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원>
ㅡ성인의 길에 들었다고 하여 입류라 하기도 하고,
도도히 흐르는 삶의 거센 물결을 이긴 존재라는 뜻으로 逆流라고도 합니다.
모양,소리, 냄새,맛, 촉감,법의 물질경계로부터 자유로워져 어떤 형상에도 끄달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남아 있는 습을 끊지 못했으므로 일곱 번 더 인간으로 와야 생사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성자의 반열에 들어간 존재라고 하지만 들어가고 말고 할 자리가 따로 있는게 아닙니다.
수다원이 스스로 수다원과를 증득했다고 생각한다면 아상에 속박되어 있는 것입니다.
높은 경지에 이른 사람은 내가 누구라는 것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제트기 엔진에 들어가는 부품을 만드는 스웨덴의 한 회사는 광고를 전혀 하지 않는 다고 합니다.
제품을 사용해 본 전 세계 사람들이 우수성을 인정해서 그 회사 제품만 찾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실력과 능력이 출중하면 내가 세상에 나서지 않아도 세상이 나에게 다가오는 법입니다.
물질세계를 이겨낸 수다원의 경계는 현실 생활 속에서 우리가 극복해야 할 경계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을 살다보면 먹고 마시고 즐기는 물질경계에서 벗어나기가 어렵습니다.
욕심이 끝이 없기에 절제하기도 힘이 듭니다.
그러나 물질경계에 함락당하지 않고 이겨냈을 때의 희열은 느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자신에 대한 자긍심이 크기 때문에 어떤 강한 유혹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물질경계에 빠지지 않도록 마음의 브레이크를 잘 조종해야 합니다.
<사다함>
ㅡ성문 四果 중 두 번째 단계로 一來라 합니다.
이 세상의 물질경계에 미련이 남아 있지 않아 한 번만 오면 다시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습니다.
현재의 업은 끊겼지만 과거의 업이 아직 남아 있어서 한 번 더 윤회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이나 인간 세계에 태어났다가 깨달음을 얻어 열반에 이르게 되는 경계입니다.
그러나 사다함이라는 단계에 올랐다 하더라도 '내가 사다람과를 얻었다'라는
상을 가지고 있으면 이미 사다함이 아닙니다.
일상이 무상이므로 이 우주법계는 오고가는 자리가 따로 없는 하나의 세계입니다.
깨달음의 눈으로 보면 모두가 하나이므로 천상이나 지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살도를 걷는 사람은 지옥에 태어난다고 해서 괴로워하지도 않으며
천상에 태어난다고 해서 기뻐하지도 않습니다.
<아나함>
ㅡ不還이라 하여 인간 세계에 다시는 오지 않는 존재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한 관심과 집착이 떨어져 버렸기에 다시 올 필요가 없습니다.
다시 오지 않는다고 하지만 떠나야 할 세계가 있고 태어나야 할 세계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 역시 상입니다.
아나함은 이 세상에 온다 혹은 오지 않는다는 분별심을 넘어선 경지이므로
이름을 아나함이라 말할 뿐입니다.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밑바탕엔 사랑하는 마음이 깔려 있고 그 마음 따라 발걸음이 움직입니다.
좋아하는 물건이 있으면 그 물건이 있는 시장에 갈 것이고,
음악을 좋아하면 음악회에 갈 것이며 미술을 좋아하면 전시회에 갈 것입니다.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탐닉하게 되고,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집착하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사바세계의 물질경계에 집착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에 이 세상에 계속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좋아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 다시 올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수행을 통하여 집착하는 마음을 뗠쳐 내라는 것입니다.
<아라한>
ㅡ욕계,색계,무색계를 벗어나 해탈을 이룩한 성자로서 깨달음의 가장 높은 단계를
성취한 존재입니다.
온갖 번뇌에서 벗어나 생사를 초월했기 때문에 다시는 몸을 받지 않으므로 不生이라고 합니다.
물질의 경계를 떠나 몸은 태어나지 않고 마음만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육신을 좋아하니까 육신이 생기고, 눈으로 보기 좋아하니까 눈이 생기며,
귀로 듣기 좋아하니까 귀가 생깁니다.
좋아하는 마음 따라 생기는 것입니다.
욕망을 버리고 탐착하는 마음이 없으면 육신이 필요 없는 존재가 됩니다.
아라한이 깨달음의 가장 높은 단계를 성취했지만 만약 내가 아라한도를 얻었다고 한다면
얻을 법이 있다는 상에 집착한 것입니다.
어떠한 고정된 법이 있어서 아라한도를 얻은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을 아라한이라 할 뿐입니다.
아라한이라 하는 자리는 상상을 초월하는 세계입니다.
경전에 보면 아라한은 삼천대천세계에 떨어지는 빗방울 숫자를 한 눈에 다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뉴턴이 기사작위를 수여받을 때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우주의 모든 진리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으니 얼마나 행복합니까?"
그랬더니 뉴턴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이 어마어마한 대우주 가운데 아주 작은 편린에
지나지 않습니다.
마치 저 바닷가에서 어린아이가 예쁜 조개껍질을 하나 주워 들고 좋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라한 같은 성인의 세계나,영원의 세계인 우주는 어마어마한 세계입니다.
그 세계는 말로 설명되는 자리가 아니고 직접 깨달아서 아는 자리입니다.
우리도 끊임없이 수행정진하여 그들의 지견이 되어 보면 그 경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작성자 나그네
'위없는 가르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교와 환경_ 불교의 가르침 (0) | 2020.09.20 |
---|---|
붓다 (0) | 2020.09.20 |
'착한 일의 보람' 합송 (0) | 2020.09.06 |
윤회의 자아와 무아 - 정승석(동국대 불교학 교수) (0) | 2020.09.06 |
왜 불교를 공부하는가? (0) | 2020.0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