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부(凡夫)때나 부처 때나 변하지 않는 것
불ㆍ보살이나 조사ㆍ나한네들은 무위법(無爲法)의 열반(涅槃) 세계에서 생사를 초월했다 하고 범부중생들은
생사윤회(生死輪廻)의 세계라고 우리는 분별하지만,
이렇게 생각이 남아 있고 얻은 게 있다는 한, 생사다 열반(涅槃)
이다 하는 것이 모두 번뇌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나고 죽고 하는 이거나 생사를 초월한 그거나
다 같은 것인데, 그러면 그렇게 꼭 같다고만 결정할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간ㆍ천당ㆍ지옥ㆍ축생으로 돌아다니는 그 가운데서도 뭐가 하나 안 죽는 게 있습니다.
몸뚱이는 천당ㆍ지옥 축생이 되고 남자ㆍ여자가 됐다, 부자도
가난살이도 온갖 것으로 바뀌지만 그래도 하나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중생의 몸으로 탐ㆍ진ㆍ치(貪瞋痴)로 남과 멱살 잡고
피투성이 되어 세계전쟁을 일으킨 그 사람이나 성불한
사람이나 달라지지 않는 그게 대체 뭐냐.
석가여래가 깨쳤다고 하지만 실달 태자 때와 달라진 거 하나도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실달 태자가 왕자로 있을 때나 생사가
무서워 처자ㆍ권속ㆍ국가민족도 다 바리고 저 혼자만 살려고 성을 넘어 야반도주(夜半逃走)한 그때나, 또 마음을 깨쳐 생사를 완전히 초월한 때나 내내 그겁니다. 인생이 허망하다고 버리고 간
그 마음이나, 나중에 깨치고 나서 보니 내내 깨치려고 도망가던
그 마음이었습니다. 그 때는 육체를 나라고 믿었기에 육체 죽는 것을 겁내어 생사를 초월해야겠다고 했지만, 깨치고 보니 죽음이
싫다고 가던 그 마음이나 깨치고 안 그 마음이나 하나도 달라진 게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만이 나 혼자만 깨쳤다고 설명할 수 있는 그런
특별한 법은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태자로 있을 그때 내가, 사람은 누구나 죽는 것인데 이것이 급한 문제라고 하여 도망을
가서 야수다라도 자식도 국가민족 다 버리고 세상이 허망하니
도망가자고 결심하던 내내 그 마음이 꿈 깨고 보니 그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가 되고도 그 면목(面目)은 안 바뀌었으므로 성불해도 실달타 그대로입니다.
그러니 다만 없어졌다면 육체를 <나>라고 하던 착각만 없어진 것입니다. 깨치기 전에는 육체를 나라고 착각했을 뿐이지
이 마음자리가 조금도 달라진 건 아닙니다.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알고 다리 아프면 쉴 줄 아는 거 그 마음자리는 똑같습니다.
뱃속에서부터 이 마음이 나인 줄 알았으면 장가 들여도 마누라하고 안 자면 그만이고 그렇게 할 수 있었지만 그땐 몸뚱이만 나라고
생각하던 범부이다 보니 마음이 <나>인 줄을 몰랐던 것입니다.
어떤 마음이 <나>인지 늘 밥 먹고 생각하는 이걸 가지고 마음이라 했으니 하루에도 천 가지 만 가지 생각이 죽 끓듯이 끓는 그 가운데 어떤 마음이 진짜 마음인지 그것을 모르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마음을 깨치고 보니 온갖 망상을 내고 죄짓던 그 마음
그대로여서 부처가 됐다 해도 다른 사람보다 다른 걸 깨친 게
아닙니다. 실달타 태자 때는 없던 것을 새로 깨친 것이 아니고
다만 육체를 나라고 했기 때문에 세상이 참 복잡했던 것뿐입니다. 부처님께서 어떤 법을 깨쳐서 범부 때 모르던 것을 새로 깨친 것도 아니고 동시에 새로 얻은 법이라 해서 나만이 설명할 수 있는 법이 하나도 없습니다.
금강경대좌 - 청담스님
[출처] 범부(凡夫)때나 부처 때나 변하지 않는 것/금강경대좌 - 청담스님|작성자 곡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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