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현재인과경(過去現在因果經)
「과현인과경(過現因果經)」또는 「인과경(因果經)」이라고 줄여서 불리기도 하는 이 경은 444~453년 송(宋) 천축(天竺)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가 한역 번역한 4권의 경으로, 석존 자신이 설하신 형식의 불전(佛傳)이면서 과거세의 원인과 현재세에 있어서의 그 결과를 설하는 경이라는 뜻을 강하게 담고 있다.
석존이 기원정사에 계실 때에 여러 비구들이 석존의 과거의 인연을 듣고 싶어함에 석존은 이들에 대해서 과거세(過去世) 보광여래(普光如來)의 출세시에 선혜선인(善慧仙人)으로 태어나 출가 구도한 것으로부터 말씀을 시작하시어 제3자의 입장에 서서 팔상성도(八相成道)를 설하시고, 마지막으로 과거에 뿌린 씨앗은 무량겁(無量劫)을 지내도 마멸하지 않고 능히 현재의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성취케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기에 이른다.
이것이 ‘과거현재의 인과(因果)’란 명칭이 생기게된 이유이니 우리는 여기에서 ‘과거의 인(因)을 알려면 현재의 과(果)를 보라. 미래의 과를 알려면 현재의 인을 보라’고 하는 인과사상이 바로 이 경에서 강력하게 제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경의 내용을 요약해 보면 제 1권에서는 석존의 본생인 선혜선인의 출가와 보광여래의 수기로부터 도솔천(兜率天)에 재생하신 것,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 아사타(阿私陀)의 점상(占相), 삼시전(三時殿)에 관한 것, 모후 마야부인의 생천, 학예(學藝)의 익힘 등이 언급되고, 제2권에서는 무예의 경시(競試), 염부수나무 아래서의 사유, 결혼, 사문출유(四門出遊), 출가 등이 언급된다.
제3권에서는 두 스승에게 도를 물은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6년 고행과 보리수 아래서의 항마(降魔) 성도와 녹야원에서의 초전법륜(初轉法輪) 등이 언급되고, 제4권에서는 야사(耶舍)의 교화와 3가섭의 제도, 사리불(舍利佛)과 목련(目連)의 귀불(歸佛), 대가섭(大迦葉)의 교화에 이르러 끝을 맺는다.
불전은 현존 대장경에 17종 이상이 있는데 그 중에서 이 경은 대소승이 조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경의 중심이 되는 불전은 소승적이라고 할 수 있음에 반하여 추가의 본생 중에는 육도(六度) · 십지(十地) · 일체법공(一切法空)과 같은 대승적인 것도 가미되어 있다. 또한 태자 출가 이후의 항마성도까지의 부분이라든가, 성도 후의 12인연이나 8정도의 사유 같은 것, ‘빈비사라’왕에 대한 설법 같은 것도 그 구상이 「불소행찬(佛所行讚)」과 너무도 일치하여 양자간에 단지 산문과 운문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 경은 한역된 후 다른 불전에 비해 널리 유통되었고, 인과설을 중심으로 하는 불교회화의 소재로서 불교미술의 발전에 관계가 깊은 경이 되기도 하였다.
과거현재인과경 제1권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과 함께 대숲[竹林]에 머무르셨는데, 이 여러 비구들은 아침
에 옷을 입고 바루를 가지고 성에 들어가서 걸식을 하여 머무르던 곳으로 돌아와서 먹기를
마치고 손을 씻고 양치질하고는 저마다 옷과 바루를 거두고 강당에 모여서 모두가 함께 과
거의 인연을 말하고자 하였다.
그 때 세존은 세간을 뛰어난 깨끗한 하늘 귀로써 여러 비구들의 말하는 소리를 듣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강당 위에 이르시어 대중 가운데 앉으시고는 비구들에게 물으셨다.
“너희들은 함께 모여서 무슨 법을 말하려고 하였느냐?”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밥을 먹고 손을 씻고 양치질을 한 뒤에 일부러 함께 여기에 모여
서 각각 과거의 인연을 말씀하심을 듣고자 합니다.”
이 때 세존은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과거 인연을 듣고 싶으면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서 잘 생각하여라. 이제 너
희들에게 말하리라.”
비구들은 아뢰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즐거이 듣겠습니다.”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과거 헤아릴 수 없는 아승기겁에 그 때 선혜(善慧)라는 한 신선이 있었는데 깨끗이 밝
은 행을 닦고 일체종지(一切種智)를 구하고 이 큰 지혜를 성취하기 위하여 즐거이 나고 죽
는 데에 있으면서 다섯 갈래[五道]에 두루 하며 한 번의 몸이 죽고 무너지면 다시 한 몸을
받는 등 나고 죽음이 한량없었나니, 마치 천하의 초목을 다 베어서 산가지를 만들어 그의
옛날 몸을 헤아려도 다할 수 없음과 같았다.
무릇 하늘과 땅이 시작하여 마지막까지 다한 것을 1겁이라 하는데, 그런 천지가 이루어졌
다가 무너짐을 겪은 것이야말로 측량할 수 없었다.
그 까닭은 중생들이 애욕에 빠지고 헷갈려서 괴로움의 바다에서 잠기어 헤매고 있음을 불
쌍히 여겼기 때문이니 자비심을 일으키어 구제하려 하였다.
또 생각하기를 ‘지금 모든 중생들이 나고 죽는 데에 빠져서 스스로 나오지를 못하나니,
모두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탓이요, 빛깔[色]촵소리[聲]촵냄새[香]촵맛[味]촵닿임[觸]촵
법(法)에 좋아하고 집착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결정코 그의 이런 병을 끊어야겠다’ 하여 비
록 여러 갈래에 나면서도 이런 생각을 잊지 않았다.
모든 중생들에게 원수거나 친한 이를 평등이 여기면서 보시(布施)로써 가난한 이를 거두
어 주고 지계(持戒)로써 무너뜨림을 거두어 주고 인욕(忍辱)으로써 성냄을 거두어 주고 정
진(精進)으로써 게으름을 거두어 주고 선정(禪定)으로써 어지러운 뜻을 거두어 주며 지혜(智
慧)로써 어리석음을 거두어 주었다. 이렇게 하기를 오랫동안 하면서 더욱 중생들을 이롭게
하며 널리 일체를 위하여 귀의하게 하였다.
모든 여래에게 공경하고 공양하며 즐거이 법을 듣고 싶어 하고 또한 남에게 말하였으며,
언제나 네 가지 일로써 뭇 승가(僧伽)를 받들어 들이며, 부처님촵가르침촵승가를 존중하고
수호하였나니, 이렇게 한 모든 행이야말로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 때 등조(燈照)라는 왕이 있었고 성의 이름은 제파바지(提播婆底)이었는데, 그 나라의
인민들은 수명이 8만 살이었고 편안하고 고요하며 풍족하고 안락하여 극히 성왕하였으며,
하고 싶은 것은 자재로워서 마치 모든 천상과 같았다.
때에 그 국왕은 바른 법으로 세상을 다스리어 인민을 그르치지 않았고 살육과 매를 치는
고통이 없었으며, 모든 인민 보기를 마치 외아들처럼 여겼다.
때에 등조왕은 처음 태자를 탄생하였는데 단정 엄숙하기가 견줄 데 없고 거룩한 덕이 완
전히 갖추어져서 서른두 가지 몸매와 여든 가지의 잘생긴 모습이 있었으며 처음 탄생하는
날에는 사방이 다 밝아져서 해와 달과 구슬이며 불이 쓸데가 없어졌으므로 왕은 태자에게
이러한 상서로움이 있음을 보고 곧 여러 신하들을 불러 함께 모여서 의논하였다.
‘태자가 처음 나자 이런 기특함이 있는데, 태자에게 어떠한 이름을 지어 주어야겠는
가?’
여러 신하들은 대답하였다.
‘태자의 이름을 보광(普光)이라 하여야 하오리다.’
또 관상쟁이를 불러서 관상을 보게 하자, 관상쟁이는 대답하였다.
‘이제 태자를 자세히 살펴보니, 만약 집에 계시면 전륜왕이 되어서 사천하를 거느리겠으
며, 만약 집을 떠나면 천상과 인간의 어른이 되어서 살바야(薩婆若=일체지)가 되겠습니다.’
왕과 부인이며 후궁 채녀들은 관상쟁이의 말을 듣고 이 태자에게서 깊이 사랑하는 생각을
내었으며, 또한 그를 하늘.용.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며 사람인 듯 아닌 듯
한 것들이 공양하고 공경하며 존중하면서 찬탄하였다.
이 때 태자는 후궁에 있으면서 부인과 채녀들에게 갖가지의 법을 말하였으며, 태자의 나
이 2만 9천 살이 되자 전륜왕의 위를 버리고 그 부모에게 여쭈어 출가하기를 구하였으나 들
어주지 않으므로 세 번까지 청하여도 오히려 허락을 하지 아니하였으나 태자는 자비로 뜻이
구제에만 있었으므로 그 조그마한 위반을 참고 큰 것을 따르려고 즉시 산 숲의 나무 아래로
나아가서 수염과 머리칼을 깎아 없애고 법복을 입고 부지런히 고행(苦行)을 닦은 지 만 6천
년이 되어서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룩하고 여러 하늘과 사람이며 8부중(部衆)들을 위하
여 법의 바퀴를 굴렸으니 이 바퀴의 미묘함이야말로 일체 세간의 하늘촵사람촵악마촵범천으
로서는 굴리지 못할 바이며, 3승의 법으로써 중생을 교화하여 이익 되게 한 바는 헤아릴 수
가 없었다.
그 때 부왕과 그 부인이며 후궁 채녀 들은 태자 보광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룩하였
다 함을 듣고 마음에 크게 기뻐하며 날뛰기를 한량없이 하였다.
그 때 여러 신하와 국내 인민들이며 바라문들은 태자의 도가 이루어졌음을 듣고 마음에
저마다 생각하기를 ‘태자 보광께서 전륜왕위를 버리고 수염과 머리칼을 깎아 없애고 법복
을 입고 집을 떠나 도를 닦아서 바른 깨달음을 이루셨다 한다. 우리들도 이제 집을 떠나야
겠구나’라는 이런 생각을 한 뒤에 모두가 다 보광불(普光佛)에게 나아갔다.
그 때 보광 여래께서는 곧 그들의 마음을 자세히 살피고 그의 인연들을 따라서 그들에게
법을 말씀하시니, 대신과 바라문 등 4천 인이 아라한이 되었고 나라 안의 인민과 그 밖의
사방에서 와 모인 대중들 8만 인이 역시 집착이 없는 법의 지혜[無着法忍]를 얻었다.
그 때 보광 여래는 8만 4천의 아라한들과 함게 나라 지경에 나아가 노닐고 다니면서 교화
하셨는데, 부왕은 듣고 마음에 크게 기뻐하면서 즉시 나라 안에 칙령하여 도로를 편편히 다
스리고 향수를 땅에 뿌리며 여러 가지 비단 보배의 당기촵번기촵일산을 걸고 뭇 이름 있는
꽃을 흩게 하였나니 이렇게 장엄하기를 12요자나(踰?那)까지 하고, 또 다시 북을 치며 나라
안에 명령하였다.
‘모든 꽃을 지닌 이는 사사로 팔 수 없으며 모두 왕에게 보낼 것이니라.’
아울러서 인민들에게 칙령하였다.
‘나보다 먼저 부처님께 공양할 수 없다.’
그리고는 곧 대신을 보내어서 풍악을 잡히고 향을 지피며 꽃을 흩으면서 가서 그 보광 여
래를 칭하게 하였다.
그 때 선혜 선인(善慧仙人)은 산중에 있으면서 다섯 가지의 기이한 꿈을 꾸었는데, 첫째
꿈은 큰 바다에서 누워 있음이요, 둘째 꿈은 수미산을 베고 있음이요, 셋째 꿈은 바다 가운
데의 일체 중생들이 그의 몸 안으로 들어옴이요, 넷째 꿈은 손으로 해를 붙잡고 있음이요,
다섯째 꿈은 손으로 달을 붙잡고 있는 것이었다.
이 꿈을 꾸고 나서 크게 놀라 깨어서는 생각하였다.
‘나의 이제 꿈이야말로 작은 일이 아니로다.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성 안에 들어가서
여러 지혜로운 이에게 물어야겠구나.’
그리고는 사슴 갖옷을 입고 손에 물병과 지팡이며 우산을 가지고서 성읍으로 들어가는데,
지나가는 외도가 살고 있고 5백 인에 우두머리가 있었으므로, 선혜는 생각하였다.
‘나는 이제 꿈꾸었던 것을 묻고, 아울러 그들이 닦는 바의 일을 자세히 살펴야겠다.’
곧 여러 사람들과 같이 도의 이치를 강론하여 그 다른 소견을 깨뜨려 주자, 때에 5백 인
은 곧 굴복하고 제자 되기를 바라며 선혜에게 깊은 공경을 내면서 저마다 은전(銀錢) 한 푼
씩을 올렸다.
다시 5백의 외도들은 선혜의 변재와 총명을 보고서 역시 따라 기뻐하였는데, 이때에 여러
외도들을 함께 의논하여 말하였다.
‘지금 보광 여래께서 세상에 나오셨다.’
선혜 선인은 이 말을 듣고 온몸의 털이 곤두서면서, 마음이 크게 기뻐서 날뛰기를 한량없
이 하고는 곧 외도들과 작별하고 떠나가므로, 외도들은 물었다.
‘스승께서는 어디에 가십니까?’
대답하였다.
‘나는 이제 보광불에게 가서 공양을 베풀어야 하겠노라.’
외도들이 말하였다.
‘스승께서 만약 가신다면 따라가게 하옵소서.’
선혜는 대답하였다.
‘나는 이제 일이 있어서 먼저 가야 하겠다.’
그 때 선혜가 5백 은전을 가지고 길을 따라 떠나가자, 여러 외도들은 슬피사모하고 괴로
워하면서 사직하고 돌아왔다.
선혜는 앞으로 나아가다 왕가(王家)의 사람들이 도로를 펀펀하게 다스리고 향수를 땅에
뿌리며 당기촵번기촵일산을 벌려 세우면서 갖가지로 장엄하는 것을 보고 물었다.
‘무슨 일 때문에 이런 일을 하십니까?’
그러자 왕가 사람은 대답하였다.
‘세상에 부처님이 나오셨는데 명호가 보광불이십니다. 이제 등조왕께서 청하셨으므로 성
에 들어오시는데, 그 때문에 바쁘게 도로를 장엄하는 것입니다.’
하므로 선혜는 다시 거기 길에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디에 유명한 꽃들이 있는 줄을 아십니까?’
그러자 대답하였다.
‘도사여, 등조 대왕께서 북을 치고 국내에 영을 내리면서, (유명한 꽃은 모두 팔지를 말
고 다 왕에게 보내라)고 하였었습니다.’
그러자 선혜는 듣고 마음에 크게 괴로워하였으나 뜻에 오히려 그만두지 않고 애를 쓰며
꽃 있는 처소를 찾다가 얼마 안 되어 왕가의 하인을 만났으니, 몰래 일곱 송이의 푸른 연꽃
을 가지고 지나는데 왕의 금령을 무서워하며 병 속에 감춰 둔 것이 선혜의 지극한 정성에
감동하여 그 연꽃이 병 밖으로 솟아나왔었다.
선혜는 멀리서 보고 곧 쫓아가 부르면서 말하였다.
‘아가씨, 잠깐 멈추십시오. 이 꽃을 팔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하인은 듣고 마음에 크게 놀라면서 생각하였다.
‘꽃을 아주 은밀히 감추었는데, 이 남자는 누구길래 나의 꽃을 보고 사기를 청할까’ 하
고 그 병을 돌아봤더니 과연 꽃이 밖으로 드러나 있었기에 기이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대답
하였다.
‘남자여, 이 푸른 연꽃은 궁전 안에 보내야 하며, 부처님께 올리려 하는 것이므로 할 수
가 없습니다.’
그러자 선혜는 또 말하였다.
‘청컨대, 5백 은전으로 다섯 송이만 삽시다.’
하인은 의심을 하면서 다시 생각하였다.
(이 꽃의 값어치는 몇 전에 불과한데, 이 남자는 은전 5백으로 다섯 송이를 사겠다고 하
는구나.)
그리고는 곧 물었다.
‘이 꽃을 가져다 무엇에 쓰려고 하십니까?’
그러자 선혜는 대답하였다.
‘이제 여래께서 세상에 나오셨는데, 등조 대왕이 청하여 성에 들어오신다 하기에 일부러
이 꽃을 구하여 공양을 하려 합니다. 아가씨는 아셔야 합니다.모든 부처님촵여래는 만나기
어려움이 마치 우담바라 꽃[優曇鉢花]이 때에 한 번 나타남과 같습니다.’
그러자 하인은 또 물었다.
‘여래께 공양을 하여 무엇을 구하려고 합니까?’
선혜는 대답하였다.
‘일체종치(一切種智)를 성취하여 한량없이 고통 받는 중생들을 제도 해탈시키기 위해서
입니다.’
그 때 하인은 이 말을 듣고 생각하였다.
‘이제 이 남자는 얼굴 모습이 단정하고 사슴 갖옷을 입어 겨우 몸만을 가렸으나 정성을
다하며 돈을 아끼지 않는구나.’
그러면서 곧 말하였다.
‘제가 이제 이 꽃을 드릴 터이니, 제가 날 적마다 언제나 당신의 아내가 되기를 원합니
다.’
선혜는 대답하였다.
‘나는 맑은 행을 닦고 함이 없는 도[無爲道]를 구하는 터이므로 서로가 나고 죽는 인연
은 허락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하인은 바로 말하였다.
‘만약 나의 이 소원을 따르지 않겠다면 꽃을 드릴 수 없습니다.’
선혜는 또 말하였다.
‘그대가 만약 결정코 나에게 꽃을 주지 않겠다면 그대의 소원을 따르겠소. 그러나 나는
보시를 좋아하여 남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므로, 만약에 어떤 이가 와서 나에게 머리와 눈과
골수와 뇌며 아내와 아들을 구하려 할 경우, 당신은 못하게 하거나 나의 보시하려는 마음을
무너뜨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자 하인은 대답하였다.
‘거룩하고 거룩하십니다. 공경하며 하라는 명을 따르겠습니다. 지금 저는 여자인지라 연
약하여 나아가지를 못하므로 이 두 송이 꽃까지 맡기오니, 부처님께 바치시면서 저와 날 적
마다 이 소원을 잃지 않게 하며, 잘났거나 못났거나 간에 떨어지지 않으리니 반드시 마음
속에 간직하여 부처님께서 알게 하십시오.’
그 때 등조왕은 그 여러 아들들과 뭇 관속들이여, 바라문들과 함께 좋은 향과 꽃이며 갖
가지 공양 거리를 가지고 나가서 보광 여래를 받들어 영접하였으며, 온 나라 인민들도 모두
가 따랐다.
이 때 선혜의 5백 제자들은 함께 서로 말하였다.
‘오늘 국왕과 여러 신하며 백성들이 모두 다 보광불께 나아가고 큰 스승께서도 지금쯤은
이미 가셨을 터이니 우리들도 거기에 가서 예배 공경합시다.’
이런 말들을 하고서 모두가 함께 가다가 길에서 멀지 않은 데서 선혜를 만났다. 스승과
제자들이 서로 만나자 기뻐하기를 한량없이 하다가 같이 보광불께 나아가서 등조왕을 보았
더니, 이미 부처님의 앞에 이르러서 맨 처음에 공양하고 예배를 하였으며 이렇게 차례로 여
러 대신들까지 역시 저마다 예배 공경하면서 아울러 이름 있는 꽃을 흩었는데, 꽃은 모두
땅에 떨어져 버렸다.
그때에 선혜는 5백의 제자들과 함께 여러 사람들이 여러 가지로 공양하여 마치는 것을 본
뒤에 여래의 상호를 자세히 살피면서 또 여러 고통 받는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또한 일
체 종지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곧 다섯 송이를 뿌렸더니 모두가 공중에 머무르면서 꽃받침
[花臺]으로 변화하였으며, 뒤에 두 송이를 흩뿌리자 역시 공중에 머무르면서 부처님의 양곁
을 둘러쌌다.
그 때 국왕과 권속 들이며 일체 신민과 하늘.용.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
며 사람인 듯 아닌 듯한 것들이 이 기이한 것을 보고 전에 없던 일이라 찬탄하였다.
이에 보광 여래는 걸림이 없는 지혜로써 선혜를 칭찬하셨다.
‘장하고 장하도다. 선남자야, 너는 이 행 때문에 한량없는 아승기겁을 지나면 부처가 되
리니, 명호는 석가모니 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
라 하리라.’
선혜에게 수기(授記)하실 적에 한량없는 하늘.용.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
가.사람인 듯 아닌 듯한 것들이 뭇 아름다운 꽃을 흩뿌려서 공중에 가득 채우고도 서원을
세우기를, ‘선혜께서 장래 부처님의 도를 이루실 때에 저희들 모두 그의 권속이 되게 하소
서’라고 하였다.
이 때에 보광 여래는 곧 수기하시기를, ‘너희들은 모두 장차 그 나라에 나게 되리라’고
하셨다.
그 때 여래는 수기를 하신 뒤에 아직도 선혜가 신선의 상투를 하고 사슴 갖옷을 입고 있
음을 보시고, 여래는 이 옷과 거동을 버리게 하시려고 곧 땅을 변화시켜 진창을 만드시니,
선혜는 부처님께서 여기를 가셔야 하는데 땅이 곤죽이었는지라 마음으로 생각하였다.
‘어떻게 천 개의 바퀴살이 계신 발로써 여기를 밟고 지나가게 하겠는가.’
그리고는 곧 가죽 옷을 벗어서 땅에 깔았으나 진흙이 묻지 않도록 하는 데 부족하였으므
로 이에 또 머리칼을 풀어서 역시 덮었다.
그러자 여래는 곧 밟으시고 건너시면서 그대로 수기를 하셨다.
‘너는 뒤에 부처가 되어서 5탁악세(濁惡世)에서 모든 하늘과 사람들을 제도시키는 데에
어렵게 여기지 않음이 반드시 나와 같으리라.’
이 때 선혜는 이 수기를 듣고 기뻐 날뛰며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즉시 온갖 법이 (공)함을
깨닫고 생사 없는 법의 지혜[無生忍]를 얻고서는 몸이 허공에 오르며 땅에서 7다라수(多羅
樹)를 떨어져서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이제야 세간의 길잡이를 뵈었더니
저에게 지혜 눈이 열리게 하셨고
저를 위해 깨끗한 법 말씀하시니
일체의 집착을 떠났습니다.
이제야 천상 인간의 어른을 만났더니
저에게 남[生]이 없음을 얻게 하셨습니다.
원컨대 장래에 과위(果位) 얻어서
역시 약족존(兩足尊)과 같게 하소서.
이 때 선혜는 이 게송을 말하여 마치고 공중으로부터 내려와 부처님의 앞에 닿으면서 온
몸을 땅에 대고 부처님께 아뢰었니라.
‘오직 원하옵나니, 세존이시여, 저를 가엾이 여기셔서 저의 출가를 허락사시옵소서.’
보광 여래는 대답하였다.
‘장하도다. 잘 왔구나, 비구야.’
그러자 수염과 머리칼이 저절로 떨어지고 가사가 몸에 입혀지며 바로 사문이 되었다.
그 때 두 명의 가난한 노인이 저마다 친속 1백 인과 함께 부처님의 상호와 거룩한 덕이
엄숙하고 빛남을 보고서 스스로 가난하여 공양할 수 없음을 슬퍼하였다. 이 때 여래는 그
마음들의 지극함을 가엾이 여기시어 곧 앞의 땅을 변화로 여러 쓰레기가 있게 하여 두 가난
한 사람에게 땅이 깨끗하지 못함을 보고 기뻐하는 마음을 내어 곧 뿌리고 쓸게 하시고는 보
광 여래께서 수기하시기를 ‘너희들은 한량없는 아승기겁을 지나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세상
에 나오시면, 그 때에 첫째가는 성문 제자가 되리라.’
그 때 보광 여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수기하신 뒤에 8만 4천의 비구들과 등조왕이며 아
울러 바라문과 신민(臣民)들에게 앞뒤에서 둘러싸여 제파바지성으로 들어오셨다.
때에 등조왕은 그의 권속들과 함께 네 가지로써 보광 여래와 8만 4천 비구들에게 공양하
기를 4만 년 동안 그의 권속과 부인의 권속들, 각 8만 4천 인과 함께 같이 부처님의 법에
출가하여 도를 닦아서 다라니(陀羅尼)와 모든 법의 삼매(三昧)를 얻었다.
선혜 비구도 역시 보광 여래를 따라 가서 왕의 공양을 받기를 4만 년 동안을 하고 모든 법
중에서 깊은 삼매를 얻고 중생들을 교화하였음이 헤아릴 수 없었다.
그 때 선혜 비구는 보광 여래에게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옛날에 깊은 산중에 있으면서 다섯 가지의 기특한 꿈을 꾸었습니다.
첫째의 꿈은 큰 바다에 누워 있는 것이오며, 둘째의 꿈은 수미산을 베고 있는 것이오며, 셋
째의 꿈은 바다 가운데의 온갖 중생들이 저의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오며, 넷째의 꿈은
손으로 해를 붙잡는 것이오며, 다섯째의 꿈은 손으로 달을 붙잡은 것이었습니다. 오직 세존
이시여, 저에게 이 꿈의 형상을 풀이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 때에 보광 여래는 대답하셨다.
‘장하구나, 네가 만약 이 꿈의 이치를 알고자 하면 너에게 말을 하겠노라.’
꿈에 큰 바다에 누워 있는 것은 너의 몸이 즉시 나고 죽는 큰 바다의 가운데에 있다 함이
요, 꿈에 수미산을 베고 있는 것은 나고 죽는 데서 뛰어나와 열반을 얻는 형상이요, 꿈에 큰
바다 가운데의 온갖 중생들이 몸 안으로 들어온 것은 장차 나고 죽는 큰 바다에서 모든 중
생들을 위하여 귀의할 곳이 됨이요, 꿈에 손으로 해를 붙잡은 것은 지혜의 광명이 널리 법
계를 비춤이요, 꿈에 손으로 달을 붙잡는 것은 방편과 지혜로써 나고 죽는 데에 들어서 맑
고 시원한 법으로써 중생들을 교화하여 뜨거운 번뇌를 여의게 하는 것이니라.
이 꿈의 인연이야말로 바로 너의 장래에 부처를 이루는 형상이니라.’
그러자 선혜는 듣고 나서 기뻐 날뛰며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부처님께 예배하고 물러갔다.
그 때 보광 여래는 다시 얼마를 지나시다가 열반에 드셨는데, 선혜 비구는 바른 법을 보
호하고 지니기를 2만 년 동안이나 하면서 3승(乘)의 법으로써 중생을 교화하였나니, 이익을
받은 이가 헤아릴 수 없었다.
그 때 선혜 비구는 거기에서 목숨을 마치자, 곧 올라가 나서 4천왕이 되어 3승의 법으로
써 여러 하늘들을 교화하였으며, 그 하늘의 수명이 다하자 내려와 인간에 태어나서 전륜성
왕이 되어 사천하를 다스리고 7보가 완전히 갖추었었나니, 첫째 금륜보(金輪寶)요, 둘째 백
상보(白象寶)요, 셋째 감마보(紺馬寶)요, 넷째 신주보(神珠寶)요, 다섯째 옥녀보(玉女寶)요,
여섯째, 주장신보(主臧臣寶)요, 일곱째 주병신보(主兵臣寶)가 그것이며, 천의 아들이 갖추 있
어서 모두 용맹하고 씩씩하며 능히 적을 항복 받고 바른 법으로써 다스리며 모든 근심 걱정
이 없고 언제나 열 가지 선으로써 인민들을 교화하였다.
여기에서 목숨이 끝나자 도리천에 나가 거기의 천주가 되었다가 목숨이 끝나자 내려와 태
어나서 전륜성왕이 되었으며, 그 수명이 끝나자 내지 제7범천에 났나니, 올라가서는 천왕이
되고 내려와서는 성왕이 되기를 각각 서른여섯 번을 하였는데, 그 사이에 혹은 신선이 되기
도 하고, 혹은 외도 6사(師)가 되기도 하고 혹은 바라문이 되기도 하고, 혹은 작은 왕이 되
기도 하면서 이렇게 변화하여 나타난 것이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그 때 선혜 보살은 공과 행이 가득차서 자리는 10지(地)에 올랐고 일생보처(一生補處)에
있으면서 일체종지에 가까웠었는데, 도솔천에 나서 이름이 성선백(聖善白)이었다.
여러 천주들을 위하여 일생보처의 행을 말하였고, 또한 시방 국토에 갖가지 몸을 나타내
면서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따라 알맞게 법을 말하다가 때와 운수가 다가와서 내려가 부처
가 되어야 하겠는지라, 곧 다섯 가지의 일을 자세히 살폈다.
첫째는 모든 중생들의 성숙 되었는가 아직 성숙되지 못하였는가를 자세히 살피는 것이요,
둘째는 때가 이르렀는가 아직 이르지 않았는가를 자세히 살피는 것이요, 셋째는 모든 국토
에서 어느 나라가 중앙에 있는가를 자세히 살피는 것이요, 넷째는 모든 성바지에서 어느 성
바지가 귀하고 왕성한가를 자세히 살피는 것이며, 다섯째는 과거의 인연에 누가 가장 참되
고 바르며 부모가 되기에 알맞은가를 자세히 살피는 것이었다.
다섯 가지의 일에 자세히 살피기를 마치고 곧 생각하기를 ‘이제 모든 중생들은 다 이는
내가 처음에 마음을 낸 이래로 성숙된 이들이라 깨끗하고 미묘한 법을 받아낼 수 있겠으며,
3천 대천 세계에서 이 염부제(閻浮提)의 가비라패도국(迦毘羅?兜國)만이 가장 중앙에 있으
며, 여러 성바지에서 석가가 제일이요, 감자(甘蔗)의 자손이 전륜성왕의 후손이며, 백정왕(白
淨王)의 과거 인연을 살피건대 부부가 참되고 발라서 부모가 될 만하겠으며, 또 마야[摩耶]
부인의 수명이 길고 짦음을 살펴도 태자를 배서 열 달을 다 채우고 태자가 탄생하면 태어난
지 7일 만에 그 어머니의 목숨이 끝나겠구나’라고 하였다.
이렇게 자세히 살피고 또 생각하기를 ‘내가 이제 만약 문득 내려가서 태어나면 여러 천
인들을 널리 이롭게 할 수는 없겠구나’ 하고, 이에 하늘 궁전에서 다섯 가지의 형상을 나
타내어 여려 천자들에게 모두가 다 보살은 때와 운수가 응당 내려가서 부처가 되어야 한다
는 것을 깨달아 알게 하였나니, 첫째는 보살의 눈이 깜짝거림을 나타내는 것이요, 둘째는 머
리 위의 꽃이 이울러지는 것이요, 셋째는 옷에 먼지와 때가 끼는 것이요, 넷째는 겨드랑이
밑에 땀이 나는 것이며, 다섯째는 본래의 자리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 때 여러 하늘들은 갑자기 보살에게 이런 이상이 있음을 보고 마음으로 크게 놀라고 두
려워하였는지라, 몸의 모든 털구멍에서 피가 흐리는 것이 마치 비오듯 하였으므로 서로가
말하였다.
‘보살은 오래지 않아서 우리들을 버리겠구나.’
그 때 보살은 또 다섯 가지의 상서로움을 나타내었나니, 첫째는 큰 광명을 내쏟아서 3천
대천 세계를 널리 비추었음이요, 둘째는 대지를 열여덟 가지 모양으로 움직였으므로 수미산
과 바닷물과 모든 하늘 궁정들이 모두 다 몹시 흔들렸음이요, 셋째는 악마의 궁전 집들이
숨고 가리워져서 나타나지 아니하였음이요, 넷째는 해와 달이며 별들의 광명이 없어졌음이
요, 다섯째는 하늘이며 용과 8부(部)들의 몸이 모두가 진동하여 어찌 하지를 못한 것들이었
다.
이 때 도솔천의 여러 하늘들은 보살의 몸에 이미 다섯 가지 형상이 있음을 보았고 또 다
시 바깥의 다섯 가지 있기 드문 일들을 보고서 모두가 다 모여서는 보살에게 도착하여 땅에
엎드려 발에 예배하고 아뢰었다.
‘존자여, 우리들을 오늘 이 여러 형상들을 보고 온몸이 몹시 떨려서 자연히 편안하지를
못합니다. 오직 원컨대 우리들에게 이 인연을 풀이하소서.’
그러자 보살은 곧 여러 하늘들에게 대답하였다.
‘선남자들이여, 알아야 하시리라. 모든 행은 모두 다 무상한지라 나도 이제 오래지 않아
서 이 하늘 궁전을 버리고 염부제에 태어날 것입니다.’
이 때 하늘들은 이 말을 듣고 슬피 울며 눈물을 흘리면서 마음으로 크게 근심하고 괴로워
하였으므로 온몸에 피가 나타난 것이 마치 바라사화(波羅 奢花)와 같았으며, 어떤 이는 뒹굴
며 땅에서 기절하는 이도 있고, 어떤 이는 무상의 고통을 깊이 한탄하는 이도 있었다.
그 때에 한 천자가 있다가 게송으로 말하였다.
보살이야말로 여기에 계시면서
저희들의 법의 눈[法眼]을 열어 주시었는데
이제는 저희들을 멀리하여 버리시니
소경이 길잡이를 여윈 것과 같습니다.
또 다시 물을 건너려 할 제
갑자기 교량과 배를 잃음과 같으며
또한 젖먹이의 어린아이가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은 것과 같습니다.
저희들도 역시 그와 같아서
귀의할 바 처소를 잃게 됐나니
바야흐로 나고 죽는 흐름에 떠나니며
마침내 뛰어 나올 인연이 없으리다.
저희들은 오랜 세월 동안을
어리석음의 화살을 맞게 될 텐데
이미 크신 의왕(醫王)을 잃어버리면
누가 저희들을 구하오니까.
무명의 평상에 머물러 누워서
길이 애욕의 바다에 빠질 텐데
영원히 존자의 가르침이 끊어지면
뛰어 나올 기약을 만나지 못하리다.
그 때 보살은 천자들이 슬피 울면서 괴로워함을 보고 또 그리움을 말하는 게송을 듣고는,
곧 인자한 음성으로써 말하였다.
‘선남자들이여, 무릇 사람이 남을 받고서 죽지 않는 이 없으며, 은혜와 사랑이 합하고 모
였다가 반드시 이별이 있습니다. 위로 아가니타천(阿迦?咤天)에 이르고 아래로 아비지옥에
이르기까지 그 가운데의 온갖 중생들은 무상이란 큰 불에 데이지 않는 이가 없나니, 그러므
로 그대들은 나 혼자에게 그리움을 내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이제 그대들과 나 혼자에게
그리움을 내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이제 그대들과 똑같이 모두가 다 나고 죽음의 훨훨 타
는 불을 여의지 못했을 뿐더러 이에 온갖 가난과 가면과 귀함이며 천함까지라도 모두 면하
거나 벗어나지를 못하였습니다.’
이에 보살은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
변천하는 모든 법 떳떳치 않아
모두가 났다가는 없어지는 법
났다 없다 하는 법 없어지면
그 때가 고요하여 즐거우리라.
그 때 보살은 천자들에게 말하였다.
‘그 게송은 바로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서 같이 말씀한 것으로서, 모든 변천하는 것의 성
품과 모양인 법은 다 이와 같습니다. 그대들은 이제 근심하거나 과로워하지 마십시오. 나는
나고 죽기를 한량없는 겁 동안 하며 오다가 이제는 오직 이 한 번의 생(生)만이 있으므로
오래지 않아서 모든 변천하는 것을 떠날 수 있게 됩니다.
그대들은 아셔야 하리라. 지금이야 말로 바로 중생들을 제도 해탈해야 할 때이므로, 나는
내려가서 염부제의 가비라패도국(迦毘羅?兜國) 감자(甘蔗) 후손 석가 성바지인 백정왕(白淨
王)의 집에 태어나야 하겠습니다. 나는 거기에 태어났다가 부모를 멀리 떠나고 처자와 전륜
의 왕위를 버리고서 출가하여 도를 배우며 부지런히 고행(苦行)을 닦아서 악마를 항복 받고
일체 종지를 이룩하여 법 바퀴를 굴리리니 일체세간의 하늘촵사람촵악마와 범천으로서는 능
히 굴리지 못할 바입니다.
또한 과거 부처님네의 행하신 법식에 의지하여 널리 온갖 하늘과 사람들을 이롭히고 큰
법의 당기를 세워 악마의 당기를 거꾸러뜨리며 번뇌의 바다를 말리고 여덟 가지 바른 길을
깨끗이 하며 모든 법의 도장으로써 중생들의 마음에 찍을 것이요, 큰 법의 모임을 베풀어서
여러 천인들을 청하리니 그대들은 그때에 역시 모두가 같이 이 모임에 있으면서 법의 음식
을 받아먹으리다. 이런 인연 때문에 근심하거나 괴로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때에 보살은 게송으로 말하였다.
나는 여기에서 오래지 않아
염부제에 내려가서는
가비라국의
백정왕의 궁전에 태어나야 하리라.
아버지와 어머니의 친족을 작별하고
전륜왕의 자리를 버리고서는
집을 떠나 도를 행하고 배워서
일체종지를 이룩하리라.
바른 법의 당기를 세워
번뇌의 바다를 능히 말리고
나쁜 길의 문을 닫고 막아서
여덟 가지 바른 길을 깨끗이 열리라.
널리 모든 천상촵인간을 이롭게 함이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니
이런 인연 때문에
근심하거나 괴로워하지 말아야 하리.
그 때 보살은 온몸의 털구멍에서 온통 광명을 내쏘는데, 여러 천자들은 보살의 말을 들었
고 또 다시 몸에서 큰 광명 내쏨을 보고서 기뻐 날뛰며 모든 근심과 고통을 여의고 각자 마
음으로 생각하기를 ‘보살은 오래지 않아서 바른 깨달음을 이루시겠구나’고 하였다.
그 때 보살은 내려가서 태 안에 들 때가 다가왔음을 자세히 살피고는 곧 여섯 어금니인
흰 코끼리를 타고 도솔천궁을 출발하자, 한량없는 하늘들은 여러 풍악을 잡히고 뭇 이름 있
는 향을 지피며 하늘의 아름다운 꽃을 흩으면서 보살을 따르며 공중에 가득히 차서 큰 광명
을 내었으므로 시방에 널리 비추었는데 4월 8일 샛별이 돋을 때에 내려가 어머니의 태 안에
들었다.
때에 마야 부인은 잠에서 깨어날 즈음에 보살이 여섯 어금니의 흰 코끼리를 타고 허공을
날아 와서 오른 겨드랑이로 들어옴을 보았는데, 그림자가 밖으로 나타남이 마치 유리(琉璃)
에 있는 것과 같고 부인의 몸이 편안하여 상쾌함이 마치 단 이슬을 먹은 것과 같았는지라,
자신을 돌아보매 해와 달이 비치는 것과 같았으므로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며 날뛰기를 한량
없이 하다가 이 형상을 보고 난 뒤에 와락 깨어나 희유한 마음을 내면서 즉시 백정왕의 처
소에 나아가서 왕에게 아뢰었다.
‘제가 아까 잠에서 깨어날 즈음에 그 상태는 마치 꿈과 같사온데, 여러 상서로운 형상을
보고 매우 기이하게 여기옵니다.’
왕은 대답하였다.
‘나도 아까 역시 큰 광명이 있음을 보았고, 또 당신의 얼굴 모습이 이상해짐을 깨달았습
니다. 당신은 나에게 보았던 상서로운 모양을 말씀하시오.’
라고 하자, 부인은 곧 자세히 위의 일들을 게송으로 말하였다.
흰 코끼리를 타고 있음을 보았는데
사뜻하고 맑기가 해와 달과 같았으며
제석과 범왕의 여러 하늘들이
모두 다 보배 당기를 가졌습니다.
향을 지피고 하늘 꽃을 흩으며
아울러 여러 가지 풍악을 잡히면서
허공 가운데 가득히 차서
에워싸고서 내려왔습니다.
와서 나의 오른편의 겨드랑이에 들었는데
마치 유리에 있는 것과 같나이다.
지금 대왕께서 나타냈으니
이것이 어떠한 상서로운 상입니까.
그 때 백정왕은 마야 부인에게서의 여러 가지 상서로운 형상을 보고 나서 기뻐 날뛰며 어
쩔 줄 모르다가 곧 보내어 관상 잘하는 바라문을 청하여 아름다운 향과 꽃이며 갖가지 음식
으로써 공양하고 공양하기를 마치자 부인의 오른 겨드랑을 보이고 아울러 상서로운 형상을
말하면서 바라문에게 아뢰었다.
‘원컨대 점을 쳐 주십시오. 어떠한 특이함이 있습니까?’
하자, 때에 바라문은 바로 점을 치고서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부인께서 배신 태자야말로 여러 가지 좋고 미묘한 상(相)인지라 자세히 말
씀할 수조차 없지만 이제 왕에게 대략만 말씀하겠습니다.
대왕은 아셔야 하리다. 지금 이 부인의 태 안의 아들은 반드시 석가 성바지를 빛나게 할
것이요, 태 안에 내려올 때에 큰 광명을 내쏘고 여러 하늘과 제석촵범왕이 붙들어 모시면서
에워쌌으니 이 형상은 반드시 이는 바른 깨달음의 조짐입니다. 만약 출가하지 않으면 전륜
성왕이 되어 사천하의 왕이 되며 7보가 저절로 이르르고 천의 아들이 완전히 갖추겠습니
다.’
라고 하며, 때에 왕은 이 바라문의 말을 듣고 같이 스스로 요행히 얻은 경사로운 일로 여
기면서 뛰놀기를 한량없이 하다가 곧 금.은의 여러 보배와 코끼리, 말과 수레며 마을까지 이
바라문에게 주었다.
때에 마야 부인은 그 채녀들이며 아울러 값진 보배로써 또한 받들어 베풀었고 보살을 배
게 된 이래로부터 마야 부인은 날마다 여섯 가지 바라밀다를 닦았으며, 하늘에서 음식을 주
어 저절로 이르렀으므로 다시는 인간의 맛을 좋아하지 않았다.
3천 대천 세계는 언제나 모두 크게 밝았으므로 그 세계 중간에 그윽하고 어두운 곳으로
해와 달의 거룩한 빛이 비출 수 없는 곳도 역시 환하여졌는지라 그 안의 중생들은 저마다
서로 보게 되어 같이 말하였다.
‘이 가운데서 어떻게 문득 중생들이 살았을까?’
보살이 태안에 내려올 때에 3천 대천 세계는 열여덟 가지로 서로 진동하였고 맑고 시원한
향기 바람이 사방에서 일어나면서 병든 이들을 모두 다 낫게 하였으며, 탐내고 성내고 어리
석은 이들도 모두 쉬었다.
그 때 도술천궁에 어떤 천자들은 생각하였다. ‘보살이 이미 백정왕이 궁전에서 태어났으
니 나도 또 인간에 내려가 태어났다가 보살이 부처님이 되면 나는 먼저 그의 권속이 되어서
공양을 하며 법을 들어야 하겠구나.’
하고 곧 내려가서 왕사성 안의 명월(明月) 성바지와 전다라(?陀羅)며 많은 왕가(王家)들에
게 태어났다.
또 어떤 천자는 사위국의 왕가에 태어나기도 하고, 또 어떤 천자는 투라궐차국(倫羅厥叉
國)의 왕가에 태어나기도 하고, 또 어떤 천자는 독자국(犢子國)의 왕가에 태어나기도 하고,
또 어떤 천자는 덕차시라국(德叉尸羅國)의 왕가에 태어나기도 하고, 또 어떤 천자는 구라바
국(拘羅婆國)의 왕가에 태어나기도 하고, 또 어떤 천자는 바라문의 집에 태어나기도 하고,
또 어떤 천자들은 장자촵거사촵비사(毘舍)촵수다라(首陀羅) 등의 집에 태어나기도 하였으며,
다시 5백의 천자들이 석가 성바지에 태어났었나니, 이렇게 된 여러 천자들은 그 숫자가 무
릇 99억이어서 인간에 내려와 태어났다.
또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에서부터 사천왕의 처소에 이르기까지 내려와 태어난 이도 헤
아릴 수조차 없었고, 또 형상 세계의 천왕도 그 권속돌과 함께 역시 다 내려와 태어나서 신
선들이 되었다.
보살은 태 안에 있으면서 가고, 서고, 앉고, 눕는 데에 방해되는 바가 없었으며, 또 어머니
에게 여러 괴로움과 근심이 있지 않게 하였고, 보살은 새벽에는 어머니의 태안에서 형상 세
계의 여러 하늘들을 위하여 가지가지 법을 말하고 한낮을 때에는 욕심 세계의 여러 하늘들
을 위하여 역시 모든 법을 말하고 저녁 때에는 또 다시 여러 귀신들을 위하여 법을 말하고
밤의 세 때에는 역시 이렇게 한량없는 중생들을 성숙시키고 이익 되게 하였다.
보살이 태 안에 있자 부인의 채녀들은 와서 예배하고 공양을 하였으며, 혹은 또 와서 이
런 서원을 세웠다.
‘장차 전륜성왕이 되게 하여지이다.’
보살은 듣고 마음에 기뻐하거나 좋아하지 않았다.
혹은 또 와서 이런 서원을 세웠다.
‘장차 일체종치를 이루게 되소서.’
그러면 보살(菩薩)은 듣고서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였다.
보살이 태 안에 있으면서 열 달이 차려 할 적에는 몸의 모든 뼈마디와 상호가 모두 완전
히 갖추어졌으며, 또한 그 어머니의 여러 감관이 고요하고 안정되게 하였으므로 동산이며
숲에서 계시기를 즐겼고 시끄러운 데를 기꺼워하지 않았다.
때에 백정왕은 생각하기를 ‘부인이 잉태하고서 날과 달이 찼는데도 해산하려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구나’라고 이런 생각을 할 때에, 마침 우연히 부인에게서 글월을 보내어 왕에
게 아뢰었다.
‘저는 지금 동산 숲에 나가서 유람하고 싶습니다.’
때에 왕은 이를 듣고 더욱 기쁨을 품고서 곧 밖에 칙명하여 람비니(藍毘尼) 동산을 깨끗
이 쓸고 뿌리게 하고 다시 여러 가지 아름다운 꽃과 열매를 심게 하며 흐르는 샘과 목욕하
는 못을 다 깨끗하게 하였으며, 난간과 섬돌은 모두 7보로써 장엄하고 비취(翡翠)촵원앙촵난
새촵봉황이며 갈매기 등의 기이한 종류의 뭇 새들이 그 가운데서 모여 울게 하며 비단 번기
촵일산을 달고 꽃을 흩으며 향을 지피고 뭇 풍악을 잡히게 하였으므로 마치 제석의 환희원
(歡喜園)과 같았다.
또 중간이 지나갈 곳에 칙명하여 모두 엄숙하고 깨끗이 하여 갖가지로 장엄하게 하였으
며, 또 칙명하여 10만의 7보 수레와 연(輦)을 차리어서 낱낱의 수레와 연마다 좋게 새겨서
자못 뛰어나게 하였으며 또 다시 밖에 칙명하여 네 가지 군사인 상병(象兵)촵마병(馬兵)촵
거병(車兵)촵보병(步兵)을 엄숙히 갖추게 하였으며, 또 다시 후궁의 채녀로서 얼굴 모습이
단정하고 늙지도 않고 젊지도 아니하여 기운과 성품이 어울린 총명하고 슬기로운 이들을 선
택하였나니 그 수야 말로 무릇 8만 4천이었는데 마야 부인을 모시게 하였다.
또 다시 8만 4천이나 되는 단정한 계집아이들을 골라다가 아름다운 영락과 몸을 장식하는
꾸미개를 입히고 향과 꽃을 가지고 먼저 가서 그 람비니 동산에 머물도록 하였고 왕은 또
여러 신하와 백관들에게 칙명하여 부인이 떠나가면 모두가 다 모시게 하였다.
이에 부인은 곧 보내 수레에 올라서 여러 관속과 채녀들에게 앞뒤에서 인도되고 둘러싸여
람비니 동산에 나아갔다.
그 때 또 하늘과 용이며 8부들도 모두 따르며 허공에 가득 찼었다.
그 때 부인은 동산에 들어가자 모든 감관이 고요하고 열 달이 다 찼었는지라. 2월 8일의
해가 처음 돋을 때에 부인은 그 동산 안에 있던 무우(無憂)라는 하나의 큰 나무가 꽃의 빛
깔이 향기롭고 사뜻하며 가지와 잎이 널리 퍼지고 아주 무성한 것을 보고는 곧 오른 손을
들어서 끌어당겨 따려고 하는데, 보살은 점점 오른 겨드랑이로부터 나왔다.
때에 나무 아래에는 또한 7보로 된 일곱 송이의 연꽃이 나서 크기가 마치 수레바퀴와 같
았는데 보살은 곧 연꽃위에 떨어지면서 붙들어 모신 이도 없이 스스로가 일곱 걸음을 걸어
가서 그의 오른 손을 올리면서 사자처럼 외치되,
‘나는 일체의 천상과 인간 중에서 가장 높고 가장 훌륭하도다. 한량없는 나고 죽음을 이
제야 다하였다니, 이생(生)에 일체의 사람과 하늘 들을 이익 되게 하리라.’
이런 말을 하여 마치니, 때에 사천왕은 곧 하늘의 비단으로써 태자의 몸을 감싸서 보배
책상 위에 놓자 석제 환인이 손에 보배 일산을 가지고 대범천왕이 또 흰 불자를 가지고서
좌우에 모시고 섰으며, 난타(難陀) 용왕과 우바난타(優波難陀) 용왕이 공중에서 깨끗한 물을
뱉으면서 한 줄기는 따스하게 하고 한 줄기는 시원하게 하여 태자의 몸에 부었고 몸은 황금
의 빛깔에 서른두 가지의 모습이 있었고 큰 광명을 내쏘아 널리 3천 대천 세계를 비추었으
며, 하늘과 용이며 8부 역시 공중에서 하늘의 풍악을 잡히며 노래하고 읊고 찬양하면서 뭇
이름 있는 향을 지피고 여러 가지 아름다운 꽃을 흩뿌렸고, 또 하늘의 옷과 영락을 비 내리
어 어지럽게 흩어져 떨어짐이 헤아릴 수 없었다.
그 때 마야 부인이 태자를 탄생하기를 마치니, 몸이 편안하여 상쾌하고 고통과 근심이 없
으므로 기뻐 날뛰면서 나무 아래 머물려 있는데, 앞뒤에서 저절로 갑자기 네 개의 우물이
솟아나서 그 물이 향기롭고 깨끗하여 여덟 가지의 공덕을 갖추었다.
그 때 마야 부인은 그 권속들과 함께 하고 싶은 대로 씻는데 다시 여러 야차왕들이 모두
다 에워싸고 태자와 마야 부인을 지키고 있었다.
그때에 염부제의 인민들과 아가니타천(阿迦?咤天)에 이르기까지 비록 기쁨과 즐거움을 떠
났었다 하더라도 모두가 역시 이에 기뻐하면서 찬탄하였다.
‘일체종지께서 이제 세상에 나오셨으니 한량없는 중생들은 모두 이익을 얻을 것입니
다.’ 오직 원하옵나니, 빨리 바른 깨달음의 도를 이루셔서 법의 바퀴를 굴리며 널리 중생을
제도하소서’ 하였지만 오직 악마왕만은 혼자 근심과 괴로움을 품고서 본래 자리가 편하지
않았다.
그러할 때에 감응한 바의 상서로움이 서른네 가지였나니, 첫째 시방의 세계가 모두 다 밝
아졌고, 둘째 3천 대천 세계가 열여덟 가지로 서로 움직여서 큰 언덕이 평탄하여졌고, 셋째
온갖 바짝 말랐던 나무가 다시 꽃이 피며 나라 지경에서는 저절로 기이한 나무가 났고, 넷
째 동산에서는 기이하고 단 과일이 생겼고, 다섯째 육지에서 보배 연꽃이 났는데 크기가 마
치 수레바퀴와 같았고, 여섯째 땅 속에 묻힌 광이 모두 저절로 튀어나왔고, 일곱째 모든 광
에서 값진 보배가 큰 광명을 내쏘았고, 여덟째 여러 하늘에서 아름다운 옷이 저절로 내려왔
고, 아홉째 뭇 시내의 만 갈래 흐름이 고요하며 맑디맑고, 열째 바람이 그치고 구름이 없어
지며 공중이 밝고 깨끗하여졌다.
열한째 향기로운 바람이 사방으로 부터 불어오면서 윤택한 가랑비가 나르는 먼지를 가라
앉혔으며, 열둘째 나라 안에 병든 이들이 모두 다 나았으며, 열셋째 나라 안의 궁전이거나
집이 밝게 빛나지 않음이 없어서 등불 촛불의 광명은 다시 쓸 필요가 없어졌으며, 열넷째
해와 달이며 별들이 정지하고 가지를 아니했으며, 열다섯째 비사카성(毘舍?星)이 내려와 인
간에 나타나서 태자의 탄생을 기다렸으며, 열여섯째 범천왕들이 흰 보배 일산을 가지고 궁
전 위를 줄 지어 덮었으며, 열일곱째 八방에서 여러 신선의 스승들이 보배를 받들고 와서
바쳤으며, 열여덟째 하늘의 온갖 맛의 음식이 저절로 앞에 있어졌으며, 열아홉째 헤아릴 수
없는 보배 병에 여러 단이슬이 담겨졌으며, 스무째 여러 하늘의 아름다운 수레가 보배를 싣
고 이르렀다.
스물한째 헤아릴 수 없는 흰 코끼리 새끼들이 머리에 연꽃을 이고서 궁전앞에 벌려 섰으
며, 스물두째 하늘에서 감마보(紺馬寶)가 저절로 왔으며, 스물셋째 5백의 크고 흰 사자들이
설산으로부터 나와서 그의 나쁜 뜻을 쉬고서 마음에 기쁨을 품고 성문에 벌려 섰으며, 스물
넷째 여러 하늘의 채녀들이 공중에서 미묘한 음악을 잡혔으며, 스물다섯째 여러 하늘의 옥
녀들이 공작 불자를 붙잡고 궁전의 담 위에 나타났으며, 스물여섯째 여러 하늘의 옥녀들이
저마다 가진 금병에 향의 즙을 가득히 담아서는 공중에 벌려 섰으며, 스물일곱째 여러 하늘
이 노래하고 읊으면서 태자의 덕을 찬양하였으며, 스물여덟째 지옥이 쉬어서 모진 고통이
행해지지 않았으며, 스물아홉째 독벌레가 숨고 나쁜 새가 착한 마음을 지녔으며, 서른째 모
든 악한 율법이 한꺼번에 자비롭게 되었다.
서른한째 나라 안에 아니 밴 부인들이 낳으면 사내아이였고, 그 지녔던 백 가지의 병이
저절로 나았으며, 서른둘째 일체의 나무귀신이 사람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모두 와서 예배하
고 모셨으며, 서른셋째 다른 나라의 왕들이 각지 이름 있는 보배를 가지고 같이 와서 신하
로 복종하였으며 서른넷째 온갖 사람과 하늘들이 때에 알맞지 아니한 말이 없었다.
그 때 여러 채녀들은 이 상서로운 조짐을 보고 아주 크게 기뻐하면서 서로들 말하였다.
‘태자께서 이제 탄생하시니, 이러한 아름답고 상서로운 일들이 있습니다. 오직 원컨대 오
래 사시며 병의 괴로움이 없으시어 우리들에게 큰 근심과 괴로움이 생기지 않게 하소서.’
이 말을 마치고 하늘의 가는 모포로써 태자를 감싸 안고 부인에게 이르자, 때에 사천왕이
공중에서 있다가 공경하고 따랐으며, 석제환인은 일산을 가지고 와서 덮었고 28대(大) 귀신
왕이 동산의 네 모퉁이에 있다가 지키며 받들고 호위하였다.
그 때 한 하인으로서 총명하고 슬기로운 이가 있었는데 람비니동산으로부터 궁중으로 돌
아와 백정왕에게 이르러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의 거룩하신 덕은 점점 더욱 더 나아가리이다. 마야 부인께서 이미 태자를 탄생하
였사온데, 얼굴 모습이 단정하고 서른두 가지 모습과 여든 가지 잘생김이 있었으며, 연꽃 위
에 떨어지면서 스스로 일곱 걸음을 걸어가서 그의 오른 손을 올리며 사자처럼 외치기를,
(나는 일체 천상과 인간 중에서 가장 높고 가장 훌륭하도다. 한량없는 나고 죽음을 이제야
다하였으니, 이생(生)에 온갖 사람과 하늘들을 이롭게 하리라.)고 하신 이러한 등의 여러 기
특한 일이 있었사오나 자세히 다 말할 수조차 없습니다.’
라고 하자, 때에 백정왕은 그 하인이 하는 이런 말을 듣고 기뻐 날뛰며 어쩔 줄 모르다가
즉시 몸의 영락을 벗어서 그에게 하사하였다.
그 때 백정왕은 곧 네 가지 병사를 차리고 권속들에게 둘러싸여 1억의 석가 성바지와 함
께 앞뒤에서 인도되고 따르면서 람비니 동산에 들어가다가 그 동산 가운데에 하늘과 용이며
8부들이 모두 꽉 찼음을 보면서 부인에게 이르러 태자의 몸을 보았더니, 상호가 자못 특이
한지라 기뻐서 뛰놀기를 마치 강과 바다에 큰 물결이 이는 것 같이 하였고, 그의 짧은 목숨
을 염려하여 품에 안고 두려워함이 마치 큰 수미산이 동요하기 어렵되 대지가 동요될 때에
는 이 산도 비로소 동요되는 것과 같이 하였나니, 그 백정왕이 평소의 성품이 편안하고 고
요하여 언제나 기뻐하거나 근심함이 없었건만 이제 태자를 보고서는 한편으로 기뻐하고 한
편으로 두려워하는 것이 역시 그와 같았으며, 마야 부인의 성품 됨이 고르고 온화하였건만
이미 태자를 탄생하고서 여러 기이한 상서를 보고는 갑절이나 더 부드러워졌다.
그 때 백정왕은 손을 깍지 끼어 합장하고 여러 천신에게 예배하고서 나아가 태자를 안아
서 7보의 코끼리 수레 위에 놓아두고 여러 신하와 후궁 채녀며 허공의 천신들과 함께 여러
풍악을 잡히면서 따르며 성으로 들어갔다.
때에 백정왕과 여러 석가의 아들들은 아직은 3보(寶)를 몰랐는지라, 곧 태자를 데리고 천
사(天寺)에 나아갔는데 태자가 들어가자 범천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며 태자의 발에 예
배하면서 왕에게 말하였다.
‘대왕은 아셔야 합니다. 이제 태자야말로 하늘과 인간 중에서 어른이십니다. 허공의 천신
들도 모두 예배하고 공경하였거늘 대왕이 어찌 그러함을 보지 않으셨겠습니까? 어째서 이제
여기에 와서 우리들에게 예배합니까?’라고 하자. 때에 백정왕과 여러 석가 아들들과 여러
신하며 안팎이 이를 듣고 보고서 전에 없었던 일이라 찬탄하면서 즉시 태자를 데리고 천사
에서 나와 후궁으로 돌아갔다.
그러할 때에 여러 석가 성바지에서는 역시 동일한 날에 5백의 사내아이가 태어났었고, 때
에 왕의 마구 안에서는 코끼리가 흰 새끼를 낳고 말은 흰 망아지를 낳으며 소와 양은 역시
다섯 빛깔 지닌 양 새끼와 송아지를 낳았었나니, 이러한 종류들의 숫자는 각각 5백씩이었으
며, 왕가에서는 하인들이 역시 5백의 종을 낳았다.
그 때 궁중에는 묻혀 있던 5백의 광이 저절로 튀어 나와서 하나하나의 묻혀 있던 광에서
는 7보의 광으로 에워싸 있었으며, 또 큰 나라의 장사하는 사람들은 바다에서 보배를 캐어
가비라국에 돌아와서는 그 여러 장사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기이한 보배를 가지고 와서 왕에
게 바쳤다.
때에 백정왕은 여러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대들이 바다에 들어가 여러 값진 보배를 캘 적에 모두가 다 길하고 이로왔으며 괴로
움을 없습니까? 그리고 여러 벗들로서 뒤떨어져 남은 이는 없습니까?’
그 여러 장사하는 이들은 대답하였다.
‘대왕이시여, 지나온 길마다 아주 자연히 편안하고 고요하였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매우 크게 기뻐하면서 곧 바라문들을 청하도록 하였는데 바라문들이
다 모였으므로 여러 가지 공양을 베풀되, 혹은 코끼리와 말이며 7보와 밭촵집촵종 등을 주
기도 하여 공양하기를 마치고는 태자를 안고 나와서 바라문들에게 말하였다.’
‘장차 태자에게 어떠한 이름을 지어야 하겠습니까?’
하자, 여러 바라문들은 함께 논의하다가 왕에게 대답하였다.
‘태자께서 탄생할 적에 온갖 보배 광이 모두 다 튀어 나왔으니, 모든 상서로움이 길하지
아니함이 없습니다. 이런 이치 때문에 태자를 이름 지어 살바 실달타(薩婆悉達多)라 하여야
겠습니다.’
이 말을 할 때에 허공의 천신들은 곧 하늘의 북을 치면서 향을 지피고 꽃을 흩으며 부르
짖었다.
‘장하십니다.’
여러 하늘과 인민들은 즉시 일컬었다.
‘살바 실달타여.’
그 때 여덟의 왕도 이 날에 백정왕과 같이 태자를 낳았으므로 그 나라의 왕들은 저마다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나는 이제 아들을 낳아서 여러 기이함이 있는데, 이는 살바 실달타의 상서(祥瑞)로운 조
짐인 줄도 모르겠구나.’
모두가 바라문을 모아서 저마다 태자를 위하여 좋은 이름을 지었었는데, 왕사성 태자의
이름은 빈비사라(頻毘娑羅)요, 왕사성 태자의 이름은 바사닉(婆斯匿)이요, 투라구타국[倫羅
拘?國] 태자의 이름은 구랍바(拘?婆)요, 독자국(犢子國) 태자의 이름은 우타연(優陀延)이요,
발라국(跋羅國) 태자의 이름은 울다라연(鬱陀羅延)이요, 노라국(盧羅國) 태자의 이름은 질광
(疾光)이요, 덕차시라국(德叉尸羅國) 태자의 이름은 불가라사라(弗迦羅娑羅)요, 구라바국(拘
羅婆國) 태자의 이름은 구라바(拘羅婆)였다.
그 때 백정왕은 여러 신하들에게 널리 칙명하여 총명하고 들음이 많고 슬기로워서 관상을
잘 아는 이로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 이를 찾게 하였으므로 여러 신하들은 듣고서 사
방으로 두루 찾았으며, 때에 왕은 곧 뒷동산 가운데에 하나의 큰 전각을 일으켜서 창문이며
난간을 7보로써 장식하였다.
그 때 여러 신하들은 5백의 바라문으로서 총명하고 관장할 줄 알며 여러 기이한 상서도
보는 이들을 만나서 왕에게 오려고 하는데 마침 왕이 글월을 보내며 빨리 도착하게 하였으
므로, 여러 신하들은 왕에게 아뢰었다.
‘관상할 줄 아는 바라문이 이제 이미 도착하였습니다.’
왕은 듣고 기뻐하면서 곧 칙명하여 앞으로 청하여 전국에 들어와 앉게 하고 여러 공양을
베푸니, 그 바라문들은 왕에게 아뢰었다.
‘저희들은 듣건대, 대왕께서 태자를 탄생하였으며 여러 가지 상호와 기특한 상서가 있었
다 하온데, 원하노니 저희들이 다 볼 수 있게 하십시오.’
이 때 왕은 즉시 태자를 안고 나오도록 칙명하니, 바라문들이 이미 태자의 상호가 거룩하
고 엄숙함을 보고서 전에 없던 일이라 찬탄하였다.
왕은 곧 물었다.
‘이제 태자의 점을 치십시오. 그 관상이 어떠합니까?’
하자, 바라문들은 말하였다.
‘일체 중생들은 모두가 아들이 좋다하고 싶습니다. 대왕이시여, 이제 탄생하신 태자야말
로 이는 크게 진기하오니, 근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리고는 또 아뢰었다.
‘탄생하신 태자를 대왕께서는 비록 이는 왕의 아들이라 말할 것이오나, 이에 바로 세간
의 사람과 하늘들의 안목이십니다.’
그러자 왕은 또 물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바라문들은 말하였다.
‘우리가 태자를 자세히 살피매, 몸의 빛깔이 빛나서 마치 진금(眞金)과 같고 여러 상호를
지니어서 아주 밝고 맑으십니다. 만약 집을 떠나면 일체종지를 이룰 것이요, 만약 집에 있으
면 전륜성왕이 되어 사천하를 거느리리다. 이를테면, 강물에서는 바다가 제일이요, 뭇 산 가
운데서는 수미산이 가장 뛰어났으며 무릇 모든 빛에서 해보다 더 위가 없고 온갖 맑고 시원
스런 것에서는 오직 밝은 담만이 있는 것처럼 하늘과 사람들의 세간에서는 태자가 어른이
되오리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면서 여러 가지의 두려움을 떠났다.
그 바라문들을 또 왕에게 아뢰었다.
‘아사타(阿私陀)라는 한 범선(梵仙)이 계신데 다섯 가지 신통을 두루 갖추고 향산(香山)
에 계십니다. 그는 능히 왕을 위하여 여러 가지 의심과 헷갈림을 끊어 드릴 것입니다.’
여러 바라문들은 이 말을 하여 마치고 작별하며 떠나갔다.
그 때 백정왕은 생각하기를 ‘아사타 신선이 향산에 살고 계신다 한데, 길이 험하고 가파
르므로 사람으로서는 이를 데가 아니다. 무슨 방법을 써서 여기까지 청하여 올까’ 하였다.
왕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에 아사타 신선은 멀리서 왕의 뜻을 알고, 또 먼저의 여러
기이하고 상서로운 조짐을 보고서 ‘보살이 나고 죽음을 깨뜨리기 위하여 일부러 현재 생
(生)을 받으셨구나’ 함을 깊이 깨닫고 신통력으로써 허공을 날아 와 왕궁의 문에 이르렀다.
이 때 문지기는 들어가서 왕에게 아뢰었다.
‘아사타 신선께서 허공을 날아 오셔서 지금 문 밖에 계십니다.’
왕은 듣고 기뻐하면서 곧 칙명하여 나오게 하고는 왕은 문 위에 이르러서 스스로 받들며
영접하다가 신선을 만나자 공경하고 예배하면서 물었다.
‘존자(尊者)께서 오셔서 문에 계시며 나오시지 않으셨음은 문지기가 나아가심을 허락하
지 않으셨기에 그러하였습니까?’
신선은 대답하였다.
‘중지시키는 이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이미 왔었으나 상대에게 나아감은 먼저 알려야 할
필요에서였습니다.’
그러자 왕은 곧 따라서 후궁에 들어가 공경히 청하여 앉게 하고는 문안하였다.
‘존자시여, 네 가지 요소가 는 편안하셨고 온화하셨습니까?’
신선은 대답하였다.
‘대왕의 은혜를 입어서 다행히 편안하고 즐길 수 있었습니다.’
이 때 백정왕은 신선에게 말하였다.
‘존자께서 오늘 내려오셨으니, 저희들 성바지는 바야흐로 크게 성왕하여 지금부터는 날
은 길하고 상서로움만이 있겠습니다. 바로 지나시는 길에 일부러 여기를 오셨습니까?’
신선은 대답하였다.
‘내가 향산에 있으면서 큰 광명과 여러 가지 기특한 조짐을 보았고, 또 대왕께서 마음으
로 생각하는 바를 알고서 이런 일 때문에 여기에 왔습니다.
나는 신통의 힘으로써 허공을 날아오다가 위의 여러 하늘들의 말함을 듣건대, 왕의 태자
는 반드시 장차 일체 종지를 이루게 되어서 천상과 인간을 제도 해탈하겠습니다. 또 왕의
태자는 오른편 겨드랑이로부터 탄생하여 7보의 연꽃위에 떨어지면서 일곱 걸음을 걸어가 그
의 오른 손을 들고서 사자처럼 외치기를, (나는 천상과 인간 중에서 가장 높고 가장 뛰어났
도다. 한량없는 나고 죽음을 이제야 다하였으니, 이 생에 일체의 하늘과 사람들을 이롭히리
라)라고 하였으며, 또 여러 하늘들이 에워싸며 공경하였다고 하는 이러한 크고도 기특한 일
들을 들었습니다.
좋겠습니다. 대왕이시여, 기뻐하시고 공경하여야 하겠습니다. 태자를 지금 만나볼 수 있습
니까?’
곧 신선을 데리고 태자의 처소에 이르러서 왕과 부인이 태자를 안고 나와 신선에게 예배
를 시키려 하자, 때에 그 신선은 바로 중지시키면서 왕에게 말하였다.
‘이 분은 바로 천상과 인간이며 삼계 중에서 어른이시거늘 어떻게 저에게 예배하게 하겠
습니까?’
이 때 그 신선은 즉시 일어나 합장하고 태자의 발에 예배를 하는지라, 왕과 부인은 신선
에게 아뢰었다.
‘오직 원하노니 존자께서는 태자의 관상을 하여 주십시오.’
신선은 말하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곧 관상을 하였다.
자세히 상을 보아 마치고서 갑자기 슬피 울며 어쩔 줄 모르므로, 왕과 부인은 그 신선이
슬피 울며 눈물을 흘림을 보고 온몸을 떨면서 크게 근심하고 괴로워하기를 마치 큰 물결에
작은 배가 움직이듯 하다가 신선에게 물었다.
‘우리 아들이 처음 태어나면서도 여러 가지 상서로운 조짐을 갖추었거늘 무엇이 상서롭
지 못함이 있기에 슬피우십니까?’
그 때에 신선은 흐느끼면서 대답하였다.
‘대왕이시여, 태자야말로 상호가 완전히 갖추어졌으므로 상서롭지 않음은 없습니다.’
그러자 왕은 또 물었다.
‘원컨대 저를 위하여 태자를 점쳐 주십시오. 오래 살상이 있습니까? 전륜왕의 위를 얻어
서 사천하의 왕노릇을 하겠습니까? 저의 나의 벌써 다되었으므로 국토를 모두 맡기고 싶으
며 장차 산숲에나 숨어서 집을 떠나 도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소망은 오직 여기에만 있으니,
존자께서는 반드시 정해진 결과를 살펴 주시겠습니까?’
그 때 신선은 또 왕에게 대답하였다.
‘대왕이여, 태자는 서른두 가지의 거룩한 모습을 갖추셨습니다.’
첫째 발바닥이 판판하여 마치 향합 밑과 같으며, 둘째 발바닥에 천 개의 수레바퀴의 살
모양이 완전히 갖추어졌으며, 셋째 손가락촵발가락의 길이가 다른 사람들의 것보다 길며, 넷
째 손발이 부드러워서 다른 몸의 부분보다 부드러우며, 다섯째 발꿈치가 넓고 갖추어져서
원만하여 좋으며, 여섯째 발가락에 붙은 얇은 막(膜)이 다른 이의 것보다 훌륭하며, 일곱째
발등이 높고 평평하며, 좋아서 발꿈치와 서로 알맞으며, 여덟째 장딴지의 가늘고 좋음이 마
치 큰 아니연 사슴[伊泥延鹿]의 것과 같으며, 아홉째 반드시 서면 두 손이 무릎을 어루만지
며, 열째 남근(男根)의 숨어 있는 형상이 마치 말과 코끼리의 것과 같습니다.
열한째 몸의 세로와 넓이가 같아서 마치 니구류나무[尼拘類樹]와 같으며, 열둘째 낱낱의
구멍마다 하나의 털이 났는데 푸른 빛깔에 부드러운 것이 오른편으로 돌았으며, 열셋째 털
이 위로 쏠리고 푸른 빛깔에 부드러운 것이 오른편으로 돌았으며, 열넷째 금빛 형상의 그
빛깔이 미묘하여 염부단금(閻浮檀金)보다 뛰어났으며, 열다섯째 몸 빛의 면(面)이 한길이며,
열여섯째 피부가 얇고 가늘며 미끄러워서 먼지나 때가 끼지 않고 모기가 앉지를 못하며, 열
일곱째 일곱 처소의 만(滿)이니 두 발 아래와 두 손 가운데와 두 어깨 위와 목 가운데에 모
두 만(滿)의 글자 형상이 분명하며, 열여덟째 두 겨드랑이 아래가 원만하여 마치 마니주(摩
尼珠)와 같으며, 열아홉째 몸매가 사자와 같으며, 스무째 몸이 넓고 단정하며 똑바릅니다.
스물한째 어깨가 뚜렷하고 좋으며, 스물둘째 입에는 마흔 개의 이가 있으며, 스물셋째 이
가 희고 촘촘하면서 뿌리가 깊으며, 스물넷째 네 개의 어금니가 가장 희면서 크며, 스물다섯
째 네모진 뺨이 사자 것과 같으며, 스물여섯째 맛 중에서 으뜸가는 맛의 진액이 목구멍의
두 곳에서 흘러나오며, 스물일곱째 혀가 크고 부드럽고 엷어서 얼굴을 덮고 귀와 머리가 난
끝까지 이를 수 있으며, 스물여덟째 맑은 소리[梵音]가 깊고 멀어서 마치 가릉빈가의 소리와
같으며, 스물아홉째 눈의 빛깔이 마치 금의 정광(精光)과 같으며, 서른째 속눈썹이 큰 소의
것과 같으며, 서른한째 눈썹 사이의 흰 털의 형상이 부드럽고 희기가 마치 도라솜(兜羅綿)과
같으며, 서른두째 정수서에 살상투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호의 몸으로 갖추어졌는지라 만약 집에 있으면 나이 스물아홉에 전륜성왕이
되겠거니와 만일 집을 떠나면 일체종지를 이루어서 널리 천상과 인간들을 제도하겠습니다.
그러나 왕의 태자께서는 반드시 도를 배워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시어 오래지 않아
서 깨끗한 법의 바퀴를 굴릴 것이며 하늘과 사람들을 이롭게 하고 세간의 눈을 뜨게 하겠습
니다.
나는 이제 나이 많아서 이미 120살이므로 머지 않아 목숨이 끝나면 무상천(無想天)에 납
니다. 부처님이 나오심도 보지 못하고 경전의 법도 듣지 못할 것이므로 그 때문에 스스로
슬퍼할 따름입니다.’
또 신선에게 물었다.
‘존자께서는 아까 점치면서 두 가지를 말씀하시되, 하나는 왕이 된다 하시고 하나는 바
른 깨달음을 이루리라 하셨는데 이제 어째서 틀림없이 일체 종지를 이루리라고 말씀하십니
까?’
이 때 신선은 말하였다.
‘나의 관상하는 법에는 (만약 어떤 중생으로서 서른두 가지 모습을 갖추었으되, 혹은 잘
못된 곳에 났거나 또 분명히 나타나지 아니하면 이 사람만 반드시 전륜성왕이 된다 하였거
니와 만약 서른두 가지의 모습이 다 그 처소에 알맞고 또 분명히 나타나면 이 사람은 반드
시 일체종지를 이루리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대왕의 태자 형상들을 자세히 살피건대 모두가 그 처소에 알맞은 뿐만 아니라, 또
극히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틀림없이 바른 깨달음을 이루실 것을 압니다.’
라고 하면서, 신선은 왕에게 이 말을 하여 마치자 작별하고 떠나갔다.
그 때 백정왕은 신선에게서 결정적인 말을 듣고 마음에 근심 걱정을 품고 집을 떠날까 염
려하여 곧 5백의 하인으로서 현명하고 슬기가 많은 이들을 선택하여 보모로 삼아 태자를 기
르고 보살피게 하였나니, 그 중에 어떤 이는 젖 주는 이가 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안아주는
이가 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목욕시키는 이가 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빨래하는 이가 되기도
하는 이러한 등류로 태자를 보살펴서 모두가 다 완전히 갖추었으며, 또 다시 따로 그를 위
하여 세 철의 궁전을 일으켜서 다스하고촵시원하고촵춥고촵더움에 저마다 처소를 달리하였
고 그 전각에는 모두 7보로써 장엄하며 의복과 장식은 모두 때를 따르게 하였다.
왕은 태자가 집을 버리고 도를 배울까 두려워하여 그 성문의 여닫는 소리가 40리까지 들
리게 하였고, 또 다시 5백의 기녀로서 형용이 단정하고 살지지도 파리하지도 않으며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으며 희지도 않고 검지도 않은 재능이 교묘하고 저마다 재주 지닌 이들을 골
라다가 모두 이름 있는 보배로 그 몸을 꾸미고서 백 인씩을 한 차례로 하여 번갈아 자면서
지키게 하였다.
그 전각 앞에는 단 과일 나무를 벌려 실어서 가지와 잎이 우거지고 꽃과 열매가 번창하였
으며, 또 목욕하는 못을 두어 맑고 깨끗이 하고 못 가의 향기로운 풀과 여려 빛깔의 연꽃은
아름답게 되고 깔려서 칭량할 수 없었으며 기이한 종류의 새들은 수백천 가지이어서 마음과
눈을 빛나게 하여 태자를 기쁘게 하였다.
태자가 탄생한지 7일 만에 그 어머니의 목숨은 끝났는데, 태자를 밴 공덕이 컸기 때문에
도리천에 올라가나서 봉록을 저절로 받았으며, 태자는 복과 덕이 거룩하고 지중하여 달리
예배를 받을 만한 여인은 없었기 때문에 곧 돌아가시려 한 이에게 의탁하여 태어난 줄을 스
스로가 알았었다. 그 때 태자의 이모인 마하파사파제(摩訶波?波提)는 태자를 젖 먹여 길렀
으므로 어머니와 같아서 다름이 없었다.
때에 백정왕은 칙명으로 7보의 천관(天冠)과 영락을 만들어서 태자에게 주었으며 태자의
나이 점차로 자라고 크자 그에게 코끼리촵말촵양의 수레를 마련하여 주었고 무릇 이 어린아
이들의 장난감과 좋은 꾸미개들은 주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 때 온 나라의 인민들은 모두가 어짊과 은혜로움을 행하였으며 오곡이 잘 익었고 바람
과 비는 때에 알맞았으며, 또 도둑이 없어서 쾌락하고 편안하며 고요하였다. 이는 태자의 복
과 덕의 힘 때문이었다.
이 때 왕은 또 하인으로서 태어난 차익(車匿) 등 5백의 종을 태자에게 주어 모시게 하였
다.
나이 일곱 살이 되자 부왕은 생각하기를 ‘태자가 벌써 컸으니, 글을 배우게 하여야겠구
나’ 하고, 나라 안에서 총명한 바라문으로서 여러 가지 글과 재주를 잘하는 이를 찾아서
청해 오게 하여 태자를 가르치게 하였는데, 그때에 발다라니(跋陀羅尼)라는 한 바라문이 5백
의 바라문과 함께 권속이 되어서 왕의 청을 받아 왔으므로 곧 바라문에게 말하였다.
‘존자에게 태자의 스승을 삼으려 한데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바라문은 말하였다.
‘알고 있는 대로 태자를 가르쳐 주겠습니다.’
이 때 백정왕은 다시 태자를 위하여 큰 서당을 일으켜서 7보로 장엄하고 책상과 자리며
배우는 도구를 극히 곱게 하고 좋은 날을 가려서 태자를 바라문에게 주어 가르치게 하였다.
그 때 바라문은 마흔 아홉 글자가 써진 책으로 가르치며 읽게 하였더니 때에 태자는 이
일을 보고 나서 그의 스승에게 물었다.
‘이것은 어떠한 글입니까? 염부제 안에 모든 글들은 무릇 몇 가지나 있습니까?’
스승이 잠자코 있으면서 대답할 바를 몰라 하자 또 다시 물었다.
‘이 아(阿)의 한 글자에는 어떠한 이치가 있습니까?’
스승은 또 잠자코 있다가 역시 대답을 할 수 없는 지라 속으로 부끄러워하면서 곧 자리에
서 일어나 태자의 발에 예배하고 찬탄하였다.
‘태자께서 처음 탄생하여 일곱 걸음을 걸으셨을 때에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천상과 인
간 중에서 가장 높고 가장 뛰어났도다)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이야말로 거짓이 아닙니다. 오
직 원컨대 저에게 염부제의 글은 무릇 몇 가지가 있는가를 말씀하여 주소서.’
태자는 대답하였다.
‘염부제 안에는 혹은 범서(梵書)가 있기도 하고 혹은 카루서(?樓書)며 혹은 연화서(蓮花
書)도 있기도 하는데 이러한 따위가 예순네 가지가 있습니다.
이 아(阿)자는 바로 범음(梵音)의 소리이며, 또 이 글자의 뜻에는 바로 무너뜨릴 수 없다
는 것이요, 또한 이는 더할 나위 없는 것이요, 또한 이는 더할 나위 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이라는 것인데, 무릇 이와 같은 뜻이 한량없고 그지없습니다.’
그 때 바라문은 깊이 부끄러워하며 왕에게 돌아가서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태자는 바로 천상과 인간 중에서 첫째가는 스승이신데, 어찌 저더러 가르치
게 하려 하십니까?’
그 때 부왕은 바라문의 말을 듣고 갑절이나 기쁨을 내면서 전에 없던 일이라 찬탄하고 후
히 그 바라문에게 공양을 하고 뜻대로 가게 하였었나니, 무릇 여러 재주와 전적(典籍).의론.
천문.지리.산수.활쏘기.말타기를 태자는 모두다 저절로 알았었다.’
과거현재인과경 제2권
‘그 때 태자의 나이 열 살이 되자, 여러 석가 성바지 가운데 5백 동자들도 모두 나이가
같았었으니, 태자의 종제인 제바달다(提婆達多)와 다음의 난다(難陀)며 다음의 순다라난다
(孫陀羅難陀) 등에게는 혹은 서른 가지의 모습과 서른 한 가지의 모습이 있기도 하였고 혹
은 또 서른 두 가지 모습이 있기는 하였으나 모습이 분명하지 않기도 하였는데 저마다 재주
를 익혔고 큰 힘들이 있었다.’
그 때 제바달다 등의 5백 동자들은 이 이름이 시방에 사무침을 듣고서 서로가 함께 말하
였다.
‘태자께서 비록 총명하고 슬기로우며 글과 의론을 잘 알고 힘이 세다 하더라도 어찌 우
리들을 이기겠느냐. 태자와 같이 그 용맹과 씩씩함을 겨루어 보고 싶구나.’
그 때에 부왕은 또 나라 안에서 활쏘기를 잘하는 이를 불러와 태자를 가르치게 하였으므
로 후원에 가서 쇠북[鐵鼓]을 쏘려고 하자 제바달다 등 5백의 동자들도 모두가 따라갔었다.
이 때 스승이 곧 하나의 작은 활을 태자에게 주므로 태자는 웃음을 머금으면서 물었다.
‘이것을 나에게 주어서 무엇을 하게 하려 하십니까?’
활 쏘기 스승은 대답하였다.
‘태자께서 이 쇠북을 쏘도록 하겠습니다.’
태자는 또 말하였다.
‘이 활의 힘은 약합니다. 다시 이와 같은 일곱 개의 활을 구하셔서 가지고 오십시오.’
스승은 곧 주자 태자는 일곱 곱의 활을 잡고서 하나의 화살을 쏘매, 일곱의 쇠북을 꿰뚫
는지라, 때에 그 활쏘기의 스승은 나아가서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태자께서는 저절로 활 쏘는 재주를 알고 계십니다. 하나의 화살의 힘으로써
일곱의 북을 쏘아 꿰뚫으신데, 염부제 안에서는 겨룰 수 있는 이가 없겠습니다. 어떻게 저를
스승이 되게 하십니까?’
그 때에 백정왕은 이 말을 듣고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면서 생각하였다.
‘나의 아들이 총명하여 글과 의론이며 산수 등은 사방에서 모두 알거니와 그 활쏘기 재
주만은 사방의 인민들이 아직 모르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는 즉시 태자와 제바달다 등 5백 동자들에게 칙명하고 또 다시 북을 쳐서 나라 곳
곳에 알리게 하였다.
‘태자 살바(薩婆) 실달(悉達)은 지금부터 7일 후에 뒷동산에 나가서 무예를 시합하려 하
노니, 여러 인민들 중에서 용맹한 힘을 지닌 이는 모두 여기에 나올지니라.’
하였으므로, 제 7일이 되자 제바달다는 6만의 권속들과 함께 맨 먼저 성에 나오는데 때에
하나의 큰 코끼리가 성문에 서 있었는지라, 이 여러 군사들은 모두 감히 나아가지 못하므로
제바달다는 여러 사람들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여기에 서서 나아가지를 못합니까?’
여러 사람이 대답하였다.
‘하나의 큰 코끼리가 문을 가로막아 서 있으므로 온 대중(大衆)들이 두려워하여 그 때문
에 감히 나아가지를 못합니다.’
제바달다는 이 말을 듣고 혼자 코끼리에게 나아가서 손으로 머리를 차자 바로 땅에 거꾸
러지는지라 이에 군사들은 차례로 지나가게 되었다.
그 때 난다는 권속들과 함께 역시 성으로 나가려 하는데, 그 군사들이 느린 걸음으로 점
차 나아가는지라 난다는 물었다.
‘무엇 때문에 가는 것이 느리오?’
사람들은 대답하였다.
‘제바달다가 손으로 하나의 코끼리를 치매 거꾸러져서 성문에 있는지라 가는 이들의 길
이 방해되어 그 때문에 느립니다.’
난다가 즉시 나아가 코끼리 처소에 닿아서는 발가락으로 코끼리를 잡아서 길 가로 던져
놓으니, 수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 때 태자는 십만의 권속들에게 앞뒤에서 둘러싸여 비로소 성문에 나가다가 길 가에 사
람들이 모여서 구경을 하는 것을 보고 물었다.
‘이 사람들은 무엇을 구경하고 있느냐?’
시종이 대답하였다.
‘제바달다가 손으로 하나의 코끼리를 쳐 거꾸러뜨려서 성문에 두었으므로 사람의 가는
길이 방해가 되었는데, 난다가 다음에 나오다가 발가락으로 여기에 집어 던져두었으므로, 그
때문에 길가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구경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태자는 생각하였다.
‘지금이 바로 힘을 나타낼 때로구나.’
태자는 곧 손으로 코끼리를 집어서 성 밖으로 던져 놓고 돌아와서 손으로 받되 다친 데가
없게 하였는데, 코끼리는 또 도로 소생하여 괴로워하는 바가 없었으므로, 때에 여러 인민들
은 전에 없었던 일이라 찬탄하였고, 왕도 이를 듣고 나서 깊이 기이하게 여겼다.
이렇게 하여 태자와 제바달다와 난다 등이며 사방의 인민들은 모두 다 와 모여 그 동산
안에 있었다.
그 때 그 동산은 갖가지로 장엄하여 금의 북촵은의 북촵놋쇠의 북과 돌촵구리촵쇠의 북
등 각각 일곱 개가 있었는데, 그 때에 제바달다가 맨 처음 쏘아 세 개의 금의 북을 꿰뚫었
고, 다음에 난다도 역시 세 개의 북을 꿰뚫었으므로 와 있는 대중들은 모두 다 감탄하였다.
그 때 뭇 신하들은 태자에게 아뢰었다.
‘제바달다와 난다가 모두 쏘아 마쳤으니 이번의 차례는 바로 태자이십니다. 오직 원컨대
태자께서는 이 여러 북을 쏘십시오.’
이렇게 세 번을 청하자, 태자는 말하였다.
‘그렇게 하겠소.’
‘만약 나에게 여러 북을 쏘게 하려면 이 활로서는 힘이 약하니, 다시 센 것을 청구합니
다.’
여러 신하는 대답하였다.
‘태자의 조부이신 왕에게 하나의 좋은 활이 있었는데, 지금은 왕의 창고에 있습니다.’
태자는 말하였다.
‘곧 가져 오십시오.’
활이 이르자, 태자는 곧 끌어 당겨 하나의 화살을 쏘매 여러 북들을 꿰뚫고 나갔으며, 연
후에 땅으로 들어가자 샘물이 흘러나오고 또한 대철위산(大鐵?山)을 뚫고 지나갔다.
그 때 제바달다와 난다는 함께 서로 씨름을 하였는데 두 사람의 힘이 대등하여서 역시 이
기는 이가 없는 것을 태자는 또 나아가서 손으로 두 아우를 잡고 땅에 넘어뜨렸으나 인자한
힘을 썼기 때문에 다치거나 아프지 않게 하였으므로, 그 때 사방에서 온 인민들은 태자에게
이러한 힘이 있음을 보고서 큰소리로 외쳤다.
‘백정왕의 태자야말로 지혜만이 일체 인민들에게서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그 힘이 용감
하고 씩씩함도 같을 이가 없습니다.’
그리고는 탄복하지 않는 이가 없어서 더욱 더 공경심을 내었다.
그 때 백정왕은 곧 여러 대신들을 모아 놓고 함께 의논하였다.
‘태자는 이제 나이 이미 장대하여져서 지혜롭고 용맹스러워 모두가 다 갖추어졌으니, 이
제야말로 마땅히 넷의 큰 바닷물로써 태자의 정수리에 부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아래의 다른 작은 나라 왕들에게 칙명하였다.
‘이후 2월 8일에는 태자의 정수리에 물을 부을 터이니 모두 와 모여야 하오.’
2월 8일이 되자, 모든 다른 나라 왕과 신선이며 바라문 등이 모두 다 구름처럼 모여서 비
단 버너기촵일산을 달며 향을 사르고 꽃을 뿌리며 종을 울리고 북을 치면서 여러 가지 풍악
을 잡히며 7보의 그릇에 4해의 물을 담아서 여러 신선들이 저마다 정수리에 이어다가 바라
문들에게 주었으며, 이렇게 하며 여러 신하들까지 두루 모두가 정수리에 이어 와서 왕에게
전하여 주었으므로 때에 왕은 곧 태자의 정수리에 붓고 7보의 도장[印]을 맡기면서 또 큰
북을 치며 높은 소리로 외쳤다.
‘지금 살바 실달을 세워서 태자를 삼았노라.’
그 때에 허공에서 하늘촵용촵야차촵사람인 듯 아닌 듯한 따위가 하늘의 풍악을 잡히면서
다 같은 말소리로 찬탄하였다.
‘거룩하십니다.’
가비라패도국(迦毘羅?兜國)에서 태자를 세우는 때에 다른 여덟 나라[八國]이 왕도 역시 이
날에 똑같이 태자를 세웠다.
그 때 태자는 왕에게 나가서 유람할 것을 아뢰므로 왕은 즉시 허락하고, 때에 왕은 태자
와 여러 신하들과 함께 앞뒤에서 인도하고 따르면서 나라의 지경을 순찰하고 다녔으며, 다
음에 또 앞으로 나아가다가 왕의 전답이 있는 곳에 이르러 휴식을 하며 염부나무 아래서 밭
을 가는 사람들을 구경하였다.
그 때 정거천은 변화로 흙덩이 벌레가 되어서 까마귀가 따르며 쪼아 먹게 하였는데, 태자
는 보고 자비심을 일으키면서 ‘중생이란 불쌍하구나. 서로서로가 삼키고 먹으니 말이다’
하고, 즉시 생각을 하여 욕심 세계의 애욕을 여의었고 이렇게 하여 4선(禪)의 자리를 얻기까
지에 이르는데, 햇빛이 빛나자 나무가 그를 위하여 가지를 굽혀 따르면서 태자를 가리워 주
었다.
그 때 백정왕은 사방을 헤매며 태자를 묻고 찾으므로 시종하던 사람이 대답하였다.
‘태자는 지금 염부나무 아래 계시옵니다.’
때에 왕과 여러 신하들과 함께 그 나무 아래로 나아가는데 아직 닿기 전에 멀리서 태자가
단정히 앉아서 생각함을 보고 또 그 나무가 굽어서 그의 몸을 그늘지게 함을 보고는 깊이
기특하게 여겼다.
때에 왕은 나아가서 태자의 손을 붙잡고 물었다.
‘너는 지금 무엇 때문에 여기에 앉아 있느냐?’
태자는 대답하였다.
‘여러 중생들을 자세히 살피매, 서로가 잡아먹으니 매우 불쌍하기 짝이 없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마음으로 근심 고통을 하면서 그의 집 떠날 것을 염려하여 ‘급히 혼
인을 시켜서 그의 뜻을 기쁘게 해야겠구나’ 하고, 곧 외쳤다.
‘함께 나라로 돌아가자.’
그러자 태자가 대답하였다.
‘여기에 머물러 있게 하소서.’
왕은 그의 말을 듣고 생각하였다.
‘저 아시타가 옛날에 말하더니, 태자가 이제 그 말과 같아지겠구나.’
왕은 곧 눈물을 흘리면서 거듭 부르며 말하였다.
‘나라로 돌아가자.’
태자는 부왕이 이렇게까지 함을 보고 곧 따라서 있던 곳으로 돌아왔었는데, 왕은 근심 걱
정을 하며 집에 있기를 좋아하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다시 기녀들을 불러 재미있게 즐기게
하였다.
그 때 태자 나이 열일곱 살이 되었으므로, 왕은 신하들을 모아놓고 함께 의논하였다.
‘태자가 이제는 나이 이미 장대하였으니, 그를 위하여 혼인할 곳을 찾도록 하여야겠소.’
신하들은 대답하였다.
‘한 석가 성바지의 바라문이 있사온데 이름은 마하나마(摩訶那摩)이옵니다. 그 사람에게
는 야수다라(耶輸陀羅)라는 딸이 있사온데 얼굴 모습이 단정하고 총명하여 슬기로우며 어질
고 재주가 있어 남보다 뛰어났고 예의가 다 갖추어졌습니다. 이와 같은 덕이 있으므로 태자
의 비(妃)가 될 만합니다.’
왕은 곧 대답하였다.
‘만약 그대들의 말과 같다면 곧 그를 위하여 받아들이겠다.’
왕은 궁전 안으로 돌아와서는 곧 궁중에서 총명하고 지혜 있는 오래된 여인에게 신칙하였
다.
‘너는 마하나마 장자의 집에 나아거서 그 딸의 용모와 거동이며 예의가 어떠한가를 살펴
보면서 거기에 머물러 있기를 만 이레 동안 하라.’
왕의 칙명을 받고 곧 그 장자의 집에 나아가서 이레 동안 자세히 그 딸을 살피고 돌아와
왕에게 대답하였다.
‘제가 이 여인을 자세히 살폈사온데, 용모가 단정하고 위의와 동작이 같을 이가 없습니
다.’
왕은 그의 말을 듣고 매우 크게 기뻐하면서 즉시 사람을 보내어 마하나마에게 말하게 하
였다.
‘태자의 나이 장대하였으므로 그를 위하여 비를 들이려 합니다. 여러 신하들이 다 말하
기를 그대의 따님이 착하고 아름다워서 여기에 천거될 만하다 하니, 이제 허락하였으면 합
니다.’
마하나만 왕의 사신에게 대답하였다.
‘삼가 칙명을 받들겠습니다.’
왕은 즉시 신하들에게 길일(吉日)을 가려서 수레 만 개를 보내어 가서 영접하여 궁중에
닿은 뒤 태자의 혼인 예식을 완전히 갖추었었다.
또 다시 여러 기녀들을 불러서 밤낮으로 재미있게 즐기게 하였는데, 그 때에 태자는 언제
나 그 비와 함께 가고 서고 앉고 누워서 일찍이 함께 하지 않음이 없었으나, 처음부터 자연
히 세속의 뜻은 없었으므로 고요한 밤중에는 오직 선관(禪觀)만을 닦았었다.
때에 왕은 날마다 여러 채녀들에게 물었다.
‘태자는 비와 함께 하며 서로가 접근하더?’
채녀는 대답하였다.
‘태자(太子)에게서는 부부로서의 길이 있었음을 못 보았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근심 걱정을 하고 언짢아하면서 더욱 기녀들을 불리어 재미있게 즐기
도록 하였는데 이렇게 때를 지내면서도 오히려 접근하지 않았으므로 때에 왕은 사내구실을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고 깊이 의심하였다.
그 때 태자는 여러 기녀들의 노래하고 읊음을 들으면서 동산과 숲에 꽃과 열매가 한창이
었고 흐르는 샘물이 맑고 시원하였으므로, 태자는 갑자기 나가서 유람을 하려고 하여 곧 기
녀(妓女)를 보내어 나아가 왕에게 아뢰게 하였다.
‘궁중에만 있은 지가 오래였으므로 잠깐 동산 숲에 나가서 유희를 하고 싶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기쁨을 내면서 생각하였다.
‘태자는 바로 궁중에 있으면서 부부로서의 예를 행하기를 좋아하지 아니하여 그 때문에
동산 숲에 나가려 하는구나.’
곧 허락을 하고는 여러 신하들에게 칙명하여 동산 누각을 정돈하고 다스리며 지나갈 길을
모두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태자는 왕에게 나아가서 땅에 엎드려 발에 예배하고 사직하며
떠나갔다.
때에 왕은 곧 한 분의 오래된 신하로서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말을 잘하는 이에게 칙명하
여 태자를 따라가게 하였는데, 그 때에 태자는 여러 관속들에게 앞뒤에서 인도하고 따르면
서 성의 동쪽 문으로 나아가는데 나라 안의 인민들은 태자가 나온다 함을 듣고 남녀가 길을
채워서 구경하는 이가 마치 구름과 같았다.
때에 정거천은 변화로 노인이 되어서 머리가 희고 등이 굽었으며 지팡이를 짚고 느리게
걸어갔으므로, 태자는 시종하는 이에게 물었다.
‘이는 무엇 하는 사람인가?’
시종하는 이는 대답하였다.
‘이는 노인이옵니다.’
태자는 또 물었다.
‘무엇을 노인이라 하느냐?’
대답하였다.
‘이 사람은 옛날에 일찍이 젖먹이 어린아이, 소년을 겪었고 변천하면서 머무르지 아니하
여 마침내 감관이 성숙함에 이르러서 형상이 변하고 빛깔이 쇠약하여져서 음식도 소화되지
아니하고 기력이 허약하여지며 앉고 일어나는 데에도 고통이 심하여지는데 남아 있는 목숨
도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노인이라 합니다.’
태자는 또 물었다.
‘오직 이 사람만이 늙느냐, 모두가 다 그러하느냐?’
시종하는 이는 대답하였다.
‘일체가 모두 다 당연히 이와 같습니다.’
그 때 태자는 이런 말을 듣고 나서 크게 괴로워하면서 생각하였다.
‘해와 달은 흐르며 가고 때는 변하고 해는 바뀌어서 늙음이 다가옴은 마치 번개와 같거
늘 몸의 편안만 더욱 믿고 있다. 나는 비록 부귀하다 하더라도 어찌 혼자 면하겠느냐. 어찌
하여 세상 사람들은 두려워하지도 아니할까.’
태자는 본래부터 세상에 있기를 좋아하지 아니하다가 또 이런 일을 듣고서는 더욱 싫증을
내면서 곧 수레를 돌려 돌아와서 근심하며 언짢아하였다.
때에 왕은 듣고 나서 마음에 애달파하면서 그가 도를 배울까 두려워하여 다시 기녀들을
불리고 재미있게 즐기도록 하였다.
그 때 태자는 다시 얼마를 지나서 왕에게 나가 유람할 것을 아뢰자 왕은 이 말을 듣고 마
음으로 근심하면서 생각하였다.
‘태자가 먼저 나가다가 노인을 만나서는 근심하고 언짢아하였는데, 이제 어찌하여 또 나
가겠다 하는가.’
왕은 태자를 사랑하는지라 차마 어기지 못하여 머뭇거리면서 허락을 하고는 곧 여러 신하
들을 모아 놓고 함께 의논하였다.
‘태자가 전번에는 성의 동쪽 문으로 나가다가 노인을 만나보고 돌아와서는 곧 좋아하지
아니하였었는데 이제 또 나가서 유람하려 함을 나는 어쩔 수가 없어서 마침내 또 허락하였
습니다.’
신하들은 대답하였다.
‘다시 바깥의 여러 관속들에게 엄히 칙명하여 도로를 닦고 다스리며 비단 번기촵일산을
걸며 꽃을 흩고 향을 사르며 모두를 화려하게 할 것이오며, 더러운 것이거나 깨끗하지 못한
것들이거나 늙은이며 병든 이가 길 가에 있지 못하게 하시옵소서.’
그 때 가비라성의 네 개 문 밖에는 각각 하나의 동산이 있었는데, 나무와 꽃과 열매며 목
욕하는 못과 누각이며 갖가지로 장엄한 것은 모두가 다 다름이 없었다.
왕은 여러 신하들에게 물었다.
‘밖의 여러 동산과 누각은 어느 것이 훌륭합니까?’
여러 신하들은 대답하였다.
‘바깥의 여러 동산과 누각들은 모두가 같아서 다름이 없음이 마치 도리천의 환희동산과
같습니다.’
왕은 또 칙명하였다.
‘태자가 먼저 이미 동쪽 문으로부터 나갔으니 이번에는 남쪽 문으로 나가게 하십시오.’
그 때에 태자는 백관들에게 인도하고 따르면서 성의 남쪽 문으로 나가는데, 때에 정거천
은 변화로 병든 사람이 되어서 몸이 파리하고 배가 크며 헐떡거리고 신음을 하며 뼈가 녹고
살이 다되었으며 얼굴 모습이 누렇게 되어 온몸을 벌벌 떨면서 스스로가 부지할 수 없는지
라 두 사람이 겨드랑이를 붙잡고 길의 곁에 있었으므로, 태자는 물었다.
‘이는 어떠한 사람인가?’
시종하는 이가 대답하였다.
‘이는 병든 사람이옵니다.’
태자는 또 물었다.
‘무엇을 말하여 병들었다 하느냐?’
대답하였다.
‘대저 병이라 함은 모두가 즐기며 욕심 내고 음식에 절도가 없는 탓인데 네 가지 요소가
고르지 못하다가 점점 변하여 병이 되나니, 온 뼈마디가 고통스럽고 기력이 없어지며 음식
을 먹지 못하고 잠자리가 편안하지 못하옵니다. 비록 몸과 손이 있기는 하나 제대로 움직일
수 없고 남의 힘을 빌려서야 연후에 앉고 일어납니다.’
그 때에 태자는 자비심을 일으켜 그 병든 사람을 보살피면서 스스로 근심 걱정을 하다가
또 다시 물었다.
‘이 사람 혼자만이 그러한가. 다른 이도 모두가 그러한가?’
대답하였다.
‘일체 인민이면 귀하거나 천함이 없이 똑같이 이런 병이 있습니다.’
태자는 듣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병의 괴로움이 널리 걸려야 한다면 어찌하여 세상 사람들은 즐거움에만 빠져서
두려워하지 아니할까.’
이렇게 생각하여 마치니, 깊이 두려움이 생기고 몸과 마음이 벌벌 떨리는데 마치 달의 그
림자가 물결 이는 물에 나타남과 같았으므로 시종하는 이에 게 말하였다.
‘이와 같이 몸이란 바로 큰 괴로움의 무더기로다. 세상 사람들은 그 가운데서 제멋대로
기뻐하기만 하며 어리석게 식견 없이 굴면서 깨달을 줄을 모르는구나. 이제 어떻게 저 동산
에 가서 유람을 하며 즐겁게 놀기나 하겠느냐.’
곧 수레를 돌려서 도로 왕궁으로 들어와서는 앉아서 스스로 생각을 하며 근심 걱정하면서
언짢아하였다.
왕은 시종하였던 이에게 물었다.
‘태자가 이번에 나가서는 즐거움이 있었더냐?’
시종한 이가 대답하였다.
‘처음 남쪽 문으로 나가시다가 병든 사람을 만났사온데, 이 때문에 언짢아하면서 즉시
수레를 돌려 들어와 버렸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크게 근심 걱정을 하며 그가 집을 떠날까 염려하면서 때에 왕은 여러
신하들에게 물었다.
‘태자가 전번에는 성의 동쪽 문으로 나가다가 늙은이를 만나고서 근심 걱정을 하며 언짢
아하였는지라 이런 일 때문에 나는 그대들에게 칙명하여 깨끗이 길을 다스리고 늙고 병든
이가 길 곁에 있지 못하게 하였는데 어찌하여 이제 성의 남쪽 문을 나가면서도 또 병든 사
람이 있게 하였으며, 또 태자가 그를 만나보게 하였는가.’
그러자 신하들은 대답하였다.
‘요사이 왕의 칙명을 받잡고 바깥 벼슬아치들에게 엄히 명령하여 여러 가지 더러운 것이
거나 늙고 병든 이가 길 곁에 있지 못하게 하였으며, 서로가 검사하고 감추어서 감히 게으
름이 없었는데 어떤 일로 갑자기 병든 사람이 있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저희들
의 허물이 아닙니다.’
그 때에 왕은 여러 시종했던 이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다 같이 병든 사람이 길에 있었다하니 어디로부터 이르는 것을 보았느냐?’
시종했던 이들이 대답하였다.
‘종적이 없었으며 어디서 왔는 줄도 모르옵니다.’
때에 왕은 깊이 태자에 대하여 망설이는 마음을 내며 그가 도를 배울까 두려워하여 다시
기녀들을 불러서 그의 뜻을 기쁘게 하였고, 또 다시 다섯 가지 욕심 중에서 그리고 집착하
는 마음을 내게 하려 하였다.
그 때 우타이(優陀夷)라는 한 바라문의 아들이 있었는데, 총명하고 슬기로워서 극히 말 재
주가 있었으므로, 때에 왕은 곧 청하여 궁중에 들게 하고서 말하였다.
‘태자는 지금 세간에 있으면서 다섯 가지 욕심 받기를 좋아하지 않고 그는 오래지 않아
서 집을 떠나서 도를 배울까 두려우니, 내가 함께 벗이 되어서 자세히 세간에서의 다섯 가
지 욕심의 즐거운 일들을 설명하여 그의 마음이 움직여서 집 떠날 것을 좋아하지 않게 하
라.’
때에 우타이는 대답하였다.
‘태자는 총명하여 같을 이가 없습니다. 알고 있는 글과 의론은 모두 다 깊고 넓어서, 이
는 제가 이제까지 듣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어떻게 권유하고 설명을 하라고 시키십니까? 마
치 연뿌리 속에 섬유로써 수미산을 달려고 하는 것처럼 저도 그와 같아서 마침내 태자의 마
음을 돌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대왕께서 이미 칙명으로 벗이 되게 하셨으니, 반드시 제가
아는 바와 소견을 다하기는 하겠습니다.’
때에 우타이는 왕의 칙명을 받고 나서 태자를 시종하며 가고 서고 앉고 눕는 데에 감히
멀리 떠나지를 않았다.
때에 왕은 또 다시 여러 기녀로서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얼굴 모습이 단정하고 노래와 춤
을 잘하여 남을 유혹할 수 있는 이들을 선발하여 갖가지를 꾸미어 빛나고 고움이 눈을 기쁘
게 할 만큼 하고서 모두들 다 보내어 태자를 시중하게 하였다.
그 때 태자는 다시 얼마를 지나다가 왕에게 나가서 유람할 것을 여쭙자, 왕은 이 말을 듣
고 생각하였다.
‘저 우타이가 이미 태자와 함께 벗이 되었으니 지금 혹시 나가 유람을 하더라도 전번보
다는 나아서 다시는 세속을 싫어하거나 집 떠나기 좋아하는 마음은 없어지리라.’
곧 허락을 하고서는 때에 왕은 또 다시 여러 대신들을 모아 놓고 말하였다.
‘태자가 이제 또 나가서 유람을 하려 하므로 나는 차마 어기지를 못하여 이미 또 허락을
하였소. 태자는 전번에 동쪽 남쪽의 두 문을 나가다가 자고 병든 이를 보고 돌아와서 곧 근
심 걱정을 하였으니, 이번에는 서쪽 문으로부터 나가게 하여야겠소. 나의 마음은 그가 돌아
와서 또 언짢아할까 염려는 되나 그러나 우타이야 말로 바로 그의 좋은 벗이므로 이제 나갔
다가 돌아와서는 다시는 그렇지 않기를 바라오. 그대들은 잘 길과 동산 숲이며 대(臺)와 누
각을 닦고 다스리어 모두 엄히 정돈하게 하고 향과 꽃과 번기며 일산으로 전보다 수배를 더
하며 다시는 늙고 병든 이거나 더러운 것이 길 곁에 있지 않게 하십시오.’
신하들은 칙명을 받고 곧 바깥 벼슬아치들에게 말하였다.
‘도로와 동산 숲을 엄히 다스려서 빛나고 고움이 보통보다 갑절 더하게 하라.’
왕은 또 먼저 여러 아름다운 기녀(妓女)들을 보내어 그 동산 안에 놓아두고, 또 다시 우타
이에게 칙명하였다.
‘만약 길 곁에서 상서롭지 못한 일을 당하면, 방편을 써서 그의 마음을 달래고 기쁘게
해야 하리라.’
아울러 여러 신하들에게 칙명하였다.
‘태자를 따라 모시되, 모두가 자세히 살피게 하고 만약 불길함이 있으면 멀리 내쫓아 버
려라.’
그 때 태자는 우타이와 함께 백관들이 인도하고 따르며 향을 사르고 꽃을 흩으며 뭇 풍악
을 잡히면서 성의 서쪽 문으로 나갔는데, 때에 정거천은 생각하였다. ‘먼저는 늙고 병듦을
두 성문에서 나투면서 온 대중들이 모두 보았는지라 백정왕이 시종하던 이와 바깥 벼슬아치
들을 책망 받게 하였다 태자의 지금의 나옴에는 왕의 제령이 엄하고 험한데 내가 이제 죽음
을 나타낸 것을 만약 모두가 보면 왕의 분노만 더하여 반드시 벌하고 죽이게 하되 그릇 허
물 없는 이들에게까지 미칠 것이니, 나는 오늘 나투는 일에는 오직 태자와 우타이 두 사람
에게만 보이게 하여 그 밖의 관속들에게는 책망을 받지 않게 하리라’ 하고, 곧 내려와서
변화로 죽은 사람이 되어서는 내 사람이 상여를 메고 여러 향과 꽃을 시체 위에 흩뿌리면서
집안의 모두가 통곡(痛哭)을 하며 보내게 하였다.
그 때 태자는 우타이와 두 사람만이 보았으므로 태자는 물었다.
‘이는 어떠한 물건인데 꽃과 향으로 그 위를 장식하였고, 또 사람들이 울부짖으면서 전
송을 하고 있는가?’
때에 우타이는 왕의 칙명 때문에 잠자코 대답을 하지 않자 이렇게 세 번을 물었는데, 정
거천왕은 거룩한 힘으로써 우타이에게 모르는 결에 대답하게 하였다.
‘이는 죽은 사람입니다.’
태자는 또 물었다.
‘무엇을 죽음이라 합니까?’
우타이는 말하였다.
‘대저 죽음이라 함은 칼 같은 바람이 형상을 찢어버리면 신식(神識)이 떠나가는 것인데,
온몸의 모든 감관이 다시는 아는 바가 없어집니다. 이 사람은 세상에 있으면서 다섯 가지
욕심에 집착하여 돈과 재물을 아끼며 몹시 고생하면서 경영하여 오직 쌓고 모을 줄이나 알
았을 뿐 무상한 줄은 모르다가 이제 하루아침에 버리고 죽은 것입니다. 또 부모와 친척 권
속들의 사랑과 염려를 받다가 목숨이 끝난 뒤에는 마치 풀과 나무 같아서 은정과 이쁘고 미
움에 다시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죽으면 진실로 슬프기 짝이 없습니다.’
태자는 듣고 나서 크게 두려워하며 또 우타이에게 물었다.
‘오직 이 사람만이 죽습니까? 다른 이도 당연히 그러합니까?’
곧 대답하였다.
‘온갖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으레 이렇게 되는 것이며 귀하거나 천하다거나 하여 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태자의 평소의 성품은 편안하고 고요하여 움직이지 어려웠지만 이미 이 말을 듣고서는 어
찌하지 못하면서 곧 작은 소리로써 우타이에게 말하였다.
‘세간에서는 이러한 죽음의 괴로움이 있었거늘 어찌하여 그 안에서 방일한 마음을 행하
여 마치 나무와 돌처럼 두려워할 줄 몰랐던가.’
그리고는 곧 마부에게 명하였다.
‘수레를 돌려서 돌아가야 하겠다.’
마부는 대답하였다.
‘전번에 두 문을 나가서도 아직 동산에 이르기 전에 중도에서 돌아갔으므로, 대왕에게서
갚은 꾸지람을 받게 하셨거늘 이제 어찌 감히 또 그러하겠나이까?’
때에 우타이는 마부에게 말하였다.
‘네가 말한 바와 같이, 돌아가지 않아야겠다.’
곧 다시 나아가서 그 동산 안에 이르자 향과 꽃과 번기 일산이며 뭇 풍악을 잡히는데 뭇
기녀들의 단정함은 마치 여러 하늘의 채녀들과 같아서 다름이 없었고 태자의 앞에서 저마다
다투어 노래하고 춤추면서 멋진 태도로써 그의 뜻을 기쁘게 하여 태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려 하였으나, 움직일 수 없었으며, 곧 동산 안에 머물러서 나무 사이 그늘에 쉬면서 그의
시종들을 물리치고 단정히 앉아서 옛날 일찍이 염부나무 아래 있으면서 욕심 세계를 멀리
여의어 제4선정을 얻기까지에 이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때 우타이는 태자에게 이르러 이런 말을 하였다.
‘대왕께서는 칙명으로 태자와 함께 벗이 되게 하였습니다. 혹시 득실(得失)이 있으면서
서로가 깨우쳐 주는 벗의 법에 그 요긴한 것이 셋이 있습니다. 첫째는 과실이 있음을 보면
곧 서로가 간하여 알게 하고, 둘째 좋은 일이 있음을 보면 깊이 따라 기뻐하고 셋째는 괴로
운 재난이 있을 제에 서로가 버리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이제 정성된 말을 드릴 터이니, 원
컨대 책망하지 마십시오. 옛날의 모든 왕과 지금 현재의 왕들도 모두가 다 다섯 가지 욕심
을 받은 연후에야 집을 떠났거늘 태자는 어째서 영영 끊고 돌아보지 않습니까? 또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는 마땅히 사람으로서의 행을 따라야 되며 나라를 버리고서 도를 배우는 이는
없습니다. 오직 원컨대, 태자께서는 다섯 가지 욕심을 받아서 아들이 있게 하시고 왕의 후사
를 끊지 않게 하십시오.’
그 때에 태자는 대답하였다.
‘진실로 말씀한 바와 같소. 다만 나는 나라를 버리기 위하여 그런 것이 아니며, 또 다시
다섯 가지 욕심이 좋지 않다고 말은 하지 않습니다. 늙고촵병들고촵나고촵죽음의 괴로움을
두려워한 까닭에 다섯 가지 욕심에 감히 애착하지 아니합니다. 그대는 아까 말한 바, 옛날
여러 왕들은 먼저 다섯 가지 욕심을 겪었고 그런 뒤에 집을 떠났다 하였거니와 이 여러 왕
들은 이제 어디에 있겠습니까? 애욕 때문에 혹은 지옥에 있기도 하고, 혹은 아귀에 있기도
하고, 혹은 축생에 있기도 하며, 혹은 인간과 천상에 있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굴러 다님
[輸轉]의 괴로움이 있기 때문에 이로써 나는 늙고 병듦의 괴로움과 나고 죽음의 법을 여의
려고 할 뿐입니다. 그대는 어째서 나에게 그것을 받게 합니까?’
때에 우타이는 비록 말 재주를 다하여 태자에게 권장하였으나 돌리게 할 수는 없었으므
로, 곧 물러나 앉았다가 있던 데로 돌아오자 태자는 이에 수레를 차리도록 칙명하여 궁중으
로 돌아가게 하는지라 여러 기녀들과 우타이는 근심하고 슬퍼하며 얼굴 모습조차 찡그림이
마치 사람이 새로 사랑하던 친척을 잃는 것과 같았는데, 태자는 궁중에 돌아와서 몹시 슬퍼
함이 보통보다 갑절이었다.
때에 백정왕은 우타이를 불러서 물었다.
‘태자가 이번에 나가서는 즐거움이 있었더냐?’
우타이는 말하였다.
‘성을 나가다가 멀지 않는 데서 죽은 사람을 만났는데, 또한 그가 어디서 왔는지를 모르
겠습니다. 태자는 저와 함께 동시에 그것을 보았는데, 태자께서 묻기를, ‘이는 어떠한 사람
이냐?’ 하기에 저도 모르는 결에 ‘이것은 죽은 사람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때에 왕은 또 여러 시종했던 이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모두 성의 서쪽 문 밖에서 죽은 사람이 있던 것을 보았더냐?’
시종했던 이들은 대답하였다.
‘저희들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정신이 탁 틔어지며 생각하였다.
‘태자와 우타이 두 사람만이 보았다 하니, 이는 바로 하늘의 힘이요, 신하들의 허물이 아
니로다. 반드시 아사타의 말과 같아지겠구나.’
그리고는 크게 괴로워하고 다시 기녀를 불리어 즐기게 하며 날마다 사람을 보내어 태자를
위로하면서 말하였다.
‘나라는 바로 너의 소유인데 무엇 때문에 근심 걱정을 하면서 언짢아하느냐.’
왕은 또 여러 기녀들에게 엄히 칙명하였다.
‘태자의 뜻을 기쁘게 하기를 밤낮으로 쉬지 말라.’
이 때 백정왕은 비록 하늘의 힘이었고 사람의 일이 아닌 줄 알면서도 태자를 사랑하고 중
히 여겨서 말을 않을 수가 없었으며, 마음으로 생각하였다. ‘태자가 전번에 이미 서쪽의 성
문으로 나갔으니, 이제는 오직 북쪽 문만이 아직 나가지 않았으므로 그는 반드시 오래지 않
아서 다시 나가 유람을 하려 하리라. 다시 그 바깥 동산숲을 장엄하여 갑절 빛나고 곱게 하
며, 여러 가지 뜻에 맞지 않은 일이 없게 하여야 하겠다.’
그리고 생각했던 것을 자세히 신하들에게 칙명하였다.
때에 왕은 또 다시 마음으로 원하였다.
‘태자가 혹시 성의 북쪽 문으로 나갈 때에는 오직 원하옵나니, 여러 하늘이시여, 다시는
상서롭지 못한 일을 나타내어 또 저의 아들 마음에 근심과 괴로움이 생기지 않게 하소서.’
드디어 마부에게 칙명하였다.
‘태자가 만약 나가게 되면 말을 타게 하여 사방으로 있게 하여야 하리라.’
이 때에 태자는 왕에게 나가서 유람할 것을 여쭙자 왕은 차마 어기지 못하였으므로, 곧
우타이와 다른 관속들에게 앞뒤에서 인도하고 따르면서 성의 북쪽 문으로 나가서 저 동산에
이르매, 태자는 말에서 내리어 나무에서 머물러 쉬면서 시종들을 물리쳐 버리고 단정히 앉
아 생각을 하되 세간의 늙고, 병들고, 죽음의 고통을 생각하였다.
때에 정거천은 변화로 비구가 되어 법복에 바루를 가지고 손에는 석장(錫杖)을 짚고서 땅
을 보면서 가다가 태자의 앞에 서자 태자는 본 뒤에 곧 물었다.
‘당신은 바로 어떠한 사람입니까?’
비구가 대답하였다.
‘나는 바로 비구입니다.’
태자는 또 물었다.
‘무엇을 말하여 비구라 합니까?’
‘능히 번뇌의 도둑을 깨뜨리고 후생의 몸을 받지 않나니, 그 때문에 비구라 합니다. 세간
은 모두가 다 무상하고 위험하고 무르지만 내가 닦고 배우는 것은 번뇌 없는 거룩한 도인지
라 빛깔촵소리촵냄새촵맛촵닿임촵법에 집착하지 아니하고 영원히 함이 없음[無爲]을 얻어
해탈의 언덕에 도달합니다.’
이 말을 하여 마치고 태자의 앞에서 신통력을 나타내어 허공을 날아 떠나 갔다.
이러할 때에 여러 시종하던 관속들은 모두 다 보게 되었는데, 태자는 이미 이 비구를 보
았고, 또 널리 집을 떠난 공덕을 말함을 듣고서 그의 옛날부터 품고 있던 세속을 싫어하는
실정에 일치하였으므로 문득 스스로 외쳤다.
‘장하고 장하구나, 천상과 인간 가운데서 오직 이것만이 훌륭한 것이로다. 나는 결정코
이런 도를 닦고 배워야겠다.’
이렇게 말을 하여 마치고 곧 말을 찾아 타고 궁성으로 돌아왔다.
때에 태자는 마음에 기쁨과 경하함이 생겨서 스스로 생각하였다. ‘나는 먼저 늙음과 병
듦과 죽음의 고통이 있음을 보고 밤낮 언제나 두려워하며 이 때문에 시달림을 받았더니, 이
제야 비구를 보고서 나의 뜻을 깨쳤고 해탈의 길을 보았노라.’
그리고는 곧 스스로 방편을 생각하며 집을 떠날 인연을 찾았다.
그 때 백정왕은 우타이에게 물었다.
‘태자가 이번에 나가서는 즐거움이 있었더냐?’
때에 우타이는 왕에게 대답하였다.
‘태자가 아까 나갈 때 지나는 길에서는 상서롭지 못한 일은 없었고, 동산 안에 이르러서
태자가 혼자 나무 아래 있었사온데, 멀리서 보았더니, 한 사람이 머리칼과 수염을 깎아 없애
버리고 물들인 옷을 입고는 태자의 앞에 와서 함께 말을 하다가 말하기를 마치고서 허공을
날아 돌아갔사오나, 끝내 또한 무엇을 말하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태자는 이로 인하여 수레
를 차리고 돌아왔사온데, 그러할 때에는 얼굴 모습이 기뻐하더니 궁중으로 돌아와서는 곧
근심 걱정을 하였습니다.’
때에 백정왕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의심을 내면서도 역시 이것이 무슨 상서로운 조짐인
가를 몰랐으므로 깊이 괴로워하면서 생각하였다.
‘태자는 틀림없이 집을 버리고 도를 배우겠는데, 또 그 비를 들인 지가 오래이었으나 아
들이 없으니, 나는 이제 야수다라에게 칙명하여 방편을 생각해서 나라의 후사가 끊어지지
않게 해야 하겠으며, 또 경계를 하여 태자가 떠나가는데도 모르는 일이 없게 해야겠구나.’
그리고 생각한 대로 곧 야수다라에게 칙명하자, 야수다라는 왕의 칙명을 듣고서 마음에
부끄러워 잠자코 있었으나 가고촵그치고촵앉고촵눕는 데에 태자를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때
에 왕은 또 여러 아름다운 기녀들을 불러 재미있게 즐기게 하였다.
그 때 태자의 나이 열아홉 살이 되자 마음으로 생각하였다.
‘지금이 바로 내가 집을 떠날 때이로구나.’
곧 부왕에게 나아갔는데 위의가 차분함이 마치 제석이 범천에 나아감과 같았는지라 곁의
신하들이 보고서 왕에게 아뢰었다.
‘태자가 지금 대왕에게 오고 계십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근심과 기쁨이 엇섞였는데, 태자가 이르러서 땅에 엎드려 예배하므로
그 때에 부왕은 바로 그를 안아다가 앉게 하였다. 태자는 앉은 뒤에 부왕에게 아뢰었다.
‘은혜와 사랑이 모이면 반드시 이별이 있는 것입니다. 오직 제가 집을 떠나서 도를 배우
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일체 중생이 사랑과 이별의 괴로움을 모두 벗어나게끔 하겠사오니,
반드시 허락하시고 만류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때에 백정왕은 태자의 말을 듣고 마음으로 크게 괴로워져서 마치 금강으로 산을 깎고 깨
뜨리는 것과 같았는지라 온몸이 벌벌 떨리어 본 자리에서 편히 있지 못하다가 태자의 손을
붙잡고 말을 못하면서 슬피 울고 눈물을 흘려 흐느끼며 목이 메었다. 이렇게 하기를 한참
있다가 작은 소리로 말하였다.
‘너는 이제 집을 떠나려는 뜻을 쉬어야 한다. 왜냐 하면 나이가 젊었고 나라에 아직 후
사도 없으면서 문득 나를 버리고 더욱 돌보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니라.’
그 때에 태자는 부왕이 눈물을 흘리면서 허락하지 않음을 보고 있던 데로 돌아와서 집을
떠날 것을 생각하며 근심을 하고 언짢아하였다.
그 때 가비라패도국(迦毘羅?兜國)에서 관상을 잘 보는 사람들은를, ‘태자가 만약 집을 떠
나지 아니하면 7일을 지난 뒤에는 전륜왕이 위를 얻어서 사천하를 다스리며 7보가 저절로
이르리라’고 점치고는, 저마다 알고 있는 것을 왕에게 가서 아뢰었다.
‘석가 성바지는 이에 바야흐로 흥성하겠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곧 여러 신하와 석가 성바지 아들들에게 칙명하
였다.
‘너희들도 관상쟁이에게서 이와 같은 말을 들었었느냐. 모두 낮이나 밤이나 태자를 모시
고 호위하여야 한다. 성의 네 문에는 문마다 천 명씩 두고 성 밖에 요자나(踰?那) 안을 둘
러싸서 사람들을 배치하여 두고 막고 보호하게 하라’고 하고, 또 야수다라와 여러 내관(內
官)들에게 칙명하였다.
‘갑절이나 경계를 더하여 7일을 지나도록 집을 떠나지 못하게 할지니라.’
고 하였으며, 때에 왕은 또 태자의 처소에 와서 닿자 태자는 멀리서 보고 즉시 나아가서
받들어 맞으면서 땅에 엎드려 발에 예배하고 기거(起居)의 문안을 드리므로 왕은 태자에게
말하였느니라.
‘나는 옛날에 이미 아사타의 말과 뭇 관상쟁이며 아울러 여러 가지 신기하고 상서로움도
들었는지라 반드시 너는 세상에 살기를 좋아하지 않는 줄 알고 있다. 나라에 후사는 중한
것이므로 부디 이어받아져야 하나니, 오직 소원은 나를 위하여 너의 한 아들만을 낳아라. 그
러한 뒤에 세속을 끊겠다 하면 다시는 반대하지 않으리라.’
그 때에 태자는 부왕의 말을 듣고 생각하였다.
‘대왕께서 몹시 나를 만류하신 까닭은 바로 나라에 후사가 없었던 것이었구나’
그리고는 왕에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칙명대로 하겠사옵니다.’
그리고는 즉시 왼손으로써 그의 비(妃)의 배를 가리켰는데, 때에 야수다라는 곧 몸에 이상
함을 깨달았고 저절로 임신한 것을 알았다.
왕은 태자가 칙명대로 하겠다는 말을 듣고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면서 이 르기를,
‘태자는 7일 안에야 반드시 아이가 있지 못할 것이므로, 만약 이 기간만 지나면 전륜왕
의 자리가 저절로 이를 것이며, 다시는 집을 떠나지 않게 되리라.’
그 때 태자는 생각하였다.
‘나는 나이 이미 열아홉에 이르렀다. 지금이 바로 2월이요 또 이는 7일인데, 방편을 써서
집 떠날 것을 생각해야겠구나. 왜냐하면 지금이 바로 때이며, 또 부왕의 소원도 이미 만족시
켰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여 마치고, 몸에서 광명을 내쏘아 사천왕 궁전을 비추고 내지 정거천이 궁
전을 비추었으나 인간만은 이 광명을 보지 못하게 하였다.
그 때 여러 하늘들은 이 광명을 보고서 모두가 태자가 집을 떠날 때가 다가왔음을 알고는
곧 내려와서 태자에게 이르러 땅에 엎드려 발에 예배하고 합장하고 아뢰었다.
‘한량없는 겁으로부터 오면서 닦고 행한 바 이 원이 이제야 바로 성숙해진 때입니다.’
이에 태자는 여러 하늘들에게 대답하였다.
‘그대들의 말과 같이 지금이야말로 바로 때입니다. 그러나 부왕께서 안팎의 관속들에게
칙명하여 엄히 막고 지킴을 당하고 있는지라 떠나고 싶어도 갈 수가 없습니다.’
여러 하늘들이 아뢰었다.
‘우리들이 여러 방편을 마련하여 태자를 나가시게 하겠으며, 알아차리는 이가 없게 하겠
습니다.’
여러 하늘들은 곧 그의 신통력으로써 여러 관속들을 모두가 다 혼곤히 잠이 들게 하였다.
그 때 야수다라는 누워 잠자는 동안에 세 가지의 큰 꿈을 얻었나니, 첫째의 꿈은 달이 땅
에 떨어짐이요, 둘째의 꿈은 어금니가 빠짐이요, 셋째의 꿈은 오른편 팔을 잃어버린 것이었
는데 이 꿈을 꾸고 나서 잠결에 놀라 깨어나서 마음에 크게 두려워하면서 태자에게 알리기
를
‘저는 잠을 자는 동안에 세 가지의 나쁜 꿈을 꾸었습니다.’
태자는 물었다.
‘당신은 어떤 꿈을 꾸었습니까?’
야수다라는 자세히 꾸었던 일을 설명하는지라 태자는 말하였다.
‘달은 아직도 하늘에 있고, 어금니도 빠지지 않았으며 팔도 아직 있습니다. 모든 꿈이란
거짓이어서 진실이 아닌 줄 알아야 하리다. 당신은 이제 쓸데없이 두려워하지 마시오.’
야수다라는 또 태자에게 말하였다.
‘제가 스스로 꿈을 꾼 일을 헤아려 볼 것 같으면, 반드시 이는 태자께서 집을 떠나는 조
짐이십니다.’
태자는 또 대답하였다.
‘당신은 편히 잠이나 잘 것이요, 그런 염려는 하지 마시오. 반드시 당신에게 상서(祥瑞)
롭지 못한 일은 없게 되리라.’
하므로, 야수다라는 이 말을 듣고, 곧 도로 잠을 자는지라, 태자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두
루 기녀들과 야수다라를 살펴보매 모두가 마치 나무로 만든 사람들과 같았고 파초의 속이
굳거나 차지 않음과 같았는데, 혹은 악기의 위에 엎드려 있기도 하고 팔다리를 땅에 드리워
있기도 하고 다시 서로가 베개 삼아 누워 있기도 하고 콧물과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입 속
에서 침이 흘러나오기도 하였으며, 또 다시 두루 아내와 기녀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그
의 형체에는 터럭과 손톱 발톱촵골수촵뇌촵뼈촵이촵해골촵피부촵살촵힘줄촵맥촵기름촵피촵
심장촵허파촵지라촵콩팥촵간촵쓸개촵소장촵대장촵밥통촵똥촵오줌촵눈물이며 침이 보였는데,
바깥이 가죽 주머니로 되어 가운데에 더러운 것이 담겨져서 하나도 기특할 만한 것은 없었
거늘 억지로 향을 바르고 꽃과 비단으로 꾸몄다. 마치 빚졌다가 도로 갚는 것과 같아서 역
시 오래할 수 없었으므로, ‘백년 동안의 목숨을 누어서 그 반을 소비하고, 또 근심과 괴로
움이 많아서 그 즐거움을 얼마 되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은 어찌하여 항상 이런 일을 보면
서도 깨치지를 못하며, 또 그 속에서 음욕에 탐착하는 것일까? 나는 이제 옛날의 모든 부처
님들께서 닦으셨던 행을 배워야겠으며, 서둘러서 이 큰 불더미를 멀리하여야 하겠구나.’
그 때 태자는 이를 생각하여 마치고 5경(更)이 되었는데, 정거 천왕과 욕심 세계의 하늘들
이 허공에 가득히 차서 함께 소리를 같이하여 태자에게 말하였다.
‘안팎의 권속들이 모두 다 혼곤히 잠을 자고 있으니, 지금이 집을 떠날 때입니다.’
그 때에 태자는 즉시 스스로 가서 차익에게 도착하는데, 하늘들의 힘 때문에 차익이 저절
로 깨어나므로 말을 하였다.
‘너는 나를 위하여 건척을 차리어서 오도록 하라.’
그 때에 차익은 이 말을 듣고 나서 온몸을 떨면서 마음에 머뭇거렸나니, 첫째는 태자의
명령을 어기지 않으려는 것이요, 둘째는 왕의 칙명이 엄함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니라.
한참 생각을 하며 있다가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대왕의 인자하신 칙명이 이렇게 엄하거늘, 또한 지금은 유람을 하실 때도 아니며, 또 적
을 항복 받는 날로 아니옵니다. 어찌하여 이 5경인 밤중에 갑자기 말을 찾으십니까? 어디를
가려 하십니까?’
태자는 또 다시 차익에게 말하였다.
‘나는 이제 일체 중생들을 위하여 번뇌의 도둑을 항복받으려는 까닭이니, 너는 이제 나
의 이 뜻을 어기지 말지니라.’
그 때에 차익은 소리를 높여 울부짖으면서 야수다라와 여러 권속들에게 태자가 떠나가는
것을 모두가 깨어나 알게 하려 하였지만 그 때에는 하늘들의 신력이었는지라 혼곤히 잠을
그대로 자게 하였으므로, 차익은 말을 끌고 오자, 태자는 천천히 나오면서 차익과 건척에게
말하였다.
‘온갖 은혜와 사랑은 만나면 이별을 하여야 한다. 세간의 일은 쉬이 해낼 수가 있거니와
집을 떠나는 인연이야말로 매우 성취하기 어렵다.’
차익은 듣고 잠자코 말이 없었고, 이에 건척도 다시는 울부짖지 않았다.
그 때에 태자는 새벽 동이 트는 것을 보고 몸의 광명을 내어 시방을 환히 비추고 사자처
럼 외쳤다.
‘과거 모든 부처님께서 집을 떠나신 법을 나도 이제 그렇게 하노라.’
이에 여러 하늘들은 말의 발을 바치고 아울러 차익을 붙안고서 석제환인은 일산을 잡고
따르며 여러 하늘들은 곧 성의 북쪽 문이 저절로 열리게 하면서 소리가 없게 하였다.
태자는 이에 문을 따라 나가자 허공의 하늘들은 찬탄하며 따르는데, 그때에 태자는 또 사
자처럼 외쳤다.
‘나는 만약 나고촵늙고촵병들고촵죽음과 근심촵슬픔이며 괴로움을 끊지 못하면 마침내
궁중으로 돌아오지 않겠으며, 나는 만약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거나 또 다시 법의
바퀴를 굴릴 수 없다면 반드시 돌아와 부왕을 만나지 않을 것이며, 만약 은혜와 사랑의 정
을 다하지 못하면 끝까지 돌아와 마하파사파제와 야수다라를 만나지 않으리라.’
태자가 이 맹세를 말할 때 허공에서 하늘들은 찬탄하였다.
‘장하십니다. 그 말씀이야말로 반드시 이루시리이다.’
새벽에 이르기까지 갔던 길은 3요자나였으며, 때에 여러 하늘들은 태자를 따라서 이곳까
지 와서는 할 일을 다 마쳤는지라 홀연히 나타나지 않았다.
그 때 태자는 점차로 가다가 저 발가 선인(跋伽仙人)이 고행하는 숲 속에 닿았는데, 태자
는 이 동산 숲을 보자 고요하고 시끄럽지 않으므로 마음에 기뻐지고 모든 감관이 기꺼워지
는지라 곧 말에서 내리며 등을 어루만지면서 말하였다.
‘하기 어려운 일을 너는 하여 마쳤도다.’
또 차익에게 말하였다.
‘말의 행보가 빨라서 마치 큰 금시조왕과 같았거늘 너는 한결같이 따르면서 나의 곁을
떠나지 않았도다. 세간의 사람들은 혹은 착한 마음을 지녔어도 몸은 따르지 않기도 하고, 혹
은 몸과 힘은 따면서도 마음이 맞지 않기도 하는데, 너는 이제 마음과 몸이 모두 다 어김이
없었구나. 또 세간 사람들은 부귀에 있는 이면 다투어서 따르고 받들어 섬기거니와 나는 이
미 나라를 버리고 이 숲속으로 왔는데, 오직 너 한 사람만이 혼자서 나를 따른 것이 매우
드문 일이로다. 나는 이제 이미 한가하고 고요한 곳에 이르렀으니, 너는 곧 건척과 같이 함
께 궁중으로 돌아갈지니라.’
그 때에 차익은 이 말을 듣고 슬피 울부짖으면서 정신없이 땅에 거꾸러져 어쩔 줄을 몰랐
으며, 이에 건척은 보낸다 함을 듣고 무릎을 꿇고 발을 핥으며 눈물을 비오듯 흩리는데, 차
익은 대답하였다.
‘나는 이제 어떻게 차마 태자의 하신 이런 말씀을 듣겠나이까? 나는 궁중에서 대왕의 칙
명을 어기고 건척을 차리어서 태자께 드리어 오늘 여기까지 오게 되었기 때문에 반드시 근
심하고 괴로워하실 것이며, 궁중 안팎에서도 야단법석일 것이옵니다.
또 여기야말로 여러 험난함이 많고 사나운 짐승과 독충들이 길에 마구 깔려 있거늘 제가
어떻게 태자를 버리고 혼자 궁중으로 돌아가겠나이까?’
태자는 곧 차익에게 대답하였다.
‘세간의 법에서는 혼자 나고 혼자 죽거늘 어찌 또 벗이 있겠느냐. 또 나고촵늙고촵병들
고촵죽음의 여러 고통이 있거늘 내가 어찌하여 이것과 함께 벗이 되어야겠느냐. 나야말로
이제 모든 고통을 끊기 위하여 여기까지 온 것이니, 고통이 만약 끊어진 때면 그런 뒤에 일
체 중생들과 함께 벗이 되겠거니와 내가 지금에 모든 고통도 아직 끊지 못했으면서 어찌하
여 너와 벗이 될 수가 있겠느냐?’
차익은 또 말하였다.
‘태자가 탄생하셔서부터는 깊은 궁중에만 오래 계셨으므로 몸과 손발이 모두 다 부드러
우며 잠을 자는 평상과 이부자리는 가늘고 미끄럽지 않음이 없었거늘 어떻게 하루아침에 가
시덤불과 기와 부스러기며 진흙을 깔고 나무아래 머무르시겠나이까?’
태자가 대답하였다.
‘진실로 너의 말과 같되 만일 내가 궁중에서 산다 하면 이런 가시덤불의 환난을 면할 수
있거니와 늙고.병들고.죽음의 고통만은 마침내 저절로 침범을 당하리라.’
차익은 태자의 이 말을 듣고 슬피 울며 눈물을 흘리면서 잠자코 서 있자, 때에 태자는 차
익에게 나아가서 7보의 칼을 잡고 사자처럼 외쳤다.
‘과거의 부처님네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기 위하여 장식과 좋은 것을 버려 버리고
수염과 머리칼을 깎아 없애셨나니, 나도 이제 모든 부처님의 법을 의지해야 하리라.’
이 말을 하여 마치고 곧 보배 관과 상투 속의 명주(明珠)를 벗어서 차익에게 주면서 말하
였다.
‘이 보매 관과 명주를 왕의 발 아래 바치고서 너는 나를 위하여 대왕에게 아뢰기를,(저
는 이제 하늘에 나서 즐기려 함도 아니요, 또한 부모에게 불효하려 함도 아니요, 또한 원망
하거나 성내는 마음도 없으며 오직 저 나고촵늙고촵병들고촵죽음을 두려워하여 끊어 없애기
위하여 여기까지 왔을 뿐이옵니다)라고 할 것이며, 너는 나를 도와서 따라 기뻐하고 경하할
것이요, 상서로운 일에 다시는 슬퍼하거나 근심을 하지 말라.
부왕께서 만약 나의 지금의 집을 떠남이 아직 시기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면, 너는 나의 말
로써 대왕께 아뢰기를, (늙고촵병들고촵죽음의 다가옴이 어찌 일정한 시기가 있으며, 사람이
비록 젊고 씩씩하다 한들 어찌 이를 면할 수 있겠나이까)라고 하라.
부왕께서 만약 또 나를 책망하시되, (본래 아들을 두겠다는 약속으로 집 떠나기를 허락하
였거늘 이제 아직 아들이 없으면서 어찌하여 떠나갔는냐)라고 하시면, 궁중을 나올 때에 미
처 여쭙지 못한 것을 네가 나를 위하여 자세히 부왕에게 여쭙되, (야수다라는 오래부터 이
미 임신하였사오니 왕 스스로가 물어 보실 것이오며, 옛날의 칙명이 그와 같으셨으므로 멋
대로 한 것이 아니옵니다)라고 하더이다라고 하라.
옛날에 전륜성왕으로서 나라의 자리를 싫어할 이들은 산 숲에 들어가서 집을 떠나 도를
구하다가 중도에 돌아가서 다섯 가지 욕심을 받음이 없었나니 내가 이제 집을 떠나서도 역
시 그와 같으리라.
보리를 이루지 못하면 마침내 궁중에 돌아가지 않으리니, 안팎 권속들이 모두 나에게 은
혜와 애정이 있을 터이나 너의 변재로써 그들을 위하여 풀이할 것이요, 나에게 멋대로 근심
고통을 내지 않게 하라.’
그리고 태자는 또 다시 몸의 영락을 벗어서 차익에게 주면서 말하였다.
‘너는 나를 위하여 이 영락을 가져다 마하파사파제께 바치면서 아뢰되, (저는 이제 모든
괴로움의 근본을 끊기 위하여 짐짓 궁성을 나왔으므로 이 소원을 채우겠으니, 다시는 저에
대하여 도리어 괴로움을 일으키지 마소서)라고 하더라 하라. 또 몸 위의 그 밖의 꾸미개를
벗어서 야수다라에게 줄 터이니, 또 다시 말하기를 (인생은 세상에서 사랑하면 이별하는 괴
로움이 있으므로, 나는 이제 이 여러 괴로움을 끊기 위하여 집을 떠나서 도를 배우는 것이
니, 나 때문에 항상 근심 걱정을 하지 마시오)라고 하더이다 할 것이며, 아울러 여러 친척들
에게도 모두 역시 그와 같이 할지니라.’
그 때에 차익은 이 말을 듣고 나서 갑절 더 몹시 슬퍼하면서 차마 태자의 명령을 어기지
못하고 길이 꿇앉아 보배 관과 명주촵영락촵꾸미개 등을 받아 가지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
다.
‘제가 태자의 그와 같은 뜻과 소망을 듣자오매 온몸이 벌벌 떨리옵니다. 설령 어떤 사람
의 마음이 나무와 돌과 같다 하더라도 이 말씀을 들으면 역시 슬프게 느끼겠거든 하물며 나
면서부터 태자를 받들어 모신 제가 이 맹세를 들고서 마음 아파하지 않겠나이까?
오직 원하옵나니, 태자께서는 이 뜻을 버리시고 부왕과 마하파사파제와 야수다라며 아울
러 다른 친척들에게는 큰 슬픔과 고통이 나지 않게 하옵소서. 만약 결정코 이 뜻을 돌리시
지 않겠으면 이 곳에서 다시 저를 버리지나 마옵소서.’
저는 이제 태자의 발 아래 귀의하겠사오니, 끝끝내 어기고 떠나가는 거동은 보지 않으리
이다. 설령 궁중으로 돌아가더라도 왕은 반드시 저를 책망하실 터인데, 어떻게 태자를 버리
고 혼자 돌아가서 무슨 말로써 대왕에게 대답을 올리게 하려 하나이까?’
태자는 대답하였다.
‘너는 지금 그와 같은 말은 하지 말라. 세상이 모두 이별이니, 어찌 언제나 모여 있겠느
냐. 나를 낳은 지 7일 만에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모자도 오히려 죽음과 삶의 이별이 있거든
하물며 딴 사람들끼리겠느냐. 너는 나에게 치우치게 그리움만을 내지 말고 건척과 함께 궁
중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렇게 다시금 명령하였으나 아직도 떠나가려 하지 않았다.
그 때 태자는 곧 날카로운 칼로써 스스로 수염과 머리칼을 깎고서 원을 세우기를,
‘이제 수염과 머리칼을 깎았사오니, 원컨대 일체와 함께 번뇌와 익힌 죄장을 끊어 없애
주소서.’
그러자 석제환인은 머리칼을 받아서 떠나갔으며, 허공에서 여러 하늘들은 향한 사르고 꽃
을 흩으면서 소리를 같이하여 찬탄하였다.
‘장하십니다. 장하십니다.’
그 때 태자는 수염과 머리칼을 깎은 뒤에 스스로 그 몸에 입고 있는 옷을 보았더니, 아직
도 이는 7보인지라 마음으로 생각하였다.
‘과거 모든 부처님네의 집을 떠난 법에 입으셨던 의복은 이와 같지는 않으셨으리라.’
때에 정거천이 태자의 앞에서 변화로 사냥꾼이 되어서 몸에 가사를 입고 있자, 태자는 보
고 마음에 크게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당신이 입고 있는 옷은 바로 고요함이 의복인지라, 옛날 모든 부처님네의 표지이거늘
어찌하여 이를 입고서 죄를 짓는 행동을 하십니까?’
사냥꾼이 대답하였다.
‘내가 가사를 입은 것은 여러 사슴들을 유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슴은 가사를 보고 모
두 와서 나를 가까이하면 나는 죽일 수가 있습니다.’
태자는 또 말하였다.
‘만약 당신의 말과 같다면 이 가사를 입는 것은 다만 사슴들을 죽이려 하는 것뿐이요,
해탈을 구하려고 입은 것이 아닙니다. 나는 이제 이 7보의 옷을 가져서 당신과 바꾸겠소. 나
는 이 옷을 입고서 일체 중생을 거두고 구제하여 그이 번뇌를 끊으려 합니다.’
사냥꾼이 대답하였다.
‘좋습니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즉시 보배 옷을 벗어서 사냥꾼에게 주고 자신은 가사를 입고서 과거 모든 부처님네의 입
으셨던 법을 의지하였다.
때에 정거천은 다시 범천의 몸으로 되돌아가며 허공을 올라서 그의 있던 곳으로 돌아갔었
는데, 때에 공중에서 기이한 광명이 있자 차익은 이를 보고 마음에 기특하게 여기며 전에
없었던 일이라 찬탄하면서,
‘이제 이 상서로운 감응(感應)이야말로 작은 일이 아니로구나.’
차익은 태자가 수염과 머리칼을 깎아 없애고 몸에 법복을 입었음을 보고서 결정코 태자를
돌릴 수 없음을 알고 땅에 뒹굴며 갑절 더 괴로워하므로, 그 때에 태자는 말하였다.
‘너는 이제 마땅히 이 슬픔과 근심을 버리고 곧 궁성으로 돌아가서 자세히 나의 뜻을 말
할지니라.’
태자는 이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므로 차익은 흐느끼며 땅에 엎드려 예배하고 멀어질 때
까지 바라보며 태자가 보이지 않게 되자 연후에야 일어나서 온몸을 벌벌 떨면서 어쩔 줄 몰
라 하다가 건척과 꾸미개를 돌아보고는 목이 메어 슬피 울며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곧 건척
을 끌고 보배 관과 몸을 장식한 꾸미개를 가지고서 차익은 울부짖고 건척은 슬피 울면서 길
을 따르며 돌아왔다.
그 때 태자는 그대로 나아가서 발가 선인이 살고 있는 곳에 이르자, 때에 그 숲 속에 있
던 날짐승과 길짐승들이 태자를 보고서 모두 다 똑바로 보며 단정히 서서 눈도 깜작거리지
않았으며, 발가 선인은 멀리서 태자를 보고 생각하였다. ‘이 분은 어떠한 신이실까, 일천
(日天)일까, 월천(月天)일까, 제석이실까’라고 하면서 곧 권속들과 함께 태자를 영접하며 깊
이 공경과 존중심을 내면서 말하였다.
‘잘 오십시오. 어진 이여.’
태자는 여러 신선들을 보며 마음과 뜻이 부드러워지고 위의가 차분하여지므로 태자는 곧
그들의 사는 곳으로 나아갔더니, 그 신선들은 다시는 거룩한 빛이 없어져버렸는데 모두가
다 같이 와서는 태자가 앉기를 청하는지라 태자는 앉고 나서 그 신선들의 행을 자세히 살펴
보자, 어떤 이는 풀로써 옷을 삼은 이도 있고 어떤 이는 나무껍질과 나뭇잎으로 옷을 만들
기도 하고, 어떤 이는 하루에 한 끼를 먹기도 하고, 어떤 이는 이틀에 한 끼를 먹기도 하고,
어떤 이는 사흘에 한 끼를 먹기도 하여 이와 같은 스스로 굶주리는 법을 행하였으며 혹은
물과 불을 섬기기도 하고, 혹은 해와 달을 받들기도 하고, 혹은 한 다리를 발돋움하여 서 있
기도 하고, 혹은 티끌 있는 땅에 누워 있기도 하고, 혹은 가시나무 위에 누워 있기도 하고,
혹은 물과 불의 곁에 누워 있기도 하였으므로 태자는 이러한 고행을 보고서 곧 발가 선인에
게 물었다.
‘당신들은 지금 이러한 고행을 닦으니, 매우 기특합니다. 모두가 어떠한 과보를 구하려고
하십니까?’
선인이 대답하였다.
‘이런 고행을 닦아서 하늘에 나려고 합니다.’
태자는 또 물었다.
‘여러 하늘이 비록 즐겁기는 하나 복이 다하면 떨어져서 여섯 갈래를 윤회(輪廻)하므로
마침내 괴로움의 무더기거늘 당신들은 어째서 모든 괴로움의 원인을 닦아서 괴로움의 과보
를 구하십니까?’
그리고 태자는 마음에 스스로 한탄하였다.
‘장사하는 사람은 보배 때문에 바다에 들어가고, 왕은 국토를 위하여 군사를 일으켜 상
대방을 치거늘, 이제 저 신선들은 하늘에 나기 위하여 이런 고행을 닦는구나.’
한탄하기를 마치고 잠자코 서 있자, 발가 선인은 곧 태자에게 물었다.
‘어진 이께서는 무슨 뜻으로 잠자코 계시며 말씀을 하지 않습니까? 저희들의 하는 일이
참되고 바른 것이 아닙니까?’
태자는 대답하였다.
‘당신들의 하는 일들이 지극한 고행이 아님은 아니로되 그러나 구하시는 과보가 마침내
괴로움을 여의치 못하리라.’
태자와 그 신선들은 이런 의론을 펴며 말이 오가다가 날이 저물어졌으므로, 태자는 거기
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다시 생각하였다. ‘이 신선들은 비록 고행을 닦
기는 하나 모두가 해탈하는 참되고 바른 도가 아니다. 나는 이제 여기에 머무르지 말아야
하겠구나.’
즉시 신선들과 작별을 하고 떠나가려 하자, 때에 그 신선들은 태자에게 아뢰었다.
‘어진 이께서 여기에 오시자 우리 모두가 기뻐하였으며 우리들에게 거룩한 덕이 더욱 왕
성하게 해 주셨거늘 이제 무엇 때문에 갑자기 떠나가려 하십니까? 바로 우리들이 위의에 잘
못을 깨쳤습니까? 이 대중 가운데서 감정을 돋울까 해서 그러하십니까? 무슨 일 때문에 여
기에 계시지 않겠습니까?’
태자는 대답하였다.
‘이는 당신들이 손님을 대하는 위의에 잘못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또한 모자란 바도 없
지만 다만 당신들의 닦는 바가 괴로움의 원인만을 더욱 자라게 하는 것이므로, 나는 이제
도를 배워서 괴로움의 근본을 끊으렵니다. 이런 인연 때문에 떠나갈 뿐입니다.’
그러자 그 신선들은 함께 의논하였다.
‘그가 닦은 도가 극히 넓고 크거늘 어찌하여 우리들이 만류할 수야 있겠습니까?’
그 때에 관상하는 법을 잘 아는 한 신선이 있다가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이제 이 어진 이야말로 모든 상호가 완전히 갖추어져서 반드시 일체 종지를 얻어서 하
늘과 사람들의 스승이 되겠습니다.’
그리고는 곧 함께 태자에게 나아가서 이런 말을 하였다.
‘닦는 도가 특이한지라 감히 만류하지는 못하겠습니다만 만약 떠나가시려면 북쪽을 향하
여 가십시오. 거기에는 아라라(阿羅邏)와 가란(加蘭)이라는 큰 신선들이 계십니다. 어진 이
께서는 가셔서 그들과 논의를 하십시오. 그러나 제가 어진 이를 자세히 살피건대 역시 그
곳에서도 머무르지 않으실 것같습니다.’
이에 태자는 곧 북쪽으로 떠나가자 그 신선들은 태자가 떠나는 것을 보고 마음으로 괴로
워하면서 합장하고 따라 전송을 하며 아주 멀어져서 보이지 않게 되자 그런 뒤에 비로소 돌
아왔었다.
그 때 태자가 궁중을 나간 뒤에 날이 밝아지자 야수다라와 여러 채녀 들은 잠에서 깨어났
는데, 태자가 보이지 않는지라 슬피 부르짖으며 울다가 곧 마하파사파제에게 가서 여쭈었다.
‘오늘 아침에 갑자기 태자가 어디 계신지를 모르겠습니다.’
마하파사파제는 이 말을 듣고 기절하여 땅에 넘어져 버렸다. 이렇게 하여 차츰차츰 왕까
지 알게 되자 왕은 이 말을 듣고 우두커니 소리가 없다가 정신을 잃었는데, 마치 온몸이 죽
어버린 것과 같아졌으며, 온 궁중 안팎이 다 역시 그와 같았었다.
때에 대신들은 곧 들어가서 태자의 살던 곳을 조사하였고 궁성을 순찰하자 성의 북쪽 문
이 저절로 이미 열리어 있음을 보았으며, 또 다시 차익과 건척이 보이지 않았으므로 바로
문지기에게 물었다.
‘누구가 이를 열었느냐?’
서로가 알아 보아도 모두가 모르겠다고 하므로, 아울러 방위하던 사람들에게 물어도 역시
이 문이 열려진 뜻을 모르겠다고 하는지라 때에 대신은 생각하였다.
‘북쪽 문이 이미 열렸으니 태자는 반드시 여기로 나갔으리니, 빨리 태자의 계신 데를 찾
아야겠구나.’
그리고는 곧 천 수레와 만의 말에게 칙명하여 잇달아 사방으로 내보내어 태자를 좆아 찾
게 하였으나 하늘의 힘 때문에 길을 헷갈려 잃어버리고 가는 데를 몰랐으므로 곧 돌아와서
는 대왕에게 아뢰었다.
‘태자를 찾아보았사오나 계신 데를 모르겠습니다.’
그 때 차익은 걸어서 건척과 꾸미개들을 끌고 슬피 울며 목이 메어서 길을 따라 돌아오는
데, 온 읍의 인민들이 목이 메어서 길을 따라 돌아오는데, 온 읍의 인민들이 이를 보고 놀라
며 괴로워하지 않는 이 없이 모두 다 다투며 와서 차익에게 물었다.
‘너는 태자를 보내어 어느 곳에 두고서 이제 건척과 혼자만이 돌아오느냐?’
차익은 여러 사람들의 이런 질문을 받고 갑절이나 더 슬퍼하면서 대답을 못하였는데, 이
인민들은 비록 건척이 안장을 7보로 장엄은 하였으나 태자가 보이지 않는지라, 마치 죽은
사람이 꽃과 비단으로 꾸며 있음과 같았다.
이에 차익이 먼저 궁성으로 들어가니 건척이 슬피 울었는데, 여러 마구에서 말들이 한꺼
번에 슬피 울었으므로 밖의 여러 관속들이 마하파사파제와 야수다라에게 아뢰었다.
‘차익만이 건척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이 말을 듣고 땅에 뒹굴어져서 생각하였다.
‘이제 차익과 건척이 서로 따르며 함께 돌아왔다는 것만 들리고 태자가 돌아왔다고 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구나.’
마하파사파제는 이런 말을 하였다.
‘내가 태자를 길러서 나이가 장대하여졌는데, 하루아침에 나를 버려 있는 데를 모르겠구
나. 마치 과일나무에 꽃이 맺어서 열매가 되었다가 익으려 하는데 땅에 떨어져버린 것과 같
으며, 또 굶주린 사람이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을 만나서 먹으려 하는데 갑자기 엎어져버린
것과 같구나.’
야수다라는 또 스스로 말하였다.
‘나와 태자는 가고.서고.앉고.눕는 데에 서로가 멀리 여의지를 않았거늘, 이제 나를 버리
고 간 데조차 모르겠구나. 옛날에 여러 왕들도 산에 들어가 도를 닦으면 모두가 처자를 데
리고서 잠시도 서로가 버리지 않았다. 세간의 사람들은 한 번 만나서 서로가 알았다가 이별
하여도 서로가 잊어버리지 아니하거늘, 부부간의 정은 은애와 사랑이 깊은데도 이에 도리어
이렇듯 야박하실까.’
그리고는 차익을 힐난하였다.
차라리 지혜로운 이들과 원수를 맺을지언정 어리석은 사람과는 함께 친할 것이 못되도다.
너 미련퉁이야, 몰래 태자를 전송하여 어디다 두고 이 석가 성바지가 다시는 흥성하지 못하
게 하느냐?.’
또 건척을 책망하였다.
‘너는 태자를 싣고 이 왕궁을 나가면서 떠나갈 때쯤 되어서는 고요히 소리조차 없이 하
다가 이제야 빈 것으로 돌아와서 무슨 뜻으로 슬피 울었느냐?’
그 때에 차익은 곧 대답하였다.
‘저와 건척만을 책망하지 마십시오. 왜냐 하면 이것은 바로 하늘의 힘이었고 사람으로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날 저녁에 부인과 채녀들은 모두가 다 혼곤히 잠이 들었는데 태자께
서 저에게 칙명하여 일으켜 말을 차리게 하셨으므로 저는 그 때에 크고 높은 소리로써 태자
에게 간하면서 부인과 채녀들이 이를 듣고 놀라 깨어나게 하려 하였으며 건척을 차렸지만
도무지 깨어난 이가 없었습니다.
성문이 열린 적마다 40리를 들리는 데도 그러한 때에만은 저절로 열려지고 또 소리 하나
없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이 어찌 하늘의 힘이 아니었겠습니까?
성을 나갈 때에는 하늘이 여러 신들에게 손으로 말의 발을 바치고 저를 붙안았으며, 허공
의 하늘들로서 따라 모신 이가 수없었는데 제가 어떻게 하여 중지시킬 수가 있었겠나이까?
때에 하늘이 밝자 3요자나를 갔었으며, 저 발가 선인이 사는 데에 이르러서는 또 여러 가
지의 기특하고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원컨대 저의 말씀을 들어 주십시오. 태자께서 발가 선인이 고행하는 숲 속에 이르시어 말
을 내리면서 손으로 말의 등을 어루만지며 아울러 저에게 명령하여 궁성으로 돌아가게 하시
는지라, 저는 이 때에 태자를 따라 모시며 영원히 돌아올 뜻이 없었는데도 태자는 보내면서
끝끝내 머물기를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또 저에게 나오셔서 7보의 칼을 가지시고 스스로 부르짖기를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서 아
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기 위하여 장식한 것을 버리고 수염과 머리칼을 깎아 없애셨으
니, 나도 이제 모든 부처님네의 법에 의지하리라) 하며 이런 말씀을 하여 마치시고, 곧 보배
관과 명주를 벗어서 모두 저에게 맡기며 왕의 발 아래 놓아두게 하셨고, 또 영락을 마하파
사파제에게 드리도록 하셨으며, 나머지의 꾸미개를 야수다라에게 드리도록 하셨습니다.
저는 그 때에 비록 이런 가르침을 들었었으나, 오히려 좌우에서 모시면서 돌아오려는 뜻
이 없어 하자, 때에 태자께서는 문득 날카로운 칼로써 스스로 수염과 머리칼을 깎으셨는데,
하늘이 공중에서 따라 받아 가지고 떠나갔었습니다.
바로 앞으로 나가시다가 사냥꾼을 만나서는 몸에 입으셨던 7보의 아름다운 옷을 사냥꾼에
게 주시고 가사와 바꾸셨는데, 이에 허공에서는 큰 광명이 있었습니다. 저는 태자의 형상과
의복이 변하셨음을 보고 그의 뜻을 반드시 돌리 수 없음을 깊이 알아차리자, 저는 곧 기절
하고 마음으로 크게 괴로워하였습니다.
태자께서 나아가시다가 발가 선인이 사는 곳에 이르러서야 저는 곧 거기에 작별하고 돌아
왔습니다. 이 여러 가지 기특한 것이 모두 이는 하늘의 힘이요, 사람의 힘은 아니었습니다.
원컨대 저와 건척을 책망하지 마십시오.’
때에 마하파사파제와 야수다라는 차익이 하는 이러한 말을 듣고 나서는 마음에 조금은 깨
닫고서 잠자코 소리가 없었다.
그 때 백정왕은 기절하였다가 비로소 깨어나서 칙명으로 차익을 불러서는 말하였다.
‘너는 어째서 여러 석가 성바지들에게 큰 괴로움이 생기게 하였느냐? 나는 엄한 금제령
을 두어서 안팎의 관속들에게 칙명하며 태자를 수호하게 하면서 그의 집 떠날 것을 두려워
하라 하였거늘, 너는 또 무슨 뜻에서 곧 건척을 차리어 태자에게 주며 몰래 떠나가 버리게
하였느냐?’
차익은 듣고 나서 크게 두려워하면서 왕에게 여쭈었다.
‘태자께서 성을 나가신 것은 실로 저의 허물이 아니옵니다. 오직 원하옵나니, 저의 자세
한 말씀을 들어 주옵소서.’
그리고는 곧 보배의 관과 상투 속의 명주를 왕의 발아래에 놓으면서 말하였다.
‘태자는 저에게 이 관과 구슬을 왕의 발아래 놓게 하고, 7보의 영락은 마하파사파제에게
드리라 하고 나머지 꾸미개는 야수다라에게 드리도록 하셨습니다.’
왕은 여러 물건들을 보고 갑절이나 더 슬퍼하였나니, 비록 또 나무와 돌이더라도 느낌이
있거늘 하물며 부자간의 은애와 사랑의 깊음이겠는가.
차익은 자세히 앞의 일들을 왕에게 아뢰었다.
‘태자께서 저에게 칙명하시기를, (부왕께서 만약 본래 아들을 둘 것을 약속으로 집 떠나
기를 허락하였거늘 이제 아직 아들을 두지 못하였으면서 어찌하여 떠나갔느냐라고 하시면,
떠나려 할 때에 미처 여쭙지 못한 것을 너는 나를 위하여 자세히 부왕게 대답하되, 야수다
라는 오래부터 이미 임신하였사오니, 왕께서 물어보심이 마땅하오리다. 옛날에 칙명(勅命)이
그러하였으므로 제멋대로 한 것은 아닙니다라고 하라)고 하였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곧 야수다라에게 묻게 하였다.
‘태자가 말하는데, 너는 오래 전에 이미 임신하였었다하니 사실이 그러하느냐?’
야수다라가 대답하였다.
‘대왕께서 이 궁전에 오셨을 적에 태자가 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는데, 바로 임신하게
된 것을 알았습니다.’
왕은 그의 말을 듣고 기특한 마음을 내며 근심과 괴로움을 잠시나마 쉬면서 생각하였다.
‘내가 전에 허락한 까닭은 아들이 있게 되면 집떠나기를 허락하겠다고 하였지만 7일 동
안에 반드시 아들이 있을 리가 없고 전륜왕의 왕위는 저절로 이르겠기에 그러하였거늘 7일
미만에 문득 임신하리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였다. 깊이 자신의 허물이 애처롭구나. 지혜가
얕고 짧아서 썼던 방편으로는 그를 머무르게 할 수 없었으니, 경솔하게 이런 약속을 하여
더욱 더 뉘우쳐만 지는구나. 태자의 귀신 같은 지략이야말로 사람들의 뜻을 뛰어났으며 오
늘의 일은 또한 바로 여러 큰 하늘의 힘까지 겹쳐진 것을 나는 이제 차익만을 책망해서는
안 되겠구나.’
때에 백정왕은 생각하였다.
‘태자의 집 떠난 것은 반드시 돌릴 수도 없거니와 설사 다시 다른 방편을 써서도 역시
만류할 수는 없다. 비록 또 나라를 버리고 집을 떠나서 도를 배우기는 하되, 그러나 이미 아
들을 두었으니 후사는 끊어지지 않았도다. 나는 이제 야수다라에게 칙명하여 배에 있는 아
들이나 잘 보호하도록 하여야겠구나.’
때에 백정왕은 사랑스런 생각과 정이 깊은지라 차익에게 말하였다.,
‘나는 이제 태자를 찾아 나가야겠다. 지금쯤 바로 어디에 있는 줄 모르겠느냐? 그는 이
제 이미 나를 버리고 도를 배우는 터인데 날들 다시 어찌 차마 혼자야 생활하겠느냐. 곧 좇
아가서 그의 있는 데를 따르리라.’
그 때에 왕사(王師)와 대신은 왕이 태자를 찾아 나서려 한다 함을 듣고 두 사람이 함께
와서 왕에게 간하였다.
‘대왕께서는 스스로 근심하거나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왜냐 하면 제가 태자를 자세히 살
피며 그의 모습을 보건대 과거의 세상 동안에 오래 이미 집을 떠나는 업을 닦고 익혔습니
다. 설령 다시 석제환인이 되라 하여도 즐겨하지 않겠거든 하물며 또 이제 전륜왕의 왕위로
서 만류하겠습니까?
대왕께서는 기억하시지 않습니까? 태자께서 처음 탄생하여 일곱 걸음을 가서 손을 들고
서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생(生)은 이미 다하여 바로 마지막 몸이로다)라고 하셨으며, 여러
범천왕과 세제환인이 모두 내려와서 따랐습니다.이와 같이 기록(奇特)하셨거늘 어찌하여 세
상을 즐기겠습니까.’
또 다시 왕에게 아뢰었다.
‘아시타 신선이 옛날에 태자의 관상을 보면서 나이 열아홉 살이 되면 집을 떠나 도를 배
우며 반드시 일체 종지를 성취하리라 하셨습니다. 이제 때가 이미 이르렀거니 대왕께서는
무엇 때문에 근심하고 괴로워하십니까?
또 대왕께서는 엄히 안팎에 칙명하여 태자를 수호하게 하면서 집 떠날 것을 두려워하셨지
만 여러 하늘이 와서 인도하여 성을 나가시게 하였으니, 이와 같은 일이야말로 사람의 힘은
아닙니다. 오직 원컨대 대왕은 기쁨을 내셔야 합니다. 수심과 괴로움은 품지 마시고 몸소 나
가실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 태자를 생각하며 오히려 마지 않으시겠다면 제가 이제 대신과
함께 계신 데를 찾아 가겠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마음으로 생각하였다.
‘나도 태자를 돌릴 수 없다 함은 알고 있으며 차마 버리지는 못하겠지만 따르기까지는
않으리라. 이제 시험 삼아 스승과 대신에게 한 번 찾도록 하여야겠다.’
곧 스승과 대신에게 대답하였다.
‘장하십니다. 떠나가십시오. 온 궁중(宮中) 안팎이 마음으로 모두 괴로워하면서 기다리고
있으리니, 속히 돌아오십시오.’
이에 왕사와 대신은 즉시 작별하고 나가서 태자를 따르며 찾았다.
과거현재인과경 제3권
그 때 백정왕은 왕사와 대신을 보내고 난 뒤에 곧 태자의 영락을 마하파사파제에게 주면
서 말하였다.
‘이것이 바로 태자가 입었던 영락인데, 차익에게 맡겼기에 돌아와서 당신에게 주게된 것
이오.’
마하파사파제는 영락을 보고 나서 갑절이나 더 슬퍼하면서 생각하였다. ‘사천하의 인민
들이 아주 박복하구나 이 밝고 지혜로운 전륜성왕을 잃었으니 말이다.’
또 나머지의 꾸미개들을 보내어 야수다라에게 주면서 말하였다.
‘태자는 이 몸을 꾸몄던 꾸미개들을 너에게 주도록 하였단다.’
야수다라는 이 물건들을 보자마자 기절하여 땅에 넘어져버렸으므로 왕은 또 사람을 파견
하여 야수다라에게 칙명하여 스스로 아끼고 공경하게 하여서 태 안의 아이가 편안하지 못한
일이 없게 하였다.
그 때 왕사와 대신은 발가 선인이 고행을 하는 숲 속에 이르러서 시종하던 사람들과 여러
의식의 장식들을 물리쳐 없애고서 곧 신선이 살고 있는 곳으로 나아가매 신선이 앉기를 청
하므로 서로가 문안하고서 이에 왕사는 신선에게 말하였다.
‘저는 바로 백정왕의 스승인데, 이제 여기까지 온 까닭은 저 백정왕의 수족인 태자께서
나고촵늙고촵병들고 죽음의 고통을 싫어하여 집을 떠나 도를 배우러 이 숲을 따라서 지나
갔었는데 큰 신선께서는 보셨습니까?’
발가 선인은 왕사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요사이 여기에서 한 동자를 보았었는데, 얼굴 모습이 단정하고 상호가 완전히 갖
추었습니다. 이 숲에 들어왔었기에 나와 함께 의론을 하면서 드디어 하룻밤을 묵고 갔었거
니와 바로 이 분이 왕의 태자인 줄을 몰랐습니다. 우리들이 닦는 도가 비천하다 하여 여기
서 북쪽으로 갔었는데, 저 신선인 아라라(阿羅邏)와 가란(迦爛)에게 나아갔을 것입니다.’
그 때에 왕사와 대신은 이 말을 듣고 곧 빨리 그 신선의 처소에 나아가다가 중도에서 태
자가 나무아래에 단정히 앉아서 생각하고 있음을 멀리서 보았는데 상호의 광명이 해와 달
보다 뛰어났는지라, 곧 말에서 내리며 시종들을 물리치고 모든 의식의 복장을 벗어버리고
태자에게 나아가 한쪽에 앉아서 서로 문안을 하고, 왕사는 태자에게 아뢰었다.
‘대왕께서 태자를 찾게 하시면서 드릴 말씀을 전하려 합니다.’
태자는 대답하였다.
‘부왕께서 당신을 보내시며 무슨 말씀을 하라 하셨습니까?’
왕사는 말하였다.
‘대왕은 오랫동안 태자께서 깊이 집을 떠나시려 하였고 이 뜻은 돌리기 어렵다는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태자에 대한 은혜와 애정이 깊어서 근심 걱정으로 타오르는 불이
언제나 자연히 훨훨 타고 계시는데, 태자께서 돌아오셔야만 꺼지실 것입니다. 원컨대 곧 수
레를 돌려도 태자에게는 도의 일을 온전히 버리도록 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마음을 고요
하게 하시는 곳이란 반드시 산이거나 숲만이 아닙니다. 마하파사파제와 야수다라며 안팎의
권속들은 모두가 다 근심과 괴로움의 큰 바다에 떨어져 있으니, 태자는 돌아가실 것을 생각
하시며 그들을 구제하십시오.’
그 때에 태자는 왕사의 말을 듣고 깊숙하고도 묵직한 소리로써 왕사에게 대답하였다.
‘제가 부왕께서 저에 대한 은정이 깊은 줄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다만 나고촵늙고촵병들
고촵죽음의 괴로움을 두려워하여 그 때문에 여기에 와서 끊어 없애려한 것입니다. 만약 은
혜와 사랑을 마치는 날까지 만나고 모이게 하거나 또 나고촵늙고촵병들고촵죽음이 없게 하
였다면 저는 또 무엇 하러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저는 이제 부왕을 어기고 멀리하는 까닭은 장래에 화합을 하려 하기 위해서이므로 부왕의
근심 걱정하는 큰불이 지금은 비록 훨훨 탄다 하더라도 저와 부왕은 오직 금생에 있는 이
한 고통만이 남아 있으며 장차 오는 세상에서는 저절로 영원히 이런 근심을 끊어질 것입니
다.
만약 당신의 말씀대로 저를 궁중에서 살면서 도의 일을 닦게 한다 하면 마치 7보의 집의
안에 불꽃을 가득히 채움과 같거늘 어떤 사람이 이 집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독이 섞인 밥과 같아서 설령 굶주린 사람이 있다하더라도 마침내 먹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이미 나라를 버리고 집을 떠나서 도를 닦고 있거늘 어떻게 나에게 다시 궁성에 돌아
가서 도를 배우고 닦게 하겠습니까?
세간 사람들은 큰 고통 속에 있으면서도 조그마한 즐거움을 위해서 오히려 빠져서 잠깐도
버릴 수가 없거든 하물며 저는 이 극히 조용한 곳에서 모든 근심과 괴로움이 없거늘 잘 버
리고 서는 도로 나쁜 데에 나아가겠습니까?
옛날의 여러 왕들은 산에 들어가서 도를 닦다가 중도에서 돌아가 애욕을 받은 일이 없었
습니다. 부왕께서 만약 반드시 저를 돌아오게 하려 하신다면 곧 이는 선왕(先王)들의 법을
어긴 것입니다.’
그 때에 왕사는 태자에게 아뢰었다.
‘진실로 태자께서 지금의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그러나 여러 신선이며 성인들도 한 분
은 말하기를, (미래에는 결정코 과보가 있다)라고 하였고, 한 분은 말하기를, (결정코 이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두 신선이며 성인들도 오히려 미래 세상 안에서 반드시 있다 없다 함
을 알지 못하셨거든 태자는 어찌하여 현재의 안락을 버리고 미래의 정해 있지 않은 과보를
구하려 하십니까? 나고 죽음의 과보는 오히려 결정코 있느냐 없느냐를 알 수 없거늘 어떻게
해탈의 과보를 구하려 하십니까? 오직 원컨대 태자께서는 곧 궁중으로 돌아가십시다.’
그러자 태자는 대답하였다.
‘저 두 신선이 미래의 과보를 설명하면서 한 분은 (있다)하고 한분은 (없다)하니, 모두
이는 의심을 하며 결정적인 설명이 아니거니와 나는 이제 마침내 그들의 가르침을 닦거나
따르지를 않을 것이므로 이것으로써 힐난 하지 마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과보를
바라거나 그리워하여 여기에 온 것이 아니며 눈으로 보게 된 나고 늙고촵병들고촵죽음을 반
드시 겪어야 하겠기에 해탈을 구하고 이 괴로움을 면하기 위해서 일뿐이기 때문입니다. 당
신은 오래지 않아 내가 도를 이룸을 보게 될 것이며, 나의 이 뜻과 소원은 마침내 돌일 수
없으리라. 돌아가서 부왕에 여쭙되 이와 같이 말씀하여 주십시오.’
그 때에 태자는 이런 말을 하여 마치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왕사며 대신과 작별하고 북쪽
으로 가면서 아라라와 가란 선인들의 처소로 나아갔다.
때에 왕사와 대신은 태자가 떠나감을 보고 슬피 울며 괴로워하였나니, 첫째는 태자와 정
이 깊었음을 생각하였음이요, 둘째는 왕의 사자로서 명을 받아 태자의 처소에까지 왔으면서
도 그의 뜻을 움직이지 못하였는지라 길 곁을 이리저리 거닐면서 스스로 돌아갈 수가 없었
으므로 서로가 함께 의논하였다.
‘이미 왕의 사자가 되어서 성과가 없이 이제 빈 것으로 돌아가게 되었으니 어떻게 대답
을 올리겠소. 우리들을 따라온 다섯 사람을 머물러 두어야겠습니다. 그들은 총명하고 슬기로
우며 마음과 뜻이 부드럽고 성품 됨이 성실하고 정직하며 성바지도 강한 이들이니 은밀히
엿보고 살피며 그의 나아가고 머무름을 보살피게 하십니다.
이런 말을 하여 마치고 그 곁을 돌아보며 교진여(?陳如) 등 다섯 사람을 보면서 말하였
다.
‘너희들은 모두 여기에 머무를 수 있겠느냐?’
다섯 사람은 대답하였다.
‘좋습니다.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나아가고 머무르는 행동을 은밀히 엿보며 살피겠습니
다.’
그리고는 곧 작별을 하며 태자의 처소로 나아가자 왕자와 대신은 궁성으로 돌아왔다.
그 때 태자는 저 아라라와 가란 선인이 살고 있는 곳으로 나아가다가 항하(恒河)를 건너
왕사성을 지나는 길에 성을 들어갔더니, 여러 인민들이 태자의 얼굴 모습과 상호가 특수함
으로 보고 기뻐하여 사랑하고 공경하면서 온 나라가 모두 달려 와서 쳐다보며 이렇게 떠들
썩하게 지껄이는지라 빈비사라왕(頻毘婆羅王)이 듣고 왕은 곧 놀라며 물었다.
‘이것이 바로 무슨 소리들이냐?’
신하들이 대답하였다.
‘백정왕의 태자 살바 실달타는 옛날에 여러 관상쟁이들이 그는 전륜왕의 자리를 얻어서
온 천하의 왕 노릇을 하리라고 예언하였고 또 다시 그가 만약 집을 떠나면 반드시 일체 종
지를 성취하리라고 예언하였었는데, 그 사람이 지금 이 성에 들어왔으므로 밖의 여러 인민
들이 다투어 달려가서 구경을 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떠들썩하게 지껄이는 것입니다.’
때에 빈비사라왕은 이 말을 듣고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며 온몸을 뛰놀면서 곧 한 사람에
게 칙명하여 가서 태자가 있는 곳을 살피게 하였으므로, 사자는 칙명을 받고 태자를 찾아나
가서는 반다바(般茶婆)산의 한 돌 위에 단정히 앉아서 생각을 하고 있음을 보고는 때에 사
자는 곧 돌아와서 대왕에게 자세히 아뢰었으므로 왕은 곧 수레를 차리어 여러 대신이며 백
성들과 함께 태자의 처소에 나아가서 반다바산에 이르러 멀리서 태자를 보니 상호의 광명이
해와 달보다 뛰어났는지라 곧 말에서 내리어 몸의 장식과 여러 시종들을 물리치고 나아가
앉아서 태자에게 문안하였다.
‘네 가지 요소가 모두 고르고 온화하십니까? 제가 태자를 보매 마음이 매우 기쁩니다만
그러나 한 가지 슬픔이 있습니다. 태자는 본래 이는 해의 성바지로서 오랜 세상을 서로 이
으면서 전륜왕이 되었었으며, 태자도 지금 전륜왕의 상호가 모두가 완전히 갖추어 계시거늘
어찌하여 버리시고 깊은 산에 들어와서 모래와 흙을 밟고 깔며 멀리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제가 이것을 보고서 슬퍼합니다.
태자께서 만약 부왕께서 지금 계시기 때문에 전륜성왕의 자리를 가지려 하시지 않으시면
장차 저의 나라를 반씩 나누어 다스립시다. 만약 적다고 생각되시면 저는 나라를 다 버리고
신하로써 태자를 섬기겠습니다. 만약 또 저의 이 나라도 가지시지 않겠으면 네 가지 군사를
드릴 터이니, 몸소 다른 나라를 쳐서 가지십시오. 태자께서 하고 싶은 바라면 어기지를 아니
하겠습니다.’
그 때에 태자는 빈비사라왕의 이 말을 듣고 깊이 그의 뜻에 감동하여 곧 왕에게 대답하였
다.
‘왕의 성바지는 본래 밝은 달[明月]이신지라 성품이 자연히 높고 시원하며 비루한 일을
하지 아니하고 하는 일들은 맑고 훌륭하지 않음이 없으신데 이제 하시는 말씀만은 기특하시
다고 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왕을 자세히 살피건대 속의 뜻이 지극히 간절하므로 앞보다 뒤가 갑절이나
되십니다.
왕은 이제 곧 몸과 목숨과 재물에 대한 세 가지 굳건한 법을 닦으실 것이요, 또한 굳건하
지 못한 법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권장하지 마셔야 합니다.
나는 이제 전륜왕의 자리를 버렸거늘 또한 무슨 일로 왕의 나라를 가져야 합니까? 왕은
착한 마음으로써 나라를 버리어 나에게 주겠다는 것도 오히려 갖지 않겠거든 무엇 때문에
군사로써 남의 나라를 쳐서 가지겠습니까? 나는 이제 부모를 작별하여 수염과 머리칼을 깎
아 없애고 나라를 버리게 된 까닭은 나고.늙고.병들고.죽음의 괴로움을 끊기 위해서요, 다섯
가지 욕심의 즐거움을 구하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세간에 다섯 가지의 욕심은 큰 불더미와
같아서 모든 중생들을 불사르며 스스로 뛰어 나올 수 없게 하거늘 어찌하여 나에게 탐내고
집착하기를 권하십니까?
내가 이제 여기까지 온 까닭은 두 신선인 아라라와 가란이 바로 해탈을 구하는 가장 으뜸
되는 길잡이라 하기에 그 곳에 나아가서 해탈의 도를 구하려 한 것이요, 오래 여기에서 머
무르지 않겠습니다.
나는 왕의 처음에 하신 말씀과 기쁜 마음으로 나에게 주신 것을 어겼으나 싫어하거나 원
망을 하지 마십시오. 왕은 이제 바른 법으로써 나라를 다스릴 것이며 인민들을 그릇되게 하
지 마십시오.’
이런 말을 하여 마치고 태자는 곧 일어나서 왕과 작별하였다.
때에 빈비사라왕은 태자가 떠나감을 보고 깊이 크게 실망하여 탄식하며 합장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처음 태자를 보자 마음이 크게 뛰놀더니, 태자가 떠나니 갑절이나 슬픔과 괴로움이 생
깁니다. 당신은 이제 큰 해탈을 위하여 떠나가시겠다면 감히 만류하지는 않겠습니다. 오직
원컨대 태자께서는 기대하신 바를 빨리 이루십시오. 만약 도가 이루어지시면 먼저 저를 제
도하여 주십시오.’
태자는 이에 작별하고 떠나갔으며, 때에 왕은 받들어 보내며 길곁에 서서 보이는 데까지
바라보다가 보이지 않자 비로소 돌아왔다.
그 때 태자는 곧 나아가 그 아라라선인의 처소에 이르렀는데, 때에 여러 하늘들은 신선에
게 말하였다.
‘살바 실달께서 국토를 버리고 부모를 이별하고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구하여 일체
중생들의 괴로움을 뽑아 주려고 이제 이미 오셔서 여기에 이르려고 합니다.’
때에 그 신선은 이미 하늘의 말을 듣고서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는데 얼마 안 되어 멀리서
태자가 보이므로 곧 나가서 받들어 영접하면서 찬찬하였다.
‘잘 오셨습니다.’
그리고는 함께 사는 곳으로 돌아와서 태자를 청하여 앉혔다. 이 때에 신선이 태자의 얼굴
모습을 보았더니 상호가 완전히 갖추어지고 모든 감관이 편하고 조용하였으므로 기이 애정
과 공경심을 내면서 태자에게 물었다.
‘길을 가시느라고 고달프시지는 않습니까? 태자께서 처음 탄생하심과 집을 떠나서 또 여
기까지 오시게 됨을 나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능히 불더미에서 몸소 깨치고서 나오셨고 또
큰 코끼리가 덧 가운데서 스스로 벗어남과 같습니다.
옛날의 여러 왕들은 한창일 때에는 다섯 가지 욕심을 마음껏 받다가 감관이 늙어짐에 이
르면 그런 후에야 곧 나라와 즐거움의 도구를 버리고 집을 떠나서 도를 배웠으므로 이는 기
특할 거리가 못되었거니와 태자께서는 이제 이 한창인 나이에 다섯 가지 욕심을 능히 버리
고 멀리 여기까지 오셨으니, 참으로 특수하삽니다. 부지런히 힘써 나아가시어 속히 저 언덕
을 건너셔야 하시리다.’
태자는 듣고 대답하였다.
‘저는 당신의 말씀을 들으니 매우 기쁩니다. 당신은 저를 위하여 나고촵늙고촵병들고촵
죽음을 끊는 법을 말씀하시면 저는 이제 즐거이 듣겠습니다.’
신선은 대답하였다.
‘장하고 장하십니다.’
그리고는 곧 설명하였다.
‘중생들의 시초는 명초(冥初’)에서 시작되었나니, 명초로부터 아만(我
慢)이 일어나고 아만으로부터 어리석은 마음이 나고 어리석은 마음으로부터 염애(梁愛)가
일어나고 염애로부터 다섯 가지 미세한 티끌의 기운[五微塵氣]이 나고 다섯 가지 미세한 티
끌의 기운으로부터 5대(大)가 나고 5대로부터 탐냄과 성냄 등의 모든 번뇌가 나서 이에 나
고촵늙고촵병들고촵죽음에 헤매면서 근심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나니, 이제 태자를 위하여
간략히 말하였을 뿐입니다.’
그 때에 태자는 곧 물었다.
‘저는 지금 이미 당신이 말씀하신 나고 죽음의 근본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시 어떠한 방
편으로 끊을 수 있습니까?’
신선은 대답하였다.
‘만약 이 나고 죽음의 근본을 끊으려 하면, 먼저 집을 떠나서 계행을 닦아 지니고 겸손
하고 낮추어서 욕됨을 참으며 비고 한가한 데 머물러서 선정을 닦아 익히되 욕심세계의 악
하고 선하지 못한 법을 여의고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는 초선(初禪)을 얻으며, 각관(覺
觀)을 없애고 정(定)에서 생기는 기쁜 마음[喜心]으로 제2선(禪)을 얻으며, 기쁜 마음을 버리
고 바른 생각으로 즐거움[樂]의 뿌리를 갖추어 제3선(禪)을 얻으며, 괴로움과 즐거움을 버리
고 청정한 기억으로 평정[捨]의 뿌리에 들면서 제4선(禪)을 얻어 생각이 없는 과보[無想報]
를 얻습니다.
특별히 어떤 스승은 이와 같은 것을 말하여 해탈이라 이름을 하는데, 선정으로부터 깨치
고 나서 그런 뒤라야 해탈의 자리가 아닌 줄 압니다.
빛깔[色]이란 생각을 떠나서 ‘공’한 곳에 들며 대경(對境)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스러져
서 의식[識]이란 곳에 들며 한량없는 의식이란 생각이 스러져서 오직 한 의식이라 함만 자
세히 살피어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며 갖가지의 생각을 떠나서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
處)에 드나니, 이 곳을 마지막의 해탈[完議解脫]이라 하며, 이것이 모든 배우는 이들의 저
언덕[彼岸]입니다.
태자께서 만약 나고촵늙고촵병들고촵죽음의 근심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이와 같은 행을
닦아야 합니다.’
그때에 태자는 신선의 말을 듣고 마음이 기쁘거나 즐겁지 않는지라 곧 생각하였다.
‘그의 아는 바와 소견은 마지막이 아니며 이는 영원히 모든 번뇌를 끊는 것이 아니로
다.’
그리고는 곧 말하였다.
‘저는 지금 당신이 말씀하신 법 가운데는 아직 이해하지 못할 곳이 있으므로 이에 묻고
자 합니다.’
신선이 대답하였다.
‘공경하면서 물는 뜻을 좇겠습니다.’
그러자 곧 물었다.
‘생각도 생각 아님도 아닌 곳에는 내가 있습니까? 내가 없습니까? 만약 내가 없다고 하
면 생각도 생각 아님도 아니라고 말씀해서는 안 되며, 만약 내가 있다고 하면 나에게는 앎
이 있습니까? 나에게는 앎이 없습니까? 나에게 앎이 없다고 하면 곧 나무와 돌과 같을 것
이요, 나에게 만약 앎이 있다고 하면 곧 반연(攀緣)함이 있을 것입니다. 이미 반연이 있으면
물듦과 집착이 있으며 물듦과 집착이 있기 때문에 해탈이 아닙니다.
당신은 거친 번뇌는 다하였으나 미세한 번뇌가 아직 존재함을 스스로 모릅니다. 그 때문
에 마지막이라 생각되나 미세한 번뇌는 더욱 자라나서 다시 내려와 태어남을 받습니다. 이
때문에 저 언덕을 건넌 것이 아닌 줄 아십시오. 만약 나와 나라는 생각을 없애서 온갖 것을
다하여 버리면 이것이 곧 참 해탈이라 하는 것입니다.’
신선은 잠잠하며 마음으로 생각하였다.
‘태자의 말하는 바가 매우 미묘하구나.’
그 때 태자는 다시 신선에게 물었다.
‘당신은 나이 얼마에 집을 떠나셨으며, 맑은 행을 닦아 온 지가 또 몇 년이나 되십니
까?’
신선은 대답하였다.
‘나는 나이 열여섯 살에 집을 떠났었고, 맑은 행을 닦아 온 지는 104년입니다.’
태자는 듣고 나서 생각하였다.
‘집을 떠난 지가 이렇게 오래되었지만 얻게 된 법은 바로 이렇구나.’
때에 태자는 훌륭한 법을 구하기 위하여 곧 자리에서 일어나면 신선과 작별을 하자, 그
때에 신선은 태자에게 말하였다.
‘나는 오랫동안 오면서 이런 고행을 익혀서 얻게 된 결과는 바로 이런 것뿐인데, 당신은
바로 왕의 성바지로서 어떻게 고행을 닦을 수 있겠습니까?’
태자는 대답하였다.
‘당신이 닦으신 것과 같은 것은 고행이 되지 않습니다. 따로 가장 괴롭고 행하기 어려운
도가 있습니다.’
신선은 이미 태자의 지혜로움을 보고 또 뜻이 굳건해서 이지러지지 않았음을 자세히 살피
고는 틀림없이 일체 종지를 이룰 것을 알고서 태자에게 아뢰었다.
‘당신이 만약 도가 이루어지면, 원컨대 먼저 나를 제도하여 주십시오.’
이에 태자는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십시다.’
다음에 가란이 살고 있는 곳에 닿아서 논의하고 문답하였으나 역시 그와 같았으므로, 태
자는 곧 길을 떠나갔다.
때에 두 신선은 태자가 떠나감을 보고 저마다 생각하였다.
‘태자의 지혜야말로 깊숙하고 미묘하며 기특한지라 이에 헤아리기가 어렵구나.’
그리고는 합장하고 받들어 보내면서 보이지를 않자 곧 돌아왔다.
그때 태자는 아라라와 가란 등 두 신선을 조복한 뒤에 곧 가자산(迦?山)의 고행하는 숲
속으로 나아갔는데, 이는 교진여 등 다섯 사람이 머무르고 있던 곳이었으므로 곧 니련선하
(尼連禪河) 곁에서 고요히 앉아 생각하였다.
‘중생들의 근기를 자세히 살펴보니 6년의 고행을 하여야 그들을 제도하겠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곧 고행을 닦자, 이에 여러 하늘들은 깨와 쌀을 바쳤다.
태자는 바르고 참된 도를 닦기 위하여 마음을 깨끗이 하고 계율을 지키면서 하루에 한 톨
의 깨와 한 낱의 쌀을 먹으면서도 만약 구걸하는 이가 있으면 역시 보시하였다.
그 때 가전연 등 다섯 사람은 태자를 보매 단정히 앉아서 생각을 하고 고행을 닦으면서
혹은 하루에 한 톨의 깨를 먹기도 하고 혹은 하루에 한 톨의 쌀을 먹기도 하고 혹은 2일 내
지 7일 동안에 한 톨의 깨와 쌀을 먹기도 하였다.
때에 교진여 등도 고행을 닦으면서 태자에게 시봉하며 그 곁을 떠나지 아니하였는데, 이
것을 보고 나서 한 사람을 파견하여 돌아와 왕사와 대신에게 알리며 태자의 하는 일을 자세
히 말하게 하였다.
그 때 왕사와 대신은 함께 궁전 문에 돌아왔는데, 얼굴 모습이 근심에 야위었고 몸의 형
상이 시들부들함이 마치 어떤 사람이 그의 어버이를 잃고 장례를 치른 뒤에 억지로 참으며
돌아옴과 같았다.
때에 문지기는 왕에게 아뢰었다.
‘스승과 대신이 지금 문 밖에 있습니다.’
왕은 듣고 기가 막혀서 소리도 못 내고 몸과 머리만을 겨우 움직이는지라, 때에 문지기는
왕의 이런 뜻을 알고 곧 앞에 나가게 하였는데, 왕은 서로 만나자 슬퍼서 말도 못하다가 이
렇게 하기를 한참하고서 작은 소리로 물었다.
‘태자야말로 이미 이는 나의 생명인데, 그대들은 지금 혼자만이 여기에 돌아왔구료, 나의
생명은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왕사는 대답하였다.
‘저는 왕의 칙명을 받들고 태자를 찾아서 발가 선인이 사는 곳에 이르러서는 태자를 찾
았더니 선인이 저에게 태자의 계신 데를 말하였고 아울러 태자가 하시던 말들을 하여 주었
으므로 저는 곧 앞으로 나아가다가 중도에서 우연히 태자를 만났습니다.
나무 아래 단정히 앉아 생각을 하는데 상호의 광명이 해와 달보다 뛰어났었으므로 곧 태
자를 향하여 대왕과 마하파사파제며 야수다라의 근심하고 괴로워하는 뜻을 자세히 말씀하였
더니, 태자는 깊고도 묵직한 소리로써 대답하였다. (제가 어찌 부왕과 친척들의 은정이 깊은
줄을 모르겠습니까만 다만 나면 죽고 사랑하면 이별하게 되는 괴로움을 두려워하여 끊어 없
애려고 일부러 여기에 왔을 뿐입니다) 하면서, 이렇게 갖가지로 말을 하는데 뜻이 굳어서
마치 수미산을 움직일 수 없음과 같았습니다.
저를 버리고 떠나가기를 마치 지푸라기 버리듯 하였으므로, 그때에 곧 다섯 사람을 선택
하여 따르고 시중하면서 계신 데를 살피게 하였었는데, 보냈던 사람 가운데의 한 사람이 돌
아와서 말하기를, (태자께서는 아라라와 가란 선인들의 처소에 나아가다가 항하(恒河)를 지
나면서는 하늘의 신통력으로써 물을 건너게 되었으며, 왕사성에 이르자 빈비사라왕이 태자
에게 나아가 방편과 비유로 말하면서, 집을 떠나지 말고 나라를 나누어 함께 다스리거나 전
부 다 주겠다고 하기도 하였고 아울러 군사를 내주어 다른 나라를 치게 하려고 까지도 하였
지만, 태자는 역시 모두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즉시 또 앞으로 나아가 선인의 처소에 도
달하여서는 그들을 위하여 법을 말씀하시어 그들의 마음을 항복하였으며, 또 가자산(伽?山)
의 고행하는 숲 속에 이르러 니련선하 주위에서 고요히 앉아 생각을 하며 하루에 한 톨의
깨와 한 톨의 쌀을 잡수고 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백정왕은 왕사와 대신인 그 사자들이 말하는 이와 같은 말을 듣고 마음이 크게 슬
퍼지고 괴로워지며 온몸이 벌벌 떨리며 몸의 털이 모두 곤두서는지라 왕자와 대신에게 말하
였다.
‘태자는 드디어 전륜왕의 자리와 부모며 친척들의 은혜와 사랑의 즐거움을 버리고 멀리
깊은 산에 있으면서 이런 고행을 닦으니, 나는 이제 박복하여 살면서 이러한 값진 보배 아
들을 잃었습니다.’
왕은 즉시 또 사자들이 말하던 바를 마하파사파제와 야수다라에게 말하였다.
때에 백정왕은 곧 5백 수레를 차리고, 마하파사파제와 야수다라 역시 서로가 함께 4백의
수레를 마련하여 온갖 생활의 물품을 모두 다 갖추어 놓고서는 곧 차익을 불러서 말하였다.
‘너는 태자를 보내어 멀리 깊은 산에 방치하였는지라. 이제 또 너에게 이 천의 수레에
양식을 싣게 하여 태자에게 보내는 것이니 때를 따라 공양을 하되 모자라거나 적음이 없게
할 것이며 다되거든 다시 와서 청하여라.’
차익은 칙명을 받고 곧 천의 수레를 거느리고 빨리 떠나가서 태자에게 이르렀더니, 형상
이 여위고 가죽과 뼈가 서로 맞붙어서 혈액이 모두 나타난 것이 마치 바라사화(婆羅奢花)와
같음을 보고는 땅에 엎드려 발에 예배하면서 땅에 기절하였다가 한참 만에 일어나서 눈물을
머금고 말하였다.
‘대왕께서는 태자를 생각하며 밤낮으로 잊지 못하십니다. 이제 일부러 저를 보내며 이
천의 수레를 거느리어 생활거리를 실어 주시면서 태자에게 올리도록 하셨습니다.’
때에 태자는 차익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부모를 어기고 국토까지 버리며 멀리 여기까지 왔음은 지극한 도룰 구하기 위해서
인데, 어떻게 다시 이런 야식을 받겠느냐.’
그때에 차익은 이 말을 듣고 생각하였다.
‘태자께서는 이제 이와 같은 공양을 받지 않으려 하니, 나는 달리 한 사람을 구하여 이
천의 수레를 거느리고 왕에게 돌아가도록 하고 나는 여기에 머무르면서 태자를 받들어 섬겨
야겠다.’
그리고는 곧 한사람을 차출하여 수레를 거느리고 떠나가게 하고는 이에 차익은 은밀히 태
자를 모시며 아침이나 저녁이나 떠나지를 않았다.
그 때 태자는 생각하였다.
‘나는 이제 하루에 한 톨의 깨와 한 톨의 쌀을 먹으며 내지 7일 동안에 한톨의 깨와 쌀
을 먹기도 하므로 몸은 야위어서 마치 마른 나무와 같다. 고행을 닦아서 6년이 다 찼는데
해탈을 하지 못하였으니 짐짓 그릇된 길인 줄 알겠구나. 옛날 염부나무 아래 있으면서 생각
하던 법보다 못하다. 욕심을 떠나고 고요한 이것이 가장 참되고 바르구나.
이제 내가 만약 또 이 파리한 몸으로써 도를 얻는다면 저 외도들은 저절로 굶주림이 바로
열반의 원인이구나 라고 말할 것이므로, 나는 이제 뼈의 마디마디에 나라연(那羅延)의 힘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이로써는 도의 결과를 취득하지 않으리라. 나는 음식을 받아 먹은 연
후에 도를 이루어야 하겠다.’
그리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니련선하에 이르러 물에 들어가서 목욕을 하였는데 목욕하기
를 마쳤으나 몸이 야위었는지라 스스로는 나올 수가 없자 천신이 내려와서 나뭇가지를 눌러
주었으므로 더위잡고서 못을 나올 수 있었다.
때에 그 숲의 바깥에 한 소를 치는 여인으로서 난다바라(難陀波羅)라는 이가 있었는데, 때
에 정거천이 내려와서 권하였다.
‘태자께서 지금 숲 속에 계시니 그대는 공양을 하여라.’
여인은 듣고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는데 때에 땅 속에서 저절로 천 잎사귀의 연꽃이 나면
서 꽃의 위에 젖죽[乳?]이 생겼으므로 여인은 이를 보고 기이한 마음을 내며, 곧 젖죽을 가
지고 태자의 처소에 이르러서 땅에 엎드려 발에 예배하고 받들어 올렸다.
태자(太子)는 곧 그 여인의 보시를 받으면서 주원(呪願)하였다.
‘이제 보시를 하는 음식은 먹는 이에게 기력이 찰 수 있게 하려 함이니, 보시하는 이는
담력을 얻고 기쁨을 얻어서 안락하며 병이 없이 끝까지 오래 살게 될 것이며 지혜가 두루
갖추어지리라.’
그리고 태자는 또 말하였다.
‘나는 일체 중생을 성숙시키기 위하여 이 음식을 받는다.’
주원하기를 마치고 곧 받아서 먹자, 몸이 빛이 나고 기력이 가득 차서 깨달음[菩提]을 지
닐 수 있었다.
그 때 다섯 사람은 이런 일을 보고서 놀라고 괴이히 여기며 물러나는 것이라 하면서 저마
다 살던 데로 돌아가 버렸으므로, 보살은 혼자 가서 필바라(畢波羅) 나무에 나아가 스스로
발원하였다.
‘저 나무 아래 앉아서 나의 도가 이룩되지 않으면 반드시 끝끝내 일어나지 않으리라.’
보살의 덕이 무거운지라 땅이 견뎌 내지를 못하여 때에 걸음걸음마다 땅이 진동을 하며
큰 음성을 하며 큰 음성을 내었는데, 그 때에 눈이 먼 용이 땅의 진동하는 음향을 듣고 마
음이 크게 기뻐지며 두 눈이 떠지면서 밝아졌으므로, ‘일찍이 먼저의 부처님에게서 이런
상서로운 감응이 있음을 보았다’는 생각을 하고는 땅으로부터 솟아 나와서 보살의 발에 예
배를 하였는데, 때에 5백의 콩새가 허공을 날며 보살을 오른편으로 돌았고 여러 빛깔의 상
서로운 구름과 향기 바람이 따르면서 비치고 떨치는지라. 그 때에 눈먼 용은 게송으로 찬탄
하였다.
보살의 발로써 밟으신 곳은
땅이 모두 여섯 가지로 진동하면서
크고도 깊고 먼 음성을 냈으므로
저는 듣고 눈이 떠져 밝아졌나이다.
또 공중을 보건대
콩새가 보살님을 돌고 있으며
상서로운 구름이 아주 곱게 비추고
향기 바람이 매우 맑고 시원하옵니다.
보살의 상서로운 이런 형상이야말로
모두가 과거의 부처님과 같으므로
이로써 보살께서는 반드시
바른 깨달음[正覺]을 이룩할 줄 알겠나이다.
이에 보살은 곧 스스로 생각하였다.
‘과거의 부처님들은 무엇을 자리로 삼으셔서 위없는 도를 이루셨을까?’
그러다가 곧 저절로 풀로써 자리를 삼은 줄 알게 되었는데, 석제환인이 변화로 범인(凡人)
이 되어서 깨끗하고 부드러운 풀을 가지고 있자, 보살이 물었다.
‘그대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대답하였다.
‘길상(吉相)입니다.’
그러자 보살은 듣고서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며, ‘나는 불길한 것을 깨뜨리고 길하고 상
서로움을 이루리라’ 하였다,
보살은 또 말하였다. ‘그대의 손 안의 풀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이에 길상은 곧 풀을 보살에게 주면서 곧 발원하였다.
‘보살께서 도가 이루어지시면, 먼저 저를 제도하여 주소서.’
보살은 받고 나서 깔아 자리를 삼고 풀의 위에서 가부하고 앉되 과거 부처님이 앉으셨던
법대로 하면서 서원하였다.
‘바른 깨달음을 이룩하지 않고서는 이 자리를 일어나시지 않으셨으니, 저도 역시 그와
같이하겠습니다.’
이 맹세를 할 때에, 하늘.용.귀신들은 모두가 다 기뻐하였고, 맑고 시원한 바람은 사방에서
불어오는데 날짐승 길짐승은 울음이 없고 나무조차 한들거리지 않았으며, 떠다니는 구름과
나는 티끌은 모두 다 맑고 깨끗하였으므로 이는 보살이 반드시 도를 이루게 될 조짐인 줄
알았다.
그 때 보살이 나무 아래 있으면서 맹세를 할 때에 하늘이며 용의 8부가 모두 다 기뻐하며
공중에서 뛰놀면서 찬탄을 하였는데, 이 때 제6천의 악마왕 궁전이 저절로 동요하는지라 이
에 악마왕은 마음이 크게 괴로워지고 정신이 조급하여지며 말과 맛[聲味]까지 마음대로 못
하고서 생각하였다.
‘사문 구담이 지금 나무 아래 있으면서 다섯 가지 욕심을 버리고 단정히 앉아 생각을 하
는데 오래지 않아서 바른 깨달음의 도를 이루게 되겠구나. 그 도가 만약 이루어지면 널리
일체를 제도하여 나의 지경을 뛰어넘으리니, 도가 아직 이루어지기 전에 가서 무너뜨리고
어지럽히리라 하였다.’
그 때 악마의 아들 살타(薩陀)는 아버지가 지쳐서 파리해짐을 보고 나가서 말하였다.
‘잘 모르겠사오니, 부왕께서는 무엇 때문에 근심을 하십니까?’
그러자 악마왕은 대답하였다.
‘사문 구담이 지금 나무 아래에 앉아 있다. 그 도가 장차 이루어지면 나를 뛰어넘으리니,
그래서 지금 무너뜨리려고 한다.’
악마의 아들은 곧 앞에서 아버지에게 간하였다.
‘보살이야말로 깨끗하여 3계(界)를 뛰어나셨으며 신통과 지혜가 환히 밝지 않음이 없습
니다. 하늘이며 용의 9부들이 모두 함께 찬양을 하는데 이는 부왕으로서는 꺾어서 굴복 받
을 수가 없으리니, 악을 지어서 스스로 환난을 초래하지 마십시오.’
악마에게 셋 딸이 있었는데, 용모과 거동이 극히 단정하여 요염하도록 아름답고 약삭빨라
서 사람들을 잘 홀릴 수 있었으며 천녀들 중에서는 맨 첫째이었고 유명한 향을 풍기며 좋은
영락을 차고 있었나니, 첫째의 이름은 염욕(梁欲)이요, 둘째의 이름은 능열인(能悅人)이요,
셋째의 이름은 가애락(可愛樂)이었다.
셋 딸이 함께 나와서 그의 아버지에게 아뢰었다.
‘잘 모르겠사오나, 지금 무엇 때문에 근심을 하십니까?’
아버지는 곧 마음을 그대로 쏟아 넣으며 딸들에게 말하였다.
세간에서 지금 사문구담이 몸에 법의 갑옷을 입고 자재의 활을 잡고서 지혜의 화살을 쏘
아 중생들을 항복시켜서 나의 경계를 무너뜨리려 하는데, 내가 만약 그보다 못하면 중생들
은 그를 믿고 모두가 귀의하여 나의 땅은 곧 비어버릴 것이기에 근심할 뿐이다. 아직 도가
이루어지기 전에 가서 꺾어 부러뜨려서 그 교량을 파괴하려 한다.’
이에 악마왕은 손에 강한 활을 잡고 또 다섯 활을 가지고 남녀 권속들과 함께 그 필바라
나무 아래 가서는 모니(牟尼)를 보았는데, 고요하여 움직이지 아니하고 나고 죽는 3유(有)의
바다를 건너려 하고 있었다.
그 때 악마왕은 왼손으로 활을 잡고 오른손으로 화살을 고루면서 보살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찰리(刹利)성바지로서 죽음을 매우 두려워 할 만한데 어찌 빨리 일어나지 아니
하는가. 응당 그대는 전륜왕의 업을 닦고 집 떠난 법을 버리며 보시하는 힘이나 익혀서 하
늘에 나는 안락을 얻어야 할 것이니, 이 길이 첫째며 먼저 것보다 훌륭하다.
그대는 바로 찰리의 전륜왕 성바지이면서 걸사(乞士)가 된다는 이것이야말로 해야 할 것
이 아니다. 이제 만약 일어나지 아니하고 편안히 앉기만을 좋아하며 본래의 맹세를 버리지
아니하면 나는 시험삼아 그대를 쏘리라. 한 번 날카로운 화살을 쏘기만 하면 고행하는 신선
도 나의 화살 소리를 듣고 놀라 두려워하여 마음이 흐리멍덩해지며 정신을 잃지 않음이 없
거늘, 하물며 그대 구담이 이 독을 견뎌낼 수야 있겠느냐. 그대가 빨리만 일어나면 안전할
수 있으리라.’
널리 이런 말을 하여 보살을 두렵게 하였지만 보살은 기쁨이 가득 차 놀라지도 않고 움직
이지도 않는지라 악마왕은 즉시 활을 당겨 화살을 쏘고는 아울러 천녀들도 나아가게 하였
다.
보살은 그 때에 눈으로 화살을 보지도 아니하였는데 화살은 공중에 머물렀다가 그 살촉이
아래로 향하면서 변화하여 연꽃으로 되었다.
이 때 세 천녀들은 보살에게 말하였다.
‘어진 이께서는 덕망이 지극하여 하늘과 사람들이 공경하는 바라 응당 공양하고 모셔야
하옵니다.
저희들은 지금 나이가 한창인 때라 천녀들이 단정하지만 우리들보다 뛰어나는 이가 없으
므로 하늘께서 이제 저희들을 보내어 공양을 하며 밤에 자고 눕고 하게 하셨으니 원컨대 좌
우에서 모시게 하옵소서.’
보살은 대답하였다.
‘너희들은 조그마한 선을 심어서 하늘의 몸을 얻어서는 무상함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요
염한 짓을 하는데, 몸뚱이는 비록 아름답다 하더라도 마음이 단정하지 못하고 음탕하며 착
하지 않으니 죽어서는 반드시 세 가지의 나쁜 갈래에 떨어져서 날짐승 길짐승의 몸을 받아
그를 면하기가 매우 어렵게 되리라. 너희들은 이제 정해진 뜻[定意]을 어지럽히려 하는데 깨
끗한 마음씨가 아니로다. 지금 곧 떠나가라. 나는 필요하지 않도다.’
때에 세 천녀들이 늙은 할미로 변화되었는데, 머리가 희며 얼굴이 쭈그러지고 이가 빠져
서 침을 흘리며 살이 없어 뼈가 불거지고 배의 크기가 북만하며 지팡이를 짚고서 느리게 걸
으며, 스스로가 회복시키지 못하였다.
악마왕은 이와 같이 굳건함을 보고서 생각하였다.
‘내가 옛날 일찍이 설산(雪山) 가운데서 이 마혜수라(摩醯首羅)를 쏘자, 곧 두려워하며
그 선심(善心)이 물러나던데, 이제는 구담을 움직일 수가 없구나. 이미 이 화살과 나의 세
딸로써 움직이지 못하였으니, 그리워하거나 성을 내게 하려면 다시 다른 방편을 써야겠구
나.’
그리고는 곧 부드러운 말로써 보살을 꾀며 말하였다.
‘그대가 만약 인간에서 즐거움 받기를 좋아하지 아니하면, 이제 곧 하늘궁전으로 올라갑
시다. 내가 하늘의 지위와 다섯 가지 욕심 거리를 내놓아 모두 그대에게 주겠습니다.’
보살은 말하였다.
‘그대는 과거 세상에서 조그마한 보시의 인연을 닦아서 이제 그것 때문에 자재천왕(自在
天王)이 되었거니와 이 복은 기한이 있으므로 반드시 도로 내려와 태어날 것이니, 세 가지
길[三途]에 빠져서 구제되기가 매우 어려우리라. 이런 허물 때문에 나는 필요하지 아니하노
라.’
악마는 보살에게 말하였다.
‘나의 과보는 그대가 알고 있지만, 그대의 과보는 누가 또 알겠소?’
보살은 대답하였다.
‘나의 과보야말로 오직 이 땅만이 아느니라.’
이 말을 하여 마치자, 때에 대지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더니 이에 지신(地神)이 7보의 병을
가지고 속에 연꽃을 가득히 채워서 땅으로부터 솟아나오며 악마에게 말하였다.
‘보살은 옛날에 머리와 눈과 골수며 뇌를 남들에게 보시하셨는지라 흘린 피가 대지를 적
셨으며 나라와 성이며 아내.아들.코끼리.말.값진 보배 등을 보시하여 헤아릴 수 없었던 것은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이제 보살을 괴롭게 하
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악마는 이를 듣고 나서 마음이 두려워지며 몸의 털이 모두 곤두섰는데, 때에 그 지신은
보살의 발에 예배하고 꽃을 공양하고는 홀연히 없어져버렸다.
그 때 악마왕은 생각하였다.
‘나는 강한 활과 날카로운 화살이며 아울러 세 딸로써 하였고 또 방편으로 온화한 말을
하며 꾀었지만 이 구담의 마음을 무너뜨리거나 어지럽힐 수가 없었다. 이제는 다시 여러 가
지의 방편을 마련하여 널리 군사들을 모으고 힘으로써 협박하리라.’
이런 생각을 할 때에 그의 모든 군사들은 홀연히 닿아서 허공에 가득히 찼는데 형상과 모
습이 저마다 달랐나니, 혹은 창을 잡았기도 하고 칼을 쥐었기도 하고 머리에 큰 나무를 이
었기도 하고 손에 금방망이를 가지기도 하여 갖가지의 싸움 도구를 모두가 다 갖추었었는
데, 혹은 돼지.고기.당나귀.말.사자와 용의 머리며 곰.호랑이.물소 등 여러 길짐승의 머리이기
도 하고, 혹은 한 몸에 머리가 많기도 하고, 혹은 얼굴에 눈이 하나뿐이기도 하고, 혹은 여
러 개의 눈이 있기도 하고, 혹은 큰 배에 긴 몸이 있기도 하고 혹은 강말라서 배가 없기도
하고, 혹은 긴 다리에 무릎이 크기도 하였다.
혹은 큰 다리에 장딴지가 통통하기도 하며 혹은 손발톱이 길고 어금니가 날카롭기도 하
며, 혹은 손발톱이 길고 어금니가 날카롭기도 하며, 혹은 머리가 가슴의 앞에 있기도 하며,
혹은 발은 둘인데 몸뚱이가 많기도 하며, 혹은 큰 얼굴 옆에 얼굴이 있기도 하며, 혹은 빛깔
이 회색인 흙과 같기도 하며, 혹은 몸에서 불길을 뿜기도 하며, 혹은 코끼리의 몸에 산을 짊
어지고 있기도 하며, 혹은 머리칼을 풀어 헤치고 발가숭이기도 하며, 혹은 또 얼굴빛이 반은
붉고 반은 희기도 하며, 혹은 입술이 땅까지 드리워 있기도 하며, 혹은 옷을 걷어 올려서 얼
굴을 덮기도 하며, 혹은 몸에 호랑이 가죽을 입기도 하며, 혹은 사자에 뱀의 가죽이기도 하
며, 혹은 뱀이 온몸을 감았기도 하며, 혹은 머리 위에 불이 훨훨 타기도 하며, 혹은 눈을 부
릅뜨고 팔을 걷어붙이기도 하며, 혹은 옆으로 가면서 뛰기도 하며, 혹은 공중에서 빙빙 돌기
도 하며 혹은 달려가면서 으르렁거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여러 악한 형상을 지닌 것들이 헤아릴 수 없이 보살을 에워싸고는 혹은 또 보살의
몸을 찢으려하기도 하고, 혹은 사방에서 연기가 일어나며 불길이 하늘을 찌르기도 하고 혹
은 미친 듯이 지르는 소리에 산골짜기가 진동하기도 하였으며, 바람과 불과 연기며 먼지에
캄캄해져서 보이는 것이 없게 하고 넷의 큰 바닷물을 한꺼번에 끓어오르게 하였다. 그러자
법을 보호하는 천인들과 여러 용과 귀신들은 모두 악마들을 괘씸히 여기어 성을 더욱더 내
자 털구멍에서 피가 흘렀으며, 정거천들은 이 악마가 보살을 괴롭게 하는 것을 보고 자비한
마음으로써 불쌍히 여기어 내려와서 허공을 메우며 악마의 군사들을 보았더니 한량없고 그
지없이 보살을 에워싸고서 크고 나쁜 소리를 내어 천지를 지동시키는 데도 보살의 마음은
안정되어 얼굴에 아무 이상이 없음이 마치 사자가 사슴의 떼에 있음과 같았으므로, 모두가
다 찬탄하였다.
‘아아, 기특하며 전에 없던 일이로다. 보살은 결정코 바른 깨달음을 이루실 것이다.’
이 여러 악마들은 서로가 몹시 재촉하면서 저마다 위력을 다하여 보살을 꺾고 깨뜨리려고
하여 혹은 눈을 흘기며 이를 갈기도 하고, 혹은 도로 날면서 어지러이 던지기도 하였지만,
보살은 그들 보기를 마치 어린아이의 장난처럼 여겼다. 그러자 악마들은 더욱 분하게 여기
어 다시 전력을 더하는지라, 보살은 자비의 힘으로써 돌을 안은 이에게는 잘 들 수가 없게
하고 그 들었던 이에게는 내리지를 못하게 하며, 나는 칼과 춤추는 칼은 공중에 머물게 하
고, 번개촵우뢰촵비촵불은 다섯 가지 빛깔의 꽃이 되게 하며, 나쁜 용이 토하는 독은 향기의
바람으로 변하게 하였으므로, 모든 악한 악의 형상으로 보살을 무너뜨리려 하였지만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악마의 언니와 아우가 있어서 첫째의 이름은 미가(彌伽)요, 둘째의 이름은 가리(迦利)였었
는데, 저마다 손에 해골의 그릇을 가지고 보살의 앞에서 여러 가지의 기이한 형상을 지으며
보살을 괴롭게 굴었고, 이 여러 악마들은 갖가지 더러운 몸으로 보살을 두렵게 하려 하였으
나 마침내 움직일 수 없었으므로 보살의 한 터럭도 악마들은 더욱더 조심 걱정을 하였다.
공중에서 부다(負多)라는 신(神)은 몸을 숨기고서 말하였다.
‘나는 지금 모니 어른을 뵈오며 마음과 뜻이 태연하여서 원망한 생각이란 없는데, 이 여
러 악마들은 독한 마음을 일으키는구나. 원망함이 없는데 멋대로 성냄을 일으키지만 이 어
리석은 악마들아, 한갓 스스로만 고달파지고 영원히 얻는 것은 없으리라. 오늘 마땅히 성을
내어 해치려고 하는 마음은 버려야 하리라.
너희들이 입으로 수미산을 불어서 무너지게 할 수 있고 불을 차갑게 할 수 있고 물을 뜨
겁게 할 수 있고 땅의 단단하고 강한 것을 부드럽게 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너희들은 보살
께서 오랜 겁 동안에 닦아 익힌 선한 과보와 바른 생각의 선정과 부지런히 애쓰신 방편이며
깨끗한 지혜의 광명을 무너뜨릴 수는 없다. 이 네 가지 공덕이야말로 끊거나 보류시켜서 바
른 깨달음을 이루지 못하게 할 수 없으리니, 마치 천 개의 해가 비추면 반드시 어둠이 사라
지는 것과 같다.
나무를 비벼 불을 얻고 땅을 뚫어서 물을 얻는 등, 부지런히 애쓰신 방편이야 말로 구하
여서 얻지 못하신 일이 없다.
세간의 중생들이 세 가지 독[三毒]에 빠져서 구제하는 이가 없는지라 보살은 자비로 지혜
의 약을 구하며 세간을 위하여 환난을 없앨 터인데, 너희들은 지금 어째서 괴롭히고 어지럽
히느냐.
세간의 중생들이 미련하여 지혜가 없어서 모두가 삿된 소견에 집착한지라 이제 법의 눈을
베풀어 바른길을 닦아 익히며 중생들을 인도하려 하시거늘 너희들은 지금 어째서 길잡이를
괴롭히고 어지럽히느냐.
이것이야 말로 옳지 못하도다. 마치 너른 들판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길잡이를 속이려
함과 같다.
중생들은 큰 어둠 속에 빠져서 어리둥절하여 머무를 곳을 모르는지라 보살은 그들을 위하
여 큰 지혜의 등불을 켜셨거늘 너희들은 지금 어째서 불이 꺼지게 하려고 하느냐.
중생들은 지금 나고 죽음의 바다에 빠진지라 보살은 그들을 위하여 지혜의 보배를 수선하
시거늘 너희들은 지금 어째서 가라앉게 하려 하느냐.
욕을 참음으로 어금니를 삼고 굳건함으로 뿌리를 삼으며 위없는 큰 법으로 큰 과위를 삼
으시거늘 너희들은 지금 어째서 공격하며 정벌하려 하느냐.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쇠사슬에 중생들이 묶였는지라 보살은 고행을 하며 그들을 위
하여 풀어 주시려 하시니, 오늘이야 말로 결정코 이 나무 아래서 가부하고 앉으셔서 위없는
도를 이루리라.
이 땅은 바로 지나간 세상의 부처님네의 금강좌(金剛座)이신지라 다른 지방은 모두 움찍
거려도 이곳은 움직이지 않으리라.
미묘한 선정을 받으실 만하므로 너희들에게 꺾일 바가 아니로다. 너희들은 이제 기뻐하고
경하하는 마음을 내고 젠체하는 뜻을 쉬며 앎의 생각을 닦으면서 받들며 섬겨야 할지니
라.’
이 때에 악마왕은 공중의 소리를 듣고 또 보살이 태연하여 전과 다름이 없음을 보고서 악
마의 마음이 부끄러워지는지라 젠체함을 버리고 곧 길을 회복하여 하늘 궁전으로 돌아가 버
리니, 뭇 악마들은 근심 걱정을 하며 모두가 다 무너지고 흩어지면서 기가 꺾이고 위엄과
씩씩함이 없어져 여러 전투하는 도구는 숲과 들에 마구 어질러졌다.
악마들이 물러가고 흩어질 때에, 보살의 마음은 깨끗하고 맑고 맑아서 움직이지 않았으며,
하늘에는 연기와 안개가 없고 바람은 곁가지조차 흔들지를 아니하며 지는 해는 광명을 멈추
어서 갑절이나 더 밝게 하고 맑은 달은 환히 비추며 뭇 별은 찬란하게 밝고 어두컴컴한 곳
도 다시는 장애가 없어졌으며, 허공에서 여러 하늘들은 아름다운 꽃과 향을 비 내리면서 뭇
풍악을 잡히며 보살에게 공양하였다.
그 때 보살은 자비의 힘으로써 2월 7일 밤에 악마를 항복 받고 나자 큰 광명을 내쏘면서
곧 선정에 들며 진리를 생각하였는데, 모든 법 중에 선정이 자재로워서 모두 과거에 지었던
선과 악을 알았으며, 여기로부터 저기에 났었고 부모와 권속들이며 가난하고 부자였던 귀하
고 천하며 수명의 길고 짧음과 이름이며 성자 등을 모두 다 분명히 알게 되었으므로 곧 중
생들에게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며 생각하였다.
‘일체 중생들을 구제하는 이가 없으므로 다섯 갈래에 윤희하며 뛰어날 줄을 모르는구나.
모두가 다 거짓이요 진실함이 없거늘 그 가운데서 제멋대로 괴로움과 즐거움을 내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는데 초저녁이 다하였다.
그 때 보살은 이미 밤중이 되자 곧 하늘 눈을 얻고 세간을 자세히 살펴보매 모두가 다 환
히 보이는 것이 마치 밝은 거울 속에서 자기의 얼굴 모습을 보게 됨과 같았다.
모든 중생들을 보았더니, 갖가지 무리들이 한량없이 여기에서 죽어서 저기에 태어났고 행
위의 선과 악을 따라서 괴로움과 즐거움의 과보를 받고 있었다.
지옥 안에서 고문하며 다스리는 중생들을 보았더니 혹은 끓인 구리를 입에 붓기도 하고
혹은 구리 기둥을 안고 있게 하기도 하고, 혹은 쇠의 평상에 눕게 하기도 하고, 혹은 쇠 가
마솥에다 삶기도 하고, 혹은 불 위에서 꼬챙이로 지지기도 하고, 혹은 범촵이리촵매촵개에게
먹히기도 하고, 혹은 불을 피하여 나무 아래 있는데 나무의 앞이 떨어지며 모두 칼이 되면
서 그의 몸을 베고 끊기도 하고, 혹은 도끼와 톱으로써 온몸을 베며 찍기도 하고 혹은 뜨겁
게 끊는 재로 된 강물 속에 던지기도 하고, 혹은 또 똥과 오줌의 구덩이 속에 던지기도 하
였는데, 이와 같은 갖가지 고통을 받는 것은 업보 때문이라 목숨은 끝끝내 끊어지지도 않았
다.
보살은 이와 같은 일들을 보고서 생각하였다.
‘이들 중생들은 본래 나쁜 업을 지었으며, 세간의 즐거운 일을 하였기 때문에 이제 과보
를 얻어서 극히 큰 고통을 당하고 있도다. 만약 사람들이 이와 같은 나쁜 과보를 보게 된다
면 다시는 착하지 못한 업을 짓는 이는 없게 되리라.’
그 때 보살은 다시 축생을 살펴보매 가지가지의 행을 따라서 여러 가지의 더러운 형상을
받았는데, 혹은 뼈와 살촵힘줄촵뿔촵가죽촵어금니촵털이며 깃으로 되어서 죽임을 받는 놈이
있기도 하며, 혹은 또 사람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서 배고픔과 목마름이 지극한 데도 사람을
모른 척하는 놈이 있기도 하며, 혹은 그의 코를 뚫었기도 하며, 혹은 그의 머리를 홀처 매어
있기도 하며 언제나 제 몸의 살은 사람들에게 바치면서도 도리어 저희들끼리 서로가 잡아먹
는 등 이와 같은 갖가지의 고통을 받았다.
보살은 보고 나서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내면서 생각하였다.
‘이 중생들은 언제나 몸과 힘으로써 사람들에게 바치면서도 또 매를 맞고 배고프거나 목
마른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모두 이는 본래 나쁜 행을 닦았던 과보로구나.’
그 때 보살은 다음에 아귀를 자세히 살펴보며 그들이 항상 살고 있는 어두컴컴한 속을 보
았더니, 잠깐이나마 해와 달의 빛을 보게 되는 일이 없는지라 곧 그들 역시 서로가 보지 못
하며 받은 형상은 길고 크며 배는 마치 태산과 같고 목구멍과 목은 바늘 만큼하며 입속에서
는 언제나 큰 불길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항상 몹시 배고프며 목이 마른데도 천억만 년 동안
을 음식이란 소리조차 듣지 못하며, 설령 하늘의 비가 와서 그의 위에 뿌려지더라도 변하여
불 구슬이 되어버리고 때로는 강과 바다와 내며 못을 지나가게 되면 물조차 변화되어 뜨거
운 구리와 이글거리는 숯이 되어버리며 몸을 움직이며 걸음을 걷는 소리는 마치 사람이 5백
의 수레를 끄는 것과 같았고 온몸의 마디마디가 모두 불이 되어 타고 있었다.
보살은 이러한 갖가지의 고통들을 보고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면서 생각하였
다.
‘이들은 모두가 본래 간탐을 내어 재물을 쌓으면서도 보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이런 죄의 과보를 받게 되는구나, 만약 사람들이 이런 고통 받음을 보게 되면, 보시하기에
인색하지 말고 설사 재물이 없더라도 살을 베서까지 보시하여야 하리라.’
그 때 보살은 다음에 다시 사람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중음(中陰)으로부터 보았더니, 처음
태 안에 들어가려고 할 적에 부모가 화합하면 뒤바뀐 생각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켜서는
곧 깨끗하지 못한 것으로써 자기 몸을 삼으며, 태 안에 들어가서는 생장(生臟)과 숙장(熟臟)
의 두 장(臟)의 사이에 있으면서 몸의 삶아짐이 마치 지옥의 고통과 같다가 열 달이 찬 연
후에 태어나는데, 처음 태어날 때에 바깥 사람[外人]에게 안겨 붙잡히면서 거칠고 껄끄러움
을 당하는 고통은 마치 칼이 스치는 것과 같으며, 이렇게 하여 오래지 않아서 다시 늙고 죽
음에 돌아가고 다시 젖먹이가 되는 등, 다섯 갈래를 바퀴 돌듯하면서도 스스로 깨닫지를 못
하였다.
보살은 보고 나서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며 생각하였다.
‘중생들에게는 이와 같은 환난이 있거늘 어찌 하여 그 속에서 다섯 가지 욕심에 탐착하
고 멋대로 헤아리며 즐거움을 삼으면서 뒤바뀐 근본을 능히 끊지 않는가.’
그 때 보살은 다음에 여러 하늘들을 보았다. 그 천자들을 보았더니 그 몸은 깨끗하여 먼
지나 때가 끼지 않아서 마치 참 유리(琉璃)와 같았고 큰 광명이 있으며 두 눈은 깜짝거리지
아니하였는데, 혹은 수미산 꼭대기에 살고 있기도 하고 혹은 또 수미산의 네 진영에서 살고
있기도 하고, 혹은 또 허공 안에서 살고 있기도 하면서 마음은 언제나 기쁘고 알맞지 않는
일이 없으며 하늘의 아름다운 풍악을 잡히며 스스로 재미있게 즐기면서 밤과 낮을 몰랐고
사방의 모든 풍치가 매우 아름답지 않음이 없었으며, 동쪽을 보면서 지나치게 집착하여 1년
이 다되는데도 움직일 줄 모르며 서쪽을 쳐다보다 즐겨 빠져서 여러 해를 지내면서도 돌아
가지 않았나니, 남쪽이거나 북쪽 역시 다 그와 같았다.
음식과 의복은 생각만 하면 즉시 이르렀으며, 비록 이와 같이 뜻에 알맞은 일만이 있기는
하더라도 오히려 욕심의 불에 탐을 받았다.
또 그 하늘의 복이 다하여지는 때를 보았더니, 다섯 가지의 죽음의 형상이 나타났다.
첫째는 머리 위의 꽃이 시들고, 둘째는 눈을 깜작 거리고, 셋째는 몸 위의 광명이 스러지
고, 넷째는 겨드랑이 밑에 땀이 나오고, 다섯째는 자연히 본래 있던 자리를 떠나게 되는 것
인데, 그 권속들이 천자의 몸에 다섯 가지 죽음의 형상이 나타남을 보면 마음에 그리움을
내며, 천자도 역시 스스로 자기의 몸에 다섯 가지 죽음의 형상이 있음을 보게 되고 또 권속
들이 자기를 그리워하고 있음을 보는 그러할 때에 크게 괴로워하였다.
보살은 그 천자들의 이러한 일들이 있음을 보고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면서
생각하였다.
‘이 여러 천자들은 본래 조그마한 선을 닦아서 하늘의 즐거움을 받게 되었으나 과보가
다하려 하매 크게 괴로움을 내는데, 목숨이 끝난 뒤에는 그 천자의 몸을 버리고 혹은 세 가
지 나쁜 길에 떨어지기도 하리니, 본래 선한 행을 지음은 즐거움의 과보를 구하기 위해서였
지만 이제 얻는 즐거움이 적고 괴로움만이 많은 것이 마치 굶주린 사람이 독이 섞인 음식을
먹는 것과 같구나. 처음에는 비록 맛이 있다 하더라도 마침내 큰 환난이 생기니 말이다. 어
떻게 슬기로운 이가 이것을 탐내며 즐기겠느냐.’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의 하늘들은 수명이 긴 것을 보고 곧 언제나 즐겁다고 여기
다가 변하고 무너짐을 보면 크게 괴로워하며 곧 삿된 소견을 일으키면서 인과(因果)가 없다
고 헐뜯는데, 이런 일 때문에 세 갈래[三途]를 윤회하면서 갖추 여러 고통을 받았다.
보살은 하늘 눈의 힘으로써 다섯 갈래[五道]를 자세히 살피고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면서 생각하였다.
‘3계 안에서는 즐거움이란 하나도 없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자, 한밤중도 다 끝났다.
그 때 보살은 늦은 밤이 되자 ‘중생들의 성분에는 무슨 인연으로 늙고 죽음[老死]이 있
는 것일까’ 하고 자세히 살폈더니, 곧 늙고 죽음은 태어남[生]으로써 근본이 되고 만약 태
어남을 여의면 곧 늙고 죽음이 없는 것인 줄 알았다.
또 이 태어남은 하늘로부터 난 것도 아니며 저절로 난 것도 아니며, 연(緣)이 없이 난 것
이 아니고 인연으로부터 난 것이고 욕계의 존재[欲有]와 색계의 존재[色有]와 무색계의 존재
[無色有]의 업으로 인하여 났다.
또 ‘세 가지 존재[三有]의 업은 무엇으로부터 났는가’를 자세히 살폈더니, 곧 세 가지
존재의 업은 네 가지 잡음[四取]으로부터 난 것인 줄 알았다.
또 ‘네 가지 잡음은 무엇으로부터 났는가’를 자세히 살폈더니, 곧 네 가지 잡음은 사랑
[愛]으로부터 난 것인 줄 알았다.
또 다시 ‘사랑은 무엇으로부터 났는가’를 자세히 살폈더니, 곧 사랑은 느낌[受]으로부터
난 것인 줄 알았다.
또 다시 ‘느낌은 무엇으로부터 났는가’를 자세히 살폈더니, 곧 느낌은 닿임[觸]으로부터
난 것인 줄 알았다.
또 다시 ‘닿임은 무엇으로부터 났는가’를 자세히 살폈더니, 곧 닿임은 여섯 감관[六入]
으로부터 난 것인 줄 알았다.
또, ‘여섯 감관은 무엇으로부터 났는가’를 자세히 살폈더니, 곧 여섯 감관은 이름과 물
질[名色]로부터 난 것인 줄 알았다.
또, ‘이름과 물질은 무엇으로부터 났는가’를 자세히 살폈더니, 곧 이름과 물질은 의식
[識]으로부터 난 것인 줄 알았다.
또 다시, ‘의식은 무엇으로부터 났는가’를 자세히 살폈더니, 곧 의식은 지어감[行]으로
부터 난 것인 줄 알았다.
또 다시, ‘지어감은 무엇으로부터 났는가’를 자세히 살폈더니, 곧 지어감은 무명(無明)
으로부터 난 것인 줄 알았다.
만약 무명이 스러지면 지어감이 스러지고, 지어감이 스러지면 의식이 스러지고, 의식이 스
러지면 이름과 물질이 스러지고, 이름과 물질이 스러지면 여섯 감관이 스러지고, 여섯 감관
이 스러지면 닿임이 스러지고, 닿임이 스러지면 느낌이 스러지고, 느낌이 스러지면 사랑이
스러지고, 사랑이 스러지면 잡음이 스러지고, 잡음이 스러지면 존재가 스러지고, 존재가 스
러지면 태어남이 스러지며, 태어남이 스러지면 늙고 죽음과 근심촵슬픔촵괴로움이 스러졌다.
이렇게 순서를 거슬러서 12인연(因緣)을 자세히 살피며 늦은 밤에 무명을 깨뜨리고 새벽
이 되는 때에는 지혜의 광명을 얻어서 익힌 업을 끊고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이룩하였다.
그 때 여래는 생각하였다.
‘여덟 가지의 바르고 거룩한 도[八正聖道]는 바로 3세의 부처님께서 실제로 행하신 바요,
열반에 나아가는 길이었는데, 나도 이제 이미 실천하여 지혜가 통달하고 걸리는 바가 없도
다.’
때에 대지가 열여덟 가지로 움직여졌고 노리는 안개와 나르던 먼지가 모두 다 맑게 개었
으며 하늘의 북은 저절로 미묘한 소리를 내고 향기 바람은 천천히 일어나서 부드럽고 깨끗
하고 시원하였으며 여러 빛깔의 상서로운 구름은 단 이슬의 비를 내리고 동산 숲의 꽃과 열
매는 때를 기다리지 않고 한참이었다.
또 만다라꽃[曼陀羅花]과 마하만다라꽃[摩詞曼陀羅花]과 만주사꽃[曼殊沙花]과 마하만주사
꽃[曼詞摩殊沙花]과 금의 꽃촵은의 꽃촵유리 꽃촵유리 등의 꽃인 7보의 꽃을 비 내려서 보
리수를 둘러싸기 36요자나에 가득히 찼었다.
이 때 여러 하늘들은 하늘의 풍악을 잡히면서 꽃을 흩고 향을 사르며 노래하고 찬탄하였
으며 하늘의 보배 일산과 당기촵번기를 붙잡고 허공에 꽉 차서는 여래께 공양하였고 용이며
신의 8부들의 베푸는 공양도 역시 그와 같았느니라.
그러할 때에 일체 중생들은 모두 다 인자하여지고 성내거나 해치려는 생각이 없어지며 기
뻐서 뛰놀며 마치 성도의 자취를 보듯 하였으며 두려워하는 정이 없고 그 마음이 고르고 부
드러워지면서 교만한 뜻을 여의며 또한 아끼고 시새우고 아첨하는 마음이 없었졌다.
5정거천(淨居天)은 기쁨과 즐거움의 형상을 여의고 또한 모두가 기뻐하며 어쩔 줄 몰랐으
며, 지옥의 고통은 잠시 동안 쉬게 되어 큰 기쁨이 생겼고 온갖 축생들로서 서로가 잡아먹
던 것들이 다시는 나쁜 마음이 없어지며 아귀는 배가 불러져서 배고프거나 목마르다는 생각
이 없었다.
세계 중에 어두컴컴한 곳으로서 해와 달의 거룩한 빛으로도 비출 수 없던 곳이 모두 크게
밝아졌는지라 그 속의 중생들이 모두가 서로 보게 되었으므로 저마다 말을 하였다.
‘이 안에서 어떻게 갑자기 중생들이 있는가?’
큰 성인이신 법왕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큰 법의 광명으로써 그릇된 법과 어둠을 깨뜨렸기
때문에 온갖 것이 모두 다 밝고 환하게 되었다.
감자(甘蔗) 성바지의 선왕(先王)으로서 나라를 버리고 도를 닦아서 5통(通)의 신선이 되었
거나 또 열 가지의 선을 행하여 하늘에 나게 된 이들은 모두 신통을 부려서 보리수에 도착
하여 허공에 있으면서 기뻐하며 합장하고 찬탄하였다.
‘우리 감자 성바지 중에서 능히 모든 번뇌를 끊고 일체지(一切智)를 이루어 세간의 안목
이 되었으니, 매우 기특하십니다.’
모두가 기뻐하며 뛰놀지 아니함이 없었으나, 오직 악마왕만은 마음으로 혼자 근심하였다.
그 때 여래는 7일 동안 선정에 들었다가 큰 나무를 자세히 살피면서 생각하였다.
‘나는 이 곳에 있으면서 온갖 번뇌를 다하고 할 일을 다 마쳤으며 본래의 원이 원만히
이루어졌는데, 내가 얻은 법은 매우 깊어 이해하기 어려워서 오직 부처님과 부처님만이 알
수가 있구나, 일체 중생들은 다섯 가지 흐림[五濁]의 세상에서 탐냄과 성냄촵어리석음촵삿된
소견촵교만촵아첨 등에 가리고 막힘을 받아 복이 엷고 근기가 둔하며 지혜가 없거늘 어떻게
나의 얻은 바 법을 알릴 수 있겠는가. 이제 내가 만약 법 바퀴를 굴리게 된다면 그들은 반
드시 헷갈려서 믿어 받지 못하고 비방을 하여 장차는 나쁜 길에 떨어져서 여러 고통을 받으
리니, 나는 차라리 감자코 열반에 들리라.’
그 때 여래는 게송으로 말하였다.
거룩한 도는 심히 오르기 어렵고
지혜의 결과는 얻기가 어려운데
나는 이 어려운 가운데서
모두 다 이미 능사 이룩하였네.
내가 얻은 바의 지혜야말로
미묘하여 맨 첫째이거늘
중생들의 모든 근기가 둔하여서
즐거움에 집착하고 어리석어서 소경이 됐네.
나고 죽는 흐름을 따라가면서
그 근원에 되돌아갈 수가 없는
이와 같은 등의 무리들인데
어떻게 하여 제도할 수 있겠는가.
그 때에 여래가 이런 생각을 하여 마치자. 대범(大梵)천왕은 여래께서 거룩한 깨달음을 이
미 이룩하였으면서도 잠자코 계시며 법 바퀴를 굴리지 않음을 보고 마음에 근심과 괴로움을
품고서 곧 생각하였다.
‘세존께서는 옛날의 한량없는 억 겁 동안에 중생들을 위하여 오랜 동안 나고 죽는 데 계
시면서 나라와 서이며 아내.아들.머리.눈.골수.뇌 등을 버리며 갖추 뭇 고통을 받으시다가 비
로소 지금에야 소원이 만족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셨거늘, 어찌하여 잠자코 계시며
법을 말씀하시지 아니할까? 중생들은 오랜 세월을 나고 죽는 데에 빠지겠구나. 나는 이제
가서 법의 바퀴 굴리시기를 청해야겠다.’
그리고 곧 하늘 궁정을 출발하여 마치 장사가 팔을 굽혔다 펼 만큼의 사이에 여래의 처소
에 이르러서 땅에 엎드려 발에 예배하고 백천 번을 돌고서 물러나 한쪽에 머무르며 꿇앉아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옛날에 중생들을 위하여 오랫동안 나고 죽는 데 머물면서 몸과 머리며 눈
을 버리어 보시를 함으로써 갖추 여러 고통을 받으시며 널리 덕의 근본을 닦으시다가 비로
소 지금에야 위없는 도를 이룩하셨는데 어찌하여 잠자코 계시며 법을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중생들은 오랜 세월 동안 나고 죽는 데에 빠지고 무명의 어둠에 떨어져서 뛰어나올 기약이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하오나, 어떤 중생은 지나간 세상에서 선한 법을 친히 하고 가까이하여 모든 덕의 근
본을 심었는지라 법을 듣고 성인의 길을 받을 만하옵니다.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이
들을 위하여 크게 가엾이 여기는 힘으로써 미묘한 법의 바퀴를 굴리십시오.’
석제환인과 이에 타화자재천까지도 역시 그와 같이 여래께서 중생들을 위하여 큰 법의 바
퀴 굴리시기를 권하고 청하였다.
그 때 세존은 대범천왕과 석제환인 등에게 말씀하였다.
‘나 역시 일체 중생들을 위하여 법의 바퀴를 굴리고는 싶으나 다만 얻은 법이 미묘하고
아주 깊숙하고 풀이하기 어렵고 알기도 어려워 모든 중생들이 믿어 받을 수도 없거니와 비
방하는 마음을 내어서 지옥에 떨어지리니, 나는 지금 이 때문에 잠자코 있을 뿐이니라.’
때에 범천왕 등은 세 번을 청하자, 때에 여래는 꼭 이레 만에야 잠자코 수락하시므로 범
천왕 등은 부처님께서 청을 수락하심을 알고 땅에 엎드려 발에 예배하고서 저마다 사는 데
로 돌아갔다.
그 때 세존은 범왕 등의 청을 수락하시고, 또 이레 동안을 부처 눈으로써 모든 중생들의
상.중.하의 근기와 모든 번뇌의 하촵중촵상을 자세히 살폈으므로 꼭 27일이 다되었는데, 그
때에 세존은 또 생각하셨다.
‘나는 이제 단 이슬의 법문을 열어야겠다. 누가 먼저 들을 이로서 마땅할까? 아라라(阿
羅邏) 선인이 총명하고 슬기로워서 깨닫기 쉬우리라. 또 먼저 발원하기를, (도가 이루어지면
나를 제도하소서)라고 하였다.’
이 생각을 하는 때에 공중에서 말하였다.
‘아라라 선인은 어제 밤에 죽었습니다.’
그 때에 세존은 곧 그 공중의 소리에 대답하였다.
‘나도 그가 어제 밤에 죽은 줄은 알고 있다.’
그리고는 또 생각하였다.
‘가란(迦’蘭) 선인이 근기가 영리하고 분명히 알 것이니, 역시 먼저 들음에 마땅하리
라.’
공중에서 또 말하였다.
‘가란 선인은 어제 밤에 죽었습니다.’
그 때에 세존은 즉시 또 대답하였다.
‘나도 그가 어제 밤에 죽은 줄은 알고 있다.’
그 때에 세존은 또 생각하였다.
‘저 왕사와 대신이 파견한 교진여 등 나를 돌보던 다섯 사람이 모두가 다 총명하다. 또
지나간 세상에서 나에게 발원하기를, (먼저 법을 들고자 합니다)라고 하였으므로, 나는 이제
이 다섯 사람들을 위하여 먼저 법문을 열어야겠다.’
또 생각하였다.
‘옛날 모든 부처님네께서 법 바퀴를 굴리신 곳이 모두 바라나시(波羅奈國) 녹야원(鹿耶
園) 안의 신선이 살던 곳이다. 또 이 다섯 사람이 머물고 있는 처소가 역시 거기이니, 나는
이제 그들의 살고 있는 곳에 가 닿아서 큰 법 바퀴를 굴려야 하겠다.’
그리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바라나시에 나아갔다.
그 때 5백의 장사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발다라사나(跋陀羅斯那)와 발다라리(跋陀羅梨)라
는 두 사람이 주인으로서 너를 들판을 지나가는데, 때에 어떤 천신이 말하였다.
‘여래(如來).응공(應供).정변지(正遍知).명행족(明行足).선서(善逝).세간해(世間解).무상사(無
上師).조어장부(調御丈夫).천인사(天人師).불세존(佛世尊)께서 세상에 나오셨는데 가장 으뜸가
는 복 밭이시니, 그대들은 이제 맨 먼저 공양을 베풀지니라.’
때에 그 장사하는 이들은 하늘의 말을 듣고 곧 대답하였다.
‘거룩하십니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또 하늘에게 물었다.
‘세존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하늘은 또 대답하였다.
‘세존은 오래지 않아서 여기까지 오시리라.’
이에 여래는 한량없는 하늘들에게 앞뒤에서 인도하고 따르며 다위사발리촌(多謂娑跋利村)
에 닿으셨다.
때에 그 장사하는 사람들은 여래의 거룩한 상호가 장엄함을 보았고, 또 여러 하늘들이 앞
뒤에서 둘러쌈을 보고는 갑절이나 기뻐하면서 곧 꿀과 미숫가루를 부처님께 받들어 올렸다.
그 때 세존은 생각하였다.
‘과거의 부처님네는 바루에 음식을 담으셨다.’
때에 사천왕은 부처님의 생각을 알고 저마다 하나씩의 바루를 가지고서 부처님 처소에 와
닿아서 받들어 올리는지라, 이에 세존은 생각하였다.
‘내가 이제 만약 한 왕의 바루만을 받으면 나머지 왕들은 반드시 원망을 하리라.’
그리고는 곧 네 왕의 바루를 모두 받아서 손바닥 위에 포개 놓고 눌러서 하나가 되게 하
였으나 네 짝이 각기 나타나게 하였다.
그 때 세존은 곧 주원(呪願)하였다.
‘지금 보시를 하는 것은 먹는 이가 기력이 찰 후 있게 하려 함이니, 장차 보시하는 이에
게는 빛깔을 얻고 힘을 얻고 담(膽)을 얻고 기쁨을 얻어서 편안하고 상쾌하여 병이 없이 끝
까지 오래 살게 하리라.
여러 착한 귀신들은 언제나 따르면서 수호하며 음식의 보시로 세 가지 독[三毒]의 부리를
끊고 장차 오는 세상에 당연히 세 가지 굳은 법[三堅法]의 과보를 얻게 하며 총명하고 지혜
로우며 부처님 법을 돈독히 믿어서 태어나는 곳마다 바른 소견으로 어둡지 않게 할 것이며,
지금의 세상 동안에는 부모와 처자며 친척 권속들이 모두다 버썩 성하며 모든 재앙과 상서
롭지 못한 일이 없을 것이요, 성바지 가운데서 만약 죽어서 나쁜 길에 떨어진 이가 있으면
지금 보시하는 복 때문에 도로 인간과 천상의 공덕이 더하며 언제나 모든 부처님촵여래를
받들고 가까이하게 되어 미묘한 말씀을 듣게 되고 진리를 보며 증과(證果)를 얻어서 원한
바가 완전히 갖추어지리라.’
그 때 세존은 주원하기를 마치고 곧 음식을 받아서 잡수신 뒤에 손을 씻고 양치질하고 바
루를 씻고는 곧 장사하는 이들에게 3귀(歸)를 주었나니, 첫째 부처님께 귀의하고, 둘째 가르
침에 귀의하고, 셋째 장래의 상가에게 귀의하는 3귀를 수여하여 마치자, 그대로 그들과 작별
하고 앞으로 나가셨는데 위의의 차분함과 걸음걸이가 마치 큰 거위와 같았다. 길에서 우바
가(優波伽)라는 외도를 만났는데 여래의 상호가 장엄스럽고 모든 감관이 고요하고 안정되었
음을 보고서 찬탄하였다.
‘기특하도다.’
이어 게송으로 말하였다.
세간의 모든 중생들이야말로
모두가 3독(毒)의 얽맴을 당해서
모든 감관은 또 경솔하고 조급하여
바깥의 경계에 내달으며 방탕한데
이제 어진 이를 뵈오니
모든 감관이 아주 고요하시므로
반드시 해탈의 경지에 가셨음이
결정코 의심할 것 없사옵니다.
어진 이가 배우셨던 스승께서는
그의 성자(姓字)가 무엇이옵니까?
그 때에 세존은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나야말로 지금 일체 중생의
겉모습을 이미 뛰어난지라
미묘하고 깊숙하며 머나먼 법을
나는 이제 이미 완전히 아느니라.
3독과 다섯 가지 욕심의 경계를
영원히 끊어서 남은 습기 없음이
마치 연꽃이 물에 있으면서
흐린 물과 진흙에 물들지 않음과 같다.
스스로 여덟 가지 바른 도를 깨치는데
스승도 없고 짝할 이로 없었으며
맑고 깨끗한 지혜를 써서
힘이 센 악마를 항복 받았느니라
이제는 정각을 이룩하였는지라
천상과 인간의 스승이 될 만하며
몸과 입과 뜻이 만족하나니
그러므로 명호를 모니(牟尼)라 하느니라.
바라나시에 나가서는
단 이슬의 법 바퀴를 굴리려 하는데
이것은 하늘촵사람촵악마촵범인으로선
능히 굴릴 수 있는 바가 아니니라.
그 때 우바가는 이 게송을 듣고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전에 없던 일이라 찬찬하고서는 합
창하고 공경하며 둘레를 돈 뒤에 갔는데, 계속 되돌아보다가 보이지 않자 곧 그만두었다.
그 때 세존은 다시 나아가 다음에 아사바라(阿?婆羅) 물가에 이르렀는데 해가 저물었는지
라 묵으면서 곧 선정에 들어갔다.
그러할 때에 이레 동안을 바람이 불고 비가 왔으므로 때에 그 물 속에 목진린타(目眞隣
陀)라는 큰 용왕이 있다가 부처님께서 정에 드셨음을 보고 곧 그의 몸으로 주위를 일곱 번
을 싸서 이레를 채운 뒤에, 그 용왕은 사람의 형상으로 변화하여 땅에 엎드려 발에 예배하
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기에 이레 동안 계시면서 심한 비바람에 병환이나 나시지 않으셨나이
까?’
그 때에 세존은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여러 하늘과 세상 사람들이
기뻐하는 바의 다섯 가지 욕심으로
나의 선정의 즐거움에 견준다면
비유할 수조차 없으리라.
그 때에 그 용왕은 부처님의 이 게송을 듣고 기뻐하며 날뛰면서 땅에 엎드려 발에 예배하
고 있던 데로 돌아갔다.
그 때 세존께서은 다시 나아가 바라나국에 가서 교진여와 마하나마(摩詞那摩).발파(跋波).
아사바사(阿捨婆?).발다라사(跋陀羅?)등이 머무르고 있는 곳에 이르자, 때에 다섯 사람은 멀
리서 부처님이 오는 것을 보고 함께 서로가 말하였다.
‘사문 구담이 고행을 버리고 도로 물러나서 음식의 즐거움을 받았으니 다시는 도의 마음
이 없으리라. 지금 이미 여기에 왔으나 우리들은 일어나서 영접할 필요조차 없다. 또한 예배
하고 공경하거나 구하는 것을 묻거나 그를 위하여 앉을 곳을 펴 주지도 말자. 만약 앉고 싶
으면 스스로 그의 뜻대로 하리라.’
이 말을 하여 마치고 저마다 잠자코 있었는데, 그 때에 세존이 이미 닿으시자 다섯 사람
은 모르는 결에 저마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예배하고 받들어 영접하고는 서로가 시중을 들면
서 혹은 또 혹은 또 옷과 바루를 가지고 있는 이도 있고, 혹은 물을 떠다가 손을 씻고 양치
질하도록 하는 이도 있고 혹은 또 다리를 씻어 주는 이도 있기도 하며 저마다 본래의 맹세
를 저버리면서도 오히려 짐짓 부처님을 일컬어서 구담라고 하였으니라.
그 때 세존은 교진여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함께 나를 보아도 일어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고서는 이제 무엇 때문에 먼저
의 맹세를 저버리고 놀라 일어나서 나의 시중을 드는가?’
때에 그 다섯 사람들은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고 깊이 부끄러워하면서 나아가 아뢰었다.
‘구담께서는 길을 걸어오시느라고 고달프시지나 않나이까?’
그 때에 세존은 다섯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위없는 어른에게 고상한 마음씨를 쓰면서도 성씨를 부르느냐. 나의
마음은 모든 훼방함과 칭찬함에 텅 비어서 분별하는 바는 없지만 다만 너희들이 교만하니
스스로 악한 과보만을 부르리라. 가령 어떤 아들이 부모의 이름을 부르면 세상의 예의로도
오히려 불가하거늘 하물며 이제 일체 중생의 부모인 나에게 있어서겠느냐?’
때에 그 다섯 사람은 또 이 말씀을 듣고 갑절이나 부끄러워하면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들이 어리석어서 슬기과 앎이 없어서, 지금 이미 바른 깨달음을 이루셨는가도 모르
옵니다. 왜냐 하오면 지난날 여래를 보건대 하루에 깨와 쌀을 잡수면서 6년 동안 고행을 하
셨으나 이제는 도리어 음식의 즐거움을 받으셨습니다. 저희는 이 때문에 도를 얻지 못한 것
으로 여겼습니다.’
그 때 세존은 교진여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 조그마한 지혜로써 나의 도가 이루어졌다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가벼이 헤아리지
말라. 왜냐 하면 형상이 괴로움에 있으면 마음이 곧 시달리고 어지러움이요, 몸이 즐거움에
있으면 뜻이 곧 좋아하고 집착하나니, 그러므로 괴로움과 즐거움은 두 가지 다 도의 요인이
아니다.
마치 비벼서 불을 낼 적에 물을 부우면 반드시 어둠을 깨뜨리는 빛이 없어지는 것처럼 지
혜의 불을 비비는 것도 그와 같아서 괴로움과 즐거움의 물이 있으면 지혜의 광명이 나지 않
으며, 나지 않기 때문에 나고 죽는 암흑의 장애를 없앨 수 없다.
이제 만약 괴로움과 즐거움을 능히 버리고 중도(中道)를 행하면 마음이 곧 고요하고 안정
되어 저 여덟 가지 바르고 거룩한 도를 닦아 낼만 하므로 나고촵늙고촵병들고촵죽음의 환난
을 여의나니, 나는 이미 중도의 행을 따랐으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룩할 수 있었다.’
때에 그 다섯 사람은 여래의 이와 같은 말씀을 듣고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여 뛰놀기를 한
량없이 하며 어른의 얼굴을 우러러보며 눈을 잠시도 떼지 않았다.
그 때 세존은 다섯 사람의 근기를 자세히 살피니 도로 받아낼 만하므로 말씀하였다.
‘교진여야, 너희들은 5음(陰)이 치성하여서 일어나는 고통촵늙는 고통촵병든 고통촵죽는
고통촵사랑하는 이와 이별하는 고통.원수라고 생각되는 사람과 같이 살지 않을 수 없는 고
통촵구해서 얻지 못하는 고통.영화와 즐거움을 잃는 고통을 알아야 하리라.
교진여야, 형상 있는 것촵형상 없는 것촵발 없는 것촵한 발 돋히촵두 발 돋히촵네 발 돋
히며 여러 발 가진 것의 일체 중생들이 모두 이러한 고통을 지니지 않은 것이 없다.
마치 재를 불 위에 덮었으나 만약 마른 풀이 닿으면 도로 불이 타오르는 것처럼 이러한
여러 고통은 (나)로 말미암아 근본이 되므로 만약 어떤 중생이 조금이라도 (나)라는 생각을
일으키면 도로 다시 이와 같은 고통을 받게 되나니, 탐냄과 성냄과 그리고 어리석음은 모두
가 다 (나)라는 근본을 반연하여 생긴다.
또 이 세 가지 독은 이는 모두 고통의 요인이니 마치 종자가 싹을 낼 수 있음과 같다.
중생들은 이로써 세 세상을 바퀴 돌 듯하므로, 만약 (나)라는 생각과 탐내고 성내고 어리
석음을 없애면 모든 고통도 다 이로부터 끊어지고 모두가 저 여덟 가지 바른 도를 원유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 마치 사람이 물을 훨훨 타는 불에 부음과 같으리니, 일체 중생들은 모든
고통의 근본을 모르면 모두 다 바퀴 돌 듯하며 나고 죽는 데에 있게 된다.
교진여야, 괴로움[苦]은 알아야 하며, 원인[習]은 끊어야 하며, 멸함[滅]은 증득해야 하며,
멸함에 이르는 길[道]은 닦아야 한다.
교진여야, 나는 이미 괴로움을 알았고, 이미 원인을 끊었고, 이미 멸함을 증득하였고, 이미
멸함에 이르는 길을 닦았기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제 응당 괴로움을 알고 원인을 끊고 멸함을 증득하고 멸함에 이르는
길을 닦아야 하나니, 만약 사람들이 네 가지 진리를 알지 못하면 이 사람이야말로 해탈하지
못할 줄 알아야 한다.
네 가지 진리는 이것은 참되고 이것은 실다운 것이므로, 괴로움은 진실로 이 괴로움이요,
원인은 진실로 이 원인이요, 멸함은 진실로 이 멸함이요, 멸함에 이르는 길은 진실로 이 멸
함에 이르는 길이니라.
교진여야, 너희들은 알겠느냐, 모르겠느냐?’
교진여가 대답하였다.
‘이해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알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진리를 이해하고 알게 되었으므로, 그 때문에 아야교진여(阿若?陳如)라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세 번 네 가지 진리로 12행(行)의 법 바퀴를 굴리실 때에 아야교진여는 모든
법 가운데서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 법 눈이 깨끗함을 얻었으며, 때에 공중의 8만 나
유타 하늘들도 티끌과 때를 여의고 법 눈이 깨끗함을 얻었다.
그 때 지신(地神)은 여래께서 그의 경계에 계시면서 법 바퀴 굴림을 보고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여 높은 소리로 외쳤다.
‘여래는 여기에서 미묘한 법의 바퀴를 굴리십니다.’
허공의 천신이 이 말을 듣고서 또 뛰놀면서 차츰차츰 부르짖었으므로 이에 아가니타설(阿
迦??天)까지 이르렀는데, 모든 하늘들이 듣고 기뻐하기를 한량없이 하면서 높은 소리로 외
쳤다.
‘여래는 오늘 바라나국 녹야원 안의 신선이 살던 곳에서 큰 법의 바퀴를 굴리셨는데, 일
체 세간이 하늘촵사람촵악마촵범천촵사문과 바라문으로서는 굴릴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에 대지는 열여덟 가지로 움직였고, 하늘촵용의 8부는 공중에서 뭇 풍악을 잡히며,
하늘 북은 저절로 울렸으며, 뭇 이름 있는 향을 사르고 여러 가지 아름다운 꽃을 흩뿌리며
보배의 당기촵번기촵일산에다 노래하고 찬탄하며 세계의 안이 저절로 크게 밝아졌다.
아야교진여는 제자들 중에서 처음 깨달았으므로 제1의 제자가 되었는데, 때에 마하나마
등 네 사람은 부처님의 법 바퀴 굴리심을 듣고 아야교진여 혼자만이 도의 자취를 깨달았으
므로 생각하였다.
‘세존께서 만약 다시 우리들을 위하여 법을 말씀하시면 우리들도 또 도의 자취를 깨칠
터인데.’
이렇게 생각한 뒤에 세존의 얼굴을 우러러보면서 눈을 잠시도 떼지 않았다.
그 때 세존은 네 사람의 생각을 아시고 곧 거듭 그들을 위하여 자세히 네 가지 진리를 말
씀하시자, 때에 네 사람은 모든 법 가운데서 역시 티끌과 때를 여의고 법 눈이 깨끗함을 얻
었다.
때에 그 다섯 사람은 도의 자취를 보고 나서 부처님 발에 머리 조아리고 부처님께 아뢰었
다.
‘세존이시여, 저희들 다섯 사람은 이미 도의 자취를 보았습니다. 이미 도의 자취를 등극
하였습니다. 저희들은 이제 부처님의 법에 집을 떠나 도를 닦고 싶사오니,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께서는 사랑하시고 가엾이 여기셔서 허락하여 주소서.’
때에 세존은 그 다섯 사람을 부르시면서, ‘잘 왔도다, 비구들아’ 하시니, 수염과 머리칼
이 저절로 떨어지고 가사가 몸에 입혀지며 즉시 사문이 되었다.
그 때 세존은 그 다섯 사람에게 물으셨다.
‘너희 비구들아, 색(色)촵수(受)촵상(想)촵행(行)촵식(識)을 알되, 이것이 항상함[常]이냐,
항상함이 아니냐? 이것은 괴로움[苦]이냐, 괴로움이 아니냐? 이것은 (공(空))이냐, (공)이 아
니냐? 이것은 (나(我))가 있느냐. (나)가 없느냐?’
때에 다섯 비구(比丘)들은 부처님이 말씀하는 이 5음(陰)의 법을 듣자마자 번뇌(煩惱)가
다하고 뜻이 풀리어 아라한(阿羅漢)이 되고서는 곧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색촵수촵상촵행촵식은 진실로 이는 무상이요, 괴로움이요, (공)이요, (나)가
없습니다.’
이에 세간에서는 비로소 여섯 분의 아라한이 계시게 되었는데, 부처님인 아라한은 바로
불보(佛寶)가 되셨고, 네 가지 진리의 법 바퀴는 바로 법보(法寶)가 되었고, 다섯의 아라한은
바로 승보(僧寶)가 되었나니, 이렇게 하여 세간에는 3보(寶)가 완전히 갖추어졌으며 모든 천
상(天上)과 인간(人間)의 첫째가는 복밭[福田]이 되었다.
과거현재인과경 제4권
그 때 장자의 아들에 야사(耶舍)라는 이는 총명하고 근기가 영리하며 아주 큰 부자로서
염부제 안에서는 맨 첫째이었으므로 하늘 관과 영락을 입고 값을 칠 수가 없을 만큼의 보배
신을 신고 있었는데, 그 한밤중에 여러 기녀들과 함께 서로 재미있게 즐기고서 저마다 돌아
가서 잠을 자고 있던 중에 홀연히 잠에서 깨어나 여러 기녀들을 보았더니, 혹은 엎드려 누
워 있는 이도 있고 혹은 바로 누워 자는 이도 있는데 쑥대강이처럼 머리털이 흩어지고 침이
흘러나오며 악기와 의복의 장식은 거꾸로 되거나 이리저리 질펀하여졌는지라, 그것을 보고
나서는 싫증이 나므로 스스로 생각하였다.
‘나는 지금 이 재난과 해괴한 속에 있었고 깨끗하지 못한 가운데서 망령되이 깨끗하다는
생각을 내었구나.’
이런 생각을 할 때에 하늘의 힘으로써 공중에서 광명이 비치며 문이 저절로 열려졌으므로
광명을 찾아서 떠나가 녹야원에 나아가며, 항하(恒河)를 지나가다가 소리를 높여 외쳤다.
‘괴롭도다, 해괴하도다.’
그러자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야사야, 너는 곧 올 수 있다. 나에게는 바로 이제 괴로움을 여의는 법이 있다.’
야사는 듣고 나서 신고 있던 보배 신이 염부제만큼의 값어치가 있었는데, 곧 벗어 버리고
항하(恒河)를 건너서 부처님에게 나아가 서른두 가지 몸매와 여든 가지의 잘생긴 모습을 보
니 얼굴 모습이 뛰어나고 거룩한 덕이 완전히 갖추어져 있는지라,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며
뛰놀기를 한량없이 하다가 온몸을 땅에 던져 부처님 발에 예배하였다.
‘오직 원하옵소서. 세존이시여, 저를 구제하소서.’
부처님은 말씀셨다.
‘장하구나. 선남자야,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여라. 여래는 곧 그 근기를 따라 법을 말한
다. 야사야, 색.수.상.행.식은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나)가 없는데, 너는 알고 있느냐?’
이 때에 야사는 이 말씀을 듣고 즉시 모든 법에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 법 눈이 깨
끗함을 얻었다.
이에 여래는 거듭 네 가지 진리를 말씀하시자, 번뇌가 다하고 뜻이 풀리어 마음에 자재로
움을 얻고 아라한의 과위를 이루고는 곧 부처님께 대답하기를 ‘세존이시여, 색촵수촵상촵
행촵식은 참으로 이는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내)가 없습니다.’
그 때에 여래는 아직도 야사가 몸을 장엄하는 꾸미개를 붙이고 있음을 보시고 곧 게송으
로 말씀하셨다.
비록 또 집에서 살고 있으면서
보배의 꾸미개를 붙여 있다 하더라도
모든 감관을 잘 잡도리하여
다섯 가지 욕심에 싫증을 내나니
만약 이렇게 할 수 있는 이라면
바로 진실한 출가라 하리라.
비록 몸은 너른 들판에 있으면서
거칠고 껄끄러운 옷을 입거나 먹더라도
뜻에 오히려 다섯 가지를 탐하면
이것은 그릇된 출가라 하리라.
온갖 선함과 악을 지음은
모두가 마음과 생각에서 나나니
그러므로 진실한 출가라 함은
모두가 마음으로 근본을 삼느니라.
그 때 야사는 여래께서 말씀하신 이 게송을 듣고 나서 마음으로 생각하였다.
‘세존께서 이 게송을 말씀하신 까닭은 바로 내가 아직도 7보를 붙이고 있다 함이니, 나
는 이제 이와 같은 의복을 벗어 버려야겠구나.’
그리고는 곧 부처님께 예배하고 세존께 아뢰었다.
‘오직 원하옵나니, 세존께서는 저의 출가를 허락하옵소서.’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잘 왔구나, 비구야.’
그러자 수염과 머리칼이 저절로 떨어지고 가사가 몸에 입혀지며 곧 사문이 되었다.
그 때 야사의 아버지는 날이 훤히 밝자 야사를 찾았는데 있는 데를 모르겠는지라 마음으
로 크게 괴로워하며 슬피 울부짖으면서 길을 따라서 찾아 가다가 강가아의 곁에 이르러서
그 아들의 신을 보고서 생각하기를 ‘나의 아들이 바로 이 길을 따라서 떠나갔구나’ 하고,
곧 그의 발자국을 찾아가다가 부처님의 처소에 닿았다.
그 때 세존은 그의 아들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데 만약 야사를 만나게 하면 반드시 괴로워
하거나 혹은 죽게 될 것을 아시고, 곧 신통력으로써 야사의 몸을 숨겨버렸더니, 그의 아버지
는 나오며 부처님에게 이르러서 땅에 엎드려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 쪽에 앉았다.
이에 여래는 곧 그의 근기를 따라 그에게 법을 말씀하였다.
‘선남자여, 색촵수촵상촵행촵식은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내)가 없는데 그대는 알고
있는가?’
때에 야사의 아버지는 이렇게 하는 말씀을 듣고 즉시 모든 법에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
의어 법의 눈이 깨끗함을 얻고서 부처님께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색.수.상.행.식은 참으로 이는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내)가 없습니다.’
그 때에 여래는 벌써 그가 도의 자취를 보게 되어 은혜와 사랑이 점차로 엷어짐을 아시고
서 물었다.
‘그대는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는가?’
그는 곧 대답하였다.
‘저에게 하나의 아들이 있사온데 이름은 야사이옵니다. 어제 밤에 갑자기 있는 곳을 잃
었으므로 오늘 아침에 찾다가 그의 보배 신이 항하 가에 있음을 보고 발자국을 쫓아 찾으며
일부러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때에 세존은 그 신통력을 거두어들이고 그의 아버지가 곧 야사를 볼 수가 있게 하자,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며 야사에게 말하였다.
‘장하고 장하도다. 네가 이런 일을 한 것은 참으로 반갑구나. 이미 스스로 제도되었고 또
남을 제도할 수 있었도다. 네가 지금 여기에 있었기 때문에 내가 와서 도의 자취를 볼 수
있게 되었구나.’
그리고 곧 부처님에게 나아가 3자귀(自歸)를 받았나니, 이에 염부제 안에서 오직 이 장자
가 우바새(優婆塞)가 되어서 맨 처음에 3보에게 공양하게 되었다.
그 때 또 야사의 벗으로서 50명의 장자 아들들이 있었는데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셨음을
들었고, 또 야사가 부처님 법 가운데서 출가하여 도를 닦음을 듣고서 저마다 생각하였다.
‘세간에 지금 위없는 높으신 이가 계시는구나. 장자의 아들 야사가 총명하고 말을 잘하
며 재주가 남에게 뛰어났었는데도 이에 능히 그 뛰어난 성바지를 버리고 다섯 가지 욕심도
버리면서 모양을 무너뜨리고 뜻을 지키며 사문이 되었으니 말이다. 우리들이 이제 다시 무
엇을 돌보고 그리워하여 출가를 하지 않겠느냐.’
그리고는 함께 부처님의 처소에 나아가다가 아직 닿기 전에 멀리서 여래의 상호가 특수하
고 광명이 빛남을 보고서 마음이 크게 기뻐지고 온몸이 맑고 시원해지면서 공경하는 뜻이
더욱 더해지는지라, 곧 부처님에게 나아가 합장하여 돌고 땅에 엎드려 발에 예배하는데 여
러 장자의 아들들은 전생에 덕의 근본을 심어서 총명하고 통달하여 쉬이 깨치겠으므로, 여
래는 곧 알맞게 그들을 위하여 법을 말씀하셨다.
‘선남자들아, 색촵수촵상촵행촵식은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내)가 없는데 너희들은
알고 있느냐?’
이 말씀을 하여 마치자, 때에 여러 장자의 아들들은 모든 법 안에서 티끌을 멀리하고 때
를 여의어 법 눈이 깨끗함을 얻고서 곧 부처님께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색촵수촵상촵행촵식은 참으로 이는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내)가 없습
니다.
오직 원하옵나니, 세존께서는 저희들의 출가를 허락하옵소서.’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잘 왔구나, 비구들아.’
그러자 수염과 머리칼이 저절로 떨어지고 가사가 몸에 입혀지며 곧 사문이 되었다.
그 때 세존은 또 그들을 위하여 널리 네 가지 진리를 말씀하시니, 때에 50명의 비구들은
번뇌가 다하고 뜻이 풀리어 아라한의 과위를 얻게 된지라, 그 때에 비로소 56명의 아라한이
있게 되었다.
이 때 여래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할 일을 다 마친지라 세간을 위하여 으뜸가는 복 밭을 지을 만하니, 저마다
지방에 노닐면서 교화하되 자비심으로써 중생들을 제도해야 할지어다. 나도 이제 역시 혼자
마가다의 왕사성 성중에 가서 여러 인민들을 제도하리라.’
그러자 비구들을 말하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때에 비구들은 땅에 엎드려 발에 예배하고 서마다 옷과 바루를 가지고 작별하며 떠나
갔다.
그 때 세존은 곧 생각하였다.
‘나는 이제 어떠한 중생을 제도하면 널리 일체 인간과 천상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 오
직 우루빈라 가섭(優樓頻螺迦葉)의 형제 세 사람이 있구나.
마가다국에 있으면서 신선의 도를 배우며 국왕과 신민들이 모두 다 귀의하며 믿고, 또 그
들은 총명하여 근기가 영리하므로 쉬이 깨치리라. 그러나 그들은 교만하여 역시 꺾어 복종
시키기 어려우므로, 나는 이제 가서 제도 해탈시키리라.’
생각하기를 마치자 즉시 바라나시를 출발하여 마가다국으로 나아가셨는데, 해가 저물려
할 적에 우루빈라 가섭이 살고 있는 곳으로 가셨다.
때에 가섭은 문득 여래의 상호가 장엄함을 보고 마음에 크게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나이 젊은 사문은 어디서 오셨습니까?’
부처님은 대답하였다.
‘나는 바라나국에서 마가다국으로 나오는 참인데 날이 저물었으니 하룻밤 묵고 가고 싶
습니다.’
가섭은 또 말하였다.
‘묵고 가려는 것을 반대함은 아니나, 다만 여러 방사에는 모든 제자들이 머무르고 있습
니다. 오직 석실(石室)이 있어서 극히 깨끗하기는 하나 내가 섬기는 불의 도구들이 모두 그
가운데에 있습니다. 여기는 고요한 곳인지라 들으실 수는 있습니다만 나쁜 용이 그 속에 살
고 있으므로 그대를 해칠까 걱정될 뿐입니다.’
부처님은 또 대답하였다.
‘나쁜 용이 있다 손치더라도 다만 빌리기나 하십시다.’
가섭은 또 말하였다.
‘그의 성질이 흉악하고 사나워서 반드시 그대를 해치리다. 이는 아까워서가 아닙니다.’
부처님은 또 대답하였다..
‘다만 빌려 주시기나 하십시오. 반드시 욕보지는 않으리다.’
가섭은 또 말하였다.
‘만약 머무르실 수 있다는 뜻대로 머무십시오.’
부처님은 말씀하였다.
‘좋습니다.’
그리고는 곧 그 저녁에 석실에 들어가서 가부하고 앉으며 삼매(三味)에 들었다.
그 때 나쁜 용은 독한 마음이 차츰 성왕하며 온몸에서 연기를 뿜어내자, 세존은 곧 화광
(火光) 삼매에 드셨다. 용은 이를 보고 나서 불길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뿜었는지라 석실
이 불에 탔다.
가섭 제자들은 먼저 이 불을 보고서는 돌아와 스승에게 아뢰었다.
‘그 나이 젊은 사문은 총명하고 단정 엄숙하더니, 이제 용의 불에 타면서 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가섭은 놀라 일어나서 그 용의 불을 보고 마음에 슬픔과 가엾음을 품고 곧 제자들에게 명
하여 물을 퍼붓게 하였으나 물에도 꺼지지 않고 불은 더욱 훨훨 타며 석실이 녹아 없어졌
다.
그 때 세존은 몸과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뿐더러 얼굴빛이 태연하여 그 나쁜 용을 항복받
고 다시는 독이 없게 하고 3귀의를 주어서 바루 안에 넣어 두었다.
날이 밝자 가섭과 제자들은 모두 부처님께 나아가서 말하였다.
‘나용의 불이 사납게 타올랐는데, 젊은 사문께서는 그 때문에 상처가 나지 않으셨습니
까? 사문께서 석실을 빌리려 하는 데도 내가 어제 드리려 하지 않은 까닭은 바로 이것 때문
이었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였다.
‘나는 안이 깨끗하였는지라 마침내 그의 바깥의 재앙에 해를 당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
독룡이 지금 바루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는 바루를 들어서 가섭에게 보이자 가섭과 제자 들은 사문이 불에서도 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나쁜 용을 항복 받아서 바루 속에 놓아두었음을 보고 전에 없던 일이라 찬양
하면서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나이 젊은 사문이 비록 신통이 있다 하더라도, 그러나 원래 나의 도의 참됨만은 못하리
라.’
그 때 세존은 가섭에게 말하였다.
‘나는 이제 이곳에 머무르고자 합니다.’
가섭은 대답하였다.
‘좋습니다. 뜻대로 하십시오.’
이 때 여래는 이틀째의 밤에 한 나무 아래 앉아 계셨다. 때에 사천왕이 밤에 부처님의 처
소에 와서 같이 법을 들으면서 저마다 광명을 놓아 비추니 해와 달보다 더하였는데, 가섭이
밤에 일어나서 멀리 하늘의 광명이 여래의 곁에 있음을 보고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나이 젊은 사문도 불을 섬기는구나.’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부처님께 나아가서 물었다.
‘사문이여, 당신도 불을 섬기십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였다.
‘아닙니다. 사천왕이 밤에 와서 법문을 들었는데, 그 광명이었습니다.’
이에 가섭은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나이 젊은 사문이 크고도 거룩한 덕이 있구나. 그러나 원래 나의 도의 참됨만은 못하리
라.’
사흘째의 밤에는 석제환인이 내려와서 법을 들으며 큰 광명 놓자 마치 해가 처음 돈은 것
과 같았는데, 가섭의 제자들이 멀리 하늘의 광명이 여래의 곁에 있음을 보고서 스승에게 아
뢰었다.
‘나이 젊은 사문이 틀림없이 불을 섬기고 있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 부처님의 처소에 나아가 사문에게 물었다.
‘당신은 틀림없이 불을 섬기십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였다.
‘아닙니다. 석제환인이 내려와서 법문을 들었는데, 바로 그 광명이었을 뿐입니다.’
때에 가섭은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나이 젊은 사문의 거룩한 덕이 비록 뛰어났다 하더라도, 그러나 원래 나의 도의 참됨만
은 못하리라.’
나흘째의 밤에는 대범천왕이 내려와서 방을 들으면서 큰 광명을 놓으매 마치 해가 한낮인
것과 같았는데, 가섭이 밤에 일어나서 광명이 여래의 곁에 있음을 보고,
‘사문은 반드시 불을 섬기리라.’
다음 날에 부처님께 물었다.
‘당신은 틀림없이 불을 섬기십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였다.
‘아닙니다. 대범천왕이 밤에 와서 법문을 들었는데, 바로 그 광명이었을 뿐입니다.’
이에 가섭은 생각하였다.
‘나이 젊은 사문이 비록 신령스럽고 미묘하다 하더라도, 그러나 원래 나의 도의 참됨만
은 못하리라.’
그 때 가섭의 5백 제자들은 저마다 세 가지 불을 섬기고 있었으므로 새벽에 모두가 불을
피우려 하였는데, 불이 타지 않았다. 모두가 가섭을 향하여 자세히 이 일을 말하자, 가섭은
듣고 생각하였다.
‘이는 반드시 이 사문이 하는 것이리라.’
곧 제자들과 함께 부처님에게 나아가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우리 제자들은 저마다 세 가지 불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불을 피우려고 하
는데 불이 타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곧 대답하였다.
‘당신은 돌아가십시오. 불은 저절로 탈 것입니다.’
가섭이 곧 돌아왔더니 불이 이미 타고 있음을 보고 생각하였다.
‘나이 젊은 사문이 비록 신령스럽고 미묘하다 하더라도 그러나 원래 나의 도의 참됨만은
못하리라.’
여러 제자들은 불에 공양하기를 마치고 끄려고 하였는데 꺼지지를 않았다. 곧 가섭을 향
하여 자세히 이 일을 말하자, 가섭은 듣고 나서 생각하였다.
‘이것 역시 이 사문이 하는 짓이리라.’
곧 제자들과 부처님에게 와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나의 제자들이 아침에 불을 끄려 하는데 불이 꺼지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곧 대답하였다.
‘당신은 돌아가십시오. 불은 저절로 꺼질 것입니다.’
가섭이 곧 돌아왔더니 불이 이미 꺼졌음을 보고 생각하였다.
‘나이 젊은 사문이 비록 또 신령스럽고 미묘하다 하더라도 그러나 원래 나의 도의 참됨
만은 못하리라.’
그 때 가섭 자신도 세 가지 불을 섬겼으므로 새벽에 불을 피우려 하였는데, 불이 타지 않
는지라 곧 생각하였다.
‘이것은 반드시 또 이 사문이 하는 짓이리라.’
곧 부처님에게 나아가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나는 아침에 불을 피우려 하는데 타려 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곧 대답하였다.
‘당신은 돌아가십시오. 불은 저절로 탈 것입니다.’
가섭이 곧 돌아왔더니 불이 이미 타고 있음을 보고 생각하였다.
‘나이 젊은 사문이 비록 또 신령스럽고 미묘하다 하더라도, 그러나 원래 나의 도의 참됨
만은 못하리라.’
때에 가섭은 불에게 공양하기를 마치고 끄려고 하였는데 끌 수가 없는지라 생각하였다.
‘이는 반드시 이 사문이 하는 짓이리라.’
곧 부처님에게 가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나는 아침에 불을 피웠다가 이제는 끄려고 하는데 꺼지지를 않습니다.’
부처님은 곧 대답하였다.
‘당신은 돌아가십시오. 불은 저저로 꺼졌을 것입니다.’
가섭이 곧 돌아왔더니 불이 이미 꺼졌음을 보고 생각하였다.
‘나이 젊은 사문이 비록 또 신령스럽고 미묘하다 하더라도, 그러나 원래 나의 도의 참됨
만은 못하리라.’
그 때 가섭의 제자들은 새벽에 장작을 패는데 도끼가 올라가지 않자 곧 가섭을 향하여 자
세히 이 일을 말하였다. 가섭은 듣고 나서 생각하였다.
‘이는 반드시 또 이 사문이 하는 짓이리라.’
곧 제자들과 함께 부처님에게 와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나의 제자들이 아침에 장작을 패려 하는데 도끼가 올라가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곧 대답하였다.
‘당신은 돌아가십시오. 도끼는 저절로 들어 올려질 것입니다.’
가섭은 곧 돌아왔더니 여러 제자들의 도끼가 모두 들어 올려졌음을 보고 생각하였다.
‘나이 젊은 사문이 비록 또 신령스럽고 미묘하다 하더라도, 그러나 원래 나의 도의 참됨만
은 못하리라.’
가섭의 제자들은 곧 도끼를 들어 올릴 수는 있었으나 다시 내려오려 하지 않으므로 도로
가섭을 향하여 자세히 이 일을 말하였더니, 가섭은 듣고 나서 생각하였다.
‘이것 역시 이 사문이 하는 짓이리라.’
곧 제자들과 함께 부처님에게 와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나의 제자들이 아침에 장작을 패려 하다가 도끼는 들어 올려졌지만 다시 내려오려 않습
니다.’
부처님은 곧 대답하였다.
‘당신은 돌아가십시오. 도끼가 내려올 것입니다.’
가섭은 돌아왔더니 제자들의 도끼가 모두 내려왔음을 보고서 생각하였다. ‘나이 젊은 사
문이 비록 또 신령스럽고 미묘하다 하더라도, 그러나 원래 나의 도의 참됨만은 못하리라.’
그 때 가섭은 아침에 스스로 장작을 패려 하는데, 도끼가 올라가지 않는지라 생각하였다.
‘이것 역시 이 사문이 하는 짓이리라.’
곧 부처님에게 나아가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나는 아침에 장작을 패려는데 도끼가 올려지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곧 대답하였다.
‘당신은 돌아가십시오. 도끼는 저절로 올려질 것입니다.’
가섭은 돌아왔더니 도끼가 바로 들어 올려졌으므로 생각하였다.
‘나이 젊은 사문이 비록 또 신령스럽고 미묘하다 하더라도, 그러나 원래 나의 도의 참됨
만은 못하리라.’
가섭은 도끼가 올려지고 나서는 또 내려오려 하지 않으므로 생각하였다.
‘이것 역시 이 사문이 하는 짓이리라’ 하고, 곧 부처님에게 나아가서 부처님께 아뢰었
다.
‘나의 도끼가 올려지기는 하였으나 다시 내려오려 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곧 대답하였다.
‘당신은 돌아가십시오. 도끼는 저절로 내려질 것입니다.’
가섭은 곧 돌아왔더니 도끼가 곧 내려지는지라 생각하였다.
‘나이 젊은 사문이 비록 신령스럽고 미묘하다 하더라도, 그러나 원래 나의 도의 참됨만
은 못하리라.’
그 때 가섭은 바로 부처님께 아뢰었다.
‘나이 젊은 사문은 여기에 머무르면서 함께 맑은 행을 닦으십시다. 방사와 옷이며 음식
은 내가 드리겠습니다.’
때에 세존은 잠자코 허락하시므로, 가섭은 부처님이 허락하심을 알고는 그의 머무는 데로
돌아가서 곧 명하였다.
‘날마다 좋은 음식을 마련하고 아울러 평상 자리도 베풀도록 하라.’
다음날 끼니때가 되매 스스로가 가서 부처님을 청하였더니, 부처님은 말씀하였다.
‘당신은 가십시오. 나는 뒤를 따라 가겠습니다.’
가섭이 떠나가자마자, 잠깐 사이에 세존은 염부제에 이르러서 염부 열매[閻浮果]를 따서
바루에 가득히 채워 가지고 와서는 가섭이 아직 닿기 전에 이미 먼저 도착하여 있었다. 가
섭은 뒤에 와서 부처님이 이미 앉아 계심을 보고서 곧 물었다.
‘나이 젊은 사문은 어느 길로 하여 오셨기에 먼저 여기에 닿으셨습니까?’
부처님은 바루 안의 염부 열매를 가섭에게 보이면서 말씀하였다.
‘당신은 이제 이 바루 속의 열매를 알고 계십니까?’
가섭은 대답하였다.
‘이런 열매는 모릅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였다.
‘이로부터 남쪽으로 수만 요자나를 가면 거기에 하나의 주(洲)가 있고 그 위에 나무가
있는데 이름이 염부(閻浮)입니다. 이 나무가 있음으로 인연하여 염부제[閻浮洲]라 하는 것입
니다. 나의 이 바루 속의 것은 바로 이 과일인데, 잠깐 동안에 이 과일을 가지고 왔습니다.
아주 향기롭고 맛이 있으니 당신은 잡수십시오.’
이에 가섭은 생각하였다.
‘그 길이 여기에서 떨어져서 극히 멀고 멀거늘, 이 사문은 잠깐 동안에 벌써 갔다 돌아
왔구나. 신통 변화가 퍽이나 빠르기는 하되, 그러나 나의 도의 참됨만은 못하리라.’
가섭은 여러 가지의 음식을 내어 놓자, 부처님은 곧 주원(呪願)을 하였다.
바라문의 법 가운데서는
불을 받들어 섬김이 으뜸이 되고
온갖 물의 흐름 가운데서는
큰 바다가 그 으뜸이 되느니라.
모든 별의 가운데서는
달빛이 그 으뜸이 되고
온갖 광명의 가운데서는
해의 비춤이 그 으뜸이 되느니라.
모든 복밭[福田] 가운데서는
부처님의 복밭이 으뜸이 되므로
만약 큰 과보를 구하려 하면
부처님의 복밭에 고양해야 하리라.
부처님은 잡수기를 마치고 도로 계신 데로 돌아가서 바루를 씻고 양치질을 하고서는 나무
아래 앉아 계셨다.
다음 날 끼니때에 다시 가서 부처님을 청하자 부처님은 말씀하였다.
‘당신은 가십시오. 나는 뒤를 따라 가겠습니다.’
가섭이 떠나가자마자 잠깐 사이에 세존은 곧 불바제(弗婆提)에 이르러서 암마라 열매[菴
摩羅果]를 따서 바루에 가득히 채워 가지고 와서는 가섭이 아직 닿기 전에 부처님은 이미
먼저 도착하여 있었다. 가섭은 뒤에 와서 부처님이 앉아 계심을 보고 곧 물었다.
‘나이 젊은 사문은 어느 길로 하여 오셨기에 먼저 여기에 닿으셨습니까?’
부처님은 바루 안의 암바 과일을 가섭에게 보이면서 말씀하였다.
‘당신은 이제 이 바루 안의 과일을 알고 계십니까?’
가섭은 대답하였다.
‘이런 과일은 모릅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여기서부터 동쪽으로 수만 요자나를 가서 불바제(弗婆提)에 도착하여 이 과일을 가지고
왔는데, 이름은 암마라(菴摩羅)라고 합니다. 극히 향기롭고 맛이 있으니 당신은 잡수십시
오.’
가섭은 듣고서 생각하였다.
‘그 길이 여기에서 떨어져서 극히 멀고 멀거늘, 이 사문은 잠깐 동안에 벌써 갔다가 돌
아왔구나, 그 신력을 보면 전에 없던 일이기는 하되, 그러나 원래 나의 도의 참됨만은 못하
리라.’
가섭은 여러 가지의 음식을 내어 놓자, 부처님은 곧 주원을 하였다.
바라문의 법 가운데서는
불을 받들어 섬김이 으뜸이 되고
온갖 물의 흐름 가운데서는
큰 바다가 그 으뜸이 되느니라.
모든 별의 가운데서는
달빛이 그 으뜸이 되고
온갖 광명의 가운데서는
해의 비춤이 그 으뜸이 되느니라.
모든 복밭 가운데서는
부처님의 복밭이 으뜸이 되므로
만약 큰 과보를 구하려 하면
부처님의 복밭에 공양해야 하리라.
부처님은 잡수기를 마치고 도로 계신 데로 돌아가서 바루를 씻고 양치질을 하고서는 나무
아래 앉아 계셨다.
다음 날의 끼니때에 다시 가서 부처님을 청하자, 부처님은 말씀하였다.
‘당신은 가십시오. 나는 뒤를 따라 가겠습니다.’
가섭이 떠나가자마자, 잠깐 사이에 세존은 곧 구다니(瞿陀尼)에 이르러서 하리륵 열매[呵
梨勒果]를 따서 바루에 가득히 채워가지고 와서는 가섭이 아직 닿기 전에 부처님은 벌써 먼
저 도착하여 있었다. 가섭이 뒤에 와서 부처님이 벌써 앉아 계심을 보고 곧 물었다.
‘나이 젊은 사문은 어느 길로 하여 오셨기에 먼저 여기에 닿으셨습니까?’
부처님은 바루 안의 하리륵 과일을 가섭에게 보이면서 말씀하였다.
‘당신은 이제 이 바루 속의 과일을 알고 계십니까?’
가섭은 대답하였다.
‘이런 과일은 모릅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였다.
‘여기서부터 서쪽으로 수만 요자나를 가서 구다니에 도착하여 이 과일을 가지고 왔는데,
이름은 하리륵이라고 합니다. 극히 향기롭고 맛이 있으니 당신은 잡수십시오.’
가섭은 듣고서 생각하였다.
‘거기의 길이 여기에서 떨어져서 극히 멀고 멀거늘, 이 사문은 잠깐 동안에 벌써 갔다가
돌아왔구나. 그의 신통을 보면 전에 없던 일이기는 하되, 그러나 나의 도의 참됨만은 못하리
라.’
가섭은 여러 가지의 음식을 내어 놓자, 부처님은 곧 주원을 하였다.
바라문의 법 가운데서는
불을 받들어 섬김이 으뜸이 되고
온갖 물의 흐름 가운데서는
큰 바다가 그 으뜸이 되느니라.
모든 별의 가운데서는
달빛이 그 으뜸이 되고
온갖 광명의 가운데서는
해의 비춤이 그 으뜸이 되느니라.
모든 복밭 가운데서는
부처님의 복밭이 으뜸이 되므로
만약 큰 과보를 구하려 하면
부처님의 복밭에 공양해야 하리라.
부처님은 잡수기를 마치고 도로 계신 데로 돌아가서 바루를 씻고 양치질을 하고서는 나무
아래 앉아 계셨다.
다음 날의 끼니때에 다시 가서 부처님을 청하자, 부처님은 말씀하였다.
‘당신은 가십시오. 나는 뒤를 따라 가겠습니다.’
가섭이 떠나가자마자, 잠깐 사이에 세존은 곧 울단월(鬱單越)에 이르러서 저절로 된 멥쌀
밥을 바루에 가득히 채워 가지고 와서는 가섭이 아직 닿기 전에 부처남은 벌써 먼저 도착하
여 있었다. 가섭이 뒤에 와서 부처님이 벌써 앉아 계심을 보고 곧 물었다.
‘나이 젊은 사문은 어느 길로 하여 오셨기에 먼저 여기에 닿으셨습니까?’
부처님은 바루 안의 멧쌀밥을 가섭에게 보이면서 말씀하였다.
‘당신은 이제 이 바루 속의 밥을 알고 계십니까?’
가섭은 대답하였다.
‘이런 밥은 모릅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였다.
‘여기서부터 북쪽으로 수만 요자나를 가서 울단월에 도착하여 이 저절로 된 멧쌀밥을 가
지고 왔습니다. 극히 향기롭고 맛이 있으니 당신은 잡수십시오.’
가섭은 듣고서 생각하였다.
‘거기의 길이 여기서 떨어져서 극히 멀고 멀거늘, 이 사문은 잠깐 동안에 벌써 갔다가
돌아왔구나. 비록 또 신통이 측량하기 어렵기는 하되, 그러나 원래 나의 도의 참됨만은 못하
리라.’
가섭이 곧 여러 가지의 음식을 내어 놓자, 부처님은 곧 주원을 하였다.
바라문의 법 가운데서는
불을 받들어 섬김이 으뜸이 되고
온갖 물의 흐름 가운데서는
큰 바다가 그 으뜸이 되느니라.
모든 별의 가운데서는
달빛이 그 으뜸이 되고
온갖 광명의 가운데서는
해의 비춤이 그 으뜸이 되느니라.
모든 복밭 가운데서는
부처님의 복밭이 으뜸이 되므로
만약 큰 과보를 구하려 하면
부처님의 복밭에 공양해야 하리라.
부처님은 잡수기를 마치고 물러나서 계신 데로 돌아가서 바루를 씻고 양치질을 하고서는
나무아래 앉아 계셨다.
다음 날의 끼니때에 다시 가서 부처님을 청하자, 부처님은 말씀하였다.
‘좋습니다.’
그리고 곧 함께 가셨는데, 그 집에 이르르자 여러 가지의 음식을 내어 놓으므로 부처님은
곧 주원을 하였다.
바라문의 법 가운데서는
불을 받들어 섬김이 으뜸이 되고
온갖 물의 흐름 가운데서는
큰 바다가 그 으뜸이 되느니라.
모든 별의 가운데서는
달빛이 그 으뜸이 되고
온갖 광명의 가운데서는
해의 비춤이 그 으뜸이 되느니라.
모든 복밭 가운데서는
부처님의 복밭이 으뜸이 되므로
만약 큰 과보를 구하려 하면
부처님의 복밭에 공양해야 하리라.
그 때 세존은 주원을 하여 마치자, 곧 밥을 가지고 혼자 나무 아래 돌아가서 잡수기를 마
치고 생각하였다.
‘물이 필요하구나.’
석제환인이 곧 부처님의 뜻을 알고 마치 큰 장사(壯士)가 팔을 굽혔다 펼 만큼 동안에 하
늘로부터 내려와 부처님에게 이르러서 땅에 엎드려 발에 예배하고, 곧 손으로 땅을 가리키
어 못을 만들었는데 그 물이 깨끗하여 여덟 가지의 공덕이 갖추어 있었으므로, 여래는 곧
그것을 이용하여 손을 씻고 양치질을 하여 마치고, 석제환인을 위하여 갖가지 법을 말씀하
자 석제환인은 법을 듣고 나서는 기뻐 뛰면서 홀연히 사라져 하늘의 궁전으로 돌아갔다.
이 때 가섭은 점심밥을 먹은 뒤에 숲 사이를 거닐며 다니다가 생각하였다.
‘나이 젊은 사문이 오늘은 밥을 받아서 나무 아래로 갔었는데, 나는 거기를 가보아야겠
다.’
곧 부처님에게 나아갔더니 갑자기 나무의 곁에 하나의 큰 못이 있음을 보았는데, 샘물이
맑고 맑아 여덟 가지 공덕을 갖추었는지라 괴이히 여기면서 부처님께 물었다.
‘이 가운데에 어떻게 해서 갑자기 이런 못이 있습니까?’
부처님은 곧 대답하였다.
‘아침에 당신에게 공양을 받아 이곳으로 돌아와서 먹기를 마치고는 손을 씻고 양치질하
며 바루를 씻으려고 (물이 필요하구나) 하였더니, 석제환인이 나의 이 뜻을 알고 천상으로부
터 와서 손으로 땅을 가리키어 이 못을 생기게 하였습니다.’
그 때에 가섭은 못의 물을 보며, 다시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서 생각하였다.
‘나이 젊은 사문이 크고 거룩한 덕이 있어서 이렇게 하늘의 상서까지 감응하게 되었구
나. 그러나 나의 도의 참됨만은 못하리라.’
그 때 세존은 따로 다른 날에 숲 사이를 거니시다가 쓰레기 속에서 여러 해진 베들이 있
음을 보고 곧 주워가지고 깨끗이 빨고자 하여, ‘돌이 필요하구나’라고 생각하였다.
석제환인이 곧 부처님의 뜻을 알고 마치 큰 장사가 팔을 굽혔다 펼 만큼 동안에 향산(香
山)위에 가서 네모난 돌을 가져다 나무 사이에 놓아두면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돌 위에 나가셔서 옷을 빨으소서.’
부처님이 다시, ‘이제는 물이 있어야 하겠구나’라고 생각하였더니, 석제환인은 또 향산
에 가서 큰 돌로 된 통에 깨끗한 물을 담아다가 네모난 돌 곁에 놓아두고 석제환인은 할 일
을 마치자 홀연히 사라져 하늘의 궁전으로 돌아갔다.
그 때 세존은 빨래를 하신 뒤에 나무 아래 돌아가서 앉아 계시는데, 이 때에 가섭이 부처
님에게 와 닿았더니 갑자기 나무 사이에 네모난 돌과 큰 돌로 된 통이 있음을 보고 생각하
였다.
‘이 가운데에 어떻게 이런 두 가지 물건이 있을까?’
그리고는 마음에 놀람과 괴이함을 품고서 나아가 부처님께 물었다.
‘나이 젋은 사문이여, 당신의 이 숲 사이에 네모난 돌과 큰 돌로 된 통이 있는데, 어디서
온 것입니까?’
이에 세존은 곧 대답하였다.
‘내가 아까 거닐며 다니다가 땅에서 해진 베를 보고 가져다 빨려 하면서 마음으로 (이런
것이 필요하구나)라고 생각하였더니, 석제환인이 나의 이 뜻을 알고 곧 향산으로 가서 이런
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가섭은 듣고 나서 전에 없던 일이라 찬탄하면서 생각하였다.
‘나이 젊은 사문이 비록 이와 같은 크고도 거룩한 신력이 있어서 여러 하늘들이 감응은
한다손 치더라도, 그러나 원래 나의 도의 참됨만은 못하리라.’
그 때 세존은 또 다른 날에 땅을 가리켜 된 못에 들어가서 손수 목욕을 하셨는데 목욕을
다 하시고 생각하였다.
‘나가려 하는데 더위잡을 것이 없구나.’
못 위에 가라가(迦羅迦)라는 나무의 나뭇가지가 울창하여 못 위를 내려다 보고 있었는데
나무의 신[樹神]이 곧 이 나뭇가지를 눌러서 부처님에게 더위잡고 나오게 하였으므로 돌아
와서 나무 아래 앉아 계셨다.
때에 가섭이 부처님에게 왔었는데, 홀연히 나무의 가지가 굽고 늘어져서 덮여 있음을 보
고 괴이히 여기면서 부처님께 물었다.
‘이 나무가 어찌하여 가지가 굽고 늘어져서 덮여 있습니까?’
부처님은 곧 대답하였다.
‘나는 아까 못에 들어가 목욕을 하였으나 나오는 데에 더위잡을 것이 없더니, 나무의 신
이 감응하여 나를 위해서 굽어지게 하였습니다.’
이에 가섭은 나무의 굽은 가지를 보고 또 부처님의 말씀까지 듣고서는 전에 없던 일이라
찬탄하면서 생각하였다.
‘나이 젊은 사문이 이러한 크고 거룩한 덕의 힘이 있어서 능히 나무의 신을 감응하게 하
기는 하되 그러나 원래 나의 도의 참됨만은 못하리라.’
그 때 가섭은 생각하였다.
‘내일 마갈제(摩竭提) 국왕과 여러 신하와 인민이며 바라문.장자.거사 등이 와서 이레 동
안 모임이 있을 터인데, 나이 젊은 사문이 만약 와서 여기에 있으면 국왕과 신하며 인민들
과 바라문.장자.거사 등이 그의 상호와 신통이며 위덕(威德)의 힘을 보는 이는 반드시 나를
버리고 그를 받들어 섬기리라. 이 사문이 이레 동안 만은 나의 처소에 오지 마소서.’
부처님은 그의 뜻을 알고는 곧 북쪽의 울단월에 가셔서 이레 낮 이레 밤을 거기에 머무면
서 나타나지를 않았다.
이레 동안을 경과하여 집회가 끝나고 국왕이 작별하고 떠나가자 가섭은 생각하였다.
‘나이 젊은 사문이 이레가 가깝도록 나에게 오지를 않았으니, 잘하였고 반갑도다. 나는
이제 집회에 남은 음식이 있으므로 공양을 하고 싶은데, 그가 만약 온다면 시기가 적절하리
라.’
이에 세존은 곧 그의 뜻을 알고 웃타라쿠루로부터 마치 장사가 팔을 굽혔다 펼 만큼의 사
이에 그의 앞에 와 닿았다.
때에 가섭은 갑자기 여래를 보고서 마음으로 크게 놀라고 기뻐하면서 부처님께 물었다.
‘당신은 근 이레 동안이나 어디를 노닐며 다니셨기에 서로 만나지를 못하였습니다.’
부처님은 곧 대답하였다.
‘마갈제왕과 여러 신하와 백성들이며 바라문촵장자촵거사들이 이레 동안을 당신에게 나
와서 모인다 하면서 당신은 생각하기를 (나를 보고 싶지 아니하다)고 하기에 그 때문에 나
는 북쪽 울단월까지 가서 당신을 피하였을 뿐입니다. 당신이 이제 (나를 오게 하고 싶다)고
하기에 일부터 당신에게 왔습니다.’
가섭은 부처님이 하시는 이 말씀을 듣고 나서 마음으로 놀라며 털이 곤두서면서 생각하였
다.
‘나이 젊은 사문이 나의 뜻을 아는구나. 매우 기특하다. 그러나 원래 나의 도의 참됨만은
못하리라.’
그 때 세존은 또 다른 날에 생각하였다.
‘우루빈라 가섭의 근기의 인연이 점차 성숙하였으니, 지금이야말로 바로 조복할 때로구
나.’
그리고는 곧 니련선하에 나아가서 물가에 이르렀다.
이 때 악마왕은 부처님에게 와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요, 지금이야말로 열반하실 때입니다. 선서(仙逝)시여, 지금이야말로 열반하실
때입니다. 왜냐 하면 제도해야 할 이들이 모두 해탈하였기 때문이니, 지금이야말로 바로 열
반할 때입니다.’
이렇게 세 번을 청하므로 세존은 그 때에 악마왕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지금 아직은 열반할 때가 아니로다. 왜냐 하면 나의 4부(部) 대중인 비구촵비구니
촵우바새촵우바이가 아직은 두루 갖추지 못하였고, 제도해야 할 이들이 모두가 아직 끝나지
못하였으며, 여러 외도들을 다 아직은 항복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니라.’
역시 세 번을 대답하자, 악마왕은 듣고서 마음에 근심과 괴로움을 품으며, 곧 하늘 궁전으
로 돌아갔다.
세존은 곧 니련선하의 물에 들어가며 신통의 힘으로써 물을 양 쪽으로 열리게 하고서 부
처님의 가시는 곳에서는 걸음걸음이 먼지가 일어나고 양 쪽의 물을 모두 솟구쳐 일어나게
하자, 가섭이 멀리서 보고 부처님이 빠지는 줄 여기며 곧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와서 물
가에 이르렀더니, 부처님의 가시는 곳에서는 모두 먼지가 일어남이 보이는지라 그 있기 드
문 일임을 찬탄하고서 생각하였다.
‘나의 젊은 사문이 비록 이와 같은 신통의 힘이 있다 하더라도, 그러나 원래 나의 도의
참됨만은 못하리라.’
이 때에 가섭은 곧 부처님께 물었다.
‘나이 젊은 사문은 배에 오르시겠습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였다.
‘참, 그렇게 하겠습니다.’
때에 세존은 곧 신통력으로써 배의 밑을 뚫고 들어가서 가부하고 앉으셨는데, 가섭은 부
처님이 배의 밑으로부터 들어왔는데도 뚫어져 샘이 없음을 보고 그 있기 드문 일임을 찬찬
하고서 생각하였다.
‘나의 젊은 사문이 이와 같이 자재로운 신통력이 있기는 하되 그러나 원래 내가 얻은 참
된 아라한만은 못하리라.’
부처님은 바로 말씀하였다.
‘가섭이여, 당신은 아라한이 아니오, 또 다시 이 아라한향(阿羅漢向)도 아닙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 때문에 크게 교만한 것이오?’
가섭은 이와 같이 하신 말씀을 듣는 때에 부끄럽고 두려워지며 몸의 털이 모두 곤두선지
라 생각하였다.
‘나이 젊은 사문이 나의 마음을 잘 아시는구나.’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사문이시여, 그렇습니다. 큰 신선이시여, 저의 마음을 잘도 아십니다. 큰 신
선이시여, 저를 거두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부처님은 곧 대답하였다.
‘그대는 이미 나이가 늙어서 120살이요, 또 다시 많은 제자와 권속들이 있으며, 또 국왕
과 신하며 백성들의 공경을 받고 있습니다. 만약 결정코 나의 방에 들고 싶으면 먼저 제자
들과 함께 깊이 생각하여 여러 번 의논을 하십시오.’
가섭은 대답하였다.
‘좋고 좋습니다. 큰 신선의 명대로 하겠습니다. 그러나 나의 속의 마음은 결정되지 않은
것은 아니므로 돌아가서 제자들과 의논만을 할 뿐이옵니다.’
이 말을 하여 마치고, 곧 본래 있던 데로 돌아가서 모든 제자들을 모아 놓고 말하였다.
‘나이 젊은 사문께서 여기에 머무신 이래로 그의 여러 가지 신통 변화를 보았지만, 극히
기특하고 지혜가 깊고 멀며 성품도 편안하고 차분하셨다. 나는 이제 곧 그의 방에 귀의하겠
는데, 너희들은 어떻게 하겠느냐?’
제자들은 대답하였다.
‘저희들의 아는 바가 모두 존자(尊者)의 은혜이옵니다. 나이 젊으신 사문을 이미 존자께
서 귀의하고 믿게 되는 바라면 어찌 거짓이 있겠나이까? 저희들 역시 여러 가지 기이함이
있음을 보았사온데 존자께서 만약 반드시 그의 법을 받으려 하신다면 저희들도 따라서 귀의
하게 하소서.’
때에 가섭은 여러 제자들이 하는 이런 말을 들은 뒤에 곧 서로 함께 부처님에게 나아가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와 제자들이 이제 귀의할 것을 결정하였사옵니다. 오직 원하옵건대, 큰 신선께서는 바
로 저희들을 거두어 주옵소서.’
부처님은 말씀하였다.
‘잘 왔구나, 비구야.’
그러자 수염과 머리칼이 저절로 떨어지고 가사가 몸에 입혀지며 즉시 사문이 되었다.
그 때 세존은 곧 알맞게 널리 네 가지 진리를 말씀하시자, 때에 가섭은 설법함을 듣고 나
서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 법 눈이 깨끗함을 얻었으며, 내지 점차로 아라한을 이루
었다.
그 때 가섭의 5백 제자들은 그 스승이 이미 사문이 되었음을 보고 마음으로 소망하고 즐
거워하면서 역시 출가하려 하여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들 큰 스승이 이미 큰 신선께서 거두어 주셔서 이제 사문이 되었사오니, 저희들도
큰 스승을 따르며 배우고 싶습니다. 오직 원하옵건대, 큰 스승을 따르며 배우고 싶습니다.
오직 원하옵건대, 큰 신선께서는 저희들의 출가를 허락하옵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잘 왔구나, 비구들아.’
그러자 수염과 머리칼이 저절로 떨어지고 가사가 몸에 입혀지며 곧 사무들이 되었다.
이에 세존은 즉시 그들에게 네 가지 진리의 법 바퀴를 굴리시니, 때에 5백의 제자들은 티
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 법 눈이 깨끗함을 얻어서 수다원(須陀洹)의 과위(果位)를 이루
었으며, 점차로 닦고 행하여 이에 역시 아라한의 과위까지 얻었다.
그 때 가섭과 5백의 제자들은 그들의 불을 섬기던 갖가지 도구를 모두 다 니련선하(泥連
禪河)에 버리고 스승과 제자들은 서로가 함께 부처님을 따라서 떠나갔다.
그 때 가섭의 두 아우에 첫째의 이름이 나제 가섭(那提迦葉)이요, 둘째의 이름이 가야 가
섭(伽耶迦葉)이었는데, 저마다 있으면서 형의 하류(不流)에서 살다가 갑자기 그 형과 제자들
이 섬기던 불의 도가 모두 흐름을 따라 내려옴을 보고서 마음으로 크게 놀라며 생각하기를
‘나의 형에게 어떠한 상서롭지 못한 일이 있었기에 불을 섬기던 도구들이 지금 물을 따라
흘러오느냐. 나쁜 사람에게 해를 당하지 않았을까?’
이 때에 두 아우는 분주하게 서로가 와서 같이 의논하였다.
‘우리의 형님이 지금 혹시 또 나쁜 사람에게 해를 당하지 않았다면 모든 물건들이 무슨
일로 물을 따라 내려오겠느냐. 걱정되고 괴이하구나. 우리들은 빨리 형님의 처소로 가보아야
겠구나.’
곧 서로 함께 물을 거슬러서 올라가 형이 살던 곳에 이르렀더니, 텅 비고 고요하여 사람
들이 없는지라 마음에 몹시 크게 슬퍼하면서 그 형과 여러 제자들이 살고 있는 곳을 모르겠
으므로 사방으로 다니며 찾다가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나서 그에게 물었다.
‘우리의 신선이며 성인이신 형님과 제자들이 있는 데를 모르겠는데, 당신은 보셨습니
까?’
아는 사람이 대답하였다.
‘당신의 신선이요 성인이신 형님께서는 여러 제자들과 함께 불을 섬기던 도구를 버리고
모두가 다 구담[瞿曇]의 처소로 가서 출가하여 도를 닦고 있습니다.’
이 때에 두 아우들은 이 말을 듣고 나서 마음에 크게 괴로워하면서 전에 없던 일이라 괴
이히 여기며 도 생각하였다.
‘어찌하여 아라한의 도를 버리고 또 다시 다른 딴 법을 구하실까?’
곧 달려서 그의 형 처소로 나아가 닿았더니, 형과 그의 권속들이 수염과 머리칼을 깎아
없애고 몸에 가사를 입고 있음이 보이므로, 곧 꿇어앉아 절하고서 형에게 물었다.
‘형님은 본래 바로 크신 아라한이시었는지라 총명하고 지혜로워서 짝할 이가 없을뿐더러
이름이 시방에 들리어 숭앙하지 않는 이가 없거늘, 무엇 때문에 이제 스스로 이도를 버리시
고 도리어 남을 따라서 배우십니까? 이것은 작은 일이 아니십니다.’
그 때 가섭은 그 아우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세존께서 대자대비를 성취하셨고 세 가지 기특한 일이 있음을 보았도다. 첫째는
신통 변화요, 둘째는 지혜로운 마음이 맑게 사무쳐서 틀림없이 일체 종지를 이룩하셨음이요,
셋째는 사람의 근기를 잘 앎으로 따르며 거두어 주심이 그것이니라.
이런 일 때문에 부처님 법 중에 출가하여 도를 닦고 있다. 나는 이제 비록 또 국왕과 신
하며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았고 세상의 이론과 임기웅변의 변설을 꺾을 수 있는 이가 없었
다 하더라도 그러나, 영원히 나고 죽음을 끊는 법은 아니었었다. 오직 여래께서 널리 말씀하
시는 것만이 나고 죽음을 다할 수 있다. 곧 이와 같이 크고도 거룩하신 어른을 만나고서 스
스로 힘써서 저 높고 뛰어나심을 본받지 않는다면 이는 마음이 없고 또한 눈까지도 없는 것
이 되리라.’
두 아우는 아뢰었다.
‘만약 형님의 말씀과 같다면 틀림없이 이는 일체 종지를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알거나
얻은 것은 모두가 이는 형님의 힘이 있거늘 형님께서 이제 이미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셨으
니, 우리들도 형님을 따르며 배우게 하여 주소서.’
곧 저마다 그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이제 큰 형님과 같이 부처님 법 안에서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자 한다.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때에 그 제자들은 스승에게 대답하였다.
‘저희들이 식견을 지니게 된 까닭이 모두 큰 스승의 은혜이신데, 큰 스승께서 만약 부처
님의 법 안에 출가하고 싶다면 우리도 따르게 하소서.’
이에 나제 가섭과 가야 가섭은 저마다 250의 제자들과 더불어 부처님에게 이르러서 땅에
엎드려 발에 예배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오직 원하옵나니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셔서 저희들을 제도하여 주옵소서.’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잘 왔구나, 비구들아.’
그러자 수염과 머리칼이 저절로 떨어지고 가사가 몸에 입혀지며 곧 사문들이 되었다.
때에 나제 가섭과 가야 가섭은 또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 제자들은 이제 모두가 부처님의 법에 출가를 하고 싶다 하오니,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께서는 가엾이 여기셔서 허락하옵소서.’
부처님은 곧 대답하셨다.
‘장하고 장하도다.’
그 때에 세존은 즉시 말씀하셨다.
‘잘 왔구나, 비구들아.’
그러자 수염과 머리칼이 저절로 떨어지고 가사가 몸에 입혀지면서 곧 사문들이 되었다.
그 때 세존은 나제 가섭과 가야 가섭이며 그의 제자들을 위하여 큰 신통 변화를 나타내셨
고, 또 그의 마음에 알맞게 설법을 하시면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아, 알아야 하리라. 세간은 모두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사나운 불에 타고 지
짐을 받고 있다. 너희들은 옛날에 받들고 섬기던 세 가지 불을 이미 잘 끊어 버리고 이 밖
의 헷갈림을 없앴지만 이제 세 가지의 독 불을 오히려 몸에 있으니, 빨리 꺼버려야 할지니
라.’
때에 그 비구들은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모든 법 가운데에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
어 법 눈이 깨끗함을 얻었으며, 세존께서 또 그들을 위하여 널리 네 가지 진리를 말씀하시
자, 모두가 다 아라한의 과위를 얻었다.
그 때 세존은 생각하셨다.
‘빈비사라왕(頻毘娑羅王)이 옛날 나에게 언약으로 부탁하였다. (도가 만약 이루어지시면
먼저 저를 제도하여 주소서)라고 하였는데, 오늘날이야말로 때가 이른 것이니, 거기에 가서
그의 본래 소망을 채워 주어야겠구나’
그리고 곧 가섭의 형제와 천 비구 권속들에게 둘러싸여 왕사성으로 가셔서 빈비사라왕에
게 나아가셨다.
그 때 빈비사라왕은 옛날 마을에서 우루빈라 가섭을 공양하였었는지라 이미 가섭과 그 제
자들을 보았었는데, 모두가 사문이 되었으므로 곧 돌아가서 왕에게 이러한 일을 여쭈었더니,
왕과 신하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으로 크게 놀라고 괴이히 여기면서도 잠자코 소리를 하지
않았으나, 때에 바깥 인민들은 이 말을 듣고 나서 저마다 서로가 말하였다.
‘우루빈라 가섭은 지혜가 깊고 멀어서 짝할 이가 없을 뿐더러 나이 또 늙었고 이미 아라
한이 되었거늘, 어찌하여 도리어 구담의 제자가 되었겠느냐. 마침내 그럴 이치가 없을 것이
며, 말하자면 사문 구담이 제자가 되었을 뿐이리라.’
그 때에 세존이 점점 왕사성에 가까이 가셔서 장림(杖林)에 머무셨더니, 때에 우루빈라 가
섭은 곧 그의 항상 심부름하던 사람을 보내서 빈비사라왕에게 아뢰었다.
‘나는 이제 부처님의 법 안에 출가하여 도를 닦다가 지금 부처님을 따라서 장림에 와 닿
았습니다. 대왕은 마땅히 먼저 예배하고 공양하셔야 하오리다.’
왕은 온 편지로 한 이런 말을 듣고서야 틀림없이 우루빈라 가섭이 부처님의 제자가 된 줄
을 알고는 곧 칙명하여 수레를 차리고 여러 대신과 바라문이며 인민들과 함께 부처님에게
나아가서 장림의 밖에 닿자, 왕은 곧 수레에서 내리며 의전의 장식을 물리쳐 버리고 걸음으
로 부처님의 앞에 이르렀다.
그 때 공중에서 하늘이 있다가 왕에게 말하였다.
‘여래는 지금 이 숲 속에 계십니다. 바로 모든 천상과 인간의 가장 으뜸인 복 밭이시니,
대왕은 의당 공경하고 공양하여야 하며, 또 나라 안의 인민들에게 널리 알려서 모두가 다
여래께 공양하게 하여야 하리다.’
때에 왕은 그 하늘이 말함을 듣고 나서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면서 갑절이나 더 날뛰며 곧
숲 속으로 나아가다가 멀리서 여래의 상호가 장엄함을 보고 또 우루빈라 가섭 형제 세 사람
과 그 제자들이 앞뒤에서 둘러싸고 있음을 보매 마치 큰 만월이 뭇 별 가운데 있음과 같았
으므로 걸음걸음이 뛸 듯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는데, 부처님에게 이르르자 땅에 엎두려
발에 예배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바로 달의 성바지[月種]인 마가다왕이며, 이름은 빈비사라입니다. 세존께서는 아시
겠나이까?’
부처님은 바로 대답하셨다.
‘장하십니다. 대왕이여.’
이에 빈비사라왕은 물러나서 한 쪽으로 앉자, 때에 바라문과 대신들이며 여러 인민 대중
은 모두가 다 자리에 나아갔다.
그 때 세존은 온 대중들이 모두가 편히 앉음을 보신 뒤에 곧 맑은 음성으로써 빈비사라왕
에게 위문하셨다.
‘대왕이여, 네 가지 요소[四大]가 언제나 편안하고 고요하였습니까? 백성을 다스리는 일
에 고달프지는 않았습니까?’
왕은 곧 대답하였다.
‘세존의 은혜를 입자와 다행히 편안하고 고요하였사옵니다.’
그 때에 빈비사라왕과 그 밖의 크게 뛰어난 바라문.장자.거사.대신이며 인민들은 가섭이
부처님의 제자로 되어 있음을 보고 서로가 말하였다.
‘아아, 여래는 큰 신통력이 있고 지혜가 깊고 멀어서 생각하거나 헤아릴 수조차 없었기
에 이와 같은 사람을 능히 복종시키어 제자를 삼으셨구나.’
그 때에 또 다른 사람들은 생각하였다.
‘우루빈라 가섭은 큰 지혜를 지녀서 널리 세상 사람들의 귀의와 믿음을 받았었거늘, 어
찌하여 사문 구담의 제자가 되었을까?’
그리고는 마음에 의심을 품었다.
그 때 세존은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곧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제 여러 신통 변화를 나타내거라.’
때에 가섭은 즉시 허공으로 올라가서는 몸 위로 물을 내고 몸 아래로 불을 내며 몸 위로
불을 내고 몸 아래로 물을 내며, 혹은 큰 몸을 나타내어 공중을 가득 채우기도 하고 혹은
또 작게 나타내기도 하며 혹은 한 몸을 나누어서 한량없는 몸이 되기도 하고 혹은 땅으로
들어갔다가 도로 다시 솟구쳐 나오기도 하며, 공중에서 가고촵서로촵앉고촵눕기도 하는지라
온 대중들이 보고서는 전에 없던 일이라 찬탄하고 모두가 다 칭찬하였다.
‘첫째가는 큰 신선이로다.’
그 때에 가섭은 이 변화를 나타낸 뒤에 허공으로부터 내려와 부처님의 앞에 이르러서는
땅에 엎드려 발에 예배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야말로 참으로 천상과 인간의 스승이오며, 저는 이제 참으로 세존의 제자이옵니
다.’
이렇게 세 번을 말하자, 부처님은 바로 대답하셨다.
‘그렇고 그렇다. 가섭아, 너는 나의 법에서 어떠한 이익을 보았기에 불의 도구를 버려 없
애고 출가를 하였느냐?’
이에 가섭은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저는 옛날에
불을 섬겼던 공덕으로
천상과 인간 안에 생을 얻어서
다섯 가지 욕심의 낙을 받았나이다.
한결같이 이렇게 바퀴돌 듯하면서
나고 죽는 바다에 빠졌었나니
저는 이런 허물과 근심을 보았기에
그 까닭에 그것을 버렸나이다.
또 다시 불을 성긴 복으로
천상과 인간에 생을 얻어서
탐내고촵성내고촵어리석음만 더한지라
그 때문에 저는 멀리 여의었나이다.
또 다시 불을 섬긴 복으론
장래에 나기[生]를 구하기 위함인데
이미 나기가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늙고.병들고.죽음이 있었으며
이미 이러한 일들을 보았기에
그 때문에 불의 법을 버렸나이다.
모임을 베풀며 고해를 닦고
그리고 불을 섬긴 복으로
비록 범천(梵天)에 남을 얻었더라도
이것은 마지막의 처소가 아닌지라
이러한 인연 때문에
불 섬기는 일을 버렸나이다.
제가 여래의 법을 보건대
나고.늙고.병들음과 죽음을 떠났으며
마지막의 해탈하는 곳이었는지라
그 때문에 이제 출가하였나이다.
여래는 참으로 해탈을 하셔서
하늘과 사람들의 스승이 되었나니
이러한 인연 때문에
크고 거룩한 어른에게 귀의하였나이다.
여래는 큰 인자함과 가엾이 여김으로
갖가지 방편을 나타내시고
그리고 여러 가지 신통력을 쓰셔서
저희들을 이끌고 지도를 하셨거늘
어떻게 다시 불의 법을
받들고 섬길 수 있었겠나이까.
그 때 빈비사라왕과 여러 대중들은 우루빈라 가섭이 말하는 이 게송을 듣고 마음으로 크
게 기뻐하며 여래에게 깊은 공경과 믿음을 내면서 틀림없이 여래는 일체 종지를 이룩하셨다
함을 알게 되었고 진실로 가섭은 바로 부처님의 제자인 줄 알았다.
그 때 여러 하늘들은 공중에서 뭇 하늘의 꽃을 비내리고 미묘한 풍악을 잡히며 모두가 소
리를 같이하여 부르짖었다.
‘거룩하십니다. 우루빈라 가섭여, 쾌히 이 게송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에 세존은 모든 대중들의 마음에 결정코 다시는 의심이 없음을 아셨다.
또 그들의 근기가 모두 의미 성숙하였음을 자세히 살피고 곧 그들을 위하여 법을 말씀하
셨다.
‘대왕이여, 아셔야 합니다. 이 5음(陰)의 몸은 의식[識]으로 근본이 되어서 의식으로 인하
여 뜻 감관[意根]이 생겼으며 뜻 감관 때문에 빛깔[色]이 생겼나니, 이 빛깔의 법은 나고 없
어지고 하여 머무르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만약 이와 같이 자세히 살필 수 있으면 몸에 대하여 무상한 줄을 잘 알 것입니
다.
이와 같이 몸을 자세히 살펴서 몸의 형상을 춰하지 아니하면 (나)와 내 것[我所]이란 것을
여읠 수 있으며, 만약 잘 빛깔을 살펴서 (나)와 내 것이라 함을 여의면 바로 빛깔이 생겨서
곧 이 괴로움이 생기는 줄 알 것입니다.
만약 빛깔이 스러지면 곧 이 괴로움이 스러지는 줄 알 것이니, 만약 사람이 이와 같이 자
세히 살필 수 있으면 이것을 풀림[解]이라 하고, 만약 사람이 이렇게 자세히 살필 수 없으면
이것을 얽매임[?]이라 합니다.
법은 본래가 (나)와 내 것이라 할이 없거늘 뒤바뀐 생각 때문에 멋대로 (나)와 내 것이
있다고 헤아리거니와 실제가 있는 법이란 없나니, 만약 이 뒤바뀐 생각을 끊을 수 있으면
곧 이는 해탈한 것입니다.’
그 때에 빈비사라왕은 마음으로 생각하였다.
‘만약 중생들이 (내)가 있다고 말하면 얽매임이라 이름하시는데, 일체 중생에게 모두가
다 (내)가 없다고 하면 이미 (내)가 없거니 누가 과보를 받을까?’
그 때에 세존(世尊)은 그의 생각을 아시고 바로 말씀하셨다.
‘일체 중생들이 행하는 선과 악이며 과보를 받는 것은 모두 (나)로써 지음이 아니고 역
시 (나)로써 받는 것도 아니도되, 이제 현재에 선과 악을 지어서 과보를 받는 것이 있습니
다.
대왕(大王)이여, 자세히 들으시오. 왕을 위하여 말하겠습니다.
대왕이여, 다만 감관[情]과 경계[塵]와 알음알이[識]가 합하여 경계에 물듦을 일으킴으로써
여러 생각이 더욱 더하여 이 반연 때문에 나고 죽음에 마구 헤매며 갖추 괴로운 과보를 받
거니와, 만약 경계의 물듦이 없어서 그 여러 생각들이 쉬어지면 곧 해탈을 하나니, 감관과
경계와 알음알이의 세 가지 인연의 일로써 같이 선과 악을 일으키며 과보를 받는 것이요,
다시 따로 (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불을 비비댈 적에 손을 더욱 놀림으로 인하여 불이 일어나게 되지만 그 타는 불
의 성질은 손으로부터 일어났거나 비벼서 일어난 것이 아니로되 역시 손과 부싯돌을 이읜
것이 아닌 것처럼, 그 감관과 경계와 알음알이도 역시 그와 같습니다.’
때에 빈비사라왕은 또 생각하였다.
‘만약 감관과 경계와 알음알이가 어울려 합하였기 때문에 선과 악의 과보를 받음이 있다
하면, 언제나 합하여졌음이요, 응당 떠났거나 끊어진 것이 아니다. 만약 항상 합하지 않았다
하면 이는 곧 끊어진 것이리라.’
그 때에 세존은 왕의 생각을 아시고 곧 대답하셨다.
‘이 감관과 경계와 알음알이는 항상 상[常]도 아니요, 없음[斷]도 아닙니다. 왜냐 하면 합
하였기 때문에 없음도 아니며 여의었기 때문에 항상함도 아닙니다. 마치 땅의 물을 반연하
고 그 종자를 원인하여 싹과 잎이 나면, 종자는 벌써 썩어지므로 항상하다고 이름할 수가
없으며 싹과 잎이 났기 때문에 아주 없다고 이름할 수도 없는 것과 같습니다.
없음과 항상함을 떠났기 때문에 중도(中道)라 하거니와 세 가지 일의 인연도 역시 그와
같습니다.’
그 때 빈비사라왕은 이 법을 듣자마자 마음이 열리고 뜻이 풀리어 모든 법 안에서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 법 눈이 깨끗함을 얻었으며, 8만 나유타의 바라문촵대신이며, 인민들
도 모든 법에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 법 눈이 깨끗함을 얻었으며, 96만 나유타의 여
러 하늘도 모든 법에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 법 눈이 깨끗함을 얻었다.
때에 빈비사라왕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
었다.
‘반갑습니다. 세존이시여, 전륜성왕의 자리를 능히 버리고 집을 떠나 도를 배워서 일체
종지(一切種智)를 이룩하셨습니다.
저는 옛날 어리석어서 세존을 만류하여 작은 나라를 다스리게 하려 하였는데, 이제 인자
한 얼굴을 뵙고 또 바른 법을 듣고서야 부끄러워지며 옛날의 허물이 뉘우쳐지옵니다.
오직 원하옵나니, 세존이시여, 크신 자비로써 저의 참회를 받아 주옵소서.나는 예날에 세
존께 (만약 도를 얻으신 때면 먼저 저를 제도하여 주소서) 하였더니, 오늘 비로소 옛 소원을
이루었으며 세존의 은혜를 져서 도의 자취를 밟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부터 세존과 비구
들에게 공양하되 네 가지 일에 모자람이 없게 하겠사오니, 오직 원컨대 세존께서는 대숲[竹
園]에 머무시면서 마갈제국이 오랫동안 편안함을 얻게 하여지이다.’
부처님은 대답하셨다.
‘장하도다. 대왕이여 이에 세 가지 견고하지 못한 법을 잘 버리고 세 가지 견고한 과보
를 구하니, 장차 왕의 서원에 만족을 얻게 하리다.’
때에 빈비사라왕은 부처님께서 청을 받아들여 대숲에 머무시겠다 함을 알고 나서 부처님
발 아래 예배하고 작별하고 떠나갔다.
왕은 성으로 돌아가자마자 곧 신하들에게 칙명하여 대숲에 집을 짓게 하여 여러 가지로
장식하며 극히 엄숙하고 화려하게 하며 비단 번기와 일산을 달고 꽃을 흩으며 향을 사르고
모두 다 마친 뒤에 바로 수레를 차리어 부처님에게 나아가서 땅에 엎드려 발에 예배하고 부
처님께 아뢰었다.
‘대숲의 승가람(僧伽藍)의 수리가 끝났사오니,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께서는 비구들과 함
께 저를 가엾이 여기셔서 가시어 거기에 머무시옵소서.’
그 때에 세존은 비구들과 한량없는 하늘들에게 둘러싸여 왕사성에 들어가셨는데, 여래께
서 문지방을 밟으실 때에 성 안의 악기는 치지 않아도 저절로 울리고 좁은 문이 더욱 넓어
지며 문 아래가 더 높아지고 모든 언덕이 모두 다 평탄하여지며 냄새나는 더러운 티끌과 때
가 저절로 향기롭게 깨끗하여졌고, 귀머거리가 듣게 되고 벙어리가 말을 하며 소경이 보게
되고 미치광이가 나으며 곱사등이의 질병 등이 두루 다 나았으며, 다른 나무에 꽃이 피고
썩은 풀이 살아나며 마른 못에 물결이 더하고 향기 바람이 맑게 불며 봉황촵공작촵물총새촵
물오리촵기러기촵원앙 등 기이한 종류의 새들이 어지러이 날며 모여와 온화하고 맑은 소리
를 내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상서로움이 있었는데, 성에 들어서는 빈비사라왕과 함께 대숲으로 가셨
다.
그 때에 여러 하늘들은 공중에 가득 찼었는데, 때에 왕은 곧 손에 가진 보배 병에다가 향
수를 담아서 여래에게 나아가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이제 이 대숲을 여래와 비구들에게 받들어 올리오니, 오직 원하옵건대 가엾이 여
기셔서 저를 위하여 받아들여 주옵소서.’
이 말을 하여 마치고 곧 물을 드리니, 그 대에 세존은 잠자코 받으시면서 게송으로 주원
(呪願)하였다.
만약 사람이 보시할 수 있으면
간탐을 끊어서 없애게 되고
어떠한 사람이 인욕(忍辱)할 수 있으면
영원히 성냄을 여의게 되며
어떠한 사람이 선을 능히 지으면
어리석음을 멀어지게 하나니
이 세 가지 행을 갖출 수 있으면
빨리 열반에 이르리라.
혹은 가난한 사람이 있어서
재물로 보시를 할 수 없다 하더라도
다른 이가 보시를 닦는 것을 본때에
따라서 기뻐하는 마음을 내면
따라서 기뻐하는 복의 과보로
보시함과 같아서 다름이 없으리라.
그 때 바라문과 대신이며 그 밖의 인민들은 왕이 여래에게 승가람을 받들어 보시함을 보
고서 모두가 다 뛰놀며 따라 기뻐하는 마음을 내었다.
그 때 빈비사라왕은 승가람을 보시하기를 마치고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며 땅에 엎드려 발
에 예배하고 물러나 사는 데로 돌아갔는데, 염부제 안에서 여러 왕으로서 부처님을 뵈온 이
로서는 빈비사라왕이 맨 첫째가 되며, 여러 승가람으로서 대나무 동산의 승가람이 가장 시
초가 된다.
그 때 세존은 여러 비구들과 함께 대나무 동산의 승가람에 머무셨는데, 때마침 왕사성에
두 바라문이 있어서 총명하고 근기가 영리하며, 큰 지혜가 있어서 모든 글과 의론에 통달하
지 아니함이 없었으므로 변재와 논의에 꺾어 굴복시키지 못하였나니, 첫째는 성씨가 구율
(拘栗)에 이름이 우바실사(優波室沙)였으나 어머니의 이름이 사리(舍利)였기 때문에 세상에
서 부르기를 사리불(舍利弗)이라고 하였고, 둘째는 성씨가 목건련(目?連)에 이름이 목건라야
나(目?羅夜那)라 하였다.
저마다 1백씩의 제자가 있었고 널리 나라의 인민들에게 숭앙을 받았는데, 두 사람이 서로
함께 친우가 되어서 극히 사랑하고 중히 여기면서 함께 맹세하였다.
‘만약 먼저 여러 미묘한 법을 듣게 되면 반드시 서로가 깨우치되, 인색하지 마십시다.’
그 때에 아사바기(阿捨婆耆) 비구는 가사를 입고 바루를 가지고 마을에 들어가 걸식을 하
되 모든 감관이 잘 잡도리되고 위의가 차분하였으므로, 길가는 사람으로서 보는 이는 모두
가 공경심을 내었다.
때에 사리불은 갑자기 가는 길에서 아사바기를 만났었는데, 모든 감관이 잘 잡도리되고
위의가 차분하였으므로 그 사리불은 착한 뿌리가 이미 성숙된지라 아사바기를 보고서는 마
음으로 크게 기뻐하여 온몸을 날뛰며 걸음을 멈추고 쳐다보되 잠시는 떼지 않으면서 곧 물
었다.
‘나의 뜻으로 그대를 살피건대 새로 출가하신 것 같은데 그렇도록 모든 감관을 잡도리하
고 계시오.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대답을 하여 주십시오. 그대는 이제 큰 스승의 그 이름이
무엇이며 가르치고 경계하신 바가 계셨다면 무슨 법을 펴서 말씀하십니까?’
때에 아사바기는 차분히 대답하였다.
‘저의 큰 스승이야말로 일체 종지를 얻으신 바로 감자(甘蔗) 성바지이신 하늘과 인간의
스승이신데, 상호와 지혜며 그리고 신통력이 짝할 이가 없는 분입니다. 나는 나이가 어리고
도를 배운 날이 얕거늘 어찌 여래의 미묘한 법을 널리 말씀할 수야 있겠습니까? 그러나 알
고 있는 바를 그대에게 말씀하겠습니다.’
이어 게송으로 말하였다.
일체의 모든 법의 근본은
인연으로 생기며 주(主)가 없나니
만약 이것을 이해할 수 있는 이면
진실한 도를 얻게 되느니라.
때에 사리불은 아사바기가 말하는 이 게송을 듣자마자 곧 모든 법에 티끌을 멀리하고 때
를 여의어 법눈이 깨끗함을 얻고 도의 자취를 본 뒤에 마음이 크게 뛰놀며 몸의 모든 감관
이 다 기뻐지므로 생각하기를 ‘일체 중생들은 모두가 (나)에 집착한 까닭에 바퀴돌 듯하며
나고 죽는 데에 있다. 만약 (나)라는 생각을 없애면 곧 내 것[我所]에도 모두 떠날 수가 있
다. 마치 햇빛이 어둠을 깨뜨릴 수 있는 것처럼 (내)가 없다는 생각도 역시 그러하여 모두
(나)라는 소견의 어둔 장애를 깨뜨릴 수 있다. 나는 옛날부터 닦고 배웠던 것이란 모두가 삿
된 소견이었고 오직 지금의 얻은 바가 바로 바르고 참된 도로구나’ 하며 이런 생각을 한
뒤에 아사바기의 발에 절하고서 있던 데로 돌아갔다.
때에 아사바기는 나아가며 걸식하기를 마치고 대나무 동산으로 돌아왔다.
때에 사리불은 살던 곳으로 돌아갔었는데, 때에 마우드갈랴아야는 선한 뿌리가 이미 성숙
되었는지라 사리불을 보았더니 모든 감관이 고요하고 안정되어 위의가 차분하며 얼굴에 기
뻐함이 보통의 날과 달랐으므로 곧 물었다.
‘나는 지금 그대를 살피건대, 모든 감관이며 얼굴 모습이 보통과는 다름이 있는데 반드
시 이미 단 이슬의 미묘한 법을 얻었겠습니다. 나는 옛날 그대와는 함께 맹세를 맺되, (만약
미묘한 법을 들으면 반드시 서로가 알리고 깨우치자)고 하였으니, 그대는 얻은 바가 있거든
나에게 말씀하여 주십시오.’
때에 사리불은 곧 대답하였다.
‘나는 이제 진실로 이미 단 이슬의 법을 얻었습니다.’
대목건련은 듣고 나서 기뻐하기를 한량없이 하다가 찬탄하였다.
‘장하십니다. 지금 나를 위하여 말씀하십시오.’
사리불은 말하였다.
‘나는 이제 나아갔다가 하나의 비구를 만났더니, 옷과 바루를 가지고 마을에 들어서 걸
식을 하였는데 모든 감관이 고요하고 위의가 차분하기에 나는 보고서 깊이 공경심을 내어
그 곳에 이르러서 물었소.
(나의 뜻으로 그대를 살펴보며 새로 출가한 것 같은데 이와 같이 모든 감관을 잘 잡도리
하셨으니, 묻고 싶은 것이 있소. 대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이제 큰 스승의 그 이름이
무엇이며, 가르치고 경계한 바가 있었다면 법을 널리 말씀하십니까?)
때에 아사바기는 차분하게 곧 대답하였소.
(나의 큰 스승이야 말로 일체 종지를 얻으신 바로 감자성바지인 하늘과 사람들의 스승이
십니다. 상호와 지혜며 그리고 신통력이 짝할 이가 없습니다. 나는 나이가 어리고 도를 배운
날이 얕거늘 어찌 여래의 미묘한 법을 펴서 말씀할 수가 있겠소. 그러나 알고 있는 바를 당
신에게 말씀하겠소.)
그리고는 이어 게송으로 말하였소.’
일체의 모든 법의 근본은
인연으로 생기며 주(主)가 없나니
만약 이것을 이해할 수 있는 이면
진실한 도를 얻게 되느니라.
그 때에 대목건련은 사리불이 말하는 이 말을 듣자마자, 곧 모든 법에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 법 눈이 깨끗함을 얻었다.
그 때 사리불과 대목건련은 저마다 부처님의 법에 단 이슬을 얻고 나서 서로가 함께 말하
였다.
‘우리들은 이미 부처님의 법에서 저마다 이익을 얻었으나, 이제 마땅히 함께 부처님에게
가서 출가를 구해야겠습니다.’
이런 말을 하여 마치고 저마다 제자들을 불러서 말하였다.
‘우리들은 이제 이미 부처님 법에서 단 이슬의 맛을 얻었다. 오직 이 법만 이 바로 세상
을 뛰어나는 도이므로, 우리는 이제 부처님에게 가서 출가하기를 구하려 하는데 너희들은
어떻게 하겠느냐?’
여러 제자들은 그의 스승에게 대답하였다.
‘우리들이 지금 지니고 있는 식견은 모두가 큰 스승의 힘인데, 스승께서 만약 출가하신
다면 우리도 모두가 따르겠습니다.’
이에 두 사람은 곧 2백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대나무 동산으로 나아가다가 문에 들어가면
서 멀리 여래를 보았더니, 상호가 장엄한데 모든 비구들에게 앞뒤에서 둘러싸였는지라 마음
으로 크게 기뻐하며 온몸을 뛰놀았다.
그 때 세존은 사리불과 대목건련이 그 제자들과 함께 서로 따르며 오고 있음을 보고서 비
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알아야 하리라. 지금 이 두 사람은 여러 제자들을 거느리고 나에게 와서는 출
가하기를 구하리라. 한 명의 이름은 사리불요, 또 한 명의 이름은 목건련인데, 장차 나의 법
중에 우두머리 제자가 되리라.
사리불은 지혜 중에서 맨 첫째가 될 것이요, 대목건련은 신통 중에서 다시 더할 나위 없
이 되리라.’
부처님에게 닿아서 땅에 엎드려 발에 예배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부처님의 법에 이미 도의 자취를 얻었거니와 출가하기를 바라오니 때에 허락하옵
소서.’
그 때에 세존은 곧 부르셨다.
‘잘 왔구나. 비구야.’
그러자 수염과 머리칼이 저절로 떨어지고 가사가 몸에 입혀지며 곧 사문이 되었다.
때에 그의 2백 제자들은 벌써 그의 스승이 사문이 되었음을 보고 모두가 부처님께 아뢰었
다.
‘저희들도 스승을 따라서 출가하려 하오니,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가엾이 여기시
어 허락하옵소서.’
이에 세존은 곧 또 부르셨다.
‘잘 왔구나, 비구들아.’
그러자 수염과 머리칼이 저절로 떨어지고 가사가 몸에 입혀지며 곧 사문들이 되었다.
그 때 세존은 사리불과 대목건련을 위하여 널리 네 가지 진리를 말씀하시자, 두 사람은
곧 아라한의 과위를 얻었다.
또 다시 그 2백의 제자들을 위하여 널리 네 가지 진리를 말씀하시자, 곧 모든 법에 티끌
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 법 눈이 깨끗함을 얻었으며, 내지 아라한의 과위도 얻었다.
그 때 세존은 모두가 큰 아라한인 1,250 비구와 함께 마가다국에서 널리 중생들을 이롭게
하셨는데 여러 비구들 중에 목건련이라는 이름 지닌 사람이 많이 있었는지라 세존은 일부러
이 목건련에게는 대목건련(大目?連)라 하셨다.
그 때 투라궐차국(偸羅厥叉國)에 가섭(迦葉)이라 하는 한 바라문이 있었는데, 서른두 가지
모습이 있고 총명하고 지혜로워서 네 가지 베다 경전[四毘陀經]을 외우며 온갖 글과 이론에
통달하지 아니함이 없고 극히 큰 부자였는지라 보시를 잘하였으며, 그 부인은 단정하여 온
나라에서 짝할 이가 없었지만 두 사람은 자연히 음욕의 생각조차 없었으므로 같이 한 방에
서 잠자리까지도 하지 않았다.
오랜 옛날에 선한 뿌리를 심었기 때문에 집에 있으면서 다섯 가지 욕심의 즐거움 받기를
좋아하지 아니하고 밤낮 생각하였다.
‘세간이 싫증이 나므로 애써서 출가의 법을 찾으리라.’
이렇게 찾았지만 되지 않는지라 곧 집안 일을 버리고 산 숲에 들어가서 마음으로 생각하
였다.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 출가하여 도를 닦으셨으니, 나도 이제 부처님의 출가를 따라야겠
다.’
그리고는 곧 금실로 짜서 만든 백천 냥의 돈 값어치가 된 값진 보배 옷을 벗어 버리고 빛
깔을 무너뜨린 누더기를 입고 스스로가 수염과 머리칼을 깎아버리자, 그 때에 여러 하늘들
은 공중에서 가섭이 스스로 출가함을 보고서 말하였다.
‘선남자시여, 감자 성바지로써 백정왕의 아들의 이름은 살바실달[?波悉達]이신데 출가하
여 도를 닦고 일체 종지를 이루셨습니다. 온 세상에서 부르시기를 석가모니라 하는데, 지금
1,250의 아라한과 함께 왕사성의 대숲 가운데 머물고 계십니다.’
그때에 가섭은 하늘의 말을 듣고서 기뻐 날뛰며 몸의 털이 다 곤두서는 지라. 곧 대숲의
승가람(僧伽藍)으로 나아갔다.
그 때 세존은 그가 장차 올 것을 아시고 생각하셨다.
‘그 선한 뿌리를 자세히 살펴보니, 가서 제도하여야겠구나.’
즉시 마중을 가시다가 자도바(子兜婆)에 이르러서 가섭을 만났는데, 때에 그 가섭은 벌써
상호와 위의가 특히 높으심을 보고 곧 합장하면서 말하였다.
‘세존이야말로 참으로 이는 일체 종지시며, 참으로 이는 자비로 중생들을 제도하실 이며,
참으로 이는 일체가 귀의할 곳이옵니다.’
그리고는 온몸을 땅에 던지며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아뢰었다.
‘세존이야말로 이제 바로 저의 큰 스승이오며 저는 바로 제자이옵니다.’
이렇게 세 번을 말하자, 부처님은 대답하셨다.
‘그러하다. 가섭아, 나는 바로 너의 스승이며 너는 바로 나의 제자니라.’
또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가섭아, 알아야 하리라. 어떤 사람이 진실로 일체 종지가 아니면서 너를 제자로서 받아
들이고자 한다면 머리가 곧 깨져서 일곱 조각이 나리라.’
또 다시 말씀하셨다.
‘장하도다. 가섭아, 반갑구나. 가섭아, 다섯 가지로 원인[陰]을 받는 몸은 바로 큰 괴로움
의 더미인줄 알아야 한다.’
때에 가섭은 이 말씀을 듣자마자 곧 진리를 보았으며, 이에 아라한의 과위까지 얻었다.
그 때 세존은 가섭과 함께 대나무 동산에 돌아가셨는데, 이 가섭은 크고도 거룩한 덕과
지혜와 총명이 있었기 때문에 대가섭(大迦葉)이라 이름하였다.
그 때 세존은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보광여래(普光如來)께서 세상에 안 오셨을 때의 선혜선인(善慧仙人)이 어찌 다른 사람
이겠느냐. 바로 지금의 나의 몸이니라.
길을 가다가 만났던 5백의 외도로써 함께 논의하고 따라 기뻐했던 이들은 지금의 이 모임
안의 우루빈라가섭 형제와 그의 전속 천 비구들이 그들이요, 때에 꽃을 팔았던 여인은 지금
의 야수다라가 그 사람이 부처님 앞의 땅을 쓸었고, 2백 인이 따라 기뻐하며 도왔던 이름은
지금 이 모임 안의 사리불과 대목건련이며 아울러 2백 제자인 비구들이 그들이었다.
허공에서 여러 하늘들이 선혜 선인이 머리칼을 땅에 깔음을 보고 모두 다 따라서 기뻐하
며 찬탄한 이들은 내가 처음에 도를 얻고서 녹야원(塵野園)에서 비로서 법의 바퀴를 굴릴
적의 8만의 천자들과 빈비사라왕이 거느렸던 귄속 8만 나유타 인이며 96만 나유타 하늘들이
그들이었다.
너희들은 알아야 한다. 지나간 세상에 심었던 인(因)은 한량없는 겁을 지나면서도 마침내 닳
아 없어지지 않는다.
나는 옛날에 애써 부지런히 온갖 선한 일을 닦아 익히고 큰 서원을 세워서 마음에 물러나
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지금에 일체종지를 성취하였으니, 너희들은 마땅히 애써 도와 행을
닦되 게으르지 말지니라.”
[출처] 과거현재인과경(過去現在因果經)|작성자 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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