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스님들 이야기

[고승 33인 법어집] 쥐가 고양이 밥을 먹다-18. 보성 스님

수선님 2019. 12. 15. 12:31

 

눈을 바로 뜨고 보면 세상의 모든 것이 보배입니다.

중생의 마음으로 보지 말고

부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부처님과 나를 구분해 보지 않는 것입니다.

-보성 스님-

 

진리의 눈/떠야/경계/보인다

보성 스님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들을 위해 가장 높고 귀한 설법을 했는데, 이 법음을 기록해 놓은 것이 『화엄경』입니다. 오늘 법문할 내용은 공덕에 대해서 설할까 합니다.

 

인간이 가장 정성스럽게 정진해서 닦고 행동하는 것을 공덕이라 합니다. 부처님께서 세간에 오심은 오로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입니다. 무엇보다도 부처님을 법으로 보라고 설해 놓은 것이 『화엄경』이요, 팔만사천법문의 내용입니다.

부처님 법은 가고 옴이 없는 것입니다. 이 진리는 한량이 없는 것입니다. 진리가 한량이 없는 고로 중생도 한량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눈을 바로 뜨고 보면 세상의 모든 것이 보배인 것입니다. 그러나 중생들은 눈이 어둡기 때문에 진리로 보지 못하고 생사의 바다에서 육근의 경계에서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의 모든 것을 어떻게 보아야 보배로 볼 수 있느냐? 그것은 중생의 마음으로 보지 말고 부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느냐? 그것은 부처님과 나를 구분해서 보지 않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따로 있고 중생이 따로 있는 『화엄경』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화엄경』백고좌법회를 하면 그것이 바로 부처님이 설하는 『화엄경』으로 볼 때 부처님의 세계에 들어 부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부처님 당시 어떤 외도가 부처님께 예배하는 것을 거부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직접 그 외도로 찾아가 말씀하시기를 “당신은 내 무너질 육신을 본다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당신은 이렇게 알아야 한다. 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보고 나를 보려거든 법을 보아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중생은 어떻습니까. 부처님을 형상으로 봅니까? 아니면 법으로 봅니까? 부처님을 법으로 볼 때 세간의 모든 것과 중생들 모두가 부처님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세간과 모든 존재의 위치를 법으로 보아야 하는데, 법을 봄이란 불생불멸의 이치로 보는 것입니다. 모든 법의 존재는 오고 감도 없으며 만든 것도 아니며 깨달음에 의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깨달았다는 것은 있는 그대를 관찰하여 진리를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부처님도 진리의 소개자이며 안내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진리는 무엇인가? 『선가귀감』에는 “여기에 한 물건이 있으니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스러워 일찍이 나지도 않았고 죽지도 않았다. 또한 이름지을 것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다”라고 설했습니다.

이처럼 오지도 가지도 나지도 없어지지도 않은 것이 부처님 법의 진리이니, 이 이치를 알면 세상의 어느 것에도 견둘 것이 없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정진하면 진리의 세계는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복덕과 지혜를 이룬 부처님을 법으로 보고 현재라도 능히 부처님 법을 믿는 이가 있으면 또한 마땅히 정각을 이루고 진리로 설파함에 부러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내가 오로지 법을 믿고 따르고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뜻이 없으면 항해사가 방향을 모르고 헤매는 것과 같습니다.

 

요즈음은 뜻이라 하면 돈으로 아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뜻이라 하면 현상적인 것이 아닌 마음 속 깊이 간직할 것입니다. 그 뜻을 잘 키우고 다듬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진하고 기도하고 노력하는 것은 마음과 생각을 가다듬고 낭가 때가 없는 상태로 가기 위해서입니다.

 

『사십이장경』에 말씀하시기를 “마음의 때가 다 없어져서 깨끗하게 더러움이 없는 것이 가장 밝은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때가 없는 것은 밝은 달이 물에 비치는 것과 같이 나의 마음이 깨끗하다 보니 나의 과거 현재 미래의 물결이 뚜렷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모두가 노력하는 것은 무엇이고 시시비비는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삼독심입니다. 부처님의 법은 정직하기 때문에 삼독심, 시시비비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첫걸음을 바로 옮겨 놓아야 합니다. 시시비비가 없는 첫걸음을 바로 옮길 때 바른 불자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내 스스로가 길을 알고 정진할 때 참마음의 깨끗함이 환희 비춰지는 것입니다.

1991.10.30

송광사 주지 재직시

 

 

보성 스님

1928년~

1945년 수련 스님을 은사로 득도

송광사 주지

제6대 전계대화상

조계총림 선원 방장

現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

 

 

 

 

 

 

 

 

 

염화실 카페 http://cafe.daum.net/yumhwasil/8Hqs/91 에서 복사한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