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믿음(大信心)을 가져야 합니다.
ㅡ자신이 진리의 주체이기 때문에 끝없는 지혜와 용기와 덕성이 충만해 있다. 어떠한 고난에도 좌절하지 않고 어떠한 상횡에서도 희망을 불태우는 불굴의 용기가 거기에서 나온다. 그리고 언제나 중생과 세계와 내가 더불어 한 몸이라는 생각을 한다. 세계와 내가 원래부터 하나이기에...
참선 수행자는 먼저 생사(生死大事)를 해결하겠다는 굳은 신심(信心)을 가져야 합니다.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 이르기를,
『신심이란
첫째, 근본(眞如)을 믿음이나, 진여법(眞如法)을 희구(希求)하여 늘 생각하는 까닭이다.
둘째, 부처님에게 무량한 공덕이 있음을 믿음이니, 항상 마음에 새겨 생각하고, 가까이 하여 공양 공경하며, 선근(善根)을 일으켜 일체지(一切智)를 구하는 까닭이다.
셋째, 법에 큰 이익이 있음을 믿음이니, 온갖 바라밀을 항상 마음에 두어 수행하는 까닭이다.
넷째, 수행자(僧)이 능히 바르게 자리이타(自利利他)를 수행함을 믿음이니, 여러 보살들을 항상 자진해 가까이하여 여실(如實)한 수행을 배우고자 하는 까닭이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근본을 믿는다는 것은 일체 중생이 제불보살(諸佛菩薩)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진여의 성품 곧,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을 말합니다.
믿음에는 열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 정화(淨化)하는 뜻이니, 심성(心性)을 청정, 명백하게 합니다.
둘째, 결정(決定)하는 뜻이니, 심성을 순수, 견고하게 합니다.
셋째, 환희의 뜻이니, 온갖 마음이 고뇌를 제거합니다.
넷째, 싫증이 없는 뜻이니, 게으른 마음을 없애줍니다.
다섯째, 수희(隨喜)의 뜻이니, 다른 사람의 보살행에 함께 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합니다.
여섯째, 존중의 뜻이니, 온갖 덕있는 사람을 가벼이 보지 않게 합니다.
일곱째, 수순(隨順)의 뜻이니, 보고 배운 것을 따라서 잘 행하게 합니다.
여덟째, 찬탄의 뜻이니, 다른 사람의 보살행을 진심으로 찬탄합니다.
아홉째, 불괴(不壞)의 뜻이니, 마음을 굳게 하여 부서지지 않게 합니다.
열번째, 애요(愛樂;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마음)의 뜻이니, 자비심을 성취하게 합니다.
여러 경전에서 믿음에 대하여 말하기를
화엄경에서는,
『믿음은 도의 근본이요, 공덕의 어머니다. 믿음은 온갖 선법(善法)을 길이 기르며, 의심이 마음을 구속하는 것을 끊고 번뇌에서 벗어나 무상도(無上道)를 드러낸다.』
『능히 불지(佛智)와 해탈(解脫)에 청정한 믿음을 일으켜 길이 불퇴전(不退轉)하며, 믿음으로 지혜의 뿌리가 생겨나도록 하면 이는 바르게 배우는 사람의 수행하는 길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또, 대비바사론(大毗婆娑論)에 이르기를,
『지혜가 있어도 청정한 믿음이 없으면, 사악(邪惡)만을 키우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또, 출요경(出曜經)에 이르기를,
『손가락을 퉁기는 정도의 짧은 시간동안만이라도 부처님을 돈독히 믿어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그 복은 끝이 없어서 헤아릴 수 없다.』하였습니다.
보살영락경(菩薩瓔珞經)에서는 이르기를,
『내가 열반에 든 뒤에, 중생이 법복을 걸치고 이양(利養)을 탐하거나 도심(道心)을 거짓으로 일으켜 정법을 손상하여 청정한 마음이 없다면 이 사람은 삼보를 믿는다 할 수 없으니, 비록 내 대중 속에 있다 할지라도 나와의 관계는 아주 멀다고 해야 한다. 이와는 달이, 선남자 선여인이 집착없는 행위를 함으로써, 비록 보살의 자리에는 있지 않으면서도 마음이 견고해 도심(道心)을 버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백천만 유순(由旬;멍에를 황소 수레에 걸고 하루의 길을 가는 거리)밖에 있다 해도 나와 아주 가까움이 확실하다.』고 하였습니다.
부처님이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처음 정각(正覺)을 이루시고 일체 만유를 다 둘러보시고 감탄하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기이하고 기이하구나!
일체 중생이 모두 여래와 같은 지혜 덕상이 있건마는
분별망상으로 깨닫지 못하는구나.
菩提樹下(보리수하) 初成正覺(초성정각)
歎曰(탄왈)
奇哉奇哉(기재기재) 一切衆生(일체중생)
皆有如來(개유여래) 智慧德相(지혜덕상)
以分別妄想而(이분별망상이) 不能證得(불능증득)』
(화엄경)
육조 혜능대사가 행자(行者)의 신분으로서, 오조 홍인대사에게서 법을 받아서 한밤중에 달아났습니다. 거기 있으면 무슨 해를 입을지 모르므로 비밀히 달마대사 이래로 전해오던 의발(衣鉢)을 받아서 한밤에 도망을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음날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몽산 도명(蒙山道明;?∼?)스님이 혜능대사를 잡으로 나섰습니다. 대유령(大庾嶺)에서 대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혜능대사는 도명스님의 우락부락함을 보고 가사와 발우를 바위 위에 올려놓고 몸을 숨겼습니다. 도명스님이 바위 위에 올려 놓은 가사와 발우를 가져가려고 하니 꿈쩍도 하지 않아 힘이 센 도명스님도 도저히 가사와 발우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도명스님은 크게 놀랐습니다.
"노행자, 노행자여, 내가 뒤따라 온 것은 이 가사와 발우를 빼앗으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법을 배우려고 왔으니 얼른 나와 주십시오."하고 간청을 했습니다.
이에 혜능대사가
"네가 이미 법을 위하여 왔을진대, 이제 모든 반연(攀緣)을 다 쉬고 한 생각도 내지 마라. 너를 위하여 말하리라."하고 숨은 곳에서 나와서 도명스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착한 것도 생각하지 말고 악한 것도 생각하지 말라. 바로 이러한 때 어떤 것이 너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냐?"
하니, 도명스님이 그 발 끝에 크게 깨쳤다고 합니다.
〔착한 것도 생각하지 말고 악한 것도 생각하지 말라〕함은 착함과 악함 즉, 양 극단(極端)을 완전히 여의는 것을 말하니, 이것이 중도정설(中道正說)입니다. 중도를 통하여 자기의 본래면목을 알수 있고, 모든 부처님의 면목을 알 수 있고, 모든 조사의 면목을 알 수 있고, 모든 공안(公案)을 다 깨칠 수 있는 것입니다.
큰 분심(大憤心)을 가져야 합니다
큰 분심이란 제불보살과 다를 바 없이 불성을 가지고 있는 내가 무엇이 부족하여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범부중생의 삶에 빠져 있는 가를 생각할 때 크게 분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큰 믿음에서 큰 분심이 일어납니다.
화엄경에 이르기를,
『보살은 모든 악이 아직 생겨나지 않았을 경우에는 그것이 생겨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마음을 일으켜 발심(發心)해 바로 끊으며, 모든 악이 이미 생겼을 경우에는 그것을 끊기 위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마음을 일으켜 발심해 바로 끊는다.
또 모든 선이 아직 생겨나지 않았을 경우에는 그것이 생겨나게 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마음을 일으켜 발심해 바로 수행하며, 모든 선이 이미 생겨났을 경우에는 그것에 머물러 잃지 않고 다시 왕성하게 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마음을 일으켜 발심해 바로 수행한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큰 강물에 자기 몸이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 하자. 그는 필시 강물을 건너기 위하여 큰 노력과 큰 정진을 할 것이요, 이런 큰 노력과 큰 정진 때문에 꿈에서 깨어날 것인데, 일단 깨고 나면 지금까지의 행위가 다 그치게 될 것이다.
보살도 마찬가지여서 본래 부처이어야 할 중생의 몸이 네 개의 큰 강물(사폭류,四瀑流)속에 있음을 보고, 이를 건너게 해주기 위해 큰 노력을 발하고 큰 정진을 일으키게 되며, 이렇게 큰 노력과 큰 정진을 일으킨 탓으로 부동지(不動地;노력 없이도 저절로 보살행이 이루어지는 상태)에 이르게 되는 바, 일단 이 경지에 이르고 나면, 모든 몸과 말과 마음의 작용이 다 그쳐서 이행(이행;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이 눈앞에 나타나는 것), 상행(相行;모습이 현재에 나타나는 것)이 온통 나타나지 않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사록류(四爆流);
ⓛ욕폭류(欲爆流); 욕계(欲界)에 있어서의 견(見)과 무명(無明)을 제외한 번뇌
②유폭류(有爆流);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에 있어서의 견(見)과 무명(無明)을 제외한 번뇌
③견폭류(見爆流); 삼계에 걸친 그릇된 견해
유신견(有身見), 변집견(邊執見), 사견(邪見), 견취견(見取見), 계금취견(戒禁取見)
④무명폭류(無明爆流); 모든 번뇌의 원인이 되는 무명(無明)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기신 가르침을 모은 유교경(遺敎經)에 이르기를.
『만약 부지런히 정진하면 일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하는 바 있어야 할 것이니, 마치 작은 물도 끊임없이 흐르면 능히 돌을 뚫는 것과 같아서, 끝없는 정진 앞에는 못 이룰 일이 없을 것이다. 이와는 달리, 만약 수행하는 사람의 마음이 자주 게으름에 빠져서 수행을 중단한다면, 마치 나무를 마찰해 불을 내려다가 열도 생기기 전에 그만두는 것처럼 불을 얻고자 해도 얻을 수 없는 것과 같아서 원하는 바의 목적은 이루어질 까닭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또, 삼혜경(三慧經)에서 정진에 대하여 비유로서 이르기를,
『어떤 사람이 보석을 지니고 바다를 건너다가 그 보속을 잃어버렸다. 그 사람은 말(斗)을 들고 바닷물을 퍼기 시작했다. 해신(海神)이 말하기를
"어느 날에 이 물을 바닥 낸단 말이냐?"
"생사(生死)는 기지불치(棄之不置)입니다."
해신은 그 사람의 뜻이 큰 것을 알고 보석을 내어 돌려주었다.』고 했습니다.
열반경에 이르기를,
『방일(放逸)하면 열반(涅槃)에 갈 길이 없어진다.
방일에는 열세 가지의 과실이 있으니,
첫째, 세상의 악한 행위를 즐겨함이요,
둘째, 무익한 말을 즐겨 말함이요,
셋째, 잠을 즐김이요,
넷째, 세속 일을 즐겨 말함이요,
다섯째, 나쁜 벗을 가까이함이요,
여섯째, 항상 게으르고 태만함이요,
일곱째, 늘 남을 경멸함이요,
여덟째, 무엇을 들으면 이내 잊음이요,
아홉째, 일을 떠난 곳에 즐겨 삶이요,
열째, 육근(六根;眼耳鼻舌身意)을 제어하지 못함이요,
열한째, 살림의 족한 줄을 모름이요,
열두째, 공적(空寂)을 즐김이요,
열셋째, 소견(所見)이 바르지 못함이다.
만일 방일하는 사람이 부처님이나 부처님의 제자에게 접근할 수 있다 해도 멀리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했습니다.
큰 의심(大疑情)을 일으켜야 합니다
큰 의심은 잠시도 물러서지 않고 전심전력을 다하여 화두(和頭,公案)와 맞부딪치는 것을 말하니, 크게 의심하면 크게 깨닫고, 작게 의심하면 작게 깨달으며, 의심하지 않으면 아예 깨닫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당나라의 대수(大隋)스님의 한 제자는 스승으로부터 받은 화두에 의심을 두고 스승을 찾아 참구하느라 만리(萬里)에 이르도록 산천을 돌아다녔다 합니다. 이를 두고 명나라 주굉(株宏;1535-1612)스님께서 찬탄하여 게송으로 이르기를,
『옛 사람은 털끝만큼이라도 가슴에 걸리는 것이 있으면 스스로 속이려 하지 않고 반드시 결택(決擇;決斷)을 구하여 탁 트인 뒤에야 그만 두었다.
어찌 가는 길이 수고롭다 여겼겠는가?
이른바
"한 구절로 그의 말을 따라
천산(千山)을 달리는 납승(衲僧)이다"한 것이
바로 이를 가리킨 것이다.
지금은 스승을 찾아 도를 묻게 하면 몇 걸음을 못 가서 상을 찌푸리지만,
이익과 명예를 쫒게 하면 만리도 거뜬하게 나선다.
팔순(八旬)에 백개의 고을을 찾아다닌 조주스님이여,
당신의 고고한 도풍(道風)이 아득히 멀어 바라볼 수조차도 없습니다.』하였습니다.
또, 굉지(宏智)선사가 단하(丹霞;1064-1117)선사의 시자로 있을 때, 어느날 요사채에서 한 스님과 공안(公案)을 따져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큰소리로 웃었습니다. 그때 마침 단하선사가 그 방문을 지나갔는데, 밤이 되어 굉지선사가 참문(參問)할 때 단하선사가 물었습니다.
"그대는 아까 어째서 크게 웃었는가?"
" 한 스님과 화두를 따져보다가 그의 대답이 너무 서툴러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렇기는 하더라도 그대의 웃음소리 하나에 많은 좋은 일을 잃게 되었다. 옛 말을 듣지 못했느냐? 잠시라도 구도에 있지 않으면 죽은 사람과 같다 하였다."
굉지선사는 그 후에도 어두운 방에 있을 때라도 감히 소홀히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울러, 참선 수행자는
첫재, 큰 서울을 발하여야 합니다.
둘째, 철저히 선지식의 가르침에 의존하여야 합니다.
셋째, 어느 때나 참선의 마음자세를 놓지 말아야 합니다.
넷째, 잡념을 일으키지 않아야 합니다.
다섯째, 항상 밝고 쾌활하게 살아갑니다.
여섯째,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남의 허물을 보지 않습니 다.
일곱째, 자비심과 공공심으로 살아갑니다.
여덟째, 부처님의 기본적인 가르침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참선수행자의 잘못된 공부는 오히려 삿된 길에 빠져들게 합니다.
첫째, 큰 믿음과 큰 서원이 없으면 중도에서 물러서거나 외도에 빠지게 합니다.
둘째, 선지식의 가르침을 의지하지 않고 혼자서 책을 보거나 하여 공부하면 바른 길을 잃게 됩니다.
셋째, 탐욕과 성냄과 혼침과 도회(掉悔;들떠 있거나 산란하고 우수에 빠져 있는 것)와 의심(참선 수행의 길이 자신의 수행법이 아니라고 의심하는 것)하는 마음을 가지면 안됩니다.
넷째, 경계를 보고 집착하여서는 안됩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어떠한 모양있는 것이나 마음으로 느끼는 생각가지도 다 상(相)입니다.
다섯째, 화두를 간절히 의심하는 마음으로 참구하지 않고, 육체의 힘으로 참구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수식관을 하더라도 간절한 마음으로 하여야지 육체의 힘으로 억지로 해서는 안됩니다.
아놀드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4855028/15967841 에서 복사한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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