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공간

영화를 통한 깨달음-이 세상 자체도 뇌가 꾸는 꿈이다.

수선님 2019. 10. 6. 11:46

영화를 통한 깨달음-심지어 이 세상 자체도 뇌가 꾸는 꿈이다

-가장 강력한 세뇌, 이 세상이 현실이라고 믿는 착각

가장 강력하고도 믿기 어려운, 그리고 깨어나기 거의 불가능한

인셉션이 있다. 그것은 이 세상 자체다. 우리가 현실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3차원의 시공, 나의 육체, 이 지구, 이 우주 전체가 우리에게 주입된 인셉션이다. 이 세상이 현실이라는 거대한 인셉션이

우리에게 작동하고 있다. 그 인셉션은 너무나 강하고 깊어서,

진정한 실체가 아닌데 진정한 실체로 믿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우리가 경험하는 또는 알고 있는 모든 세계는 사실은

진정한 현실이 아니고 꿈이다. 비현실이다. 그러나 너무나 심오한 인셉션이 되어 있는 우리는, 꿈이 벌써 현실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당연히 이 세상이 현실이라고 믿고 산다. 아니, 믿기 이전에 이미 선험적으로 준비된 기정사실이다. 이 세상이 현실이라는 관념은 가장 탄탄한 기반을 가진 인셉션이다. 가장 인정하기 어렵고 가장 깨어나기도 어렵다. 그러나 이제는 흔들어야 한다.

너무 견고해서 도무지 흔들릴 것 같지 않는 존재의 기반을 뿌리째 뒤흔들어 뽑아 올려야 한다. '이 세상은 결코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전한 사람들은 성공했다. 트루먼 버뱅크도 성공했고,

링컨6-에코와 조던2-델타도 성공했다. 라우라 포트만도 성공했다. 네오도 성공했다. 당신도 할 수 있다.

영화 아일랜드에서 클론들은 인큐베이터 단계에서, 컴퓨터를

통한 사전 인셉션이 실시된다. 그들은 인셉션 받은 대로 살아간다. 나는 특별한 존재고 아일랜드를 가야 한다. 그러나 사실 클론은

가짜 인생이고, 진짜를 위한 소모품이다. 레아로 가는 우주선 속에서 냉동인간들의 뇌에는 레아라는 행성이 인셉션된다. 가짜 현실이 실제인 것처럼 뇌에 입력된다. 뇌는 꿈을 꾸지만 꿈속의 사람들은 그것을 현실이라고 믿는다.

발생초기부터 반복적으로 인셉션된 생각은 그 사람의 일생을

지배하게 된다. 우리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어떠한 인셉션을 받고 나오는가? 가장 초보적이면서도 근본적인 인셉션은 시공에 관한 것이다. 누군가 선험적으로 우리의 뇌에 시간과 공간에 대한 프로그램을 입력시켜 놓았다.

사람은 태어나기도 전에, 시간과 공간은 실존하는 것이라는

인셉션을 받고 태어난다. 그래서 인간과 자연 만물을 당연히 존재하는 현실로 받아들인다. 땅을 딛고 있으면서 땅이 진짜 있는지를 의심할 수 없듯이, 시공 속에 살면서 시공의 존재들을 의심할 수는 없다. 즉 인간이 태어난다는 것은 시공의 꿈속으로 걸어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원초적인 존재성이 무엇인지를 망각해버린다.

그런데, 최근 물리학의 선두주자들은 시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초끈과 막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물질계를

지탱하는 가장 밑바닥에 도달했는데, 그곳에는 시간도 없고 공간도 없었다. 실제하는 모든 것을 떠받치는 가장 밑바닥에는 가장 견고한 어떤 것이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아무 것도 없었다. 진정한 이 세상의 모습은 시간과 공간 이전의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인간은 시공이 없이는 사유조차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초기부터 인셉션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공의

렌즈가 없는 상태에서 드러나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은 알 길이 없다. 사실은, 알 길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데도 기억을 상실한 것이다. 너무 깊은 잠에 빠져든 덕분이다.

-인간의 두뇌가 작동하는 방식, 시뮬레이션 홀로그램

원래 홀로그램은 파동하는 빛의 간섭현상을 이용하여 만든 필름에 빛을 비추었을 때 나타나는 3차원 영상이다. 이 필름의 놀라운 점은 보통의 사진 필름과 달리 모든 조각들마다 필름 전체에 기록된 정보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필름은 그것을

무수히 잘라도 그 속에 각기 전체상이 있어서 자르지 않은 원판과 똑같은 입체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1960년대 뇌신경생리학자였던 프리브램은 뇌의 기억에 관해

연구하던 중, 인간의 두뇌가 작용하는 방식이 홀로그램 방식과

동일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인간의 두뇌는 표면상으로는

기억을 담당하는 파트, 감각을 담당하는 파트, 연상을 담당하는

파트 등이 구역별로 나뉘어져 있다. 그러나 프리브램에 의하면,

보다 깊은 양자 수준으로 내려가면 뇌의 작용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기억, 인식, 연상 등의 기능은 뇌의 일부분에 부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뇌의 모든 기능이 뇌의 모든 부분에 전체적으로 존재한다. 뇌의 어떤 부분을 뗴어서 보더라도 전체의 정보를 담고 있다.

프리브램의 연구결과를 따르면, 뇌가 그와 같이 작동할 수 있는 이유는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이 보통의 상식과는 다르게 매우 독특하기 때문이다. 뇌는 모든 사물이 가진 파동주파수를 수학적인 방법으로 해석한다. 이 말을 쉽게 풀이한다면, TV나 전화기를 예로 들 수 있다. TV나 전화기는 파동으로 신호를 전달한다.

TV수신기는 그 파동을 해석하여 영상과 음성을 재현해낸다.

우리의 뇌는 파동의 주파수를 수학적인 방법으로 해석함으로써

객관적 현실을 지어낸다. 즉 우리의 뇌는 홀로그램을 창조하는

능력이 있다.

우주는 파동으로 가득 차 있다. 그 파동에는 정보가 담겨 있다.

그 정보에는 시간과 공간, 물질과 인간이 다 들어있따. 우리의 뇌는 그 우주의 파동을 해석하여 인간의 오감이 인식 가능한 홀로그램을 만들어낸다. 우리의 두뇌는 홀로그램 필름과 같은 간섭무늬를 이 세계를 이루고 있는 막대기와 돌과 기타 친숙한 대상들로 변환시켜놓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뇌는 심지어 실재하지 않는 대상이라 할지라도 정보를

입력하면 그것의 시뮬레이션 홀로그램을 만들어낸다.

용은 실재하는 동물이 아니다. 그런데 용에 대한 정보가 사람들의 뇌 속에 반복적으로 인셉션 된 결과, 실제로 용을 보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천국이나 극락은 실재하는 곳일까? 신앙인들은 천국과 극락을

체험하고 온다. 그런데 그들의 경험담은 정확히 100% 일치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것은 무의식 속에 입력된 정보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두뇌는 자기에게 인셉션되어 있는 정보를 따라 홀로그램 천국과 극락을 창조한다.

우주 외계인들이 UFO를 타고 지구를 방문하고, 지구를 침공하고, 또는 지구에 문명을 전해주기도 했다는 믿음은 이제 종교적인 수준으로 성장하였다. 외계인을 만나고 오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체험담을 적은 책들도 부지기수다. 인간의 뇌는 잘못되었거나 조작된 정보라 할지라도 그것을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어느새

그 정보가 요구하는 홀로그램 현실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더 깊은 심층에 인셉션이 되면 홀로그램의 생동감도 더욱 증폭된다.

뇌는 생각하는 것과 존재하는 것을 구별하지 못한다. 사유가 곧 존재가 된다. 생각하는 대로 존재가 만들어진다. 뇌의 그러한 특성을 활용하여 히트한 것이 '시크릿'이다. 적극적 사고방식, 긍정의 힘 등도 그러한 부류에 속한다. 시크릿은 결국 뇌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원하는 것을 인셉션할 수 있는가를 가르치는 것이다. 참인가

거짓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뇌에 원하는 아이디어를 심기만 하면 된다. 뇌의 시뮬레이션 능력, 즉 홀로그램 환상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영화의 소재로도 자주 사용된다. 영화 [카르고], [매트릭스],

[아일랜드], [트루먼 쇼]등이 대표적이다.

차가운 인큐베이터 속에 누워있는 사람의 뇌에 신경유닛을 연결해 아름다운 파라다이스 '레아' 의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인간을 배양하는 인규베이터 속에 잠들어 있는 인간의 뇌에 매트릭스라는 프로그램을 입력한다. 뇌는 입력된 프로그램대로 1999년의 가상현실을 만들어낸다. 그와 동일한 방식으로, 이 시대 우리 인간들의 뇌에는 우주가 인셉션되어 있다. 어떤 영화보다도 스케일이 큰 영화가

지금 뇌 속에서 상영되고 있는 것이다.

우주물리학자들이 새롭게 발견해나가는 모든 과학적 지식은 사실은 이미 우리들 속에 저장되어 있는 정보들이다. 우주과학은 다시 말하면 두뇌생리학이며 심리학이다. 인간의 의식 저편에 숨어있는 깊은 무의식에 무엇이 있는지를 남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주는 이미 사람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 정보는 인간의 의식이 해독하기에는 너무나 난해한 코드와

암호로 저장되어 있다. 그러나 깊은 차원의 무의식에서는 일상적인 언어다. 그것은 이미 인간 사유를 떠받치는 바탕이 되어 있다.

인간 의식은 아주 높은 빌딩의 꼭대기 층이다. 이 빌딩이 얼마나

높은 건물인지는 알 수 가 없다. 아래로 내려다보아도 무의식의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니까. 그 바닥이 사실은 아무것도 받침이 없는 허공이라는 생각은 도저히 못 하는 것이다. 허공 위에 이렇게 높은 건물이 서 있을리 없으니까. 그래서 인간 의식은 이 세상이

당연히 현실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 세상은 꿈의 허공이다.

그래서 공(公)이고 무(無)이고 Nothing이다.

-장자의 호접몽

장자의 호접몽은 유명하다.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꽃들 사이를

왕래 하던 장자는 꿈에서 깨어난 후 고민에 빠진다. 내가 나비 꿈을 꾼 것인가? 나비가 나를 꿈꾸고 있는 것인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누군가가 꾸고 있는 꿈속 현실일수도 있다는 자각이다.

당신은 꿈을 꾸고 있다. 당신이 살아가는 현실은 징정한 현실이 아니다. 당싱은 단지 꿈속에서 살고 있다. 먹지 않으면 배고프고, 마시지 않으면 갈증을 일으키는 당신의 육체, 너무도 생생하게

오감의 감각이 느껴지는 당신의 몸도 꿈속의 일부일 뿐이다.

당신이 지금까지 태어나고 살아온 과정이 모두 꿈이다.

당신을 몸담아온 가정, 학교, 사회가 모두 꿈이다. 지구와 태양계와 은하계, 온 우주가 꿈이다. 온 우주에 편만한 보편적인 우주정신, 혹은 우주를 창조한 신, 그들도 또한 꿈이다.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이 꿈이다. 신과 우주, 인간은 꿈속에서 만들어진 거대한

가상시나리오의 등장인물일 뿐이다. 이 꿈의 배후에 있는 진정한 현실이 무엇인지 인류는 아직 모르고 있다. 꿈을 꾸는 주체의 진정한 모습은 숨겨져 있다. 꿈을 깨기 전에는 현실을 알지 못한다.

꿈속에서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렴계의 태극도설

중국의 주렴계는 태극도설을 통해 만물이 생겨난 근원이 무엇인지를 밝혀놓았다. 그가 밝힌 만물의 근원은 무극이다. 무극은 0로 표시되는데, 원이요 공이며 무이다. 아무것도 없음의 상태인 무극에서 모든 만물이 생겨났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곧 존재하는 모든 만물은 무극의 꿈속에 있음이다. 제로(0)은 그 속에 무한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 제로가 바로 무극이며, 무극은 비존재이지만 무한한 존재를 포함하고 있다. 무극이 존재를 포함하고 있는 방식이 바로 꿈이다. 꿈은 홀로그램과도 같아서, 실제이지만 실제가

아니다. 그 속에는 수많은 것들이 존재하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허허공공일 뿐이다. 꿈은 꿈속에서는 리얼한

현실이지만 꿈밖에서는 아무것도 실제가 없다.

-붓다의 사형수의 비유

어떤 사형수가 있었다. 코끼리가 그 사형을 담당했는데 운이

좋게 도망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을 알아차린 코끼리는 그 사형수를 죽이려고 뒤를 바싹 좇았다. 달음질밖에는 살 방법이 없었던 사형수는 마침 우물을 발견했다. 그 우물에는 천우신조였던지

옆 나무에서 칡넝쿨이 밑으로 드리워져 있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넝쿨을 잡고 밑으로 내려갔다. 내려가 보니 우물 벽의 돌 사이로 독사들이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안 되겠다 싶어 밑바닥으로 내려가니 밑에서는 악어들이 사형수가 내려오는 것을 기다리면서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진퇴양난의 절대 절명의 위기였다.

다시 위로 올라가 볼까 하고 위를 쳐다보니, 이번에는 쥐 두마리가 나뭇가지에 앉아 그가 타고 내려온 넝쿨을 갉아먹고 있었다.

아아! 이제 어디로 가야하고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세상에 더 이상의 위기 상황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 때

마침 나뭇가지에 있던 벌집에서 꿀이 한두 방울 떨어지면서 사형수의 입으로 흘러들어갔다. 순간 사형수는 그 단맛에 현혹되어 자기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완전히 망각해 버리고 도취된 상태로 남아 있었다. (한국종교이야기 p233. 최준식 지음. 한울 출판)

사형수는 현실을 망각하는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다.

현실의 절박한 위기감이 사라지는 몽환의 꿈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우리의 현실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가 현실에 눈 뜬다면 우리야말로 절대 절명의 위기에 직면한 사형수이다. 코끼리, 뱀, 악어, 쥐는 지금도 어둠 속에서 나를 노리고 있다. 그들은 나를 꿈에서 깨워 비극의 현실로 잡아채가는 것이 목적이다. 그들은 쉬지 않고 나를 옥죄며 나를 죽음의 환경으로 몰아가고 있는데도, 나는 아무런

위협도 느끼지 못한 채 무방비로 그들에게 노출되어 있다.

목숨이 경각에 달한 상황에서 잠을 자고 있는 것이 인간이다.

어떠면 그것밖에 피할 길이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그토록 나약하다. 대항할 힘이 없는 상황에서의 최선은 망각인 셈이다.

인류는 회피하고 싶은 극단적인 비극을 잊어버리기 위해 일부러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 꿈은 인간의 선택이다.

-불교의 무아론 - 나는 없다

우리는 통상 '나'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나'라고 주장할 수 있는 개체가 있다고 믿는다. 어린아이 적에도 '나'였고, 청년이 되어서도 '나'이고, 어른이 되어서도 '나'이다. 겉모습이나 생각이나 환경이

무척 많이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동일하게 인식된다. 그것은 왜인가? 현상적인 모습은 변할지라도 그 뒤에 변하지 않고 유지되는 실체가 따로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것을 흔히 '자아'라고 한다. 이 자아를 중심에 두고 먹고 마시고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는 등의 인간 활동이 펼쳐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이러한 자아개념이 환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일축한다. 각 사람은 오온[五蘊]이라고 하는 다섯 가지 요소에

의해 움직일 뿐, 이 다섯 가지 요소 너머에 혹은 그 근처에 '나'라고 여길만한 어떤 변하지 않는 실체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 다섯 가지 요소는 몸을 구성하는 물질[色], 감각하는 기관[受], 지각하는 기관[想], 의지적 행동의 주관처[行], 총체적 의식[識]이다.

인간이 행하는 모든 것은 이 다섯 가지의 상호작용으로 일어나는 것이며, 그 중앙에 '자아'라는 주재자가 있어서 이들을 통괄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꿈속에서는 진정한 '나'는 없는 것이다.

꿈을 꺄야만 진정한 '나'를 보는 것이다.

신경생리학자들은 인간이 마음이라고 여기는 것이 사실은 두뇌의 전자신호라는 것을 알아냈다. 실제로 사람에게는 자아라는 어떤

실체, '나'라는 어떤 장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할 뿐이다. 왜냐하면 꿈이기 때문이다. 꿈은 환영이기 때문에, 실체가 없다. 가장 생생하게 실체의 흉내를 내는 것이면 족하다.

내가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다면, 이 세상도 환상인 것이며,

모든 만물이 공일 수밖에 없다. 즉 꿈속이다.

-중관불교 - 모든 것은 공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 말은 많은 사람의 인구에 회자되는 반야심경의 요절이다. 이 말이 표현하는 것은 한마디로 '이 세상은 꿈이다'라는 것이다. 색은 꿈속에서 존재하는 만물을 가리킨다.

그러나 꿈속이기 때문에 사실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공이다. 꿈속은 아무것도 실제가 없는 공의 상태이지만, 그 속에는 온갖 것들이 현실이 되어 존재하고 있다. 꿈은 이러한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물리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그러므로 늘어나거나 줄어들거나, 깨끗하거나 더럽거나, 생겨나거나 소멸하거나

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엄연한 물리적 현실이지만, 그러나 꿈속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늘어나는 것도 줄어드는 것도 없으며, 깨끗하거나 더러운 것도 없으며, 생기는 것도 소멸하는 것도 없다. 어디까지나 가상현실일 뿐이다. 반야심경은 그러므로 꿈에서 벗어나 현실계로 넘어가자고 노래한다. 아제아제 파라아제 파라승아제. 현실계에는 관자재보살이 현존하고 있다. 그곳으로 건너가자.

그러나 안타깝게도 관자재보살이 머물고 있는 그 현실조차도 또 하나의 꿈이다. 하나의 꿈을 깨고 나면 또 하나의 꿈이 기다린다. 꿈이 꿈을 낳고, 꿈속에서 또 꿈을 꾼다. 그래서 차원이 있고, 단계가 있고, 층차가 생기는 것이다. 인자한 관세음보살이 나타났을 때 덥석 물어서는 안 된다. 그도 또한 꿈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붓다가 나타난다 하여도 안심해서는 안 된다. 그도 또한 꿈속의 일부이다. 이 세상의 꿈은 차원중첩의 구조로 되어 있어서, 인간의 능력으로는 벗어날 도리가 없다.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부터가 현실인지 사람으로서는 구별이 불가능하다. 정확한 판단은 하늘밖 궁극적

현실에서 일깨워 주었을 때만 가능하다.

-성서 히브리서 - 참과 그림자

히브리서에는 하늘에 있는 참된 것과 땅에 있는 그림자를 확연히 구분 짓는다. 아론 계열의 제사장들은 땅에 있는 모형과 그림자를 섬기지만, 멜기세덱 계열의 제사장은 원래부터 하늘에 있던 참된 것을 섬긴다.

그림자를 섬기는 제사는 아무리 열심히 드려도 결국은 무효다.

아무런 인정을 받지 못한다. 그림자는 허상이요, 허상을 섬기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꿈속에서는 아무리 배불리

먹고, 아무리 맛있는 음료를 마셨어도 깨고 나면 헛것이다.

그런데 아론 제사장들이 섬기던 장막이 무엇인가? 출애굽시에

여호와를 통해 직접 계시를 받아 만들었던 성물 중의 성물이다.

그 장막에는 여호와가 창조한 온 세상이 함축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그 장막은 하늘에 있는 참성전의 모형이다. 여호와가 자유로이 드나들고, 상주하는 거룩한 공간이었다. 그러한 장막인데도 불구하고, 그림자는 그림자일 뿐이라고 단언하는 것이다. 왜일까?

히브리서에 담긴 함의는 이것이다. 피조된 세계는 그림자에 불과하다. 그림자는 꿈의 세계이며, 그림자 이전의 현실세계가 따로

있다. 현실의 세계에서 드리는 제사라야 인정받을 수 있다.

그곳은 하늘보다 높은 곳에 있다. 그곳은 예수만이 오를 수 있다. 인자 예수의 자격을 갖춘 자가 아니면 누구도 그곳에 도달할 수

없다.

그러나 그곳도 알고 보면 상대적인 현실일 뿐, 진정한 현실은

아니다. 아래 수준에서는 위에 있는 하늘이 현실로 보이지만,

막상 그곳에 도달하면 여전히 또 한겹의 꿈일 뿐이다.

예수도 꿈의 한 층간에 있고, 여호와도 꿈의 한 계단을 차지하고 있다. 이 세상이 형성하고 있는 꿈의 단계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신들조차도 꿈의 일부에 포함될 만큼 이 세상 꿈의 구조는 광대하다.

-우주, 컴퓨터 시뮬레이션

영화 매트릭스를 태동시킨 사상은 에드워드 프레드킨(Edward Fredkin)과 직결되어 있다. 프레드킨의 생각은 이런 것이다.

우주를 운행시키는 컴퓨터가 따로 있고, 우리가 인식하는 우주는 그 컴퓨터 속에서 조작되는 어떤 프로그램의 시뮬레이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우주는 초강력 컴퓨터 속에서 실행되고 있는 가상현실인 것이다. 이는 마치 <스타트랙>에 나오는 우주선 엔터프라이즈에 나오는 영상 무대와 같다. 그 영상 무대 위의 모든 행동은 우주선의 다른 쪽에 있는 컴퓨터에 의하여 만들어진다.

우리 우주를 운행시키는 컴퓨터는 '어딘가 다른 곳에' 있다고

프레드킨은 말한다.

모의 비행을 할 수 있는 강력한 컴퓨터를 예로 들어보자.

매우 사실적인 경치와 실제로 하늘은 나는 비행기, 우리는 그 장치 안에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날아간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컴퓨터 자체는 아무 곳에도 간 적이 없다.

프레드킨은 말한다. "온 나라 또는 전 세계를 날아다니면서 창밖을 내다보고, 그 컴퓨터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 나설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어딘가 '다른 곳'에 있으므로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 우주에 관한 프로그램을 돌리는 컴퓨터는 우리 우주 안에는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그 기계 안에서 돌아가는 정보 처리 과정입니다. 그 기계는 우리의 세계에는 없습니다".

[우주, 또 하나의 컴퓨터 / 톰 지그프리트 지음, 고중숙 옮김 / 김영사]에서.

-우주는 홀로그램이다

1960년대 양자 물리학자였던 데이비드 붐과 신경 생리학자였던 칼프리브램은 서로 다른 분야에서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다.

즉 우주는 홀로그램이라는 사실이었다. 당시에는 실재에 대한 너무나 새롭고 대담한 해석이었기 때문에, 우주론의 주류로 부상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홀로그램 모델은 현대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텔레파시, 염력, 임사체험, 우주와의 일체감 등의 일상적인

범주 밖의 정신현상을 설명하는 데 매우 요효했기 때문에, 주로

정신세계를 연구하는 사람들에 의해 애용되어 왔다. [홀로그램 우주, 마이클 텔보트 지음, 이균형 옮김. 정신세계사 출판]

우주에는 두 차원의 질서가 존재하는데, 우리의 존재차원을 드러난(펼쳐진) 질서로 하고, 실재의 더 깊은 속에 감추어진(접힌) 질서라고 한다. 접힌 질서는 프레드킨의 감추어진 컴퓨터와 같은 개념이고, 펼쳐진 질서는 컴퓨터의 시뮬레이션 화면과 같다.

20세기 들어, 양자물리학을 뛰어넘는 초끈 물리학이 각광을 받게 되었고, 초끈 물리학은 홀로그램 우주론을 다시 수면위로 부각시켰다. 후안 말다세나 교수는 새로운 형태의 홀로그램 우주론을 유도하여 물리학계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는 4차원 물리학과 5차원 물리학이 동일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4차원은 5차원의 홀로그램이다. 그런데 그 둘이 물리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은, 우리의 우주가 5차원의 거울이며, 5차원의 시뮬레이션이 맞다는 결론이 된다. 다른 말로 바꾸면, 4차원을 살아가는

우리는 5차원에서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홀로그램 우주론은

제 3의 물리학 혁명을 선도할 유일한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천국(극락)은 꿈속에서 꾸는 꿈이다

영화 [인셉션]을 보았는가? 그곳에는 꿈속에서 꿈을 꾸고 그 속에서 또 꿈을 꾼다. 우리 삶도 그와 같다. 천국이나 극락에 대한 환상을 가지는 것은 꿈속에서 꿈을 꾸는 것이다. 그것은 현실로 깨어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어지는 꿈의 연속일 뿐이다. 그러므로 꿈에서 꿈으로 파고들지 말고 현실로 깨어나야 한다.

[출처] 지구에 놀러온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