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인문과학 1

요가수뜨라(Yoga-sūtra)와 니까야(Nikāya)의 三昧觀 재검토

수선님 2020. 1. 26. 12:32

요가수뜨라(Yoga-sūtra)와 니까야(Nikāya)의 三昧觀 재검토1)

 

경북대 철학과

임승택

 

Ⅰ. 시작하는 말

Ⅱ. 삼매 관련 주요 용어들

Ⅲ. 요가수뜨라에 나타나는 삼매의 위계

Ⅳ. 요가수뜨라와 니까야의 삼매관 비교

Ⅴ. 마치는 말

 

 

Ⅰ. 시작하는 말

초기불교의 경전을 집성한 니까야(Nikāya)에는 삼매(三昧, 定, samādhi) 혹은 선정(禪, 禪那, 靜慮, jhāna/dhyāna)의 실천을 통해 통찰의 지혜(慧, 般若, paññā/prajñā)가 발생한다는 내용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예컨대 “비구들이여, 삼매를 닦을 지어다. 비구들이여, 삼매에 든 비구는 있는 그대로를 알아차린다(pajānāti).”라든가,2) “지혜가 없는 이에게 선정은 없고 선정을 행하지 않는 이에게 지혜는 없으니, 선정과 지혜가 함께 있을 때 그는 실로 열반의 가까이에 있다.”라는 문구가 그것이다.3)

이것은 요가학파의 소의경전인 요가수뜨라(Yoga-sūtra)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것 [즉 집중과 선정과 삼매]를 정복함으로써 지혜의 빛(prajñā-āloka)이 있게 된다.”라든가,4) “[삼매를 통해] 모든 장애와 불순물로부터 벗어났을 때 앎(jñāna)은 무한하여 [더 이상] 알아야 할 것이 거의 없다.”라는 문구가 그것이다.5) 또한 “요가란 마음작용의 억제이다. 그때 ‘보는 자’는 자신의 모습으로 머문다.”라고 하는 ‘요가(Yoga)의 정의’ 역시 동일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6) 이 경구에서 ‘마음의 억제’란 삼매에 해당하고 ‘보는 자의 머무름’은 지혜가 발현된 상태로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초기불교와 요가학파는 삼매 혹은 선정의 체험을 강조한다. 이들은 비록 상이한 형이상학적 전통을 지녔고, 또한 상호 경쟁적인 관계에 있었지만 ‘마음의 안정’을 우선시하는 입장을 공유했던 것이다. 이처럼 요가수뜨라와 니까야에서 삼매의 체험이 강조되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실천․수행의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극복해야 할 장애를 정서적 차원의 문제로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초기불교와 요가학파는 공히 내면의 번뇌를 다스려야만 진리를 꿰뚫는 지혜가 발현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십여 년 전 필자는 「불교의 선정과 요가의 삼매에 대한 비교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7) 거기에서 필자는 요가수뜨라와 니까야의 삼매관을 이미 다룬 셈이다. 그럼에도 이 주제를 다시 거론하는 이유는 수정․보완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간 요가수뜨라의 삼매에 관해서는 이지수의 「빠딴잘리 『요-가․수-뜨라』삼매품의 사상」,8) 정승석의 「요가 철학의 삼매 분류」,9) 문을식의 「요가철학에서 법운삼매의 획득 과정」 등이 발표되었다.10) 이들은 필자가 기존의 연구에서 다루지 못했던 내용들을 밝히고 있다. 본고는 이들의 성과를 아우르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요가수뜨라와 니까야의 삼매를 정리하고자 한다.

필자의 기존 논문은 니까야에 나타나는 선정의 실천이 신행(身行, kāyasaṅkhāra), 구행(口行, vacīsaṅkhāra), 의행(意行, cittasaṅkhāra)의 소멸이라는 3가지 차원에서 행해진다는 것에 초점을 모았다.11) 이것은 마음의 억제만을 강조하였던 요가수뜨라의 삼매관에 대해 차별적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결론에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또한 니까야에 나타나는 선정의 깊이는 지혜의 발현과 직접적인 상관성을 지니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예컨대 가장 낮은 단계의 선정인 제1선정(初禪)에서도 깨달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12) 본고는 이러한 내용을 포함하는 방식으로 요가수뜨라와 니까야의 삼매관에 대한 재정립을 시도하고자 한다.

니까야의 삼매에 관한 연구로는 필자 자신의 「첫 번째 선정에 관한 연구」를 비롯하여,13) 이영진의 「초기불교 텍스트에서 나타난 상수멸의 불일치․모순과 역사적 전개」가 있다.14) 또한 서구 학자들의 연구로는 Tilmann Vetter의 The Ideas and Meditative Practices of Early Buddhism,15) L. Schmithausen의 “On Some Aspects of Descriptions or Theories of ‘Liberating insight’ and ‘Enlightenment’ in Early Bddhism” 등을 꼽을 수 있다.16) 이들은 주로 니까야에 나타나는 선정과 삼매의 연원과 의미를 다루고 있고 있다. 특히 이들은 니까야의 삼매관이 변천하는 과정을 언급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삼매 혹은 선정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연구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룬 논문은 다른 교리적 연구물들에 비해 많지 않다. 거기에는 삼매란 주관적 체험 영역에 속하는 까닭에 이론화하기 곤란하다는 생각이 반영되어 있는 듯하다. 특히 동일한 명칭의 삼매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기술하는 문헌의 성격에 따라 혹은 해석의 방식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17) 이러한 사실은 이 분야의 연구가 맞닥뜨리게 되는 심각한 난점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삼매 혹은 선정이란 애초부터 계량화될 수 없으며 그러한 이유에서 학문적 논의의 대상에 포함시키기 곤란한 개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난점들을 인정하더라도 니까야와 요가수뜨라의 삼매에 대한 연구는 필요하다고 본다. 본고는 이들 문헌에 나타나는 삼매의 내용과 위계에 대한 수평적 비교를 주된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문헌사적 과정이라든가 해석상의 문제 등에 대한 상세한 논의는 배제한다. 그렇지만 필자는 이러한 수평적 비교만으로도 두 문헌의 삼매관에 내포된 체계적 특성과 공통점이 충분히 드러날 것이라고 본다. 아울러 이들 간의 논의가 수세기에 걸쳐 일정한 형식과 관점을 유지한 채 계승되었다는 사실 또한 분명해질 것이라고 본다. 필자는 이러한 방식으로 요가수뜨라와 니까야에 기술된 삼매의 의미를 드러내 보이고자 한다.

 

 

Ⅱ. 삼매 관련 주요 용어들

먼저 삼매(samādhi)라는 용어에 대해서부터 살펴보자. 삼매란 sanskrit의 sam-ā√dhā로 분석된다.18) 접두사 sam은 ‘함께’, ‘온전하게’ 따위의 의미를 지니며, ā는 ‘가까이’, ‘근접하여’ 등의 뜻을 지닌다. 한편 동사 어근 √dhā는 ‘놓다’, ‘두다’, ‘유지하다’의 의미를 지닌다. 이들을 종합하면 ‘함께 가까이 놓다’ 정도로 옮길 수 있다. 이것으로부터 ‘모으다’, ‘집중하다’, ‘열중하다’ 따위의 완성된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요가수뜨라에서 삼매는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삼매란 그것의 대상만이 빛나고 [마음] 자신의 모습은 없는 것과 같은 [상태이다.]”라는 언급이 그것이다.19) 이것을 통해 삼매란 특정한 대상에 대한 집중을 통해 여타의 관념이 사라진 상태 즉 대상 자체에 몰입된 경지임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것에 대해 Shikhi-Brāhmana-Upaniṣad에서는 선정(dhyāna)의 와중에 일어나는 ‘완전한 망각(perfect forgetting)’의 상태로, Kūrma-Purāna에서는 ‘단일성(uniformity, eka-ākāra)’의 상태로 묘사하기도 한다. Feuerstein은 이러한 언급들을 바탕으로 삼매에 대해 ‘주관과 객관이 융합된 상태’로 정리한다.20)

한편 Yogasūtra-Bhaṣya에서는 요가에 대해 삼매 자체로 정의한다.21) 그리고 다시 삼매란 모든 마음상태를 포섭하는 것이며, 심지어는 동요․미혹․산란․집중․억제 등을 망라하는 것으로 설명한다.22) 그러나 Yogasūtra-Bhaṣya는 산란함에 종속된 삼매에 대해서는 요가의 범주에서 배제한다.23)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삼매는 마음의 집중을 통해 번뇌가 소멸된 경지로 국한한다. 그리하여 “의식이 집중될 때 진실한 대상이 빛을 발하고, 번뇌가 소멸하고, 업의 속박이 완화되고, 억제로 향하게 되는 그것을 유상(有想)의 요가라고 부른다.”라고 풀이한다.24)

유사한 내용은 니까야에 배속된 Paṭisambhidāmagga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삼매의 기능(定根)에서 산란하지 않음(無散亂)의 의미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라는 문구라든가,25) “연속되는 삼매에 의한 앎(無間三昧智)이란 산란하지 않음에 의한 청정에서 기인하며 번뇌를 끊음에 관한 지혜를 지닌다.”라는 언급이 그것이다.26) 또한 본고의 Ⅳ장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다룰 예정이지만, 요가수뜨라와 니까야에서는 공히 삼매를 진행해 나가는 와중에 지혜(慧, prajñā/paññā)를 발현시켜 잠세력(行, saṃskāra/saṅkhāra)을 제거하게 된다고 기술한다. 이것은 삼매의 목적과 용도에 관한 공통된 견해라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삼매는 다양한 방식으로 분류된다. 먼저 요가수뜨라에 등장하는 가장 대표적인 분류법으로 유상삼매(有想三昧, saṃprajñāta-samādhi)와 무상삼매(無想三昧, asaṃprajñāta-samādhi), 유종자삼매(有種子三昧, sabīja-samādhi)와 무종자삼매(無種子三昧, nirbīja-samādhi)의 분류가 있다. 유상/무상이라는 구분은 마음의 상태가 어떠한가에 따른 것으로 불교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27) 특히 유상삼매는 심(尋, vitarka), 사(伺, vicāra), 환희(ānanda), 자의식(asmitā) 따위가 존속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세부적으로 구분된다.28) 이 구분법에 따르면 삼매란 마음작용의 내용에 따라 그 위계가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유종자/무종자의 구분은 요가수뜨라 고유의 것으로, 집중의 대상이 거친 것이냐 미세한 것이냐에 따라 달리 구분된다.29) 예컨대 유종자삼매는 다시 유사등지(有伺等至, savicārā-samāpatti)와 무사등지(無伺等至, nirvicārā-samāpatti) 등으로 세분화되며 다음과 같이 풀이된다. “[유심등지와 무심등지가 깊어지고 난] 이후 미세한 대상에 의존하는 유사[등지]와 무사[등지]가 설명된다.”라는 언급이 그것이다.30) 또한 이와 관련하여 “심이란 거친 대상에 대한 마음의 경험이고 사란 미세한 [대상에 대한] 것이다.”라는 Yogasūtra-Bhaṣya의 언급도 주목할 만하다.31) 이 구분법은 얼마만큼 미세한 대상에 집중할 수 있느냐에 따라 삼매의 위계를 세분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요가수뜨라에는 삼매를 대체하는 용어로서 등지(等至, samāpatti)라는 표현이 자주 나타난다. 등지란 sam-ā-√pat를 어근으로 하며 ‘만남’, ‘함께 함’ 등으로 풀어 옮길 수 있다.32) 이것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등지(等至)란 투명한 보석처럼 [마음]작용이 가라앉아 인식주체, 인식과정, 인식대상에 그와 같이 고정되어 그와 같이 물드는 것이다.”33) 이것에 대해 Yogasūtra-Bhaṣya는 “마치 수정이 주변의 의지물로 인해 다양한 색깔로 물들어 의지물의 모습으로 보이듯이, 인식대상이라는 의지처에 물든 마음은 인식대상을 지니고서 인식대상 자체의 모습으로 보인다.”라고 풀이한다.34) 이 설명에 비추어 등지 또한 앞서 언급했던 삼매와 마찬가지로 주관과 객관이 합일된 상태로 바꾸어 말할 수 있다.35)

등지 또한 합일의 정도에 따라 도합 4가지로 구분된다. 유심등지(savitarkā-samāpatti), 무심등지(nirvitarkā-samāpatti), 유사등지(savicārā-samāpatti), 무사등지(nirvicārā-samāpatti)가 그것이다. 이들 가운데 유심등지란 다음과 같이 풀이된다. “거기에서 유심등지란 말과 대상과 앎에 대한 분별로 뒤섞인 상태이다.”라는 문구가 그것이다.36) 한편 무심등지는 “무심이란 기억이 정화되고 자신의 모습은 없어진 것 같이 되어 대상만이 빛나는 상태이다.”로 설명된다.37) 유심의 단계는 집중을 이루어가는 초기 과정으로 아직은 ‘분별로 뒤섞인 상태(vikalpaiḥ saṃkīrṇā)’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또한 무심의 단계도 앞서 언급했던 유사/무사의 경우와 달리 미세한 대상(sūkṣma-viṣayā)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유심/무심은 유사/무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거친 마음상태라고 할 수 있다.

등지(samāpatti)라는 표현은 니까야에도 자주 나타나지만 그 경우 약간 제한된 쓰임을 지닌다. 예컨대 니까야에서는 마음이 가라앉은 상태를 사마타(止, samatha)로 규정하고서 도합 8단계로 나눈다.38) 거기에서 처음의 넷에는 선정(jhāna)이라는 용어를 적용하지만 나중의 넷에 대해서는 등지(samāpatti)라는 표현을 사용한다.39) 예컨대 제1선정(初禪, paṭhamajjhāna), 제2선정(第二禪, dutiyajjhāna)이라든가, 공무변처등지(空無邊處定, ākāsānañcāyatana-samāpatti), 식무변처등지(識無邊處定, viññāṇañcāyatana-samāpatti) 따위가 그것이다. 거기에서 앞의 4선정은 마음의 산란함이 그친 정도를 구분해 놓은 것이다. 반면에 뒤의 4등지는 제4선정(第四禪)과 동일한 심리상태에서 마음의 ‘공간적 제약’이라든가 ‘관념적 제약’ 등으로부터 벗어난 정도를 재분류해 놓은 것이다.40)

한편 또 다른 삼매 관련 용어들로서 심(尋, vitarkā)과 사(伺, vicārā)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심과 사 역시 집중을 이루어가는 단계적 과정에서 부각되는 심리적 기능들이다. 앞서 Yogasūtra-Bhaṣya를 통해 확인했듯이 심이란 거친 대상에 대한 집중을 의미하고 사란 미세한 대상에 대한 집중을 나타낸다. 또한 이미 언급했듯이 이들은 유상삼매의 세부적 위계를 나타내는 용도로 사용된다. 더불어 ‘심을 지닌(sa-vitarkā)’ 상태인 유심등지(有尋等至)라든가 ‘심을 지니지 않은(nirvitarkā)’ 상태인 무심등지(無尋等至)라는 방식으로 유종자삼매를 세분화하는 용도로도 사용됨을 확인할 수 있다.

심과 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후대에 저술된 니까야의 주석 문헌에서 발견된다. 예컨대 Saddhammappakāsinī에서는 “심이란 ‘[어떤 대상을] 떠올리는 것’이다. 혹은 심이란 떠올림(thought)이라든가 헤아림(reasoning)을 일컫는다. 그것에 의해 마음이 [특정한] 대상에서 ‘맴도는 것’이 사이다. 혹은 사란 맴돎(circulating)이라든가 ‘지속적인 맴돎’을 일컫는다.”라고 풀이한다.41) 이러한 설명에 근거하여 Nārada는 심이란 꽃을 향해 날아가는 벌에, 사란 꽃 근처에 다가간 벌이 그 주변에서 윙윙거리는 것에 비유한다.42) 이러한 방식으로 심과 사는 특정한 대상을 적극적으로 떠올림으로써 마음을 일정한 방향으로 모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니까야에서 심과 사는 口行(vacīsaṅkhāra) 즉 ‘언어적 잠세력’을 이루는 것으로 언급되곤 한다.43) 이것은 삼매라는 집중의 상태를 이루는 과정에서 언어적․개념적 사고가 일정한 역할을 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그러나 심과 사에 의한 구행은 제2선정(第二禪)에 들어가면 그치는 것으로 언급된다.44) 이것은 심과 사에 의한 언어적 잠세력이 얕은 단계의 삼매에서만 작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양상은 요가수뜨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유심등지는 언어적 구성작용(vikalpa)이 작동하는 단계로 설명되고, 무심등지는 언어적 약정(saṁketa)에 의한 기억이 정화되고 추리에 의한 구성작용마저 없는 상태로 풀이된다.45)

요가수뜨라의 삼매는 심의 단계에서 사의 단계로, 혹은 유심/무심의 단계에서 유사/무사의 단계로 깊어져가는 과정으로 구성된다. 즉 유상삼매의 위계로서 심삼매 → 사삼매에 의한 구분과, 유종자삼매의 위계로서 유심등지 → 무심등지 → 유사등지 → 무사등지에 의한 구분이 존재한다. 이와 같이 심과 사는 그 자체로서 삼매의 깊이를 구분하는 용도로 활용된다. 그런데 이러한 구분은 니까야에서부터 이미 정착되어 있었던 듯하다. 예컨대 유심유사삼매(savitakka-savicāro samādhi), 무심유사삼매(avitakka-vicāramatto samādhi), 무심무사삼매(avitakka-avicāro samādhi) 등에 의한 3가지 삼매(三三昧)의 구분이 그것이다.”46)

한편 삼매에 상응하는 또 다른 표현으로서 선정(dhyāna/jhāna)이 있다. 이것은 √dhyai에 기원을 둔 용어로 ‘생각하다’ 혹은 ‘사유하다’의 의미로 분석된다.47) 이것에 대해 요가수뜨라에서는 “거기에서 선정이란 [마음에 떠올린] 표상이 하나로 지속되는 상태이다.”라거나,48) “그것 [즉 번뇌]의 작용은 선정에 의해 제거되어야 한다.”라고 언급한다.49) 이들을 통해 선정 또한 특정한 대상을 지속적으로 생각함으로써 여타의 부정적 사고와 번뇌를 가라앉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설명은 니까야에서도 놀라울 만큼 흡사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예컨대 Paṭisambhidāmagga에서는 선정의 기능을 ‘생각에 잠긴다(jhāyati)’와 ‘번뇌를 태워 없앤다(jhāpeti kilese)’라는 2가지로 풀이한다.50)

요가수뜨라에서 선정은 팔지칙 가운데 일곱 번째 지분으로 등장한다. 특히 이것은 여섯 번째 지분인 집중(集中, 總持, dhāraṇā)과 마지막 지분인 삼매를 합해 총제(總制, saṃyama)라는 명칭으로 일컬어진다.51) 집중과 선정과 삼매가 총제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는 실제 수행에서 서로를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52) 그러나 그들이 별도의 지칙으로 배치된다는 사실은 그들 사이의 차별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컨대 Mani-Prabhā 등의 뿌라나 문헌에서는 선정의 상태가 열두 배의 강도와 지속성을 지니게 되면 곧 삼매가 된다고 설명한다.53) 이렇듯 요가의 전통에 따르면 선정이란 삼매를 이루어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와 달리 니까야에 따르면 선정이란 삼매를 이루는 세부 단위에 배속된다. 예컨대 니까야에서는 ‘바른 삼매’란 무엇인가라고 묻고서 제1선정(初禪), 제2선정(第二禪), 제3선정(第三禪), 제4선정(第四禪) 등으로 설명한다.54) 따라서 선정과 삼매의 위상에 관련해서는 요가수뜨라와 니까야 사이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전자는 선정을 삼매에 이르는 과정으로 본다. 반면에 후자는 선정을 삼매의 하위 개념으로 간주하여 개개의 세부적 단계들에 배치한다.

이상과 같이 삼매, 등지, 심, 사, 선정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들은 요가수뜨라와 니까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삼매 관련 용어들이다. 두 문헌에서 이들 각각은 독특한 쓰임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비슷한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기존의 논문을 통해 필자는 요가수뜨라와 니까야의 삼매를 비교한 적이 있지만, 이상과 같은 방식으로 각각의 유사개념들에 대해 일괄적인 비교를 시도하지는 못했다. 이들에 대한 분명한 이해는 양자의 삼매관이 지니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명히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Ⅲ. 요가수뜨라에 나타나는 삼매의 위계

앞서 살펴보았듯이 요가수뜨라에 나타나는 삼매의 위계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분류된다. 유상/무상이라는 분류와 유종자/무종자라는 분류가 그것이다. 전자는 마음상태가 어떠한가에 따른 것으로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고, 후자는 요가수뜨라 고유의 것으로 집중 대상이 거치느냐 미세하냐에 따른 것이다. 특히 후자에 따르면 미세한 대상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집중 강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가수뜨라에 등장하는 삼매 관련 용어들은 그 자체로서 삼매의 위계를 구분해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예컨대 유상삼매의 심, 사, 환희, 자의식 등이 그것이다. 마찬가지로 유종자삼매 계열의 유심등지, 무심등지, 유사등지, 무사등지 따위도 삼매의 깊이에 따른 단계적 과정을 드러낸다. 이러한 삼매의 위계는 기존의 연구에서 이미 많이 다루어졌다. 특히 정승석은 花木泰堅 등의 선행 연구에 나타나는 내용을 다음과 같이 도표로써 정리한다.

<표1> 기존의 연구에 근거한 요가 삼매와 불교 4선정의 대비55)

요 가 학 파

불 교

① 유상/무상

② 유종/무종

③ 총제

유상삼매

심(尋)

유심

유종(자)삼매

총지(집중)

초선(제1선정)

사(伺)

유사

정려(선정)

무심

삼매

제2선

무사

환희

제1~3선

아견(자의식)

제4선

무상삼매

무종(자)삼매

①은 YS 1.17이하, ②는 YS 1.41이하, ③은 YS 3.3-4에 의거함

위의 도표는 요가수뜨라에서 다양하게 나타나는 삼매의 위계를 일목요연하게 비교하고 있다. 여기에는 앞서 언급했던 두 가지 분류 외에도 팔지칙에 따른 구분법인 집중과 선정과 삼매의 세 단계가 포함되어 있다. 또한 니까야에 나타나는 선정의 위계까지 비교되고 있다. 이것은 기존에 발표되었던 연구의 성과를 망라하는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승석에 따르면 위의 도표만으로는 유상/무상과 유종자/무종자에 대한 세부적인 비교와 위계 설정이 가능하지 않다.56) 특히 무상상매와 무종자삼매가 동일한 위치에 놓인다거나, 유종자삼매의 무심/무사에 해당하는 내용이 유상삼매 계열에서 어떠한 위치에 속하는지 정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따라서 정승석은 Yogasūtra-Bhaṣya을 바탕으로 이들의 순서와 관계에 대한 정밀한 재검토에 들어간다. 그리하여 유종자삼매는 유상삼매와 무상삼매를 전체에 해당하며, 유종자삼매 중에서 최후의 단계에 위치하는 무사등지는 무상삼매에 상응한다는 사실을 언급하기에 이른다.

정승석에 따르면 유종자삼매의 집중 대상은 극대(極大)에서부터 극미(極微)에까지 이르고 장소와 시간과 인과 등의 조건까지를 망라한다.57) 그에 반해 유상삼매의 집중 대상은 땅(地), 물(水), 불(火) 따위의 5대(五大, pañca-bhūta)와 소리원소(聲唯), 접촉원소(觸唯), 색깔원소(色唯) 따위의 5유(五唯, pañca-tanmātra) 등을 포함하는 경험적 대상들에 한정된다. 한편 ‘잠세력의 잔존(saṃskāra-śeṣo)’을 특징으로 하는 무상삼매는 ‘다른 잠세력을 저지하는 잠세력을 지니는(saṃskāro’ anya-saṃskāra-pratibandhī)’ 무사등지의 결과와 중첩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무상삼매는 ‘모든 것의 억제를 통해(sarva-nirodhāt)’ 이루어지는 무종자삼매의 단계에는 미치지 못한다.58)

이러한 고찰을 통해 정승석은 요가수뜨라에 나타나는 삼매의 위계를 다음의 도표로써 재정리한다.

<표2> 정승석이 새롭게 정리한 요가 삼매의 위계59)

유 종 (자) 삼 매

무종(자)삼매

유심등지

무심등지

유사등지

무사등지

유상삼매(심, 사, 환희, 아견)

무상삼매

위의 도표는 유종자삼매와 유상삼매의 관계를 분명히 해준다. 특히 무사등지를 무상상매에 상응하는 단계에 배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또한 <표1>에서 유종자삼매의 세부 순서로 배치되었던 ‘유심 → 유사 → 무심 → 무사’라는 순서를 ‘유심등지 → 무심등지 → 유사등지 → 무사등지’로 바꾸어 배치하고 있다. 아울러 팔지칙에 따른 집중과 선정과 삼매라는 구분법을 비롯하여, 니까야의 4가지 선정(四禪) 등은 비교의 대상에서 배제하고 있다.

필자는 이 도표에 상당 부분 공감한다. 특히 무사등지를 무상삼매와 동일한 단계에 두고서, 이들 모두를 넘어선 위치에 무종자삼매를 배치한 점에 동의한다. 또한 이것의 근거가 되었던 Yogasūtra-Bhaṣya의 설명도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60) 아울러 팔지칙에 따른 구분법과 니까야의 4선정에 대한 비교를 배제한 것 역시 공감한다. <표1>의 방식대로라면 총제에 위계에 속한 정려(선정)는 유상/무상의 계열에서 사(伺)의 단계에만 해당하고, 다시 이것을 니까야의 4사정에 배대하면 초선(제1선)의 단계에만 해당하는 엉뚱한 결과가 초래된다. 심지어 도표 전체의 내용을 포섭한다고 할 수 있는 삼매의 영역이 유종/무종 계열의 무심등지와 제2선의 단계에 한정되는 기이한 결과가 야기된다.

그러나 필자는 정승석의 도표에도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유심등지 → 무심등지 → 유사등지 → 무사등지’로 바뀐 순서가 그것이다. 물론 요가수뜨라에서는 이러한 순서로 각각의 등지가 기술된다.61) 따라서 이들의 순서를 원래대로 환원한 것은 나름의 타당성을 지닌다. 그러나 거친 대상에 의존하는 상태가 사라지면 미세한 대상에 의존하는 상태가 그 뒤를 잇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즉 유심등지 다음에 유사등지가 이어지고, 또한 그 이후에 거칠거나 미세한 대상마저 없는 무심등지와 무사등지가 발현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표1>에 나타나는 花木泰堅의 견해는 바로 이점을 고려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유심 → 유사 → 무심 → 무사’라는 花木泰堅의 분류에도 찬성할 수 없다. 무심등지는 거친 대상이 사라진 상태이고 유사등지는 미세한 대상에 의존하는 상태이다. 따라서 이들은 서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며 얼마든지 동시적으로 공존할 수 있다. 예컨대 거친 대상이 사라진 무심등지의 지평에서 미세한 대상에 의존하는 유사등지가 발현될 수 있다. 또한 요가수뜨라에 기술된 순서로 볼 때 유심/무심이 먼저이고 유사/무사는 나중이라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유심등지 → 무심등지 → 유사등지 → 무사등지’라는 순서는 그대로 두되, 무심등지와 유사등지 사이의 위계는 인정하지 않는 방식의 분류법이 모색되어야 한다.

이상의 내용을 바탕으로 필자는 요가수뜨라에 나타나는 삼매의 위계를 다음과 같이 재분류한다.

<표3> 요가수뜨라에 나타나는 삼매의 위계

유종자삼매

유심등지

심(尋)삼매

유상삼매

무심등지

사(伺)삼매

유사등지

무사등지

환희삼매

자의식삼매

무상삼매

무종자삼매

필자에 의해 새롭게 정리된 내용에 따르면 유상삼매 계열의 사(伺)삼매는 유종자삼매 계열의 무심등지 및 유심등지와 동일한 단계에 속한다. 또한 유종자삼매 계열의 무사등지는 유상삼매 계열의 환희삼매와 자의식삼매 그리고 무상삼매에 해당한다. 이들 셋은 사가 가라앉은 상태로서 무사등지 이외의 다른 단계를 대입시키기 곤란하다. 한편 무종자삼매는 요가수뜨라 고유의 분류법에 따른 것으로 가장 깊은 단계의 삼매이다.

 

 

Ⅳ. 요가수뜨라와 니까야의 삼매관 비교

방대한 분량으로 구성된 니까야에는 다양한 방식의 삼매 분류법이 나타난다. 그중에서도 가장 일반적인 것은 바른 삼매(正定)에 의한 사선정(四禪)의 분류와 Ⅱ장에서 언급했던 삼삼매(三三昧)일 것이다. 특히 전자의 사선정은 삼매에 관해 묻고 선정으로 답한다. 관련 문구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비구들이여, 바른 삼매란 어떠한가? 여기에 한 비구가 있어, 쾌락으로부터 떠나고 유익하지 않은 법으로부터 떠나, 심(尋)과 사(伺)을 지닌, 떠남(離)으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의 제1선정(初禪)을 얻어 머문다. 심과 사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곳에 고정되어 심과 사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의 제2선정(第二禪)을 얻어 머문다. 기쁨에 의한 탐욕의 떠남으로부터 평정(捨)이 머무는, 마음지킴(念)과 알아차림(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평정과 마음지킴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라고 하는 제3선정(第三禪)을 얻어 머문다.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고 평정을 통해 마음지킴이 청정해진 제4선정(第四禪)을 얻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바른 삼매라 한다.62)

이와 같이 니까야에서는 삼매를 구성하는 하위 단계로서 4가지 선정을 제시한다. 이점은 요가수뜨라에서 일곱 번째 지칙에 속한 선정이 여덟 번째 지칙에 속한 삼매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으로 등장한다는 사실과 대조적이다.

그러나 정승석이 언급하듯이 위의 내용은 요가수뜨라의 삼매 분류와 상당한 유사성을 지닌다.63) 먼저 제1선정은 심(尋)과 사(伺)를 지닌 단계로 묘사된다. 따라서 제1선정은 심삼매/사삼매 및 유심등지/유사등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제2선정은 심과 사의 소멸을 특징으로 한다. 이것은 그대로 무심등지/무사등지의 단계에 배대할 수 있다. 또한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제3선정은 환희삼매에 해당한다. 나아가 ‘괴롭지도 즐겁지 않은’ 제4선정은 ‘그것(환희)이 없는 자의식 뿐인 것(tadvikalaḥ asmitāmātraḥ)’이라든가 ‘초연해 있는 마음의 형상일 뿐인 것(ekarūpātmikāsaṁvid)’으로 설명되는 자의식 삼매에 상응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니까야에는 이러한 4가지 분류법 이외에도 사마타(止, samatha)라는 명칭으로 4가지 선정(jhāna)과 4가지 등지(samāpatti)로 구분하는 경우가 나타난다.64) 또한 구차제주(九次第住, nava anupubbavihārā)라는 명칭으로 사마타의 8단계에 상수멸(想受滅, saññāvedayitanirodha)을 추가하여 9가지로 구분하는 경우도 나타난다.65) Schmithausen과 Vetter 등에 따르면 이러한 4등지와 상수멸은 당시 유행했던 외도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크다.66) 이것은 유가수뜨라의 유상/무상삼매가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과 흡사한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4선정은 물질현상에 지배되는 색계(色界)에 속한 것으로 언급되고, 4등지는 물질현상을 벗어난 무색계(無色界)의 영역으로 간주된다. 이와 관련하여 Paṭisambhidāmagga에서는 이들 각각의 단계에 존속하는 마음작용에 대해 언급한다.67) 예컨대 제1선정에서는 심(尋, vitakka), 사(伺, vicāra), 기쁨(喜, pīti), 즐거움(樂, sukha) 등이 수반되고, 제2선정에서는 기쁨과 즐거움 등이, 제3선정에서는 즐거움 등이 작용한다고 기술한다. 그리고 제4선정에서는 즐거움 대신 평정(捨, upekkhā)이 등장하고, 또한 노력(精進, viriya), 마음지킴(念, sati), 굳힘(攝持, adhiṭṭhāna), 믿음(信, saddhā), 노력(精進, viriya), 마음지킴(念, sati), 삼매(三昧, samādhi), 지혜(慧, paññā) 등이 작용한다고 언급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사선정 이후의 무색계 등지는 제4선정과 동일한 마음상태에서 진행된다고 언급한다는 점이다. 이를 간략히 도표로 정리하여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표4> 4선정과 4등지의 상태에서 존속하는 마음의 요소(心所)들68)

선정 혹은 등지의 상태에서 작용하는 마음의 요소(心所)

제1선정

vitakka

vicāra

pīti

sukha

adhiṭṭhāna

saddhā

viriya

sati

samādhi

paññā

제2선정

pīti

sukha

adhiṭṭhāna

saddhā

viriya

sati

samādhi

paññā

제3선정

sukha

adhiṭṭhāna

saddhā

viriya

sati

samādhi

paññā

제4선정

upekkhā

adhiṭṭhāna

saddhā

viriya

sati

samādhi

paññā

공무변처

upekkhā

adhiṭṭhāna

saddhā

viriya

sati

samādhi

paññā

식무변처

upekkhā

adhiṭṭhāna

saddhā

viriya

sati

samādhi

paññā

무소유처

upekkhā

adhiṭṭhāna

saddhā

viriya

sati

samādhi

paññā

비상비비상

upekkhā

adhiṭṭhāna

saddhā

viriya

sati

samādhi

paññā

위의 도표는 삼매 혹은 선정의 위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최초의 4선정은 마음작용이 가라앉은 정도에 따른 단계적 구분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무색계의 등지는 마음작용의 소멸 여부와 상관없이 제4선정과 동일한 상태로 진행됨을 알 수 있다.

또한 앞서 언급했듯이 니까야는 ‘마음의 잠세력’ 즉 의행(意行, cittasaṅkhārā)이 사라진 상수멸의 경지를 추가적으로 언급한다. 상수멸은 니까야에 등장하는 다른 어떤 삼매보다도 깊은 고요함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제2선정에 들어간 자에게는 심과 사에 의한 구행(口行)이 그치고, 제4선정에 들어간 자에게는 들숨과 날숨에 의한 신행(身行)이 그치며, 상수멸(想受滅)에 들어간 자에게는 지각과 느낌에 의한 의행(意行)이 그친다.”라는 언급이 그것이다.69) 이러한 상수멸의 상태는 일체의 잠세력(saṅkhārā)이 사라진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것이 억제된 상태(sarva-nirodhāt)’ 혹은 ‘지혜로부터 형성된 잠세력들마저도 저지된 상태(prajñākṛtānāmapi saṃskārāṇaṃ pratibandhī)’로 묘사되는 무종자삼매와 사실상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이상의 내용의 종합하여 도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니까야

요가수뜨라

구차제주

(바른삼매 포함)

삼삼매

유종자/무종자

유상/무상

제1선정

유심유사

유심등지

심(尋)삼매

무심유사

무심등지

사(伺)삼매

유사등지

제2선정(口行소멸)

무심무사

무사등지

제3선정

환희삼매

제4선정(身行소멸)

자의식삼매

공무변처등지

무상삼매

식무변처등지

무소유처등지

비상비비상처등지

상수멸(意行소멸)

무종자삼매

<표5> 요가수뜨라와 니까야에 나타난 삼매의 위계 종합

도표에 따르면 제1선정은 유심/무심등지와 심/사삼매에 해당한다. 한편 앞에서 언급했듯이 제3선정은 환희삼매에 제4선정은 자의식삼매에 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무색계의 4등지와 무상삼매가 정확히 일치하는지의 여부를 알 수 없다. 한편 상수멸과 무종자삼매는 니까야와 요가수뜨라에서 최종 단계에 놓이는 것으로 수평적인 대비가 가능하다.

그런데 니까야에는 이상과 같은 분류법 이외에도 삼매를 얻는 방식에 의한 분류도 나타난다. 예컨대 의욕에 의한 삼매(chandasamādhi), 노력에 의한 삼매(viriyasamādhi), 마음에 의한 삼매(cittasamādhi), 고찰에 의한 삼매(vīmaṁasāsamādhi)가 그것이다.70) 이들 4가지 삼매는 앞서 다루었던 분류법이 마음작용의 여부에 따른다는 사실에 비추어 차별적이다. 또한 Paṭisambhidāmagga에는 1가지, 2가지, 3가지, 4가지, 5가지, 6가지, 7가지, 8가지, 9가지, 10가지에 이르는 도합 55가지 삼매 분류법이 나타난다.71) 이것은 삼매의 종류를 교리적 내용과 관련시켜 분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양상은 요가수뜨라에서 독립된 형식으로 나타나는 법운삼매(法雲三昧, dharma-megha-samādhi) 또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72) 이들은 삼매의 계층적 위계를 나타낸다고 보기 힘들다. 따라서 이들 간의 수평적 대비는 곤란하다고 할 수 있다.

요가수뜨라와 니까야에 나타나는 삼매의 위계에 대한 비교는 이상과 같다. 그러나 양자의 삼매관을 언급하면서 간과해서는 안 될 더욱 중요한 사항이 있다. 그것은 서로에게서 삼매의 실천이 과연 무엇을 목적으로 했는가의 문제이다. 사실 요가수뜨라와 니까야는 삼매 자체만을 강조하지는 않았다. 이들에게서 삼매란 지혜(慧, prajñā/paññā) 혹은 식별지(識別知, viveka-khyātir)의 성취를 위한 수단이었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이점은 단순한 집중만으로는 지고의 평안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인식이 공유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하여 요가수뜨라에는 일정한 단계의 삼매를 성취한 연후에 지혜가 발현되고 그런 연후에 최후의 무종자삼매에 도달한다는 내용이 나타난다. 즉 “무사등지가 빛날 때 내적인 청정이 있다. 거기에 진리를 간직한 지혜가 있다. [이것은] 차별적인 대상을 갖기 때문에 전승이나 추리에 의한 지혜와 다른 대상을 지닌다. 거기에서 생겨나는 잠세력은 다른 잠세력을 저지한다. 그것마저 억제되면 모든 것이 억제되므로 무종자삼매에 이른다.”라는 언급이 그것이다.73) 이것은 삼매의 최종 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단순한 집중만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며, 진리를 꿰뚫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나타낸다.

이러한 양상은 니까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상수멸의 등지를 위해서는 2가지 법을 많이 행해야 한다. 그것은 사마타와 위빠사나이다.”라는 언급이 그것이다.74) 앞서 언급했듯이 사마타라는 명칭은 내부적인 고요함을 의미하며 4가지 선정과 4가지 등지를 포섭한다. 한편 위빠사나는 사마타와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통찰의 지혜를 의미한다.75) 이와 같이 니까야 또한 요가수뜨라에서처럼 삼매와 지혜 모두를 강조한다. 진리를 꿰뚫는 지혜와 더불어 완전한 무집착(vairāgya) 혹은 탐냄(rāga)․성냄(dosa)․어리석음(moha)으로부터 벗어난 상태를 지향했던 것이다.76)

그러나 두 문헌의 삼매관은 유사점만을 지니는 것도 아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요가수뜨라에서는 무사등지에 이르러 지혜(prajñā)가 발현된다고 기술한다. 이러한 지혜는 다른 잠세력들을 저지하는 잠세력을 생겨나게 하여 무종자삼매라는 최종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해준다.77) 그런데 니까야에서는 이 지혜(paññā)의 발현이 특정한 선정의 단계에 한정되지 않는다. <표4>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니까야에는 제1선정에서부터 비상비비상처 전체에 걸쳐 지혜가 수반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니까야는 지혜의 발현을 특정한 삼매의 단계에 제한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보다 유연한 입장을 취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니까야는 어떠한 방식으로 제1선정에서부터 지혜의 성취가 가능하다고 보는가. 바로 이점은 필자 자신의 선행 연구를 통해 이미 여러 차례 다루었던 내용이다.78) 예컨대 니까야에는 제1선정에서부터 위빠사나의 통찰이 진행된다는 내용이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비구들이여, 사리뿟따는 보름에 걸친 ‘순서에 따른 법에 대한 위빠사나(vipassanā)’를 수행하였다. 비구들이여, 여기에서 사리뿟따의 ‘순서에 따른 법에 대한 위빠사나’란 이러하다. 비구들이여, 여기에서 사리뿟따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벗어나고 선하지 않은 법으로부터 벗어나, 심(尋)과 사(伺)를 지닌, 떠남으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의 제1선정에 도달하여 머물렀다. 제1선정에는 심, 사, 기쁨(喜), 즐거움(樂), 하나된 마음(心一境性), 접촉(觸), 느낌(受), 지각(想), 의도(思), 마음(心), 의욕(欲), 확신(勝解), 정진(精進), 마음지킴(念), 평정(捨), 마음기울임(作意) 등의 법이 있었고, 그들 법이 순서에 따라 결정되었다(anupadavavatthitā honti). 그에게 ‘감지되는 것(viditā)’으로서 그들 법이 일어났다. ‘감지되는 것’으로서 드러났다. ‘감지되는 것’으로서 사라졌다. 그는 이와 같이 알아차렸다(evaṃ pajānāti). ‘실로 이들 법은 나에게 있지 않다가 발생한 것이고, 있고 난 후 알게 되었다’라고.... 제2선정에 도달하여 머물렀다. 제2선정에는.... 제3선정에 도달하여 머물렀다. 제3선정에는.... 제4선정에 도달하여 머물렀다. 제4선정에는.... 79)

이러한 방식으로 니까야에서는 각각의 선정 단계에서 나타나는 마음작용 자체를 통찰의 대상으로 상정한다. 선정의 와중에 감지되는(viditā) 마음작용의 내용이 무상(無常)과 무아(無我)의 진리를 깨닫게 하는 매개로 기능하는 것이다.80) 바로 이점에서 니까야의 삼매관은 무사등지의 단계에 도달한 연후라야 지혜가 발현된다고 본 요가수뜨라의 삼매관과 차별적이다. 심지어 니까야에는 제1선정만으로도 모든 잠세력(saṅkhāra)과 집착(upadhi)을 소멸할 수 있다는 내용까지 등장한다.

아난다여, 여기에서 비구는… 제1선정에 도달하여 머문다.… 그는 그들 법으로부터 마음을 정화한다. 그는 그들 법으로부터 마음을 정화하고 난 후 죽지 않음의 계(不死界)로 마음을 모은다. 모든 잠세력(行)이 그치고, 모든 집착을 버리고, 갈애를 소멸하고, 탐냄을 떠나고, 억제하여, 그와 같이 선하고 수승한 열반[으로 마음을 모은다.] 그는 거기 [즉 제1선정에] 서서 번뇌(漏)의 소멸을 얻는다. 다시, 아난다여, 다른 비구는… 제2선정에… 제3선정에… 제4선정에… 공무변처에… 식무변처에… 무소유처에 도달하여 머문다.… 그는 그들 법으로부터 마음을 정화한다. 그는 그들 법으로부터 마음을 정화하고 난 후 죽지 않음의 계(不死界)로 마음을 모은다. 모든 잠세력(行)이 그치고, 모든 집착을 버리고, 갈애를 소멸하고, 탐냄을 떠나고, 억제하여, 그와 같이 선하고 수승한 열반[으로 마음을 모은다.] 그는 거기 [즉 무소유처에] 서서 번뇌(漏)의 소멸을 얻는다.81)

인용문만으로는 제1선정에 도달하는 즉시 자동적으로 잠세력이 그치고 집착이 소멸하는지의 여부가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제1선정만으로도 그러한 성취가 가능하다는 입장만큼은 충분히 드러난다. 즉 제1선정과 그 이후의 선정 단계가 동일한 양상으로 반복됨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니까야에는 가장 단계에 속한 제1선정으로 궁극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견해가 나타난다. 바로 이점에서 니까야의 삼매관은 요가수뜨라의 그것과 결정적인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Ⅴ. 마치는 말.

요가수뜨라와 니까야는 고전요가와 초기불교의 근거가 되는 문헌들이다. 거기에 기술된 삼매 관련 내용들은 내부적 평온과 안정을 바탕으로 진리를 실현해 나가는 명상 종교의 전형적 면모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두 문헌에 나타나는 삼매관은 놀라울 만큼 유사한 측면을 지닌다. 특히 삼매에 관련된 주요 개념들에 대한 이해 방식과 위계의 설정 문제에서 상당 부분을 공통된 입장을 지닌다. 이것은 요가학파와 초기불교 모두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면서 영향을 주고받는 가운데 자신들만의 입장을 구체화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또한 확인했듯이 두 문헌에 나타나는 삼매관은 차이점을 지니는 것도 사실이다. 요가수뜨라는 무사등지(nirvicārā-samāpatti)라는 단계에 이르러 진리를 직관하는 지혜(prajñā)가 발현된다고 기술한다. 그러나 니까야는 그러한 위계를 인정하면서도 지혜(paññā)의 발현이라는 측면에서는 유연한 태도를 취한다. 가장 낮은 단계의 삼매인 제1선정에서부터 지혜가 수반되며, 또한 그것의 체험만으로도 잠세력(saṅkhāra)이 소멸되고 번뇌(āsava)가 사라진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기술한다. 이점에서 요가수뜨라는 삼매의 위계에 엄격한 입장을 고수했고, 니까야는 보다 유연한 태도로 지혜의 발현 가능성을 언급했다고 할 수 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니까야의 삼매관은 역사적 존재로서의 붓다(Buddha)에게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추이에 따라 발전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니까야에 기술된 삼매 관련 단편들이 일관된 방식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지적과 더불어 나름의 설득력을 얻는 듯하다. 그런데 이미 살펴보았듯이 이러한 사정은 요가수뜨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요가수뜨라 역시 일관된 방식으로 삼매의 위계를 언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고는 이렇듯 다양한 양상으로 제시되는 삼매의 위계들 가운데 어떤 특정한 체계만을 강조할 목적으로 의도된 것이 아니다. 다만 본고는 이들에 대한 비교와 대조를 통해 각각의 체계가 어떠한 방식으로 소통될 수 있는지의 여부에 초점을 모았다고 할 수 있다.

삼매 혹은 선정은 주관적인 체험의 영역에 속한다. 따라서 이것을 엄밀한 객관적 잣대로 계량화하기란 곤란하다. 더욱이 문헌에 따라 동일한 명칭의 삼매가 각기 다른 의미와 용도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은 전통을 달리하는 두 문헌군을 가로지른 본고가 매우 취약한 기반 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미 확인했듯이 요가수뜨라와 니까야에 나타나는 삼매관은 일정한 체계를 공유하며 상당한 유사성을 지닌다. 더욱이 이들 각각은 장구한 세월에 걸쳐 고전요가와 초기불교의 실천적 근거로 활용되어 왔다. 바로 이점에서 이들의 삼매관에 대한 수평적 비교와 소통의 시도는 나름의 정당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 약호 및 참고문헌

AN Aṅguttaranikāya (PTS ed.)

DN Dīghānikāya (PTS ed.)

Dhp Dhammapada (PTS ed.)

MN Majjhimanikāya (PTS ed.)

SN Saṁyuttanikāya (PTS ed.)

YB Vyāsa의 Yogasūtra-Bhaṣya

YS Patañjali의 Yogasūtra

Ps Paṭisambhidāmagga (PTS ed.)

Sadhp Saddhammapakāsinī (PTS ed.)

문을식(2010). 「요가철학에서 법운삼매의 획득 과정」, 『요가학연구』제4호, pp.11-64.

이영진(2005). 「초기불교 텍스트에서 나타난 상수멸(sannavedayitanirodha)의 불일치와 모순」, 『인도철학』제19집, pp.91-121.

이지수(2002).「빠딴잘리 『요-가,수-뜨라』 삼매품(三昧品)의 사상(思想)」, 『인도철학』제11집, pp.45-81.

이태영(1992). 「고전요가의 이론과 실천에 관한 연구」, 동국대학교박사학위 청구논문.

임승택(2000). 「불교의 선정과 요가의 삼매에 대한 비교연구」, 『회당학보』제5집, pp.215-251.

______ 옮김(2001). 『빠띠삼비다막가 역주』, 서울: 가산불교문화연구원출판부.

______(2001), 「초기불교의 경전에 나타난 사마타와 위빠싸나」, 『인도철학』 제11집 제1호, 205-234.

______(2002). 「선정의 문제에 관한 고찰」, 『불교학연구』제5호, pp.247-277.

______(2003). 「첫 번째 선정의 의의와 위상에 대한 고찰」, 『불교학연구』제6호, pp.185-212.

______(2004). 「위빠사나의 원리와 실제」, 『불교연구』제20호, pp.183-213.

______(2008). 「초기경전에 나타나는 궁극 목표에 관한 고찰」, 『불교학연구』제19호, pp.49-80.

정승석(2005). 「요가 철학의 삼매 분류」, 『인도철학』 제19집, pp.163-189.

______ 옮김(2010). 『요가수트라 주석』, 서울: 소명출판.

花木泰堅(1965). 「ヨ-ガ派의 禪定說」,『印度學佛敎學硏究』13卷 2号, 日本印度學佛敎學會.

Georg Feuerstein(1990). Encyclopedic Dictionary of Yoga, London․Sydney․Wellington: Unwin Paperbacks.

Nārada Thera(1996), A Manual of Abhidhamma, Abhidhammattha-Saṅgaha, Yangon: Ministry of Religious Affairs.

Rhys Davids, T. W.(1986). The Pali Text Society's Pali-English Dictionary, London: The Pali Text Society.

Schmithausen, L.(1981). “On Some Aspects of Descriptions or Theories of ‘Liberating insight’ and ‘Enlightenment’ in Early Bddhism”, Studien Zum Jainismus und Buddhismus, Wiesbaden: Steiner-Verlag-Wiesbaden-Gmbh.

Stcherbatsky(1978). The conception of Buddhist Nirvāna, Delhi: Motilal Banarsidass Publishers.

Vetter, T.(1988). The Ideas and Meditative Practice of Early Buddhism. Köln: E. J. Brill.


* 이 논문은 2012학년도 경북대학교 학술연구비에 의하여 연구되었음

2) Samādhiṃ bhikkhave bhāvetha, samāhito bhikkhave bhikkhu yathābhūtaṃ pajānāti. SN IV. p.80, p.144; MN I. p.61 f.; MN III. pp.114-115; SN V. p.414 cf.; 임승택(2003), p.188 재인용.

3) Natthi jhānaṃ apaññassa paññā natthi ajhāyato, Yamhi jhānaṃ ca paññā ca sa ve nibbāṇasantike. Dhp 372게송; 임승택(2002), p.247 재인용.

4) taj-jayāt prajñā-ālokaḥ. YS 3.5.

5) tadāsarva-āvaraṇa-mala-apetasya jñānasya ānantyāj-jñeyam alpam. YS 4.31.

6) yogaś-citta-vṛtti-nirodhaḥ. tadā draṣṭuḥ sva-rūpe'vasthānam. YS I.2~3; “요가란 마음작용의 억제이다.”라는 I.2게송에서 삼매가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뒤이어 나타나는 게송들을 종합하면 ‘마음작용의 억제’란 결국 삼매의 상태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컨대 I.12에서는 수련(abhyāsa)과 무집착(vairāgya)을 통해 ‘마음작용의 억제’가 이루어진다고 기술하고 있으며, I.17부터 I.51까지는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상태를 有想三昧(saṃprajñāta-samādhi), 有伺等至(savitarkā samāpatti), 有種子三昧(sabīja-samādhi), 無種子三昧(nirbīja-samādhi) 등으로 묘사한다.

7) 임승택(2000).

8) 이지수(2002).

9) 정승석(2005).

10) 문을식(2010).

11) 임승택(2000) pp.241-249 참조.

12) 임승택(2003) pp.195-203 참조.

13) 임승택(2003).

14) 이영진(2005).

15) T. Vetter(1988).

16) L. Schmithausen(1981).

17) 예컨대 이영진(2005)에 따르면 초기불교에서 최고의 선정이라고 할 수 있는 상수멸(想受滅, saññāvedayitanirodha)은 붓다 자신에게 귀속되는 수행법이 아니며 역사적으로 발전된 개념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니까야에 등장하는 다른 삼매 관련 내용들도 이질적인 다양한 배경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그렇게 형성된 내용들 또한 각기 다른 성향의 제자들에 의해 제각각 다른 방식으로 이해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18) T. W. Rhys Davids(1986) p.1159.

19) tad-eva-artha-mātra-nirbhāsaṃ sva-rūpa-śūnya-iva samādiḥ YS 3.3.

20) Georg Feuerstein(1990) p.301 참조.

21) yogaḥ samādiḥ. YB 1.1

22) sa ca sārvabhaumścittasya dharmaḥ. kṣiptaṃ mūḍhaṃ vikṣiptaṃ ekāgraṃ niruddhamiti cittabhūmayaḥ. YB 1.1.

23) “거기에서 마음이 산란할 경우 산란함에 종속된 상태로 있는 삼매는 요가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tatra vikṣipte cetasi vikṣepopasarjanībhūtaḥ samādhirna yogapakṣe vartate. YB 1.1.)

24) yastvekāgre cetasi sadbhūtamarthaṃ pradyotayati kṣiṇoti ca kleśānkarmabandhanāni ślathayati nirodhamabhimukhaṃ karoti sa saṃprajñāto yoga ityākhyāyate. YB 1.1.

25) samādhindriyassa avikkhepaṭṭho abhiññeyyo Ps I. p.16.

26) avikkhepaparisuddhattā āsavasamucchede paññā ānantarikasamādhismiṁ ñāṇaṁ. Ps I. pp.94-96 참조.

27) 이태영(1992) pp.24-29, pp.143-149 참조.

28) vitarka-vicāra-ānanda-asmitā-rūpa-anugamāt saṃprajñātaḥ. YS 1.17; 정승석(2005) p.175.

29) 花木泰堅(1965) pp.158-161 참조.

30) etayā-eva savicārā nirvicārā ca sūkṣma-viṣayā vyākhyātā. YS 1.44~45.

31) vitarkaḥ cittasya ālambane sthūla ābhogaḥ sūkṣmo vicāraḥ. YB 1.17.

32) T. W. Rhys Davids(1986) p.1161.

33) kṣīṇa-vṛtter-abhijātasya-iva maṇer-grahītṛ-grahaṇa-grāhyeṣu tat-stha-tad-añjanatā samāpattiḥ. YS 1.41.

34) yathā sphaṭika upāśrayabhedāttadrūpoparakta upāśrayarūpākāreṇa nirbhāsate, thatā grāhyālambanoparaktaṃ cittaṃ grāhyasamāpannaṃ grāhyasvarūpākāreṇa nirbhāsate. YB 1.41.

35) 이와 관련하여 정승석은 Yogasūtra-Bhaṣya에서 등지를 삼매로 환언하는 사례까지 나타난다고 언급한다. 예컨대 “‘무사의 삼매(nirvicārasya samādher)’에서 그것의 빛이 생겨날 때 요가수행자에게 내적인 청정이 있게 된다(yadā nirvicārasya samādhervaiśāradyamidam jāyate tadā yogino bhavatyadhyātmaprasādo. YB 1.47)”는 문구가 그것이다. 이점을 고려할 때 등지와 삼매는 명칭만 다를 뿐 실제적으로는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정승석(2005) p.168.

36) tatra śabda-artha-jñāna-vikalpaiḥ saṃkīrṇā savitarkā samāpattiḥ. YS 1.42.

37) smṛti-pariśuddhau sva-rūpa-śūnya-iva-artha-mātra-nirbhāsā nirvitarkā. YS 1.43.

38) 임승택(2001), pp.211-215; Ps II. p.172; 이들 선정과 등지의 관계에 대해서는 본고의 Ⅳ장에서 더욱 자세히 논의하기로 한다.

39) 본고에서 禪定으로 번역되는 원래의 말은 Pāli로 쟈나(jhāna)이며 sanskrit로는 디야나(dhyāna)이다. 이들은 동의어로서 禪, 禪那, 靜廬 등으로 한역되곤 한다. 한편 等至로 번역되는 samāpatti는 Pāli와 sanskrit가 동일한 형태이며 等至, 定, 入定 등으로도 번역된다. 필자는 이들에 대한 번역상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jhāna/dhyāna에 대해서는 선정으로, samāpatti에 대해서는 등지로 일괄 번역한다.

40) 임승택(2000) p.232 참조; 또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본고의 Ⅳ장에서 더욱 자세히 논의하기로 한다.

41) vitakketīti vitakko, vitakkanaṁ vā vitakko, ūhananti vuttaṁ hoti. ārammaṇe tena cittaṁ vicaratīti vicāro, vicaraṇaṁ vā vicāro, anusañcaraṇanti vuttaṁ hoti. Sadhp p.80.

42) Nārada Thera(1996) pp.88-90 참조.

43) 예컨대 다음의 언급이 그것이다. “그대, 위사카여, 들숨과 날숨은 身行이고, 심과 사는 口語이며, 지각과 느낌은 意行이다.” (Assāsapassāsā kho āvuso visākha kāyasaṅkhāro. Vitakkavicārā vacīsaṅkhāro. Saññā ca vedanā ca cittasaṅkhāroti. MN I. p.301; MN I. p.296 cf.; SN IV. pp.217-218, p.220, p.227, p.228 cf.)

44) “제2선정(第二禪)에 들어간 자에게는 심과 사에 의한 口行이 그친다.” (dutiyajjhānaṁ samāpannassa vitakkavicārā vacīsaṅkhārā paṭippassaddhā honti. Ps I. p.99; MN I. p.296; SN IV. pp.217-218)

45) 이지수(2002) p.71 참조.

46) Tayo samādhi: savitakkasavicāro samādhi, avitakkavicāramatto samādhi, avitakkaavicāro sāmādhi. DN III. p.219; DN III. p.274; MN III. p.162; SN IV. pp.360-362.

47) T. W. Rhys Davids(1986), p.521.

48) tatra pratyaya-ekatānatā dhyānam. YS 3.2.

49) dhyāna-heyās-tad-vṛttayaḥ. YS 2.11.

50) “법을 지닌 이들이 ‘생각에 잠긴다’는 [의미에서,] 번뇌를 ‘태워 없앤다’는 [의미에서,] ‘생각에 잠김’과 ‘태워 없앰’을 안다는 [의미에서] ‘선정에 의한 해탈’이다.” (jhāyantīti dhammā, jhāpetīti kilese, jhāte ca jhāpe ca jānātīti jhānavimokkho. Ps II. p.44)쪽.

51) “[집중․선정․삼매의] 셋을 하나로 總制[라고 부른다.]” (trayam-ekatra saṃyamaḥ. YS 3.4.)

52) 이태영(1992) pp.139-140 참조.

53) Georg Feuerstein(1990) p.301 참조.

54) 니까야에서 언급하는 삼매의 의미와 위계에 관해서는 본고의 Ⅳ장에서 자세히 논의하기로 한다.

55) 정승석(2005) p.165.

56) 정승석(2005), pp.165-166 참조.

57) 정승석(2005), pp.176-180 참조.

58) Yogasūtra-Bhaṣya에서는 무종자삼매에 이르러 일체의 잠세력이 소멸한다는 것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묘사한다. “그것 [즉 무종자삼매]는 삼매를 통한 지혜만을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부터 형성된 잠세력들마저도 저지한다.” (sa na kevalaṃ samādhiprajñāvirodhī prajñākṛtānāmapi saṃskārāṇaṃ pratibandhī bhavati. YB 1.51.)

59) 정승석(2005), p.180.

60) 앞서 각주에서 보았듯이 Yogasūtra-Bhaṣya(YB 1.51.)에서는 무종자삼매에서 일체의 잠세력이 저지된다고 언급한다. 이것은 ‘잠세력의 잔존(saṃskāra-śeṣo)’을 특징으로 하는 무상삼매가 무종자삼매에 미치지 못한다는 근거가 된다. 정승석(2005) 179-180.

61) “거기에서 유심등지는 말과 대상과 앎에 대한 분별로 뒤섞인 상태이다. 무심등지는 기억이 정화되고 자신의 모습은 없어진 것 같이 되어 대상만이 빛나는 상태이다. 바로 이들 뒤따라 미세한 [집중]대상을 지닌 [유사등지와 무사등지가] 설명된다.” (tatra śabda-artha-jñāna-vikalpaiḥ saṃkīrṇā savitarkā samāpattiḥ. smṛti-pariśuddhau sva-rūpa-śūnya-iva-artha-mātra-nirbhāsā nirvitarkā. etayā-eva savicārā nirvicārā ca sūkṣma-viṣayā vyākhyātā. YS 1.42, 43, 44.)

62) Katamo ca bhikkhave sammāsamādhi? Idha bhikkhave bhikkhu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ṃ savicāraṃ vivekajaṃ pītisukhaṃ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vitakkavicārānaṃ vūpasamā ajjhattaṃ sampasādanaṃ cetaso ekodibhāvaṃ avitakkaṃ avicāraṃ samādhijaṃ pītisukhaṃ du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Pītiyā ca virāgā upekkhako ca viharati. Sato ca sampajāno sukhañca kāyena paṭisaṃvedeti, yantaṃ ariyā ācikkanti upekkhako satimā sukhavihārīti, taṃ ta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sukhassa ca pahānā dukkhassa ca pahānā pubbeva somanassadomanassānaṃ atthaṅgamā adukkhamasukhaṃ upekkhāsatipārisuddhiṃ catutth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Ayaṃ vuccati bhikkhave sammāsamādhi. DN II. p.313; DN III. p.78cf.; DN III. pp.131-132cf.; DN III. p.222cf.

63) 정승석(2005) p.175 참조.

64) 임승택(2001) pp.214-215; Ps II. p.172.

65) DN III. p.265; AN IV. p.410; SN II. p.222.

66) 이와 관련하여 Vetter는 Schmithausen(1981)의 견해를 바탕으로 초기불교의 실천을 다음의 3가지로 정리한다. ①4선정의 성취를 통해 재생과 고통으로부터 해탈하는 유형, ②색계의 4선정(色界四禪)과 무색계 4등지(四無色定)를 걸쳐 상수멸을 성취함으로써 재생과 고통으로부터 해탈하는 유형, ③선정을 배제한 지혜(paññā)에 의해 모든 갈망으로부터 벗어나 재생과 고통으로부터 해탈하는 유형이 그것이다. Vetter에 따르면 이상의 셋 가운데 ②의 유형은 ①과 ③에 비해 후대의 어느 시기에 편입된 것이라고 한다. 즉 상수멸에 의한 해탈의 성취는 자이나교를 비롯한 외도의 영향을 반영하는 것으로 상당히 늦은 시기에 정립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주장이 타당하다면 초기불교 고유의 실천은 ①과 ③에 국한된다고 할 수 있다. T. Vetter(1988) p.XXII-XXVII 참조; 임승택(2008); pp.58-60 참조.

67) Ps I. pp.168-169.

68) <표4>는 임승택의 기존 논문(2001)에 실린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다만 한글 번역상의 논란을 피하기 위해 원래의 Pāli로 환원하여 기술한 점이 다르다. 임승택(2001) p.226.

69) dutiyajjhānaṁ samāpannassa vitakkavicārā vacīsaṅkhārā paṭippassaddhā honti, catutthajjhānaṁ samāpannassa assāsapassāsā kāyasaṅkhārā paṭippassaddhā honti, saññāvedayitanirodhaṁ samāpannassa saññā ca vedanā ca cittasaṅkhārā paṭippassaddhā honti. Ps I. p.99; MN I. p.296cf.; SN IV. pp.217-21, p.220, p.227, p.228cf.

70) SN V. pp.268-269.

71)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해당 구절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1가지 삼매가 있다. 마음의 하나됨(心一境性)이다. 2가지 삼매가 있다. 세간삼매와 출세간삼매이다. 3가지 삼매가 있다. 유심유사삼매, 무심유사삼매, 무심무사삼매이다. 4가지 삼매가 있다. 물러남의 삼매(順退分定), 머무름의 삼매(順住分定), 수승함으로 나감의 삼매(順勝進分定), 결택의 삼매(順決擇分定)이다.… ” (eko samādhi cittassa ekaggatā. dve samādhī- lokiyo samādhi, lokuttaro samādhi. tāyo samādhī savitakkasavicāro samādhi, avitakkavicāramatto samādhi, avitakkāvicāro samādhi. cattāro samādhī hānabhāgiyo samādhi, ṭhitibhāgiyo samādhi, visesabhāgiyo samādhi, nibbedabhāgiyo samādhi… Ps I. pp.48-49)

72) “높은 경지임에도 욕망을 지니지 않는 자에게는 언제나 식별지로부터 法雲三昧)가 있다.” (prasaṃkhyāne'py-akusīdasya sarvathā viveka-khyāter-dharma-meghaḥ samādhiḥ. YS 4.29.); 그런데 법운삼매는 유상/무상 혹은 유종자/무종자의 어느 계열에도 속하지 않으며 별도의 위계를 내세우기에도 곤란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삼매의 위계에 초점을 모으는 본고의 논의에서는 배제한다. 법운삼매의 성격이라든가 획득 과정에 관해서는 문을식(2010)의 선행 연구가 있다.

73) nirvicāra-vaiśāradye'adhyātma-prasādaḥ. ṛtaṃ-bharā tatra prajñā. śruta-anumāna-prajñābhyām-anya-viṣayā viśeṣa-arthatvāt. taj-jah saṃskāro'nya-saṃskāra-pratibandhī. tasya-api nirodhe sarva-nirodhān-nirbījaḥ samādhiḥ. YS 1.47, 48, 49, 50, 51.

74) saññāvedayitanirodhasamāpattiyā kho gahapati dve dhammā bahūpakārā smatho ca vipassanā cā ti. SN IV. p.295.

75) 임승택(2001) 212-219 참조.

76) YS의 3.50에서는 “그와 같은 무집착 등을 통해 허물의 씨앗이 사라질 때 독존(獨存)이 있게 된다(tad-vairāgyād-api doṣa-bīja-kṣaye kaivalyam).”라고 기술한다. 한편 니까야에서는 “도대체 무엇이 열반인가? 탐냄의 소멸, 성냄의 소멸, 어리석음의 소멸, 바로 그것을 열반이다(nibbānaṃ nibbāṇanti āvuso sāriputta vuccati, katamannu kho āvuso nibbānanti. Yo kho āvuso rāgakkhayo dosakkhayo mohakkhayo idaṃ vuccati nibbānanti(SN. IV. p.251).”라고 기술한다. 따라서 여기에서 기술한 “완전한 무집착(vairāgya) 혹은 탐냄(rāga)․성냄(dosa)․어리석음(moha)으로부터 벗어난 상태”란 요가수뜨라와 니까야가 지향하는 최고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77) 앞서 각주를 통해 살펴보았던 YS의 1.47, 48, 49, 50, 51 등의 언급이 그것이다.

78) 임승택(2002) p.266 참조; 임승택(2003), pp.195-207 참조.

79) Sāriputto bhikkhave, addhamāsaṃ anupadadhammavipassanaṃ vipassati. Tatridaṃ bhikkhave, sāriputtassa anupadadhammavipassanāya hoti. Idha bhikkhave, sāriputto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ṃ savicāraṃ vivekajaṃ pītisukhaṃ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majja viharati. Ye ca paṭhame jhāne dhammā vitakko ca vicāro ca pīti ca sukhañca cittekaggatā ca phasso vedanā saññā cetanā cittaṃ chando adhimokkho viriyaṃ sati upekkhā manasikāro. Tyāssa dhammā anupadavavatthitā honti, tyāssa dhammā viditā uppajjanti, viditā upaṭṭhahanti, viditā abbhatthaṃ gacchanti. So evaṃ pajānāti: evaṃ kira me dhammā ahutvā sambhonti, hutvā paṭiventī'ti.... du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Ye ca dutiye jhāne... ta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Ye ca tatiye jhāne... catutth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ye ca catutthe jhāne.... MN III. p.25-26.

80) 임승택(2002), pp.255-261 참조; 임승택(2004) pp.196-199 참조.

81) Idh’ Ānanda bhikkhu…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So tehi dhammehi cittaṃ paṭivāpeti. So tehi dhammehi cittaṃ paṭivāpetvā amatāya dhātuyā cittaṃ upasaṃharati. Etaṃ santaṃ etaṃ paṇītaṃ yadidaṃ sabbasaṅkhārasamatho sabbūpadhipaṭinissaggo taṇhakkhayo virāgo nirodho nibbānanti. So tatthaṭṭhito āsavānaṃ khayaṃ pāpuṇāti.… Puna ca paraṃ ānanda bhikkhu… dutiyaṁ jhānaṃ… tatiyaṁ jhānaṃ… catutthaṁ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ākāsānañcāyatanaṃ… viññāṇañcāyatanaṃ… ākiñcaññāyatanaṃ upasampajja viharati.… So tehi dhammehi cittaṃ paṭivāpeti. So tehi dhammehi cittaṃ paṭivāpetvā amatāya dhātuyā cittaṃ upasaṃharati. Etaṃ santaṃ etaṃ paṇītaṃ yadidaṃ sabbasaṅkhārasamatho sabbūpadhipaṭinissaggo taṇhakkhayo virāgo nirodho nibbānanti. So tatthaṭṭhito āsavānaṃ khayaṃ pāpuṇāti. MN I. pp.435-437.

 

 

 

 

 

 

 

 

 

임기영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dlpul1010/2704 에서 복사한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