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삶이란/전세와 후세의/무한한/파장
부제:작가 김숙현에게
산중山中에 솔바람 소리, 어느 새 십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는가. 그때, 어리광 처녀들이 이제는 어엿한 애기엄마로 남의 아픔을 함께하는 어른이 되었으니 무상의 신속함을 새삼 느끼게 합니다.
그 해 여름, 세 친구 어울려 와서 웃고 떠들며 지내던 하루, 결제 중이라 하루 더 쉬도록 허락지 못해 섭섭했던 그 뒷모습들 지금도 눈에 선한데, 이제는 많이도 변했을 모습들 그저 어렴풋하기만 합니다.
여기 스님도 이제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라, 소나무 바위들과 더불어 자적한 산거山居는 그대로지만 벗겨진 이마는 어쩔 수 없는 노스님인가 합니다.
편지에 물어온 말씀-어린이의 죽음에 대하여-
만반萬般을 존비도存比道하고 일미一味로 신전연信前緣하라.
사바세계 어천만 중생사에는 기가 막히고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얼마든지 있겠지요.
바로 당하는 이, 가까운 이들의 괴로움이야 어떠하겠습니까만, 그러나 삼세를 통한 큰 안목으로 본다면, 천지간에 인간의 삶이란 전세前世와 후세後世의 연속인 무한한 파장인 것입니다. 백천만겁을 윤회하고 출몰하면서 희비고락喜悲苦樂하는 것이 모두 다 인과의 법칙에서 벗어나는 것이 없습니다. 중생이 상속한다는 자체가 인연업보因緣業報의 소용돌이 속에서 맴도는 물거품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꿈이요, 환幻이요, 거품이요, 그림자다” 하였지요. 이 사바의 모든 업은 자기가 짓고 자기가 받는 것으로 이미 찍은 필름이거나 새로 찍은 필름일 뿐입니다.
이왕에 잘못 찍힌 사진, 한량없는 업인業因을 어떻게 할 것입니까? 밝은 태양의 광명은 비추지 않는 곳이 없지만 눈을 감은 사람에게는 소용없듯이 기계를 부릴 줄 모르는 사람들은 기계가 돌아가는 대로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크고 작은 톱니바퀴는 사정없이 자꾸만 물고 돌아가는데….
여기에서 불법佛法은 필요한 것입니다. 그와 같은 업장業障의 무더기를 극복하고 소멸시키는 작업이 바로 불법 수행입니다.
마치 이미 녹음된 테이프에 새로 녹음을 하면 과거의 소리는 없어지듯, 참선하고 주력하고 참회 기도하는 신앙, 그리고 신심信心이 바로 그것입니다. 필경에 마음 하나 밝히면 천년의 무명은 찰나에 사라지게 마련인 것입니다.
“정신이 육체를 좀먹고 육체가 정신을 배반하는 괴리乖離가 없어야겠다”는 말은 참 좋고 좋은 말입니다. ‘이 몸이 내 마음대로’라면 몸과 마음은 둘이 아닐 것이, 마음이 참나요 몸뚱이는 나의 그림자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디까지나 몸뚱이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해야만 할 것입니다.
이 마음을 길들이고 닦는 일이 바로 해탈 열반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모쪼록 일심청정一心淸淨하십시오, ‘일심이 청정하면 일신一身이 청정하고 일신이 청정하면 다신多身이 청정하고 이와 같으면 내지 시방 중생의 원각이 청정이라’하였으니 이 밖에 불법이 따로 없을 것입니다.
그럼 대원성과 혜자네와 더불어 다 같이 부처님 광명 속에서 행복과 안녕을 누려지이다.
1977.3.13
염화실 카페 http://cafe.daum.net/yumhwasil/8Hqs/90 에서 복사한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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