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가지 생활지침, 사의법 四依法
1. 들어가는 말
B.C.E. 600-500년경에 바라문의 사상에 맞서 새로운 우주․인생관을 제시하면서 자유로운 사상활동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대거 출현했는데, 이들을 사문(沙門, samaṇa, śramaṇa)이라고 부른다. 붓다 역시 이 같은 사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사문이란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며, ‘몸을 괴롭게 하는 사람’이라는 정도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말이다. 이들은 기존 바라문의 생활방식과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유행기가 아니더라도, 본인이 원하는 시기에 출가하여 무리지어 숲속에서 지냈다. 이들 가운데는 윤회의 해탈을 위해 욕망을 극도로 억제하며 고행을 실천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정통 바라문 입장에서는 이단으로 볼 수 있었고, 대체로 바라문이외의 사상가들을 사문으로 부르게 되었다.
고대 인도사회의 정통 바라문과 사문 모두가 일반적으로 따르는 생활 관습이 있었는데, 부처님은 이를 채택하여 불교교단에 새롭게 적용하였다. 불교교단의 출가자들의 기본적인 생활지침인 사의법이 그것이다.
2. 사의법
율장 대(大) 건도는 출가에 관한 장(章)이다. 그 기록에 의하면 승가에 들어와서 비구,비구니에게는 반드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생활지침(四依法)을 설해주도록 되어 있다.
1) 걸식(乞食, piṇḍiya lopabhojana)
출가자는 출가자는 걸식(乞食)으로 살아가며, 목숨을 마칠 때까지 이에 힘써야 한다. 출가자는 원칙적으로 매일 아침 탁발을 하여 사람들로부터 음식을 공양받아 그것을 자양분으로 삼는다. 이것을 걸식이라 하며, 당시 사문들의 일반적인 생활양식이었다.
여기에는 상행걸식(常行乞食)과 차제걸식(次第乞食)이라는 조항이 있다. 즉 매일 탁발하여 생활하며[常行乞食], 걸식을 할 때 가난하고 부유한 마을이나 집을 골라 건너뛰지 않고 차례로 걸식한다[次第乞食]는 뜻이다.
스님을 걸사(乞士)라고 하는데 이는 밥을 빌어서 몸을 기르고, 또 한 법을 빌어 부처님의 혜명(慧明)을 이어나간다는 뜻에서 연유한 말이다. 걸식을 행할 때, 얻은 음식을 발우에 담는데, 발우에 목숨을 기탁한다는 의미로 탁발(托鉢)이라고 한다.
공양물을 받아 처소에 돌아와서는 반드시 오전 중에 먹어야 하는데, 밥이 남으면 다 먹었다는 말을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도 된다. 공양은 하루에 한번이 원칙으로 여러 번 먹는 것은 범계가 된다. 특히 정오가 지나 해뜰 때 까지는 때가아니므로 마시는 것 이외에는 먹지 않는다.그날 받은 음식은 그날 안에 먹는 것을 원칙으로 다음날을 위해 남겨두어서도 안된다.
부처님은 걸식이 아니라도 재가자가 특별히 호의를 베푸는 식사는 허용하여, 승차식(僧次式), 별청식(別請食),청식(請食), 행주식(行籌食), 십오일식(十五日食), 포살식(布薩食), 월초식(月初食)은 받아도 된다. 이러한 걸식은 출가와 재가의 관계를 이어주는 매우 중요한 행위였다.
출가자의 모든 생산활동이 금지되었던 당시 초기교단에서는 오로지 걸식을 통해 생계를 유지했고, 탁발은 지금도 남방의 불교 권에서는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북방불교 권에서는 생활의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수행의 한 방편으로 탁발이 가끔 씩 행해지고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이비승려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 종단적으로 탁발행위를 금하고 있다. 걸식에는 첫째, 아집과 아만을 버리는 뜻이 있으며, 둘째는 보시하는 이의 복덕을 길러주는 공덕이 있다.
2) 분소의(糞掃衣, paṃsukūlacīvara)
출가자는 분소의로 살아야 하며, 목숨을 마칠 때까지 이에 힘써야 한다.
분소의는 버려진 헤어진 천을 주워서 빨아 꿰매어 만든 옷이다. 소가 뜯어먹다가 버린 천으로 만든 옷, 쥐가 쏠은 천으로 만든옷, 여인의 월경이 묻은 천으로 만든 옷, 임산부의 피묻은 천으로 만든 옷, 사당이나 묘에서 사용했던 천으로 만든 옷, 새가 물어다 버린 천이나 묘지에서 시신을 쌌던 천으로 만든 옷 등이 모두 분소의에 해당된다. 다만 단월이 보시한 옷이나, 찢어 조각난 옷은 받아도 된다. 아마의(亞麻衣)․금의(錦衣)․야잠의(野蠶衣)․갈의(褐衣)․저의(紵衣) 등의 예외는 인정되었다.
분소의는 이처럼 갖가지 천으로 만든 것인데, 여기에 청·흑·목란의 세가지 색을 섞어 물들이고, 한 조각씩 직사각으로 조각내어 꿰매었다. 그 색깔이 지저분한 갈색(Kasāya)이었기 때문에, 한자로 음사하여 가사(袈裟)라 이름하게 되었다. 오늘날 가사가 가늘고 긴 천의 조각모음으로 된 것은 이러한 규칙에서 유래한 것이다.
가사의 직사각형 조각은 밭모양과 같다 하여, 이를 복전의(福田衣)라고 한다.
분소의로 만들어진 의제는 안타회(속옷), 울다라승(웃옷), 승가리(겉옷)의 세 가지가 한 벌로써 원칙이었다. 만약 한 벌 삼의 이상을 갖고 있으면 장의(長衣)라고 하였다. 장의를 열 벌 이상 소유하고 있으면 장의계를 범하는 것이 되고, 또 하룻밤 동안이라도 삼의 중 어느 하나를 지니지 않으면 이의숙계(離衣宿戒)를 범하게 된다.
3) 수하좌(樹下座, rukkhamūlasenāsana)
출가자는 햇볕과 비를 피할 수 있는 나무아래 돌 위에서 생활하며, 목숨을 마칠 때까지 이에 힘써야 한다. 단, 정사(精舍)․평복옥(平覆屋)․전루(殿樓)․누방(樓房)․땅굴 등의 예외는 인정된다.
부처님은 성도 전 우루빌라의 숲속 나무 밑에서 머물렀고, 처음 교단이 형성된 직후에 비구들은 원래 임야나 나무밑, 산속, 동굴, 계곡, 무덤, 산림, 노지, 짚더미에 머무르고 있었다. 초기교단이 성장하고 승원이 생기고, 재가신도로부터 죽림정사와 기원정사 같은 처소를 기증받으면서, 점차적으로 건물 안에서의 생활도 허용되었고,건물 안에서의 공동생활이 일반화 되었다. 재가자가 특별한 호의로 처소를 마련해 주었을 경우나 건축 재료를 제공해주었을 경우에는 가옥에서 사는 것이 허용된 것이다. 그러나 여러 곳에 승원이 생겨났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수행자들은 여전히 나무 밑이나 동굴을 거처로 삼았다.
4) 진기약(陳棄藥, putimuttabhesajja)
출가자는 진기약에 의존해야하며 평생 이를 지키려고 노력해야한다.
진기(陳棄)는 부패하여 심하게 냄새나는 동물의 대소변을 말하는데, 주로 소의 소변을 끓이거나 발효시킨 진기약은 맛이 쓰며, 복통 등에 효능이 있다. 남이 쓰다버린 약도 진기약에 포함 된다. 또한 재가자가 특별한 호의로 제공한 약도 받아 쓸수 있는데, 진기약 외에 예외로 숙소(熟蘇), 생소(生蘇), 유(油), 밀(密), 당(糖) 등이 허용되었다.
비구의 음식물 중 약과 음식을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통상적으로 오전 중에 먹는 음식물을 시약(時藥) 이라하고, 오후에 먹는 약용식을 비시약이라 한다.
시약 |
때에 먹음 (오전) |
①정식(正食) |
밥, 죽, 보리가루, 물고기, 고기의 주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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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비정식(非正食) |
뿌리, 가지, 잎, 꽃, 열매, 호마(胡麻), 석밀(石蜜), 세미마(細未磨) 등의 씹어 먹는 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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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시장(時漿) |
유(乳), 락(酪), 장(漿), 미즙(米汁), 분즙(粉汁) 등의 오전 중에만 마실수 있는 음식 |
비시약 |
때 아닌 때 먹음(오후) |
①7일약 |
숙소,생소,꿀,설탕,기름 등을 아플 때 7일간 소지하여 언제든 섭취가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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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진형수약(盡形壽藥) |
비상상비약으로 항상 지니고 아플 때마다 복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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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비시장(非時漿) |
오후에도 마실수 있는 강황, 생강등 각종 근약(根藥), 각종 섭약(涉藥), 과약(果藥), 수지약(樹脂藥) 등 |
덧붙여 매우 병든 비구·비구니에게는 고기즙, 동물의 지방, 물고기 지방과 생육이나 생혈까지도 때에 먹는 것을 허용했다.
3. 나가는 말
이 네 가지는 사문들이 지켜야 할 출가생활의 원칙이었다. 불교 역시 이 사의법을 지키는 승가로서 성립하였음은 물론이다. 초기 승가에서는 이 사의법이 지켜졌던 것으로 보이는데 원칙에 어긋난 예외 조항들을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반드시 원칙대로 지켜졌던 것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사의법은 탐진치를 여의고, 출가자로써 안일한 생활을 경계해 주는 수행자만의 검소한 생활양식이었다. 비록 시대가 급변하고 생활양식이 달라졌지만, 입고, 먹고, 머물고, 병을 치료하는 것은 변함없다. 부처님께서 사의법의 여러 가지 규정을 말씀해주신 깊은 뜻을 이어받아 수행자다운 모습을 잃지 않도록 항상 살펴야 할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걸식을 한다고 그 때문에 걸식자가 아니니
악취가 나는 가르침을 따른다면 걸식 수행자가 아니네.
공덕마저 버리고 악함도 버려 청정하게 삶을 영위하며
지혜롭게 세상을 사는 자가 그야말로 걸식 수행승이네.
< 상윳따니까야- 빅카까경 중>
※ 참고서적
- 사토우미츠오, 초기불교 교단과 계율, 민족사, 1991
- 불교교재편찬위원회, 불교사상의 이해, 불교시대사, 1997
- 사사키 시즈카, 출가 세속의 번뇌를 놓다, 민족사, 2007
- 여산철우, 사분비구니계본강의초, 토방, 2012
- 전재성, 쌍윳따니까야, 빠알리성전협회,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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