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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가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 - 마성스님

수선님 2020. 1. 12. 11:30

재가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

마성 지음


불교의 교단은 크게 출가자와 재가자로 구성되어 있다. 출가자와 재가자는 삶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출가자는 출가자가 지켜야 할 계율이 있고, 재가자는 재가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이 있다. 여기서는 초기경전에 나타난 재가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에 대해 알아본다.

초기경전에서 제시된 재가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은 믿음의 완전한 갖춤[信具足]·지혜의 완전한 갖춤[慧具足]·버림의 완전한 갖춤[捨具足]·계율의 완전한 갖춤[戒具足] 등이 있다.

1) 믿음의 완전한 갖춤[信具足]

재가자가 갖추어야 할 제1 조건은 믿음의 완전한 갖춤, 즉 신구족(信具足)이다. 신구족(saddha sampanna)은 삼보(三寶)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의미한다. 삼보는 불교를 형성하고 있는 세 가지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뼈대이다. 이 삼보를 가장 명료하게 설한 것이 증지부 경전에 나온다.

"그 분 세존께서는 바로 아라한[應供]이시며, 완전히 깨달으신 분[正等覺者 또는 正遍知]이시며, 지혜와 실천이 구족하신 분[明行足]이시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善逝]이시며,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世間解]이시며, 가장 높으신 분[無上士]이시며,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調御丈夫]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天人師]이시며, 깨달으신 분[覺者] 세존[世尊]이시다."

"세존께서 잘 설해 주신 법은, 당장에 공덕을 들어내며, 시간을 초월하여 타당하며, '와서 보라'는 권유이며, 열반(涅槃)에의 길로 이끌어 주며, 지혜 있는 자 누구나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

"세존의 제자이신 스님들은 길을 잘 걷고 있으며, 길을 바르게 걷고 있으며, 길을 지혜롭게 걷고 있으며, 길을 충실하게 걷고 있으니, 저 네 쌍의 분들, 여덟 단계에 계신 분들이다. 이들 세존의 제자 분들은 공양 올려 마땅하며, 시중들어 마땅하며, 보시들어 마땅하며, 합장드려 마땅한, 이 세상에 다시없는 복전(福田)이다."

이러한 삼보에 대하여 재가자는 마땅히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만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완전한 재가 불자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재가자는 삼보에 귀의하는 것만으로 불교도가 된다. 그러므로 삼보에 귀의하는 자체가 재가자가 나아가야 할 바른 길이며, 구비 조건인 것이다.

한편 재가자가 불교에 입문하는데 어떤 특별한 절차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삼귀의문(Tisarana)을 삼창(三唱)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처럼 비록 재가자가 교단에 들어가는 의식 절차는 매우 간소하지만, 불·법·승 삼보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불교 이외의 교법(敎法)과 영묘(靈廟, cetiya) 등에 귀의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믿음, 즉 신심(信心, saddha-citta)은 인도의 우빠니샤드(Upanisad)에서부터 강조되었다. 우빠니샤드에서 지식과 명상적 통찰과 함께 믿음은 수행의 중요한 방법론적 요소로 보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불교에서도 신심은 해탈을 위하여 매우 중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것이 재가자가 갖추어야 할 첫 번째 조건인 믿음의 완전한 갖춤인 것이다.

2) 지혜의 완전한 구족[慧具足]

재가자가 갖추어야 할 두 번째 조건은 지혜의 완전한 갖춤, 즉 혜구족(慧具足)이다. 혜구족(panna sampanna)은 신구족과 관련된 것으로서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교법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말한다. 이 혜구족을 견구족(見具足, ditthi-sampanna)이라고도 부른다.

엄격히 말해서 지극한 신뢰는 교법에 대한 확실한 이해의 바탕 위에서 성립된다. 여기서 말하는 교법의 이해라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사제(四諦)의 법문에 대하여 확신을 갖는 것을 뜻한다. 이른바 '이것은 괴로움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원인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사라짐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사라지는 길이다'라고 바르게 아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사제의 법문에 대한 확신에 기초해서 재가로 있으면서도 고의 원인인 욕망을 절제하고 욕망의 발동에 기초한 번뇌를 억누르며, 악을 그치고 선을 닦음[止惡修善]과 함께 끊임없이 자기의 마음을 맑혀 가는 것이 곧 재가자로서의 수행의 핵심이었다.

재가자는 이러한 사제(四諦)의 도리를 통해 불교의 올바른 세계관·인생관을 확립하게 된다. 재가자가 사제의 도리를 이론적으로 완전히 이해하게 되면, 법안(法眼, dhamma-cakkhu)을 얻어 최하위의 성자(聖者)가 된다. 이 최하위의 성자는 나중에 부파불교의 용어로는 견도(見道, daraana-marga)의 성자라고 했다. 견도 라는 것은 사제의 도리를 보는 수행 과정이다.

그런데 원론적으로는 첫 번째의 신구족이 갖추어진 다음에 혜구족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특히 현대의 지식인들은 맹목적인 믿음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믿음을 일으키기에 앞서 무엇을 믿고 의지해야 하는가를 확실히 알고자 한다. 다시 말해서 교법을 바르게 이해해야만 확고한 믿음을 일으킨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보면 진리 탐구의 올바른 자세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재가자는 신구족과 혜구족을 바탕으로 진리를 실천하여 깨달음을 추구하게 된다.

3) 버림의 완전한 구족[捨具足]

위에서 살펴본 신구족·혜구족과 마찬가지로 재가자가 되는 하나의 조건으로 버림의 완전한 갖춤, 즉 사구족(捨具足)이 있다. 사구족(caga-sampanna)은 재가자가 집에 살면서 인색함의 때, 즉 간구(慳)를 마음으로부터 벗어버리고 정진하며, 베푸는 것을 좋아하고 구걸에 응하며, 보시물을 나누어주는 것을 말한다.

사구족(捨具足)은 남에게 조건 없이 베풂을 의미하므로 한역의 별역잡아함경 8권에서는 시구족(施具足)이라고 번역했다. 사구족은 베풂뿐만 아니라 마음속의 인색함까지 벗어버리는 것을 강조하기 때문에 시구족보다 넓은 의미를 갖고 있다.

구체적으로 재가자는 출가자에게 기쁜 마음으로 보시(布施)를 행할 의무가 있다. 왜냐하면 재가자도 사중(四衆; 비구·비구니·우바새 · 우바이)의 일원으로서 교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나의 관습으로 정착된 것이 재시(財施, amisa-dana)와 법시(法施, dhamma-dana)이다. 즉 재가자는 출가자에게 재시의 의무가 있고, 반면 출가자는 재가자에게 법시를 베풀 의무가 있다. 특히 재가자는 수행에 필요한 물건과 음식 등 물질적으로 출가자를 돕는 것이 그 주된 임무였다. 이것이 재가자가 갖추어야 할 세 번째 조건인 버림 혹은 베풂의 완전한 갖춤인 것이다.

4) 계율의 완전한 갖춤[戒具足]

재가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 가운데 하나가 계율의 완전한 갖춤, 즉 계구족(戒具足)이다. 계구족(sila sampanna)은 오계(五戒)와 팔재계(八齋戒)를 지키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담미까경((Dhammika sutta, 曇彌迦經)에서 ?아내를 거느린 재가자가 완전한 비구의 법(bhikkhudhamma)을 이행하기는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사실 재가자는 부양할 가족을 거느리고 있기 때문에 비구의 법, 즉 출가 수행자가 지켜야 할 계율을 완전히 이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재가자의 생활은 욕망의 세계에 살면서 수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욕망을 절제하고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재가 생활의 표준이 될 수 있는 규정을 정할 필요가 있었다.

이렇게 해서 정해진 재가자의 계율이 바로 오계(五戒)와 팔재계(八齋戒)이다. 오계(panca sila)는 재가자가 평소에 지켜야 할 최소한의 계율이고, 팔재계(attangika uposatha)는 재가자가 특정월과 특정일, 즉 삼장(三長) · 육재일(六齋日)에 지키는 계율이다.

오계는 불살생 · 불투도 · 불사음 · 불망어 · 불음주 등이다. 이 다섯 가지 계율은 만선(萬善)의 근본이며, 모든 사회악을 제거할 수 있는 묘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필자는 개인적으로 오계파지운동(五戒把持運動)이 보다 확산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팔재계는 앞의 오계에 다시 ⑥시간이 지나서 먹지 않고, ⑦높고 넓은 침상에 눕지 않으며, ⑧노래 부르고 악기 연주하고 꽃과 향으로 몸을 장식하는 것을 멀리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할 것은 오계 가운데 세 번째 계율인 사음(邪淫)은 불음(不淫)으로 바뀐다는 사실이다.

이 팔재계는 포살과 직접 관계가 있기 때문에 재()를 지닌다는 의미로 지재(持齋, mah'uposatha)라고도 부른다. 이 지재는 순수한 대자기적(對自己的)·극기적(克己的) 수양법이다. 그래서 이 지재를 재가자의 출가법이라고도 한다. 왜냐하면 재가자는 출가자와 같이 일생동안 지계 생활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특정월과 특정일 만이라도 팔재계를 지키며 수행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특정한 날이란 반월(半月, pakkha)1일과 8일 및 15일을 말한다. 이것을 1개월로 계산하면 6회가 되는 셈인데, 이른바 육재일(六齋日)이 바로 그것이다. 기독교도는 일요일을, 유태교도는 토요일을 성일(聖日)·극기일(克己日)로 삼고 있는 것과 같이 불교도는 이 육재일을 성일·극기일로 삼았던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재가자의 구비 조건 외에도 잡아함경 권33에서는 들음의 완전한 갖춤[聞具足]을 추가하기도 한다. 문구족(suta-sampanna)은 들은 것을 잘 기억해 쌓아 두는 것이다. 즉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으며, 뜻도 맛도 좋고, 순일하고 원만하며 범행이 청정한 부처님의 말씀을 다 받아 가지는 것을 말한다.

이상에서 설명한 재가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을 요약하면, 삼귀(三歸) · 오계(五戒) · 지재(持齋)라고 할 수 있다. 모름지기 재가자는 이러한 항목들을 준수하고 남을 위해 선행을 베풂과 동시에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는 것이 곧 재가자로서의 표준적 수도이다. 이것을 실천하는 사람을 일컬어 불타는 성성문(聖聲聞, ariyasavaka)이라고 하였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불교에 있어서는 출가·재가의 구별을 두는 것이 그 본래의 존재 방식이었다. 따라서 출가자와 재가자의 역할과 의무는 전혀 다르다. 그러므로 이 양자가 건전하게 그 기능을 다할 때 불교가 융성하게 된다고 본다. 일본의 불교학자 미즈노 고겐(水野弘元)은 대승불교가 이 두 기능을 무시해 버렸기 때문에 불교의 포교나 경제적인 면에서 그 근거를 크게 약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지적에 우리는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대중불교] 통권 제169, 1996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