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불교 Early Buddhism

아라한의 오불능(五不能)에 대하여

수선님 2020. 9. 20. 12:16

아라한의 오불능(五不能)에 대하여

 

 

착한 사람은 대개 착하게 삽니다. 지혜가 있다면 어느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악한 사람은 대개 악하게 삽니다. 지혜가 없기 때문에 악을 행하기 쉽습니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선한 자가 선을 행하는 것은 쉽다. 악한 자가 선을 행하는 것은 어렵다. 저열한 자가 악을 행하는 것은 쉽다. 고귀한 자가 악을 행하는 것은 어렵다.”(Ud.60)라 했습니다. 이 게송은 부처님이 데바닷따의 승단분열 행위를 보고 게송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게송에서 “고귀한 자가 악을 행하는 것은 어렵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부처님 등 고귀한 님들은 자신과 타인에게 해악을 끼치는 일을 행하기 어렵다.”(UdA.318)라는 뜻입니다. 번뇌가 다한 아라한이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 불가능함을 말합니다.

 

아라한의 오불능(五不能)

 

앙굿따라니까야에 아라한의 오불능(五不能)과 구불능(九不能)에 대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전재성님은 해제에서 “해탈한 거룩한 님에게도 불가능이 있다는 것을 서술한 유명한 경이다.”라 했습니다. 경에서 부처님은 “수행승이 거룩한 님으로 모든 번뇌를 부수고, 수행이 완성되고,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짐을 내려 놓고, 참다운 목표에 도달하고, 존재의 결박을 끊고, 올바른 앎으로 해탈했다면, 그가 다섯 가지 경우를 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A9.7)라 했습니다. 아라한에게 있다는 불가능은 어떤 것일까요? 먼저 다섯 가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수행승이 거룩한 님으로 모든 번뇌를 부수고, 수행이 완성되고,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짐을 내려 놓고, 참다운 목표에 도달하고, 존재의 결박을 끊고, 올바른 앎으로 해탈했다면, 그가 고의로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행승이 거룩한 님으로 모든 번뇌를 부수고, 수행이 완성되고,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짐을 내려 놓고, 참다운 목표에 도달하고, 존재의 결박을 끊고, 올바른 앎으로 해탈했다면, 그가 주지 않는 것을 훔칠 의도로 빼앗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행승이 거룩한 님으로 모든 번뇌를 부수고, 수행이 완성되고,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짐을 내려 놓고, 참다운 목표에 도달하고, 존재의 결박을 끊고, 올바른 앎으로 해탈했다면, 그가 성적교섭의 원리를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행승이 거룩한 님으로 모든 번뇌를 부수고, 수행이 완성되고,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짐을 내려 놓고, 참다운 목표에 도달하고, 존재의 결박을 끊고, 올바른 앎으로 해탈했다면, 그가 올바로 알면서도 거짓말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행승이 거룩한 님으로 모든 번뇌를 부수고, 수행이 완성되고,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짐을 내려 놓고, 참다운 목표에 도달하고, 존재의 결박을 끊고, 올바른 앎으로 해탈했다면, 그가 이전에 속가에서 살던 것처럼 재물을 모아놓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즐기는 것은 불가능하다.”(A9.7)

 

 

 

 

이른바 아라한의 오불능에 대한 것입니다. 주로 오계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마지막 항목을 보면 음주 대신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라한에게 음주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손을 뿌리친 이유

 

아라한의 오불능을 보면 살생, 도둑질, 성적교섭, 거짓말, 감각적 쾌락의 욕망이 불가능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아라한에게 탐욕, 성냄 등 낮은 단계의 다섯 가지 결박이 풀렸고, 자만, 무명 등 높은 단계의 욕망이 모두 풀려서 더 이상 재생의 원인이 되는 행위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불능은 아라한 뿐만 아니라 아나함 단계에도 해당됩니다. 탐욕, 성냄 등 낮은 단계에 결박이 모든 풀린 아나함, 즉 불환자에게 있어서 살생, 도둑질, 성적교섭, 거짓말, 감각적 쾌락의 욕망 역시 불가능한 것이 됩니다. 이는 테리가타 인연담에서도 확인 됩니다. 담마딘나 장로니에 대한 인연담을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호 비싸카는 스승에게 가르침을 듣고 돌아 오지 않는 님이 되어 집으로 가서 누각에 오르면서, 층계 위에 서 있는 담마딘나가 손을 내밀었으나 붙잡지 않고 누각에 올라 식사를 하면서도 침묵을 했다.

 

담마딘나는 그의 의중을 살피고 ‘여보, 왜 오늘 나의 손을 붙잡지 않습니까? 식사하면서도 아무 말이 없습니까? 나에게 어떤 잘못이 있습니까?’라고 말했다. 비싸카는 ‘담마딘나여, 그대에게 잘못은 없습니다. 나는 그러한 원리를 꿰뚫었습니다. 만약에 그대가 원한다면, 이 집에 사십시오. 원하지 않는다면, 당신에게 필요한 만큼의 재물을 가지고 당신의 집으로 가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녀는 ‘여보, 나는 당신이 뱉어낸 것을 삼키지 않겠습니다. 저에게도 출가를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비싸카는 ‘좋습니다.’라고 담마딘나에게 말하고 그녀를 황금으로 만든 가마에 태워서 수행녀의 처소로 보냈다.” (테리가타 12번 게송 인연담, 전재성님역)

 

 

인연담 중의 일부를 옮긴 것입니다. 두 부부가 행복하게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남편 비싸카가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아나함이 되었습니다. 아나함이 되었다는 것은 탐욕, 성냄이 소멸 되어 더 이상 감각적 욕망을 추구하는 삶을 살수가 없음을 말합니다. 더 이상 재가의 삶을 유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비싸카는 부인이 손을 내밀었으나 잡지 않았습니다.

 

아나함이 되면 더 이상 재가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대게 집을 나와 출가합니다.아라한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비싸카 역시 집을 나가기로 합니다. 모든 재산을 부인 담마딘나에게 물려 주려 하는 것입니다. 원한다면 다른 남자에게 시집 가라고 합니다. 욕망이 소멸된 아나함에게 있어서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삶도 불가능하고 성적교섭도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홉가지 불가능에 대하여

 

아라한의 오불능에 대한 가르침은 디가니까야 ‘합송의 경(D33)’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앙굿따라니까야에서는 오불능에서 네 가지를 더 추가하여 구불능으로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불능에 대한 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그가 고의로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2) 그가 주지 않는 것을 훔칠 의도로 빼앗는 것은 불가능하다.

3) 그가 성적교섭의 원리를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4) 그가 올바로 알면서도 거짓말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5) 그가 이전에 속가에서 살던 것처럼 재물을 모아놓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즐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6) 그가 욕망의 길을 걷는 것은 불가능하다.

7) 그가 성냄의 길을 걷는 것은 불가능하다.

8) 그가 어리석음의 길을 걷는 것은 불가능하다.

9) 그가 두려움의 길을 걷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라한의 구불능에 대한 것을 보면 십선행을 떠 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십선행에 없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두려움’입니다. 앙굿따라니까야 ‘힘에 의한 섭수의 경(A9.5)’에 따르면 다섯 가지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것은 1) 생계에 대한 두려움, 2) 치욕에 대한 두려움, 3) 대중에 대한 두려움, 4) 죽음에 대한 두려움, 5) 비참한 운명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아라한은 다섯 가지 두려움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경에 따르면 1)지혜의 힘, 2) 정진의 힘, 3) 무죄의 힘, 4) 섭수의 힘이라 했습니다. 이 네 가지 힘을 갖춘 아라한에게 어떤 두려움도 있을 수 없습니다. 네 가지 두려움 중에서 무죄의 힘이란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허물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섭수의 힘이란 보시하는 것, 사랑스런 말, 이로운 행위, 동등한 배려, 즉 동사섭을 말합니다.

 

욕망대로 살았을 때

 

네 가지 힘을 갖춘 아라한도 불가능이 있습니다. 아홉가지 불가능입니다. 아라한에게 있어서 살생, 도둑질, 성적교섭 등 아홉가지는 불가능한 것이지만 배우지 못한 범부들은 가능한 것입니다. 아라한의 오불능이나 구불능은 세상의 흐름과 역행해서 살기 때문입니다. 역류도의 삶입니다.

 

세상의 흐름대로 사는 자들은 욕망으로 살아갑니다. 단 한순간도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자연스럽게 성냄도 따라갑니다. 마치 바늘 가는 곳에 실가듯이, 욕망 있는 곳에 성냄이 있습니다. 좋으면 거머쥐려 하고 싫으면 밀쳐 내려 하기 때문입니다. 욕망대로 살았을 때 악행을 저지르기 쉽습니다.

 

그가 비록 착하게 산다고 해도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지혜가 없으면 언제 어떻게 악행을 저지를 수 없습니다. 범부들은 잠재적인 범죄자들입니다. 오계를 어겼을 때 범죄자가 됩니다. 가르침을 따르는 선한 자가 선을 행하는 것은 쉽지만 악한 자가 선을 행하는 것은 어렵고, 저열한 자가 악을 행하는 것은 쉽지만 고귀한 자가 악을 행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2017-06-25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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