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징(曇徵) (579~631)
고구려 후기의 승려, 화가로 일본에 불법과 미술을 전하여 주었다.
오경(오경)에도 능통했고, 그림에도 능했다.
담징은 고구려의 승려이자 화가로서 학문과 그림 솜씨가 뛰어났다. 일본
의 초청으로 610년(영양왕 21년)에 백제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 종이·
먹·공예·채색 등의 기술을 전하였 으며 연자매와 맷돌 등을 만들어 일
본의 문화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또한 일본의 호류사(法隆寺)라는
절에 머무르면서 일본 스님 호죠(法定)와 기거를 함께하며 불법과 학문
을 가르쳤다.
당시 고구려는 수나라와 전쟁을 치르고 있던 중이라 그의 마음은 매우
혼란스러웠는데, 고구려가 크게 승리했다는 소식을 듣자, 감사와 기쁨
의 마음으로 호류사의 금당에 <사불 정토도>를 그렸다. '금당 벽화'로
더 잘 알려진 이 그림은 경주의 석굴암, 중국의 윈강 석불과 함께 동양
의 3대 미술품으로 유명했으나, 1948년에 불타 버리고 말았다. 일본에서
는 종이와 먹의 시조로서 오늘날에도 존경을 받고 있다.
일찍이 출가하여 스님이 된 담징은 불교의 경전 뿐 아니라 그림을 잘 그
렸으며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예술에 뜻을 두고 담징이 신라에 머물고 있을 때, 이 소문을 들은 일본
은 담징을 모셔 가려고 사람을 보냈다. 담징은 망설인 끝에 백제를 거
쳐 일본으로 건너갔다. 예술에 대한 꿈을 품고 일본으로 건너오긴 했으
나 담징의 마음은 언제나 조국인 고구려에 있었다.
그런데 중국 수나라가 고구려가 돌궐에는 사신을 보내면서 수나라에는
사신을 보내지 않은 것을 핑계로 백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입하였
다. 이 소식을 들은 담징은 고구려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일본과의 약속
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항상 조국을 위해 부처님께 기도를 하고
는 하였다.
어느 날 일본 스님이 찾아와 담징에게 부탁하였다.
" 조금 있으면 우리 나라에서 제일 큰 사원인 호류사가 완성됩니다. 벽
화를 그려야 되는데 부디 대사님께서 그림을 그려주십시오. "
그러나 날로 위험해지고 있는 조국에 대한 걱정으로 담징은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괴로움에 쌓여 있던 담징에게 고구려의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를 크게
물리쳤다는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담징은 불경을 외우며 목탁을 두드렸
다. 그리고 호류사로 돌아와 힘을 다해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
을 그리기 시작한 며칠 뒤 마침내 그림을 완성하였다.
그림에 그려진 부처의 모습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 정말로 살아 있는 부처님 같아. "
" 어쩌면 저렇게 훌륭할 수가 있을까 ? "
벽화를 본 사람들은 모두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일본의 대표적인 문화
유산이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48년 호류사에 불이 나서 벽화는
불에 타 버렸다. 그래서 지금의 금당벽화는 담징이 그렸던 원래 그림이
아니라, 일본 화가가 담징의 금당벽화를 본떠서 그린 것이다.
[출처] 담징(曇徵) (579~631) |작성자 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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