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서 정신문화와 삶의 방식에 의문을 던지며 대안을 찾았던 사조(思潮)는 1870년대와 세계종교회의가 열렸던 1920년대에도 있었지만, 서양 전체에 대대적 물결로 번진 것은 1960년대이다. 이때부터 동양의 법사들이 서양으로 가 법을 전하며 장기체류를 하기 시작한다.
이민법이 완화된 1960년대에는 더 많은 스님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 강단에 서는가하면 수행법을 전하고 종교단체도 설립했다. 스즈키 순류 선사가 샌프란시스코에 법의 날개를 펴고 불교수행의 정통을 전한 것도 이 시기이다. 90%의 불교단체나 수행센터가 생겨났다고 하는 미국의 70~80년대에는 미국의 중상류층 가정에 적어도 한 사람은 동양학이나 불교에 심취한 사람이 있었다고 할 정도였다.
1970년대에 존 카밧진은 ‘마음챙김(mindfulness)’을 의료기관으로 들여와 새로운 명상법으로 변화시키고 이를 ‘마음챙김에 기반한 스트레스 완화법’ 즉 ‘MBSR(Mindfulness Based Stress Reduction program)’이라 불렀다. MBSR은 만성 통증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불교명상을 기반으로 구성한 8주 프로그램이다. MBSR은 불교적 요소를 가능한 한 제거한 비종교적 또는 세속적 명상법이다. 이를 통해 마음챙김은 미국사회 주류로 진입하게 된다.
급기야 2014년 2월에는 ‘마음챙김의 혁명(The Mindful Revolution)’이 타임지 표지를 장식하고, 수많은 유명인사들과 기업, 학교가 마음챙김을 도입하면서 미국은 2014년을 ‘마음챙김의 해’라고 불렀다.
미국에서 이렇게 마음챙김과 위빠사나명상을 전한 사람들은 대부분 태국의 아잔차와 미얀마의 마하시 사야도에게 수행을 배운 재가자들이다. 마음챙김이 부상하는 한편 다른 한쪽에서는 대중적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달라이라마에 힘입어 티베트불교의 활약도 눈부셨다.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전세계에 단지 10여 개에 불과했던 티베트명상센터는 2010년 미국 내 거의 모든 도시에 하나씩은 있다고 할 정도로 확산되었다.
이제 두 주류를 이루는 마음챙김과 티베트불교를, 더욱 미국에 맞게 변형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거머(Christopher Germer)는 마음챙김과 자기자비를 합쳐 ‘마음챙김 속의 자기자비(Mindful Self-Compassion ; MSC)’ 프로그램을 만들고 이를 가르칠 교사를 전세계적으로 양성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선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피셔(Norman Fischer)는 티베트불교의 마음훈련인 로종을 선과 통합한 가르침을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Zen Teachings on the Practice of Lojong〉. 잭 콘필드도 타라 브락과 함께 마음챙김 명상 지도자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전세계적으로 지도자를 양성 중이다.
하지만 2000년대 미국불교의 주류를 이끄는 많은 사람들이 재가자이기에 여기서는 제외하고, 대신 이들을 가르치고 밑거름이 되었던 스님들과 큰 영향력을 발휘한 스님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티베트불교에서 달라이라마·쵸감 트룽파·페마 쵸드론·텐진 팔모를 살펴보고, 동남아불교에서 아잔차, 마하시 사야도를 살펴볼 것이며 선불교에서 틱낫한, 싱윤대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1) 달라이 라마(Dalai Lama; 1935~ )
“우리 어린이들의 뇌를 교육할 때, 반드시 마음 교육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한다.”
겔룩파의 수장인 제14대 달라이 라마는 누구를 만나든 ‘저는 그저 70억 인류 중 한 사람입니다’라는 말로 자신을 겸손하게 소개한다.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마음의 빗장을 푼다. 1979년 달라이라마의 최초 미국 방문은 비교적 소박하게 끝이 났지만, 1989년 노벨상을 수상하며 인지도가 높아진 후의 미국 및 서양방문은 그 격이 달라졌다.
게다가 달라이라마의 열린 마음과 행동으로 표현된 자비는 더욱 많은 사람들의 마음의 빗장을 열었다. 불교를 수행하기 위해 불자가 될 필요는 없다며 “개종하지 말라”는 달라이라마의 말은 역설적이게도 더욱 많은 사람을 불교로 끌어들이고 있다.
미국에서 일반출판사가 불서를 출판하여 서점 뿐 아니라 수퍼마켓이나 대형마켓에서도 살 수 있도록 만든 것은 1998년 출판된 <달라이라마의 행복론>이 최초이다. 달라이라마는 또한 서양과의 소통의 장으로서 오랫동안 개최하던 ‘종교간의 대화’ 보다는 오히려 심리학자 및 뇌과학자와 나누는 과학적 대화가 더욱 수승하다는 판단 하에, 1988년부터 정기적으로 “마음과 생명회의(Mind & Life Conference)"를 주관해오고 있다. 이런 노력은 2000년대 마음챙김 명상 및 명상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통해 마음챙김 명상이 보편화되면서 더욱 상승효과를 얻고 있다.
달라이 라마의 굵고 힘찬 목소리에서 전해지는 에너지는 목소리의 울림이 오래 귀에 남듯 사람들의 가슴으로 담박에 스며든다. 유창한 영어, 호쾌한 유머를 구사하는 그의 편안한 얼굴에서는 때로는 부드러운 웃음이, 때로는 뱃속까지 시원해지는 웃음이 번져간다. 대중에게 전하는 그의 불교는 어렵지 않다. 불교의 진리가 어렵고 때로 현학적일수도 있다면, 그것이 그의 삶속에 녹았다가 다시 한번 떠오를 때면 너무나 쉽고 친근한 일상의 용어로 다가온다.
달라이 라마의 매력은 서구인 어느 계층이라도 다 흡수한다는 것이다. 그의 소박하면서도 빈틈없는 지성은 대학 캠퍼스에서 환영받았고, 포용적인 박애 정신은 미국 상류층의 호응을 받았으며, 창조적 에너지는 영화계ㆍ가요계 스타들과 친밀한 관계를 갖게 했다. 한 인간이 이렇게 전천후적으로 많은 계층의 호응을 받는 것은 드문 일이며 게다가 그들의 삶의 스승 역할까지 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최근 달라이라마는 교육을 통한 세속윤리와 자비함양에 주력을 하고 있다. 인류가 하나로 연결된 현대에서 ‘상호연결성’과 ‘자비’를 잊어버리면 함께 멸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자비명상과 마음챙김 명상이 공립학교와 대학 교과과정에 들어가기를 바라고 그러려면 과학자들이 명상의 효과에 대한 객관적인 연구결과를 많이 내주어야 한다고 독려하고 있다.
2) 쵸감 트룽파(Chögyam Trungpa; 1939~1987)
“영성의 전사가 되려면 먼저 마음의 상처가 있어야 한다. 마음의 상처가 없이는 그리하여 부서질 듯한 연약함이 없이는 전사의 길을 제대로 갈 수 없다.”
트룽파 린포체는 카규파와 닝마파 전통을 모두 전수받은 11대 트룽파 툴쿠(환생한 라마)이며, 티베트불교의 숨겨진 불서를 발견한 테르톤이며, 미국으로 이주한 이루에는 현세에서의 이상사회 ‘샴발라’의 비전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
티베트에서 히말라야 설산을 넘어 장장 9개월에 걸친 험난한 여정 끝에 1960년 인도에 도착했다. 장학금을 받아 옥스퍼드대학으로 유학을 한 그는 아콩 린포체와 함께 1967년 서양 최초의 티베트불교 사원 ‘삼예링’을 설립했다. 미국에서는 미국 최초의 불교대학인 나로파대학을 설립했는데, 트룽파의 전방위적 재능에 걸맞게 저명한 시인 앨런 긴즈버그가 시를 가르쳤고 역시 저명한 작가 윌리엄 버로우가 문학을 강의했다. 또한 제자 페마 쵸드론은 캐나다에 북미 최초의 티베트사원 ‘감포 승원(Gampo Abbey)’를 설립하기도 했다.
트룽파는 금강승 밀교 수행을 서양에 전한 첫 스승들 중 하나다. 티베트에서는 스님들만이 밀교 수행을 했지만 트룽파는 미국의 재가자에게 밀교를 가르쳤다. 그는 가르침에서 티베트 문화적인 요소를 가려내고 그 정수를 서양인들이 알아듣기 쉽게 전하는 탁월한 언어적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명상수행을 일상의 활동에 통합하도록 독려했는데 그 일환으로 전통적으로 명상과 집중이 조합된 활동들, 즉 궁도ㆍ서예ㆍ꽃꽂이ㆍ다도ㆍ춤ㆍ연극ㆍ영화ㆍ시ㆍ심리치료 등을 배우고 실천하도록 했다. 즉 나날의 삶에 예술을 접목하는 것이었다. 그 모든 것이 바로 깨달은 사회를 현세에 이루려는 그의 샴발라 비전에서 나온 것이며, 실제로도 샴발라전사 훈련체계를 수립한 그는 미국 전역에 있는 샴발라명상센터를 통해 그 교육체계를 실천하였다.
1974년에는 카마카규파의 수장 칼마파를 초청하여 가르침을 폈고, 이어 1981년에는 달라이라마를 초청하여 가르침을 폈는데 달라이라마는 그를 ‘서양문화에 완전히 적응한 비범한 티베트 라마’라고 평했다 한다. 칼마파는 그를 ‘카규법맥의 주요 계승자’로 인정했고, 그를 대성취자(mahasiddha)로 인정한 고승으로는 닝마파의 수장 딜고 키엔체 린포체, 트랑구 린포체와 타이 시투파가 있다.
3) 페마 쵸드론(Pema Chödrönl 1936~ )
“세상 그 무엇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을 가르쳐주기 전에는 절대 물러가지 않는다.”
서양에서 가장 성공한 여성 불교스승으로 불리는 쵸드론이 가장 자주 다루는 주제는 두려움을 직면하는 일이다. 삶의 고비에 사용할 응급의료상자라 칭하는 그의 가르침엔 ‘모든 것이 무너질 때 우리는 더 이상 허비할 시간이 없으니 지금 있는 곳에서 시작해야 한다. 두려운 그곳으로 가서 도약을 하라’ 등이 들어있으며, 책으로도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트룽파 린포체의 서양인 제자로서, 캐나다 노바스코샤에 북미 최초의 사원인 감포 승원을 설립하고 또한 페마쵸드론재단도 설립하였다. 감포 승원이 외면뿐 아니라 내면도 티베트승원처럼 보이지 않는 것은 아메리카는 티베트승원이 아니라 서양승원이 필요하다고 말한 스승 트룽파의 뜻을 받든 것이다.
금강승 수행을 완성한 최초의 미국인인 쵸드론은 1981년 홍콩에서 집단 수계식을 통해 비구니계를 받았다. 쵸드론은 미국불교가 모든 전통을 다 받아들여 그중 필요한 것을 골라 써야한다고 생각했고, 동시에 미국불교는 전통불교의 범위를 확장하여 재가자와 여성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쵸드론이 스승 트룽파로부터 받은 가장 큰 가르침은 무엇일까?
“스승은 가끔 복도에서 나를 불러 세우고 다가오셔서는 난데없이 말씀하시곤 했다.
‘너무 종교적이 되지는 마라! 지나치게 종교인인 척도 하지말구!’
처음에는 그 말이 참 모욕적으로 들렸다. 그러다가 그 말씀은 내가 풀어야 할 화두처럼 되어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 말씀의 뜻이 확실하고 분명해졌다.”
4) 제춘마 텐진 팔모 (Jetsunma Tenzin Palmo; 1943~ )
“답은 우리 내면에 있다. 그곳에서 평화와 행복을 발견할 수 없다면 밖에서도 얻을 수 없다.”
여성의 몸으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스님이 되었다는 텐진 팔모는 히말라야 설산의 석굴에서 12년간 독거명상을 하여 헌신적인 티베트불교 요기니들의 발자취를 이었다. 현재 생존하는 티베트불교 비구니들 중 가장 법랍이 높다.
인도 타시종 사원 근처에 동규가찰링 비구니승가대학을 세워 후학을 길러내고 있다. 이는 본인이 젊은 나이에 공부를 하려고 영국에서 인도에 왔지만 스승 캄툴 린포체의 사원에 비구만을 위한 승가대학밖에 없어 맘껏 배우지 못한 자신의 한, ‘산해진미가 차려진 잔칫상을 앞에 놓고도 하나도 먹을 수 없었던’ 자신의 전철을 다른 비구니들은 밟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고, 또 스승 캄툴 린포체의 유언을 실행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팔모는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고 명상하는 학인스님들을 자랑스러워하며 말한다. “티베트 비구스님들도 신실한 헌심과 집중을 원한다면 비구니에게서 찾아야 함을 알아요. 그래서 저는 학인들에게 모든 기회가 주어졌으니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다 이루라고 말합니다.”
2008년 2월 둑파카규 법맥의 수장 12대 걀왕 둑파는 텐진 팔모에게 ‘제춘마(존경하는 스승)’ 타이틀을 수여했다. 티베트불교 여성수행자와 둑파 전통의 요기니를 길러내려는 공을 인정해서이다.
5) 아잔차(Ajahn Chah; 1918~1992)
“우리 안목이 자신을 넘어서 볼 수 있다면, 더 이상 행복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집착을 끝낼 때 비로소 행복이 시작된다.”
태국의 고승이며 자신의 스승이었던 ‘아잔 문’에게 계·정·혜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를 묻자, 스승은 비록 가르침이 복잡하고 많아 보여도 마음챙김이 확립되어 모든 것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알게 되면 그것이 참된 수행의 길이라 했다.
이후 7년 동안 엄격한 삼림전통(Forest Tradition)의 방식대로 유랑하며 만행수행을 했다. 1954년부터 고향 인근의 사원 왓파퐁에서 제자들을 가르쳤고 이후 태국에 250여개 지부사원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1966년에는 최초의 서양인 제자 아잔 수메도(Ajahn Sumedho)가 스승을 찾아온다. 1975년에 설립한 왓파나나차트는 아잔 수메도를 주지로 한 ‘국제숲속사원’으로서 영어권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태국사원이 되었다. 이후 1979년 영국에 치타비베카 사원을 효시로 유럽과 미국에 ‘숲속승가(Forest Sangha)’를 설립했고 그 수장에 아잔 수메도가 있다.
아잔차는 현재 서양불교계를 이끌고 있는 많은 제자를 키워냈다. 상수제자인 아잔 수메도는 영국 아마라와티 사원의 전 주지였으며, 아잔 브람(Ajahn Brahm)은 서호주 보디냐나 사원의 주지이며, 아잔 파사노(Ajahn Pasanno)는 캘리포니아 주 아바야기리 사원의 주지이고, 잭 콘필드는 캘리포니아 스피릿락 명상센터의 설립자이다.
6) 마하시 사야도(Mahasi Sayadaw: 1904~1982)
“마음챙김이 있는 매 순간 잠재된 번뇌가 서서히 파괴된다. 이는 마치 작은 도끼로 도끼질을 할 때마다 원치 않는 나무 조각을 제거할 수 있는 것과 같다.”
미얀마의 스님이며 명상수행자인 마하시 사야도는 아시아와 서양의 위빠사나 명상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다. 호흡 시 전통적으로는 코 주변에 마음을 집중하던 것을 배가 일어났다 꺼지는 느낌에 집중하도록 변화시켰다. 즉 초점의 대상을 좀 더 구체적인 배에 두도록 하였고, 불교의 교리를 잘 몰라도 수행을 할 수 있도록 간략화 하여 동서양의 많은 재가자들에게 명상체험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평을 듣고 있다.
1947년 당시 버마 수상이 양곤에 ‘마하시수행센터(Mahāsi Sāsana Yeiktha)를 짓고 그를 초대하여 가르침을 펴게 했다. 1972년까지 마하시 사야도 관련 명상센터에서 배출한 명상자는 약 70만 명에 이른다. 1979년에는 서양으로 가서 매서추세츠주의 통찰명상회(Insight Meditation Society; IMS) 등에서 가르침을 폈다. 아울러 양곤의 수행센터에도 전세계에서 수행자들이 몰려와 명상을 배웠다.
7) 틱낫한(Thich Nhat Hanh; 1926~ )
“이 지구 위에 오직 평화와 고요의 발자국만을 남길 수 있도록 그렇게 걸어야 한다. 마치 발로 대지에 입맞춤하듯 걷는 것이다.”
2014년 11월 뇌출혈로 쓰러졌던 틱낫한 스님은 현재 플럼빌리지로 돌아와 치료 중이라고 한다. 참여불교의 기수이며 조국 베트남의 종전운동을 벌여 프랑스로 망명했던 스님은 2005년 망명 이후 처음으로 베트남으로 돌아갈 허가를 얻었고 이후 방문을 이어가며 승가의 재건을 돕고 있다고 한다.
달라이라마와 함께 세계불교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스님은 100권 이상의 책을 저술했고 이중 40여권이 영어로 번역되어 많은 독자에게 다가가고 있다.
일찍이 쉬운 말로 불교를 풀어쓰는 것을 실천한 스님은 연기를 ‘interbeing’으로 표현하여 반승반속집단인 ‘접현종(Order of Interbeing)’을 설립했고, 붓다가 가르친 2대 불교명상인 사마타와 위빠사나 역시 ‘멈추고 깊이 보라 (Stop and look deeply)’로 표현했다.
무엇보다도 오늘날 세계를 흔들고 있는 ‘마음챙김(mindfulness)’을 가장 먼저 대중적으로 퍼뜨린 스님은, 매 순간 ‘마음을 챙길 것’을 늘 말했고, 재가불자들이 받는 오계 역시 ‘다섯 가지 마음챙김 훈련’이라 바꾸어 불렀다. 또한 심리학도 접목하여 이해하기 쉬운 가르침을 펴고 있다.
미국에도 디어파크 등 다수의 수행센터를 개설하고 재가자들에게 연중 개방하고 있다. 접현종 회원들도 특정재가자를 대상으로 한 수련회를 열어 가족단위ㆍ십대ㆍ재향군인ㆍ연예계ㆍ의회ㆍ법집행자들ㆍ유색인종 등을 위한 수행을 열었다. 스님의 유명인 제자들 중에는 나탈리 골드버그(Natalie Goldberg), 존 핼리팩스(Joan Halifax), 노아 레빈, 조애나 매이시 등이 있다.
8) 싱윤(Hsing Yun; 1927~ )
“미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채고, 칭찬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다.”
대만의 싱윤대사(星雲大師)는 1967년 호광샨(佛光山)을 창건하여 ‘교육으로 인재를 양성하고, 문화로써 불법을 펼치고, 자선으로 사회복지를 이루고, 수행으로 인심을 정화한다’는 종지를 제창하면서 불교 교육과 문화ㆍ자선ㆍ홍법 사업에 매진했다. 인간불교를 통해 수행과 생활을 하나로 통합한 스님은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실 때, 잠을 잘 때도 부처님이 계시다는 느낌이 들면 바로 옆에 계신 것이다’고 말한다.
전 세계에 불광산사 지원 개설도 활발히 이루어져 세계 각지에 300여 개의 도량을 건립했다. 이중 미국에 설립한 시라이사(西來寺)는 서반구 최대 규모의 사원이며, 오스트레일리아에 설립한 난티엔사(南天寺)는 남반구 최대 규모의 사원으로 알려져 있다.
단일 사찰로는 세계 최대의 포교조직을 운영하고 있는 성운 대사는 자신도 불교신도 중의 한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하여 신도들을 자신의 상사이자 사장 또는 지도자로 여긴다. 특히 스님은 공적인 일 이외에는 사사로이 돈을 써 본 적이 없으며, 강연하거나 글을 쓰거나 책을 펴내 받은 돈도 개인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모두 불교 포교에 사용해 왔다고 한다. 58세에는 ‘불광산’의 공적인 업무에서 물러나 모든 권한을 후배 스님과 제자들에게 넘겨줌으로써 대만 불교계뿐만 아니라 대만 사회 전체에 훌륭한 본보기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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