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 스님
세존이 처음 출가하여 6년이라는 세월 동안 고행을 끝내고 깨달음을 이룬 뒤 최초로 설하신 것으로 되어 있는 『화엄경』에서는 무슨 말씀을 하였는가? 먼저 가장 널리 알려진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은 차별이 없다.”라는 말씀을 살펴보겠다.
부처님은 자비심이 넓고 깊기 때문에 한 사람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양한 수준의 사람들을 다 제도하려면 하는 수 없이 다양한 방편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아신다.
그러므로 불교의 별의별 가르침이 많지만 진실은 하나다. 그래서 부처니, 중생이니, 마음이니, 사람이니, 성품이니, 불성이니, 진여니, 법성이니 하는 말을 하지만 『화엄경』의 말씀과 같이 그것은 차별이 없다. 오직 다양한 수준의 사람들을 깨우치기 위한 방편의 말일 뿐이다.
다만 사람이 그대로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 사실을 사실대로 이해하는 것이 바른 견해(正見)이며, 진리다. 특히 우리나라 불교는 신라 때부터 의상 스님과 원효 스님을 통해서 일찍이 『화엄경』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화엄경』사상으로 불교의 토대를 만들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사상이나 글이 결코 생소하지 않다.
참고로 『화엄경』의 글을 그대로 옮겨둔다.
“마음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같아서 여러 가지 색.수.상.행.식을 그린다. 일체 세간의 것들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법이 없다. 마음과 같이 부처도 또한 그와 같으며 부처와 같이 중생도 그러하다.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은 차별이 없다.”
또한 『화엄경』「여래출현품」에 이렇게 말하였다.
“그때에 여래가 무엇에도 걸림이 없는 시원하고 툭터진 지혜의 눈으로 일체 중생들을 널리 살펴보시고 이와 같이 말하였다.
‘신기하고 또 신기하여라. 이 많고 많은 모든 중생이 어찌하여 여래의 지혜를 모두 다 갖추고 있건마는 어리석고 미혹하여 그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가? 내가 마땅히 성스러운 진리로써 그들을 가르쳐서 그들에게 죄업이 많은 못난 중생이라는 잘못된 생각과 그것에 대한 집착을 영원히 버리게 하리라. 그래서 스스로 자신들에게 있는 여래의 넓고 큰 지혜가 부처님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보게 하리라.’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곧바로 그들에게 가르쳐서 성스러운 진리를 사유하고 명상하게 해서 죄업이 많은 중생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버리게 하고 그 생각을 버리고 나서는 여래의 한량없는 지혜를 증득하게 해서 그들이 다시 또 일체 중생들을 이익하게 하고 편안하게 하도록 하리라.”
여래는 중생에게서 무엇을 보고 “신기하고 또 신기하다.”라고 하였을까? 즉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능력을 보고 그렇게 말하였다. 추우면 추운 줄 알고, 더우면 더운 줄 알고, 부르면 대답하고, 사랑하고 미워할 줄 아는 바로 그 사실, 그 능력을 보았던 것이다. 그와 같은 능력이 사람을 제외하고 달리 어디에 있겠는가.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것은 사람밖에 없는 능력이다. 이것이 부처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것이 하나님이 아니고 무엇인가.
역시 또 『화엄경』「여래출현품」에,
“불자들이여, 여래의 지혜가 어느 곳이든지 이르지 않는 곳이 없다. 왜냐하면 그 어떤 한 중생도 여래의 지혜를 갖추고 있지 않는 이가 없지만 다만 스스로 그렇지 못하다는 잘못된 생각과, 부처님과 중생은 다르다는 전도된 생각과, 또 그것이 집착이 되어 깨닫지 못할 뿐이다. 만약 그와 같은 잘못된 생각만 버린다면 일체 존재의 실상을 아는 지혜와 자신에게 본래부터 저절로 갖춰져 있는 지혜와 무엇에도 걸림이 없는 지혜가 앞에 나타나게 되리라.”
『화엄경』은 마치 하루의 해가 처음 떠오를 때 가장 높은 산봉우리를 비추듯이 석가세존의 깨달음을 성취하시고 나서 곧바로 그 깨달음의 진실을 아무런 방편도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설파하신 내용이기 때문에 진리의 최고봉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깨달음을 통한 바른 견해가 그대로 녹아 있다.
『화엄경』은 물론 유형무형의 세상 온갖 존재에 대한 바른 견해를 설파한 것이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우선하는 것이 사람이므로 사람에 대한 바른 견해를 소개한 것이다. 『화엄경』에 나오는 사람에 대한 바른 견해란, 사람은 누구의 종도 아니요, 죄업으로 뒤덮인 몹쓸 중생도 아니며 모두가 여래의 지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완전무결한 부처님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세존도 “신기하고 또 신기하여라.”라고 하였다. 다만 사람의 수준에 따라 달리 말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방편으로 한 것이지 진실은 아니다.
부처님은 본디 태자의 출신이다. 온갖 호사품을 다 지녀 보았고, 그야말로 부귀영화를 누린 분이다. 세상에 그 무엇이 신기하고 또 신기하겠는가? 깨달은 사람, 즉 부처가 되기 위해서 얼마나 큰 희생과 투자를 하였는가?
머지않아 왕의 지위에 오를 태자의 자리를 헌신짝 버리듯 미련 없이 버렸다. 그렇게 나라를 맡기고 싶어 했던 부왕의 간절한 기대마저 저버렸다. 사랑스런 아내와 어린 자식마저 버렸다. 어찌 그뿐인가? 금지옥엽 귀한 왕자의 몸으로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피나는 고행을 6년이나 거뜬히 하였다. 그런 끝에 깨달음을 성취하여 비로소 기대하던 부처가 되었건만 부처가 되어 깨달음의 눈으로 저 무지몽매한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니 아무런 희생도 투자도 고생도 하지 않은 그들도 여래의 지혜와 부처의 능력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다.
참으로 ‘신기하고 또 신기한 일’이려니와 한편 얼마나 허탈하였을까? 그러나 어쩌랴. 사실이 그런 것을. 그래서 깨달음을 이루고 최초로 설하셨다는 『화엄경』에서는 위에서 인용한 것과 같이 설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사람을 보는 올바른 견해 즉 정견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사람은 너무나도 존귀한 소중한 부처님이다. 살아 있는 부처님이며 살아 있는 신이며 살아 있는 하나님이다. 사람 외에 달리 무슨 부처님이 있으며, 사람 외에 달리 무슨 하나님과 신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사람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겨야 한다. 사람을 하나님으로 받들어 섬겨야 한다. 사람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고 사람을 하나님으로 받들어 섬기면 그도 행복하고 나도 또한 행복해진다. 모든 세상 사람들이 다 같이 행복하게 사는 길은 오직 이 한 길뿐이다.
『화엄경』은 일찍이 우리나라에서 크게 숭상하던 경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성자 원효 스님과 의상 스님이 모두 『화엄경』을 통달한 화엄의 대가들이다.
원효 스님은 경주 분황사에서 화엄의 깊은 뜻을 서라벌에 전하였으며 의상 스님은 전국에 화엄십찰(華嚴十刹)을 창건하여 화엄 사상을 더욱 널리 전파하였다. 부석사와 범어사와 해인사와 화엄사와 불국사 등이 모두 화엄사찰이다. 두 스님이 모두 깨달음의 바른 견해로 인간의 진정한 가치인 ‘당신은 부처님’이라는 깃발을 높이 휘날렸던 분들이다.
불교는 특히 정견(正見), 즉 유형무형의 모든 존재와 사람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존중한다. 그런데 서양에서 들어온 삿되고 전도된 견해로 인하여 사람을 신의 종으로 본다든지, 사람을 재산이나 돈보다 못한 것이라고 본다든지, 그래서 급기야는 사람을 돈으로 사고팔기도 하며, 남의 나라의 석유나 재산을 빼앗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켜 그 귀중한 생명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는 일을 자행하기도 하는 것이다.
서양의 물질문명이 우리나라에 유입되면서 그와 같은 잘못된 견해까지 함께 들어와서 오늘날 자신의 귀중한 생명을 아무렇게나 죽여 버리는 자살행위나, 재산이나 몇 푼의 돈을 빼앗기 위해 다른 사람도 아닌 부모나 자식이나 형제들의 목숨까지도 아무렇지 않게 해치는 행위가 만연하게 된 것이다. 사람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가진 지도자라면 어떤 일보다도 가장 우선적으로 그와 같은 잘못된 국민의식, 사람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국가적으로 고치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석가세존께서 깨달음을 이루고 나서 처음 하신 말씀이나, 열반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나 한결같이 사람의 소중한 가치를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고구정녕하게 말씀하셨다. 다시 말하면 석가세존의 간절하신 말씀은 “사람은 누구의 종도 아니요, 죄업이 많은 못난 중생도 아니라, 본래로 완전무결한 부처님”이라는 운동을 펼쳐야 하지 않겠는가?
출처 : 제주불교신문(http://www.jeju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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