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식 唯識
집필자 곽철환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를 졸업했다. 지은 책으로 『불교 길라잡이』와 『시공 불교사전』이 있고, 옮긴 책으로 『핵심 아함경』이 있다.
전5식(前五識) | ① 안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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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이식 | |
③ 비식 | |
④ 설식 | |
⑤ 신식 | |
제6식 | ⑥ 의식 |
제7식 | ⑦ 말나식 |
제8식 | ⑧ 아뢰야식 |
안식에서 신식까지의 다섯 가지를 묶어서 전5식이라 하고, 의식을 제6식, 말나식을 제7식, 아뢰야식을 제8식이라 한다. 전5식은 눈 · 귀 · 코 · 혀 · 몸의 감각기관으로 각각 형상 · 소리 · 냄새 · 맛 · 감촉의 대상을 지각하는 마음 작용이다. 제6식은 의식 기능으로 의식 대상을 인식하는 마음 작용이다. 제7 말나식의 말나(末那)는 ⓢmanas를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이고, 의(意)라고 번역한다. 끊임없이 분별하고 생각하고 헤아리고 비교하는 마음 작용으로, 아치(我癡) · 아견(我見) · 아만(我慢) · 아애(我愛)의 네 번뇌와 항상 함께 일어나는 자의식이다.
제8 아뢰야식의 아뢰야(阿賴耶)는 ⓢālaya를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으로, ‘저장’을 뜻한다. 그래서 ‘장식(藏識)’이라 한다. 과거에 경험한 인식 · 행위 · 학습 등을 저장하고 있는 마음 작용으로, 심층에 잠재하고 있다. 과거의 경험들이 아뢰야식에 잠복 상태로 저장되어 있는 잠재력을 종자(種子) 또는 습기(習氣)라고 한다. 유식학의 가장 중요한 텍스트는 세친이 유식의 요점을 30개의 게송으로 밝힌 《유식삼십론송》이다. 이 《유식삼십론송》에 대한 10대논사(十大論師)들의 주석서가 《성유식론(成唯識論)》이다.
5식은 근본식(아뢰야식)에 의지해서<唯識三十論頌 제15송>
조건에 따라 일어난다.
어느 때는 함께 일어나고 어느 때는 함께 일어나지 않는데
이는 파도(전5식)가 물(아뢰야식)에 의지하는 것과 같다.
안식 · 이식 · 비식 · 설식 · 신식, 즉 전5식은 조건에 따라 심층에 잠재하고 있는 아뢰야식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바깥 대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자동적으로 그 대상을 채색하여 자기 나름대로 지각한다. 즉, 그 전5식은 아뢰야식이라는 색안경을 통해 바깥 대상을 지각한다.
여기서 ‘채색한다’는 말은 자신의 선입견이나 감정으로 그 대상을 덮어씌운다는 뜻이다. 따라서 어떤 대상에 대한 판단도 제각각이고, 어떤 사람에 대한 평가도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심층에 잠재하고 있는 아뢰야식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위의 게송에서 ‘어느 때는 함께 일어나지 않는데’는 아뢰야식의 작용이 끊겨 바깥 대상을 있는 그대로 직관하는 상태이다.
의식은 항상 일어난다.<唯識三十論頌 제16송>
마음 작용이 소멸된 경지와
무심(無心)의 두 선정과
잠잘 때와 기절했을 때는 제외한다.
제6 의식의 내용은 말나식과 아뢰야식이 직접 의식에 작용하거나 그 두 식이 전5식을 거쳐서 작용한 결과이다. 전자인 경우 의식의 내용은 과거 어떤 일을 떠올리는 허상이거나 미래에 대한 상상이고, 후자인 경우 의식의 내용은 지금 바깥에 있는 대상을 자신의 색안경으로 채색한 지각이다. 그러나 ‘마음 작용이 소멸된 경지’와 ‘무심’의 두 선정에서는 말나식과 아뢰야식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다음은 두 번째 마음 작용이다.<唯識三十論頌 제5송>
이것을 말나식이라 하고
그것(아뢰야식)에 의지해서 일어나고 작용한다.
생각하고 헤아리고 따지는 것을 본질로 삼는다.
네 가지 번뇌와 항상 함께하는데<唯識三十論頌 제6송>
곧 아치와 아견과
아만과 아애이다.
그 외에 감촉 등과도 함께한다.
선도 악도 아니지만 수행에 방해가 되는 번뇌이고<唯識三十論頌 제7송>
생존 상태에 따라 얽매인다.
아라한과 멸진정(滅盡定)과
출세간도(出世間道)에서는 말나식이 작용하지 않는다.
위의 게송에서 ‘다음은 두 번째 마음 작용이다’라는 말은 앞의 게송에서 아뢰야식에 대해 언급했기 때문에 두 번째로 말나식에 대해 언급한다는 뜻이다. 말나식은 바깥 대상을 인식하는게 아니라 아뢰야식을 대상으로 해서 일어나고, 생각하고, 헤아리고, 비교하는 것을 본질로 삼는다. 자신에 대해 어리석은 아치, 자신을 독립적인 존재라고 착각하는 아견, 자신을 높이고 남을 낮추는 아만, 자신만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아애와 항상 함께 일어나기 때문에 ‘에고’의 본바탕이다. 게다가 말나식은 아뢰야식에 의지해서 일어나기 때문에 과거의 경험들과 함께한다.
따라서 말나식의 내용은 ‘에고’를 바탕으로 한 상상 · 허상이고, 이것은 바깥 대상과 관계없이 그냥 내면에서 떠오르는 번뇌이고 분별이고 자의식이다. 그래서 수행자는 말나식이 일어나면 곧바로 알아차리고 잠깐 ‘틈’을 가져야 한다. 이 틈이야말로 말나식을 약화시키는 유일한 길이다. 예를 들어 남에게 화를 내려거나 부정적인 말을 하려고 할 때, 그것을 즉각 알아차리고 잠깐만 틈을 가지면 그 충동이 누그러진다. 이 틈을 계속 반복해서 가지면, 에고가 점점 약화되고 감소되어간다. 이게 유식학의 지향점이다.
다시 말하면, 상상과 허상을 따라가지 않고, 자신의 선입견이나 감정으로 대상을 채색하지 않는 게 마음의 소음을 줄이는 길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나식이 일어날 때, 즉각 그것을 알아차리고 한발짝 물러서서 잠깐 관조하는게 말나식을 약화시키는 길이다. 말나식은 ‘에고’의 본바탕이고, 이 에고가 괴로움의 뿌리이다. 에고는 자신을 드러내고 내세우려는 마음의 소음이다.
열반에 이르는 데 장애가 되는 가장 근본적인 번뇌인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도 에고를 바탕으로 해서 일어나고,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도 에고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말나식이 일어나자마자 자동으로 반응하지 않고, 그것을 자각해서 누그러뜨리는 게 수행의 시작이다. 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아라한,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멸진정, 모든 번뇌를 떠난 출세간도에서는 말나식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아뢰야식)은 선도 악도 아니고<唯識三十論頌 제4송>
감촉 등도 그러하다.
항상 유전(流轉)하는 것이 급류 같고
아라한의 경지에서 멈춘다.
아뢰야식은 너무나 미세하고 마음의 심층에 잠복된 상태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감지할 수 없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끊임없이 흐르는 것이 급류 같다. 그런데 잠복 상태에 있는 아뢰야식의 종자가 어떤 자극으로 의식에 떠오르면 탐욕 · 분노 · 고락 · 선악 등으로 나타난다. 비유하면 무슨 씨앗인지 잘 구별되지 않는 좁쌀 같은 갖가지 씨앗이 바구니에 가득 담겨 있는데, 그 하나를 집어내어 물을 주면 싹이 돋아나 그 본색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
그래서 수행자는 분노가 일어날 때 즉각 알아차려서 그것에 휘둘리지 않고, 따라가지 않으며, 한 걸음 물러서서 그냥 지켜보기만 해야 한다. 즉 분노의 종자에 물을 주지 않음으로써 그 종자의 잠재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이런 통찰을 반복하면 그 종자는 말라 죽게 되는데, 그 온갖 종자가 다 말라 죽은 경지에 이른 성자가 아라한이다. 흔히 유식학의 핵심을 ‘유식무경(唯識無境)’이라 한다. 즉, ‘오직 마음 작용뿐이고 대상은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전5식의 대상(境)마저 부정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전5식은 감각기관으로 지금 여기에 실제로 존재하는 바깥 대상, 즉 형상 · 소리 · 냄새 · 맛 · 감촉을 지각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단 전5식은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한게 아니라 말나식과 아뢰야식에 의지해서 일어나기 때문에 자기 나름대로 채색한 결과이다. 말나식과 아뢰야식의 내용은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어떤 일이 떠오르는 허상 · 상상이지만, 전5식의 내용은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바깥 대상에 대한 지각이다.
‘무경(無境)’에서 부정하는 대상은 말나식과 아뢰야식의 상상 · 허상과 전5식이 채색한 대상이다. 그 대상은 허구이다. 그 대상은 객관적으로 실재하는게 아니라 모두 마음이 지어낸 것이다. 그래서 ‘유식(唯識)’이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이다. ‘일체유심조’, 즉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 것이라는 말은 말나식과 아뢰야식의 내용, 전5식의 채색 모두 마음이 지어낸 것이라는 뜻이지, 전5식의 대상 그 자체도 마음이 지어낸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산과 바다, 나무와 풀, 꽃과 나비 등은 마음이 지어낸 게 아니다. 단, 그것들을 보는 사람마다 생각과 느낌이 다 다른데, 그것은 말나식과 아뢰야식이 제각기 달라 채색하는 종류와 정도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직접 보고 집에 와서 그것들을 떠올리면, 그건 허상이고 상상이다. ‘매사는 마음먹기 나름’이라든가 ‘매사는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은 허상과 상상, 채색에 해당하는 말이지 전5식의 대상 그 자체에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지금 내 호주머니에 금반지가 없는데, 마음먹기에 따라 있는가. 지금 여기에 실제로 존재하는 바깥 대상의 채색된 지각과 지금 여기의 바깥 대상 없이 떠오르는 허상 · 상상은 다르다. 예를 들면, 전자는 어떤 사람이 지금 직접 어떤 대상을 지각하는 경우이고, 후자는 그 사람이 그 대상을 직접 지각하고 나서 집에 와서 그것을 떠올리는 경우이다. 욕설을 듣고 나중에 그것을 떠올리고, 어떤 냄새를 맡고 나중에 그것을 떠올리고, 어떤 음식을 먹고 나중에 그것을 떠올리고, 어떤 것을 만져보고 나중에 그것을 떠올리는 것이다.
중생이 괴로움에 시달리는 것은, 채색된 지각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원인은 ‘지금 이 순간’에 머물지 못하고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일을 떠올려 거기에 얽매이고,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일을 떠올려 거기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이상의 여덟 가지 마음 작용이 각각 대상과 작용은 다르지만, 그 각각을 단절된 것으로 사유해서는 안 된다. 전5식과 의식과 말나식은 아뢰야식에 의지해서 일어나지만, 그들이 작용한 결과는 아뢰야식에 종자로 저장되기 때문에 서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이다.
이래저래 분별함으로써<唯識三十論頌 제20송>
갖가지 대상을 두루 분별한다.
이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은
실재하지 않는다.
의타기성(依他起性)의 분별은 조건에 의해서 생긴다.<唯識三十論頌 제21송>
원성실성(圓成實性)은 그것(의타기성)에서 앞의 것(변계소집성)을 멀리 떠난 성품이다.
이 3성(性)에 의거해서<唯識三十論頌 제23송>
3무성(無性)을 세운다.
그래서 붓다께서 모든 현상에는
자성이 없다고 본뜻을 말씀하셨다.
이것(원성실성)은 모든 현상의 궁극적인 이치이고 또 진여(眞如)다.<唯識三十論頌 제25송>
불변하고 분별이 끊긴 상태이기 때문에 유식의 참다운 성품이다.
마음에 떠오르는 모든 현상은 온갖 분별에 의한 상상 · 허상이고 채색된 지각이다. 이 상상 · 허상을 바깥에 실제로 존재한다고 착각해서 거기에 집착하고, 채색된 지각도 참모습이라고 착각해서 거기에 집착한다. 즉, 변계소집성이다. 마음 작용은 여러 조건에 의해 일어나므로 의타기성이고, 의타기성에서 분별하고 집착하는 변계소집성이 떨어져 나간 청정한 성품이 원성실성이다. 이 3성에는 다 고유한 실체가 없으므로 3무성이라 한다.
마음이 없어 생각하거나 헤아리지 않으니 이는 출세간의 지혜이다.<唯識三十論頌 제29송>
주관과 객관을 버림으로써 문득 전의(轉依)를 증득한다.
이것은 번뇌가 없는 상태이고 불가사의하고 선(善)이고 불변이고<唯識三十論頌 제30송>
안락이고 해탈신(解脫身)이고 위대한 성자이니, 이를 법신(法身)이라 한다.
전의의 경지는 불가사의하다. 살펴서 생각하고 언어로 표현하는 길을 초월했기 때문이다.<成唯識論 제10권>
또 미묘하고 매우 심오하며, 스스로 체득한 내면의 깨달음이기 때문이고, 세간의 어떤 비유로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의는 번뇌에 오염되어 있는 여덟 가지 마음 작용이 청정한 상태로 변혁된다는 뜻이다. 전의는 온갖 분별이 끊겨 마음도 없고 대상도 없기 때문에 2분법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스스로 체득한 내면의 깨달음이다. 상상과 허상이 일어나지 않고, 대상을 채색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직관하는 상태이다. 이 전의로 얻은 네 가지 청정한 지혜를 4지(智)라고 한다.
전5식은 질적으로 변혁되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해야 할 것을 모두 성취하는 성소작지(成所作智)로 바뀌고, 제6 의식은 모든 현상을 잘 관찰하고 자유자재로 가르침을 설하여 중생의 의심을 끊어주는 묘관찰지(妙觀察智)로 바뀐다. 또 말나식의 아치 · 아견 · 아만 · 아애가 소멸됨으로써 자타(自他)의 평등을 깨달아 대자비심을 일으키는 평등성지(平等性智)를 얻고, 아뢰야식의 모든 종자가 소멸되어 마치 온갖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내는 크고 맑은 거울 같은 청정한 대원경지(大圓鏡智)를 성취한다.
언어 표기법
- ⓢ 혹은 <산>은 산스크리트(sanskrit), ⓟ 혹은 <팔>은 팔리어(pāli語)를 가리킨다.
- 산스크리트와 팔리어의 한글 표기는 1986년 1월 7일에 문교부에서 고시한 ‘개정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된소리와 장음표기를 쓰지 않고, 동일 겹자음일 경우에 앞 자음은 받침으로 표기했다.
- 예) ⓟvipassanā ⇒ 위팟사나
- 음사(音寫)는 산스크리트 또는 팔리어를 한자로 옮길 때, 번역하지 않고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을 말한다.
- 예) 반야(般若, ⓢprajnā ⓟpannā) / 열반(涅槃, ⓢnirvāṇa ⓟnibbāna)
경전 표기법
- 전거에서, 예를 들어 <雜阿含經 제30권 제7경>은 《잡아함경》 제30권의 일곱 번째 경을 가리킨다.
- 《니카야(nikāya)》의 경우, <디가 니카야 22, 大念處經>과 <맛지마 니카야 54, 哺多利經>에서 22와 54는 경 번호이고, <상윳타 니카야 23 : 15, 苦(1)>에서 23은 분류(division) 번호이고, 15는 경 번호이다.
<다음백과사전>
인도의 유식설
불교는 처음부터 유심론적 경향이 강한 사상이지만, 그런 경향이 극에 달하여 유가행파에 의해 정리된 것을 대승불교의 유식설이라고 한다. 이 학설이 성립된 요인의 하나로서 지적되는 것은 요가 체험이다.
〈대비바사론 大毘婆沙論〉 등에 의하면 이미 부파불교시대부터 유가사라고 불리는, 요가를 즐겨 수행하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의 선정 체험, 즉 "모든 사물은 마음이 지어낸 영상에 불과하다"는 체험이 유식설을 낳게 한 근본 원인이었다고 생각 된다. 그밖에 〈화엄경〉에 보이는 삼계유심설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 반야경과 중관파의 공사상을 허무주의적으로 해석하려는 생각을 시정할 헉가 제기되었다는 점, 윤회의 주체를 추구한 끝에 아뢰야식이라는 근본식을 발견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유식설은 인도에서 3~4세기 무렵 미륵에 의해 주창되고 무착과 세친 형제에 의해 체계화되었다. 세친은 〈유식삼십송 唯識三十頌〉에서 30개의 게송으로 이제까지의 사상들을 정리하고, 식전변이라는 새로운 사상을 제시하여 유식의 교의를 한층 더 체계화했다.
그후에는 〈유식삼십송〉의 내용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의견이 대립하여 유가행파는 크게 무상유식파와 유상유식파로 분열되었다. 인도 철학의 인식론에서는 외계에 존재하는 사물의 형상을 마음의 본래 상태와는 관계없이 그대로 인식할 것을 주장하는 무상식론과, 외계의 사물은 마음 속에 생긴 형상에 의해 추량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유상식론이 대립했다. 유가행파의 기본적 입장은 '마음이 마음을 본다'는 것이기 때문에 유상식론에 속한다.
그런데 마음속 형상의 존재성을 둘러싸고 유가행파 안에서도 대립이 일어나, 마음 속의 형상을 비(非)실재요 허위라고 간주하는 무상유식파와 형상은 일방적으로 부정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실재한다고 생각하는 유상유식파로 구분되었다. 무상유식파는 미륵을 시발로 하여 무착·세친·안혜·진제로, 유상유식파는 진나를 시발로 하여 무성·호법·계현으로 이어졌다. 중국의 현장은 인도에 유학하여 계현에게 배움으로써 유상유식파의 맥을 이었다.
유식설이 인도 철학사에 공헌한 업적의 하나는 인명이라고 불리는 논리학을 발전시킨 점이다. 이미 미륵·무착의 시대부터 논리학은 고찰의 한 대상이었는데, 진나가 신(新)인명을 확립하면서부터 불교논리학은 급속도로 발전해갔다. 유상유식파의 사람들은 마음 속의 형상, 특히 언어를 중시하여 언어에 의한 인식이나 판단을 통해 진리에 접근하고자 했는데, 티베트 문헌에서는 이들을 논리추종파라고 호칭하고 있듯이 주로 논리학에 전념했다. 이런 경향은 11세기에 활동했던 즈냐나슈리미트라(Jñānasrῑmitra)나 라트나키르티(Ratnakirti)에 이르기까지 계속된다.
중국의 유식설
개요
유식설은 5세기초에 담무참이 〈보살지지경 菩薩地持經〉을, 구나발마가 〈보살선계경 菩薩善戒經〉을 번역함으로써 중국에 처음 소개되었다. 그러나 무착·세친의 본격적인 유식설은 6세기 이후 다음과 같은 3가지 통로로 전래되어 발전했다.
〈십지경론 十地經論〉에 의한 전개
북위의 선무제(宣武帝) 때인 508년 늑나마제·보리유지·불타선다가 뤄양[洛陽]에 와서 세친의 〈십지경론〉과 무착의 〈섭대승론 攝大乘論〉을 번역했다. 특히 〈십지경론〉에 서술된 아뢰야식설은 당시 중국에는 알려지지 않은 사상이었기 때문에 이 문헌이 소개된 뒤 이에 관한 연구가 급속히 번성했다. 이어 이 문헌을 근거로 삼는 지론종이 성립했다.
지론종은 남도파와 북도파로 분열했는데, 남도파에서는 아뢰야식을 청정무구한 진식으로, 북도파에서는 생멸을 겪으며 오염된 망식으로 간주했다. 북도파는 이내 세력을 잃고 남도파는 육조(六朝)시대부터 수나라 시대까지 번영했으나, 수나라 말기로부터 당(唐)나라 초기에 걸쳐 섭론종 혹은 화엄종에 흡수되었다.
〈섭대승론〉에 의한 전개
진제는 양(梁)나라 무제(武帝)의 초청으로 548년 건업으로 왔다가 중국 내부의 동란으로 각지를 방랑하면서 많은 문헌을 번역했다. 특히 무착의 〈섭대승론〉을 번역함으로써 교리적으로 체계화된 유식설이 중국에 알려지게 되었고, 그결과 〈섭대승론〉을 근간으로 삼는 섭론종이 성립했다.
섭론종 유식설의 특징은 아뢰야식을 청정한 면과 오염된 면이 함께 있는 진망화합식으로 간주하고, 다시 아뢰야식보다 심층에 순수무구한 아마라식이라는 제9식을 세운 점이다. 섭론종은 지론종의 북도파를 흡수함으로써 한때 번영했으나 당나라 시대에 법상종이 흥륭함으로써 급속히 쇠퇴해갔다.
〈성유식론 成唯識論〉에 의한 전개
중국 최대의 유식학파는 현장및 그의 제자 규기가 세운 법상종이다. 현장은 인도로 출발한 지 19년 만인 645년 장안에 귀국한 후, 인도에서 가져온 많은 경전과 논서의 번역사업에 전념하여 입적할 때까지 19년 동안 74부 1,335권에 달하는 번역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의 최대 목적은 스승인 계현을 통해 습득한 유상유식파 계통의 호법의 유식설을 중국에 소개하는 것이었다.
〈성유식론〉의 번역은 이런 목적의 집대성이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이 논서는 세친의 〈유식삼십송〉에 대한 주석가 10명의 해설을 종합하여 바로잡은 것인데, 그중에서도 특히 호법의 해설이 정통설로 선양되어 있다. 규기는 이에 대한 주석서 〈성유식론술기〉와 〈성유식론추요〉를 저술하여 현장이 전한 유식설을 하나의 체계로 정리해냄으로써 법상종의 개창자로 간주된다. 이후 규기의 문하에서 혜소(慧沼)와 지주 등이 맥을 이어 호법의 유식설에 대한 연구를 한층 심화시킴으로써 법상종은 크게 흥륭하게 되었다.
한국의 유식사상
일찍이 원측(圓測:613~696)을 비롯한 신라인들은 유식학을 종지로 삼는 법상종의 성립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삼국의 통일 이전에 유식학자들은 주로 중국에서 더 많은 활동을 펼쳤고, 통일 이후에는 신라에서도 유식학의 연구가 매우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유식학자로는 원측·도증(道證)·승장(勝莊)·신방(神昉)·경흥(憬興)·대현(大賢)·도륜(道倫)·영인(靈因)·행달(行達)·순경(順璟)·현일(玄一)·오진(悟眞) 등을 들 수 있다.
원측은 당나라에 유학하여 현장이 인도에서 전래한 호법 계통의 유상유식을 연구했으며, 안혜 계통의 무상유식설을 비롯한 불교학 전반을 두루 섭렵했고, 현장과 규기가 법상종을 일으킬 무렵에는 이미 독자적인 불교관이 확립되어 있었다.
당시 법상종은 규기의 자은학파(慈恩學派)와 원측의 서명학파(西明學派)로 양분되어 유식학에 관한 논쟁이 치열했다. 두 학파는 교상판석(敎相判釋)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갖고 있었다. 규기는 호법의 3시교판(三時敎判)을 그대로 따랐는데,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아함경 阿含經〉·〈반야경 般若經〉·〈해심밀경 解深密經〉으로 대표되는 세시기로 나누고, 이중 〈해심밀경〉은 가장 심오한 단계의 가르침으로 설정하는 교상판석을 말한다.
이에 대해 원측은 보다 회통적(會通的)인 관점에서 〈반야경〉의 가르침도 궁극적으로는 〈해심밀경〉의 삼무성설(三無性說) 등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았다.
또한 유식학의 핵심인 심분설(心分說)에 있어서도 원측은 규기와 견해를 달리했다. 규기는 호법의 사분설(四分說)을 전적으로 따른 반면, 원측은 안혜의 일분설(一分說), 진나의 삼분설(三分說) 등도 궁극적으로는 호법의 사분설과 위배되지 않는다고 함으로써 회통적 입장을 견지했다.
규기의 자은학파는 불성론(佛性論)에 있어서도 모든 중생은 전생의 업에 따라 선천적으로 규정된 근기(根機)를 지니고 있다고 보고, 중생을 정성보살(定性菩薩)·정성연각(定性緣覺)·정성성문(定性聲聞)·부정종성(不定種性)·무종성(無種性) 등의 5가지 범주로 나누었다. 이 가운데 무종성·정성연각·정성성문은 영원히 성불(成佛)할 수 없다고 하는 오성각별설(五性各別說)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원측은, 〈해심밀경〉·〈능가경 楞伽經〉 등의 오성각별에 관한 교설이 하나의 방편으로 설해진 것이며, 이들이 결정적으로 영원히 성불할 수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니라고 함으로써 유식사상을 〈화엄경 華嚴經〉·〈법화경 法華經〉 등의 일승사상(一乘思想)과 조화시켰다.
이와 같은 원측의 유식학은 모든 이론들을 타파하면서 동시에 살려내는 당시 신라 불교의 화쟁적(和諍的) 학풍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도증은 원측의 제자로서 〈성유식론요집 成唯識論要集〉·〈성유식론강요 成唯識論綱要〉·〈섭대승론세친석론소 攝大乘論世親釋論疏〉·〈변중변론소 辯中邊論疏〉·〈대인명론소 大因明論疏〉 등 13종의 저서목록이 전한다.
그의 저술은 모두 산실되어 현존하지 않으나, 규기의 제자인 혜소가 지은 〈성유식론요의등 成唯識論了義燈〉과 일본의 유식학자인 선주(善珠)의 〈유식요의등증명기 唯識了義燈增明記〉 등의 문헌들에 인용되어 있어 그의 유식사상을 엿볼 수 있다. 승장은 처음에는 현장의 문하에 입문했다가 후에 원측의 제자가 되었다고 하는데, 〈성유식론결 成唯識論決〉·〈대인명론술기 大因明論述記〉 등 7종의 저서목록이 전하며, 이중 현존하는 것은 〈범망경보살계본술기 梵網經菩薩戒本述記〉 4권뿐이다.
신방은 현장의 수제자 4명 중 한 사람으로 대승방(大乘昉)으로도 불린다. 저서에는 〈성유식론요집 成唯識論要集〉·〈현유식론집기 顯唯識論集記〉·〈십륜경소 十輪經疏〉 등이 있었으나 현존하지 않고, 그가 현장과 함께 번역한 〈대승대집지장십륜경 大乘大集地藏十輪經〉의 서문만이 전한다. 순경은 인명학(因明學)의 대가로 중국에 널리 이름을 떨쳤다고 한다. 그는 중국에 가지 못했으나 신라에서 현장의 유식비량(唯識比量)을 보고는 상위결정(相違決定)의 오류가 있다고 지적하고 이에 능위(能違)의 비량(比量)을 만들어서, 이를 당으로 가는 사신편에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그때 이미 현장이 입적(入寂)한 지 2년 뒤의 일이였으므로 규기가 대신 받아보고는 매우 감탄했다고 전한다. 그는 신라에서 많은 저술활동을 했다고 하나, 〈성유식론요간 成唯識論料簡〉·〈인명입정리론초 因明入正理論抄〉 등의 저술목록만 전하고 있다.
경흥은 신문왕대에 국사(國師)를 지냈다고 하며, 대현과 함께 신라 유식가(唯識家)의 초조(初祖)로 일컬어졌다.
그는 원효 다음으로 많은 저술을 남겼으나, 40부 250여 권에 달하는 그의 저서 가운데 현존하는 것은 〈무량수경연의술문찬 無量壽經連義述文贊〉·〈삼미륵경소 三彌勒經疏〉·〈금광명최승왕경약찬 金光明最勝王經略贊〉 등이다. 그의 저술목록을 보면, 〈성유식론폄량 成唯識論貶量〉·〈유가론석론기 瑜伽論釋論記〉·〈인명론의초 因明論義鈔〉 등 많은 유식학 관계 저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현은 경덕왕대의 사람으로 〈삼국유사 三國遺事〉에서는 그를 유가조(瑜伽祖) 대덕(大德)이라고 했으며, 유식학과 인명학에 통달하여 국내외 학자들이 그의 가르침을 따랐다고 전한다.
그는 도증에게 유식학을 배웠다고 전하며, 52부 120여 권에 달하는 많은 저술을 남겨 원효·경흥과 함께 신라의 3대 저술가로 꼽힌다. 그의 저서 역시 대부분 산실되고 현존하는 것은 〈성유식론고적기 成唯識論古迹記〉·〈범망경고적기 梵網經古迹記〉·〈기신론내의약탐기 起信論內義略探記〉·〈약사본원경고적기 藥師本願經古迹記〉 등이다.
〈성유식론고적기〉는 현장이 번역한 〈성유식론〉에 대한 주석서로 대승·소승의 경전들을 비롯하여 유명한 유식학자들의 이견(異見)을 인용하고 그 차이를 논한 것이 특징적이다. 대현은 중국의 혜소·지주 등이 원측의 학설을 무조건 배척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원측과 도증, 현장과 규기 등의 이론들을 서로 비교·검토하면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비판적 관점에서 그의 유식사상을 펴나갔다.
도륜은 그의 〈유가론기 瑜伽論記〉에 '해동흥륜사사문도륜집찬'(海東興輪寺沙門道倫集撰)이라고 기록된 것을 통해서 신라의 승려임을 알 수 있을 뿐 그밖의 자세한 행적은 전하지 않는다.
24권으로 구성된 〈유가론기〉는 미륵의 〈유가사지론 瑜伽師地論〉 100권에 대한 방대한 연구서로서 드물게 남아 있는 신라 유식학 관계문헌이다. 특히 여기에는 원측·원효·도증·혜경(慧景)·행달·영인·현범(玄範)·신방·현일 등 저술들이 별로 남아 있지 않은 신라 유식학자들의 학설을 많이 소개하고 있어 주목된다. 한국의 유식사상은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 전성기를 이루었으며, 고려시대 이후에는 선종(禪宗)이나 화엄종(華嚴宗)에 비해 교리적인 연구는 활발하지 못했다.
통융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kds11002/13480598 에서 복사한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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