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구보리 하화중생
下化衆生:중생을 교화하여 제도한다.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거리를 걸으면서 사람들한테 늘 이렇게 말했다
"너자신을 알라"어느날 한제자가 물었다.
"그러시는 선생님은 당신 자신에 대해 아십니까?"
소크라테스가 대답했다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나는 바로 '내가 모른다'는 것을 잘알고 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가르침이며 부처님의 가르침도 여기서 시작된다.
6년동안 고행하신 부처님이 어느날 아침 보리수 나무아래서
동쪽 하늘에 떠오르는 별을 보고
홀연히 깨달았다.
그의 존재가 무한대의 시공간에 놓여 있다는 것을..
우주와 자신이 하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삶도 죽음도 결국 따로 없다는것을,
오고 가는 그 무엇도 없다는 것을 인식했다.
모든 중생들이 世世生生 거듭하는 삶과 죽음 이라는
덫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워진 것이며,
바른 삶으로 나아갈수 있는 길을 얻은 것이다.
우리는 이를 열반(涅槃)이라고 부른다.
부처님은 그 깨달음의 경험을 혼자만 간직하려 하지 않고,
무한한 열락의 자리인 보리수 나무를 박차고 나와
고통의 현장인 속세로 나오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大慈大悲心"이다.위대한 사랑인 것이다.
이 거룩한 깨달음의 사랑이 바로 불교의 시작이다.
불교의 목적은 "깨달음을 얻고,모든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다"
(상구보리.하화중생) 그러나 이두가지는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깨닫고 가르치는것은 수레의 양쪽 바퀴와도 같은 것이다.
한쪽이 고장나면,앞으로 나아갈수가 없다.
예를들어 당신이 깨달음을 얻는다 하면서
사람들과의 삶을 소홀히 한다면 진리로 향하는 길은
더욱 요원 해지게 된다.
한편 깨달음을 얻기위한 피나는 수행을
하지 않으면 또한 부처가 될수 없다.
깨달음을 얻고,
중생을 제도하는 두가지 수레 바퀴로 나아갈때,
우리는 불국토의 나라에
도달할수 있는것이다.
마하반야바라밀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mirinae19/17203745 에서 복사한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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