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철학

초기 인도불교에서의 제법무아와 열반/김한상

수선님 2019. 12. 29. 13:09

초기 인도불교에서의 제법무아와 열반

* 이 논문은 2017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2017S1A6A3A02079749).

김한상

한국외국어대학교 인도연구소 HK 연구교수


Ⅰ 머리말.

Ⅱ 담마의 속성과 유위법.

Ⅲ 열반과 무위법.

Ⅳ 긍정적 실재로서의 열반.

Ⅴ 맺음말.


[요약문]

이 논문의 목적은 테라와다 불교의 렌즈를 통해서 제법무아(諸法無我,

sabbe dhammā anattā)에서 Dhamma가 주어로 사용된 이유를 고찰하는

것이다. 초기 인도불교는 모든 현상과 사물들의 특성들을 제행무상(諸行無

常), 일체개고(一切皆苦), 제법무아(諸法無我)의 세 가지로 묘사한다. 제행

무상과 일체개고는 모든 상카라들이 무상하고 괴로움이라고 말한다. 반면

에 제법무아는 모든 담마들이 무아라고 말한다.

하지만 붓다는 이에 대해 아무런 체계적인 설명도 하지 않기 때문에 많

논란과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담마

(dhamma), 아나따(anattā), 열반(nirvāṇa)의 세 가지 키워드에 대해

고찰해야만 한다. 붓다고사(Buddhaghosa)는 담마를 고유한 성질(sabhāva)을

지니거나 조건(paccaya)에 의해 생기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정의는

담마들의 배후에 영속적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상을 전달한다. 그래

서 고유한 성질은 닛삿따(nissatta), 닛지와따(nijjīvatā), 순냐따(suññatā),

다뚜(dhātu)라는 용어들과 동의어이다. 이러한 무아설(anattā-vāda)은 무

위법(無爲法, asaṅkhata-dhamma)인 열반에도 적용된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테라와다의 아비담마 철학자들도 유위법과 무위

법의 모든 담마들이 무아라고 주장한다. 제행무상과 일체개고에서 담마가

주어로 사용되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영원하고 최상의 행복인 열반을 제외

시키기 위해서 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붓다가 제법무아에서 담마를 주

어로 사용한 이유가 열반이 긍정적인 출세간의 실재이자 무아임을 나타내

고자 하였다고 추론할 수 있다.


I. 머리말


무아설(anattā-vāda)은 다른 종교나 사상 체계와 대별되는 불교

만의 독특한 교리이다. 불교는 형이상학적 자아나 불변하는 영혼

의 존재를 부정함으로써 인도 사상의 역사뿐만 아니라 인류 사상

의 역사에서도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멜포드 스파이로

(Melford E Spiro)가 말한 대로, 무아의 진리성을 인식하는 것은

열반의 성취를 이루기 위한 전제조건일 만큼,1) 불교의 종교적, 실

천적 입장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이 무아설이다.

1) Spiro(1982) p. 84.


초기 인도불교의 텍스트들2)에서 무아(無我, anattā)는 무상(無

常, anicca)과 고(苦, dukkha)와 동일한 취지로 설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테면 전형적인 오온(五蘊, pañcakkhandhā)의 교

설에서 무상과 고와 무아는 아무렇게나 배열되지 않고 반드시 ‘무

상→고→무아’의 순서대로 배열되고 있다.3) 무상이 고를 드러내고

무상과 고가 함께 무아를 드러내는 이 공식은 붓다의 두 번째 설

법4)에서 처음 공표되었다.5) 붓다는 원래 세 가지 특성들을 정형

화하지 않고 독립된 하나의 항목들로 설했기 때문에, 초기 인도불

교의 텍스트들에서는 대개 “물질은 무상하다(rūpaṃ aniccā)”, “느

낌은 무상하다(vedanā aniccā)” 등으로 개별적으로 반복되고 있

다.6)

2) 초기 인도불교의 텍스트들은 기본적으로 테라와다(Theravāda) 소전의

Sutta-piṭaka와 Vinaya-piṭaka, 그리고 여러 부파 소전의 한역 아함(阿含)과

율장(律藏)을 가리킨다. 3) 이를테면, “비구들이여, 물질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고이며, 고인 것은 무아다. 무아인 것은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아야 한다.(Rūpam bhikkhave aniccaṃ. yad aniccam taṃ dukkhaṃ yaṃ

dukkhaṃ tad anatta. yad anatta taṃ netam mama neso ham asmi na

meso attā ti. Evam etaṃ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aṭṭhabbaṃ.)”라는

전형적인 오온(五蘊, pañcakkhandhā)의 교설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SN.III, p. 22)

4) SN. III, p. 66f.

5) Bodhi(2000) p. 844.

6) 사이구사 미쓰요시(1997: 131)에 따르면, 빨리 니까야와 한역 아함에는 이러한

예문들이 150여개가 있다고 한다.


이렇게 산만하게 설해지던 세 가지 특성들은 가장 이른 시기부

터 정형구로 만들 필요성이 대두되었던 듯하다. 그래서 Aṅguttara-

Nikāya(이하 AN),7) Dhamapada(이하 Dhp)8), Theragāthā9)

등에서는 이들에 Sabbe saṅkhārā와 Sabbe dhammā가 각각 붙어

서 주어와 술어가 완벽하게 갖추어진 세 가지 정형구들이 나타난

다.10) 그것들이 바로 ① 제행무상(諸行無常, sabbe saṅkhārā

aniccā), ② 일체개고(一切皆苦, sabbe saṅkhārā dukkhā), ③ 제

법무아(諸法無我, sabbe dhammā anattā)이다.11) 한편 Saṃyutta-

Nikāya(이하 SN)의 Channa-sutta에서는 제행무상과 제법무아

만이 서술되고 있다.12) 어떠한 경우든 제행무상과 일체개고에서

는 상카라(Saṅkhārā)가 주어로 사용되고 있다.

7) AN. I, p. 286.

8) Dhp, 277-279게.

9) Th, 676-678게.

10) 다소 후기의 빨리 문헌들인 Kv와 Paṭis에서도 주어와 술어가 완벽하게

갖추어진 세 가지 정형구들이 나타난다. (Kv, p. 531; Paṭis II, pp. 62-63)

11) 앞으로는 논술의 편의를 위하여 주어와 술어가 완벽하게 갖추어진 무상・고・

무아의 세 가지 정형구들을 제행무상(諸行無常), 일체개고(一切皆苦), 제법무

아(諸法無我)라는 한역 정형구들로 표현하기로 한다.

12) SN. III, p. 132ff,

“Rūpam aniccam pa viññāṇam aniccaṃ Rūpam anattā vedanā saññā

saṅkhārā viññāṇam anattā sabbe saṅkhārā aniccā sabbe dhammā anattā ti.”


상카라는 오온에서는 행온(行蘊, saṅkhārākkhandha)을 뜻하지

만 여기서는 오온 모두를 포함한 조건지워지거나 형성된 모든 것

들을 뜻한다. 이것은 상카라의 다양한 의미들 가운데 가장 넓은

의미이다. 그래서 제행무상과 일체개고는 조건지워지거나 형성된

모든 것들은 무상과 고의 법칙에 지배받는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

에 반해서 제법무아에서는 상카라가 아닌 담마(dhamma)가 주어

로 사용되고 있다.13)

13) 앞으로는 논술의 편의를 위해서 우리에게 익숙한 行과 法이라는 한자어들 대

신에 상카라(saṅkhārā)와 담마(dhamma)라는 빨리어 원어를 그대로 사용하

기로 한다. 그러나 行蘊, 諸法無我 등과 같이 다른 단어와 결합되어 복합어로

사용될 경우에는 한자어를 그대로 사용한다


그런데 붓다는 이 문제에 대해 아무런 체계적인 설명도 하지 않

기 때문에 많은 논란과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다만

Vinaya-piṭaka(이하 Vin)의 Parivāra는 “모든 상카라는 무상이고

괴로움이고 무아이며 형성된 것들이다. 실로 열반도 무아라는 개

념을 묘사한다.”14)라고 말한다. Parivāra는 Vin에 대한 일종의 주

석서적인 부록으로서 그 일부는 서기 1세기에 스리랑카에서 부가

된 것이다.15) 그래서 이 텍스트는 엄밀하게는 붓다의 친설

(buddha-vacana)이라고 볼 수 없지만 제법무아에서 담마가 주어

로 사용된 이유가 열반과 관계된다는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점에

서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필자는 담마, 무아, 열반의 세 가지 키

워드에 포커스를 맞추어 제법무아에서 담마가 주어로 사용된 이

유를 테라와다 불교의 렌즈를 통해서 탐구하고자 한다. 제II장에서

는 유위법의 속성은 본질적으로 공과 무아임을 논하고, 제III장에

서는 무위법인 열반의 속성도 마찬가지임을 논한다. 제IV장에서는

 

긍정적 실재로서의 열반에 대하여 논한다.

14) Vin V, p. 86, “Aniccā sabbe saṃkhārā dukkhānattā ca saṃkhatā

nibbānañ c’eva paññatti anattā iti nicchayā.” 한글 번역은 필자.

15) Norman(1983) p. 26.


Ⅱ. 담마의 속성과 유위법


빨리어의 담마와 산스끄리뜨어 다르마(dharma)는 모두 √dhṛ

(떠맡다, 지탱하다, 유지하다)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그래서 글자

그대로 ‘떠맡는 것’, ‘지탱하는 것’, ‘유지하는 것’을 나타낸다. 다

르마라는 말은 인도 전통에서는 일반적으로 보편적 진리, 종교적

규범, 사회적 규범, 행위의 규범 등으로 광범하게 쓰이고, 넓게는

선(善), 정의(正義)의 뜻으로도 풀이되고 있다. 초기 인도불교에서

도 이러한 담마의 의미들을 공유한다. 그리고 보편적 진리를 담고

있는 붓다의 가르침(buddha-sāsana)을 가리키기도 한다.16) 이러

한 용법이 초기 인도불교에서 가장 많이 쓰인다.

16) 초기 인도불교에서 담마는 문맥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해석된다. Rupert

Gethin(2004:515-516)에 따르면, 초기 인도불교에서 담마는 ①붓다의 가르침

(teaching), ②올바른 행위(good conduct or behaviour), ③붓다의 가르침을

실천하여 실현되는 진리(truth), ④본성(nature)이나 성질(quality), ⑤자연법

칙(natural law)이나 질서(order), ⑥정신적・물질적 상태나 사물(mental or

physical state or thing)의 여섯 가지 의미들로 요약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

고 ⑥은 다시 ①사바와(sabhāva), ②닛삿따닛지와따(nissatta-nijjīvatā)와 순

냐따(sunnatā), ③빳짜야(paccaya)와 빳쭙빤나(paccayuppanna)와 헤뚜

(hetu), ④네야(neyya)와 빤냣띠(paññatti)의 네 가지 범주로 나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초기 인도불교에는 인도 전통에는 없는 독특한 용법도

있다. 그것은 바로 존재를 이루는 요소(elements of existence), 정

신・물질적 현상들(psycho-physical phenomena) 또는 주・객관적

현상들(subjective and objective phenomena)로서의 담마다. 엄밀

히 말하면, 이러한 담마는 현상계17) 즉 유위법(有爲法, saṅkha

ta-dhamma)만을 가리킨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의미

의 담마가 테라와다의 아비담마 철학에서 키워드가 된다.

17) 현상계(phenomenal world)는 유위법(有爲法, saṅkhata-dhamma)에 대한

다른 표현으로서 6내처(六內處, cha-ajjhattikāyatanāni) 즉 6근(五根,

cha-indriyāni)과 같은 인간의 감각으로 느끼거나 인식할 수 있는 경험의

세계(world of experience) 또는 경험적 실재(empirical reality)를 말한다.

붓다고사(Buddhaghosa)는 Vism에서 saṅkhāra-loka라는 전문 용어로

 

현상계를 표현하고 있다. (Vism, pp. 204-205)


테라와다의 전통에서 담마가 어떻게 정의되고 있는지를 살펴보

기 위해서는 빨리 성전(ti-piṭaka)18)에 대한 주석서들(aṭṭhakathā)

뿐만 아니라 띠까(ṭīkā)와 아누띠까(anu-ṭīkā)까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문헌들은 서기 5세기부터 15세기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 편찬되어서 그 양이 너무나 방대하며 내용도 통일적

으로 제시되고 않지 않다.19) 그래서 이 모두를 다루게 되면 본 논

문의 주제에서 벗어날 염려가 있으므로 여기서는 오직 테라와다

의 가장 유명한 주석가인 붓다고사(Buddhaghosa)의 주석서들에

한정하여 ‘현상으로서의 담마’만을 살펴보기로 한다.

18) 테라와다의 전통에서 성전(聖典) 즉 캐논(canon)은 기본적으로

Sutta-piṭaka, Vinaya-piṭaka, Abhidhamma-piṭaka의 삼장(三藏, ti-

piṭaka)을 말한다. 이에 대해서는 K.R. Norman(1997) pp. 131-148과

김한상(2015) pp. 288-325 참조.

19) Rupert Gethin(2004:515-516)은 테라와다의 아비담마 문헌들 가운데서 테라

와다의 주석서들(aṭṭhakathā)에 흩어진 담마의 의미에 대한 분류를 수집하여

모두 18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담마에 대한 정의가 나타나는 주석서들은 다

음과 같다: Ps I, p. 17; Dhp-a I, p. 22; Paṭis-a I, p. 18; Bv-a, p. 13.


붓다고사는 Dīgha-Nikāya(이하 DN)에 대한 주석서인 Sumaṅg-

alavilāsinī에서 담마를 ① 덕(guṇa), ② 가르침(desanā), ③ 교학(p

ariyatti), ④ 닛삿따(nissatta)로 설명하고 있다.20) 한편 Dhamma-

saṅgaṇī(이하 Dhs)에 대한 주석서인 Atthasālinī에서는 이 네 가지

에서 가르침(desanā)을 빼고 원인(hetu)을 집어넣고, 닛삿따(niss-

atta)는 닛삿따 닛지와따(nissatta-nijjīvatā)로 대체해서 설명하고

있다.21) 한편 Majjhima-Nikāya(이하 MN)에 대한 주석서인 Papa-

ñcasūdanī에서는 ① 교학(pariyatti), ② 진리(sacca), ③ 삼매(sa-

mādhi), ④ 지혜(paññā), ⑤ 자연 현상(pakati), ⑥ 고유한 성질(sa

bhāva), ⑦ 공(空, suññatā), ⑧ 공덕(puñña), ⑨ 범계(犯戒, āpatti),

⑩ 알아야 할 것(ñeyya)의 열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22) 여기서

⑥ 고유한 성질과 ⑦ 공은 사실상 ‘현상으로서의 담마’에 포함된

다.23) 그러면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20) Sv I, p. 99, “Tattha guṇe, desanāyaṃ, pariyattiyaṃ, nissatte ti

evam-ādisu dhamma-saddo vattati.

21) As, p. 38, “dhamma-saddo panāyaṃ

pariyatti-hetu-guṇa-nissattanijjīvatādīsu dissati.”

22) Ps I, p. 17, “Dhammasaddo panāyaṃ pariyatti sacca samādhi paññā

pakati sabhāva suññatā puññāpatti ñeyyādisu dissati.”

23) Gupta(2005) p. 188


닛삿따(nissatta)는 중생을 뜻하는 삿따(satta)에 부정 접두사 nis -가

붙어서 만들어진 용어이다. 그래서 닛삿따는 글자 그대로 ‘중

생이 없음’ 즉 ‘무아’를 뜻한다. 닛삿따닛지와따(nissatta-nijjīvatā)

는 닛삿따와 닛지와따의 복합어이다. 닛지와따(nijjīvatā)는 생명을

뜻하는 지와(jīva)에 부정 접두사 nis-가 붙어서 만들어진 형용사

인 닛지와(nijjīva)에 지말접미사 tā가 붙어 이루어진 용어이다. 그

래서 닛삿따닛지와따는 글자 그대로 ‘중생과 생명이 없음’ 즉 ‘무

아’를 뜻한다.


한편 Dhammapadaṭṭhakathā(이하 Dhp-a)24)는 닛삿따닛지와담

마(nissatta-nijjīva-dhammā)라고 해서 닛삿따와 닛지와를 모두

 

사용하고 있다.25) 이러한 용어들은 모두 궁극적인 이치에서 중생

이나 생명과 같은 개념적 존재 즉 빤냣띠(paññatti)가 없음을 함축

한다.26) 다시 말해서, 우리가 ‘존재’나 ‘사람’이나 ‘자아’나 ‘중생’

이나 ‘생명’ 등으로 부르는 관습적 일상용어들(vohāra-vacana)은

모두 온(蘊, khandha), 처(處, āyatana), 계(界, dhātu)와 같은 비인

격적인 실체들(impersonal realities)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변

하지 않고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닛

삿따나 닛삿따닛지와따는 ‘공’이나 ‘비어 있음’이나 ‘실체가 없음’

으로 해석되는 순냐따(suññatā)와 같은 개념이라고 보아도 좋다.

순냐따는 무아에 대한 다른 표현이다. 아난다(Ānanda)가 붓다에

게 순냐따의 의미를 묻자, 붓다는 “아난다여, 자아나 자아에 속하

는 것이 공하기 때문에 공한 세상이라 한다.”라고 답한다.27) 이러

한 의미에서 테라와다의 아비담마 철학자들도 ‘모든 담마들’ 즉

유위법이 분석되는 기본 요소들과 열반이라는 무위법도 무아라고

말한다.28)

24) 森祖道(1984: 93)는 테라와다의 주석서들을 저자에 따라서 크게 일곱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① 붓다고사(Buddhaghosa)의 주석서들, ② 붓다고사의 저작

이 의문시되는 주석서들, ③ 담마빨라(Dhammapāla)의 주석서들, ④ 우빠세

나(Upasena)의 주석서들, ⑤ 마하나마(Mahānāma)의 주석서들, ⑥ 저자가 분

명하지 않은 주석서들, ⑦ 붓다닷따(Buddhadatta)의 주석서들. 이에 따르면

Dhp-a는 붓다고사의 저작이 의문시되는 주석서로 분류된다.

25) Dhp-a I, p. 22, “khandhā hontīti, ayaṃ nissattadhammo nāma

nijjīvadhammo ti pi eso eva. Tesu imasmiṃ ṭhāne

nissatta-nijjīvadhammo adhippeto, so atthato tāyo arūpino khandhā:

vedanākkhandho saññākkhandho sañkhārakkhandho ti etehi

manopubbañgamā.”

26) 테라와다의 아비담마에 따르면, 중생(satta)이나 생명(jīvata)은 세속적인 개념

이나 명칭을 뜻하는 빤냣띠(paññatti)이다. 그래서 빤냣띠는 관습적 일상용

어(vohāra-vacana)나 인습적 진리(samutti-sacca)와도 같다. 그리고 이와 반

대되는 것이 궁극적 실재인 담마(dhamma)이다. 이는 빠라맛타(paramattha),

빠라맛타 담마(paramattha-dhamma), 빠라맛타 삿짜(paramatta-sacca)와도

같다.

27) SN IV, p. 54, “Yasamā ca kho Ānanda suññam attena vā attaniyena vā

tasmā Suñño loko ti vuccati.” 한글 번역은 필자.

28) Karunadassa(2010) p. 38.


한편 붓다고사는 사바와(sabhāva)라는 또 다른 용어를 써서 담

마를 설명한다. 사바와(sabhāva)에서 바와(bhāva)는 √bhū(되다,

있다)에서 파생된 남성명사로서 성(性)의 기능이나 물리적 성질을

가리키며, sa는 ‘자신의(saka)’를 뜻하는 전치사이다. 그래서 사바

와는 ‘고유한 성질(intrinsic nature)’이나 ‘자신의 존재(own exist-

ence)’라고 번역될 수 있다.29) 그런데 이 용어는 빨리 성전에서는

그 용례가 거의 보이지 않고 후대의 주석서들에서 더 이상 분해되

지 않는 궁극적 단위나 실재들의 고유한 성질이나 특성을 설명하

는데 사용된다.30) 이와 동의어로 사바와락카나(sabhāva-lakkha-

ṇa)나 살락카나(salakkhaṇa) 등이 있다. 붓다고사는 “담마들은 자

신들의 고유한 성질들을 지니거나 조건들에 의해 생기기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31)라고 담마를 설명한다. 이와 같이 테라와다는

담마들이 자신의 고유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예컨대 A라

는 법과 B라는 법이 서로 구별되는 이유는 각각이 가지고 있는 고

유한 성질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

면, 선법(善法, kusala-dhamma)과 불선법(不善法, akusala-dha-

mma)과 무기법(無記法, avyākata-dhamma)이 각각 다른 법으로

인정되는 이유는 각각의 고유한 성질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

다. 붓다고사가 고유한 성질을 선법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32) 마하나마(Mahānāma)33)도 Paṭisamb-

hidāmagga(이하 Paṭis)에 대한 주석서인 Saddhammappakāsinī

(이하 Paṭis-a)에서 이러한 붓다고사의 정의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

다.34)

29) 빨리어 사바와(sabhāva)에 상응하는 북전의 용어로는 설일체유부(說一切有

部, Sarvāstivāda)의 사브하와(svabhāva) 또는 드라위야(dravya)라는 용어들

이 있다. 아들은 한역 불전들에서 實, 實物, 自性, 法體 등으로 번역되었다.

그런데 Karunadasa(2010: 35)는 테라와다가 설일체유부의 영향을 받아서 사

바와라는 용어를 담마에 대한 또 다른 표현으로 사용한 것으로 본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테라와다의 사바와의 용법은 설일체유부의 사브하와 또는

드라위야의 용법과 완전히 같다고 보기 어렵다. 그 이유는 제II장의 뒷부분에

서 논한다. 사바와에 대해서는 Karunadasa(2010) pp. 34-3) 참조.

30) Karunadassa(2010) p. 34

31) As, p. 39, “Attano pana sabhāvan dhārentī ti dhammā. Dhāriyanti vā

paccayehi dhāriyanti vā yathā sabhāvato ti dhammā.” 한글 번역은 필자.

다음도 참조하라. Ps I, p. 17, “attano lakkhaṇaṃ dhārentīti dhammā.”

32) Ps I, p. 17, “kusalā dhammā ti ādisu sabhāve.”

33) Paṭis-a에 따르면, 저자는 마하위하라(Mahā-vihāra)에서 어떤 대신이 기증한

빠리웨나(pariveṇa)에 머물던 마하나마(Mahānāma)라고 한다. (Paṭis-a I, pp.

703-704) 그는 스리랑카의 고대 연대기인 Mahāvaṃsa의 저자이기도 하다.

34) Paṭis-a I, p. 18, “Ayaṃ hi kusalā dhammā, akusala dhammā, avyākatā

dhammā, ti ādisu sabhave dissati.”


이와 관련하여 다뚜(dhātu)라는 용어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

뚜는 담마와 마찬가지로 √dhṛ(지탱하다, 유지하다)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이 용어는 네 가지 큰 요소들(cattāri-mahā-bhūtāni)35)

이나 18계(十八界, aṭṭhārasa-dhātuyo)와 같이 물질과 정신을 이

루는 원소나 요소의 의미로 주로 사용된다. 붓다고사는 Visuddhi-

magga(이하 Vism)에서 다섯 가지 의미들로 다뚜를 정의하면서 이

를 닛지와(nijjīva)의 동의어로 해석하고 있다.36) SN에 대한 주석

서인 Sāratthappakāsinī에서도 마찬가지이다.

35) 네 가지 큰 요소들(cattāri-mahā-bhūtāni)이란 물질(rūpa)을 구성하는 땅의

요소(pathavī-dhātu), 물의 요소(āpo-dhātu), 불의 요소(tejo-dhātu), 바람의

요소(vāyo-dhātu)를 말한다.

36) Vism, p. 485, “Api ca dhātū ti nijjīvamattass’ ev’ etaṃ adhivacanam.”


요소들의 다양함(dhātu-nānatta)이란 중생 없음(nissatta)이란 뜻과

공(suññata)이라는 뜻으로 불리는 고유한 성질(sabhāva)을 지닌다는

의미에서 다뚜라는 이름을 얻는 법들의 다양한 고유한 성질을 말한

다.37)

37) Spk II, p. 131, “nissattaṭṭha-suññataṭṭhasaṅkhātena sabhāvaṭṭhena dhātū

ti laddhanāmānaṃ dhammānaṃ nānāsabhāvo dhātunānattaṃ.” 한글

번역은 필자.


이와 같이 다뚜도 담마와 마찬가지로 무아와 공의 속성을 공유

한다. 그렇다면 “고유한 성질을 지닌 담마는 무아나 공의 개념과

상충하지 않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즉 담마는 고유한

 

성질을 지녔기 때문에 그것은 더 이상 분해되지 않는 궁극적 단위

나 실재들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고유한 성질을 지닌 것이

담마라는 테라와다의 정의는 담마가 존재론적 실체(ontological

reality)라고 의미한다기보다는 담마의 근저에 지속되는 영구적 실

체가 없음을 의미한다. 붓다고사는 담마들이 비록 고유한 성질을

지니고는 있지만 그것들은 조건들에 의해 생기는 정신・물질적 현

상들일 뿐이라고 분명히 천명하고 있다.38) 독일 출신의 테라와다

승려인 냐나포니카 테라(Nyanaponika Thera)는 ‘관계성의 원리

(principle of relativity)’라는 용어를 통해서 테라와다의 담마 이론

은 결코 다원주의(pluralism)가 아니라고 설득력 있게 논술하고 있

다. 그는 고유한 성질을 지닌 것이 담마라는 테라와다의 정의는,

‘내재적 존재’라는 문제들보다, 고유한 성질과는 별개인 ‘유지자’

나 ‘본질’에 대한 부정과 더 깊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39)

38) As, p. 39, “Attano pana sabhāvan dhārentī ti dhammā. Dhāriyanti vā

paccayehi dhāriyanti vā yathā sabhāvato ti dhammā.”

39) Nyanaponika Thera(2010) pp. 40-41.


요컨대, 더 이상 분해되지 않는 궁극적 단위나 실재인 담마의

고유한 성질이나 특성을 표현하는데 쓰이는 사바와라는 용어와,

무아와 공을 표현하는데 쓰이는 닛삿따, 닛지와따, 순냐따, 다뚜라

는 용어들은 서로 모순되지 않으며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제법

 

무아에서 담마가 주어로 쓰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Ⅲ. 열반과 무위법


앞서 필자는 ‘현상으로서의 담마’ 즉 유위법의 고유한 성질은

본질적으로 공과 무아임을 살펴보았다. 이제 무위법(無爲法, asa

ṅkhata-dhamma)에 대해 살펴볼 차례이다. 유위법과 무위법의 구

별은 이미 초기 인도불교에서도 나타난다. 붓다는 SN의 Kāya-su-

tta에서 무위법을 탐욕(lobha), 성냄(dosa), 어리석음(moha)의 소

멸로 정의한다.40) 마찬가지로 붓다의 상수제자인 사리뿟따(Sārip-

utta)도 SN의 Nibbāna-sutta에서 “열반이 무엇인가?”라는 잠부카

다까(Jambukhādaka)의 당돌한 질문에 대해 그렇게 답변하고 있

다.41) MN의 Ariyapariyesanā-sutta와 SN의 Āyācana-sutta에서

붓다는 열반의 상태를 모든 상카라들의 가라앉음(sabba-saṅkhāra

-samatho)으로 묘사하고 있다.42) 또 붓다는 “모든 상카라들을

가라앉히고, 모든 생존에 대한 집착을 포기함, 갈애의 소진, 탐욕

의 빛바램, 소멸, 열반, 이러한 것들을 본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

다.”라고 말한다.43) 그리고 Udāna(이하 Ud)에서도 붓다는 열반을

형성되지 않은 것(asaṅkhata), 즉 무위법으로 묘사하고 있다.44)

이렇게 열반은 출세간(出世間, lokuttara)이며 유위(有爲, saṅkhata)

를 완전히 벗어난 무위(無爲, asaṅkhata)이며 고요함(upasama)

을 특징으로 하는 하나의 본성을 가졌다. 비록 열반은 본성에 있

어서는 하나지만 남음(upādi)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측면에서 남

음이 있는 열반(有餘依涅槃, saupādisesa-nibbāna)과 남음이 없는

열반(無餘依涅槃, anupādisesa-nibbāna)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

는 ‘받은 것이 남아 있는 열반’이라는 뜻이며 아라한의 경우 번뇌

는 완전히 소멸하였지만 그의 수명이 남아 있는 한 과거 집착의

산물인 오온(五蘊, pañcakkhandhā)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에 이

렇게 부른다.

40) SN IV, p. 359, “Katamañca bhikkhave asaṅkhataṃ. Yo bhikkhave

rāgakkhayo dosakkhayo mohakkhayo idaṃ vuccati bhikkhave

asaṅkhataṃ.”

41) SN IV, p. 251, “Yo kho avuso ragakkhayo dosakkhayo mohakkhayo idaṃ

vuccati nibbānanti.”

42) MN I, p. 167; SN I, p. 136, “sabbasaṅkhārasamatho

sabbūpadhipaṭnissaggo taṇhakkhayo virāgo nirodho nibbānaṃ.”

43) DN II, p. 36; MN I, p. 167, “Idam pi kho ṭhānaṃ duddasaṃ, yadidaṃ

sabba-saṃkhāra-samatho sabbūpadhi-paṭinissaggo taṇhakkhayo virāgo

nirodho nibbānaṃ.” 한글 번역은 필자.

44) Ud, pp. 80-81, “Atthi bhikkhave ajātaṁ abhūtaṁ akataṁ asaṅkhataṁ, no

ce taṁ bhikkhave abhavissa ajātaṁ bhūtaṁ akataṁ asaṅkhataṁ, na

yidha jātassa bhūtassa katassa saṅkhatassa nissaraṇaṁ pannāyetha.

yasmā ca kho bhikkhave atthi ajātaṁ bhūtaṁ akataṁ asaṅkhataṁ,

 

tasmā jātassa bhūtassa katassa saṅkhatassa nissaraṇaṁ pannāyatī’ti.”


앞서 언급한 대로, Vin의 Parivāra는 “모든 상카라들은 무상이

고 괴로움이고 무아이며 형성된 것들이다. 실로 열반도 무아라는

개념을 묘사한다.”45)라고 말함으로써 열반이 무아임을 시사한다.

그리고 붓다는 SN의 Channa-sutta에서 “모든 상카라들은 무상하

고 모든 담마들은 무아이다(sabbe saṅkhārā aniccā, sabbe

dhammā anattā ti).”46)라고 주어와 술어가 완벽하게 갖추어진 문

장으로 무상과 무아를 천명한다. 이 구절에 대해서 붓다고사는 다

음과 같은 주석을 달고 있다.

45) Vin V, p. 86, “Aniccā sabbe saṃkhārā dukkhānattā ca saṃkhatā

nibbānañ c’eva paññatti anattā iti nicchayā.” 한글 번역은 필자.

46) SN III, pp. 132ff, “Rūpam aniccam pa viññāṇam aniccaṃ Rūpam anattā

vedanā saññā saṅkhārā viññāṇam anattā sabbe saṅkhārā aniccā sabbe

dhammā anattā ti.”


제행무상은 3계의 모든 상카라들(sabbe tebhūmaka-saṅkhārā)은

무상하다는 말이다. 제법무아는 4계의 모든 담마들(sabbe catu-

bhūmaka-dhammā)은 무아라는 말이다. 이와 같이 모든 것들

(sabba)이란 그들 비구 장로들이 무상의 특성과 무아의 특성을 권고하

는 것이며, 실로 두 가지 특성들만 말하고서 고의 특성은 말하지 않았

다.47)

47) Spk II, p. 318, “Sabbe saṅkhārā aniccā ti, sabbe tebhūmaka-saṅkhārā

aniccā. Sabbe dhammā anattā ti, sabbe catu-bhūmaka-dhammā anattā.

Iti sabbe pi te bhikkhū theraṃ ovadantā anicca-lakkhaṇaṃ

anatta-lakkhaṇan ti dve va lakkhaṇāni kathetvā dukkha-lakkhaṇaṃ na

kathayiṃsu.” 한글 번역은 필자


붓다고사는 Vism에서 4계(四界, catu-bhūmaka)가 욕계(欲界,

kāmāvacara), 색계(色界, rūpāvacara), 무색계(無色界, arūpāva-

cara)와 출세간(出世間, lokuttara)을 뜻한다고 설명한다.


이 가운데서 과보(vipāka)는 세계(bhūmi)에 따라서 네 가지이다. 즉

욕계(欲界, kāmāvacara), 색계(色界, rūpāvacara), 무색계(無色界,

arūpāvacara), 출세간(出世間, lokuttara)이다.48)

48) Vism, p. 454, “Tattha vipākaṃ bhūmito catubbidhaṃ: kāmāvacaraṃ,

rūpāvacaraṃ, arūpāvacaraṃ, lokuttarañ ca. Tattha kāmāvacaraṃ

duvidhaṃ: kusalavipākaṃ, akusalavipākañ ca. Kusalavipākam pi

duvidhaṃ: ahetukaṃ, sahetukañ ca.” 한글 번역은 필자.


49) Dhs, p. 263, “Cattāro maggā apariyāpannā cattāri ca sāmaññaphalāni

nibbānañ ca-ime dhammā apariyāpannā.” Dhs, pp. 180, 184도 참조.


이러한 두 설명들을 종합해보면, 3계는 욕계, 색계, 무색계의 유

위법을 가리키고, 4계는 이러한 3계의 유위법과 출세간의 무위법

을 모두 포괄한다. 그래서 제법무아에서 ‘상카라’가 아닌 ‘담마’가

주어로 사용된 이유는 상카라가 5온 등의 유위법만을 포함하는데

반해서 담마는 유위법뿐만 아니라 무위법인 열반까지도 포괄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무위법인 열반도 유위법인 현상계와 마찬가지로

무아의 속성을 공유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다소 후기의 빨리

성전인 Paṭis에서 열반은 최상의 공(agga-suññā)이나 궁극적인 공

(paramatta-suññā)50)으로 묘사된다.

50) Paṭis II, p. 184, “Idaṃ sampajānassa pavattapariyādānaṃ

sabbasuññatānaṃ paramaṭṭhasuññan ti.” 한글 번역은 필자.


최상의 공(agga-suñña)이란 무엇인가? 이 구절(pada)은 최상이고,

이 구절은 뛰어나고, 이 구절은 수승하고, 다시 말해서, 모든 상카라들

의 가라않음(sabba-saṅkhāra-samatho)이고, 모든 집착의 버림

(sabbūpadhipaṭinissago)이고, 갈애의 소멸(taṇhakkhaya)이고, 탐욕의

빛바램(virāga)이고, 소멸(nirodha)이고, 열반이다.51)

51) Paṭis II, p. 179, “Katamaṃ aggasuññaṃ? aggaṃ etaṃ padaṃ, seṭṭhaṃ

etaṃ padaṃ, visiṭṭhaṃ etaṃ padaṃ yadidaṃ sabbasaṅkhārasamatho

sabbūpadhipaṭinissago taṇhakkhayo virāgo nirodho nibbānaṃ. idaṃ

aggasuññaṃ.” 한글 번역은 필자.


분명한 앎을 지닌 이(sampajāna)가 유전(流轉, pavatta)을 끝내는,

모든 공들 가운데 궁극적인 공(paramaṭṭha-suñña)이란 무엇인가? 여

기에서 분명한 앎을 지닌 이는 출리(出離, nekkhamma)에 의해서 감

각적 욕구(kāmacchanda)의 유전을 끝낸다. 성내지 않음(abyāpāda)에

의해서 성냄(byāpāda)의 유전을 끝낸다. 빛에 대한 인식(āloka-saññā)

에 의해서 게으름과 무기력(thīna-middha)의 유전을 끝낸다. 산란하지

않음(avikkhepa)에 의해서 들뜸(uddhacca)의 유전을 끝낸다. 법에 대

한 결정(dhamma-vavatthā)에 의해서 의심(vicikicchā)의 유전을 끝낸

다. 지혜(ñāṇa)에 의해서 무명(avijjā)의 유전을 끝낸다. 환희(pāmojja)

에 의해서 혐오(arati)의 유전을 끝낸다. 제1 선정(paṭhamajjhāna)에

의해서 장애들(nīvaraṇānaṃ)의 유전을 끝낸다...(반복)...아라한도

(arahatta-magga)에 의해 모든 번뇌들(sabba-kilesānaṃ)의 유전을 끝

낸다.52)

52) Paṭis II, p. 184, “Katamaṃ sampajānassa pavattapariyādānaṃ
sabba-suññatānaṃ paramaṭṭhasuññaṃ? Idha sampajāno nekkhammena
kāmacchandassa pavattaṃ pariyādiyati, abyāpādena byāpādassa
pavattaṃ pariyādiyati, ālokasaññāya thīnamiddhassa pavattaṃ
pariyādiyati, avikkhepena uddhaccassa pavattaṃ pariyādiyati,
dhammavavatthānena vicikicchāya pavattaṃ pariyādiyati, ñāṇena
avijjāya pavattaṃ pariyādiyati, pāmojjena aratiyā pavattaṃ pariyādiyati,
paṭhamajjhānena nīvaraṇānaṃ pavattaṃ
pariyādiyati...pe...Arahattamaggena sabbakilesānaṃ pavattaṃ
pariyādiyati.” 한글 번역은 필자.

Kathāvatthu(이하 Kv)에 대한 주석서인 Kathāvatthuppa-

karaṇa-aṭṭhakathā도 공은 5온과 열반의 무아 특성(anatta-lak-

khaṇa)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고 말한다.53) 그러므로 제법

무아에서의 담마는 무위법인 열반을 포괄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담마는 유위법과 무위법을 모두 포괄할 수 있기 때

문에 제법무아에서 주어로 사용된 것이다. 월폴라 라훌라(Walpola

Rāhula)는 대승불교에서도 아무아(我無我, pudgala-nairātmya)뿐

만 아니라 법무아(法無我, dharma-nairātmya)도 강조하는 점에서

초기 인도불교와 어떠한 차이도 없다고 주장한다.54) 나라다 테라

(Nārada Thera)는 다음과 같이 고찰한다.

53) Kv-a, pp. 177-178.

54) Rāhula, Walpola(1990) p. 58.


담마는 유위법과 무위법 모두에 적용될 수 있다. 담마는 유위법과

열반을 포함하는 무위법 모두를 포괄한다. 열반조차도 영원한 자아로

부터 자유롭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붓다는 세 번째 정형구에서 담

마를 주어로 사용하였다. 열반은 영혼이 부재한, 긍정적 출세간의 상

태이다.55)

55) Narada Thera(1995) p. 225.


Ⅳ. 긍정적 실재로서의 열반


붓다는 열반을 철학적으로 정의하는데 많은 말들을 쓰지 않았

다. 왜냐하면 조건에 의하지 않고 초월적이고 출세간적인 열반은

조건에 의하고 명시적이고 세간적인 것에 필연적으로 묶이는 개

념들로서 정의가 쉽게 되지 않기 때문이다.56) 그래서 붓다는 깨닫

고 나서 열반이 출세간이고 추론의 범위를 초월한 것(atakkāva-

caro)이기 때문에 언어로서 그것을 표현한다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님을 선포하였을 것이다.57) 그렇다고 해서 붓다가 열반의

성질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거나 확답을 피한 것은 아니

었다.

56) Bhikkhu Ṅāṇamoli and Bhikkhu Bodhi(2005) p. 32.


초기 인도불교의 텍스트들에서 열반에 대한 고찰은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 모두로 설명된다. 긍정적인 측면으로서의

열반은 열반을 영원한 실재(everlasting reality)나 궁극적 실재

(ultimate reality)로 보는 적극적・긍정적 견해이다. 루이스 데 라

발레 뿌생(Louis de La Vallée Poussin)의 표현을 빌리자면, ‘행복

한 상태로서의 열반(nirvāṇa as a happy state)’을 인정하는 입장

이고,58) 에띠엔 라모뜨(Étienne Lamotte)의 표현을 빌리자면, ‘존

재로서의 열반(nirvāṇa-existence)’을 인정하는 입장이다.59)

59) Lamotte(1988) p. 41.


실제로 초기 인도불교의 텍스트들에서는 열반이 영역(avacara)

이나 세계(dhātu)와 같은 용어들로 언급되며, 최상의 행복

(parama-sukha),60) 불사(不死, amata), 해방(mutti), 섬(dīpa), 피

안(彼岸, pāra), 도피안(到彼岸, parāyaṇa), 동굴(leṇa), 구호소

(tāṇa), 귀의(saraṇa)61) 등과 같은 문학적 비유를 통해서 초월적・

궁극적 실재로도 묘사되고 있다. 더 나아가 붓다는 SN의 Āsīvisô-

pama-sutta에서 열반을 네 마리 독사 따위와 같은 각종 위험들을

피해서 뗏목을 타고 도달한 ‘안전하고 아무 두려움이 없는 저 언

덕(pārimaṃ tīraṃ khemam appaṭibhaya)’이라고 서정적으로 묘

사하고 있다.62) 테라와다의 텍스트들에서도 열반은 장엄한 도시

(puram uttamaṃ)와 열반의 도시(nibbāna-nagara)와 같은 문학

적 용어들로 묘사되고 있다.63)

60) 붓다는 Majjhima-Nikāya의 Māgaṇḍiya-sutta에서 열반이 최상의

행복(paramaṃ sukhaṃ)이라고 단언한다. (MN I, pp. 509, 510)

Suttanipāta에서는 열반의 실현(nibbāna-sacchikiriyā)이 으뜸가는

축복(maṅgala-mutta)이자 최상의 행복(parama-sukha)이라고 말한다. (Sn

267게)

61) SN IV, pp. 359-373.

62) SN IV, p. 175, “Pārimaṃ tīraṃ khemam appaṭibhayan ti kho bhikkhave

nibbānassetam adhivacanaṃ.”

63) Mil, p. 333; Vism, p. 10.


요소나 실재 등을 의미하는 다뚜가 열반을 형용하는데 사용되

고 있는 점도 긍정적 실재로서의 열반이라는 이미지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예컨대, Itivuttaka에서 유여의열반계(有餘依涅槃界,

saupādisesā-nibbāna-dhātu)와 무여의열반계(無餘依涅槃界,

an- upādisesā-nibbāna-dhātu)라는 용례들을 볼 수 있다.”64)

DN의 Mahāparinibbāna-sutta에서도 동일한 용례들이 발견된다.

64) It, p. 38, “Dve mā bhikkhave nibbānadhātuyo. Katamā dve?

Saupādisesā ca nibbānadhātu anupādisesā ca nibbānadhātu.”


다시 아난다(Ānanda)여, 여래가 무여의열반계로 반열반할 때에 땅

이 흔들리고 아주 흔들리고 강하게 흔들리고 요동친다. 이것이 큰 지

 

진이 일어나는 여덟 번째 원인(hetu)이요 여덟 번째 조건(paccaya)이

다. 이들 여덟 가지 원인과 여덟 가지 조건 때문에 큰 지진은 일어난

다.65)

65) DN II, pp. 108-109, “Puna ca paraṃ Ānanda yadā Tathāgato

anupā-disesāya nibbāna-dhātuyā parinibbāyati, tadā’ yaṃ paṭhavī

kampati saṃkampati sampakampati sampavedhati. Ayaṃ aṭṭhamo hetu

aṭṭhamo paccayo mahato bhūmi-cālassa pātubhāvāya. Ime kho Ānanda

aṭṭha hetū aṭṭha paccayā mahato bhūmi-cālassa pātubhāvāyāti.” 한글

번역은 필자가 각묵스님(2006:220-221) 의 번역을 다소 수정한 것이다


참으로 그러하다, 아난다여. 참으로 그러하다, 아난다여. 아난다여,

두 가지 경우에 여래의 몸은 지극히 청정하고 피부색(chavi-vaṇṇa)은

깨끗해진다. 그러면 그 두 가지 경우란 어떤 것인가? 아난다여, 여래

가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 anuttara-sammā-sambodhi)을 이룩한 그

밤과 여래가 무여의열반계로 반열반하는 밤이다. 아난다여, 이러한 두

가지 경우에 여래의 몸은 지극히 청정하고 피부색은 깨끗해진다.66)

66) DN II, p. 134, “Evam etaṃ Ānanda. Dvīsu kho Ānanda kālesu ativiya

Tathāgatassa parisuddho hoti chavi-vaṇṇo pariyodāto. Katamesu dvīsu?

Yañ ca Ānanda rattiṃ Tathāgato anuttaraṃ anupādisesāya

nibbāna-dhātuyā parinibhāyati, imesu kho Ānanda dvīsu kālesu ativiya

Tathāgatassa parisuddho hoti chavi-vaṇṇo pariyodāto.” 한글 번역은

필자가 각묵스님(2006:258)의 번역을 다소 수정한 것이다.


그 어떤 것이 둘인가? 그 탁발 음식(piṇḍapāta)을 들고서 여래가 무

상정등각을 이룩한 것과 그 탁발 음식을 들고 여래가 무여의열반계로

반열반한 것이다.67)

67) DN II, p. 136, “Katame dve? Yañ ca piṇḍapātaṃ bhuñjitvā Tathāgato

anuttaraṃ sammā-sambodhiṃ abhisambujjhati, yañ ca piṇḍapātaṃ

bhuñjitvā Tathāgato anupādisesāya nibbāna-dhātuyā parinibbāyati.” 한글

번역은 필자가 각묵스님(2006:261)의 번역을 다소 수정한 것이다.


여기서 여래가 무여의열반계로 반열반하였다. 아난다여, 이곳이 믿

음(saddhā)을 지닌 양가집 아들(kula-putta)이 보아야 하고 종교적 감

 

동을 일으켜야 하는 장소이다.68)

68) DN II, p. 140, “Idha Tathāgato anupādisesāya nibbāna-dhātuyā

parinibbuto ti Ānanda saddhassa kula-puttassa dassanīyaṃ

saṃvejanīyaṃ ṭhānaṃ.” 한글 번역은 필자가 각묵스님(2006:267)의 번역을

다소 수정한 것이다. 다음도 참조하라. AN II, p. 120


아난다여, ‘여기서 여래가 태어났다.’ ‘여기서 여래가 무상정등각을

이룩하였다.’ ‘여기서 여래가 위없는 법륜(dhamma-cakka)을 굴렸다.’

‘여기서 여래가 무여의열반계로 반열반하였다.’라면서 믿음을 가진 비

구들과 비구니들과 우바새들과 우바이들이 방문할 것이다.69)

69) DN II, p. 141, “Āgamissanti kho Ānanda saddhā bhikkhu-bhikkhuniyo

upāsaka-upāsikāyo ‘Idha Tathāgato anuttaraṃ sammā-sambodhiṃ

abhisambuddho’ ti pi, ‘Idha Tathāgatena anuttaraṃ dhamma-cakkaṃ

pavattitan’ ti pi, ‘Idha Tathāgato anupādisesāya nibbāna-dhātuyā

parinibbuto’ ti pi.” 한글 번역은 필자가 각묵스님(2006:267-268)의 번역을

다소 수정한 것이다.


붓다는 Udāna에서 법과 율에서 놀랍고 경이로운 여덟 가지 일

들(aṭṭha accariyā abbhutā dhammā) 가운데 하나로서 열반을 늘

거나 줄지 않는 ‘대양(mahā-samudda)’에 비유하고 있다.


다시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이 세상에 강은 그 어떤 것이건 대양으

로 이르고 또 허공에서 비가 떨어지지만 그 때문에 대양이 모자라거나

넘친다고 알려져 있지 않은 것처럼, 많은 비구들이 무여의열반계로 반

열반에 들지만, 그 때문에 열반계가 모자라거나 넘친다고 알려지지 않

는다.70)

70) Ud, p. 55, “seyyathā pi bhikkhave yā ca loke savantiyo mahāsamuddaṃ

appenti yā ca antalikkhā dhārā papatanti, na tena mahāsamuddassa

ūnattaṃ vā pūrattaṃ vā pannāyati, evam eva kho bhikkhave bahū ce pi

bhikkhū anupādisesāya nibbānadhātuyā parinibbāyanti, na tena

nibbānadhātuyā ūnattaṃ vā pūrattaṃ vā pannāyati.” 한글 번역은 필자.

붓다는 AN의 Pahārada-sutta에서도 빠하라다(Pahārada)라는

아수라왕(asurinda)에게 동일한 비유를 들면서 열반계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AN IV, pp. 202-203)


비록 초기 인도불교의 텍스트는 아니지만 Milindapañha71)와

 

Jātaka72)와 Paṭis73) 등과 같은 빨리 문헌들에서도 열반계의 용례

가 나타나며, 테라와다의 일곱 논서들(satta-pakaraṇa) 가운데 하

나인 Dhs에서는 열반이 무위계(無爲界, asaṅkhatā-dhātu)74)나 무

위법(無爲法, asaṅkhatā-dhamma)75)이라는 이름으로 빈번하게 등

장한다. 이와 같이 초기 인도불교의 텍스트들과 테라와다의 문헌

들에서 열반계라는 표현은 거의 대부분 무여의열반이나 반열반의

문맥에서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그 이유를 아는 것이 상당히 중

요하다. 각묵스님이 지적한대로, 다뚜라는 술어를 써서 열반을 표

현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칫 열반, 특히 붓다나 아라한의 반

열반(무여의열반)을 아무것도 없는 허무・적멸의 경지로 오해할 소

지를 없애기 위해서일 것이다.76)

71) Mil, p. 312.

72) Ja I, p. 55. Jātaka는 아주 이른 시기에 성립한 문헌이긴 하지만 그 자체로는

오직 테라와다 고유의 문헌이다. 그리고 산문은 주석서에 해당한다.

73) Paṭis II, p. 184.

74) Dhs p. 181.

75) Dhs p. 181, p. 193, p. 244.

76) 각묵스님(2006) p. 221.


이상과 같이 붓다가 일상적인 언어로 열반을 긍정적으로 묘사

한 이유는 열반이 매우 바람직하고 삶의 최대 목표로서 추구할 만

한 가치가 있음을 부각시켜 중생들로 하여금 열반에 도달하도록

재촉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77) 그러나 만약 이러한 열반에 무상

과 고의 법칙이 적용된다고 한다면, 불교의 궁극적 이상인 열반의

의의와 가치마저 완전히 부정되는 꼴이 될 것이다. 그래서 제행무

상과 제법무아에서 담마 대신에 상카라가 주어로 쓰였다고 생각

된다. 릴리 데 실바(Lilly De Silva)는 Dhp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게

송에서 상카라가 쓰인 이유가 영원하고 지복의 경지인 열반을 제

 

외하기 위해서일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77) 김한상(2016) p. 297


처음 두 정형구들에서 담마가 주어로 사용되지 않은 점은 중요하다

그 목적은 영원하고 최고의 행복인 열반을 제외하고자 함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하고 최고로 행복하지만 자아가 없는 상태를 추

정할 수 있다. 그러한 상태가 바로 열반이다. 그것은 세간적인 모든 것

들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어야 한다.78)

78) De Silva(1996) p. 16.


주지하듯이, 무아설은 불교의 핵심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열반

도 오온의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야겠지만, 그 실체까

지도 부정한다면 단견(斷見, uccheda-diṭṭhi)의 오류에 빠지게 될

것이다.79) 그래서 붓다는 열반이 긍정적인 초월적 실재이면서도

무아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제법무아에서 담마를 주어로 사용하였

다고 생각된다.

79) Nyanaponika Thera(2010) p. 104.


Ⅴ. 맺음말


무상, 고, 무아는 존재의 세 가지 속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세

가지 속성들은 가장 이른 시기부터 정형구로 만들 필요성이 대두

되어서 이들에 Sabbe saṅkhārā와 Sabbe dhammā가 각각 붙어서

주어와 술어가 완벽하게 갖추어진 세 가지 정형구들, 즉 제행무

상, 일체개고, 제법무아로 정형화된다.


제행무상과 일체개고는 모든 상카라들이 무상하고 괴로움이라

고 말한다. 반면에 제법무아는 모든 담마들이 무아라고 말한다.

하지만 붓다는 세 정형구들에서 주어가 달리 쓰이게 된 이유에 대

 

해서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필자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

는 키워드가 담마와 무아 그리고 열반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이 문

제를 탐구해보았다. 그 결과 두 가지 타당한 답안을 유추할 수 있

었다.


첫째, 붓다는 유위법인 오온과 무위법인 열반에 모두 적용되는

담마의 속성이 무아와 공이기 때문에 제법무아에서 담마를 주어

로 사용하였다.


둘째, 붓다는 제법무아에서만 담마를 주어로 사용함으로써 열반

이 무상과 고에 휘둘리지 않는 긍정적 출세간의 상태임을 보여주

고자 했다.


이러한 답안은 사실 테라와다의 관점과도 일치한다. 왜냐하면

필자의 논거의 많은 부분이 붓다고사의 주석서적 해석으로부터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붓다는 제법무아에서 담마가 주어로 쓰인 이유에

대해 속 시원한 답변을 하지 않았던 것일까? 이는 본문에서 논의

하지 않은 문제이다. 아마도 붓다는 자신의 제자들과 후대의 아비

담마 철학자들(ābhidhammika)이 꿰뚫는 지성으로 자신이 간략하

게 제시한 무상・고・무아의 세 가지 정형구들을 자세히 설명하고

응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점은 붓다가 종종 의도적

으로 비구들에게 자신의 교설을 짧게 설해서 철학적으로 영민한

제자들로 하여금 이를 보다 상세하게 설명하도록 한 사실80)을 생

각해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그리고 붓다는 오직 괴로움과 괴로움

의 소멸만을 강조했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원래 붓다가

무상・고・무아의 세 가지 특성들을 설한 기본 취지는 5온(五蘊,

pañcakkhandha), 12처(十二處, dvādasāyatanāni), 18계(十八界,

aṭṭhārasa-dhātuyo)가 모두 영원하지 않고 만족스럽지 못하고 자

 

아나 실체가 없음을 바르고 분명하게 알아서 이들을 싫어하고 이

들에 대한 잘못된 욕망을 떠나 애착을 버림으로써 열반을 실현하

라는 것이었다.

80) 예를 들면, MN의 Uddesavibhaṅga-sutta는 붓다의 간략한 설법과 이에 대한

마하깟짜나(Mahākaccāna)의 상세한 해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초기 인도불교에서는 사실 5온이든 12처이든 18계이

든 별 차이가 없으며 5온과 12처・18계의 상호 관계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용어의 내용이나 외연을 엄밀하게 규정하여

이들 상호 간의 구별을 분명하게 하려는 테라와다의 아비담마 철

학에서는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81) 그래서 제법무아에서

담마가 주어로 사용된 이유에 대한 해명이 붓다의 몫이 아니라 그

의 제자들과 후대 아비담마 철학자들의 몫으로 남게 되었다고 생

 

각된다.

81) 사이구사 미쯔요시(1995) pp. 34-35.



 

 

 

 

 

 

 

 

 

 

실론섬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gikoship/15783526 에서 복사한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