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강 붓다의 신격화
마성/철학박사·팔리문헌연구소장
붓다의 신격화(神格化)는 붓다의 입멸 직후부터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현존하는 니까야(Nikāya)와 아가마(Āgama)에 이미 신격화된 붓다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초기경전에 붓다의 신장은 보통 사람의 두 배나 되며, 신체는 금빛으로써 32상(相)을 갖추고 있고, 정신적으로는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을 갖추었다고 묘사되어 있다. 『디가 니까야(長部)』의 「대반열반경」에 붓다는 사신족(四神足)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원하기만 한다면 1겁(劫) 동안이라도 세상에 머물 수 있다고 설해져 있다. 또한 붓다의 본질은 형상으로 파악할 수 없는 ‘법신(法身)’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초기불교시대에는 비록 붓다가 32상을 갖추었더라도 부모로부터 태어났고 육체를 가진 붓다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불전문학(佛傳文學)이나 부파불교시대에는 32상뿐만 아니라 80종호(種好)도 설해진다. 32상은 전륜성왕(轉輪聖王)도 갖추고 있지만, 80종호는 붓다와 대력보살(大力菩薩)만이 갖추고 있다고 묘사되어 있다. 과거불(過去佛) 사상도 초기경전에 나타난다. 『장아함경』의 「대본경(大本經)」 등에는 과거칠불(過去七佛)에 대해 자세히 설해져 있다.[『장아함경』권1 「대본경」(T1, p.1c)] 그리고 『중아함경』의 「설본경(說本經)」에는 미래불(未來佛)로서의 미륵(彌勒)이 설해져 있다.[『중아함경』권13 제66 「설본경」(T1, pp.510b-511b)]
좀 더 후대에 이르면, 타방세계(他方世界)의 제불(諸佛)이 설해지고, 다불사상(多佛思想)이 나타난다. 『이부종륜론(異部宗輪論)』에 의하면, 대중부의 ‘본종동의(本宗同義)’에는 스스로 원해서 악취(惡趣)에 태어나는 보살, 즉 원생신(願生身)의 보살이 설해져 있다. 대중부에서는 “모든 부처님 세존은 모두가 세간에 출현하고 모든 여래께서 유루법(有漏法)이 없으며, 모든 여래의 말씀은 모두가 전법륜(轉法輪)이고, 부처님은 한 음성[一音]으로써 온갖 법을 설명하며 세존께서 하신 말씀은 여여(如如)하지 않은 뜻[不如義]이 없다. 여래의 색신(色身)은 실로 끝이 없고 여래의 위력(威力)도 또한 끝이 없고 모든 부처님의 수명도 끝이 없다.” [『異部宗輪論』(T49, p.15a)]고 주장했다. 이것은 분명히 ‘생신(生身)’ 이상의 붓다를 설하고 있다. 그러나 대중부가 무엇을 근거로 이러한 불타관(佛陀觀)을 주장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한편 “대승불교는 보살사상을 제시하는 동시에 약속과 희망의 종교를 제공한다. 일상적인 삶의 투쟁에 찌들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또한 그의 본질적인 이기심에도 불구하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데 실패했을 때, 그의 나약한 영혼은 실패를 모르는 자비와 도움의 어떤 원천을 갈망한다. 그는 신(神)에게로 달려간다. 초기불교와 같은 자력의 종교는 그에게 차디찬 위안이 될 뿐이다. 대승불교는 그처럼 고독한 대중에게 ‘붓다의 자비로운 눈길이 모든 고통 받는 존재에게 주어진다.’는 희망을 펼쳐 보인다.” [S. C. Chatterjee․D. M. Datta, 『학파로 보는 인도 사상』, p.170]
붓다와 동시대에 살았던 자이나교 개조 바르다마나 마하위라(Vardhamāna Mahāvīra)가 주장했던 것과 유사한 ‘전지성(全智性, sabbaññutā)’을 붓다에게 귀속시켰다. [MN. Ⅰ, p.482.] “이와 같은 귀속에서는, 붓다가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것에 관한 절대적인 앎을 소유하지 않았다면 그가 사람들을 자신이 했던 대로 전향시키는데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가정함으로써, 깨달음이 지닌 지적인 내용을 선별적으로 과장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 결국 그는 최고의 존재자 차원으로 격상되고 있었던 것이다.” [D. J. Kalupahana, A History of Buddhist Philosophy: Continuities and Discontinuities, Delhi: Motilal Banarsidass, 1994, p.122]
“대승불교철학은 붓다를 초월적 실재와 동일시한다. ‘가우따마(Gautama)’라는 역사적 붓다는 궁극적 실재 또는 부처의 화신으로 받아들여진다. 붓다의 수많은 전생의 화신들 역시 믿어져 여러 전생의 삶의 이야기를 담은 유명한 『자따까(Jātaka, 本生譚)』들이 구성되었다.” [S. C. Chatterjee․D. M. Datta, 『학파로 보는 인도 사상』, p.170]
“무속성적 브라흐만(Nirguna Brahman)을 주장하는 아드바이타 베단타 철학에서와 마찬가지로 대승불교철학에서도 궁극적 실재 자체는 모든 언어적 표현을 넘어서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동시에 이 실재는 스스로를 현실 속에 우주의 조절자인 법신(法身, dharma-kāya)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여겨진다. 법신의 면에서 궁극적 실재 또는 붓다는 모든 존재의 해탈을 간절히 바라면서 스스로를 각기 다른 스승들로 화현시켜 중생들이 고통을 벗어나도록 돕는다. 그렇기 때문에 법신으로서의 붓다는 나약한 영혼의 소유자들이 자비와 도움 등 모든 실제적인 목적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도록 하는 신(神)의 위치를 차지한다. 이러한 면에서 붓다는 또한 아미타불(Amitābha Buddha)이라고 불린다. 결국 불교는 붓다를 신과 동일시함으로써 불교를 받아들인 사람들의 종교적 열망을 충족시킨다.” [S. C. Chatterjee․D. M. Datta, 『학파로 보는 인도 사상』, pp.170-171]
붓다의 신격화를 한자 문화권에서는 천화(天化), 혹은 범화(梵化)라고 부른다. [呂凱文, 「對比・詮釋與典範轉移(2): 以兩種 『善生經』探究佛敎倫理的詮釋學轉向問題」, 『正觀』 第35期(2005. 12), pp.19-23 참조] 붓다는 자신이 사후에 신격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 같다. 붓다는 입멸 직전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이렇게 말했다. “아난다여, 내가 가고난 후에는 내가 그대들에게 가르치고 천명한 법(法)과 율(律)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DN. Ⅱ, p.154, “yo vo ānanda mayā dhammo ca vinayo ca desito paññatto, so vo mam' accayena satthā.”]고 말했다. 이것은 붓다가 자신을 사후에 신격화시키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붓다의 뜻과는 달리 초기경전을 편집할 때부터 이미 붓다는 신격화되기 시작했다. 「박깔리 숫따(Vakkali-sutta)」에 의하면, 중병(重病)에 걸린 박깔리(Vakkali) 존자가 붓다께 예배드리기 위해 침상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자 붓다는 “박깔리여, 그만 두어라. 그대가 썩어문드러질 이 몸을 봐서 무엇 하겠는가? 박깔리여, 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자는 법을 본다.” [SN. Ⅲ, p.120, “alaṃ vakkali kiṃ te iminā pūtikāyena diṭṭhena. yo kho vakkali dhammaṃ passati so maṃ passati, yo maṃ passati so dhammaṃ passati.”]고 말했다. 이처럼 붓다는 형식적인 예배조차 거부했다.
한편 이 경에 나오는 ‘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자는 법을 본다.’는 대목은 붓다가 설한 법을 봐야만 진정으로 붓다를 보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붓다가 설한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면, 그때 비로소 붓다를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후대의 ‘법신(法身, dhammakāya)’이라는 개념이 이 대목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상응부주(相應部註)』에 나오는 “대왕이시여, 여래는 법을 몸으로 하는 자입니다.’고 하셨는데 [이 말씀을 통해서] 당신이 법을 몸으로 함을 보이신 것이다. 아홉 가지 출세간법(出世間法, lokuttara-dhamma)이 여래의 몸이기 때문이다.” [SA. Ⅱ, p.314]라는 대목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니까야에서는 “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자는 법을 본다.”라고만 언급되어 있다. 그런데 주석서에서는 이 대목을 ‘법신(法身)’으로 확대 해석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니까야의 주석서를 저술할 때 이미 ‘법신’이라는 개념이 확립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빨리 『율장』「대품」에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들이 깨달음을 이루고 구족계(具足戒)를 받았을 때, 붓다는 “그때 세간에 여섯 명의 아라한이 있었다.” [Vin. Ⅰ, p.14: “tena kho pana samayena cha loke arahanto honti.”]고 선언했다. 이것은 붓다 자신도 아라한 가운데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여섯 아라한 속에 포함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불멸후 붓다는 점차 신격화되어갔다. 제일 먼저 붓다와 아라한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붓다누붓다(buddhānubuddha)’라는 개념이다. 이른바 ‘붓다를 따라 붓다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후 붓다는 더욱더 신격화되었다. 비록 붓다의 육신은 소멸하지만, 붓다의 법신은 상주한다는 이른바 ‘법신상주(法身常住)’의 불신관(佛身觀)으로 바뀌게 되었다. [李箕永, 「佛身에 관한 硏究」, 『佛敎學報』제3·4합집(서울: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1966), pp.205-279 참조] 대승불교의 불신관, 특히 『법화경』에서 강조된 ‘영원한 붓다’의 개념은 이미 초기경전인 「Mahāparinibbāna-sutta(大般涅槃經)」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내용은 일본의 불교학자 奈良康明의 견해이다. 中村元, 金知見 譯, 『佛陀의 世界』(서울: 김영사, 1984), pp.423-424 참조] 이 경에서 붓다는 생명을 더 연장할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생명을 버렸다고 하는 이른바 ‘화연완료 잉의사명(化緣完了 任意捨命)’의 사상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平川彰, 박용길 역, 『율장연구』(서울: 土房, 1995), p.549.] 이러한 사실은 이미 우이 하쿠주(宇井伯壽)에 의해 지적된 바 있다. 이러한 불신관의 변천으로 인해 대승불교에서는 붓다를 ‘인간 붓다’가 아닌 ‘초인 붓다’로 이해하게 되었다. 라다크리슈난(S. Radhakrishnan, 1888-1975)은 붓다의 신격화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의 종교적 본능은 신적인 존재를 요구하며, 따라서 붓다의 실천적인 종교에서 ― 그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 그 자신은 신격화되었다. …(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본성은 억제되어 잠자코 있을 수 없다. 세상의 눈(lokacakṣus)이며,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전형이며, 완전에 이르는 길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인 사람이며, 자신은 그 길을 발견하여 다른 사람들이 그의 발자취를 따라 걸을 수 있도록 만든 현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붓다는 대중들의 유일한 피난처인 신(神)이 된다. [라다크리슈난, 이거룡 옮김, 『인도철학사(Ⅰ)』(서울: 한길사, 1996), pp.279-280]
이처럼 교주의 신격화는 필연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칼루파하나가 지적한 바와 같이, “과거의 여러 종교 지도자들의 경우가 그러하듯이, 붓다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도 온갖 형태의 신화와 전설들로 점철되어 왔다.” [D. J. Kalupahana, A History of Buddhist Philosophy: Continuities and Discontinuities, Delhi: Motilal Banarsidass Publishers, 1994, p.22] 이러한 과정을 거쳐 붓다는 점차 신격화되었다. 최종적으로 대승불교의 『법화경』에서 석가모니불은 ‘인간 붓다’가 아닌 구원실성불(久遠實成佛)로 신격화되었다. 법화경에 묘사된 구원실성불은 유일신의 개념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법화경』에서 무신론의 종교가 유신론의 종교로 변해 버렸다. 이처럼 붓다를 신격화시킴으로써 불교의 정체성은 크게 훼손되고 말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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