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 공안의 圓相에 대한 이해
위앙종(潙仰宗)은 중국의 위산영우(潙山靈祐, 771~853)와 그 제자인 앙산혜적(仰山慧寂, 803~887)을 개조로 하는 종파로서, 우리나라에는 통일신라시대에 대통원랑(大通圓朗, 816~883)이 처음 전래하였다. 그 이후 요오순지(了悟順之, 생몰년 미상)에 의해 계승되었으며, 고려 중기에 와서는 정각지겸(靜覺至謙, 1145~1229)의 《종문원상집(宗門圓相集)》 등으로 전개되었다.
그런데 《조당집》은 위앙종과 깊은 관계에 있다고 말해진다. 우선 《조당집》에 수록된 해동선사 10인의 대부분이 아주 간단한 기록밖에 남기고 있지 않은데 비하여, 순지에 대해서만은 권20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는 점이다. 또한 순지의 스승이기도 한 앙산혜적에 대해서도 다른 선사들에 비해 대단히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특히 앙산혜적장은 위산영우와의 문답뿐만 아니라, 선종사에 있어서의 큰 사건이나 선의 중요개념들에 대해서 앙산이 설명하고 있는 등 구성에 있어서도 특이하다. 전회에 서술한 김대비(金大悲)가 혜능의 목을 훔치는 사건도 《조당집》에서는 ‘앙산혜적장’에 나오고 있다. 따라서 필자의 추측이기는 하지만, 만약 《조당집》이 고려시대 때 증편되었다면 그 담당자가 위앙종에 관계된 사람이고 그때 순지와 ‘앙산혜적장’도 개편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한편 위앙종의 특징 중에 하나가 바로 원상(圓相)을 그려서 선의 종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조당집》‘앙산혜적장’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선사가 언젠가 눈을 감고 앉았을 때, 어떤 스님이 가만히 걸어와 선사의 곁에서 모시고 섰다. 그러자 선사가 문을 열고 땅위에다 원상을 그리고는 원상 안에다 수(水)자를 써서 그 스님에게 보이자, 스님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사실 원상을 그려서 법을 보이거나 제자를 제접하는 것은 위앙종뿐만이 아니라 석두희천(石頭希遷) 계통에도 보이며, 특히 마조도일(馬祖道一) 이후에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예를 들면 마조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마조는 어떤 승이 참학하러 오자 원상을 그리고는 말하기를 “들어와도 때릴 것이고 들어오지 않아도 때릴 것이다”고 하였다. 승이 원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곧 때렸다. 그러자 승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때려서는 안 됩니다.”하니 마조는 주장자에 기댄 채 그만 두었다.
마조도일 이후의 중국선의 특징 중의 하나는 방(棒)·할(喝) 등의 기관(機關)을 많이 사용한다는 것이다. 마조도일 이전에는 경전의 가르침을 통해서 제자를 가르쳤다면 그 이후에는 ‘눈이나 귀로 직접 지각할 수 있는 방편’을 사용하였다. 송대 이후에 유행하는 시문학(詩文學)이나 공안의 사용도 이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심볼(symbol)’이나 ‘이미지(image)’를 가지고 표현하는 것이 마조선 이후의 특징이다. 원상도 이러한 표현방법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원상을 선종에서 사용한 다른 예도 존재하는데 《십우도(十牛圖)》·《조동오위도(曹洞五位圖)》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원상을 많이 사용한 것이 바로 순지(順之)이다. 순지의 속성은 박(朴)씨이고, 지금의 평안도 대동강 출신이다. 약관의 나이에 출가하여 개성(開城)의 오관산(五冠山)으로 출가하였으며, 858년에 중국에 들어가 앙산혜적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순지는 고려태조인 왕건과 깊은 관계에 있었는데, 왕건의 할머니인 원창왕후(元昌王后)와 아버지인 위무대왕(威武大王)의 시주로 오관산(五冠山) 용엄사(龍嚴寺)를 창건하여 주석하다가 65세로 사망하였다. 그의 사상 중 사대팔상(四對八相)과 사대오상(四對五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사대팔상이란 ‘진리를 증득하는 과정’을 여러 관점에서 해설한 것으로, 앞은 원인이고 뒤는 결과를 나타낸다.
제1 ○ 소의열반상(所依涅槃相) 對 우식인초상(牛食忍草相)
제2 삼승구공상(三乘求空相) 對 로지백우상(露地白牛相)
제3 계과수인상(契果修因相) 對 卍 인과원만상(因果圓滿相)
제4 구공정행상(求空精行相) 對 점증실제상(漸證實際相)
제1의 소의열반상(所依涅槃相)은 ‘모든 중생과 불(佛)이 똑같이 가지고 있는 불성’을 원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중생은 번뇌에 덮혀 있으므로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을 표현한 것이 우식인초상(牛食忍草相)이다. ‘소가 풀을 먹으면 제호(醍醐)를 낳듯이 사람이 법을 이해하면 바른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고려중기 정각지겸에 계승
'종문원상집'에 관련 문답 수록
다양한 사상 중 가장 주목
제2의 삼승구공상(三乘求空相)은 삼승인(三乘人)이 공(空)을 구하는 모습이며, 로지백우상(露地白牛相)은 일승(一乘)을 깨달은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즉 삼승인이 점차적인 수행을 통해서 일승을 획득하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제3의 계과수인상(契果修因相)은 ‘과(果)에 계합하기 위해서 인(因)을 닦는 상’으로서 초발심(初發心) 시에 비록 정각(正覺)을 이루지만, 행(行)이 아직 원만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因)을 닦아야 함을 표현한 것이며, 인과원만상(因果圓滿相)은 인(因)을 닦아서 행(行)이 원만해진 상태를 나타낸다. 제4의 구공정행상(求空精行相)은 공(空)을 구해서 열심히 수행하는 모습이고, 점증실제상(漸證實際相)은 그 결과 점차로 진리를 증득하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또 사대오상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 혹은 ‘스승과 제자 간에 행해지는 선문답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제1 ( 거함색개상(擧函索蓋相) 對 ○
제2 ○ 파옥멱계상(把玉覓契相) 對 ○
제3 조입색속상(釣入索續相) 對
제4 이성보기상(已成寶器相) 對 현인지상(玄印旨相)
먼저 제1의 거함색개상(擧函索蓋相)은 함과 뚜껑이 잘 맞듯이, 제자의 질문에 대해 스승이 정확하게 대답하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제2의 파옥멱계상(把玉覓契相)은 스스로 옥[진리]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밖으로 찾아다니는 제자에게, 자기 스스로 옥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하는 것을 나타낸다. 제3의 조입색속상(釣入索續相)은 스승이 낚싯대를 드리워서 후계자를 찾는 모습이며, 뒤의 는 이미 제자의 근기가 무르익어 잘 응대하는 모습이다. 제4의 이성보기상(已成寶器相)은 제자가 이미 큰 그릇이 된 것을 말하고, 뒤의 현인지상(玄印旨相)은 스승이 제자를 인가하는 모습이다.
이상 순지의 사상을 살펴보았지만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런데 이러한 위앙종의 선풍은 고려중기의 정각지겸(靜覺至謙)으로 계승된다. 지겸은 조계종의 국사였지만 《종문원상집(宗門圓相集)》이라는 책을 편찬하였다. 《종문원상집》은 원상과 관련된 문답을 수록한 것으로서 우리나라에만 남아있는 귀중한 문헌이다. 이처럼 고려시대까지는 조계종 안에도 다양한 형태의 사상들이 있었다.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정영식 연구교수
통융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kds11002/13480167 에서 복사한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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