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라는 섬에 자주 가면 우리는 더 행복 합니다
자비명상 지도법사 마가 스님
아직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 아버지가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픽업(pick up)’되는 바람에 아버지 없이 자란 한 청년이 있었다. 이 청년은 아버지에게 복수할 날을 꿈꾸다 급기야 1년 동안 사 모은 수면제를 들고 강원도 산속에 들어가 자살을 기도한다. 자기가 그렇게 죽으면 아버지 가슴에 큰 상처를 남길 수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그런데 자기 마음대로 세상에 나올 수 없는 것처럼 죽는 일도 쉽지 않은 법. 수면제를 먹고 산속에 쓰러져 있는 이 청년을 어느 스님이 발견하고, 그렇게 목숨을 구한 청년은 출가를 한다. 그 청년이 바로 마가 스님이다.
출가는 했지만 가슴속 상처는 그대로였던 마가 스님은 전남 곡성에 있는 태안사를 찾는다.
“몇몇 어른스님들을 뵙고 난 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태안사에 계시던 청화 스님을 찾아갔어요. 인사를 드렸더니 큰스님께서 ‘자네는 출가 전에 어떻게 살았나?’ 라고 물으셔요. 그 순간 숨이 막혔어요. 그런데 그동안 잊고 지냈던 내 안의 ‘아버지’가 다시 올라와요. 그렇게 한참을 있었는데 큰스님께서 같이 살며 공부하라고 하셔서 그때부터 한 달 반 정도 큰스님 곁에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없이 눈물이 쏟아졌어요. 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아버지 고맙습니다’, ‘큰스님 고맙습니다’, ‘부처님 고맙습니다’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일주일을 울었어요. 가슴은 환희로워졌습니다. 그때부터 인생관이 바뀌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뜻밖에 흘러나온 이 한마디는, 상처를 준 아버지가 있었기에 출가를 했고, 출가 후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에서 자기 안에 원래 있던 자비로운 마음을 발견할 수 있었기에 나온 말이었다. 이렇게 자기 내면에서 먼저 아버지와 화해를 한 스님은, 이후 아버지와 가족들 사이의 화해를 주선했고, 이를 계기로 스님의 아버지는 다시 가족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마가 스님은 이렇게 ‘화해’와 ‘자비’를 가지고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왔다.
마가 스님은 바쁘다. 불러주는 곳은 어디든 달려간다. 한 달 중 쉬는 날이 며칠 없다. 몸도 마음도 지칠 때가 있지만 그래도 사람들을 만나면 스님의 얼굴에는 어느새 미소가 피어난다.
“제주도보다 더 아름다운 섬이 있습니다. 바로 ‘그래도’라는 섬입니다. 가령 ‘직업도 없고 나이는 많지만 그래도 건강하니 행복하다’라고 생각해야죠. ‘그래도’라는 섬에 자주 가면 행복합니다.” 최근에 만난 마가 스님이 밝힌 행복 철학이다.
스님은 ‘자비명상’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부처님은 지혜와 자비의 상징입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들이고요. 그러면 여기서 하나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나는 자비로운가? 불자들은 자비로운가? 주변을 보면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내 안’에 자비는 없는 것 같아요. 내 안의 무자비성을 바로 보고 자비로 바꿔가는 작업이 바로 자비명상입니다.”
그렇다면 자비명상의 핵심은 무엇일까?
“자비는 방안의 불빛이 방을 가득 채우고 밖으로 나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렇게 세상에 전해집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작업을 먼저 해야 합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남을 사랑하지 못하고 사랑받을 수 없습니다. 내가 나를 사랑할 때 남으로부터 사랑 받을 수 있습니다. 내가 남들로부터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은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이에요. 모든 사람은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자비명상입니다. 그 사랑의 힘으로 내 가족들과 내 이웃을 비롯한 모든 존재를 안아주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마가 스님은 자비명상을 통해 편안하고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스님은 “스님들이 전국에서 자비명상을 대중들에게 전할 수 있어야 한다.”며 ‘자비명상 지도자 과정’의 활발한 운영을 다짐하기도 했다.
마가 스님이 경향각지에서 진행하는 자비명상에는 ‘청문회’, ‘유서쓰기’, ‘걷기명상’ 등 여러 가지 장치가 있다. 청문회는 참가자들이 서로 궁금한 것들을 묻고 답하는 시간이다. 일종의 역할극인 청문회에서 자신에게 고통을 주었던 요소들과 화해하게 한다. 참가자들에게 유서를 쓰게 하는 이유는 죽음이 자기 곁에 있다는 사실과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일깨워주기 위함이다. 걷기명상은 맨발로 하는데, 자연의 소중함을 느끼고 ‘지금 이 순간을 깨어있게’ 하자는 취지다. 마가 스님의 자비명상은 몇 년 사이 우리 사회에 급속도로 파급됐으며, 대학에서 교양과목으로 채택했을 정도다.
마가 스님이 마곡사를 ‘템플스테이 명찰’로 만들자 2003년 중앙대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자비명상으로 교양학부 선택과목을 개설하자는 것이었다.
“중앙대가 기독교 학교여서인지 ‘자비명상’이 불교 색채가 난다면서 이름만 좀 바꿔 달라고 간청하기에 차 안에서 급히 생각해 낸 것이 ‘내 마음 바로보기’였지요. 대학 관계자들도 좋다고 하더군요.”
‘내 마음 바로보기’(3학점) 수업은 10주 출강과 2박3일 템플스테이를 거치면서 ‘자기 인생의 주인공은 자기 자신’임을 깨우쳐 주는 수업이었다. 때로는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읽게 해 끊어진 부자간의 정을 잇게 하기도 했다. 마가 스님의 명상수업은 처음에 150명이던 수강생이 2011년엔 1500명까지 늘어 1초 만에 수강신청이 마감된 강의로 유명하다.
마가 스님은 앞으로도 전국을 누비며 대중들을 만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당장은 바쁘게 움직일 것이지만 먼 훗날에는 어떤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나타날 것인지도 궁금했다.
“소나무가 있고 황토가 있고 물이 있는 그런 곳에 플럼빌리지 같은 명상센터를 만들려고 합니다. 제 나름대로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여러 군데를 다녔는데 그 중 플럼빌리지 방문이 가장 인상 깊었어요. 그곳에는 종교를 초월해 많은 사람들이 옵니다. 입가에는 항상 미소가 있고 마음은 너무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저도 그런 곳을 만들고 싶습니다. 아마 20년 후에는 시골 어딘가에 마련된 명상센터에서 채소밭 가꾸면서 찾아오는 사람들과 차 한 잔 나누고 있을 것 같습니다. 찾아오는 누구와도 차 한 잔 마실 수 있는 그런 스님이 되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스님의 명함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스님의 얼굴이 박혀 있다. 왜 미소 짓는 얼굴을 넣었느냐고 묻자 “이산혜연 선사 발원문의 ‘내 모양을 보는 이나 내 이름을 듣는 이는 갖은 고통 벗어나서 열반언덕 가사이다’라는 대목에서 감동을 느껴 마가라는 이름만 들어도 사람들이 편해졌으면 해서…”라고 스님은 말했다. 머지않아 스님의 ‘원력’은 곧 실현될 것 같다. 명함의 그 모습처럼 스님은 오늘도 웃으며 사람들을 만나러 길을 나선다.
[출처] 자비명상 지도법사 마가 스님|작성자 jajuycj
'선지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이 그대로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정견” (0) | 2021.01.03 |
---|---|
동산대종사의 한국불교사적 위상 (0) | 2021.01.03 |
믿음은 도의 근원이요 모든 공덕의 어머니 / 성공스님 (0) | 2020.12.20 |
수처작주(隨處作主) ‘직지’의 화두 (0) | 2020.12.20 |
밥주지 차주지 놀아주지 걸어주지 (0) | 2020.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