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알기

수행을 해야 하는 이유

수선님 2019. 6. 30. 11:21
 

"모든 중생을 보니,
생노병사와 우비고뇌의 불에 태워지고,
또 오욕으로 재물과 이익을 구하므로
갖가지 괴로움을 받으며,
또 탐내고 애착하여 구하므로

현세에는 여러가지 고통을 받다가
후세에는 지옥, 축생, 아귀의 고통을 받으며,
혹은 천상에 나거나 인간계에 날지라도
가난하고 궁색하며,
사랑하는 자와의 이별과 미워하는 자를 만나는 등의
갖가지 고통이 있느니라.

중생은 이 가운데 빠져 기뻐해 노닐며,
그 고통을 깨닫지도 알지도 못하며,
놀라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또 싫증도 내지 아니하고,
해탈을 구하지도 아니하며,
불타는 집 같은 이 삼계에서 동분서주 마구 달려
큰 고통을 당할지라도 이를 근심하지 않느니라."

[법화경 비유품]

이렇게 까지 어리석게 사는가 싶겠지만
가만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야말로 딱 우리 사는 삶의 모습 그대로를
제대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누구나 생노병사 우비고뇌의 불에 태워지고 있으며,
색성향미촉법 다섯가지 경계가
사람의 욕심을 일으키도록 하여 오욕으로 말미암아
온갖 재물과 이익을 구하고
그로인해 온갖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죽어서도 지옥, 아귀, 축생의 고통을 받으며,
천상이나 인간계에 나더라도 가난하고 궁색합니다.
그뿐인가요.
사랑하는 자와의 이별이 기다리고 있고,
미워하는 자와의 만남도 기다리고 있어요.
그야말로 갖가지 괴로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중생들은
그런 한가운데 빠져 기뻐하고 노닐고 있습니다.
그 고통 속에서도
잠시의 달콤함에 빠져
고통이 고통인 줄(일체개고) 미쳐 알지도 못합니다.

그런 사실을 깨닫지도 못할 뿐더러,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싫증을 내지도 않는단 말입니다.

그러니 깨달음을 얻고자,
해탈을 구할 수 있겠어요?

불타고 있는 삼계라는 집에서
동분서주 이리 저리로 정신없이 날뛰고만 있지
큰 고통을 당해도 근심하지를 않는단 말입니다.

무언가 삶에 대한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문제의식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이 생노병사만 놓고 보더라도
분명 괴로운 곳임은 분명한데,
괴로운 곳이라는, 일체개고라는 사실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없고, 문제의식도 없고
그에 대한 근심과 두려움도 없다는 것이 참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중생들의 어리석고 안타까운 모습을 보면서
부처님께서는 연이어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삼계의 불난 집에 머무르기를 즐기지 말라.
쓰레기 같은 색성향미촉을 탐내지 말라.
만약 탐내고 사랑하는 마음을 내어 집착하면
그 불에 타고 말리라.

그러나 너희가 속히 삼계에서 나오면
마땅히 성문승, 벽지불승, 불승의 깨달음을 얻으리라.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이 일을 책임지고 보증하노라.
결코 헛되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다만 부지런히 닦아 정진하라"

[법화경 비유품]

이 안타까운 중생들을 모습을 보시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삼계의 불난 집, 괴로운 그 곳에 머물지 말고,
쓰레기 같은 모양과 소리, 냄새와 맛,
촉감에 얽매이고 집착하여 탐내는 마음을 버리라고.

만약 탐내고 사랑하여 집착하는 마음을 내면
불에 타고 말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부처님께서 우리와 약속을 하십니다.
너희가 속히 불난 집 삼계에서 나오기만 하면
분명히 성문이든 벽지불이든 불승이든
그 어떤 방편의 길을 통해서라도 분명 깨달음을 얻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바로 그 일을 경전의 말씀을 통해
부처님께서는 책임지고 보증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말을 분명 책임지고 보증할테니
그리고 그 말은 결코 헛되지 않을것이니
너희 중생들은 다만 부지런히 닦아 정진하기만 하라고 하십니다.

부처님의 한없이 일체중생을 향한 자비를
혁혁히 성성히 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번 생을
앞서 언급한 게송처럼
어리석게, 욕심부리며,
내 밖의 색성향미촉의 경계에 집착하며
탐내는 삶을 살지 말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분서주 날뛰지 말고
생노병사 우비고뇌를 버리며
현실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보아
대 해탈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 정도면 어때요?
마음공부, 수행을 해야 하는 이유가
충분하지 않습니까.
더욱이 부처님께서 책임과 보증까지 서 준 마당 아니겠습니까.

표면적이고 피상적인
삶의 얇팍한 즐거움에만 얽매이고 연연해 하지 말고,
좀 더 깊이 있는 삶에 대한 통찰로써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참 즐거움을 찾아 나서 봅시다.


 

 

 

 

 

 

 

목탁소리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buda1109/6873520 에서 복사한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