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라마 · 보리심 수행

곰림바르빠 - 수행차제 발단(發端) : 달라이라마 주해

수선님 2020. 1. 26. 12:51

* 지금부터 이어지는 곰림 바르빠는 모두 달라이 라마의 주해입니다. 이 논서의 귀중한 가치에 비해 주석서를 발견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달라이 라마의 주해는 아주 귀중한 해석의 열쇠입니다. 정성껏 그 깊이를 탐구하시기를 바랍니다. --로덴 합장.




발단(發端)



범어(梵語)로는 ‘브하와나끄라마(Bhavanakrama)',
서장어(西藏語, Bod-yig)로는 ‘곰뻬림빠(sGom Pa'i Rim Pa)',
[한어(韓語)로는 ‘수행차제(修行次第)’라고 합니다.]

문수동자(文殊童子) [보살님]께 배례(拜禮) 올립니다.



[여기에] 대승 경전의 체계를 따라 입문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수행차제(修行次第)를 간추려서 설명하겠습니다. 이에

일체지(一切智)를 속히 성취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이것을 이루기 위한 원인(因)과 조건(緣)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수행차제(修行次第)』라고 부르는 이 논서(論書)는 위대한 정신적 스승이신 까말라실라(Kamalasila, 蓮花戒)께서 저술하신 것입니다. 이 논서는 원래 상편, 중편, 하편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제부터 설명할 내용은 중편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이 논서의 핵심주제는 보리심(菩提心)과 공성(空性)에 대한 바른 견해인 정견(正見)입니다.

불성(佛性)을 이루는 정신적인 길에는 지혜와 방편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부처님의 물리적인 몸인 색신(色身)과 지혜의 몸인 법신(法身)을 성취하는 수행의 길을 말합니다. 본문에서는 먼저 다른 유정 중생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바라밀(婆羅蜜: 실천행)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행하는 바라밀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보리심을 일으키는 방법공성에 대한 지혜를 깨닫는 방법은 모두 불교(佛敎) 수행의 기본적인 바탕을 이루는 핵심 요소입니다. 이 논서에는 깨달음에 이르는 길의 두 가지 요소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담겨져 있습니다.

이 가르침들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보리심의 근본에는 자비심(慈悲心)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깨달음에 대한 이러한 사고(思考)는 모든 현상의 궁극적인 본성인 공성을 깨닫는 지혜수행으로 이어집니다.

이 지혜는 모든 사물의 공성에 집중하는 지(止, Samatha)와 관(觀, Vipashyana이 하나로 합일된 상태를 말합니다.

북인도의 라훌 스피띠(Lahul-Spiti) 그리고 낀노르(Kinnaur) 지역에서 여기까지 이렇게 법문을 들으러 오신 여러분은 대부분 학식이 있는 분들입니다. 그러나 그 외에 많은 분들은 종교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이나 믿음이 없는 초심자들이기 때문에, 좀더 기초적인 수준에서 가르침을 전하려고 합니다. 이런 분들을 위해 종교에 대한 관심은 일반적으로 어떻게 해야 가질 수 있는 것인지, 특히 불교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해야 가질 수 있는 것인 지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종교에 대한 관심을 일으킬 수 있는 여러 구절들이 있으며, 논리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본문의 내용을 보면 종교는 단순히 맹목적인 신앙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앙은 논리와 이성을 바탕으로 생기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믿음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믿음과 논리를 바탕으로 한 믿음의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두 번째 유형의 경우에는 자기 스스로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는 방식과 자신의 필요와 요구에 맞게 관찰해 나가는 방식이 있습니다. 믿음은 보통 자신에게 유용한 무언가가 있을 때 생기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불교에서는 특히 대승(大乘)에서는 먼저 가르침의 내용을 잘 점검해보고 나서 논리적으로 인정할 만한 것은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문자 그대로만 이해해서는 부처님의 말씀을 제대로 다 이해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좀 더 깊은 해석이 필요합니다. 경전의 가르침들은 대부분 문자만으로 논리적 분석이 안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좀더 깊은 차원의 해석이 필요합니다.

반면에 문자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논리적으로 합당한 경전들도 있습니다. 더불어 두 가지 모두를 필요로 하는 경전도 있습니다. 즉 어떤 부분은 문자 그대로 이해해야 하고 어떤 부분은 해석이 필요합니다. 해석을 하지 않으면 끝도 없이 반복되는 궤변(詭辯)이나 희론(戱論)에 빠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다양한 유형의 경전들을 하나씩 점검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은 불교 공부에서 중요한 것이 논리적 분석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단편적인 예입니다.

일반적으로 무언가에 대한 관찰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분석대상의 실험법을 배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믿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신앙은 이성을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공부를 할 때는 논리적인 방법을 따라야 합니다.

따라서 법문을 하는 동안에는 잘 집중해서 듣고, 가르치는 내용을 잘 기억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기록하여 나중에 다시 점검할 수 있도록 보관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먼저 가피(加被) 즉 불교에서 말하는 법(法)의 가피나 스승의 가피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가피는 여러분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가피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불(佛) 법(法) 승(僧)삼보(三寶)의 가피나 스승의 가피를 말할 때도 가피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긍정적인 면이 증가하고 부정적인 면이 줄어들 때, 그것을 가피라고 합니다.

가피는 티벳어로 “진랍(Byin rLab)"이라고 하는데, “거대한 잠재력”이라는 의미의 “진(Byin)”과 “변화 한다 또는 변화 시킨다”라는 의미의 “랍(rLab)”이 합쳐진 단어입니다. 그래서 “진랍(Byin rLab)”은 “거대한 잠재력을 변화시킨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가피는 이전에 없던 착한 성품을 개발하고, 이미 가지고 있는 착한 성품은 발전시킨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진랍”은 마음에서 착한 마음이 생기는 것을 방해하는 번뇌 망상을 줄인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실질적인 가피란 마음의 선한 모습을 강화하고 허물을 제거하는 힘을 말합니다.

본문에서는, “이에 일체지(一切智)를 속히 성취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이것을 이루기 위한 원인(因)과 조건(緣)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이 의미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 논서가 다루고 있는 내용이, 대상을 정교하게 분석해 나가는 논리적이고 이론적인 철학적 작업이 아니라, 수행의 과정과 방법을 담고 있는 수행 지침서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어떤 경전은 이론적 논리만을 담고 있고 또 어떤 경전은 수행의 방법만을 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불교의 경전이 다 마음을 다스리고 성숙하게 하는 논리적인 방법과 실천적인 방법을 함께 담고 있습니다. 물론 그 중에서도 어떤 부분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차이가 있을 겁니다.

어떤 경전은 기본적으로 논리적인 학습에 유용하고, 또 어떤 경전은 수행의 과정을 습득하는데 유용합니다. 이 논서는 후자에 해당합니다. 즉 수행의 과정과 절차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내용을 따라서, 『수행차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목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논서는 수행자가 마음의 흐름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쌀 알갱이가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것처럼 어지러운 것이 아니라, 적절한 순서를 가지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수행차제』의 세 부분 중에 본문은 중간 부분에 해당합니다. 아짜리야(Acarya, 傳敎師) 까말라실라께서는 맨 처음 이 내용을 인도말로 가르치셨습니다. 본문은 범어(梵語) 제목으로 시작합니다. 여기에는 여러분의 마음속에 이 성스러운 경전 언어에 대한 인연을 심어주려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또 이렇게 인도 당시의 언어로 제목을 붙이는 것은 역사적인 차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설역(雪域)의 땅 티벳에 문명의 새벽이 오고 점점 국가라는 형태를 갖추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나라와의 관계가 형성되었습니다. 돌아보면 티벳인들은 다양한 사회문화적인 요소들을 주변국가로부터 흡수해 왔습니다. 예를 들면 인도를 비롯한 남쪽의 여러 나라에서는 정신을 풍요롭게 한 종교와 문화를 수용하였습니다.

특히 의학, 불교, 범어(梵語) 등의 문화와 학문들을 수많은 성자와 학자들의 고향인 인도에서 들여왔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티벳인들은 인도를 성스러운 땅이라고 부릅니다. 다양한 야채 요리와 음식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야채와 관련한 티벳어의 많은 단어들이 중국어와 유사하며 오늘날까지도 그 용어들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추운 기후에 맞게 발전한 복장들은 몽골의 영향이 강합니다. 복장의 색깔이나 모양 등의 많은 부분에서 그 영향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수세기를 티벳은 이웃 나라들과 접촉해 왔습니다. 많은 것들을 수입하여 우리 자신의 독특한 문화로 발전시켜 온 것입니다. 본문에서 “범어(梵語)로는”이라고 시작하는 것은 이 논서의 정통성(正統性)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즉 인도의 스승으로부터 전해졌다는 말입니다.

또 분문에서는 “서장어(西藏語, Bod-yig)로는”이라고 말하면서, 티벳어 제목을 붙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 논서가 다른 언어에서 티벳어로 번역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티벳어는 불교의 수많은 경전이나 주석서들을 그대로 기록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단어와 표현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티벳어는 불교의 전문적인 논리 용어나 구체적인 수행의 경지를 표현하는 주요 언어로서 여러 세기 동안 그 역할을 다해 왔으며, 지금도 불교의 모든 깊이를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중요한 언어 중에 하나입니다. 즉 현대의 언어들 중에 소승(小乘) 대승(大乘) 금강승(金剛乘)의 모든 불교적 깊이를 다 다룰 수 있는 독특한 언어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티벳어는 인류의 중요한 문화적 재산이며, 불교의 원래 모습들을 재구성해낼 수 있는 소중한 불교 언어입니다.

“문수동자(文殊童子) [보살님]께 배례(拜禮) 올립니다.” 이 구절은 번역자의 예경 부분입니다. 번역자 혹은 역경사(譯經師)가 아무런 장애 없이 모든 일을 끝낼 수 있기를 바라며 귀의(歸依)를 올리는 부분입니다. 이 구절은 이 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모든 목적이 다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문에 해당합니다. 과거에 모든 불교의 법왕(法王)들이 공표하신 것처럼, 문수보살님께 예경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또 이 책이 형식적으로 불교의 경(經)·율(律)·론(論) 삼장(三藏) 중에 경(經)이나 논서(論書) 부분에 해당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이 번역자의 예경에서, 만약 불보살님께 예경을 올리고 있다면 그것은 경장(經藏)에 속한 경전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문수보살님께 예경을 올리는 경우는 그 경전이 논장(論藏)에 속한다는 의미입니다. 또 만약 어떤 경전이 율장(律藏)에 속한 것이라면, 그때는 오직 일체의 지혜를 모두 이루신 부처님께만 예경을 올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번역자의 예경은 전통적인 방식입니다.

이 논서의 기본 주제는 지(止)와 관(觀)을 하나로 합일한 삼매(三昧)에 의지하여 얻을 수 있는 무아(無我)에 관한 것입니다. 이러한 주제를 담고 있는 논서이기 때문에 문수보살님께 예경을 올리고 있으며, 따라서 논장(論藏)에 속한다는 말입니다. “대승 경전의 체계를 따라”라는 구절은 저자가 이 논서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수행의 과정을 간단하게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대승의 가르침을 수행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하는 것입니다.

답은 불성(佛性)입니다.

불성은 무엇을 말합니까?

일체의 모든 지혜를 다 갖추신 분을 부처라고 합니다. 이러한 부처의 성품을 불성이라고 합니다.

대승을 공부하는 마지막 목적은 부처의 일체지(一切智)를 성취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 적절한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탐구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수행입니다.

이 수행을 통하여 일체지를 이루기 위한 바르고 완전한 과정을 밟아 나가야 합니다. 이상으로 이 논서의 주제를 간단히 정리해 보았습니다.

 

 

 

 

 

 

 

 

무인아제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moonceo/556 에서 복사한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