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불자가 꼭 알아야 할 100가지] 불교를 실천하는 세가지 길, 삼도

수선님 2020. 9. 6. 11:17

종교의 유용성을 단적으로 말한다면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답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인생을 바르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답하는 게 가장 무난하리라 생각한다. 과거로부터 숱한 성현들이 그러한 길을 제시해 왔다. 그 중에서도 가장 믿을 만한 길이 종교로 집약되었다고 생각해서 사람들은 종교에 의지하고자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삼도(三道)라는 것도 결국은 불교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단계적인 세 가지 길을 가리킨다.

계(戒)와 정(定)과 혜(慧)를 뜻하는 삼학(三學)이라는 말은 교의적으로도 빈번히 쓰이고 있는 데에 비해, 삼도라는 개념은 그다지 잘 인식되어 있는 것 같지 않다. 계율과 선정과 반야(지혜)를 가리키는 삼학은 이미 설명했다.

삼도란 쉽게 말해, 보고 닦아서 이상을 실현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즉 견도(見道)와 수도(修道)와 무학도(無學道)이다. 이를 현실적인 의미로 해석하면 인생을 관찰하고, 인생을 성숙시키는 길을 거쳐, 더 이상 배움이 필요없는 길에 이르는 것이다. 이를 불교의 대표적인 교의를 빌어 적용하면, 이 세상의 법칙을 관찰하여 연기(緣起)와 중도(中道)임을 알고, 팔정도나 육바라밀로써 그것을 실천하여, 종국에는 자유의 세계인 열반 또는 해탈에 이르는 것이다. 이에 대한 실제의 설명에 있어서 견도란 사성제의 도리를 깨닫는 수행과정이다. 즉 부처님이 맨 먼저 설한 것이 견도인데, 고통과 이의 절멸에 관한 사성제, 인과와 생성에 관한 십이인연, 모든 사물과 존재의 성질을 단정할 수는 없다는 불확정성의 원리 등은 부처님 자신이 삶에 대해 어떠한 견해를 취하였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관찰에 의하면 결국 인간은 스스로 창조해 나가는 존재이다. 자기 창조에 의해 인간은 그 불확정성을 극복해 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이론적으로 세계관과 인생관을 확립하면, 인간은 사성제나 연기의 도리를 체험적으로 실천하여 자기의 행동이 그 관점에 부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수도이다.

견도가 이지적(理智的)인 것이라면 수도는 정의적(情誼的)인 것이다. 우리는 이론적으로는 용이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도, 실천이라고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그 이론대로 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술과 담배의 해독은 이론적으로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쉽게 끊을 수 없는 것은 정의적인 습관이 굳어져 있기 때문이다. 또 이론적으로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좋은 줄 알면서도, 습관으로 인해 계속 늦잠을 자고 싶은 것이 우리의 일상생활이다. 이처럼 잘못된 습관을 고치는 것이 수도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부처님은 견도를 설하고 나서 수도를 설했다. 여기서 부처님은 어떤 때는 대화를 통한 논쟁으로써, 또 어떤 때는 직관적인 명상으로써 제자들을 훈련시켜 각자의 통찰력을 일깨워 주었다. 이 여파로 후대에는 여러 학파나 종파에서 깨달음을 성취하는 독자적인 방법을 개발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방법들에 의한 수도의 결과 완전한 자유인 열반에 이르게 된다. 이는 무차별의 경지이며, 불교에서 추구하는 삶의 이상이 실현된 상태이다. 즉 삼도 중의 무학도이다.

사실 초기의 경전에는 견도나 수도의 수행이 무엇을 어떻게 사유하고 관찰하는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다만 부처님 자신은 사성제의 관찰법을 통해 견도, 수도, 정각의 3단계를 거쳐 나아갔다고 말하고 있다. 먼저 제1단계로서 '이것이 고(苦)임을 알고, 이것이 고의 집(集)임을 알고, 이것이 고의 멸(滅)임을 알고, 이것이 고의 멸에 이르게 하는 도(道)임을 안다.'고 하는 사제의 충실한 이론적 이해를 제시한다. 다음의 제2단계로서 '고는 널리 알아야 할 것이요, 집은 끊어 버려야 할 것이요, 멸은 실증해야 할 것이요, 도는 닦아야 할 것이다.'고 하여 사제를 여실히 실천하고 체험해야 할 것임을 제시한다. 마지막의 제3단계로서 '고의 두루 앎을 마치고, 집의 끊어 버림을 마치고, 멸의 실증함을 마치고, 도의 닦음을 마친다.'고 하여 사제의 실천과 체험이 완결됨을 서술하고 있다. 여기서 마지막이 무학도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겠다.

삼도란 결국 최고의 인격자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3단계를 말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불교의 수행에만 국한되지 않고, 인간 완성을 추구하는 교육과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모두가 공감하고 있듯이 교육은 당장 필요한 지식을 전달하는 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도덕적이며 정의적인 교육도 그에 못지 않게 중시되고 있다. 오히려 교육의 가치와 정도는 후자에 의해 판가름된다. 오늘날 교육의 결함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은 후자의 측면이 갈수록 간과되어 간다는 사실이다. 이로 빚어진 사회문제를 우리는 심각하게 겪고 목격하면서 우려하고 있다. 정의적 훈련이나 교육의 필요성을 새삼스럽게 절감하고 있는 것이다. 불교의 수행은 대부분이 이 방면을 중시한다. 우리의 삶에서 무엇이 옳고 바른가를 알고자 노력하고, 그렇게 안 것을 실제의 행동으로 실천하고자 노력하며, 그리하여 자타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이상적 사회를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이 불교의 삼도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바르게 관찰하고, 그렇게 관찰한 것을 더욱 잘 닦아 확고히 생활화하며, 자기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통하는 무애의 자유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이를 우리는 통상 이론과 실천과 완성이라고 말한다.

〔참고문헌〕 Junjir Takakusu, The Essentials of Buddhist philosophy(→ 문 13), p. 211.

水野弘元 저, 김현 역,『原始佛敎』(→ 문 12), pp. 149∼151.

 

 

 

 

 

 

 

☞ 출처 : 조계사 : http://www.ijogyesa.net/

[출처] [불자가 꼭 알아야 할 100가지] 불교를 실천하는 세가지길, 삼도 |작성자 별하나두리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