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의 모습
사리자의 질문에 대한 관자재보살의 대답이 다음에 나옵니다.
이 말을 들은 위대한 성자 관자재보살은 사리자 스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리자여,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닦는 수행을 하고 싶은 고귀한 가문의 아들과 딸들은
다음과 같이 명확히 알아야 한다. 오온五蘊조차도 내재하는 실재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철저하게 알아야 한다.”
경전의 이 부분부터는 관자재보살이 사리자의 질문에 대해서 대답합니다.
처음에는 간결하게 요약해서 설명하고 나중에는 더 상세히 설명합니다.
나는 이 부분에서 겉으로 드러난 명백한 주제인 공성의 가르침을 설명할 것입니다.
나중에 반야바라밀다 진언을 다루는 부분에서는 숨어있는 주제인 공성에 대한 지혜와
연관된 수행 단계들을 설명할 것입니다.
관자재보살의 간결한 대답은, 고귀한 가문의 아들과 딸들은 “오온조차도 내재하는 실재를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통찰력 있게 올바르게 되풀이해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차도”라는 말은 모든 현상을 총망라한 것들에 대해서 ‘공성’이 적용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오온은 개인의 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정신적 육체적 요소들입니다.
오온에게 내재하는 실재가 없기 때문에 오온으로 구성된 개인에게도 마찬가지로 내재하는
실제가 없습니다.
개인인 ‘나’에게 내재하는 실재나 내재하는 자아自我가 없기 때문에
‘나의 것’이라고 하는 사물들에게도 내재하는 실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달리 말하면, 정신적 육체적 요소들[오온]의 사용자인 개인에게 내재하는 실재가 없을 뿐
아니라, 사용되는 대상인 정신적 요소와 육체적 요소들에도 내재하는 실재가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구성되어 생긴 모든 현상들에는 내재하는 실재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구성된 모든 현상들에게 내재하는 실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구성되지 않은 현상들에게도 내재하는 실재가 없습니다. 윤회에 얽매인 중생들에게
내재하는 실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부처님들에게도 내재하는 실재가 없습니다.
공성 자체에도 내재하는 실재가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죠.
이렇게 내재하는 실재가 존재하기 않는다고 부정하는 과정을 끝내고 나면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생길 겁니다.
그러나 ‘공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확히 알면 그런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는 걸
알 게 될 겁니다. ‘공성’의 의미를 명확하게 파악하기가 어려워서 불교학자들 사이에도
공성의 정확한 의미에 논의가 활발합니다. 모든 불교종파가 ‘아뜨만(atman)’ 즉 ‘내재하는
자아’라는 개념을 부정하지만, 어떤 종파들의 경우는 현상에 내재하는 실재가 없다고
부정하나 사람에게는 내재하는 실재가 있다고 인정합니다.
현상에 내재하는 실재가 없다고 부정하는 종파들 사이에도 서로 다른 해석들이 있습니다.
어떤 종파들은 어떤 현상들을 선택해서 그것들이 내재하는 실재가 없다고 하는 반면에
어떤 종파들은 모든 현상들에게 내재하는 실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현상과 사람들에는 내재하는 실재가 없다고 생각하는 종파들 가운데서도
어떤 종파들들은 관습적인 차원에서 조차 내재하는 실재가 없다고 부정하는 반면에
다른 종파들의 경우에는 관습적 개념들에게 내재하는 실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추측컨대, 이렇게 다양한 견해들을 둘러싸고 광범위한 토론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그것에 관해서는 나중에 설명하겠습니다.
내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관자재보살이 오온에 내재하는 실재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 것은 오온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텐진갸초(달라이라마) 저/주민황 역/무우수/2003.4.8
[출처] 본래의 모습|작성자 임기영양벌리영어논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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