멀리 여의면 잡염된 의타기성이 청정한 의타기성으로 전환되며, 그 청정한 의타기성이 그대로 원성실성임을 밝힌다.
삼성에 대하여 《섭대승론》에서는 흔히 인용되듯이 뱀·노끈·삼의 비유로 설명한다. 어두운 밤에 두려움을 느꼈을 때에 길가의 노끈을 보고 뱀으로 잘못 알았을 때에 그 오인된 뱀의 모양이 변계소집성이고, 뒤에 자세히 보고서 노끈인 줄 안 것은 의타기성이다. 그리고 다시 생각하기를 사실 노끈이란 것도 실체가 아니고 다만 여러 인연이 화합된 가유(假有)의 모습이며 그 자체는 삼(麻)이라고 아는 것이 원성실성이다. 이처럼 우리는 원성실성의 진여 위에 인연화합으로 생기된 의타기성의 법[心內所顯]에 대하여 아(我) 또는 법으로 집착하여 실아실법(實我實法)으로 착각하여 마음 밖에 실재한다고 오인한다.
오염된 의타기자성이 청정하게 될 때 그것이 그대로 원성실자성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삼성은 자체를 달리 해서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의타기성[識]과 원성실성[眞如]은 비일비이(非一非異)의 관계이다. 이것은 곧 번뇌 집착이 있는 우리들의 심식이 진여·무분별지혜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원리는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을 준다.
3. 세 가지 無自性
삼무자성(三無自性)은 삼성에 갖추어져 있는 이면의 무자성을 나타내 보인 것이지, 삼성 이외에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다. 비유하면 상무자성성은 허공의 꽃과 같고, 생무자성성은 환상과 같으며, 승의무자성성은 허공과 같다고 말해진다. 미(迷)와 오(悟)의 일체법을 유(有)의 측면에서 변계소집성·의타기성·원성실성의 삼자성으로 분류함에 대하여 공의 관점에서 상무자성성·생무자성성·승의무자성성의 삼무자성으로 안립한다.
상무자성(相無自性, -性)은 변계소집성의 존재성 부정이다. 변계소집성은 그 자체도 없고 그 상(相)도 없는 무자성이다. 변계소집성은 가명의 안립으로 상(相, laksana)을 삼은 것이지 자상의 안립으로 상을 삼은 것이 아니므로 상무자성성이다. 허망분별[識]에 의해 가상된 것이므로 허공의 꽃처럼 실재성이 없음을 말한다.
생무자성(生無自性, -性)은 의타기성의 존재성 부정이다. 생무자성성에서 생(生)은 인연소생(因緣所生)의 뜻이다. 의타기성은 중연(衆緣)으로 이루어진 법이며 자연생(自然生)이 아니므로 생무자성성이다. 유식학에서 의타기성은 결국 팔식을 가리키는데, 현재의 심식(心識)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업의 습기와 현재의 여러 가지 연(緣)의 세력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실재성이 없다.
승의무자성(勝義無自性, -性)은 원성실성이 모든 법의 승의제이고 자성없는 성품이 나타난 바[無性所顯]의 진성(眞性, 理)인 것을 말한다. 변계소집의 자아·법을 멀리 여읜 곳에 나타나는 바, 뛰어난 무분별지혜의 대상인 진여의 공적이체(空寂理體)이므로 승의(勝義, paramartha)라고 한다. 여기서 `자성없는 성품이 나타난 바[無性所顯]'라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 진여가 만법의 근원으로서 상(常)·낙(樂)·아(我)·정(淨)의 덕을 갖추고 있는 뛰어난 존재성[勝義]이면서, 인연에 의해 이로부터 현상계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둘째, 실천 증득의 면에서 볼 때, 의지처의 전환[轉依]과 동시에 법계가 중생에게 현성(現成)함을 말한다.
상무자성(相無自性, -性)은 변계소집성의 존재성 부정이다. 변계소집성은 그 자체도 없고 그 상(相)도 없는 무자성이다. 변계소집성은 가명의 안립으로 상(相, laksana)을 삼은 것이지 자상의 안립으로 상을 삼은 것이 아니므로 상무자성성이다. 허망분별[識]에 의해 가상된 것이므로 허공의 꽃처럼 실재성이 없음을 말한다.
생무자성(生無自性, -性)은 의타기성의 존재성 부정이다. 생무자성성에서 생(生)은 인연소생(因緣所生)의 뜻이다. 의타기성은 중연(衆緣)으로 이루어진 법이며 자연생(自然生)이 아니므로 생무자성성이다. 유식학에서 의타기성은 결국 팔식을 가리키는데, 현재의 심식(心識)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업의 습기와 현재의 여러 가지 연(緣)의 세력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실재성이 없다.
승의무자성(勝義無自性, -性)은 원성실성이 모든 법의 승의제이고 자성없는 성품이 나타난 바[無性所顯]의 진성(眞性, 理)인 것을 말한다. 변계소집의 자아·법을 멀리 여읜 곳에 나타나는 바, 뛰어난 무분별지혜의 대상인 진여의 공적이체(空寂理體)이므로 승의(勝義, paramartha)라고 한다. 여기서 `자성없는 성품이 나타난 바[無性所顯]'라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 진여가 만법의 근원으로서 상(常)·낙(樂)·아(我)·정(淨)의 덕을 갖추고 있는 뛰어난 존재성[勝義]이면서, 인연에 의해 이로부터 현상계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둘째, 실천 증득의 면에서 볼 때, 의지처의 전환[轉依]과 동시에 법계가 중생에게 현성(現成)함을 말한다.
4. 삼성·삼무성설의 의의
1) 중도설의 재천명
유식학에서는 반야공(般若空)의 논리가 중관학파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된다. 즉 일부 중관학자들의 악취공견(惡取空見)을 시정하기 위해 공성(空性)이 성립하는 장(場)으로서의 식(識)의 존재성을 인정한 바탕 위에서 공의 논리를 편다. 그리하여 중관학처럼 연기(緣起) → 무자성(無自性) → 공(空)의 방식이 아니라, 의타기성에 변계소집성이 항상 없을 때 그것이 바로 공이며 원성실성이라고 말한다.
《해심밀경》에서 삼성설은 공과 유(有)를 상대하여 중도의 이치를 나타내 보이는 현요설(顯了說)이고, 삼무성설은 공의 측면에서 법유(法有)의 집착을 없애고자 하는 밀의설(密意說)임이 누누이 강조된다. 삼성은 본래부터 분리된 것이 아니라 동일한 법 위에서 세 가지 방면으로 삼성의 차별을 가분(假分)하여 중도의 미묘한 이치를 나타내 보인 것이다. 변계소집성의 공[無], 의타기성과 원성실성의 존재성 위에서 비공비유의 중도설이 성립된다.
유식학의 삼성·삼무성설에 의한 비공비유(非空非有)의 중도설은 설일체유부 등 아비달마철학의 유적(有的) 사유체계뿐만 아니라 반야공(般若空)사상을 허무주의로 오해하는 일부 악취공자들의 오류를 시정하는 제3의 이론이 된다.
유식학에서는 반야공(般若空)의 논리가 중관학파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된다. 즉 일부 중관학자들의 악취공견(惡取空見)을 시정하기 위해 공성(空性)이 성립하는 장(場)으로서의 식(識)의 존재성을 인정한 바탕 위에서 공의 논리를 편다. 그리하여 중관학처럼 연기(緣起) → 무자성(無自性) → 공(空)의 방식이 아니라, 의타기성에 변계소집성이 항상 없을 때 그것이 바로 공이며 원성실성이라고 말한다.
《해심밀경》에서 삼성설은 공과 유(有)를 상대하여 중도의 이치를 나타내 보이는 현요설(顯了說)이고, 삼무성설은 공의 측면에서 법유(法有)의 집착을 없애고자 하는 밀의설(密意說)임이 누누이 강조된다. 삼성은 본래부터 분리된 것이 아니라 동일한 법 위에서 세 가지 방면으로 삼성의 차별을 가분(假分)하여 중도의 미묘한 이치를 나타내 보인 것이다. 변계소집성의 공[無], 의타기성과 원성실성의 존재성 위에서 비공비유의 중도설이 성립된다.
유식학의 삼성·삼무성설에 의한 비공비유(非空非有)의 중도설은 설일체유부 등 아비달마철학의 유적(有的) 사유체계뿐만 아니라 반야공(般若空)사상을 허무주의로 오해하는 일부 악취공자들의 오류를 시정하는 제3의 이론이 된다.
2) 전의(轉依)의 구조적 원리 제시
삼성·삼무성설의 시설목적 가운데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깨달음의 이론적 근거를 구체적·논리적으로 제시하기 위한 것이다. 유식학에서 깨달음이란 전식득지(轉識得智), 즉 수행에 의해 중생의 무명업식(無明業識)을 반야의 지혜로 전환하는 것을 말하며, 그것은 전의(轉依)로서 이루어진다. 삼성·삼무성설은 전의에 의한 성불의 구조적 원리를 제시한다. 전의에 의해 번뇌로 오염된 식이 청정하고 분별이 없는 지혜로 전환된다.
삼성·삼무성설의 시설목적 가운데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깨달음의 이론적 근거를 구체적·논리적으로 제시하기 위한 것이다. 유식학에서 깨달음이란 전식득지(轉識得智), 즉 수행에 의해 중생의 무명업식(無明業識)을 반야의 지혜로 전환하는 것을 말하며, 그것은 전의(轉依)로서 이루어진다. 삼성·삼무성설은 전의에 의한 성불의 구조적 원리를 제시한다. 전의에 의해 번뇌로 오염된 식이 청정하고 분별이 없는 지혜로 전환된다.
3) 법상의 교판의 이론적 근거
중국불교계에서는 입교개종(立敎開宗)의 교리적인 근거로서 교상판석(敎相判釋)이 행해졌는데, 법상종에서는 《해심밀경》에 의거해서 삼시교판(三時敎判)을 세웠다. 즉 《해심밀경》의 <무자성상품>에서는 제법개공설(諸法皆空說)이 상무자성성과 승의무자성성에 의해 밀의(密意)로 말해진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처럼 제법개공설이 상무자성과 승의무자성에 의한 밀의설이라면, 반야교설은 전체적으로 밀의설로 된다. 그리하여 《반야경》을 제2 은밀륜(隱密輪)이라 하고 자신을 제3 현요륜(顯了輪)이라 한다. 또한 <무자성상품> 말미에 승의생보살이 석존 일대의 가르침에 삼시(三時)의 교설이 있음을 밝힌다. 이에 근거해서 인도 유가유식학파의 계현(戒賢, Silabhadra)논사는 유식학이 석존의 교설 중에서 최상의 법문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삼시교판의 원형을 세웠다. 이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서 중국 법상종의 자은(慈恩)이 《대승법원의림장(大乘法苑義林章)》 제1권에서 제1시 유교(有敎)· 제2시 공교(空敎)·제3시 중도교(中道敎)의 삼시교판을 세웠다. 이처럼 삼성·삼무성설은 법상종에서 교판을 수립하는 데 교리적 근거가 되었다.
중국불교계에서는 입교개종(立敎開宗)의 교리적인 근거로서 교상판석(敎相判釋)이 행해졌는데, 법상종에서는 《해심밀경》에 의거해서 삼시교판(三時敎判)을 세웠다. 즉 《해심밀경》의 <무자성상품>에서는 제법개공설(諸法皆空說)이 상무자성성과 승의무자성성에 의해 밀의(密意)로 말해진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처럼 제법개공설이 상무자성과 승의무자성에 의한 밀의설이라면, 반야교설은 전체적으로 밀의설로 된다. 그리하여 《반야경》을 제2 은밀륜(隱密輪)이라 하고 자신을 제3 현요륜(顯了輪)이라 한다. 또한 <무자성상품> 말미에 승의생보살이 석존 일대의 가르침에 삼시(三時)의 교설이 있음을 밝힌다. 이에 근거해서 인도 유가유식학파의 계현(戒賢, Silabhadra)논사는 유식학이 석존의 교설 중에서 최상의 법문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삼시교판의 원형을 세웠다. 이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서 중국 법상종의 자은(慈恩)이 《대승법원의림장(大乘法苑義林章)》 제1권에서 제1시 유교(有敎)· 제2시 공교(空敎)·제3시 중도교(中道敎)의 삼시교판을 세웠다. 이처럼 삼성·삼무성설은 법상종에서 교판을 수립하는 데 교리적 근거가 되었다.
Ⅳ. 수행문 五位 수행과 轉識得智
1. 轉依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성불이며, 그것은 깨달음으로 성취된 진여 무분별지혜의 경지이다. 유식학에서는 깨달음을 성취하는 원리를 전식득지(轉識得智), 즉 현상계의 허망된 식(識)을 진여의 무분별지혜로 전환시키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전식득지는 전의(轉依)로서 이루어진다. 전의는 자기 존재의 기체(基體)를 허망한 상태(변계소집성)에서 진실한 상태(원성실성)로 질적으로 변혁시키는 과정, 또는 그 과정의 결과로 증득된 열반과 보리를 가리킨다.
전의(轉依, asraya-paravrtti)에서 '전(轉)'은 전사전득(轉捨轉得), 즉 번뇌장·소지장의 종자를 전환해서 버리고, 보리(菩提)와 열반을 전환해서 증득하는 것이다. '의(依)'는 전사전득(轉捨轉得)의 의지처[所依], 즉 의타기를 말한다. 전의는 의타기성인 팔식을 변혁시켜서, 번뇌장과 보리장의 종자를 소멸시키고 보리와 열반을 증득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번뇌에 오염된 팔식이 네 가지 지혜, 즉 아뢰야식은 대원경지, 말나식은 평등성지, 의식은 묘관찰지, 오식은 성소작지로 전환된다.
전의(轉依, asraya-paravrtti)에서 '전(轉)'은 전사전득(轉捨轉得), 즉 번뇌장·소지장의 종자를 전환해서 버리고, 보리(菩提)와 열반을 전환해서 증득하는 것이다. '의(依)'는 전사전득(轉捨轉得)의 의지처[所依], 즉 의타기를 말한다. 전의는 의타기성인 팔식을 변혁시켜서, 번뇌장과 보리장의 종자를 소멸시키고 보리와 열반을 증득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번뇌에 오염된 팔식이 네 가지 지혜, 즉 아뢰야식은 대원경지, 말나식은 평등성지, 의식은 묘관찰지, 오식은 성소작지로 전환된다.
2. 五位의 수행단계
유식학에서는 자각각타(自覺覺他)의 길을 가는 보살의 수행 위계(位階)를 41단계로) 인정하고, 이것을 다음과 같은 오위에 배대한다.
① 자량위
자량위(資糧位)는 길고 긴 수행의 도정에서 재산이 될 양식을 저장하는 단계이다. 깨달음을 향한 수행의 출발에서 선우(善友)·작의(作意)·자량(資糧)·신해(信解)가 중시된다. 여기서 자량이란 복덕과 지혜를 가리킨다. 37보리분법과 육바라밀을 닦는 과정이다. 십주(十住)·십행(十行)·십회향(十廻向:제10회향의 住心까지) 등 삼십위의 단계이다. 그런데 이 단계에서는 지말적인 번뇌는 정화할 수 있어도 근본번뇌는 정화되지 않으며, 능취(能取)와 소취(所取)가 남아 있다.
② 가행위
가행위(加行位)는 수행심을 더욱 경책하여 정진을 가행하도록 하는 단계로서, 제10회향의 만심(滿心)에서 네 가지 선근(난위·정위·인위·세제일위)을 닦는다. 난위(煖位)에서는 대상이 공함을 관찰하고[下品의 尋思觀], 정위(頂位)에서는 대상이 공함을 관찰한다[上品의 尋思觀]. 인위(忍位)에서는 대상이 공함을 인가하고, 인식주체도 공함을 관찰하여 인가하고[下品의 如實智觀], 세제일위(世第一位)에서는 대상과 주체가 공함을 둘다 인가한다. 집착심과 차별심을 발생하는 능취와 소취의 번뇌가 없어진다. 후천적인 번뇌만을 정화한다.
③ 통달위
통달위(通達位)는 견도위(見道位)라고도 하며, 이 지위에 오르면 진여성을 관찰하게 된다. 십지(十地) 중에서 초지(初地)의 입심(入心)의 수행위이다. 무루의 지혜가 생겨나서 비로소 진여의 일부분을 견조(見照)한다. 분별심이 없어지지만, 아직 반연하는 작용이 남아 있어서 진여를 완전히 증득한 것은 아니다. 후천적인 번뇌[分別起煩惱]는 한꺼번에 소멸되지만, 선천적인 번뇌[俱生起煩惱]는 아직 요지부동이다. 제6 의식과 제7 말나식의 일분(一分)이 각각 묘관찰지와 평등성지로 전환되기 시작한다.
④ 수습위
수습위(修習位)는 수도위(修道位)라고도 하며, 초지의 주심(住心)부터 제10지 끝까지의 지위로서 견도에서 일부 증득된 진여의 도리를 반복적으로 닦아 익힌다. 번뇌장과 소지장을 정화해 나가는 지위이다. 다문훈습(多聞薰習)과 문혜(聞慧)·사혜(思慧)·수혜(修慧)의 삼혜에 의해, 아집과 법집을 정화하는 아공과 법공을 닦아 진여의 경지에 진입하는 수행을 한다. 번뇌장과 소지장이 정화되면서 그 동안 장애를 받아 발휘되지 못했던 지혜가 본격적으로 발현되기 시작한다.
초지부터 제10지에 이르기까지의 수행인데, 번뇌장과 소지장이 초지부터 점차 정화되기 시작하여, 제7지에서 번뇌장이 정화되어 아집이 단절되고, 제10지에서 금강유정을 수행하여 소지장을 정화하여 법집이 단절된다.
⑤ 구경위
구경위(究竟位)는 모든 번뇌를 정화하고 성불의 지위에 오른 과위(果位)이다. 대보리(네 가지 지혜)와 대열반(무주상열반)을 증득한다.
① 자량위
자량위(資糧位)는 길고 긴 수행의 도정에서 재산이 될 양식을 저장하는 단계이다. 깨달음을 향한 수행의 출발에서 선우(善友)·작의(作意)·자량(資糧)·신해(信解)가 중시된다. 여기서 자량이란 복덕과 지혜를 가리킨다. 37보리분법과 육바라밀을 닦는 과정이다. 십주(十住)·십행(十行)·십회향(十廻向:제10회향의 住心까지) 등 삼십위의 단계이다. 그런데 이 단계에서는 지말적인 번뇌는 정화할 수 있어도 근본번뇌는 정화되지 않으며, 능취(能取)와 소취(所取)가 남아 있다.
② 가행위
가행위(加行位)는 수행심을 더욱 경책하여 정진을 가행하도록 하는 단계로서, 제10회향의 만심(滿心)에서 네 가지 선근(난위·정위·인위·세제일위)을 닦는다. 난위(煖位)에서는 대상이 공함을 관찰하고[下品의 尋思觀], 정위(頂位)에서는 대상이 공함을 관찰한다[上品의 尋思觀]. 인위(忍位)에서는 대상이 공함을 인가하고, 인식주체도 공함을 관찰하여 인가하고[下品의 如實智觀], 세제일위(世第一位)에서는 대상과 주체가 공함을 둘다 인가한다. 집착심과 차별심을 발생하는 능취와 소취의 번뇌가 없어진다. 후천적인 번뇌만을 정화한다.
③ 통달위
통달위(通達位)는 견도위(見道位)라고도 하며, 이 지위에 오르면 진여성을 관찰하게 된다. 십지(十地) 중에서 초지(初地)의 입심(入心)의 수행위이다. 무루의 지혜가 생겨나서 비로소 진여의 일부분을 견조(見照)한다. 분별심이 없어지지만, 아직 반연하는 작용이 남아 있어서 진여를 완전히 증득한 것은 아니다. 후천적인 번뇌[分別起煩惱]는 한꺼번에 소멸되지만, 선천적인 번뇌[俱生起煩惱]는 아직 요지부동이다. 제6 의식과 제7 말나식의 일분(一分)이 각각 묘관찰지와 평등성지로 전환되기 시작한다.
④ 수습위
수습위(修習位)는 수도위(修道位)라고도 하며, 초지의 주심(住心)부터 제10지 끝까지의 지위로서 견도에서 일부 증득된 진여의 도리를 반복적으로 닦아 익힌다. 번뇌장과 소지장을 정화해 나가는 지위이다. 다문훈습(多聞薰習)과 문혜(聞慧)·사혜(思慧)·수혜(修慧)의 삼혜에 의해, 아집과 법집을 정화하는 아공과 법공을 닦아 진여의 경지에 진입하는 수행을 한다. 번뇌장과 소지장이 정화되면서 그 동안 장애를 받아 발휘되지 못했던 지혜가 본격적으로 발현되기 시작한다.
초지부터 제10지에 이르기까지의 수행인데, 번뇌장과 소지장이 초지부터 점차 정화되기 시작하여, 제7지에서 번뇌장이 정화되어 아집이 단절되고, 제10지에서 금강유정을 수행하여 소지장을 정화하여 법집이 단절된다.
⑤ 구경위
구경위(究竟位)는 모든 번뇌를 정화하고 성불의 지위에 오른 과위(果位)이다. 대보리(네 가지 지혜)와 대열반(무주상열반)을 증득한다.
3. 證果 - 대열반과 대보리
1) 대열반 - 청정법계
대열반은 진해탈(眞解脫)이라고도 한다. 이에 본래자성 청정열반·유여의열반·무여의열반·무주상열반을 든다. 본래자성 청정열반(本來自性淸淨跡槃)은 일체법의 실상인 진여를 말한다. 그 성품이 본래부터 고요하기 때문에 열반이라 이름한다. 유여의열반(有餘依跡槃)은 진여가 번뇌장을 벗어난 것을 말한다. 미세한 괴로움의 의지처를 아직 멸하지는 않았지만, 장애를 영원히 고요하게 하기 때문에 열반이라 이름한다. 무여의열반(無餘依跡槃)은 진여가 생사의 괴로움을 벗어난 것을 말한다. 번뇌를 이미 모두 없애고 의지처도 역시 멸하여 많은 괴로움을 영원히 고요하게 하기 때문에 열반이라 이름한다. 무주처열반(無住處跡槃)은 진여가 소지장을 벗어난 것을 말한다. 대지(大智)이므로 생사에 머물지 않고 대비(大悲)이므로 열반에 안주하지 않는다. 유정을 이롭고 안락하게 하는 일을 미래세가 다할 때까지 하더라도 항상 고요하기 때문에 열반이라 이름한다.
모든 유정에게는 본래자성 청정열반만이 있고, 이승(二乘)의 무학(無學)에게는 자성열반·유여의열반·무여의열반이 있으며, 오직 붓다만이 네 가지를 갖춘다.
대열반은 진해탈(眞解脫)이라고도 한다. 이에 본래자성 청정열반·유여의열반·무여의열반·무주상열반을 든다. 본래자성 청정열반(本來自性淸淨跡槃)은 일체법의 실상인 진여를 말한다. 그 성품이 본래부터 고요하기 때문에 열반이라 이름한다. 유여의열반(有餘依跡槃)은 진여가 번뇌장을 벗어난 것을 말한다. 미세한 괴로움의 의지처를 아직 멸하지는 않았지만, 장애를 영원히 고요하게 하기 때문에 열반이라 이름한다. 무여의열반(無餘依跡槃)은 진여가 생사의 괴로움을 벗어난 것을 말한다. 번뇌를 이미 모두 없애고 의지처도 역시 멸하여 많은 괴로움을 영원히 고요하게 하기 때문에 열반이라 이름한다. 무주처열반(無住處跡槃)은 진여가 소지장을 벗어난 것을 말한다. 대지(大智)이므로 생사에 머물지 않고 대비(大悲)이므로 열반에 안주하지 않는다. 유정을 이롭고 안락하게 하는 일을 미래세가 다할 때까지 하더라도 항상 고요하기 때문에 열반이라 이름한다.
모든 유정에게는 본래자성 청정열반만이 있고, 이승(二乘)의 무학(無學)에게는 자성열반·유여의열반·무여의열반이 있으며, 오직 붓다만이 네 가지를 갖춘다.
2) 대보리 - 네 가지 지혜
팔식은 현상일 뿐 그 본성은 결코 실체가 없는 공성(空性)이며, 전의에 의해 번뇌로 오염된 식(識)이 청정하고 분별이 없는 지혜로 전환된다. 이러한 전식득지(轉識得智)는 곧 유식교학의 근본취지[大意]이다.
우선 대원경지(大圓鏡智)는 유루의 제8식을 전환하여 얻는 지혜이다. 아뢰야식 안의 모든 잡염법이 소멸되어, 한 점의 티끌도 없는 대원경(大圓鏡)처럼 된 상태이다. `대(大)'라 함은 시간·공간을 초월하기 때문이고, `원(圓)'은 사물의 실상을 그대로 비추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자신과 진여법계가 하나가 됨으로써, 우주 전체가 대원경처럼 변화되어 모든 사물이 있는 그대로 비추어지듯이, 시공을 초월하여 모든 것을 아는 원만한 지혜이다. 불과(佛果)에서 처음으로 얻는다.
평등성지(平等性智)는 유루의 제7식을 전환하여 얻는 무루의 지혜이다. 여기서 평등한 성품이란 진여를 말한다. 진여는 체성이 평등하여 일체법에 두루하므로 평등성이라 한다. 또한 지혜가 그것을 반연하므로 평등성지라고 한다. 말나식에서 자아 집착작용에 의한 모든 차별심이 소멸되어 일체를 평등하게 보며, 대자비심을 일으켜서 중생 제도 활동을 하게 된다.
묘관찰지(妙觀察智)는 유루의 제6식을 전환하여 얻는 무루의 지혜이다. 통달위에서 그 일부분을 얻고 불과에서 전체를 성취한다. 묘(妙)는 불가사의한 힘의 자재를 말하고, 관찰은 모든 법을 관찰하여 정통하는 것이다. 의식에서 개별적이고 개념적인 인식상태가 변화되어, 모든 사물의 자체상[自相]과 보편적인 특질[共相]을 있는 그대로 관찰한다. 묘관찰지는 중생의 근기를 알아서 불가사의한 힘을 나타내고 훌륭하게 법을 설하여 모든 의심을 끊게 한다.
성소작지(成所作智)는 불과에 이르러 유루의 오식(五識)을 전환하여 얻는 무루의 지혜이다. 본원(本願)의 해야 할 일을 해 마치는 지혜로서, 오식의 감각작용적인 상태가 변화되며, 삼업(三業)으로 여러 변화신을 보여 중생을 널리 이롭게 한다.
이 네 가지 지혜는 수행에 의해 점진적으로 증득되는가, 단박에 성취되는가? 능변계성인 의식과 말나식이 각각 묘관찰지와 평등성지로 전환되는 것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고, 현량성(現量性)인 아뢰야식과 오식이 각각 대원경지와 성소작지로 전환되는 것은 성불할 무렵에 단박에 이루어진다. 즉 묘관찰지와 평등성지는 통달위[견도. 初地의 入心]에서 일부[一分]를 증득하고, 이후의 십지 중에서 점차 닦아서 불과(佛果)에 이르러 그 전체[全分]를 증득한다. 대원경지는 해탈도의 시기, 즉 성불하기 직전에 처음으로 일어나게 된다. 금강유정(金剛喩定)이 현전할 때는 이숙식의 종자를 아직 단박에 버리지 못한다. 유루선(有漏善)과 이숙식(異熟識)은 장애는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유루법이고, 제10지에서의 무루는 불지에 비해 열등한 무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금강유정에서 훈습을 받는 식이 없다면, 무루가 증성해지지 않고서 성불하게 된다는 모순이 따르기 때문이다. 성소작지 역시 성불할 때에 무루의 감각기관에 의지해서 비로소 일어나게 된다.
팔식은 현상일 뿐 그 본성은 결코 실체가 없는 공성(空性)이며, 전의에 의해 번뇌로 오염된 식(識)이 청정하고 분별이 없는 지혜로 전환된다. 이러한 전식득지(轉識得智)는 곧 유식교학의 근본취지[大意]이다.
우선 대원경지(大圓鏡智)는 유루의 제8식을 전환하여 얻는 지혜이다. 아뢰야식 안의 모든 잡염법이 소멸되어, 한 점의 티끌도 없는 대원경(大圓鏡)처럼 된 상태이다. `대(大)'라 함은 시간·공간을 초월하기 때문이고, `원(圓)'은 사물의 실상을 그대로 비추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자신과 진여법계가 하나가 됨으로써, 우주 전체가 대원경처럼 변화되어 모든 사물이 있는 그대로 비추어지듯이, 시공을 초월하여 모든 것을 아는 원만한 지혜이다. 불과(佛果)에서 처음으로 얻는다.
평등성지(平等性智)는 유루의 제7식을 전환하여 얻는 무루의 지혜이다. 여기서 평등한 성품이란 진여를 말한다. 진여는 체성이 평등하여 일체법에 두루하므로 평등성이라 한다. 또한 지혜가 그것을 반연하므로 평등성지라고 한다. 말나식에서 자아 집착작용에 의한 모든 차별심이 소멸되어 일체를 평등하게 보며, 대자비심을 일으켜서 중생 제도 활동을 하게 된다.
묘관찰지(妙觀察智)는 유루의 제6식을 전환하여 얻는 무루의 지혜이다. 통달위에서 그 일부분을 얻고 불과에서 전체를 성취한다. 묘(妙)는 불가사의한 힘의 자재를 말하고, 관찰은 모든 법을 관찰하여 정통하는 것이다. 의식에서 개별적이고 개념적인 인식상태가 변화되어, 모든 사물의 자체상[自相]과 보편적인 특질[共相]을 있는 그대로 관찰한다. 묘관찰지는 중생의 근기를 알아서 불가사의한 힘을 나타내고 훌륭하게 법을 설하여 모든 의심을 끊게 한다.
성소작지(成所作智)는 불과에 이르러 유루의 오식(五識)을 전환하여 얻는 무루의 지혜이다. 본원(本願)의 해야 할 일을 해 마치는 지혜로서, 오식의 감각작용적인 상태가 변화되며, 삼업(三業)으로 여러 변화신을 보여 중생을 널리 이롭게 한다.
이 네 가지 지혜는 수행에 의해 점진적으로 증득되는가, 단박에 성취되는가? 능변계성인 의식과 말나식이 각각 묘관찰지와 평등성지로 전환되는 것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고, 현량성(現量性)인 아뢰야식과 오식이 각각 대원경지와 성소작지로 전환되는 것은 성불할 무렵에 단박에 이루어진다. 즉 묘관찰지와 평등성지는 통달위[견도. 初地의 入心]에서 일부[一分]를 증득하고, 이후의 십지 중에서 점차 닦아서 불과(佛果)에 이르러 그 전체[全分]를 증득한다. 대원경지는 해탈도의 시기, 즉 성불하기 직전에 처음으로 일어나게 된다. 금강유정(金剛喩定)이 현전할 때는 이숙식의 종자를 아직 단박에 버리지 못한다. 유루선(有漏善)과 이숙식(異熟識)은 장애는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유루법이고, 제10지에서의 무루는 불지에 비해 열등한 무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금강유정에서 훈습을 받는 식이 없다면, 무루가 증성해지지 않고서 성불하게 된다는 모순이 따르기 때문이다. 성소작지 역시 성불할 때에 무루의 감각기관에 의지해서 비로소 일어나게 된다.
이상과 같이 유식학의 중심사상을 성립 배경·심식론·삼성 중도설·오위의 수행과 전식득지의 순서로 살펴보았다. 요즈음 불교학을 연구하거나 관심이 있는 젊은 세대들 사이에 유식학의 인기가 높다. 그것은 우선 유식학이 아함(阿含)·중관학과 함께 불교학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또한 고도의 물질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인간의 정신현상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유식학은 매력있는 학문이다. 그리고 서구(西歐)의 현대학문 특히 인문과학분야는 대체로 심리학을 바탕으로 하는데, 이러한 학문체제의 교육을 받은 현 세대가 불교학을 연구할 경우 유식학에 관심을 갖기 쉬운 면도 있다.
앞으로 유식학의 주요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유식경론(한역본·범본·티베트본)의 한글 번역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교학연구에서 기초자료의 번역은 필수적이다. 또한 경론에 담겨 있는 심오한 유식이론을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현대감각 있는 용어로 되살려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유식학 연구는 불교학의 다른 분야뿐만 아니라 철학·심리학·논리학 등 타학문과의 연계성 위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서구식 학문 교육을 받은 현대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관련된 타학문도 연구하여 인용 비교하면서 연구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어째서 유식무경(唯識無境)'인지를 설명함에 있어서 세친의 《유식이십론》 등의 유식논서만을 사용할 것이 아니라 철학·물리학 등의 이론을 인용하는 것이다. 또한 유식학의 심식론은 현대심리학의 여러 분야에서 부분적으로 검증된 이론들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며, 인성(人性)에 대한 전인적인 이해와 연구의 중요한 동기와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앞으로 유식학의 주요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유식경론(한역본·범본·티베트본)의 한글 번역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교학연구에서 기초자료의 번역은 필수적이다. 또한 경론에 담겨 있는 심오한 유식이론을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현대감각 있는 용어로 되살려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유식학 연구는 불교학의 다른 분야뿐만 아니라 철학·심리학·논리학 등 타학문과의 연계성 위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서구식 학문 교육을 받은 현대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관련된 타학문도 연구하여 인용 비교하면서 연구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어째서 유식무경(唯識無境)'인지를 설명함에 있어서 세친의 《유식이십론》 등의 유식논서만을 사용할 것이 아니라 철학·물리학 등의 이론을 인용하는 것이다. 또한 유식학의 심식론은 현대심리학의 여러 분야에서 부분적으로 검증된 이론들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며, 인성(人性)에 대한 전인적인 이해와 연구의 중요한 동기와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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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동국대학교 학술지 석림 Vol.32 No.- [1998]
임기영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dlpul1010/2331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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