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의 음식과 수행의 관계에 대한 고찰
공만식(동국대 불교학과 강사)
Ⅰ. 서 언
Ⅱ. 초기불교문헌에 나타난 음식
Ⅲ. 중도적 음식관
1. 고행주의적 음식관
2. 초기불교의 음식관
Ⅳ. 음식과 수행의 관계
Ⅴ. 음식과 관련된 수행
1. 음식과 관련된 두타행
2. 厭食想의 修習
3. 厭食想의 수행상의 위치
Ⅵ. 결 론
Ⅰ. 서 언
음식은 육체를 가진 인간에게는 필요 불가결한 것으로 우리는 하루라도 음식과 떨어진 생활을 생각할 수 없다. 인간에게 음식은 허기를 채우는 최소한의 용도 이외에도 그질과 맛으로 인간의 삶에 즐거움과 행복을 주는 요소로 여겨진다. 특히 물질적 생활이 풍요로워짐에 따라 음식은 허기진 배를 채운다는 일차적 용도보다는 그 맛과 질을 추구하는 식도락의 의미가 더욱 증가했고, 현대에 있어서는 음식의 이러한 측면이 더욱 강조되는 듯 하다.
음식은 그것이 결핍되거나 부족할 때, 정상적인 삶 자체를 위협하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생존의 문제를 야기시킨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음식을 지나치게 섭취하면 인간에게 건강과 관련된 문제를 야기시키며 인간의 일상적인 생활에 있어 졸음과 게으름과 과식으로 인한 괴로움 그리고 수명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초기불교경전에서 언급되고 있는 음식은 인간의 건강과 수행, 이 두 가지 요소와 긴밀한 관계를 갖는 것으로 묘사되며 중도의 실천으로서의 음식에 대한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초기불교에 있어 음식은, 고행주의자들처럼 육체를 유지하기 곤란할 정도의 절식으로 육체와 정신을 상하게 하는 방향에 대한 거부와 지나친 음식섭취로 인한 과식과 음식에 대한 탐착심의 방향, 이 두 가지 모두를 거부하는 중도적 식생활을 설하고 있다.
음식섭취는 단순히 육체를 유지 보존하는 수단일 뿐만이 아니라 수행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수행의 한 과정으로 위치지워지고 있다. 본고는 초기불교문헌에 근거하여 음식에 관한 초기불교의 시각과 수행 속에서 음식이 어떠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Ⅱ. 초기불교문헌에 나타난 음식
초기불교경전이 배경으로 삼고 있는 시대는 비구들이 걸식에 의해 식생활을 해결하던 시대이며 따라서 그들이 먹던 음식은 재가자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종교 수행자로서 비구에게는 음식과 관련된 여러 가지 제한 혹은 금지조항도 있었음은 물론이다. Pāli Vinaya는 음식을 크게 4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그는 해로운 부드러운 음식을 먹었고 해로운 단단한 음식을 먹었고 해로운 요리를 먹었고 해로운 음료를 마셨다.
초기불교문헌은 음식을 부드러운 음식(bhojana), 단단한 음식(khādaniya), 요리(sāyaniya), 음료(pāna)로 크게 분류하고 있다. 이중 식생활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음식은 주식인 날마다 먹는 부드러운 음식이다. 부드러운 음식은 5종으로 분류된다.
부드러운 음식이란 5가지 음식으로 밥(odana), 보리죽(kummāsa), 보리음식(sattu), 생선(maccha), 고기(maṃsa)이다.
‘부드러운 음식’은 밥, 보리죽, 보리로 만든 음식, 생선, 고기가 열거되고 있다. 쌀과 보리가 주식의 역할을 하며 생선과 고기도 주요한 음식으로 언급되고 있다. 생선과 고기와 관련해서는 뒤에서 다시 언급할 것이다. ‘단단한 음식’에 대하여 Vinaya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단단한 음식이란 5종의 부드러운 음식, 時分藥, 七日藥, 盡形壽藥을 제외한 나머지를 단단한 음식이라 한다.
여기서 ‘단단한 음식’은 5종의 부드러운 음식, 시분약, 칠일약, 진형수약을 제외한 나머지 음식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Vinaya에는 또한 이와 조금 다른 규정도 보이고 있다. 단단한 음식이란 5종의 부드러운 음식, 양치질할 물을 제외한 나머지를 단단한 음식이라 한다.
여기서는 시분약, 칠일약, 진형수약 대신에 양치질할 물이 언급되고 있다. 따라서 요리와 음료와 주요한 음식인 ‘부드러운 음식’ 이외의 음식을 일반적으로 통칭하는 의미로 사용되는 듯 하다. Vinaya는 비구들에게 허용된 8가지 음료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나는 8가지 음료를 허용한다. 망고음료(ambapāna), Rose–apple음료(jambupāna), 코코넛음료(cocapāna), 바나나음료(mocapāna), 꿀음료(madhupāna), 포도음료(muddikapāna), 연근음료(sālukapāna), 삼색화음료(phārusakapāna).
붓다는 위의 8가지 음료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음료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나는 곡류의 과실음료를 제외한 모든 과일음료(phalarasa)를 허용한다. 비구들이여, 나는 채소음료를 제외한 모든 잎으로 만든 음료(pattarasa)를 허용한다. 비구들이여, 나는 감초꽃잎을 제외한 모든 꽃잎으로 만든 음료(puppharasa)를 허용한다. 비구들이여, 나는 사탕수수음료(ucchurasa)를 허용한다.
붓다는 앞의 8가지 음료 이외에도 거의 모든 과일음료, 잎으로 만든 음료, 꽃잎으로 만든 음료, 사탕수수음료 등을 비구들에게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비구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과 음료들은 몇몇 예외들을 제외하면 상당히 폭이 넓음을 알 수 있다. Vinaya는 당시의 主食의 식재료가 되는 7가지 곡물을 언급하고 있다. 이 곡물들은 재가자와 출가 수행자인 비구들 모두에게 주된 음식의 재료로 사용된 곡물들이다.
生穀(āmakadhañña)이란 쌀(sāli), 벼(vīhi), 보리(yava), 밀(godhūma), 수수(kañgu), 콩(varaka), 호밀(kudrūsaka)이다.
위의 곡물과 더불어 매일의 식사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주식인 밥과 더불어 먹는 커리와 같은 반찬을 만드는 식재료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모든 종류의 야채(ḍāka)와 가루로 만든 단단한 음식(piṭṭhakhādaniya)을 허용한다.
비구들이여, 나는 모든 종류의 과일로 만든 단단한 음식(phalakhādaniya)을 허용한다.
야채와 과일 이외에 인도인들의 부식에 사용된 또 다른 재료는 생선과 육류이며 여기에 기(ghee, 醍醐)나 버터 등이 첨가된다.
醍醐(ghee, sappi), 生酥(fresh butter, navanīta), 식용유(tela), 꿀(madhu), 당밀(phāṇita),
생선(maccha), 고기(maṃsa), 우유(khīra), 응유(dadhi, curd)와 같은 좋은 음식(paṇītabhojana)
중 어떤 것을 자신이 먹고자 구하는 비구는 누구나 파일제이다.
여기서 생선과 고기는 다른 식품인 제호, 생소, 기름, 꿀, 당밀, 우유, 커드와 더불어 훌륭한 음식으로 언급되고 있으며, 붓다도 또한 세 가지 점에서 청정한 생선과 육류를 먹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나는 (자신을 위한 음식을 위해 죽인 것을) 보지 않고, 듣지 않고 의심되지 않는 세 가지 점에서 청정한 생선과 고기는 (먹는 것을) 허용한다.
비구들은 곡류로 된 주식과 야채와 과일 그리고 생선과 육류 등으로 된 부식 등 거의 모든 음식들을 몇 가지 예외조항을 지키면 먹을 수 있었다. 생선과 육류로 된 음식섭취와 관련해서 다소 곡류와 야채와 과일에 관한 규정보다 제한규정이 많은 것은 이들 식재료가 생명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선과 육류에 대하여 현재 인도에서와 같이 금기시되고 터부시되는 면은 초기불교문헌에서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이것은 당시 비구들이 현재와 같이 음식을 위해 직접 취사를 하기보다 걸식에 의존하여 식생활을 해결하였기 때문에 취사를 직접 하였던 대승불교의 음식문화와는 차이를 보이는 점이라 하겠다.
Ⅲ. 중도적 음식관
1. 고행주의적 음식관
Majjhimanikāya는 붓다가 깨달음을 얻기 전 고행을 하던 시절, 음식과 관련된 고행주의적 수행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 다양한 고행주의적 수행방법 중에서 먹는 음식을 극단적으로 줄이는 수행이 일반적으로 당시 고행주의적 수행자들이 실천하던 방식으로 전해진다. 붓다가 직접 실천했었던 음식과 관련된 고행주의적 수행경험을 들어보자.
나는 한집에서 한 입만큼의 음식만 탁발하고 두 집에서 두 입만큼의 음식을 탁발하고 … 7집에서 7입만큼의 음식을 탁발했다. 나는 하루에 조그만 접시 하나만큼만 먹고살았고 하루에 두 개의 작은 접시로 … 하루에 7개의 작은 접시만큼만 먹고살았다. 나는 하루에 한번 음식을 먹었고 이틀에 한번 음식을 먹었고 7일에 한번 음식을 먹었고 보름에 한번 음식을 먹었다. … 나는 야채, 수수, 야생쌀, 짐승의 가죽조각, 이끼, 쌀겨, 밥 찌꺼기, 참깨가루, 풀, 소똥을 먹고살았고, 나무뿌리와 나무에서 떨어진 열매를 먹고살았다. … 젖먹이 송아지의 똥을 먹고살았다. 나의 대변과 소변이 나오는 동안 나는 나의 대변과 소변을 먹고살았다.(MN. i. p78-79)
당시 고행주의자들 중에는 “청정은 음식에서 온다.”라는 견해를 가지고 음식에 관한 고행주의적 수행을 실천을 하는 그룹들이 있었다. 이들의 음식과 연관된 고행주의적 수행의 특징은 음식의 양을 극단적으로 줄이는 데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때문에 이러한 음식을 통한 고행은 몸에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를 야기했다. 붓다는 음식을 극단적으로 줄이는 수행 때문에 몸은 여위고 약해져, 사지, 등, 척추, 갈비뼈, 눈두덩, 두피, 배, 온몸의 털 등을 통해 심각한 신체상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붓다에게 더욱 문제가 된 것은 신체상의 위험신호보다도 이러한 고행주의적 수행방식이 붓다가 갈구한 깨달음에 관한 해답을 주지 못한다는데 있었다.
그러나 사리불이여, 그러한 행위, 그러한 실천, 그러한 고행을 행함으로써 뛰어난 상태, 뛰어난 지혜, 현자들이 칭찬할 만한 견해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그것을 성취하면 성스러워지고 해탈케하며 그것에 따라 실천하는 사람을 완전한 苦의 滅로 인도하는 성스러운 진리를 나는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음식의 절대량을 줄이는 고행주의적 수행방식은 수행자의 육체에 치명적인 문제를 야기할 뿐 아니라 그 수행이 지향하는 종교적 목적 또한 성취할 수 없는 방식이라는 것이 붓다의 사고이다. 붓다는 음식이란 “육체를 지탱하고 유지하여 병과 고통에서 자유롭고 건강, 힘, 편안함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며 해악을 버리고 청정범행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궁극적으로 음식은 성스러운 삶의 실천을 돕는 것으로” 기능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음식과 관련하여 고행주의적 수행방법이 가진 문제는 극단적으로 음식을 줄임으로써 지속적인 성스러운 삶을 실천하기 위한 동력인 우리의 육체를 피폐케 함으로써 그 실천을 방해하며 또한 종교적인 목적을 성취함에 있어서도 긍정적인 기여를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2. 초기불교의 음식관
초기불교경전에 나타나 있는 대부분의 음식과 관련된 경문들은 과도한 음식섭취와 음식에 대한 탐착을 경계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앞의 ‘고행주의적 음식관’과 마찬가지로 음식에 대한 과도한 탐착과 과잉섭취는 또 하나의 극단으로 경계해야 할 것임을 붓다는 누누이 역설하고 있다.
Dhammapadatthakathā에는 엄청난 식사량 때문에 과식으로 인한 피곤함과 괴로움에 시달리는 코살라의 파사익왕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붓다는 과식이 졸음과 괴로움을 수반하며 과식은 게으름과 잠, 돼지에 비유되며 윤회를 거듭하게 한다고 설하고 있다. 따라서 음식에 있어서 절제를 알아야 하며 음식을 절제하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점을 주지시키고 있다. 붓다는 “항상 주의집중하며 음식에서의 절제를 알면 고통이 있을지라도 적고 천천히 늙을 것이며 생명을 보존할 것이다.”라고 설하고 있다. 붓다의 이 말을 실천한 파사익왕은 몸과 마음이 기운차고 밝아지고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고 전한다. 붓다는 게송에서 “건강이 최고의 축복이며 만족함을 아는 것은 최고의 재산이며 자신감은 최고의 친척”이라며 小食과 음식에 대한 少欲의 긍정적 결과를 설하고 있다.
Suttanipāta와 Theragāthā에서는 출가수행자인 비구는 “음식을 결코 배가 부를 때까지 먹어서는 안되며, 네 입이나 다섯 입 분량의 음식을 먹고 모자란 듯 식사를 마쳐야 하며 결코 배가 부를 때까지 포식을 해서는 안된다.”고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비구들에게는 음식에 대한 바른 견해가 필요하다. Aṅguttaranikāya는 다음과 같은 비구들이 가져야 할 음식관을 피력하고 있다.
비구는 사려깊고 분별있게 음식을 먹는다. 즐거움을 위해서도 아니요, 탐닉을 위해서도 아니요, 육체적 아름다움이나 장식을 위해서도 아니요 육체를 지탱하고 유지하고 육체의 고통을 달래기 위해 성스러운 삶의 실천을 돕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먹는다.
음식은 육체적 생존을 위한 필요불가결한 조건이지만 음식은 또한 주요한 욕망의 원천으로 그것을 통해 미각이 탐착으로 발전하는 대상이다. 따라서 출가수행자에게 있어 음식은 육체의 유지를 위해 절대적 필요조건이자 또한 탐욕의 발생을 야기할 수도 있는 대상으로 전화되는 것을 끊을 수행적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나는 침상에서 내려와 마을로 걸식하기 위해 들어갔다. 밥을 먹고 있는 나병환자 옆에 공손히 섰다. 그는 문드러진 손으로 한 입의 음식을 주었다. 한 입의 음식을 넣을 때 손가락도 거기에 끊어져 떨어졌다. 담벽 아래에서 그 한입의 음식을 먹었다. 먹으면서 먹는 것에 대한 어떠한 혐오감도 나에게 있지 않았다.
불교수행자가 음식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는 맛있는 음식에 대한 맛에 대한 탐착을 버리고 또한 거칠고 맛없는 싫어할 만한 음식에 대해 혐오스런 마음을 제거하며 오직 육체를 유지 지탱하기 위한 대상으로만 음식을 바라보며 청정한 범행을 위해 봉사하는 요소로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는 숲에 사는 자, 걸식으로 생활하는 자, 발우에 담긴 어떤 음식이든지 기뻐하는 자이다. 마음을 잘 통일시켜 마왕의 군대를 쳐부수리라.
따라서 비구들은 맛있는 음식에 대해서는 그 맛에 대한 탐착을 경계하고 찌꺼기음식에 대해서는 혐오감을 갖지 않는 잘 가다듬은 마음의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초기불교경전에 언급된 음식관련 경문은 주로 小食과 적은 양의 음식에 대한 만족 즉 少欲 등을 주로 강조하며 과한 음식섭취와 맛에 대한 탐착 등을 경계하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앞절에서 언급된 고행주의적 수행자들의 음식관이 하나의 극단이라는 음식에 대한 과도한 섭취와 집착 또한 또 하나의 극단으로 붓다가 경계하는 바이며 ‘음식에 대한 중도’를 지향하는 붓다의 음식관에 반하는 행위들이다.
붓다는 Majjhimanikāya에서 자신이 하루에 한번 먹어, 즉 음식에 대한 절제로 병과 고통에서 자유롭고 건강, 힘, 편안함에 머문다고 설하고 있으며 과식은 피곤함, 졸음, 괴로움, 게으름, 早老하게 하는 등의 해를 야기하며29) 또한 탐, 진, 치와 혼침, 수면을 야기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설해진다. 음식과 번뇌와의 관계 그리고 음식과 수행과의 관계에 대한 내용은 다음 장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Majjhimanikāya에는 비구들의 하루 식사횟수와 관련된 내용이 언급되고 있다. 이 경전은 남방불교에서 午後不食의 전통이 세워지기 이전에는 하루에 세 번 식사를 한 내용이 전하고 있다. 원래 하루에 세 번이었던 식사횟수는 붓다의 말씀에 의해 먼저 점심을 먹지 않게 되었고, 그 다음에는 저녁을 먹지 않게 되어 최종적으로 하루에 한번만 먹는 것으로 정착된 듯 하다(MN, i, 447–448면). 그러나 비나야에는 오후불식만 언급하고 있다(Vin. ⅳ, p85))
Ⅳ. 음식과 수행의 관계
초기불교경전에 나타난 음식에 관한 언급은 음식에만 국한된 언급으로 끝나기보다 항상 수행과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내용과 함께 언급된다. 따라서 초기불교경전의 음식관은 수행적 시각에 근거하여 설해지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가장 전형적인 형태로 음식과 수행과의 연관관계를 보여주는 문장들은 다음과 같다.
비구는 계에 굳게 서고 감각기관들을 잘 단속하고 음식의 양을 알며 주의집중에 전념한다.
비구들이여, 두 가지를 구족한 비구는 현세에서 樂에 머물고 고통과 번민과 고뇌가 없으며 몸이 파괴되고 죽은 다음에 즐거워할 만한 선처에 태어난다. 무엇이 둘인가? 감관의 문을 지키는 것과 음식에 대하여 양을 아는 것이다.
첫 번째 그의 감관의 문을 살핀다. 음식을 절제하고 항상 주의집중에 든다.
위에 인용된 경문들에서 음식에 관한 문구는 감각기관을 제어하고 주의집중하는 수행과 더불어 언급되며 음식에 대한 양을 알고 절제하는 것이 하나의 수행상의 중요한 요소로서 언급되고 있다.
감관을 제어하여 모든 번뇌의 발생가능성을 제거하고 주의를 집중하여 마음의 상태를 최적화해야 하는 출가수행자에게 음식은 일상적으로 가장 빈번하게 접하게 되는, 청정수행의 조력자이자 또한 번뇌를 야기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다른 수많은 대상 중에서 음식이 이러한 위치에 놓이게 된 것은 아마도 음식이 하루도 빠짐없이 접하게 되는 대상이며 식욕이라는 본능과 연결되어 매일의 수행생활에서 가장 빈번하게 탐착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Majjhimanikāya에 언급되어 있는, 비구가 음식에 대해 가져야할 올바른 견해는 수행과 밀접하게 연관된 내용을 가지고 있다. 먼저 Majjhimanikāya에 나타난 언급을 살펴보자.
현명하게 숙고하면서 그는 탁발음식을 즐기기 위해서도 아니요, 취하기 위해서도 아니요, 육체적 미와 매력을 위해서도 아닌 이 몸을 존속시키고 유지하기 위해서, 불편함을 끝내기 위해서 성스러운 삶에 보탬이 되기 위하여 탁발식을 먹는다. “이와 같이 나는 새로운 느낌을 생하지 않고 오래된 느낌을 끝장낼 것이며, 나는 삶을 유지하고 허물이 없고 즐겁게 머문다.”라고 생각하면서.
음식을 먹는데 있어 출가수행자인 비구는 자신을 결박지우고 타인을 결박지우는 그리고 또한 貪瞋癡에 빠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음식에 대한 갈애를 멀리 여의어야 한다. 음식이 가질 수 있는 더욱 부정적 측면은 수행자에게 그들의 마음이나 견해에 침투하는 삼독심과 같은 번뇌적 요소이다. Visuddhimagga는 음식을 먹는 목적과 음식의 중도적 실천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음식이란 4대종으로 이루어진 色身을 지속적으로 존속시켜 이 몸이 유지되고 활동하며 파괴되지 않고 오래 머무르게 하기 위한 것이며, 음식을 먹는 것은 상처에 약을 바르듯 굶주림이란 害를 피하기 위한 것이며, 모든 가르침을 따르는 범행과 道를 따르는 범행에 도움이 되기 위해 먹는 것이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음식을 먹음으로써 몸의 힘에 의지하여 三學을 힘써 닦음으로 有의 사막을 건너기 위한 것이니 마치 사막을 건너고자
하는 사람이 아들의 고기를 먹고, 강을 건너고자 하는 사람이 갈대로 된 뗏목을 사용하고 바다를 건너고자하는 사람이 배를 사용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이 올바르게 음식을 섭취하는 것과 고행적 실천을 버리는 것, 그리고 法樂을 버리지 않는 것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적당한 음식으로 삶을 유지하고 적절치 못하게 구하는 것, 받는 것, 먹는 것을 피하는 것과 같은 허물이 없이 적당한 양을 먹어 즐겁게 머무는 생활을 하며 지나치게 많은 양을 먹어 불쾌, 나태, 게으름, 지자들의 비난 등을 받지 않는 허물없는 생활을 하며 적절한 양을 먹어 몸에 힘이 생기고 배가 가득차게 음식을 먹는 것을 피하며 눕는 즐거움, 옆으로 눕는 즐거움, 수면의 즐거움을 사단하며 4, 5입 정도 모자라게 먹음으로써 4가지 위의에 적당한 상태로 수행을 하는 것이다.
Visuddhimagga는 이와 같이 음식을 먹는 목적과 음식을 먹는데 있어서의 실천적 중도를 설명하고 있다.
Ⅴ. 음식과 관련된 수행
Visuddhimagga는 음식과 연관된 수행으로 戒品에서 13가지 두타행 가운데 5가지 항목을 음식과 연관된 두타행으로 언급하고 있다. 또 定品에서는 40가지 수행주제(kam–maṭṭhāna) 중 하나로 一想(ekā saññā, 厭食想)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1. 음식과 관련된 두타행
Visuddhimagga의 ‘戒에 대한 해석’의 장은 13가지 두타행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衣食住에 관한 13가지 두타행 중 ①과 ②는 糞掃衣와 三衣와 같은 衣에 관한 두타행이며 ⑧⑨⑩⑪⑫⑬은 아란야, 나무 밑, 노지, 塚間, 隨處住, 常坐不臥 등 住와 관련된 두타행, 그리고 ③④⑤⑥⑦이 乞食과 관련된 내용이다.
이들 음식과 연관된 ③ ④ ⑤ ⑥ ⑦ 두타행의 실천방식과 그 공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걸식만 먹는 두타행(piṇḍapātikañga) : 이 두타행은 僧伽食, 指定食, 招待食, 籌食 등의 다른 여타의 방식으로 얻는 음식은 먹지 않고 오직 걸식에 의해 얻어진 음식만 먹는 수행이다.
걸식만 먹는 두타행의 공덕으로는 걸식한 음식덩어리에 만족하는 少欲에 수순하는 삶과 음식의 맛에 대한 갈애를 버리는 공덕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며, 이를 통해 게으름을 제거한 청정한 생활로 유학의 실천도와 바른 수행도를 증장하는 공덕을 얻을 수 있다.
② 次第乞食하는 두타행(sapadānacārikañga) : 탐욕스러운 걸식을 하지 않고 차례대로 걸식하는 방법에 의해서만 얻어진 음식을 먹는 두타행이다.
이 두타행은 차례대로 걸식함으로써 부유한 집만 골라서 걸식한다든지, 안면있는 재가가족으로부터 좋고 많은 양의 걸식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시키고 순서에 의해 처음 걸식하는 자의 마음상태를 가지고 하는 두타행으로 마하가섭이 이 수행을 한 대표적인 비구이며 음식에서 오는 탐심을 제거하고 少欲에 수순하는 생활을 할 수 있는 두타행이다.
③ 한 자리에서만 먹는 두타행(ekāsanikañga) : 이것은 여러 자리에서 음식을 먹는 것을 거부하고 한 자리에서만 음식을 먹는 것을 수지하는 두타행이다.
한 자리에서만 먹는 두타행은 음식이 육체에 가져다주는 가장 긍정적인 효과, 즉 병이 없고 고통이 없으며 기거가 경쾌하고 힘을 얻을 수 있는 두타행으로 언급되며 이 ‘한자리에서만 먹는 두타행’과 다음의 ‘하나의 발우의 음식만 먹는 두타행’은 재가자인 우바새, 우바이에게도 적합한 두타행으로 언급된다.
④ 하나의 발우의 음식만 먹는 두타행(pattapiṇḍikañga) : 두 번째 발우의 음식은 거부하며 한 발우의 음식만을 수지하는 두타행이다.
이 두타행의 특징은 하나의 발우에 담길 수 있는 만큼의 음식만을 수지하여 음식에 대한 뇌환인 다양한 맛에 대한 갈애를 제거하고 지난친 탐욕을 끊어 음식의 목적과 양을 알게하는 불교의 음식을 먹는 목적에서 의도하는 내용을 가장 잘 성취할 수 있는 두타행이다.
⑤ 時後不食 두타행(khalupacchābhattikañga) : 추가로 받는 음식을 거부하거나 나중에 얻은 음식을 먹지 않는 두타행이다.
음식과 관련된 이들 5가지 두타행과 衣와 住에 관한 두타행의 목적은 소욕(appicchatā), 지족(santuṭṭhitā), 엄격한 생활(sallekhatā), 원리(pavivekatā), 具德(idamatthitā) 등 5가지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39) 두타행은 이 5가지 법 중 소욕으로 대표되는데 음식에 관한 5가지 두타행에서도 소욕은 모든 항목에 공통된다. 이들 5가지 두타법(dhutadhammā)중 소욕과 지족은 무탐(alobha)을 위한 것이며, 엄격한 생활과 원리는 무탐(alobha)과 무치(amoha)을 위한 것이며, 구덕은 지(ñāṇa)를 위한 것이다. 따라서 5가지 두타법은 탐진치의 제거와 智를 얻기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 厭食想의 修習
Visuddhimagga는 음식의 맛에 대한 갈애를 제거하고 음식에 대한 집착없이 오직 육체를 유지하고 지탱하기 위한 목적으로 음식을 먹어 5가지 감각적 욕망에 대한 탐착을 철저히 알아 色蘊을 통찰하고 身隨念의 수행을 성취하기 위한 수행방법으로 食厭想(āhāre–paṭikkūlasaññā)의 수습에 관한 상세한 내용을 전하고 있다.
厭食想에서 ‘食’의 의미는 四食(段食, 觸食, 意思食, 識食) 중 먹고(asita), 마시고(pīta), 씹고(khāyita), 맛보는(sāyita) 종류의 段食(kabaḷikāro āhāra)만을 의미한다.41) 이 수행을 하는 수행자는 이러한 음식에 대하여 10가지 측면에서 음식의 혐오스런 성질(patikkū-latā)을 관찰하는 것이다.
① (걸식하러) 가는 것에서(gamanato)
② 구하는 것에서(pariyesanato)
③ 먹는 것에서(paribhogato)
④ 분비물에서(āsayato)
⑤ 저장되어 있는 장소에서(nidhanato)
⑥ 소화되지 않은 것에서(aparipakkato)
⑦ 소화된 것에서(paripakkato)
⑧ 결과에서(phalato)
⑨ 배설하는 것에서(nissandato)
⑩ 묻은 것에서(sammakkhanato)
厭食想 수행은 음식과 관련하여 음식을 얻기 이전인 걸식을 위해 마을로 가기 이전의 단계(①②)에서부터 음식을 먹는 단계(③), 음식을 삼켜 몸 안으로 들어갔을 때의 상태(④⑤⑥⑦⑧), 배설시(⑨)와 배설이후(⑩)로 나누어 시간적 경과와 더불어 음식의 혐오성을 관찰하는 수행이다. Visuddhimagga는 厭食想 수행의 일차적인 목적이 음식의 맛에 대한 갈애(rasataṇha)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하고 있다.
厭食想을 실천하는 비구는 맛에 대한 갈애에 대하여 마음을 멀어지게 하고 피하고 줄인다. 그는 사막을 건너기 위해 아들의 고기를 먹는 것과 같이 苦를 벗어나기 위하여 慢心없이 음식을 먹는다. 그는 그때 용이하게 段食에 대하여 완전히 알아 五欲의 탐욕을 완전히 알게 된다. 그는 오욕탐을 완전히 앎으로써 색온을 완전히 안다. 소화되지 않음 등의 혐오스러운 상태에 의해 身至念의 수습을 달성하게 된다. 不淨想에 수순하는 수행을 실천한다. 이 수행에 의해 현세에서는 비록 不死를 얻지 못해 現等覺하지 못한다하더라도 내세에는 선처에 이른다.
비구가 음식을 먹음에 있어 맛에 대한 갈애를 마음에서 제거하고 마치 부모가 사막을 건너기 위해서 ‘아들의 고기’를 먹듯이 그 음식에 대하여 어떠한 탐착도 없이 오직 苦를 벗어나기 위한 수행을 위하여 음식을 먹는다. 탐심의 근저인 음식에 대한 탐욕을 앎으로써 五欲의 실체를 정확히 알게 되며 五欲에 대한 완전한 앎에 의해 色蘊 전체를 완전히 알게 된다. 염식상에 의해 身至念의 수행을 완성하고 不淨想에 수순하는 수행을 실천함으로써 不死와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Saṃyuttanikāya에는 붓다의 음식관을 가장 극명하게 살펴볼 수 있는 경문이 전한다. 붓다는 사막을 건너는 도중 식량이 떨어진 부부가 사막을 건너기 위해 사랑하는 아들을 죽여 그 고기로 배를 채워 사막을 건넌다는 비유를 하고 있다. 이 비유를 통해 붓다는 음식이란 아들의 고기처럼 즐거움이나 맛을 위해 먹는 것도 아니요, 육체적 아름다움과 매력을 키우기 위해 먹는 것도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붓다는 이 경문에서 음식에 대하여 완전히 알았을 때, 오욕락에 대한 탐욕심을 완전히 알 수 있으며 오욕락에 대한 탐욕심을 완전히 알 때 윤회를 야기하는 족쇄를 벗어날 수 있다고 설하고 있다. SN, ii, 98–99면.)
3. 厭食想의 수행상의 위치
Visuddhimagga에 언급된 40가지 수행주제 중 厭食想은 一想으로 표현되어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厭食想은 수행차제 중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수행인가? 그리고 음식과 관련하여 경전에서 전형구처럼 연관되어 언급되는 ‘육근에 대한 제어’와 ‘사띠의 확립’과는 어떠한 관련을 갖고 있는가? 계속해서 Visuddhimagga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身至念과 安般念을 제외한 나머지 8 隨念과 食厭想, 四界差別 이 열 가지 수행주제는 近行定을 가져온다.
厭食想의 수행은 다른 8가지 隨念과 四界差別과 더불어 安止定 이전의 近行定을 가져온다고 언급되고 있다. 이 근행정은 본격적인 삼매인 四禪定의 初禪定 이전단계로 초선정에 들기 위한 준비의 단계이다.46) 초선정에 들기 위해서는 탐욕(kāma)과 불선법(akusala dhamma) 즉 선정의 요소들과 반대되고 대립하는 장애인 탐욕과 五蓋를 제거해야만 하는 것이다. 음식과 관련된 경문들은 전형적으로 다음과 같은 순서로 음식과 관련된 실천을 설하고 있다.
비구는 계에 굳게 서고 감각기관들을 잘 단속하고 음식에서 적당함을 알고 주의집중에 전념한다.
첫 번째 그의 감관의 문을 살핀다. 음식을 절제하고 항상 주의집중에 든다.
수행의 장애인 감각적 욕망은 육근에서 비롯된다. 눈이라는 감각기관으로 형상을 봄에 있어 여자라든가 남자라든가 좋아할 만한 상이라든지 번뇌를 일으킬만한 상을 취하지 않으며 손, 발, 미소, 웃음, 말, 앞에서 봄, 뒤에서 봄 등과 같은 세밀한 상을 취하지 않고 그 상태 그대로를 취함으로써 마치 마하띠싸(Mahā Tissa)장로가 아름다운 여인을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른 채 단지 뼈무더기로 인식하는 것과 같이 감각기관을 제어하는 것이다.
음식 또한 맛이라는 감각적 욕망을 발생시키는 대상으로 맛에 대한 갈애를 제거하는 것과 음식의 양에 집착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음식에 대한 중도행의 실천의 계행에 있어서의 13두타행 중 5가지 두타행을 통해 少欲과 맛에 대한 갈애를 대치할 수 있으며 不淨觀 중 하나인 厭食想의 수행을 통해 捨斷할 수 있다. 그러나 Visuddhimagga는 보다 근본적으로 감각기관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은 사띠의 확립(satisādhana)이라고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사띠에 의해 감각기관의 제어를 성취해야만 한다. 그것은 사띠의 확립이며 사띠가 확립됨으로써 감각기관의 탐욕 등이 흘러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음식에 대한 중도행의 실천은 감각기관의 대상으로서의 음식에 어떠한 상을 취하지 않고 육체를 보존하고 수행을 할 힘을 주는 ‘아들의 고기’와 같이 바라보는 음식관에 의해 음식에 관한 두타행과 염식관을 통해 음식의 맛에 대한 갈애와 양에 대한 탐욕을 버리고 궁극적으로는 사띠의 확립에 의해 감각기관에 대한 제어와 음식의 맛과 양에 대한 절제를 확립할 수 있다. 이러한 음식과 연관된 수행은 본삼매에 들어가기 이전의 근행정으로, 안지정 이전에 제거해야할 장애로 말해지는 ‘육근에 대한 제어’와 ‘사띠의 확립’과 더불어 경문에서 나란히 서술되고 있는 것이다.
Ⅵ. 결 론
초기불교시대에 비구들은 몇 가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가자들이 먹는 음식과 거의 동일한 음식을 먹고 생활하였다. 이 음식 중에는 생선과 고기가 포함되며 자신들을 위해 이 음식재료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거나 듣거나 의심되지 않으면 먹을수 있었다. 붓다는 자신의 고행시절에 음식을 극단적으로 줄이는 고행주의적 수행방법이 가진 문제점을 경험하여 그러한 방식의 수행이 수행자의 건강상에 치명적인 문제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종교적 실천에 있어서도 청정범행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苦의 滅에 이르는 깨달음을 가져다 주지 않음을 체험하였다. 따라서 수행자의 몸을 유지하고 범행에 도움이 되는 음식섭취는 수행자에게도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붓다의 고행시절에 경험한 고행주의적 수행방식에서의 음식관은 하나의 극단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교상가가 성립되고 일반적인 초기불교경전에서 음식과 관련되어 언급되는 내용은 음식에 대한 지나친 섭취와 맛에 대한 갈애 등을 경계하는 내용이다. 이것은 불교상가의 음식문화와도 연관을 갖는 것으로 광범위한 재가자들의 보시를 허용한 불교상가에 있어 지나친 음식섭취가 일반적인 문제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음식의 맛에 대한 집착과 과식은 붓다의 고행시절의 고행주의적 수행방식이 지닌 음식관과 정반대되는 또 다른 극단인 것이다. 붓다는 음식섭취에 있어서도 중도적 실천행을 실천하였다.
붓다의 음식관은 음식이 수행과의 밀접한 연관 속에서 파악되며 음식은 수행자의 건강한 몸과 청정범행을 할 힘을 주는 것으로 음식의 맛에 대한 갈애나 양에 대한 지나침없이 ‘아들의 고기’와 같이 종교적 실천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少欲과 절제된 음식섭취가 붓다의 음식관의 주요한 내용을 이룬다.
초기경전의 음식에 대한 언급은 항상 수행과 관련지워지며 불교의 음식관의 성취는 13두타행 중 음식에 관한 5가지 두타행과 부정관 중 하나인 厭食想의 수행을 통해 감각적 욕망에 대한 捨斷과 色蘊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성취하고 근행정 수행의 일부로 본격적인 삼매수행을 위한 예비적 수행의 하나로 음식과 관련된 수행을 위치 지우고 있다
[출처] 초기불교 음식과 수행|작성자 임기영 인문학순례
'불교와 인문과학 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도불교에서 부파의 성립과 발전/이자랑 (0) | 2020.03.22 |
---|---|
병고와 죽음에 대한 불교의 인식과 가르침 (0) | 2020.03.08 |
눈이 눈을 볼 수 있는가? (0) | 2020.02.23 |
연기법이 불타자내증이라는 경증 검토 (0) | 2020.02.23 |
순관(純觀, suddha-vipassanā)에 대하여 (0) | 2020.0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